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욱이 무죄라면 법은 잘못된 것이다

 

“행위에 있어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연애 감정을 가지고 만난 사이이기 때문에 추행으로 보기 어렵다. 입맞춤하려고 시도했으나 상대가 고개를 돌리자 중단한 경우가 있다. 강력한 물리력이 없었을 경우, 처벌 판단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음악의 신'(사진출처:Mnet)

이것이 미성년자 간음 및 성추행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는 고영욱에 대한 첫 재판에서 한 고영욱 측 변호인의 주장이다. 즉 고영욱이 성적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상호 연애 감정 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미성년자를 범했다는 도덕적 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있고 도덕적 비난은 감수할 것이지만, 도덕적인 비난과 처벌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여기서 그 대상 중에 13세 초등학생도 들어있다는 점은 ‘연애감정’ 운운하는 것이 실형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변명거리처럼 들리게 한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연애감정을 갖는다는 것이 정상적인가. 그것도 한 때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연예인으로서 사회적인 책무를 가진 이가 이런 식의 대응을 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고영욱은 작년까지만 해도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박하선을 짝사랑하는 고시생으로 출연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었지만 코믹한 이미지로 다시 방송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검찰이 발표한 것처럼 그는 지난 2010년에 이미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적 행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발표에 의하면 그는 2010년 여름 자신의 승용차에 A양(13)을 태우고 자신의 집에 데려가 강제로 간음을 했다고 하며 또 이로부터 일주일 후 A양에게 술을 마시게 한 후 한 차례 더 간음을 했고, 같은 해 가을 피해자 B양(14), C양(17)을 역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상습적이고 의도적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세 사건이 드러나 조사가 진행 중이었던 2012년 12월에도 D양(13)을 자신의 차에 태워 성추행한 혐의가 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물론 고영욱은 이를 부인했고(그는 “태권도를 배웠다고 해서 다리를 눌러본 사실은 있지만 그 외는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심지어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성년자와 어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합의 하에 만났다는 인터뷰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아 억울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그잖아도 미성년자에 대한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고영욱 같은 인물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풀려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나쁜 전례를 남기는 셈이다. 백 번을 양보해도 상식적으로 초등학생을 집으로 끌어들여 성적 행위를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이 상호 연애감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미성년자를 자기 차에 태웠다는 것조차도 연예인이라면 조심해야 될 사안이 아닌가.

 

백 번 사죄해야 될 일을 오히려 억울하다며 선처를 호소하는 건 한 때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아온 이로서 해야 될 일이 아니다. 대중들은 이미 그가 전자발찌를 착용하는 첫번째 연예인이 될 것인가 아닌가에 초미의 관심을 두고 있다. 혐의가 두 번이 넘었고 피해자 중 16세 미만 청소년이 있기 때문에 검사가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청구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유죄가 인정되면 전자발찌를 착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과연 고영욱은 상응하는 처벌을 받을 것인가.

<그 겨울> 빛낸 조인성과 송혜교의 연기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를 송혜교의 텅 빈 눈빛은 단지 시각장애인이라는 캐릭터를 넘어서 그 안에 담겨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체념, 절망을 담고 있었다. 돈 때문에 자신에게 접근해 오빠 행세를 하려는 오수(조인성)에게 “사랑 따윈 필요 없어!”하고 외치는 오영(송혜교)의 그 대사 속에는 역설적으로 그녀에게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반면 버려진 길바닥 삶에서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오수는 멀쩡한 눈을 갖고 있으면서도 삶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공허한 눈빛을 보여주었다. ‘삶의 의미’ 따위는 필요 없다고 외치는 그지만 그것 역시 거꾸로 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삶의 의미’라는 걸 말해주었다. 청부폭력배인 조무철(김태우)에게 칼을 맞고 죽음을 느낀 후에야 그저 “살아있으니 살아 봐야겠다”는 그는 그래서 그 삶의 이유를 찾는 중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가 첫회 파격적인 1,2회 연속 편성을 했지만 그 144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의 몰입감을 주었던 것은 이 두 인물이 주는 절망감이 그 눈빛만으로도 절절하게 묻어났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상속녀와 길거리 건달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 있지만, 그들을 묶어주는 건 이 공통된 절망감이다. 비록 그것이 ‘돈’이라는 매개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이미 1년 전 오누이가 아니라 남남으로 만났던 그들이 1년 후 오누이 행세를 하는 건 마치 양자가 심적으로 합의한 연기처럼 보인다. 오영은 오수가 진짜 오빠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누구라도 곁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고, 오수 역시 돈을 뜯어내기 위해 오영에게 접근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으로 그녀를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는 듯하다.

 

지하철역에서 돈이 목적이라면 지금 자신의 등을 밀라며 지하철로 뛰어드는 오영과 그런 그녀를 내버려두기보다는 애써 살려내려는 오수의 절박함에는 이 오누이 연기에 가려진 속내가 드러난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절망과 상처를 위무해주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것은 오누이라는 가짜로 만들어진 외적 관계 때문에 결국 파국을 예고하지만.

 

이미 일본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으로, 또 문근영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리메이크작 <사랑 따윈 필요 없어>로 익숙할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 겨울>이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노희경이 가진 특유의 진지함과 조인성, 송혜교의 놀랍도록 발전한 내면 연기가 감각적인 연출과 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삶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는 노희경 특유의 색채는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상처받은 수컷 눈빛의 조인성과 절망과 공허함을 눈빛 하나에 담아내는 송혜교의 연기와 맞물려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엇보다 깊어진 송혜교의 연기는 <그 겨울>이라는 작품의 쓸쓸한 정서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절박한 삶 속에서 뛰어다니는 조인성을 따뜻한 사랑과 삶으로 잡아끄는 송혜교는 그래서 그 시각 장애라는 틀이 오히려 하나의 흡인력이 되게 만들고 있다. 144분 간의 몰입감은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놓기에 충분했던 시간이다. <그 겨울> 바람이 불 것 같은 예감이다.

<정법>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김병만이다

 

공든 탑도 무너진다. 심지어 땀으로 차곡 차곡 쌓아놓은 탑이라고 할지라도. <정글의 법칙>의 계속되는 논란과 그로 인해 눈물 흘리고 있는 김병만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김병만은 과연 무슨 죄를 저질렀던 것일까. 우리에게 진짜 ‘달인’으로서 개그를 훌쩍 뛰어 넘는 그 땀과 노력에 박수를 치게 만들었던 그였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또 정글에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 바나나를 따 먹고, 나무를 해서 잠자리를 마련하거나 배를 띄우고, 통발로 잡은 물고기로 라면 스프 넣은 어죽을 해서 멤버들과 나눠 먹었던 그였다. 콩가 개미에 물려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면서도 촬영을 강행하려 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렇게 하나 하나 땀으로 세워놓은 자기만의 세계가 한 순간에 거짓으로 매도당하게 되는 데는 그다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병만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한 매체가 무슨 대단한 일이나 되는 양 폭로한 것처럼, <정글의 법칙>에 등장했던 많은 장소들은 관광 상품으로도 존재한다. 사실 그 어느 오지라고 하더라도 관광 상품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히말라야도 그렇고 사하라 사막도 그러하며 툰드라 지대라고 그렇다. 이것은 전 지구적인 상황이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 상품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다만 관광 상품으로 가는 것과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 낯선 길을 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실제로 관광 상품이 있는 루트라고 하더라도 그 길을 처음 가는 이들이 스스로 겪게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를 수 있다. 사전에 그 길이 어떤 것이든 가보지 않은 김병만으로서는 그 낯설고 뭐든 개척해가야 할 길이 진짜 힘겨운 길이었을 게다.

 

‘관광 상품’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너무 포괄적이며 자극적이다. 마치 <정글의 법칙>이 지금껏 지나온 길들이 그저 돈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는(그것도 관광이니 즐길 수 있다는 뉘앙스가 있다) 것처럼 치부되기 때문이다. 오지를 체험하는 여행과 도시 여행은 다르고, 군대 체험과 시골 체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또 그 여행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꾸리고 계획하느냐에 따라서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그저 ‘관광 상품’이라는 표현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의도적이고 자극적인 행위다. 특히 김병만이 영상에서 보여줬던 때로는 피가 나고 때로는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위험천만했던 상황들이 모두 조작이며 ‘관광 상품’ 체험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너무 과한 일이다.

 

김병만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한 죄밖에는 없다. 죄가 있다면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100% 리얼을 강조했다는 것일 게다. 아무리 수사적인 의미라고 하더라도 김병만이 말한 것처럼 카메라가 돌아가는 데서 100% 리얼이란 있을 수 없다.

 

사실 이것은 수많은 리얼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리얼리티 논란을 겪는 이유이기도 하다. 논란은 그것이 100% 리얼이 아니라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굳이 100% 리얼이라고 강조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제작진들은 리얼을 강조함으로써 영상의 실감과 자극을 높이려는 목적이지만 이것은 때론 부메랑처럼 돌아와 리얼리티 논란으로 불거지곤 한다.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베어 그릴스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도 리얼리티 논란을 겪은 적이 있고 실제로 일부 장면에서는 재연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전에 이미 ‘생존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재연된 장면도 일부 있습니다’ 같은 자막으로 설명되어 있다.

 

당연한 일이다. 만일 이런 어느 정도의 연출이 없이 모든 걸 말 그대로의 리얼로 찍는다면 그것은 안전성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을 시청률을 위해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윤리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은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그 실감 그대로를 전달하기가 어렵다.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에서도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흔히들 이렇게 묻는다. 100% 리얼이 아닌데 왜 정글에 가는 걸까. 이 질문은 그 질문 자체가 잘못 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리얼 자체가 아니라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은 사전 자막 고지에 들어 있는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생존기술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그 목적에 부합하고 효과적이라면 재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 목적을 보지 않고 리얼이 주는 자극을 먼저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정글의 법칙>의 목적도 리얼 그 자체가 아니다. <정글의 법칙>은 도시를 벗어나 정글이라는 상황 속에서 생존을 넘어선 공존의 의미를 찾아보는 목적을 갖고 있다. 원주민과의 만남은 그들이 문명과 이미 접촉한(대부분이 그럴 것이지만) 이들이라고 해도 그대로 남아있는 풍습들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어떤 공감하고 공존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에 더 의미가 있었을 게다. 이 의미를 보지 못하면 결국 자극만 남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리얼 공방 속에는 자극에 대한 제작진과 시청자 사이에 놓여있는 모종의 약속이 깨진 것에 대한 허탈감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정글의 법칙>의 가장 큰 잘못은 연출이 가능하고 때로는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통해 사전 고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제 아무리 다큐와의 접목을 추구했다고 해도 결국은 예능 프로그램의 틀을 벗어날 수 없고, 예능은 어떤 식으로든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자막은 상황을 좀 더 극대화시키고 편집은 아무런 의미 없어 보였던 행위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예능이 아니라 다큐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매번 리얼리티 논란이 나올 때마다 먼저 드는 느낌은 달을 보지 않고 그걸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리얼리티냐 아니냐는 자극의 틀은, 결국 제작진으로 하여금 100% 리얼처럼 보이려는 비뚤어진 욕망을 만들어내고, 시청자로 하여금 그 욕망만을 소비하게 만든다. 리얼리티 논란 속에서 <정글의 법칙>이 가졌던 본래의 좋은 기획 의도는 점점 잊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논란으로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보게 된 건 바로 김병만이라는 사실이다. 제작진이 사전에 준비해놓은 정글 속이라고 해도 김병만이 그 속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은 제아무리 편집되고 연출된 영상이라고 해도 이미 대중들이 방송을 통해 무수히 봐왔던 것들이다. 결국 그렇게 찍은 영상을 요리하는데 있어서 생겨난 문제라면 그것은 제작진이 져야 할 책임이 아닐 수 없다.

진정성의 시대, 왜곡된 진심은 어떻게 소통되나

 

지난 11일 울랄라세션의 리더이자 긍정의 아이콘이었던 임윤택이 결국 세상을 등졌다. 위암 4기 판정을 받고도 <슈퍼스타K3>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힘든 몸을 이끌면서도 무대에 서는 것을 오히려 최고의 치유라고 말했던 그였다. 하지만 대중들의 시선은 엉뚱하게도 그 진심을 왜곡하기도 했다. 너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임윤택이 ‘정말 아픈 게 맞냐’는 의혹까지 제기되었던 것. 한편에서는 ‘그가 병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비방까지 생기기도 했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와 '두드림(사진출처:KBS)'

여기에 대해서 임윤택은 “제안이 들어왔던 생명보험 CF도 마다했다”는 말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투병중이라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그였고, 그래서 보통 사람처럼 무대에 서서 춤추고 노래했던 그였지만 그 진심은 오히려 왜곡되기도 했던 것. 그렇게 진심이 왜곡될 정도로 늘 웃는 모습만 보여주려 했던 그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은 그래서 우리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한다. 고 임윤택은 영정사진 속에서조차 활짝 웃고 있었다.

 

11일 밤에 방영되었던 <힐링캠프>에는 최민수가 출연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살아왔기에 유난히도 오해를 많이 받아왔던 그였다. 그래서 한 때는 ‘죄민수’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이경규가 그가 하는 행동들이 ‘허세’가 아니냐고 묻자 최민수는 오히려 “허세 없는 사람이 무슨 매력이 있습니까”라며 “인생을 멋스럽게 표현하는 게 죄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최민수의 말대로 그건 매력이지 죄가 아니다. 하지만 이경규가 걱정하면서 물었던 것처럼 바로 그 허세 이미지가 갖은 오해와 루머가 되어 그를 괴롭혔던 것은 사실이다.

 

최민수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무릎을 꿇었고(그것은 가족을 위해서였다)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 자체도 자신의 잘못이라며 산으로 들어가 몇 년 간을 칩거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최민수는 다시 대중들 앞에 나올 수 있었고 그 모습은 과거와 비교해 너무나 편안한 것이었다. <힐링캠프>는 아내의 말 한 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최민수의 거꾸로 나이를 먹는 순수한 영혼을 보여줌으로써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의 마음까지도 힐링되는 느낌을 받게 해주었다.

 

한편 11일 오후에는 20여일 간의 뉴질랜드 촬영을 마치고 <정글의 법칙> 팀이 귀국해 갑작스럽게 불거진 진정성 논란에 대해 해명한 날이기도 하다. 김병만은 "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서, 또 그들(원주민)의 전통적인 것을 보여주기 위해 벌레도 먹고 하는 것"이라며 "'이 맛은 어떨까'를 시청자에게 설명해드리기 위한 부분이고, 중간중간 한 가지 미션을 끝내고 이동하는 사이에는 (음식을) 먹는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안전성 논란까지 나왔던 <정글의 법칙>은 그래서 사실 리얼리티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멤버들의 안전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것은 실제로도 방송을 통해 보여진 적이 있다. 아마존에서 강을 도하하다가 위기상황에 처하자 배를 요구했던 것은 단적인 예다. 만일 여기서도 그래도 강행했다면 그것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것은 다큐가 아니라 예능이지 않은가. 이지원 PD는 “그래도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저희가 방송에서 보여드리는 모습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다"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결국 진정성이란 말 몇 마디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게다.

 

지난 11일 안타깝게도 세상을 등진 고 임윤택과 오랜 만에 방송에 나와 진짜 모습을 보여준 최민수는 모두 진정성이라는 이 시대의 요구를 몸소 보여줬지만 때로는 그것이 왜곡과 오해로 돌아오는 경험을 했던 이들이다. 한번 훼손되면 다시 채우기가 쉽지 않은 이 진정성이라는 그릇은 그러나 말이 아닌 몸으로 짧은 시간이 아닌 한 세월로 결국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보여주었다. 지금 김병만 앞에 놓인 진정성의 무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쨌든 진정성은 이제 방송가에 가장 뜨겁고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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