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의 유승호, 아이와 어른 그리고 남자

 

<태왕사신기>에서 어린 담덕 역할을 할 때 유승호에게 슬쩍 보인 얼굴이 있다. 그저 가녀리고 순수한 얼굴로만 알았던 그 소년에게서 어떤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의 카리스마가 숨겨져 있다는 것. 그 후로 <선덕여왕>의 김춘추는 유승호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연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욕망의 불꽃><공부의 신>은 이 양갈래 길에 서 있는 유승호를 각각의 이미지로 끌어냈다면 <보고싶다>는 드디어 유승호가 어른의 얼굴을 드러냈던 작품이었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사진출처:SBS)'

군 제대 후 <상상고양이>를 선택했다는 것이 못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이제 본격적인 유승호의 연기자로서의 행보가 시작됐다는 걸 알리기에 충분했다. 그간 아이와 어른 사이 그리고 슬쩍 슬쩍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리멤버>에서는 느껴진다. 서진우라는 캐릭터가 그 세 가지 얼굴을 끄집어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로 점점 기억을 잃어버린 채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사형수로 수감돼 있는 아버지 앞에서 유승호는 아이의 얼굴로 돌아간다. 간간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추억 속에서 유승호는 여전히 남아 있는 소년의 얼굴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함께라면 아무 걱정도 없던 아이의 얼굴. 그것은 아마도 유승호가 다른 배우와는 확연히 다른 강점 하나를 갖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세월이 빗겨간 듯한 그 동안의 얼굴에서는 순수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그 순수의 얼굴이 5년의 세월을 거쳐 복수의 칼날을 숨긴 어른으로 돌아온 유승호에게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복수를 위해서는 뭐든 할 것 같은 그 모습은 아이 같던 얼굴의 변신이라는 점에서 더 살벌하게 느껴진다. 변호사로 돌아온 그는 더 이상 과거 진실을 좇던 아이가 아니다. 진실도 이겨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된 것. 복수를 위해 조금씩 남규만(남궁민)에게 접근해가는 그 얼굴에서는 유승호가 저 <태왕사신기> 때 살짝 보여줬던 그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래서 변호사로 돌아온 서진우는 과거 한 아버지의 아이 같던 시절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다 그 아버지의 무고함을 풀어주기 위해 변호사가 된 이인아(박민영)에게 냉혹할 정도로 달라진다. 그런데 술 취해 쓰러진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 단란한 가족을 보며 다시 그 아이 같은 얼굴을 보여주는 그에게서는 언뜻 남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아마도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리멤버>는 그래서 남자 유승호의 모습을 제대로 대중들에게 각인시키지 않을까 싶다.

 

한 배우의 얼굴에서 세 가지의 상반된 이미지가 그것도 전혀 이물감을 주지 않고 공존한다는 건 연기자로서는 굉장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순간적으로 아버지 앞에 아이 같은 얼굴을 드러내며 눈물을 쏟아내면서 그 아버지를 그리 만든 세상을 향해 복수의 날을 세우는 어른의 얼굴을 보여주고, 또 냉철한 이면에 숨겨진 따뜻한 연심을 동시에 표현한다. <리멤버>는 어찌 보면 유승호라는 배우에게 최적화된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어쨌든 이제 유승호는 더 이상 아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아잇적의 순수함을 모두 지워버린 것도 아닌 어쩌면 그 모든 걸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 배우로서 우리 앞에 서고 있다. <리멤버>라는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가 그간의 유승호라는 배우의 성장들을 기억하게 해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그 세 가지 얼굴 뒤에는 또 얼마나 많은 얼굴들이 가능성으로 존재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 때 귀가시계라고 불렸던 '모래시계'는 고현정과 최민수에게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고현정의 순수하고 가녀린 이미지와 최민수의 강인하면서도 남성적인 이미지는 이 작품을 통해 빛을 발했죠. '모래시계'가 1995년도에 방영되었으니 벌써 14년이나 흘렀군요.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 공교롭게도 이 두 배우는 나란히 사극에서 악역을 맡았습니다.

'태왕사신기'에서 화천회 대장로로 분한 최민수는 실로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쇠를 긁는듯한 낮은 목소리에 음침한 눈빛과 구부정한 몸 동작이 주는 섬칫한 느낌은 이 사극을 끌어가는 힘을 만들어주었죠. 그리고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미실이라는 희대의 여걸이자 팜므파탈로서의 악역을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최민수가 보여주었던 연기의 세계는 양극점을 오가는 것이었죠. '모래시계'에서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결혼이야기'나 '사랑이 뭐길래'에서 보여주는 살짝 망가지는 털털한 모습과는 대비되는 것이지만, 최민수는 이 양극점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 '홀리데이'에서의 살벌한 악역을 보여주었던 최민수는 이제 딱히 주연이 아니라도 주목받을 수 있는 연기자의 면모를 갖추었고, '태왕사신기'에서 그 폭발력을 입증했습니다.

반면 고현정은 여성 연기자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이미지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려웠죠. 하지만 그녀는 차츰 차츰 자신의 겉껍질을 벗어던짐으로써 연기자로서의 새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변의 여인'에서 보여준 막말과 쌍욕은 견고했던 그녀의 신비주의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고, '여우야 뭐하니'에서는 솔직한 성담론을 통해 순수하기만한 이미지에서 어떤 털털한 면모를 부가시켰습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이라는 악역을 소화해낼 수 있게 된 것은 이 오랜 기간동안 해왔던 그녀의 (스타에서 연기자로의)연착륙이 이제는 성공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사극 연기는 특히 더욱 어렵다고 합니다. 왠만한 연기자들도 그 독특한 사극 어법에 들어가면 당황할 때가 많다고 하죠. 게다가 악역이라면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모래시계'에서 젊음의 화려했던 한 시절을 보낸 고현정과 최민수가 이제 사극 속 악역으로 빛을 발하는 모습에서 성숙되어가는 연기자의 한 전형을 보게 되는 것은 저뿐일까요. '모래시계'는 그만큼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고 이들은 쉬지 않고 자신들의 연기 스펙트럼을 여기까지 넓혀놓은 것이죠.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고현정과 최민수.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연기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말도 안되는 억측에 휘말려 고생하셨던 최민수씨도 어서 복귀하시기를!)

끝없는 논란에도 불구, 대마불패 신화 건드리나

‘태왕사신기’에 대한 논란은 도대체 어디까지 갈까. 430억 원이 투여된 덩치 큰 대작만큼이나 논란도 끝이 없다. 지난 6월 네 번째로 방송연기를 발표했을 때, MBC의 반응은 의외였다. 아무리 외주제작사의 몸피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MBC는 거기에 대해 뭐라 한 마디 토를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MBC가 그렇게 여유 있는 상황이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급작스런 ‘태왕사신기’의 연기로 비어있는 월화의 밤을 채우기 위해 8부작 ‘신현모양처’가 급조되었지만 당연히(?) 반응은 없었고, ‘태왕사신기’와 겹쳐 SBS에서 방영하게 된 ‘쩐의 전쟁’은 당시 수목의 밤을 뜨겁게 달구며 MBC를 안타깝게 했다. 한편 화려한(?) 캐스팅과 소재만 난무하고 제대로 된 스토리가 부재했던 주말드라마 ‘에어시티’는 60억이 투여되었지만 시청률 10% 내외를 오가는 저조한 상황이었다.

이 정도의 상황에서 MBC가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뚜껑을 연 작품이 어느 정도의 질을 담보했다는 것. 송지나 작가의 대본은 짜임새가 있었고, 김종학 PD의 연출은 명불허전이었으며, 배용준은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로 작품 전체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잡음은 생겼다. 완성도 높은 사전제작을 주창했던 ‘태왕사신기’는 결국 시간에 쫓기는 ‘생방송 편집’을 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테이프 입고가 늦어져 20분이나 뉴스를 연장 편성하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편성제작부문 김정규 부위원장은 ‘태왕사신기의 오만, 그리고 MBC의 굴욕’이라는 제목의 보고문을 통해서 “지난달 중순에는 제작시간 부족을 이유로 23회 방송이 어려우니 마지막회로 예정돼 있던 ‘태왕사신기 스페셜편’을 방송하겠다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두고 보면 ‘태왕사신기’는 방송사의 고유권한인 편성권마저 뒤흔들 정도의 힘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모두 작품에 대한 욕심에서 빚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다 보니 나타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란 결국 우리네 드라마의 고질병인 시간에 쫓기는 방송제작 행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태왕사신기’의 잇단 논란들은 그 고질병이 대작이라는 힘을 등에 업고 이제는 편성까지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걸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작품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 계속되는 연기자들의 부상과 끝없이 쫓기는 시간과의 전쟁 속에서 ‘태왕사신기’는 그 마지막회의 화룡점정을 하지 못했다. 시청자들의 “안 본 걸로 할 테니 다시 찍어달라”는 요구는 대작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대작드라마를 표방한 ‘태왕사신기’의 마지막으로는 너무 밋밋했던 데서 나온 비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제 불거져 나온 것은 ‘대작’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만든 430억 원이란 돈의 행방이다. MBC 노조측은 430억 원 중 배용준 개인에게 지급된 금액이 60억 원에 달한다고 하면서 대작이란 말은 허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작사와 배용준 측은 이것을 극구 부인하고 나서고 있어 그 진위를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런 논란은 대작드라마가 남긴 깊은 후유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나마 배우들의 거품 개런티에 대한 자정의 목소리가 자리를 잡아가는 요즘, 이것이 ‘태왕사신기’의 대작 마케팅을 타고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찌됐건 방송사의 편성까지 움직일 정도의 성공을 거둔 ‘태왕사신기’가 드라마 제작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대마불사의 잘못된 신화가 드라마의 대작화를 부추기지는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 때문이다.

돈들이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대작드라마’의 환상일 뿐이다. 시청자들은 볼거리보다 스토리에 더 열광하며 그렇기에 드라마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규모보다는 참신한 연출과 다양한 소재발굴, 작가군의 양성 그리고 새로운 제작시스템의 도입 등을 통한 드라마의 완성도이다. MBC가 꿈꾸던 ‘태왕사신기’라는 쥬신의 별은 저 드라마 속의 담덕처럼 실제로 반짝반짝 빛났던 것이 사실이나, 그 별의 반짝임만큼 그림자도 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드라마 극과 극, ‘황금신부’와 ‘태사기’

AGB 닐슨의 지난주 주간시청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태왕사신기’의 시청률은 29.8%로 전체 4위. ‘황금신부’는 24.1%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규모 등을 두고 봤을 때, 거의 극과 극에 서 있는 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이 극과 극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완성도가 못 미치는 드라마라고 해서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말은 적어도 ‘황금신부’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또한 그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완성도나 규모에 있어 거의 극점에 달해있던 ‘태왕사신기’가 이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렀다는 것도 언뜻 이해가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일까.

‘태왕사신기’가 RPG라면 ‘황금신부’은 대전게임
‘태왕사신기’는 게임으로 친다면 주인공이 아이템을 얻어가며 성장하는 RPG 게임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황금신부’도 ‘태왕사신기’처럼 게임의 대전모드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이상하게 생각될까. 그러나 ‘황금신부’는 서로 얽히고 설킨 두 집안 사람들이 끝없이 대결하는 드라마로 게임으로 치면 대전게임을 닮았다.

먼저 상류층과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두 집안의 환경 자체가 계층 간의 대결구도를 만든다. 준우(송창의)네는 영세한 식품업체인 소망식품을 가족들끼리 꾸려나가는 반면, 영민(송종호)네는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인 웰빙푸드를 경영한다. 전통의 떡을 생산하는 영세업체와 프랜차이즈 음식을 유통하는 대기업은 전통적 가치와 현재의 세태를 병치시킨다.

이런 양측의 팽팽한 긴장감은 그 가족들 간의 계속 연결되는 악연으로 대전 모드로 전환된다. 준우의 어머니인 한숙(김미숙)은 옛친구이자 영민의 어머니인 옥경(견미리)에게 성일(임채무)을 빼앗기고 이 악연은 대물림된다. 한숙의 아들 준우가 사랑하던 옥지영(최여진)이 옥경의 아들 영민과 결혼하면서 준우는 그 상처에 공황장애까지 겪게 된다. 물론 공황장애는 베트남 신부인 진주(이영아)의 극진한 사랑으로 극복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진주가 찾으려는 친아버지인 성일은 진주가 딸임을 부정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숙의 딸인 세미(한여운)는 옥경의 아들인 영수(김희철)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물론 이런 관계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 번의 우연은 이해될 수도 있지만 두 번 이상 계속되는 우연은 그것을 의도로 보게 만든다. 그러니 ‘황금신부’의 대결구도는 드라마적으로 완결된 구조 속에서 탄생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따라서 ‘황금신부’를 리얼리티의 잣대로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드라마를 권선징악과 죄와 벌의 당위의 구조로 만든다. 그 안의 인물들은 리얼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위를 향해가는 이 장기게임 같은 드라마의 재미있는 말로서 기능한다.

이렇게 보면 ‘황금신부’의 구조는 게임의 스테이지를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첫 번째 스테이지가 진주를 통해 준우가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스테이지는 다시 회사를 나가게된 준우가 진주와 얽혀 겪게되는 사회적 편견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며, 세 번째 스테이지는 준우의 동생인 세미와 시동생인 영수의 결혼을 반대하는 옥지영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스테이지는 끝없이 계속된다. 하다 못해 옥지영의 과거가 밝혀지는 과정도 하나의 스테이지이며, 그녀가 진주와 전통떡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떡 배틀’을 벌이는 것도 또 하나의 스테이지다. 스테이지의 대미는 결국 성일이 진주의 친아버지임이 밝혀지는 것이 될 것이다.

단순한 스토리는 때론 강점이 된다
또한 ‘태왕사신기’와 ‘황금신부’는 스토리에 있어서도 극과 극을 달린다. ‘태왕사신기’의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복잡한 게 사실이다.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유기적으로 짜여진 구조를 갖고 있어 한두 회를 놓치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반면 ‘황금신부’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두 집안의 대결구도 정도만 알고 있으면 중간에 몇 회 빼먹더라도 다시 보기만 하면 금세 이해가 가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 대결구도라는 것은 사실상 우리네 멜로 드라마들이 가졌던 대부분의 관습적 설정들을 다 모아놓은 것들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저 남자가 버린 딸이래”, “저 여자가 버린 남자래” 하는 말 하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단순한 이야기 설정은 누구나 쉽게 그 게임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태왕사신기’같은 거의 처음과 마지막의 조각퍼즐이 딱 들어맞는 듯한 완성도 높은 스토리가 가질 수 없는 단순함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황금신부’가 이런 역설적인 장점(떨어지는 완성도와 단순한 스토리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방영시간이 주중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주중 드라마의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주말 드라마의 기대치는 낮다. 요즘처럼 주5일 근무제에 금요일에 집을 비우는 가족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밀도 높은 연속성을 가진 드라마는 오히려 시청자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황금신부’의 시청률 상승은 리얼리티보다는 시청자들이 익숙한 소재로 그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의 당위성을 게임이란 방식으로 풀어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요컨대 ‘황금신부’는 시청자의 예측을 깨는 스토리전개의 놀라움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라, 시청자가 원하는 스토리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것이 깊은 공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드라마의 완성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드라마가 깨려는 황금만능주의와 계층 간의 편견들이 실제 현실 사회에서 그만큼 두텁다는 반증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태왕사신기’처럼 뛰어나거나 완성도가 높지 않고 조금 부족해도, 또 느슨한 스토리라도 시청자들이 준우와 진주의 사랑을 지켜보고, 지켜주고 싶은 이유가 될 것이다.

태왕에 의한, 태왕을 위한, 태왕의 드라마, ‘태왕사신기’

‘태왕사신기’에서 고우충(박정학)은 태왕 담덕(배용준)에게 전황을 브리핑한다. “나머지 3만은 두 개의 길로 남하하여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퇴치하는 중입니다.” 담덕이 “미적미적 싸우고 있으면 곤란해요. 빗자루로 쓸어내듯이 그렇게 내려가야 한다구.” 이렇게 말하자 고우충은 웃으며 이렇게 답변한다. “염려 마십시오. 흑개장군입니다.” 이 짤막한 대화를 통해 ‘태왕사신기’의 전쟁 신은 굳이 보여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고우충이 전황을 묘사하면서 ‘흑개장군(장항선)’이라는 인물을 거론한 점이다. 시청자는 흑개장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용맹성과 앞뒤보지 않고 뛰어드는 과감성 같은 것을 통해 전쟁의 그림을 유추하게 된다. 구구절절이 전쟁상황을 보여주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캐릭터 하나를 통해서 그것이 설명되는 것. 이것이 ‘태왕사신기’가 가진 독특한 드라마의 색깔이자 힘이다.

수 없는 전쟁과 전투를 통해 영토 확장을 한 광개토대왕의 면면을 스펙터클로 보여준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또한 광개토대왕이라는 역사적 영웅을 다루면서 그 핵심이 되는 전장의 사건들을 빼놓는다는 것 역시 납득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딜레마를 넘어서기 위해 ‘태왕사신기’가 선택한 것은 캐릭터다. 잘 구축한 캐릭터 한 명은 몇 백 명의 군사들보다 유용하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수만 명의 백제군이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처로(이필립)라는 일당백의 카리스마를 지닌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구려와 백제가 맞붙는 이 전쟁은 고구려를 대변하는 담덕과 백제를 대변하는 처로가 맞붙는 장면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담덕이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연호개(윤태영)의 군대와 맞서는데 있어서 전면전을 피하고 몇몇 별동대와 인물들만으로 충분한 것도 같은 이유다. 스스로도 일당백이라 자처하는 주무치(박성웅)는 실로 수백 명의 엑스트라를 대체하는 효과를 주는 캐릭터다.

즉 ‘태왕사신기’의 개개 인물들은 여러 가지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광개토대왕의 영토 장악을 태왕이 사신을 얻는 과정으로 설명하면서 태왕은 쥬신의 왕이란 상징을 갖고, 사신은 네 부족을 대변하는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니 태왕이 사신을 얻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영토를 장악한다는 의미로서 전달된다. 여기에 사신이 가진 신물이라는 환타지적인 요소를 덧붙이면서 이 상징은 더 공고하게 구축된다. 네 부족은 각각의 개성을 지닌 존재로서 물(현고-현무), 쇠(주무치-백호), 나무(처로-청룡), 불(수지니, 기하-주작)로 설명된다. 즉 네 부족-사신-신물-네 상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절대적인 악을 상징하는 화천회 대장로(최민수)는 화천회라는 조직을 실제 목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해주는 캐릭터다. 담덕이 전쟁터에 나가는 동안 고구려의 모든 행정이 잘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연가려(박상원)라는 한 명의 캐릭터 덕분이다. 이처럼 ‘태왕사신기’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캐릭터들을 세움으로써 최소의 장면만으로도 최대의 효과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담덕, 배용준의 힘이다.

사실 이 믿기 어려울 수 있는 상징적 진술은 배용준이라는 아시아적 스타배우와 담덕이라는 역사적 영웅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능해진다. 따라서 담덕이란 캐릭터가 세워지는 그 힘을 통해서 주변의 캐릭터들도 구축된다. 담덕을 보위하는 사신들이 납득되는 것은 담덕이 쥬신의 왕이라는 설정 때문이며, 그 설정은 드라마 밖에서의 배용준이라는 배우의 힘과 음으로 양으로 연결된다. 이 사극은 따라서 담덕이 사신을, 아시아적인 영토를 얻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배용준이 아시아권을 장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담덕의 적수로 세워졌던 연호개나 사신이 아닌 인간들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사극 자체가 담덕과 배용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극은 태왕에 의한, 태왕을 위한, 태왕의 드라마이며 그 태왕이라는 단어에 배용준으로 대치해도 무방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태왕사신기’가 우리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이 된 것은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를 관통하는 짜임새 있는 송지나 작가의 대본과, 그 대본을 시각화하는 김종학 PD의 잘 짜진 연출 위에 그 모든 것을 한 몸으로 지탱해나가는 배용준이라는 아시아적 스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담덕과 사신의 캐릭터만으로 아시아를 정복해가는 이야기가 구축될 수 있었던 것처럼 배용준이라는 배우 한 명의 힘은 그 어느 것 하나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우리 드라마의 현실을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이것은 마치 드라마 속에서 아시아를 아우르는 쥬신의 아들들이 그토록 희구하던 쥬신의 왕을 만나는 경험에 비견되는 것이 아닐까. 캐릭터의 힘은 위대하다.

수사물에서 메디컬 에로까지 장르사극의 세계

과거 사극이라면 역사적 사료를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사극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과거로서의 역사적 시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 던진 사극은 점점 상상력을 키워왔고 이제 장르와 몸을 섞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이제 환타지(태왕사신기)에서부터 수사물(별순검), 미스터리(정조암살미스터리 8일), 메디컬 에로(메디컬 기방 영화관)까지 다양해졌다.

환타지 사극을 주창한 ‘태왕사신기’는 저 광개토대왕이라는 역사적 실존인물을 환타지라는 장르 속으로 끌어들이는 모험을 감행했다. 쥬신의 운명을 타고난 태왕 담덕(배용준)이 사신(네 신물, 네 부족)을 취하는 과정을 그린 이 사극은 환타지라는 장르를 활용하고 있기에 그 자체를 리얼리티로 볼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광개토대왕이라는 실제 역사적 인물은 환타지라는 장르 속에서 하나의 상징이나 메타포로서 그려진다. 이것은 마치 한 실제 인물을 하나의 신화로서 그려내는 것과 같다. 이 모험이 광개토대왕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어떤 영향을 줄 지는 알 수 없으나 드라마라는 허구의 장르가 이런 과감한 시도를 했다는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만 하다.

케이블 시청률의 마의 벽을 연일 깨고 있는 조선시대 버전 CSI인 ‘별순검’은 국내에서는 현대물에서조차도 시도되지 않은 ‘과학수사’를 기치로 내세운 수사물이다. 국내의 수사물들이 ‘현장수사’라는 발로 뛰는 액션에 주로 머물러 있었다면 ‘별순검’은 조선시대의 ‘중수무원록’이라는 과학적인 법의학의 잣대를 내세워 본격적인 수사물의 장르를 세우고 있다. CSI가 버젓이 버티고 있는 현대물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어려운 법의학이란 장르가 조선시대의 특수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자 우리 드라마만의 독특한 소재가 된 것이다. 이처럼 역사의 무게를 벗어 던진 사극은 그 시점만 옮겨놓아도 장르물 자체를 새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정조암살미스터리 8일’은 영화 ‘영원한 제국’으로 일찍이 조선시대판 ‘장미의 이름’을 축조해냈던 박종원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스텝들조차 영화인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명실상부한 무비드라마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미스터리 사극이 될 것이다. 구중궁궐에서 벌어지는 암살시도라든가, 원행에서 벌어지는 갖은 음모들은 정약용이라는 인물의 추리와 맞물려 보는 이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실제 정조의 죽음에 대한 분분한 설들이 미스터리를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는 이 사극은 역시 조선시대라는 배경이 주는 독특함이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된다.

‘메디컬 기방 영화관’에 이르면 이제 사극의 장르와의 만남은 무한히 증폭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성과 의학을 접목시킨 이 사극은 그 안에 모든 장르들이 가진 코드들을 내포하고 있다. 에로물의 성격에다가 액션이 가미되고 거기에 메디컬 장르가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이 드라마는 그 각각으로 봤을 때 진부해질 수 있는 소재들이 그 그릇이 되는 사극이란 틀 속으로 오자 참신해진다.

사극의 장르화는 이미 영화에서 시도되었다. ‘음란서생’, ‘혈의 누’, ‘황산벌’ 같은 사극영화들은 이미 장르화된 현대물의 사극 버전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진정한 사극의 전성시대는 드라마 사극과 장르가 맞닿는 부분에서 생겨나고 있다. 공중파에서 정통사극의 틀을 벗어 퓨전 사극이 새로운 사극 중흥의 불씨를 마련했다면, 케이블TV의 공격적인 자체방송 제작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공중파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과감한 표현들이 가능해지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를 허물자, 영화인들의 드라마 제작이 무비 드라마라는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기류 속에서 드라마로서는 가장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는 사극이 체계화되면서 장르화도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르 사극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는 게 사실이다. 현대물로서 성공했던 장르 드라마들은 고스란히 사극으로의 변용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로써 사극은 이제 명실상부하게 현대물의 대척점에 설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하게 됐다. 장르란 그 자체가 하나의 성공의 시스템으로서 제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한동안 사극전성시대는 지속될 것이 분명해졌다. 장르와 기왕에 몸을 섞은 사극이 다양한 얼굴과 개성을 가진 자손들을 퍼뜨리길 기대한다.

드라마를 이끄는 힘, 입체적 인물

MBC 사극 ‘이산’에서 위기에 빠진 이산(이서진)에게 홍국영(한상진)이 절실한 것처럼, 요즘 드라마들은 홍국영 같은 입체적 인물을 필요로 한다.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극적 상황 속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선악대결구도는 요즘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끌지 못한다. 현실이 더 이상 권선징악으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 가는 캐릭터는 오히려 선과 악으로 단순히 나누어지는 전형적 인물이 아닌 양측을 포괄하거나 그 선을 왔다갔다하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이 되었다. 중요해진 것은 선악이 아니라 인물을 움직이는 욕망, 혹은 인물의 목표이다.

홍국영에 쏟아지는 관심, 왜?
그런 점에서 홍국영에 쏟아지는 공감은 당연하다. ‘이산’이란 드라마는 오히려 선악구도가 너무나 명확한 드라마다. 이산을 중심으로 한 성송연(한지민), 박대수(이종수), 남사초(맹상훈) 같은 인물군들은 모두 선이며, 이산의 반대편에 선 정순왕후(김여진), 화완옹주(성현아) 같은 인물군들은 악이다. 모두 선악이 분명한 인물들이다. 여기서 악은 강하고 선은 약하기에 드라마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단순구도로는 이병훈 PD 특유의 미션 해결 구조의 드라마가 쉬 지루해질 수 있다. 그것은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해지는 인물이 선악으로 구분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이산’의 초반부에 이런 역할을 해온 인물은 영조(이순재)다. 그는 이산의 할아버지면서도 이산의 강력한 시험으로 자리잡았고, 그 힘은 대결구도의 단순함을 무마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영조가 이산의 손을 들어버렸고, 그의 시험이 좀더 강력한 군주의 탄생을 위한 조련과정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즈음에서 홍국영이란 인물의 등장은 적확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홍국영은 캐릭터로 보면 이산의 착한 인물들(?)을 대신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부터 대의만을 내세워 이산 밑으로 오지 않았다. 정후겸(조연우)과 이산의 양 갈래 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인 홍국영은 이산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정치적인 대의를 중시하는 군주 이산의 현실적인 측면을 보강해준 것이다. 홍국영은 지금의 입장이 이산의 든든한 두뇌 역할이기 때문에 선의 한 측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정후겸과 같은 부류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냉철하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나가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단순히 홍국영을 야심가로서의 한 측면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때론 ‘꼴통’이니 ‘개소리’같은 리얼리티쇼를 방불케 하는 거친 현실감이 넘치는 대사들을 쏟아내면서 서민적이고 서글서글한 모습까지 갖게된다. 홍국영의 출연은 대의 중심의 단순한 대결구도를 벗어나, 욕망 중심의 대결구도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사실상 입장만 다를 뿐, 똑같이 욕망을 추구하는 홍국영과 정후겸의 두뇌게임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입체적 인물의 힘으로 굴러간다
이러한 드라마 속 입체적 인물들의 역할은 단지 ‘이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왕과 나’의 조치겸(전광렬), ‘태왕사신기’의 서기하(문소리)는 물론이고 현대극 속에서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박희순)까지 그 사례가 될 것이다. 먼저 ‘왕과 나’를 이끌어 가는 힘의 중심 축으로서 조치겸(전광렬)이 서 있는 이유는 그 복합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 때문이다. 조치겸은 ‘욕망 하는 내시’로서 희대의 역적처럼 보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군주와 백성 사이에 그 어떠한 사특한 무리들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대의를 가진 충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태왕사신기’의 서기하는 사랑하는 사람인 담덕(배용준)과 동생 수지니(이지아)와 맞서게되는 운명을 가진 복잡한 캐릭터다. 이 역시 담덕과 사신으로 대변되는 선과 연씨 집안으로 대변되는 악의 단순구도를 깨는데 일조한다. 시청자들은 서기하의 행동들을 이해하면서도 분노하게 되는 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한편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은 조폭이면서도 순간 희경(예지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인물이다. ‘치매를 갖고 있는 어머니’ 같은 개인적인 사연이 많은 그는 흥신소의 인물들과 부딪치면서도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드라마는 실로 주인공의 힘만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조역들이 있어 주연이 힘을 발하는 것이며, 그 조역들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복합적일 때 드라마는 더 깊은 재미를 주게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 입체적 인물을 연기하게 되는 연기자들은 베테랑일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연기하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왕과 나’의 전광렬이 그렇고 서기하 역의 문소리가 그렇다. 문소리는 캐스팅 논란이 일었지만 사실상 이런 어려운 심리묘사를 할 수 있는 연기자로 그녀 만한 인물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최근 ‘세븐데이즈’로 영화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박희순은 바로 이러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타고난 연기자로 보인다.

드라마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이제 한번 보면 그 행동을 다 짐작할 수 있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인물이 드라마에 설 자리는 좁아졌다. 대신 능동적인 욕망이 꿈틀대면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입체적 인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다. 요즘 드라마는 때론 아이 같은 천진함을 가졌지만, 때론 욕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전략가의 모습을 보이는 홍국영처럼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을 원한다.

또 다른 이름의 정치드라마, ‘태왕사신기’

담덕(배용준)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연가려(박상원)와 화천회 대장로(최민수)의 음모에 빠져 가우리검에 죽을 위기에 처한다. 가우리검은 심장을 찔러 하늘이 그 죄를 묻는다는 일종의 정치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함부로 죽일 수 없는 왕가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부족들이 고안한 장치. 담덕은 자신이 진짜 쥬신의 왕이 맞다면 하늘이 그걸 인정해줄 것이라며 칼 앞에 가슴을 열어제친다. 칼은 정확히 담덕의 심장을 꿰뚫지만 순간 신비로운 빛과 함께 담덕은 살아난다.

이런 일은 가우리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호개(윤태영)에게 쫓기던 담덕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현고(오광록)의 신물이 빛을 뿜으면서 시간을 멈춰놓는다. 눈 한 번 깜짝할 그 순간에 담덕은 자신을 보호하다 죽은 절노부의 아들들을 가지런히 눕혀놓고 거기 멋진 글까지 남겨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 정도라면 담덕은 그 누구도 죽일 수 없는 절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환타지 사극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와 그런 능력이 없는 인간의 대결인가. 이렇게 보면 누구든 맥이 빠질 것이다. 이미 둘의 싸움의 결론은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왕사신기’의 대결구도가 팽팽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이 사극이 그리는 대결의 목적이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정치의 승리에 있기 때문이다. 담덕은 그 초인 같은 힘으로 호개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정치적인 승리가 아니다. 정치적 승리란 백성들의 지지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환타지 사극이 그리고 있는 것은 태왕의 두 후보들이 서로 경선을 벌이는 것이다. 현재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는 호개이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숫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백제와의 전쟁이 임박한 상황, 호개는 3만이 넘는 병사들을 그러모았지만, 담덕은 채 1만이 되지 않는 병사를 갖고 있다. 그러니 이 대결은 여전히 두고 볼만한 흥미진진한 양상을 띄고 있다. 물론 결과는 담덕이 이길 것이 분명하지만(모든 사극은 사실 결과가 나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정치인으로 호개와 담덕을 비교하면 그 색깔이 확연히 구분된다. 백제와의 전쟁을 토대로 확실한 인기몰이를 하려는 호개와 상반되게 담덕은 전쟁을 피하려 한다. 이유는 백성들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담덕의 그런 면을 겁쟁이로 손가락질 하지만 그렇다고 담덕이 거기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는 호개의 전쟁을 뒤에서 도우려고까지 한다. 거기에 대해 현고가 의문을 제기하자, 담덕은 오히려 이렇게 묻는다. “선생의 임금은 백성이 없어도 되는 임금이오?” 즉 호개의 군사들 역시 자신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정치적 대의뿐만 아니라, 이 사극은 경선 과정의 흥미진진함까지 다루고 있다. 담덕이 거물촌장인 현고와 절노부 족장을 통해 꾸리고 있는 것은 이른바 경선 캠프인 셈이다. 무엇보다 담덕이 먼저 ‘어느 곳의 소식이든 모르는 것이 없고 어느 곳이든 소문을 퍼뜨릴 수 있는’ 정보력과 언론을 가진 현고와 손을 잡은 것은 현대적 의미로 정치에서 얼마나 그것이 힘을 발휘하는가를 말해준다. 담덕은 이 베이스 캠프를 중심으로 차례차례 네 부족의 지역을 향해 세 몰이를 해나갈 것이 분명하다. ‘태왕사신기’는 태왕이 네 부족의 지지를 얻는 과정을 그린 정치적 행보를 다룬다.

따라서 이 환타지사극이 말하는 정치적인 메시지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주제가 되는 담덕의 정치스타일을 통해 드러난다. 대장장이인 바손(김미경)을 찾아와 무기를 만들어달라며 담덕은 이렇게 말한다. “내 군사들이 다치지 않게 무기를 만들어줘.” 최고의 대장장이 바손은 그 말에 담덕의 베이스 캠프에 합류한다. 무기라 하면 누군가를 상하게 하는 도구이지만 담덕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가 된다. 누군가의 피를 제물로 그 위에 서는 죽이는 정치를 하고 있는 호개와 달리, 담덕의 정치는 ‘살리는 정치’를 지향하고 있다. 인기정치와 남을 비방하는 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담덕의 큰 정치는 한번쯤 음미해 볼만한 문제가 아닐까.

‘태왕사신기’와 ‘로비스트’, 두 블록버스터의 의미

수목은 이제 말 그대로 안방극장의 밤이 되어 가고 있다. 430억을 들인 MBC의 ‘태왕사신기’와 120억을 들인 SBS의 ‘로비스트’, 두 블록버스터가 맞대결을 벌이며 제각각 갖고 있는 색깔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학을 얘기할 수 있는 영상은 물론이고 완성도 높은 스토리라인, 연기자들의 혼이 실린 연기가 어우러진 이 두 작품은 의미 있는 기획은 물론이고 완성도 면에서도 우리 드라마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 것이 분명하다.

‘태왕사신기’, 전혀 다른 사극의 가능성
‘태왕사신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접해왔던 사극과는 전혀 다른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극적 허구의 만남으로서 존재했던 사극은 역사라는 틀 속에서 좀체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혹자는 사극이 역사를 벗어버리면 왜곡이 된다 하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극은 사실과 허구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최근 사극의 경향이 상상력을 더 요구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변용은 이제 사극의 존재 이유가 되고 있다.

다만 필요해진 것은 사극이 과거처럼 역사교육의 한 도구로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믿음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짜 역사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은 교육계다. 사극이 교육계가 못하던 일들을 해왔다가 이제 안 한다고 해서 그게 비난받을 일일까. 사극은 태생부터 교육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역사보다 드라마에 더 충실해진 ‘태왕사신기’는 지금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앞으로 등장할 사극들의 향방을 가름하는 드라마가 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 특별한 사극이 앞으로 바꾸어놓을 첫 번째 것은 사극이 여타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그저 즐기면서 보는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드라마가 될 거라는 점이다. CG 활용이 주는 상상력의 자유는 더 다양한 층위의 퓨전사극 혹은 환타지사극들의 출현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한 가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의 사극들이 도래할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진정한 역사교육(역사적 사실 외우기가 아닌 사관을 기르는)에 더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로비스트’, 전혀 다른 드라마의 가능성
이제 단지 4회만 방영된 상황이지만 ‘로비스트’가 보여주는 상상력의 폭은 과거 드라마들보다 훨씬 넓어졌다. 드라마는 동해 북한 잠수함 침투 및 로버트 김 사건 같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끌어온다. 이른바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이 엮어진 팩션이라는 말인데, 그렇다고 해서 실제 사건이 이야기 전개에 족쇄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실제 사건은 허구에 좀더 현실감을 부여할 뿐이다.

동해의 작은 동네에서부터 벌어진 사건은 이역만리 미국에서의 엇갈린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까지 이어지며 자유로운 공간이동을 한다.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 공간이동이 자유로워지자 사건 전개 역시 틀에 박힌 스토리구조에서 벗어나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마리아(장진영) 가족이 동해안 작은 시골구석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겪게되는 일련의 과정은 하나의 가족 모험드라마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로비스트’라는 제목에 걸맞게 무기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두 캐릭터의 설정 역시 흥미롭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 총을 든 해리(송일국)와 어느 날 아버지가 총에 맞는 장면을 본 마리아는 무기에 대한 입장 때문에 후에 사건 속에서 부딪칠 것이 자명하다. ‘로비스트’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가진 볼거리에 나름의 의미와 재미요소를 두루 갖춘 드라마라 생각된다.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이런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등장하는 이유는 더 많은 볼거리와 다른 이야기, 좀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능하게 해줄 틀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처럼 블록버스터화 되어가는 드라마의 변화는 안방과 극장 양쪽의 변화를 촉발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HD 화질을 갖춘 블록버스터가 홈 시어터와 함께 안방을 극장으로 만든다면, 극장은 결과적으로 테마파크화가 가속될 가능성이 크다.

‘태왕사신기’의 배용준 vs ‘히어로’의 기무라 타쿠야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의 드라마 팬들은 두 명의 카리스마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왕사신기’로 컴백한 배용준과,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동명의 드라마를 영화화한 ‘히어로’로 일본 박스오피스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기무라 타쿠야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드라마가 모두 영웅과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란 점이다.

포용하는 카리스마, 담덕
‘겨울연가’의 부드러운 남자, 배용준이 ‘태왕사신기’라는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우려했던 것은 카리스마 연기가 될까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대결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 ‘태왕사신기’ 속에서 배용준이 연기하는 담덕은 그 어떤 영웅들보다 인상적인 카리스마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포용하는 카리스마다.

‘태왕사신기’는 궁극적으로 이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리스마라고 하면 우린 흔히 무언가 강압적인 힘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카리스마는 막스 베버가 지배형태의 유형을 설명하면서 종교용어에서 차용한 단어다. 베버는 카리스마가 강압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고 피지배자의 자발적인 인정, 신뢰, 숭배를 통해 생겨난다고 말한다. 즉 ‘태왕사신기’는 막스 베버가 말하는 지배형태 중 카리스마적 지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태왕이 태왕으로 서기 위해 사신(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드라마 설정이 그걸 말해준다. 사신은 인물이면서 동시에 신화적 영물이고 그것은 또한 네 부족을 말하기도 한다. 따라서 ‘태왕사신기’는 쥬신의 별이 빛나던 날, 신탁을 받고 태어난 두 명의 인물이 사신을 취하는 장기게임 같은 드라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담덕과 연호개(윤태영)가 구사하는 카리스마가 된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강한 것까지를 포용한다’는 말은 배용준이 담덕을 통해 보여주는 카리스마의 전모이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숨겨진 강인한 결단력과 포용력은 장차 태왕이 될 담덕의 카리스마가 사신들을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지를 예견케 하는 대목이다. 주목할 것은 마초적인 과거 카리스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최민수가 화천회의 대장로 역할을 하면서 담덕과 대결한다는 점이다. 달라진 시대는 달라진 카리스마를 요구한다.

숨겨진 카리스마, 쿠리우 코헤이
반면 ‘히어로’에서 중졸에 검정고시로 검사가 된 쿠리우 코헤이를 연기하는 기무라 타쿠야는 일본인 특유의 숨겨진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도무지 검사 같지 않아 보이는 쿠리우에게 팀원들은 모두 불신을 보이고, 부검사가 되고자 열성을 다해 쿠리우의 사무관이 된 아마미야(마츠 다카코)마저 점점 실망하게 되는 상황. 그러나 쿠리우는 자신이 해결한 일마저 남이 한 것처럼 둘러댈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들은 의식하지 못했던 관료주의에 의해 매몰되고 있던 팀원들이 이 쿠리우 검사에 의해 차츰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에서, 기무라 타쿠야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된 일본사회의 리더 상을 제대로 연기해낸다. 이 드라마가 역대 시청률 1위에 랭크된 것은, 일본 관료주의사회를 대변하는 듯한 도쿄지검에 벌어지는 변화가 강압적이거나 과격한 양상이 아닌 남 모르는 영웅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데서 많은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숨은 손’과 ‘숨은 발’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가는 쿠리우가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집단을 이끌어나가기 보다는 ‘원칙에 맞게 솔선수범 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지배는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발적인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역시 사무라이로 대변되던 일본 전통의 카리스마와는 달라진 카리스마라 할 수 있다.

달라진 시대, 달라진 카리스마
나라가 다르고 작품이 달라도 거기 표현되는 카리스마의 양상은 유사하다. 그것은 강력한 힘 앞에 굴복시키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저 스스로 진심에서 우러나는 충성심을 끌어내는 카리스마다. 이것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조직 속의 팀장과 팀원의 관계를 대변하기도 한다. 상명하복하던 과거의 수직적인 리더십은 이제 구태가 되었다.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카리스마를 가진 팀장의 리더십이란 팀원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장점을 극대화시켜주는 사람이다.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이 희구하는 영웅들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다. 이제 영웅은 더 이상 신화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평범 속의 비범을 보이는 자다. 한일 두 드라마 지존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이러한 현재적 가치를 반영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작금에 방영되고 있는 사극들이 일제히 왕의 모습을 버리고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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