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 펄펄 나는데, 이수근은 왜?

 

김병만과 이수근은 절친 중의 절친이다. <개그콘서트>를 통해 데뷔하던 시절, 두 사람은 같이 힘겨운 나날들을 버텨냈다. 그러다 먼저 두각을 나타낸 건 이수근이었다. ‘고음불가’, ‘키컸으면’ 같은 코너가 그를 주목받게 했고 <1박2일>에 투입되면서 그의 주가는 점점 올라갔다. 물론 1년 가까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공간에 대한 적응기간이 필요했지만 그는 차츰 캐릭터를 만들어가더니 결국 ‘앞잡이’로 우뚝 섰다. 그 후 이수근은 <1박2일>에서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애드립과 상황극으로 절정의 개그감을 선보였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승승장구>, <청춘불패2>는 물론이고 케이블 채널과 종편에까지 꽤 많은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이수근은 그러나 최근 들어 주춤하는 기색이다. 그 발원지는 그를 정상에 세워주었던 <1박2일>이다. 시즌2로 넘어오면서 <1박2일>은 주말 최강자라는 자리를 <런닝맨>에게 내주었다. 이렇게 된 것은 시즌2로 대거 멤버들이 교체되면서 아직까지 제대로 캐릭터들이 새롭게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수근은 확실한 자기만의 캐릭터가 있었지만, 이 새로운 관계 속에서는 또 다른 역할을 부여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수근이 가장 큰 빛을 보았던 시기는 강호동과 함께 “코미디언 아이가?”를 외칠 때였다. 이수근은 <개그콘서트> 같은 콩트 코미디에서 커왔기 때문에 혼자 치고 나가는 개그보다는 누군가와의 합을 이룰 때 더 힘을 발휘한다. 그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던 강호동이 빠져나가고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멤버들로 교체되면서 이수근은 경험자로서 <1박2일>의 고참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전면에서 이끌어야 하는 그 역할이 이수근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치고 나와야 의외의 웃음의 효과가 크기 마련인 그의 개그가 약화된 건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반면 김병만은 이수근보다는 조금 늦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김병만은 이수근과 달리 말로 웃음을 주는 그런 개그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개그콘서트>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다. 몸으로 웃기는 방식. 슬랩스틱이 기본이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 어떤 것. 김병만은 그렇게 <달인>을 만들었고 엄청난 노력으로 진짜 달인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끝냈지만 여전히 달인이었다. <키스 앤 크라이>에서는 피겨 스케이팅의 달인이 되었고 또 <정글의 법칙>에서는 정글의 달인이 되었다. 김병만은 결국 달인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처럼 김병만에게 최적화된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그는 어쩌면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워낙 강한 독보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했고, 그는 결국 이 도전들을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었다.

 

이수근과 김병만.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만의 독특한 지점을 가진 예능의 떠오르는 신예들이지만, 최근의 희비쌍곡선은 그 서로 다른 행보에서 비롯되었다. 이수근은 기존 프로그램 형식에 자신을 적응시킨 것이지만(<1박2일>이나 <승승장구> 같은), 김병만은 자신만의 독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결국 이수근은 그 기존 프로그램에서 누군가의 2인자로서 자신의 캐릭터를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김병만은 자신만의 종족(병만족)을 만드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두 사람은 물론 지금도 JTBC <상류사회>에서 함께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정글의 법칙>에서 툰드라에 다녀온 김병만은 이수근에게 툰드라 의상을 택배로 보내 이수근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김병만이 펄펄 날고 있고 이수근이 주춤하게 된 것은 그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최근 달라져버린 예능환경 때문이다. 강호동이 잠정은퇴한 것도 <1박2일>이 시즌2로 넘어오면서 출연자들이 바뀌어버린 것도 이수근에게는 악재가 되었다.

 

반면 자신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 <정글의 법칙>을 하게 된 건 김병만에게는 큰 행운이다. 그는 <개그콘서트>에서 무대에 갇혀 있던 달인이라는 캐릭터를 이제 세상 밖으로 갖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정글의 법칙>의 성공은 김병만에게 또 다른 분야에서의 달인 캐릭터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마도 절친으로서 이수근이 악재를 딛고 다시 제 궤도에 오르는 모습을 김병만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자 라이벌로서 서로를 상생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감흥을 포기한 삶에 발랄한 일격, <나 공무원>

 

어쩌다 공무원이 로망인 시대가 됐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무원이란 모두를 통칭하는 얘기가 아니다. 흔히들 말하는 공무원이라는 이미지, 즉 ‘복지부동’으로 통하는 그 이미지로서의 공무원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공무원이다>는 이 감흥 없는 삶(심지어 “흥분하면 지는 거다”라고 말하는)에 발랄한 일격을 날리는 영화다.

 

'나는 공무원이다'(사진출처:마포필름)

7급 공무원 한대희(윤제문)는 나이 38세에 마포구청 환경과 생활공해팀 주임이다. 이 구청에서 그는 내용보다는 파워포인트 양식을 잘 다루는 것으로 자칭 좀 잘 나가는 공무원이다. 연봉 3천5백에 정시 출근 정시 퇴근. 임금 체불 없고 정년 보장되고, 미래를 위해 집도 하나 갖고 있는데다, 퇴근 하면 자신을 반겨주는 10년째 TV친구 유재석, 경규형이 있는 그는 자신의 삶에 200% 만족한다. 어떤가.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삶으로 여겨지는가? 글쎄.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민원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오로지 평정심만이 자신의 위치를 지켜줄 것이라 믿고 살던 그의 삶에 어느 날 인디밴드 하나가 불쑥 침입한다. 그리고 밤마다 쿵쾅대는 소음에 사람이 “전두환이나 세계금융위기 이런 거시적인 걸로만 시달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가던 그는 차츰 잊고 있던 심장박동소리를 듣게 된다. 평정심의 대가에게 흥분은 위험하고도 달콤하게 다가온다.

 

공무원이 로망이 되고 흥분이 위험인 시대. 어딘지 불온한 이 시대의 기점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 아마도 저 IMF라는 그늘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 이전까지 사자 직업이나 혹은 사업가, 심지어 예술가를 꿈꾸던 이들은 이 생존이 불안한 시대에 접어들면서 꿈이 아닌 현실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평생 직업으로서의 교사나 공무원을 꿈꾸게 된 것. 물론 교사나 공무원이란 직업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이 직업 자체의 매력이 아니라 그 직업이 갖는 안정성을 좇는 세태가 문제라는 것.

 

사실 이렇게 공무원이 로망이 되어버린 힘겨운 현실은 서민들이 의도했다기보다는 가진 자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서민들에게 쏟아진 날벼락이라는 점에서 공분을 자아낼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노’보다는 ‘흥분’이라는 문제를 선택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본래 영어 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Dangerously Excited>, 즉 <위험한 흥분>이었다. 왜 분노가 아니라 흥분일까. 이 지점에서 이 영화가 포착하고 있는 보다 날카로운 세태의식을 느낄 수 있다.

 

본래 흥분이란 영어 표현으로 ‘Excited’라 표현하듯 그다지 나쁜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흥분이라는 단어는 마치 부정적인 감정 상태인 것처럼 해석되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흔히들 “흥분하지 마”라고 얘기할 때 흥분이란 어딘지 일을 그르치는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왜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흥분이라는 상태가 부정적일까. 그 안에는 사회적으로 암묵된 억압의 그림자가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영화는 한대희가 민원인들의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한껏 흥분해 있는 민원인들의 항변을 한대희는 마치 그것을 아무런 항변 없이 받아주는 것이 자신의 직무인 양 넙죽넙죽 받아낸다. 하지만 한대희라는 공무원 역시 사람일진대 어찌 흥분하지 않을까. 다만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 억눌려진 감정은 어느 날 한계수위를 넘으면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대희가 선택하는 건 분노가 아니라 흥분이다. 자신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드는 그 무엇을 찾는 것. 이 영화가 그토록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무거운 현실을 등에 짊어지고 있음에도 바로 이런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흥분이라는 주제를 툭 던져놓는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를 얘기하면서 윤제문이라는 배우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윤제문이라는 배우가 그간 해온 연기들의 맥락 속에 이 흥분이라는 주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의 외모에서 풍겨져 나오는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그는 어딘지 격한 감정을 꾹꾹 눌러 그 안에 숨겨두고 있는 그런 역할을 주로 해왔다.

 

최근작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기준은 그 감정이 한없이 숨겨졌다 분노로 표출되는 인물이다. <더킹 투 하츠>의 김봉구 역시 이 분노의 감정을 한없이 억누르고 풀어내는 역할이다. 그런 그이기에 갑작스럽게 보이는 귀요미 연기 변신이 새로우면서도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억눌려진 감정이 분노에서 흥분으로 바뀐 그 역할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영화는 온전히 윤제문이라는 배우 하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안에는 포복절도의 코미디와 부글부글 끓는 듯한 억눌린 감정들, 그리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풀어져 나오는 기분 좋은 해소의 과정들이 모두 들어 있다.

연예인 신뢰를 이용, 소비자 기만

 

지난 9일 6개 연예인 쇼핑몰(백지영과 유리, 진재영, 황혜영, 김준희, 한예인, 김용표)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태료와 더불어 시정명령을 받았다. 전자상거래법 위반행위를 했다는 것. 그들은 지각 등 근무수칙을 어긴 직원에 대해 의무적으로 소비자가 쓴 것처럼 사용 후기 5건을 올리게 했고(백지영, 유리 '아이엠유리'), 불리한 후기는 아예 게재하지 않았다고 한다(황혜영의 ‘아마이’). 이밖에도 끝난 이벤트를 계속 진행 중인 것처럼 속이는 수법을 쓰기도 했고, 추첨도 하지 않은 채 구매를 많이 한 VIP고객에게 사은품을 임의로 몰아주기도 했다.

 

'한밤의 TV연예'(사진출처:SBS)

하긴 인터넷 쇼핑몰의 이런 사기행위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아마 후기를 곧이곧대로 믿는 소비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신뢰가 없는 세상이다. 심지어 진심으로 좋은 뜻의 후기를 남겨도 이른바 ‘알바’로 오인 받을 정도니까. 그래서 연예인 쇼핑몰의 이번 사건 역시 그런 관행의 하나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가 하나 들어가 있다. 그것은 이들 연예인 쇼핑몰의 성패 자체가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쇼핑몰들은 연예인의 유명세 덕분에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적게는 연매출 10억 원에서(이것도 적은 게 아니다) 많게는 무려 200억 원의 연매출을 올리는 쇼핑몰도 있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연예인이 전면에 있어 소비자들이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쇼핑몰이란 그만큼 간편하지만 직접 손으로 만지고 입어보고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신뢰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바로 그 부분을 연예인의 이미지가 채워주고 있었다는 얘기다.

 

사건이 공개된 후 백지영은 발 빠르게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사과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백지영은 "저를 포함한 '아이엠유리' 임직원이 인터넷 쇼핑몰 공정거래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사이트 활성화만을 염두에 두고 허위 후기를 남긴 점에 대해서는 모두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공개사과에도 불구하고 대중정서는 싸늘하기만 하다.

 

대중정서가 더 싸늘해진 이유는 백지영이 그간 방송 등을 통해 늘 진솔하고 털털한 이미지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 신뢰에 금이 간 것이다. 아마도 좀 더 깊은 생각 없이 그저 수익성을 보고 인터넷 쇼핑몰에 뛰어든 탓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의 관행처럼 굳어져버린 알바성 후기들을 올리는 것이 어떤 짓인지도 생각하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알바성 후기의 후폭풍은 기존 인터넷 쇼핑몰의 그것과 연예인 쇼핑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들이야 그저 벌금 내고 말면 그만일 수 있지만, 연예인 쇼핑몰은 쇼핑몰의 차원을 넘어서 연예인 활동까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워 그만한 큰 수익을 거둬들이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그 이미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이번 연예인 쇼핑몰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연예인들이 사업을 벌일 때 잘되는 만큼 그 후폭풍도 크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얘기다.

 

물론 쇼핑몰의 이런 문제들을 오로지 연예인 몇 명에게 책임지우고 넘어가는 건 문제의 진짜 핵심을 흐릴 수 있다. 이미 인터넷 쇼핑몰 전체에 대해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불신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번 문제에서 나아가 전체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해당 연예인들 역시 이 문제를 단순히 사과하고 대충 넘길 수 있는 사안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간 사랑을 받아왔던 만큼, 그 기만행위에 의해 상처 입은 대중들에게 진심어린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장르가 아닌 완성도, 시청자들의 달라진 눈높이

 

드라마 시청자들이 달라지고 있다. <추적자>와 <유령> 같은 장르 드라마들의 선전이 그것을 에둘러 말해준다. 물론 시청률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드라마 시청률이 낮아졌다는 점과 그것을 감안했을 때 시청률이 괜찮은 편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화제성 면에서 단연 압도하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달라진 시청자들의 성향을 예감하게 한다.

 

'추적자'(사진출처:SBS)

<추적자>가 시청률 18%에 육박하고 있는 건 물론 이 드라마가 가진 강력한 극성 덕분이다.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은 리얼리티에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쏟아져 나오는 명대사들, 잘 구축된 캐릭터를 제 옷처럼 입고 연기하는 연기자들, 게다가 숨 쉴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잘 짜여진 연출까지 뭐하나 빼놓을 것 없는 완성도가 바로 그 높은 시청률의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추적자>처럼 본격적인 추격 액션물이 이만한 성과를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추적자>의 밑바탕에 가족과 서민에 대한 대중정서가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홍석(손현주)이 국민 아버지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즉 <추적자>는 전형적인 추격 액션 장르를 가져왔지만 여기에 한국적인 색채를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그저 쫓고 쫓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네 정서를 집어넣었다는 점이 성공 포인트다.

 

하지만 <유령> 같은 작품이 14%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알다시피 <유령>에는 우리네 드라마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하는 멜로나 가족이야기가 전무하다. 오로지 수사 장르물에 입각해 그것이 줄 수 있는 재미에 집중되어 있다. 때로는 <유령>은 드라마로서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촘촘히 이야기가 짜여지다 보니 잠시 집중을 하지 않게 되면 다음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TV라는 매체를 생각해보면 이런 드라마가 이렇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물론 <유령>은 본격 장르물이 갖는 이런 약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보완책들을 갖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현실에서 쉽게 들어봤던 사이버 범죄들을 소재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타진요 스캔들’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민간인 사찰 같은 민감한 소재도 에피소드로 활용되었다. 이런 익숙한 소재들은 낯설 수 있는 드라마가 딴 나라 이야기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준 셈이다. 게다가 수사 장르물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반전 포인트들을 다양하게 가져간 점도 성공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완책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추적자>나 <유령>을 통해 시청자들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장르에 대한 편견 없이 드라마를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의학드라마나 사극 혹은 시대극이라면 무조건 성공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새롭게 시작한 의학드라마 <골든 타임>이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무신> 같은 사극은 별로 화제가 되지 않지만, <닥터 진> 같은 사극은 연일 화제가 되는 상황이 그렇다. 또 같은 멜로라도 <신사의 품격>이 선전하고 있는 반면, <빅>과 <아이두 아이두>가 부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장르적인 우위를 떠나서 이제는 드라마가 갖는 완성도나 참신성 같은 것이 성패를 가름하고 있다는 얘기다. 화려함은 없어도 팽팽한 대본과 연기가 뒷받침되어 성공한 <추적자>가 그렇고, 다소 복잡하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건의 얼개나 구성이 촘촘하게 잘 엮어져 있는 <유령>의 성공이 그렇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시청자들의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 높아져 있다는 얘기다. 이제 어디선가 했던 비슷비슷한 설정을 반복하는 드라마들에 시청자들은 식상해한다. 관성적인 시청도 물론 여전히 남아있지만 과거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한 드라마 시청률의 등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이 높으면 대체로 성공하는 드라마로 생각됐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드라마가 힘이 빠진다 싶으면 시청률이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반에 시청률이 잘 나왔지만 후반에 이르러 연장을 하면서 시청률이 뚝 떨어졌던 <빛과 그림자>가 단적인 사례다.

 

아마도 미드와 일드를 경험하고 열광했던 시청자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이 들어 TV의 주 시청층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바로 고꾸라지는 게 요즘 드라마의 운명이 되었다. 초반 기획으로만 봐서는 성공 요소가 별로 없다 여겨졌던 <추적자>의 성공이나, 아직은 조금 시기상조로 여겨졌던 본격적인 장르 드라마인 <유령>의 선전은 그래서 달라지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말해주는 징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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