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고발하는 TV, 몰래카메라의 두 얼굴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고발하는 TV, 몰래카메라의 두 얼굴

D.H.Jung 2008. 5. 29.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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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의 눈이 되려는 카메라의 눈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의 한 장면. 서우진(손예진) 기자는 일본인 관광객으로 위장한 채, 그들을 대상으로 짝퉁 명품을 팔아온 일당들을 잠입취재 한다. 이것은 ‘스포트라이트’의 ‘탐사저널’이라는 코너로 뉴스 심층 취재의 한 방식인 ‘탐사보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탐사보도란 사실보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사건 그 이면을 파헤치는 적극적인 언론보도방식을 말한다. 탐사보도가 주창하는 것은 사실은 진실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명제다. 그 진실을 캐기 위해 기자들은 현장으로 직접 다가가며 그 과정을 잡아내는 것은 다름 아닌 몰래카메라다.

대중들의 눈이 된 TV
우리에게 이러한 탐사보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추적60분’이나 ‘PD수첩’, ‘그것이 알고싶다’같은 코너들은 늘 사실로 포장된 것들을 파헤쳐 카메라에 담음으로써 사회적 이슈로 끄집어올리는 역할을 해왔다. 정치인의 문제나, 권력 비리 같은 거대담론들이 탐사보도의 도마 위에 올려져 부끄러운 속살을 보인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이 탐사보도는 이러한 거대담론에 주로 붙박여 있던 시선을 생활 저변으로 넓히고 있다.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관련 보도와 그 파장으로 알 수 있듯이 이제 정치적, 사회적 사안은 국회에서 벌어지는 ‘저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바로 우리 생활이 되었다. 카메라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눈이 되어준다거나(‘이영돈 PD의 소비자고발’이나 ‘불만제로’), 인권에 있어서 사회적 폭력에 집중됐던 카메라가 가족 내 폭력에 눈을 돌리는(‘긴급출동 SOS’) 것은 이제 카메라의 시선이 좀더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이 거대담론에서부터 생활까지 전방위에 걸친 ‘고발하는 TV’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그만큼 신뢰성이 사라진 사회를 말해주는 동시에, 그만큼 대중들의 눈을 장악한 TV의 힘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심심찮게 이러한 ‘고발하는 TV’의 영상 속에서 사건에 연루된 관할 공무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영상이 보여주는 것은 이제 법망보다 카메라의 신뢰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인, 심지어는 대통령의 말보다 TV가 해주는 말을 더 신뢰한다. 이렇게 된 데는 불신의 사회와 그것을 파헤쳐 고발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어온 TV의 유리한 입지가 만나서 생긴 결과이다. 이 때 그 영상을 잡아낸 몰래카메라는 대중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눈이 된다.

대중들의 욕망이 투영된 눈
하지만 이 TV의 공공성을 대변하는 듯한 탐사보도 형식의 ‘고발하는 TV’가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면을 들추어낸다’는 이 말은 진실을 찾는다는 지적 호기심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또한 감추어진 것, 혹은 금기된 어떤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이 자리한다. 이것은 영상과 만나면서 더 폭발력을 갖는다. 종종 탐사보도에 대해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상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최근처럼 이제 카메라가 거대담론이 아닌 생활을 비추게 되었을 때, 영상에 노출되는 사생활이 문제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 영상들이 자극으로만 흐르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의 공익성이다. 공익성이 없이 ‘고발하는 TV’의 형식만을 취해 자극적인 엿보기 영상을 끄집어낸 대표적인 것이 케이블TV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페이크 다큐나 유사 다큐 프로그램들이다. 여기서 탐사보도의 시선을 따르는 카메라는 마치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형식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 그런 스튜디오를 활용한다) 사실은 엿보기라는 드라마의 자극적인 코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차용된 것뿐이다.

이것은 시사연예 프로그램이라는 슬로건을 달고 있는 ‘리얼스토리 묘’같은 프로그램이 고수하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과 동일하다. 이러한 프로그램들 속에서 카메라는 사실 이면의 진실을 파헤친다기보다는, 시청자들이 보기를 원하는 은밀한 욕구의 대리자가 된다. 카메라를 두고만 봤을 때, 몰래카메라는 진실을 포착해내기 위한 훌륭한 장치가 되기도 하지만, 타인의 사생활과 은밀한 볼거리를 잡아내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몰래카메라의 두 얼굴이자 ‘고발하는 TV’의 두 얼굴이다.

TV 전반에서 보이는 고발의 흔적들
몰래카메라로 대변되는 ‘고발하는 TV’의 영향은 탐사보도 프로그램만이 아닌 TV 전반에 걸쳐져 있다. 이것은 TV라는 영상매체가 프로그램을 막론하고 새로운 카메라의 등장이나 그 기법들에 거의 모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의 등장 이후부터 차츰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TV에 노출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한 ‘야심만만’이나 ‘상상플러스’ 같은 연예인 사생활을 끄집어내는 토크쇼 형식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리얼리티쇼가 봇물이 터진 것도 마찬가지다.

취재형식으로 초청된 게스트를 궁지에 몰아넣는 ‘무릎팍 도사’가 가능했던 것은, 연예계에 대한 사실이 아닌 진실을 알고 싶은 대중의 욕구들이 이른바 ‘고발하는 예능’과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런 면에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명랑히어로’는 ‘고발하는 예능’이 연예인 사생활 폭로 위주에서 시사문제 같은 공익적인 포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서도 TV의 힘을 느낄 수가 있는데,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대해서 ‘100분 토론’이 100분 이상의 시간을 써가며 토론했던 이야기만큼, ‘명랑히어로’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시원스럽게 쏟아낸 말에 대한 반향도 상당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드라마마저 이런 기법들을 활용하고 있다. 종영한 ‘온에어’는 드라마 제작 과정에 벌어지는 연예계의 뒷얘기들을 폭로하면서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전략을 썼다. ‘온에어’ 자체는 환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를 갖고 있을 뿐이지만, 바로 이 ‘드라마가 드라마를 고발한다’는 이 부분에서 리얼리티라는 착시현상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현재 방영중인 ‘스포트라이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포트라이트’가 고발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탐사보도를 하는 방송기자들 자체다. 진실을 파헤치지만 그 진실은 정치적인 판단(드라마 상에서는 회장의 호화저택에 대한 진실과 방송기자의 성추행 문제를 서로 무마하기 위해 보도를 하지 않는다)에 의해 저지 당한다는 걸 드라마는 보여준다.

TV는 태생적으로 ‘보여준다’는 기능을 하고 있기에 몰래카메라로 대변되는 양면성, 즉 감춰진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거나 혹은 감춰진 시각적 욕망을 들추어내는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 이것이 점점 더 TV가 대중의 눈이 되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시청자의 예리한 눈과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이유다. 카메라의 전략은 점점 현란해질 것이고 그만큼 영상이 전하는 정보에 대한 해독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의 눈은 더 밝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