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에서 떠오르는 헬조선과 탈조선

 

장영실은 별에 미친 조선의 노비 놈이다.” 장영실(송일국)은 하늘에 가득한 별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소리친다. 그 자조 섞인 목소리에는 절망감이 가득하다. 조선에서 별을 본다는 것. 아니 조선에서 노비로 태어나 별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그의 사촌인 양반 장희제(이지훈)는 일찍이 이 현실을 장영실에게 뼛속까지 느끼게 해준 바 있다. “노비는 아무 것도 몰라야 한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것이야.” 그것이 별에 미친 조선의 노비 놈의 운명이다.

 


'장영실(사진출처:KBS)'

하늘에는 귀천이 없다. 별에도 귀천이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그저 자연의 법칙일 뿐 그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별을 바라보는 이들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때론 그 의미는 과학이 아니라 미신에 가깝다. 형제의 난을 거쳐 왕위에 오른 태종(김영철)이 일식과 월식을 통한 구식례(일식과 월식을 맞는 예식)를 통해 자신의 과오를 떨쳐내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디 하늘의 움직임이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일까. 일어나지 않는 일식과 월식을 두 차례나 허망하게 맞이한 왕은 하늘에 사죄를 올린다.

 

조선에서 과학이란 이처럼 순수한 것이 아니다. 하늘의 운행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달이 세성(목성)을 가렸다는 과학적 사실은 임금이 백성을 상대로 수탈을 일삼는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세성은 다름 아닌 복과 덕을 책임지는 별로 의미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운관 제조 유택상(임혁)달과 별은 임금과 백성의 관계와 같다고 말하며 세성을 범한 달이 의미하듯 태종에게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간언한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고, 과학이라고 해도 중국의 과학이다.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장영실은 아버지 장성휘(김명수)와 관기인 은월(김애란) 사이에서 태어나 관노가 된 노비다. 하루 종일 고단한 노비의 삶을 살면서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하늘의 별들이다. 그는 노동 속에서도 해의 변화를 보며 과학의 꿈을 키워나간다. 그의 평생의 친구인 석구(강성진)는 장영실이 산에 지어놓은 일종의 관측소에서 별을 보여주자 그에게 말한다. “영실아. 고마워. 하늘보고 살게 해줘서.” 땅만 죽어라 파며 살아야 하는 노비 신세에 하늘을 보고 산다는 의미는 그렇게 크다. “죽을 듯이 힘든데 이렇게 하늘보고 살 수 있어서 좋구나.”

 

하늘을 쳐다보는 것에 귀천이 없을진대, 조선은 심지어 그 하늘을 보는 것마저 귀천을 따진다. “있잖아. 난 저 하늘의 별들이 매달려 있는 이치만 알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죽어도 좋아. 근데 조선 땅에서 노비로 사는 한 그 일을 할 수가 없어. 그래서 목숨 걸고 조선을 떠나야 해. 반드시.” 순수하게 학문의 뜻을 펴는 일은 노비인 장영실에게는 조선에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을 떠나고 싶어 한다.

 

<장영실>이라는 사극은 역사 과학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거기서 솔솔 피어나는 문구는 이 정부가 그토록 주창하는 창의 융합 시대라는 캐치프레이즈다. 그래서 <장영실>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막연한 편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하지만 <장영실>은 그 첫 주 방영분을 통해 그가 왜 조선을 떠나고 싶어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처럼 던졌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는 제 아무리 하늘의 이치를 들여다보고 싶어 해도 이뤄지지 않는 세상이다. ‘헬조선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아마도 장영실이라는 청춘에게 딱 어울리는 현실이었을 게다.

 

사극이 장영실이라는 인물을 다루게 된 것은 그가 다룬 과학과 그가 처한 현실이 현재에 던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장영실은 그 신분과 태생이라는 현실을 깨치고 자신이 꿈꾸던 세계를 향해 나아갔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지금에도 통용될까. 과연 꿈을 향해 끝없이 정진하는 것으로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장영실이 그 낮은 신분에도 세상에 이름 석 자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이 가능했던 건 그의 가치를 보고 인정해준 세종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에게는 세종 같은 인물이 있을까. 나아가 장영실 같은 존재의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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