상근이가 마스코트이자 제7의 멤버인 이유

스타 못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는 ‘1박2일’의 마스코트, 상근이. 하지만 최근 들어 ‘1박2일’에서의 활약상이 과거와 같지 못하다는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혹자는 이런 상황에 처한 상근이를 두고 ‘반짝 스타’를 떠올리기도 하나 보다. 그 인기는 언론 플레이가 만들어준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다. 현재 피부병에 대한 기사만 봐도 그렇다. 연예인들 중 어느 누가 피부병에 걸렸다고 기사화까지 될까 싶다. 하지만 이것은 거꾸로 생각해보면 상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상근이는 시청자들이 보호해주고 싶은 혹은 꼭 보호해줘야 할 존재로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상근이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단지 언론 때문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 성격과 상근이의 캐릭터와의 상관관계가 있다. 야생 버라이어티를 주창하는 ‘1박2일’에서 상근이는 야생 그 자체를 상징하는 캐릭터다. 초창기 ‘1박2일’을 떠올려보면 야생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출연진들의 고생담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걸 상기할 수 있다. 그 때 상근이란 존재는 그냥 그 출연진들 옆에 있기만 해도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야생 그 자체인 상근이와 문명의 때가 잔뜩 묻은 출연진들로 대비되면서 양자의 캐릭터를 모두 강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 대비가 차츰 흐려지고 비슷해지는 순간이다. 즉 출연진들이 처음에는 야생의 이질적인 존재로서 등장하다가 차츰 야생에 적응해가는(혹은 잘 버티고 있는) 모습들을 보이는 순간 순간이 ‘1박2일’의 중요한 재미요소였다는 말이다. 그러니 상근이와 출연진들은 초반부에는 서로 간의 거리가 먼 존재였다가 차츰 가까워지는 존재가 된다. 상근이와 은초딩, 허당 같은 캐릭터가 서로 눈밭에서 어울리고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떠오르는 것은 저 무인도에 떨어졌던 로빈슨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와 함께 적응해가는 모습이다.

특히 ‘1박2일’의 성공 조건이 되었던 것은 겨울이라는 계절적인 조건이었다. 추위라는 원초적인 야생에서의 하룻밤을 두고 복불복 게임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 조금은 극단적인 야생 상황 속에서 상근이의 존재는 분명한 대비효과이면서(자신은 여유로운), 또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는 존재(기댈 수 있거나 혹은 보호해줘야 할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이기도 하다. 상근이의 존재가 최근 잘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계절적 요인(따뜻한 봄의 도래)이 크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상근이만이 아니라 ‘1박2일’ 자체가 가진 현재의 도전상황이기도 하다. ‘1박2일’에게 봄은 새로운 도전이 된다.

그리고 이 봄은 단지 계절적인 요인만이 아닌, 소위 뜰대로 떠버린 프로그램 자체의 상황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미 적응해버린 로빈슨에게는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지 않으면 재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1박2일’이 여서도를 선택한 것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1박2일’을 성공시켜주었던 섬이라는 공간(소외된 지역, 야생의 공간, 혹은 로빈슨 적인)을 다시 되새기면서 초심을 다시 다질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곳에서 출연진들이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면 ‘1박2일’의 도전상황은 오히려 좀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출연진들의 새로운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보여지는 자리에 상근이는 대비되는 존재의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상근이는 가만히 존재하기만 해도 ‘1박2일’의 현재를 보이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것이 상근이가 ‘1박2일’의 마스코트이자 제 7의 멤버인 이유이다.

‘1박2일’과 ‘전국노래자랑’의 만남, 까메오 이상인 이유

28년 된 ‘전국노래자랑’과 이제 1년이 채 안된 ‘1박2일’. 두 프로그램을 비교한다는 것은 마치 최고령 MC로서 지금도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해와,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는 있지만 방송인의 내공으로 봐서는 한참 뒤에 서 있는 ‘1박2일’ 출연진들을 비교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경남 거창에서 벌어진 이 두 프로그램의 만남은 그 멀어만 보이는 거리를 단번에 좁혀버린 자리였다. 그 거리는 가장 최첨단의 길을 걷고 있는 프로그램과 가장 오래된 길을 걸어온 프로그램 사이의 거리이며, 각각의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세대 간의 거리이기도 하다.

그 거리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프로그램의 취지와 특성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왜 모든 문화의 중심지는 도시 혹은 서울이어야 하고 시골은 늘 문화의 변두리로 취급되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에 답을 하기라도 하듯 28년 전 등장한 프로그램이 ‘전국노래자랑’이 아닌가. 조금 촌스럽고 조악해 보이지만, 도시와 시골 사이의 거리를 메운다는 그 뜻 하나로 충분히 웃고 즐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전국노래자랑’만의 힘이었다. 이것은 ‘전국노래자랑’이 시작된 지 28년 후 등장한 ‘1박2일’의 취지와도 같다. ‘1박2일’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숨겨진 우리네 풍경을 찾아다니고 소개하고 홍보한다는 것이 그 기본취지다.

‘1박2일’멤버들이 시골의 비닐하우스에 마련된 연습장에서 ‘전국노래자랑’에 나갈 노래와 안무준비를 하고, 막상 무대에 나가기 전까지 시험을 앞둔 아이 마냥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무대 위에서는 말 그대로 ‘전국노래자랑’에 걸맞게 확실히 망가져 주고, 무대에서 내려와서는 초조하게 시상발표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경의인 동시에, 거창 주민들에 대한 경의의 태도다. 직업이 가수인 은지원, 이승기, MC몽이 전혀 가수로서 부각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의 만남이 이처럼 껄끄럽지 않게 된 것이 어디 이런 취지의 공통분모 때문만일까. 여기에는 이 두 프로그램이 모두 갖고 있는 노래와 웃음이라는 코드가 또한 맞아 떨어졌던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전국노래자랑’의 재미요소는 ‘딩동댕’으로 대변되는 노래실력보다는 ‘땡’으로 대변되는 웃음에 있다.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토착적인 몸 개그가 작렬한다. 이것은 ‘아름답고 정겨운 전국 각지의 풍광들을 소개하겠다’는 ‘1박2일’의 취지를 전하는 방법이 웃음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취지와 특성이 잘 어우러진 ‘1박2일’과 ‘전국노래자랑’의 만남은 흔히 그저 까메오로 등장하는 이벤트 성격이 되곤 하는, 프로그램 간 이종결합 그 이상을 수행했다 평가할 만 하다. 거기에는 분명 두 프로그램의 목적인 웃음과 즐거움이 있었고, 그 취지인 시골 주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프로그램 사이의 이종결합은 그저 물리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물리적으로 연결했을 때는 어느 한 프로그램에 이득이 될지 몰라도 다른 프로그램에는 손해가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화학적으로 연결해주는 것은 서로 다른 프로그램이 가진 ‘같은 취지’다. 뜻이 같다면 형식은 조금 달라도 무방해진다.


가학성은 쇼의 생리지만, 지나치면 리얼리티를 없앤다

‘무한도전’의 ‘무모한 도전’시절, 출연진들이 삽을 들고 포크레인과 도전을 했을 때, 시청자들은 왜 저들이 저런 무모한 짓을 할까 의아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그 몸 개그를 유발할 수 있는 가학적인 설정은 이제 그것이 ‘웃기다’는 것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진다. ‘무한도전’의 황사대비특집에 대한 예고장면에서, 정형돈의 얼굴에 한 초록색 물감칠에 대한 네티즌 의견이 엇갈리는 건, 이 가학성이 어디까지 왔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시청자들은 그 장면에 정형돈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가학적 설정은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 복불복 게임으로 대변되는 ‘1박2일’의 가학적인 장면들은, 단지 누가 한 겨울에 밖에서 잘 것인가 같은 비교적 보이스카우트 시절을 연상케 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에서 진 그들은 간장이나 까나리 액젓을 통째로 들이마시거나, 보기에도 위험천만인 겨울철 높은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생계 버라이어티쇼라는 ‘라인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출연진들의 실제상황, 즉 생계가 거기서 언뜻언뜻 보이기 때문에 그 자극적 상황이 종종 진정성으로 연결되는 미덕이 있을 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가학성은 출연진들과 연출자와의 묘한 대결구도까지 만들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김태호 PD를 종종 ‘악마’라고 부른다. 자신들이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빠뜨리고는, 그들이 그 상황 속에서 허우적댈 때 오히려 연출자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출연진들은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박2일’에서 멤버들은 어느 순간 잘 대해주면, ‘이건 또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식으로 의심을 한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상황과 반응이지만, 그래서 실제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지지만, 그래도 웃음 끝에 씁쓸한 구석이 남는 건 왜일까.

단지 가학적인 장면을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한 쇼에 포함된 가학적 상황과 그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기실, 현실사회 속에서의 우리네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는 그 모든 상황들이 통제되는 것에 만족한 웃음을 지을 수 있지만, 그 상황의 중심부에 서게 되는 밑바닥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대중들은 도무지 자기 앞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대중들로 하여금 묘한 가학-피학적 심리상황을 만들어낸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피학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마음 속에 가학적인 앙금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TV쇼는 이런 상황을 역전시켜 그 현실의 앙금을 털어 낸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의 멤버들을 우리는 위에서 보면서 즐긴다. 밑에 있는 그들은 상황 속에서 허우적대는데 그 상황 자체가 가학적일수록 우리는 더 리얼하게 느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쇼가 끝났을 때이다. 그 순간 시청자는 바로 저 TV 속 캐릭터들이 처한 현실 상황 속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끄트머리에 남는 씁쓸함의 정체이다.

그러니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설정하는 상황의 지나친 가학성이 왜 논란을 일으키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학적인 장면을 보는 시청자의 마음 속에는 가학-피학의 양면성이 존재하는데, 지나친 장면은 오히려 그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가학성은 쇼의 생리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피곤한 삶을 살아온 시청자들에게 그 짧은 시간의 일탈을 위한 가학성을 그다지 나쁘게만 볼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너무 지나친 상황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하여 불편하게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으로 보나 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전성시대는 이 시대의 현실을 거꾸로 보여주는 구석이 있다.

국민 마스코트된 상근이, 그 명과 암

평범한 개에서 어느 날 불쑥 이름이 뜨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상근이. ‘1박2일’의 마스코트였던 상근이는 이제 국민 마스코트가 되어가고 있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근이에 대한 관심은 갑작스레 커졌고, 그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월수입은 얼마나 되며 나이는 몇이고 결혼(?)은 했는지 같은 사생활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라디오 방송 출연에 발로 찍어서 하는 팬 사인회, 게다가 피겨스타 김연아와의 만남까지 상근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평범한 개로서는 상상도 못할 호사처럼 보인다. 벌써부터 연예기획사가 나서서 상근이를 매니지먼트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 정도니 그 관심은 같은 프로그램 출연자들마저 부러울 정도가 아닐까.

상근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이제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국민견이 되었다. 그런데 이 즈음에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상근이도 우리가 생각하듯 스타로서의 행복을 느끼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먼저 상근이가 어떻게 이런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뜬금 없는 질문을 던져보자. 상근이와 한때 3D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던 아담 같은 사이버스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떠오르는 건 둘 다 독특한 캐릭터로 주목받았다는 점이다. 캐릭터 비즈니스에서는 심지어 괴물까지 캐릭터로 활용할 정도인데, 여기서 말하는 ‘독특한 캐릭터’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 이상의 대우를 받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상근이는 은초딩(은지원)과의 대립구도를 통해 확고하게 캐릭터를 세웠다. 그것은 먼저 거대한 상근이, 작은 은초딩이라는 외관의 대비가 각자의 캐릭터를 강화시켰다. 상근이 옆에 서면 은초딩은 더 작아서 진짜 초딩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고, 반대로 상근이는 더 큰 존재처럼 보인다. 이러한 외관에 인간과 개의 대결구도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프로그램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초등학생 같은 사고방식으로 상근이를 갖고 놀려는 은초딩의 모습과 이를 귀찮아하는 어른스러운 상근이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때론 자신의 말을 듣다가도 상근이에게 번번이 당하는 은초딩은 누가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개와 그런 승부를 겨루고 있다는 점 자체가 각각의 캐릭터를 강화하는 장치가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진짜 사람이름처럼 친근한 이름을 가진 상근이의 캐릭터가 인격화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상근이가 보여준 캐릭터가 아니라 연출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인격이다. 이것은 저 사이버 스타들의 그것처럼 부여된 것일 뿐, 본인이 원한 것은 아니다. 사이버 스타야 생명체가 아니기에 문제는 없지만, 상근이의 경우는 다르다. 인간은 아니지만 상근이는 엄연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말을 못하기에 항변조차 하기 힘는 생명체.

‘1박2일’, ‘아현동 마님’에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 모 광고CF도 찍고, 팬 사인회까지 하러 다니는 등의 바쁜 나날은 상근이가 원하지 않는 삶일 수도 있다. 그것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은 상근이를 통해 대리충족을 하려는 욕구로 인해 인격을 부여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근이를 그저 자연으로 돌려보내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상근이를 통해 얻은 행복만큼 좀더 상근이 입장에서의 행복을 고려하자는 말이다. 자칫 상혼에 찌든 비정한 연예비즈니스의 세계 속에 빠져 행복한 개가 아니라, 불행한 인간화된 개로 살아가지 않게 하자는 이야기다. 상근이는 다른 개들보다 좀더 행복한 개 정도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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