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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가 인어를 통해 말하는 기억, 가족, 사랑 “우리 예은이 너무 착해서 엄마 돕겠다고 수학여행도 안 간 애예요. 정말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다시 못 깨어날 줄 알았으면... 다 해줄걸. 수학여행도 억지로 보내고 예쁜 옷도 많이 사줄 걸.... 엄마가 못해준 것만 생각나니까.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예은아..” SBS 수목드라마 에서 인어 심청(전지현)은 병원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예은 엄마를 만난다. 그녀는 ‘의료사고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우리 딸이 왜 죽었는지 알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냐고 청이 묻자 예은 엄마는 예은이에 대한 아픈 기억과 살았을 적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는다. “내 비밀 들어볼래요? 난 사람의 기억을 지울 ..
,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성이 강한 까닭 이토록 강한 이야기들이 있을까. tvN 에서 희자(김혜자)는 치매를 앓고 난희(고두심)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난희의 절친 영원(박원숙) 역시 암 투병을 해왔던 사실은 이미 서두에 그녀가 벗은 가발 아래 듬성듬성 난 머리칼로 보여진 바 있다. 정아(나문희)는 뒤늦게 딸이 남편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것이 늘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 치부해온 자신 탓이라 여기며 후회한다. 결국 그녀는 집을 나와 꼰대 남편 석균(신구)과 떨어져 지낸다. 난희의 엄마 오쌍분(김영옥) 여사의 삶은 또 어떤가. 평생을 폭력 남편 아래서 장애인 아들 장인봉(김정환)을 건사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나이 들어 이제는 자신의 손길이 아니면 혼자 살아가기 힘..
서현진, 로맨틱 코미디가 어울리는 배우 서현진이 이렇게 존재감 있는 배우였던가. tvN 월화드라마 의 캐스팅만 두고 봤을 때 단연 주목되는 배우는 에릭이다. 많은 여성 시청자들은 에릭 때문에 그가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에 시선을 주었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에서 시청자들은 의외의 로맨틱 코미디가 잘 어울리는 보물을 발견했다. 바로 오해영 역할의 서현진이다. 사실 서현진의 가능성은 에서 보인 바 있다. 먹방이 기본인 에서 그녀는 정말 ‘잘 먹는’ 연기와 코믹하면서도 달달한 멜로 연기를 그녀만의 색깔로 보여주었다. 이란 작품은 그녀의 이 가능성을 온전한 확증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온전히 자신을 내려놓은 듯 때론 과장된 느낌으로 때로는 진정성이 묻어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서현진의 연..
, 왜 하필 고슴도치 세대의 사랑을 그릴까 고슴도치의 사랑이다. 누군가 다가서면 잔뜩 가시를 세우며 경계하고,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마저 찔리게 하는 그런 사랑. tvN 월화드라마 의 유정(박해진) 이야기다. 홍설(김고은)에게는 그토록 다정할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차갑고 때로는 그 치밀함에 두렵기까지 한 존재 유정. 다가가고 싶어도 다가갈 수가 없다는 홍설의 마음처럼 시청자들 역시 그가 왜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는지가 못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백인호(서강준)와 있었던 과거사를 홍설에게 털어놓는 유정의 이야기에는 왜 그가 그토록 가시를 세우며 살아야했는가에 대한 이유가 들어 있었다. 관계 장애를 겪고 있는 유정이 유일하게 믿고 있던 백인호가 아버지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려주고..
, CF처럼 살지만 상처투성이 현대인들에 보내는 위로 왜 하필 조인성이어야만 했을까. SBS 에서 조인성이 연기하는 장재열은 마치 광고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가 집에 들어오면 마치 아파트 광고의 한 장면 같고,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면 냉장고 광고 혹은 생수 광고처럼 보이며,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면 자동차 광고 같다. 그렇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가진 독특한 아우라 덕분이다. 그가 공개된 DJ 부스나 클럽에서 음악에 맞춰 살살 춤을 추기만 해도 순간 그 장면은 광고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조인성이 광고를 통해 대중들에게 이미지화된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그저 걷거나 숨만 쉬어도 광고 같은 완벽한 비주얼과 느낌을 보여준다. 하지만 광고란 일종의 환상이다..
, 멜로가 사회적 메시지를 만날 때 “높은 담장 밖에서 너는 죄도 없이 고개 숙이고 있었어. 하지만 난 아버지 땜에 고개 숙이지 않을 거야. 수연아 사랑하자.. 우린 사랑하자. 더 많이 사랑하자.” 에서 한정우(박유천)가 이수연(윤은혜)에게 키스하며 깔린 이 속 얘기에는 이 드라마가 가진 독특한 결을 잘 보여준다. 이 대사는 한정우와 이수연의 14년에 걸친 사랑을 압축하면서도, 동시에 이 사랑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수연이 죄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살인자(심지어 실제 살인자도 아니었지만)라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후 그 아버지 세대가 씌우는 주홍글씨는 이제 한정우의 몫으로 다가온다. 이수연이 사망한 것처럼 꾸..
‘상처’ 강조한 박, ‘서민’ 강조한 문 지난 2002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광고에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던져진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말 한 마디는 정책보다 더 강력한 이미지의 힘을 대선 광고를 통해 보여주었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그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광고는 욕 먹으며 밥 먹는 장면을 통해 당시 이명박 후보의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이 말은 ‘경제만 살리면 다 용서된다’는 위험한 발상을 담고 있었지만 당시 팍팍한 서민들의 귀에는 달콤하디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광고는 물론 실상이라기보다는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것이 광고가..
비오는 날 아이 우산을 펴주다 손바닥에 작은 상처가 났다. 상처는 대수롭지 않았다. 비가 온다는 것을 빼고, 하루는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때가 되면 밥을 챙겨먹고... 비가 오기에 간혹 창밖을 쳐다보았다. 아주 어린 시절 생각이 떠올랐다. 콘크리트가 아닌 맨 흙바닥이었던 옛날 시골집에 살 때는 비가 오면 특유의 냄새가 났다. 시멘트에 물이 부어질 때 나던 것 같은 그 텁텁한 냄새는 잘은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던 먼지들이 빗방울과 함께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콘크리트로 뒤덮여진 서울로 오면서 그 냄새는 향수가 되었다. 그래도 흙먼지 알갱이들이 만들어내는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운동장이었다. 아이의 학교를 찾았다. 그 곳에서 한참을 서서 운동장으로 떨어져내리는 빗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