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에 이르러 기어이 K팝의 매력이 드러났다

지난 19일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s)에 방탄소년단이 소개되자 객석에서는 환호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은 ‘DNA’ 무대를 선보였다. 객석 가득히 채운 팬클럽은 익숙한 듯 한국어 가사를 따라 하기도 했고 우리 식의 떼창을 중간 중간 채워 넣기도 했다. 순간 그 시상식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가 맞나 싶었다. 세계적인 팝 가수 숀 멘데스 같은 아티스트가 그 무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다니...

사실 방탄소년단의 이런 해외의 성과가 입덕한 팬들이나 대중문화 관련 종사자들이 아니라면 갑작스러운 느낌이 있을 게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의 이런 성과는 단번에 이뤄진 게 아니다. 애초부터 해외 활동을 먼저 시작한 방탄소년단은 앨범은 물론이고 뮤직비디오 그리고 일상적인 짤방 등을 통해 SNS로 전 세계의 팬들의 마음을 조금씩 사로잡고 있었다. 

물론 이런 흐름은 이미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그려내 보여준 바 있다. SNS라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래서 그 위에 제대로 된 콘텐츠가 얹어졌을 때 그 반향은 언어와 국적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으며 심지어 팝의 본고장이라고 부르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팝 시장은 인도, 남미 같은 신흥지역에서 들어온 아티스트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글로벌 트렌드가 즉각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만의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코믹한 뮤직비디오와 춤 그리고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EDM 트렌드가 결합되어 만들어낸 사건이었다면, 방탄소년단은 좀더 K팝 아이돌의 본류에 해당하는 매력들을 최고점으로 끌어올려 만들어낸 반향이라고 보인다. 그 첫 번째 무기로 지목되는 건 다름 아닌 K팝 아이돌의 가장 큰 특장점으로 지목되는 군무였으니 말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방탄소년단의 군무를 한번쯤 본 사람들은 말한다. K팝 아이돌들이 늘상 보이던 그런 식상한 군무와는 다른 창의적인 안무가 더해진 이들의 군무는 ‘소름 돋는 칼군무’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척척 맞아 돌아가는 이들의 군무는 외국인 팬들이 이들을 찬탄하게 만드는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였다. 

두 번째 무기는 실제 라이브 무대에서 이런 격정적인 춤을 추면서도 직접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이다. 춤과 노래가 K팝 아이돌의 유전자라고 해도 이를 실제로 무대에서 실연해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올라온 방탄소년단의 라이브 무대를 보면 마치 기계처럼 돌아가는 그 독보적인 춤 위에서도 흘러나오는 노래를 관객들이 떼창으로 받아주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세 번째 무기는 역시 K팝 아이돌들이 가진 외모가 주는 매력이다. 외국 팬들은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지 잘생겼다는 그런 뜻이라기보다는 젊음과 자신감, 개성 같은 것들이 그들의 춤과 노래와 엮어지며 만들어낸 외적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일 게다. 

싸이와는 또 다른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열풍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그것이 우리에게 오래도록 추구되어 왔지만 해외 팬들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K팝 아이돌의 매력을 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EDM과 힙합이 섞여진 전 세계적인 음악적 트렌드 위에 사랑 타령을 넘어서는 비판적인 가사가 얹어져 있고, 거기에 K팝 아이돌의 가장 큰 매력으로 지목되는 칼군무와 외적인 스타일이 더해져 있다. 어찌 보면 방탄소년단에 열광하는 외국 팬들로 인해 다시금 K팝 아이돌이 가진 매력을 새삼 발견하고 있는 느낌이다.(사진: AMA,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싸이의 고심, ‘나팔바지’와 ‘대디’ 사이에서 찾은 초심이란

 

싸이 만큼 고민이 많을 가수가 있을까. ‘강남스타일의 국제적 성공은 그에게 기적 같은 일로 다가왔지만 또한 그만큼의 고민들로 되돌아왔다. 후속곡이었던 젠틀맨은 그 고민이 이른바 싸이스러움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보여줬다. 물론 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곡이어서 해외의 관심은 지대했지만 강남스타일의 뒤를 이어주지는 못했다. 싸이는 더 큰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사진출처:싸이의 '나팔바지' 뮤직비디오

그런 그가 정규7칠집싸이다로 돌아왔다. 타이틀곡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팔바지대디’. 싸이가 이 두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시점을 정확히 밝힌 데는 두 곡이 가진 다른 느낌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팔바지는 고민에 고민을 하던 싸이가 올 초 대학축제 무대에 서서 제정신을 차리고쓴 곡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곡은 강남스타일이전부터 줄곧 지속되어왔던 싸이스러움이 더욱 잘 묻어난다.

 

나팔과 나팔바지를 이미지로 엮어내고 여기에 붙은 나팔바지(에헤라디야) 나팔나팔나팔이라는 중독성 강한 후렴구는 그것이 시각적으로도(나풀거리는 듯한) 청각적으로도(나팔나팔나팔) 선명하게 기억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낸다.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뮤직비디오다. 나팔바지가 갖고 있는 복고적 느낌을 제대로 살려낸 뮤직비디오에서 싸이는 저 강남스타일이 그랬듯 허슬 춤을 촌스러운 몸에 멋지게 소화해내는 것으로 흥겹고 즐겁고 웃긴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싸이가 아니라면 도무지 흉내 내기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제정신을 차리고쓴 곡이라 그런지 나팔바지는 훨씬 더 우리들의 귀에 쏙쏙 박힌다. 뮤직비디오도 그 춤동작이 쉽게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디는 느낌이 다르다. 스스로 밝힌 것처럼 국제용으로 만들어진곡이란 느낌이 강하다. 어쨌든 국제용이라는 말에 걸맞게 유튜브 조회 수는 대디에 대한 반응이 훨씬 폭발적이지만 우리에게 훨씬 귀에 익고 싸이 답게 여겨지는 곡은 아무래도 나팔바지가 아닐까 싶다.

 

지난 젠틀맨이 나오고 나서 많은 이들이 초심을 얘기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당한 얘기였다. 왜냐하면 싸이의 곡이 점점 국제용으로 기획되는 듯한 인상이 강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춤과 중독성 강한 후렴구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뮤직비디오에 음악을 오히려 맞춘 듯한 느낌. 하지만 그런 해외시장을 겨냥한 듯한 기획 작품으로는 강남스타일처럼 자연스럽게 싸이의 느낌이 묻어나고 그러면서 음악적으로 그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요원하다는 반성이 초심에 대한 요구로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초심이란 무엇인가가 싸이는 또한 고민이었다고 한다. 사실 싸이 답다는 표현 속에는 대중들이 요구하는 초심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싸이 스스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한 가지의 모습만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이 초심은 아닐 테니 말이다. 사람은 어쨌든 상황을 겪으며 변화하고 성장하기 마련이다. 이미 상황이 달라져있는데 억지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초심일까. 그것이 초심일 순 있지만 거기에는 진심이 묻어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진정한 초심이란 새롭게 생겨난 것들 속에서 그것이 자신의 모습으로 소화될 때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나팔바지대디사이에는 그래서 싸이의 이 초심에 대한 고심이 묻어난다. ‘나팔바지가 우리에게 친숙한 그 싸이다움을 담고 있다면, ‘대디는 국제가수가 된 그가 해외에서의 활동을 통해 얻게 된 새로운 싸이다움이 담겨있다. 그는 자신이 어렵게 찾은 초심을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서 딴따라가 된 ’”라고 표현했다. 그에게는 나팔바지대디하고 싶은 것즉 초심일 것이다.

 

이런 면들은 칠집싸이다의 다른 곡들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즉 타이틀곡은 나팔바지대디로서 마치 싸이를 표상하는 것처럼 내세워져 있지만 이 앨범에 담긴 다른 곡들도 저마다의 매력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전인권이 피처링한 좋은 날이 올거야JYJ 시아준수가 피처링한 ‘Dream’ 같은 곡은 해외는 모르겠지만 국내 팬들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곡일 것이다. 국제 활동에 대한 욕망도 느껴지지만 국내 활동에 대한 애착도 느껴지는 칠집싸이다’. 싸이는 그렇게 자신의 초심을 찾았다.



싸이 행오버의 성취, 순위가 아닌 자기 세계

 

싸이가 새롭게 들고 온 신곡 행오버는 우리말로 숙취라는 뜻이다. 신나게 진탕 마시고 나서 오는 지끈지끈한 두통과 속 쓰림. ‘행오버뮤직비디오는 술 마신 다음날 깨어난 싸이가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쳐 박고 토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번 곡에 함께 참여한 스눕독은 그런 싸이의 등을 두드려준다. 마치 이 장면은 싸이의 구토하듯 쏟아내는 음악과 그 음악을 행오버라는 곡을 통해 다독이며 도와주는 스눕독을 연상케 한다.

 

구토 장면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자세히 보면 음악에 맞춰 싸이의 손이 변기를 마치 박자 맞추듯 두드리고 있으며, 그런 싸이의 등을 마치 변기를 두드리는 싸이처럼 스눕독이 두드리고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토해낸다는 의미와 숙취가 풍기는 나른함과 고통스러움의 뉘앙스, 그리고 변기를 두드리고 등을 두드리는 장면의 의미들을 연결해보면 이 장면이 주는 의미심장함은 싸이를 우리가 바라보는 상반된 느낌과 맞닿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불편함과 통쾌함 사이의 어떤 것이다.

 

사실 싸이의 행오버라는 곡이 노래로서 그리 좋은 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강남스타일과 비교해 한 방이 부족하다고도 말하고, 그럼에도 받으시오-’ 같은 후렴구나 태평소가 들어가 흥을 돋우는 대목에서는 중독성이 느껴진다고도 말한다. 댄스곡과 본격 힙합이라는 장르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취향 때문에 생겨나는 호불호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에 현재 트렌드로 자리한 힙합 장르에 겨냥한 곡이기 때문에 아직은 주저리주저리 랩이 거의 채워진 노래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네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행오버는 싸이라는 가수의 취향이고 개성일 뿐 꼭 모두에게 좋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2위까지 올라간 순위를 거론하거나, 유튜브 조회 수가 천문학적이라는 수치를 마케팅적으로 내세우는 난감한 지점이 발생하곤 한다. 물론 팝의 본고장인 미국 본토에 진출한 싸이가 대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가대표 응원하듯 취향 무시하고 싸이를 응원할 필요는 없다. 취향이 맞지 않더라도 개성은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되고 그렇다고 싸이의 곡이 싫은 취향이 잘못된 것도 아니니까. 정답은 없다.

 

분명한 건 싸이가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분명히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의 근간은 한 번 놀아보자는 흥을 바탕으로 한다. 그 위에서 젠 체하고 예의 바른 척 하며 억누르고 있는 본성을 그는 음악을 통해 밖으로 표출해낸다. ‘강남스타일의 말춤이나 메뚜기춤 그리고 보기 민망한 저질댄스는 모든 걸 잊고 한바탕 뒤집어지는춤의 흥으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젠틀맨동방예의지국의 예의에 눌려진 억압된 본능을 악동처럼 끄집어냈다. 시건방춤은 예의와는 정반대의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행오버는 이제 우리의 과도하게 흥겨운(?) 술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폭탄주에 러브샷에 12차를 반복하고 노래방에서 입가심을 하며 진탕 마시고 나서는, 다음날 지끈지끈한 머리를 부여잡고 편의점 컵라면과 삼각 김밥에 숙취해소음료로 해장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사우나에서 마치 알코올을 뽑아내겠다는 듯 땀을 빼는 이 기이하게 흥겨운 술 문화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그대로 느끼듯 현실을 벗어난 통쾌한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다시 현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불쾌한 숙취를 남긴다. 싸이의 이 일관된 우리문화 비틀기는 그래서 불편하지만 통쾌한 정서를 동반한다. 이만하면 싸이는 확고한 자기 스타일과 취향 그리고 색깔을 보여준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빌보드 차트 몇 위의 수치보다 이번 행오버에서 싸이가 성취한 가장 큰 것일 것이다.

 

행오버’, 변함없는 싸이의 성공 키워드 집적물

 

싸이의 신곡 행오버는 여러모로 지금껏 쌓여진 그의 성공 노하우가 집적된 작품이다. B급 정서 가득한 뮤직비디오, 한국의 문화와 서구의 유머 코드를 접목시키는 코미디적 요소, 명곡이기보다는 중독성 있는 음악, 유튜브라는 새로운 디지털 유통 채널을 통한 국제적인 규모에 초스피드로 전개되는 유포과정, 따라서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는 조회수 기록만으로도 화제를 만드는 마케팅 등등.

 

'싸이의 행오버(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물론 이러다보니 싸이의 신곡에 대한 반응 역시 과거 젠틀맨이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극과 극으로 양분된다. 정통 힙합이 낯선 이들에게 행오버이게 음악이냐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하지만 스눕독 같은 세계적인 힙합 아티스트의 면면을 인지하는 힙합 팬들에게는 이 곡이 젠틀맨에서 확실히 진일보했다고 평가된다.

 

싸이의 B급 정서에 공감대와 나아가 통쾌함까지 느끼는 이들에게 행오버의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뮤직비디오는 폭탄주로 대변되는 한국 특유의 음주문화가 가진 어두움을 풍자하면서 동시에 한바탕 놀아보자는 싸이 특유의 디오니소스적 끼를 덧붙이고 있다. 즉 이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한국의 음주문화는 부정성과 긍정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니 이에 대한 평가도 양분될 수밖에 없다. 폭탄주를 제조하고, 러브샷을 하고, 마치 이소룡이 대결하듯 술 대결을 벌이는 장면들은 우리가 늘상 술판에서 보던 풍경들이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라면 왜 싸이가 한국 문화의 어두운 면들을 자꾸만 들춰내나 싶을 수 있다. ‘강남스타일이 강남의 허위의식을 끄집어냈다면, ‘젠틀맨은 동방예의지국의 이면을 끌어냈고 이제 행오버는 우리네 극단적인 술 문화의 일단을 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술 문화는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과시하듯 보여주는 어떤 면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잔치와 축제가 가진 특성, 즉 모든 걸 잊어버리고 한 바탕 놀아보자는 한국인 특유의 흥이 자리 잡고 있다. ‘행오버에서 간간이 들어가는 받으시오-”라는 싸이의 목소리는 그래서 은근하게 우리의 욕망을 건드린다. 단단한 사회의 억압된 틀 속에서 술이라는 뮤즈를 통해 잠시나마 꿈꾸는 일탈을.

 

한국적인 문화의 이면을 끌어오는 싸이 특유의 뮤직비디오는 우리에게는 공감대를 서구인들에게는 신기함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다. 이것은 한류 콘텐츠들이라면 공통적인 요소로 꼽히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적절한 결합이다. 우리 것이 바탕이지만 또한 그것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공통적인 공감대도 끌어안으려는 노력. 싸이의 유머코드가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서구적일 수 있었던 건, B급 정서를 바탕으로 우리네 문화의 이면을 보여주는 특유의 시선 덕분이다.

 

물론 싸이의 신곡 행오버를 명곡이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 곡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팬들에게 어느 정도 즐길 거리를 마련해주는 곡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명곡이라는 잣대는 싸이에게는 어울리지도 않지만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싸이는 오히려 그 명곡이라는 권위적 틀을 해체하고 그 허위를 폭로할 때 비로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가수다. 이 음악을 듣고 나면 그래서 아름다운 멜로디가 기억 남기보다는 끝없이 반복되는 행오버라는 후렴구의 중독성이 저도 모르게 입가를 씰룩이게 만든다.

 

스눕독이라는 힙합의 거장이 함께 출연하고 있어서인지 싸이의 음악적 분량이 적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뮤직비디오와 음악은 싸이라는 국제가수의 색채와 존재감이 아니라면 도무지 가능한 것 같지가 않다. 싸이와 함께 한국의 음주문화를 즐기는 스눕독 역시 그 그림 속에 들어온 한 부분처럼 여겨질 정도다.

 

유튜브를 통한 엄청난 전파 속도와 조회 수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싸이는 이미 강남스타일에서부터 유튜브라는 새로운 매체의 힘을 알리는 스타로서 아이콘화된 인물이다. 그래서 공개 하루만에 1200만 뷰를 돌파했다는 식의 기사들은 숫자에 민감한 우리 정서를 건드리면서 동시에 외국의 반응까지 이끌어내는 마케팅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싸이의 뮤직비디오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 일단 클릭하고픈 욕구를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신곡 행오버는 변함없는 싸이의 성공 키워드들이 집적된 산물이다. 거기에는 풍자와 일탈 양극단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싸이에 대한 역시 양극단의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그 반응은 화제로 이어지며 노래는 디지털을 타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간다. 명민한 선택이다. ‘강남스타일이 그의 존재감을 처음 알렸고 젠틀맨이 그 존재감을 어떻게든 이어가려 한 선택이었다면, ‘행오버에서는 이제 조금은 안정된 국제가수로서의 그의 면모가 느껴진다. 때로는 불편함에 지끈지끈하다가도 때로는 이성의 끈을 잠시 놓아둔 듯한 그 편안함을 그는 자신의 음악 스타일로 담아내고 있다. 마치 숙취처럼.

<무도> 가요제, 지드래곤 특히 주목되는 이유

 

본 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감은 이미 대박을 치고도 남았다. 대충 설렁설렁 조합을 만들고 작곡 작사도 전혀 진지한 모습은 별로 없고 그저 즐기고 노는 모습만 가득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를 포착해내면서도 음악을 배려한 디테일이 돋보인다. 한 마디로 허허실실이다. 믿고 보는 <무한도전> 가요제라는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 모든 힘은 그간 반복된 가요제 경험이 그 바탕이 됐을 게다. 멤버들이 가진 각각의 캐릭터와 음악적 취향은 그들과 조합을 이룬 가수들과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었다. 멤버와 가수들이 함께 음악을 만들어가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케미(화학작용)는 그 자체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웃음을 담보하면서도 동시에 노래에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부여한다. 단언컨대 여기서 나오는 노래들은 한 바탕 음원차트를 흔들어댈 것이 분명하다.

 

유재석과 유희열, 이 척척 맞아 돌아가는 만담 콤비를 보라. 유희열의 캐릭터가 그대로 묻어나는 끈적끈적한 R&B(물론 이것은 예능적인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 음악적 취향이 아니라.)와 ‘자가자가자가’ 하며 끊어주는 비트의 댄스 중독자 유재석이 서로 부딪치며 주고받는 대화들은 웬만한 콤비 코미디언의 조합을 뛰어넘을 정도로 발군이다. 외모에서부터 음악적 취향까지 사사건건 부딪치던 그들이 아닌가. 하지만 결국 표절에 가깝지만 그래도 댄스곡을 억지로 준비해온 유희열과, 반대로 R&B곡으로 결정하는 유재석의 이야기로 결말이 이어지는 과정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매끄러운 밀당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런 조합에서 뽑아져 나오는 궁금증과 기대감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길과 보아의 조합에서 주목되는 것은 두 사람의 친분이 전면에 내세워지면서 보이는 보아의 털털한 매력이다. 짜장면을 먹는 보아의 모습을 어디서 보겠는가. 한편 보아의 강권으로 SM식의 댄스를 선보여야할 길의 도전 역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코믹일까 아니면 진짜 길의 캐릭터에 맞는 괜찮은 크럼프일까.

 

정형돈과 지드래곤은 이 조합의 묘가 만들어낸 밀당 상황극의 끝판이다. 음악을 함께 만드는 동료라기보다는 마치 퀴어 연애를 하는 듯한 병맛 코드의 이 조합은 거만한 정형돈과 그를 추종하는 지드래곤의 반전 관계로부터 시작해, 차츰 정형돈이 지드래곤의 매력을 알아가는 단계로까지 발전해나간다. 여기에 힙합비둘기 데프콘은 이 역전된 관계에 확실한 감초역할까지 더해주었다.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동묘시장에서 의상을 구입하고 ‘삐딱하게’ 뮤직비디오를 재해석한 것은 지금껏 <무도>가 해왔던 병맛 패러디의 매력을 제대로 재현했다.

 

예능에는 아직 약한 프라이머리에게 연실 면박을 주며 예능 포인트를 살려내는 박명수의 조합이 만들어낼 세련된 힙합도 기대되지만, 제주도까지 달려가 <개콘>의 오성과 한음을 재현해내며 그 풍광이 주는 힐링의 느낌을 음악으로 풀어내줄 정준하와 김C의 조합 역시 흥미롭다. 뜬금없이 YG 식당으로 달려가 ‘시식로드’를 즉석에서 만든 장기하와 얼굴들과 하하가 만들어낼 자유분방한 밴드 음악과, 서민적인 냄새 가득한 장미여관과 그들을 붐업시켜줄 에너지의 노홍철이 선사할 들썩들썩할 무대 역시 기대되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보면 이 조합들이 이미 저마다의 재미와 음악적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담 콤비 유재석과 유희열의 R&B, 길과 보아가 보여줄 SM식 음악과 힙합 소울의 조합,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선사할 개가수에 가까운 B급 코드가 섞인 힙합, 박명수의 강한 캐릭터가 조화된 프라이머리의 음악, 정준하와 김C의 조금은 바보스러워 보일 정도로 편안해질 힐링 뮤직, 장기하와 얼굴들과 하하의 신나는 밴드 뮤직, 그리고 어딘지 마음으로부터 지지하게 되는 장미여관과 그의 응원자 같은 노홍철의 신나는 무대. 실로 조합만으로도 성공이 보장된 게임이다.

 

이렇게 완벽한 조합과 스토리와 음악이 있으니 이제 이들은 오히려 더 여유로워졌고 더 허허실실해졌다. 프로들에게는 흔히들 어깨에 힘을 빼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누가 봐도 국내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에게 <무도> 가요제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특히 보아나 지드래곤 같은 국내를 대표하는 기획사의 가수들이 포진해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미 국제가수가 된 싸이가 <무도> 가요제에 상당부분의 지분을 빚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어쩌면 훗날 보아나 지드래곤이 싸이가 걸어간 길 위에 서지 말란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무도> 가요제는 그만큼 부지불식간에 현 가요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여겨진다.

싸이가 되려면 크레용팝이 넘어야할 것들

 

몇 개월 전만 해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크레용팝이 최근 보여주는 행보는 놀랍기까지 하다. 소니 뮤직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세계무대로의 한 발을 내딛은 것은 물론이고 빌보드닷컴은 아예 대놓고 “크레용팝이 제2의 싸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크레용팝(사진출처:크롬 엔터테인먼트)'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크레용팝이 내놓은 ‘빠빠빠’는 여러 모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충분한 가능성을 가진 콘텐츠다. 늘 섹시나 큐티 같은 비슷비슷한 콘셉트의 걸 그룹들이 홍수를 이루는 현재 크레용팝이 내건 B급 걸 그룹 이미지는 실로 충격으로까지 여겨진다. 헬멧과 트레이닝복을 입은 걸 그룹이라니. 그 자체로 참신하지 않은가.

 

춤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멋을 느끼기 어려운 동작들은 차라리 체조나 캐릭터 코스프레 동작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의도적으로 허술하고 웃음이 터지는 어색한 동작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고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의 앙증맞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빈 구석이 많다는 것은 채워 넣을 구석도 많다는 이야기. 바로 이 완전체 걸 그룹이 아니라는 점은 크레용팝에 대중들이 개입할 여지를 더 많이 갖게 만드는 요인이다. 무수한 패러디들이 만들어지고 SNS상의 화제가 생기는 건 대중의 자리를 남겨놓는 크레용팝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크레용팝의 ‘빠빠빠’가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비교되는 건, 그 유사성 때문이다. 일단 노래가 단순하면서도 쉽게 귀에 달라붙는다. 여기에 B급 감성 가득한 뮤직비디오는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이른바 ‘직렬5기통춤’은 싸이가 했던 말춤의 걸 그룹 버전처럼 따라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유튜브라는 매체를 활용한 전파 방식도 유사하다. 유튜브 없는 싸이가 존재할 수 없듯이, 크레용팝 역시 단순한 음악 위에 얹어진 유니크한 비주얼로 무장함으로써 유튜브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패러디처럼 팬들의 참여가 중요한 인기요인인 점도 그렇고, 유튜브에 얹어진 만큼 글로벌하게 이어지는 반응도 유사하다. 물론 노래가사가 외국인들조차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쉽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런 많은 장점들과 유사성들은 크레용팝이 제2의 싸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과연 크레용팝의 세계무대 진출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일단 일본 시장을 필두로 한 아시아 시장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미국이나 유럽 시장 같은 곳에 진출하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음악적인 실력이다. 유튜브가 띄운 싸이는 마치 비주얼적인 것만 강조된 바가 크지만 그는 음악적으로도 충분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다. 작곡능력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가창실력을 갖춘 데다 무엇보다 그는 무수한 라이브 경험을 통해 관객과 함께 놀 줄 아는 가수라는 점이다. 이 아티스트적인 면모가 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싸이에 대해 미국인들조차 고개를 끄덕였던 셈이다. 크레용팝이 이 정도의 음악적 성취를 갖추었는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싸이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영어로 소통가능한 정도의 언어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언어능력보다 중요한 건 그의 유머감각이다. 미국의 토크쇼 같은 데 나와 그가 언어적인 장벽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영어를 잘한다기보다는 순발력 있게 나오는 유머 덕분이다. 크레용팝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가 없다.

 

마지막으로 크레용팝이 넘어야 할 것은 이미지 관리 능력이다. 물론 팬들과의 잘못된 소통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수 있지만 크레용팝은 여전히 일베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음악적인 호평도 이런 식의 정치적 색채를 띤 논란에 휘말리면 덮어지기 마련이다. 이념이나 정치성을 넘어서 모두가 응원할 수 있는 이미지를 갖추지 않는다면 이 부분은 언제건 크레용팝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크레용팝은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신선함을 갖추고 있다. 늘 비슷비슷한 걸 그룹들의 홍수로 지칠 대로 지친 대중들이라면 이 재기발랄한 걸 그룹의 탄생에 반색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어렵게 탄생한 만큼 롱런하는 크레용팝을 보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위해서라도 크레용팝은 차분히 본인들이 부족한 면들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 자체도 팬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크레용팝의 매력을 더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세계무대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쫓기듯 전역한 비, 앞으로의 활동 괜찮을까

 

10초 전역소감. 21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비로서는 너무나 짧은 전역이었다. 다소 굳어진 얼굴로 해외 팬들과 취재진들 앞에서 거수경례를 한 비는 “많이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라는 짧은 인사만을 남긴 채 마치 쫓기듯 자리를 떠났다.

 

'강심장(사진출처:SBS)'

약 2년 전인 2010년 10월 그 누구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입대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입대 이틀 전 삼성동 영동대로에서 열린 깜짝 콘서트에서는 무려 2만여 팬들이 몰려들어 연호하던 비였다.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두 차례나 올랐고, <스피드레이서>, <닌자 어쌔신>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해 진정한 ‘월드스타’로서의 면모를 뽐내기도 했던 그였다.

 

가수로서 배우로서 또 제작자로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그의 ‘노력하는 이미지’ 덕분이었다. 그는 여러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성공이 끼와 재능이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밝히곤 했다. <닌자 어쌔신>이 개봉했을 때 그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지방질 제로의 몸을 만든 처절한 고생담을 언급하기도 했다.

 

JYP 시절 월드투어의 실패로 인한 잡음들이 가수 비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런 이미지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에게서 풀풀 풍겨나는 땀 냄새가 선사하는 노력하는 이미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과 6개월 정도의 사건과 논란으로 인해 비의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올 초에 불거진 김태희와의 열애 보도는 연예병사의 군 복무 실태를 사회적인 의제로 끌어냈다. 무려 94일에 달하는 외박과 휴가 일수는 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을 공분시켰다. 아파도 그저 버텨낼 수밖에 없는 일반사병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는 연예병사의 특혜의혹은 비에게는 일종의 경고 사인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슬쩍 논란을 무마하고는 본래 상태로 돌아간 연예병사 관리의 문제는 결국 비에게 씻지 못할 오명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SBS <현장21>이 연예병사 관리의 허점을 포착해내면서 다시 비의 이름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현장21>에서 비는 문제의 중심에 있지는 않았지만, 최고선임으로서의 책임과 불과 6개월 전에 벌어진 징계에 대해 자숙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병역의 의무를 마치지 못한 연예병사들에게 심지어 다시 복무시키라는 여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 국방부가 비를 예정대로 전역시킨다는 발표는 대중들의 갑을정서까지 끄집어냈다. 연예병사가 사적으로까지 유용됐다는 <현장21>의 취재내용은 국방부와 연예병사들 사이의 물고 물리는 관계를 유추하게 만들었다.

 

결국 비는 전역했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21개월 전의 월드스타가 아니었다. 물론 여전히 해외 팬들이 전역하는 비를 보기 위해 장사진을 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국내 대중들이 그에게 갖는 정서다. 비는 이번 연예병사 논란으로 인해 특유의 건실하고 노력하는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특히 민감한 부분이 바로 군대 문제다. 모든 이에게 평등해야할 의무가 실제로는 권력의 힘에 의해 차별되고 있다는 것이 대중정서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군 복무 문제는 그래서 해당 연예인의 활동 자체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유승준이 여전히 입국이 거부되고 있고, MC몽이 무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 출연을 못하고 있으며, 싸이가 무려 두 번에 걸쳐 군 복무를 한 것은 이 문제가 얼마나 뜨거운 감자인가를 잘 말해준다.

 

그렇다면 비는 전역을 했다고 해서 과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는 전역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21개월 전에 이 말은 그의 진심으로 다가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상황 속에서 비의 이 말을 대중들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만으로 등 돌린 대중정서를 그는 과연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젠틀맨’이 포르노? 국위선양?

 

왜 그저 음악을 음악으로 듣고 즐길 순 없는 걸까. 심지어 ‘젠틀맨’이 ‘국위선양 포르노그래피’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나왔다. 동아대 정희준 교수가 쓴 이 글의 골자는 ‘젠틀맨’이 사실은 포르노 수준의 선정적인 뮤직비디오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좋아하고 유튜브 클릭수가 폭발하는 등의 이른바 ‘국위선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찬양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문화를 담고 있기 보다는 미국문화를 열심히 홍보해주는 ‘젠틀맨’은 한류가 아니라 미국문화의 첨병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사진출처: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

아마도 보수적인 시선으로 본 ‘젠틀맨’의 뮤직비디오가 못내 역겨웠었던 모양이다. 지나치게 편향적인 글인데다가 그 근거 역시 해외의 반응(그것도 과격하게 안 좋은!)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면 이 글 자체가 지나치게 미국 반응에 민감한 느낌마저 든다. ‘젠틀맨’이 보여주는 B급 유머는 물론 우리가 이제는 ‘SNL 코리아’ 같은 데서 토요일마다 보며 열광하는 미국식의 유머임에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한국적인 정서가 없는 건 아니다(이엉돈 피디를 어떻게 미국 SNL에서 볼 수 있겠는가!). 만일 이게 없다면 어찌 우리네 대중들이 좋아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정희준 교수의 ‘젠틀맨’이 미국문화의 첨병이라는 얘기는 싸이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네 대중들의 미국 편향을 지적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과연 그런가.

 

사실 싸이는 글로벌하게 네트워킹된 세상이 만들어낸 문화현상이다. 그것은 이미 국가나 언어의 장벽을 초월한다. 싸이가 곡을 발표한 지 단 이틀만에 전 세계의 음원차트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은 과거 국가주의적인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흔히들 모국어라고 말할 때 드러나는 국가적인 배타성이 싸이에게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빤 강남스타일!”이라고 부를 때 저편에서는 그것을 자기네 언어로 비틀어 “Open condom style!”로 듣거나 “말이야!”라는 말을 “마리아!”로 듣는 식이다. 여기서 국가나 언어의 장벽은 오히려 창조적인 재해석의 즐거움으로 바뀐다.

 

그러니 정희준 교수의 이야기처럼 싸이의 곡을 미국문화니 한류니 하는 식으로 국적성을 드러내는 논리는 이제 구시대적 발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미국문화나 남미의 문화, 일본문화, 중국문화 나아가 유럽문화와 이슬람문화를 바로 집 안에 앉아서 자유롭게 즐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 문화적 사대주의나 국가주의의 논리를 가져오면 이 국가를 초월한 다양성 추구 시대에는 어딘지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아마도 정희준 교수는 ‘젠틀맨’이 가진 선정성에 대해 언론들이 관대한 것을 국가적인 망신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언론이 지나치게 ‘젠틀맨’을 국위선양 운운하며 국가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것과 마찬가지로 정희준 교수의 논리 역시 그 국가주의적 시선 안에 포획되어 있다.

 

이러한 시각이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은 갑자기 촉발적으로 생겨난 싸이 현상에 국가나 정부가 뒤늦게 숟가락을 얹는 식의 모습을 보게 될 때다. 그래서 정부의 관계부처들이 싸이를 ‘한류의 첨병’이니 또 그 방식을 해석해 ‘창조경제’니 하는 식으로 이름붙이는 것은 현상은 이해되지만 의도는 불편하게 다가온다. 대중문화가 국가를 초월한 SNS 같은 네트워크를 타고 지구촌화된 전 세계로 뻗어나갈 때 거기에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 너무 속보이는 일이 아닌가.

 

싸이는 자신의 음악이 그저 대중음악의 하나가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인식되는 상황의 불편함을 이미 드러낸 적이 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을 ‘국민가수’가 아니라 ‘국제가수’라고 이름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미국식(이 표현도 우습긴 하다)의 유머를 즐기면 안 되는가. 그걸 즐긴다고 우리의 본질이 달라지기라는 하는 걸까. 과거처럼 국가 대 국가로 폐쇄된 세계에서라면 그것은 침공이니 침략이니 하는 배타적인 표현을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지구촌의 시대에 여전히 국가주의적인 배타성이 과연 유효한 걸까. 싸이의 ‘젠틀맨’을 둘러싼 국가주의적인 잡음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싸이, K팝 한류 타고 예능 한류도 전파하나

 

싸이의 성공에 <무한도전>의 지분이 있다면 얼마나 될까. ‘강남스타일’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뮤직비디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뮤직비디오의 성공에 <무한도전>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것은 싸이가 <무한도전>에 출연해 노홍철에게 직접 밝힌 얘기다. “여기 할로윈 때 너 옷하고 재석이형 옷이 제일 많았어. 너한테 고맙다는 얘길 해야 되는 게 어떤 네티즌분들이 그런 얘길 많이 하시더라고. 이 뮤직비디오에 지분이 있었으면 노홍철 지분이 한 30%는 된다고. 외국 애들은 제일 터지는 게 이 장면이야. 되게 좋아해. 너무 더럽다고(웃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것은 아마도 싸이의 진심일 것이다. 싸이가 한창 미국에서 국제가수로서의 주가를 올리며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것은 그가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노홍철을 만나기 위해 심지어 지인의 도움을 얻어 헬기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이 정도면 버선발로 나선 격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타임스퀘어의 신년맞이 행사에서 싸이는 <무한도전>을 초청했고 노홍철과 유재석, 하하는 그와 함께 무대에 올라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재연하기도 했다.

 

싸이의 신곡, ‘젠틀맨’의 뮤직비디오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대거 출연한 것은 그래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무한도전>은 이제 마치 싸이의 곡과 항상 같이 할 것만 같은 크루의 이미지마저 풍긴다. ‘젠틀맨’에서 유재석은 화장실이 급해 엘리베이터에 오르지만 싸이가 층층의 버튼을 모두 눌러버리는 바람에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 출연한다. 노홍철은 여전히 저질댄스를 일관되게 보여주고, 정준하와 박명수는 특유의 ‘불장난 댄스’를 선보였다. 하하는 ‘하이브리드’ 콘셉트로 미친 듯 춤을 추는 장면을, 길은 민머리를 드라이하는 장면을 보여주었고, 정형돈은 넘어진 여자를 일으켜줄 듯하면서 다시 넘어뜨리는 장면에 출연했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거의 그대로 사용된 것이다.

 

<무한도전>의 관점에서 보자면 ‘강남스타일’은 일종의 맛보기였던 셈이다. ‘젠틀맨’은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모두 소개되었고, 그 안에는 과거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이른바 ‘겨땀’으로 큰 웃음을 주었던 싸이의 영상이 그대로 들어가 있기도 하다. 장차 전 세계를 강타할 ‘젠틀맨’의 뮤직비디오에 <무한도전>의 영상을 넣었다는 건 애정을 넘어 일종의 동반자의 의미까지 담겨진다. 거기에는 아마도 뮤직비디오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김태호 PD에 대한 헌사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젠틀맨’에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의 영상이 들어 있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가요제가 보여준 이른바 B급 정서는 이른바 개가수들의 열풍으로까지 이어졌다. 애초에 전 세계를 겨냥했던 것이 아니라 국내의 트렌드에 충실했던 ‘강남스타일’은 여러 모로 당시 음원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던 <무한도전> 가요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게다. 우연인지 아니면 의식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악이 갖는 B급 정서는 그만큼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싸이의 이 남다른 <무도>에 대한 애정이 K팝 한류를 타고 예능 한류까지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강남스타일’로 주목받은 ‘엘리베이터 가이’ 노홍철과 ‘옐로우 가이’ 유재석이 그렇다. 만일 ‘젠틀맨’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다면(이미 현실화되고 있지 않은가!) 그 뮤직비디오에 계속 출연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싸이의 전 세계적인 성공에서 유머의 지분은 결코 낮지 않다. 싸이 스스로도 웃음이 없었다면 세계의 벽을 그렇게 쉽게 넘지 못했을 거라 증언하고 있다. 그러니 싸이의 성공을 그저 K팝 한류의 성공으로 치부하는 것은 어딘지 우리네 예능으로서는 억울할만한 일이다. 드라마, 영화, K팝이 모두 한류의 선봉으로 나서고 있는 지금 예능이라고 가능성이 없을까. 이미 일반인 리얼리티쇼가 트렌드로 자리잡은 해외의 예능계에서는 실제로 한류 예능이 가진 연예인 출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시점에 싸이의 성공과 그와 함께한 <무한도전>은 한류 예능에 큰 의미가 있다.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싸이는 K팝 한류와 예능 한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 중이다.

싸이 ‘젠틀맨’ 반응, 왜 극과 극으로 나눠질까

 

싸이의 신곡 ‘젠틀맨’에 대한 반응은 그 자체로 놀랍다. 신곡이 나오자마자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갖는다는 건 분명 지금껏 우리네 가요사에서 없던 일이다. 그것도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조차 싸이의 신곡이 해외에서 대서특필되고 있다는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그 반응은 극과 극이다. “역시 싸이다”라는 반응이 있는 반면, “<강남스타일>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진출처 :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

곡보다 더 관심을 갖게 만든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자 그 반응은 더 뜨겁다. “여전히 싸이 다운 모습을 여실 없이 보여줬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너무 선정적이고 더러워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반된 반응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그것은 본래 싸이의 본류였던 B급 풍자가 훨씬 더 강해짐으로써 선정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더 파더 젠틀맨-” 이렇게 반복되는 후렴구는 분명 욕을 패러디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양복 차림에 어딘지 근엄한 척 하는 ‘젠틀맨’을 뒤트는 싸이의 이 신곡은 입에 담기 아슬아슬한 거북함을 주면서도 동시에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뮤직비디오에 대한 반응이 노래보다 더 양극단으로 갈라지는 것은 뮤직비디오가 좀 더 직접적으로 ‘젠틀맨’에 대한 조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젠틀맨’ 뮤직비디오는 시작부터 파격이다. 양복을 잘 차려입은 노인들이 쇼핑한 물건들을 들고 마치 비서처럼 싸이의 뒤를 따르는 장면이 그렇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네 풍습에서 노인들을 하인 부리듯 데리고 다니며 그 폼 잡는 모습을 비웃듯 주차금지 판을 발로 차고, 마네킹의 가슴을 만지고 노인들 옆에서 아랫도리를 흔들며 춤을 추는 장면은 대단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노래가 갖고 있는 ‘젠틀맨’에 대한 공격과 혐오는 왜 싸이가 이 곡에 시건방춤을 붙였는가를 이해하게 만든다. 시건방춤의 핵심은 상체와 하체의 표현을 달리하는 것이 아닌가. 상체는 어딘지 폼을 잔뜩 잡고 있지만, 하체는 골반을 노골적으로 좌우로 흔들어대는 것. 상체가 젠틀맨의 겉면이라면 하체는 그 속내의 음흉함을 표현하는 것일 게다.

 

노인 앞에서 하체를 흔드는 성적인 춤을 추는 건 일종의 모욕감을 안겨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인에 이어서 싸이는 여자들에게 신사의 탈을 벗어버린 속내를 보여준다. 런닝머신을 타고 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속도를 높여 넘어뜨리고, 커피를 마시는 여자에게 컵을 쳐 커피를 얼굴에 쏟게 만들며, 도서관에서 방귀를 뀌어 그걸 여자 얼굴에 냄새를 뿌리고, 앉는 여자의 의자를 빼서 넘어뜨리고 일으켜주는 척 하면서 잡아당기는 행위나, 오일을 발라주다가 수영복 끈을 잡아당기는 행위들은 신사의 틀을 벗어난 장난기 가득한 본능을 드러내는 것들이다.

 

‘젠틀맨’이라면 응당 배려해야할 노인과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모욕은 노는 아이들의 공을 빼앗아 뻥 차리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화장실이 급해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을 놀리며 층마다 버튼을 눌러놓는 장면마저 그저 소소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싸이가 이런 파격적인 장면들과 노래가사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괜히 신사인 척 폼 잡지 말라는 얘기다. 포장마차에서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며 가래떡을 칭칭 감고 먹는 싸이나 그 앞에서 소스를 바른 어묵을 야릇하게 빠는 가인, 그리고 맥주를 흔들어 온통 주변을 젖게(?) 만드는 장면들 속에는 그래서 신사 이면에 자리한 성적 환상들을 거침없이 끄집어낸다.

 

‘젠틀맨’에 대한 반응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것은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도발적인 풍자는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서 속이 시원해질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속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 물론 이 반응은 또한 싸이의 신곡에 대해 엄청나게 커진 기대감(‘강남스타일’ 때는 전혀 없었던!)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언가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감을 느꼈을 수 있다. 그것은 ‘젠틀맨’이라는 곡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젠틀맨’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싸이가 늘 해왔던 그런 곡 중 하나일 뿐이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또 스스로도 얘기했듯이 ‘강남스타일’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곡이지만,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듯이 그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 파격적이고 도발적이다. ‘젠틀맨’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시는 보기 싫은 그런 곡일 수 있지만 그것은 또한 지극히 싸이 다운 것이기도 하다. 싸이는 늘 그래왔듯이 격식을 벗어던지고 한바탕 놀아보자는 그 얘기를 하며 하체를 돌리는 시건방춤을 추고 있다. B급 풍자와 선정성이라는 아슬아슬한 줄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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