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왜 강동윤과 서회장의 대결에 집착할까

 

루저와 약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흔히들 변변한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배경도 없어 그저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을 낮추어 루저(패배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들이 왜 이런 상황에 몰렸는가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루저란 표현은 지나치다고 여겨진다. 이들은 열심히 노력했지만 이 태생적으로 모든 게 정해져버리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사회적 약자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추적자>에서 백홍석(손현주)은 사회적 약자인가 아니면 루저인가.

 

'추적자'(사진출처:SBS)

아마도 우리의 도덕적인 의식은 백홍석을 사회적 약자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인 선택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백홍석이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연민과 동정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끊임없이 권력의 힘에 의해 당하기만 하는 인물이 어딘지 답답하게 여겨질 수 있다. 사실 <추적자>라는 드라마가 백홍석과 강동윤(김상중)의 대결구도로 끝까지 달려가지 않고 중간에 갑자기 강동윤과 서회장(박근형)의 대결구도로 바뀐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백홍석이라는 사회적 약자가 끊임없이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루저 같은 이미지로 바뀌게 되면 드라마의 매력 또한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반을 넘어서면서 <추적자>에 더 집중되는 관심은 백홍석과 그가 밝혀내려는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이 되려는 야심가 강동윤과, 그를 막는 것과 도와주는 것 사이에서 주판을 튕기고 있는 서회장 사이에 벌어지는 팽팽한 대결구도다. 과연 강동윤은 서회장과의 정치적 대결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서회장이 강동윤의 야심을 무참히 꺾어버릴 것인가. 최근 몇 회 동안 <추적자>에 보인 언론의 관심은 백홍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회장과 강동윤을 위시하여 그 변화를 만들어내는 서지수(김성령), 신혜라(장신영) 같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반전드라마였다.

 

백홍석과 강동윤의 대결이 뻔해 보이는 반면, 강동윤과 서회장의 대결은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기묘한 상황이 생겨난다. 백홍석과 강동윤의 대결지점에서 강동윤이란 인물은 절대적인 악으로 위치하지만, 강동윤과 서회장의 대결에서는 다르게 그려진다는 점이다. 이발사 아버지를 둔 소시민의 아들 강동윤의 성공스토리가 그 안에는 깔려 있다. 성공하기 위해 뭐든 했던 이 인물은 어쩌면 우리네 근대사의 아버지들을 표징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강동윤이란 인물에 묘한 동정심을 갖게 된다. 무표정한 얼굴, 그 뒤에 놓여진 처절함 같은 것.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강동윤 같은 인물을 만난 적이 있다.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은 대표적인 사례다. 성공하기 위해 뭐든 하고, 누구와도 손을 잡는 속물적인 인간이지만 많은 대중들은 그가 그토록 성공하려는 그 마음을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인물은 남성 캐릭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도 넓은 의미에서 이들과 같은 부류다. 성공을 향한 강력한 욕망과 그 좌절의 캐릭터. 이런 부류의 캐릭터들에 열광하는 건 아마도 우리네 불행한 근대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강동윤의 말처럼 “마차가 달려가다 보면 바퀴에 벌레가 밟히기도 한다”는 것이 우리네 개발시대의 정서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발밑과 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살피지 않고 강박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아버지들. 우리가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래서 양가적이다. 어떤 이들이 개발의 결과를 놀랍도록 눈부신 성장으로 바라보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 개발이 누군가를 짓밟은 결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바라본다. 이것은 자식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양가적인 시선과 겹쳐진다.

 

물론 백홍석이라는 아버지는 <추적자>라는 이전투구의 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구원 같은 존재다. 사실상 강동윤과 서회장의 복마전이 허용되는 이유는 백홍석이라는 절대적인 선이 한 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이지만 가해자가 되어 쫓기고 있는 그가 눈앞의 진짜 가해자에게 총을 겨누고 있으면서도 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문제 해결 방식이 단순한 복수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 백홍석은 그저 서민을 대변하는 아버지처럼 보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인간적인 차원을 넘어선 인물처럼 보인다. 자식을 죽이고 아내마저 죽게 만든 장본인을 눈앞에 두고 복수가 아닌 진실을 선택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하지만 이 절대 선으로서의 백홍석이라는 인물보다 강동윤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추적자>를 단순한 추적 장르물이나 복수극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아프게도 우리가 갖고 있는 성장과 성공에 대한 갈망(아마도 그토록 빠른 근대화를 가져오게 했던 동인이었을)과 그 결과로서 생겨난 희생들에 대한 죄의식이 겹쳐져 있다. 백홍석이 죄의식을 환기시키는 인물이라면, 강동윤은 여전히 욕동하고 있는 그 성공에 대한 갈망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당신은 어떤 인물을 추적하고 있는가. 백홍석인가 강동윤인가.

차라리 독립 프로를 만드는 것이

 

2010년 <남자의 자격>이 처음 시도했던 ‘하모니’라는 소재의 합창단 미션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합창단 모집에서부터 저마다의 끼를 보여주었고, 그 저마다의 끼들은 박칼린이라는 지휘자를 만나 하나의 하모니로 묶여지면서 보는 이들을 감동하게 만들었다. <남자의 자격> MC들 역시 합창단 단원으로 참여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잘 유지시켰다. 오디션과 음악, 하모니가 있고 무엇보다 그것을 만들어가는 개성 넘치는 단원들의 이야기가 있었던 ‘하모니’편은 아마도 <남자의 자격>이 거둔 최고의 성취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남자의 자격'(사진출처:KBS)

하지만 2011년 ‘청춘합창단’이라는 소재로 돌아온 ‘하모니2’는 합창단으로서는 분명 성취를 이뤘지만 <남자의 자격>으로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 사실이다. 2010년 첫 ‘하모니’ 미션에서 마지막 경연에 불현듯이 나타나 보는 이들에게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실버합창단’은, 2011년 ‘청춘합창단’이라는 아이디어의 성공을 일찌감치 예감하게 했을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도 그랬다. 이미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주름진 얼굴을 한 어르신들은 그러나 ‘청춘합창단’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여전히 지지 않는 ‘청춘의 하모니’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남자의 자격>이 이 청춘합창단과 어떤 고리를 갖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청춘합창단은 성공했지만 그것은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보였다. 굳이 연결하자면 청춘합창단의 지휘와 노래를 국민할매 김태원이 맡았다는 것 정도. 하지만 다른 MC들은 거의 실종상태였다. 윤형빈과 이윤석은 열성적으로 합창단에 임했지만 대부분 편집되었고(오롯이 어르신들에 초점을 더 맞추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김국진이나 양준혁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전현무의 밉상 짓이 눈에 띄었을 뿐, 심지어 이경규의 존재감도 드러나지 않았다.

 

편집의 실수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자의 자격>이 무언가 새로운 도전이나 미션을 찾아내려 하지 않고 이미 한 번 성공했던 미션을 반복하는 인상을 지웠다는 점이다. <남자의 자격>이 일종의 미션이 주어지는 도전 프로그램 성격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반복’ 혹은 ‘우려먹기’의 이미지가 얼마나 프로그램에 타격을 주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합창단이란다. 그것도 지금 현재 시즌2 출범으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먼저 ‘합창단’ 시즌3를 반드시 하겠다고 한 것은 너무 지나친 집착 혹은 고집이 아닌지.

 

합창단이라는 소재가 나쁜 게 아니다. 그 합창단이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좋지 않은 것이고, 또 이 프로그램과의 연결고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뜬금없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은 걸 왜 굳이 하려고 하는 걸까. 이것은 <남자의 자격>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짐을 지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본래 시즌2 성격이었던 ‘청춘합창단’ 역시 시즌1을 했던 신원호 PD는 그다지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정희섭 PD도 같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합창단이라는 소재는 분명 매력적이다. 따라서 이 소재를 계속 하고 싶다면 차라리 독립적인 ‘합창단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일정한 주제를 갖고 단원을 모으고 그들을 하나의 하모니로 묶어내는 과정은 매번 흥미로울 수 있다. 또 지휘자를 누구로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스토리가 나올 수도 있다. 음악이 있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있으며 이들이 엮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다. 왜 안되겠는가.

 

다만 <남자의 자격>이라는 틀 안에 있을 때 이 ‘합창단’이라는 소재는 자칫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합창단이 <남자의 자격>을 거꾸로 지워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합창단을 할 때는 반짝 관심을 끌 수 있겠지만, 그 미션이 끝나버리면 본래의 <남자의 자격>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진다. 소재는 좋지만 조합은 좋지 않다. 이미 시청자들은 <남자의 자격>이 함께 한 2010년도의 하모니를 통해 충분히 감동을 받았다. 그러니 우려먹기보다는 각자의 길을 가게 해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닥터 진>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

 

“그러다가 이 사람에 의해 무고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이오. 그 억울한 죽음을 진의원이 책임질 수 있소?” 성난 민중들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은 진주의 탐관오리 현감을 살리려는 진혁(송승헌)에게 영래(박민영)는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의원은 본디 사람을 가려가며 살리지 않는다”며 진혁은 진주 현감을 살려내고, 영래 역시 그를 도와준다. 하지만 바로 진혁이 살린 진주 현감이 영래의 오빠인 영휘(진이한)를 죽게 만든다.

 

'닥터 진'(사진출처:MBC)

그저 작은 시퀀스에 불과한 이야기 같지만 이 속에는 <닥터 진>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담겨져 있다. 의사라면 마땅히 환자가 누구라도 일단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본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 환자가 히틀러라면? 그래서 죽을 인물이 살아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든다면? 이것은 생명에 대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닥터 진>은 현대에서 조선으로 던져진 천재 신경외과의 진혁을 통해 운명(역사)과 생명 사이에 놓여진 딜레마를 다룬다.

 

“모든 것을 본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장안 최고의 기생 춘홍(이소연)은 진혁이 조선으로 와 행한 기적 같은 의술이 모든 것(아마도 운명 혹은 역사)을 어그러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가 안동김씨 최고의 실세로 임금보다 더한 권세를 누리고 있는 좌상 김병희(김응수)를 살린 일은, 역사에 기록될 대원군이 꿈을 펼치기도 전에 죽음의 위기로 몰리는 이유로 작용한다. 역시 죽을 뻔한 영휘를 살려놓은 일 또한 진주 민란을 더욱 조직적으로 만들게 하고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된다.

 

진혁은 그저 의사로서 눈앞에 상처입고 죽어가는 모든 이들을 환자로서 바라보았던 것뿐이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역사는 뒤틀어지기 시작한다. 죽어야할 운명에 있는 이들이 살아나자 그들은 멀쩡해야 할 이들을 죽음에 몰아넣는다. 운명의 힘과 생명의 의지 사이에 벌어지는 대결. 이것은 단지 의사인 진혁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 아니다. 결국 실패로 끝난 진주민란의 역사를 알고 있는 진혁이 그 민초들을 이끌고 있는 영휘에게 “이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말하자, 영휘는 진혁이 해오던 말을 되돌려준다. “진의원은 병자가 죽을 것이 뻔하다고 손을 놓으시오? 그러니 내게도 저들을 모른 척 하라 하지 마시오.”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진혁에게 진주민란 같은 사건의 결과는 운명처럼 정해진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불나방처럼 역사의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영휘를 막으려 한다. 하지만 진혁은 또한 알고 있다. 자신이 한 죽을 생명을 살려 운명을 바꾸게 될 때 역사도 엄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여기에 진혁이 처한 딜레마가 있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조선말의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이 죽지 않게 할 수 있으면서도), 그 역사를 바꾸는 것이 두렵다.

 

게다가 그는 의사가 아닌가. 의사라는 직업으로 돌아가면 그는 역사와 상관없이 모두를 환자로 바라보며 살려야 하는 것이 그의 본분이다. 그러니 이 지점에서 부딪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죽어야 할 인물을 살리면 그로 인해 역사가 바뀐다. <닥터 진>의 묘미는 바로 이 의학드라마와 사극을 타임리프라는 장치로 연결하면서 생겨나는 아이러니로 인해 진지해진다. 역사를 살릴 것인가, 생명을 살릴 것인가.

 

역사와 의술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페스트 같은 질병 하나는 중세의 역사를 바꾸었다.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의 개발은 지금까지의 역사를 바꿔놓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역사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는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위협받는 질병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때마다 어떤 의사의 손길 하나는 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닥터 진>이 그저 단순한 타임리프를 소재로 흥미로운 장면들(예를 들면 조선시대에 뇌수술을 하는 것 같은)만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이런 역사와 생명에 대한 인식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닥터 진>은 장르적으로도 사극과 의학드라마가 가진 욕망의 부딪침을 잘 살려내고 있다. 사극이란 본디 갈등의 결과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드라마다. 그래서 이 현대극보다 극성이 강한 장르는 어찌 보면 죽음이라는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데 의학드라마는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것이 그 욕망이다. 따라서 이 두 장르의 욕망이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기묘한 풍경은 <닥터 진>만의 독특한 매력이기도 하다.

 

<닥터 진>은 사극인가 현대극인가. 이런 질문은 이제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닌 시대에 접어들었다. 사극이 반드시 역사의 틀 안에 머물던 과거는 이미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사극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그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닥터 진>은 그 어떤 사극보다 진지한 역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와 생명의 의지 사이의 대결. 그저 박제처럼 정해져 있다 여겨졌던 역사가 사실은 무수한 생명들의 의지로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결과물이라는 인식만으로도 <닥터 진>의 사극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여겨진다.

<1박>에서 <나가수>까지, 시즌2 무엇이 문제일까

 

<1박2일>은 주말예능의 최강자로 군림해오다 시즌2를 시작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한때 가요계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파장을 일으켰던 <나는 가수다>도 시즌2에서는 점점 잊혀져가는 예능이 되어가고 있다. <청춘불패>는 시즌1에서 농촌과 아이돌을 엮어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즌2에서는 그다지 존재감 없는 예능이 되었다. <탑밴드> 역시 시즌1에서는 시청률은 낮았지만 호평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시즌2는 시청률도 더 떨어졌고 평가도 좋지 않은 프로그램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엇이 시즌2를 선언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

 

'1박2일'(사진출처:KBS)

본래 시즌2는 시즌1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즌2가 기획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즌1에서 만들어진 기대감이 크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시즌2는 보통 신생예능보다 훨씬 더 높은 기대치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다지 별로 다르지 않은 시즌2를 접하게 되면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게 된다. 또 그렇다고 너무 색다른 시즌2를 했다가는 시즌1과의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전혀 다른 프로그램이 되어버린다. 한 마디로 시즌2는 그 변화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1박2일> 시즌2의 경우 시즌1과 그다지 차별성이 없는 형식을 반복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반면 <나는 가수다>는 시즌2에서 생방송 경연이라는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시즌1이 갖고 있던 음악의 질까지 생방송이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어려워졌다. 결국 <나는 가수다>는 생방송을 접고 시즌1으로 회귀하는 중이다. 하지만 시즌1과 차별화되지 않는 현재 방식의 회귀는 대중들의 관심 자체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청춘불패>는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변하고,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은 시즌2로 인해 추락을 경험했다. 즉 프로그램의 의미인 시골이라는 공간을 게임의 장으로 변질시킨 것이 패인이 되었다. <탑밴드>는 시청률을 올리겠다며 ‘악마의 편집’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밴드 음악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시즌2를 하면서 대거 바뀌게 되는 출연자들은 시청자들이 이탈하는 또 다른 이유다. 한 명 정도가 바뀌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프로그램의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한꺼번에 여러 명이 바뀌면 지금껏 만들어져 온 출연자들 사이의 관계가 전부 바뀌게 된다. 캐릭터가 관계에 의지한다고 볼 때, 완전히 달라진 관계는 기존 자리 잡았던 캐릭터마저 흔들리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1박2일>의 이수근과 김종민은 대표적인 사례다. 강호동도 없고 이승기도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경험이 많은 이수근은 <1박2일>을 전면에서 끌고 가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되었다. 하지만 이수근의 본래 역할은 프로그램의 빈 자리를 채우면서 의외의 웃음을 주는 것이지 진행 자체는 아니다. 이것은 김종민도 마찬가지다. 김종민은 누군가와의 관계로 섰을 때 큰 웃음을 주지만, 단독으로 섰을 때는 그저 불안한 캐릭터가 된다. 김종민이 ‘김선배’라는 캐릭터로 자리하는 <1박2일>은 그래서 때론 안정감이 없게 여겨질 때가 많다.

 

한편 <나는 가수다>나 <톱밴드>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게 사실상 출연자들이다. 누가 출연하느냐에 따라 시즌2로서의 차별성이 그 자체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2>는 시즌1과의 연계를 위해서 기존 가수들 중 6명을 시즌2에 합류시켰고 여기에 새 가수들 6명을 더해 12명이 경연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캐스팅이 시즌2만의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데 실패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카스텐의 등장과 반향은 거꾸로 이 시즌2의 초기 캐스팅의 문제를 드러낸다. 대중들은 좀 더 파격적인 가수들의 등장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탑밴드>는 출연 밴드들만 보면 이게 오디션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대감을 만들어내는 라인업이 이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유명 밴드들의 출연은 효과적이지 못한 방송으로 인해 오히려 주목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많은 유명 밴드들 중에서 그나마 인지도가 확실히 생긴 밴드는 장미여관 정도. 피아나 내 귀에 도청장치, 데이브레이크, 몽니, 트랜스픽션... 그 어떤 밴드 하나라도 거의 한 회분의 분량을 만들만큼의 스토리와 음악을 가진 밴드들이지만 결국 오디션이라는 한 무대에 변별력 없이 서게 됨으로써 안타깝게도 하향 평준화된 인상을 만들었다.

 

물론 시즌2가 전부 실패한 것만은 아니다. 알다시피 <불후의 명곡2>나 <정글의 법칙2>, 그리고 최근 19금 예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SNL코리아2> 같은 경우는 시즌2의 성공사례다. 하지만 여기서 <정글의 법칙2>나 <불후의 명곡2>는 예외적인 경우다. <정글의 법칙2>는 형식상 시즌제를 해야만 가능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여타의 시즌 선택 프로그램과는 성격이 다르다. 또 <불후의 명곡2> 역시 본래 계획에 없던 것이 오디션 열풍으로 생겨난 것으로서 시즌2라 얘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시즌1과의 연관성도 그다지 많지 않은 거의 신생 예능의 인상이 짙다.

 

그런 점에서 보면 <SNL코리아2>의 성공은 시즌제의 모범답안처럼 보인다. 시즌1이 보여줬던 신랄한 시사 정치 풍자 코미디에 시즌2는 19금이라는 새로운 동력을 얹었다. 시사 정치 풍자의 강도도 시즌1보다 훨씬 더 강해져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는 상태. 무엇보다 <SNL>이 본래 정치와 섹스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시즌2는 <SNL코리아>의 진정한 완성이라고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이런 시즌1과의 연계성과 시즌2만의 확실한 차별성이 <SNL코리아2>의 성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SNL코리아2>의 성공은 케이블 채널이라는 특정 성향을 감안해보면 일반적인 시즌2의 성공사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시즌2는 <1박2일>이나 <나는 가수다> 같은 주말예능의 강자들조차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까지 시즌제에 대한 인식이 시청자들이나 제작진들 모두에게 낯설다는 것도 한 이유고, 시즌2 선언이 자발적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이 어려워지는 시기에 어쩔 수 없이 이뤄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시즌1과의 연계성과 시즌2만의 차별성 사이에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시즌2는 그래도 계속 생겨난다. <남자의 자격>이 사실상 시즌2 성격의 변화를 준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로그램의 힘이 빠지자 새로운 멤버를 넣어 새로운 동력을 찾아보려는 것이지만, 이런 식의 시즌2 기획은 안타깝게도 성공가능성이 희박하다. 수많은 시즌2에 무릎 꿇은 예능 프로그램이 그 많은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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