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멜로의 가벼움과 사극의 진지함은 어떻게 만났을까

청춘 사극. 이 조어는 잘 어울리는 듯하지만, '청춘'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하이틴 로맨스적인 가벼움과 사극이 가진 어딘지 진중한 분위기는 부딪치는 점이 많다. 이 조어가 그다지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최근 사극이 가진 특유의 퓨전 가능성 덕분일 뿐이다. 즉 이 '청춘 사극'은 결코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런데 '성균관 스캔들'을 단 한 마디로 말하라면 주저 없이 '청춘 사극'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어려운 조합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남장여자'라는 열쇠다. 이미 '커피 프린스 1호점'이라는 청춘 멜로에서 '남장여자'라는 콘셉트가 가진 힘을 우리는 이미 발견했다. 꽃미남들의 세계로 '남장여자'가 들어감으로 해서 벌어질 수 있는 우정과 사랑 사이의 소용돌이는 청춘 멜로로서의 한 극점을 그려냈다. '성균관 스캔들'이 이 청춘 멜로의 '남장여자'를 조선시대 성균관으로 끌고 온 의도는 명백하다. 사극이라는 공간에서 청춘 멜로를 극대화 해보겠다는 것. 꽃선비들이 넘쳐나는 그 곳에서 같은 기숙사 방을 써가면서. 그것도 옷깃만 스쳐도 두근거리는 조선이라는 시대적 정서 속에서라면 더더욱.

그 남장여자라는 마법의 열쇠로 인해 "나 구용하다"라는 말 한 마디로 여성보다 더 예쁜 미모(?)를 가진 그 유쾌한 구용하(송중기) 캐릭터가 탄생했다. 또 '걸오앓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겉은 짐승남이나 속은 수줍은 소년인 문재신(유아인), 그리고 앞뒤 꽉 막힌 선비에서 사랑을 알아가는 이선준(믹키유천)이 탄생했고, 그들이 서로 가슴 졸이며 사랑했던 여인 김윤희(박민영)와의 두근두근 청춘 멜로가 탄생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었다면 '성균관 스캔들'은 그저 사극판 '커피 프린스 1호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성균관 스캔들'은 남장여자라는 열쇠가 가진 또 다른 측면을 포착해낸다. 여자가 남장여자 행세를 해야 꿈이라는 것을 꿀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개혁의 의지를 꺾지 않은 것이다. 비록 남자 행세를 하는 여자로 대변되어 있지만 이 개혁의 그림은 이미 정조(조성하)가 화성천도의 뜻으로 말한 대로 '남녀귀천 없는 세상'이다.

이 주제의식은 김윤희가 금등지사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김윤희에게 배움을 주려 노력했던 그녀의 아버지가 단서로 제공한 퍼즐 위에 쓰여진 글귀 '문(門)'은 성별과 귀천에 따라 닫혀버리는 이 시대의 문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조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찾았던 금등지사가 묻혀진 곳이 성균관에서 반촌으로 난 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 문은 '조선의 가장 천한 이를 향해 열린 곳'이고 '배움이 향하는 곳'이며 '나라가 시작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남장여자의 또 다른 측면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성균관 스캔들'은 청춘 멜로의 가벼움 위에서도 사극에 걸맞는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모든 일을 해결한 잘금4인방이 한 방에서 술을 마시고 한 방에 어우러져 잠을 자는 모습은 그래서 청춘 멜로의 한 장면처럼도 보이지만, 양반(이선준), 중인(구용하), 여성(김윤희), 혁명가(문재신)가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성균관 스캔들'은 말 그대로 '청춘'에 '사극'을 잘 이어붙인 '청춘사극'의 새지평을 열었다.

작가가 너무 많은 말을 하게 될 때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가. 이 질문은 모호하다. 작금의 현실적인 삶이 아름다운 것인가를 묻는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관념적이지만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인가를 묻는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둘 중 어느 질문에 대한 답변일까.

매번 극중인물이 넘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엔딩이 의도하는 바는 명백하다. 삶은 늘 그렇게 우연찮게 넘어지고 다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삶은 지속된다는 것. 인생은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 하지만 매회 누군가가 넘어져야 끝나게 되는 이 ‘꽈당엔딩’은 말 그대로 작위적인 것이다. 그래서 이 엔딩의 의도 역시 50여회를 반복하면서 하나의 강령처럼 느껴진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표현이 그저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귀에 대고 계속 해서 그렇다고 얘기하고 있는 듯한 강박적인 느낌마저 들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게다.

이 강박적인 느낌은 다시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가 하는 질문의 두 가지 의미로 되돌아간다. 즉 ‘인생은 아름다워’는 저 ‘꽈당엔딩’처럼 이 두 의미의 질문을 하나로 엮는다. 현실적인 삶은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표현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래서 배경이 굳이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는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는 제주도에 그것도 펜션이라는 공간으로 설정된 것에서도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물론 작가는 늘 그래왔듯이 어떤 공간 속에서든 그 속에 있는 인물들의 다양한 부대낌을 그려낼 것이지만, 그 복작대는 삶을 마치 포근히 감싸 안는 제주도의 자연이나, 아무래도 보통사람들에게는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펜션이라는 설렘의 공간은 작가의 의지로 제공된 것이다.

이것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병태(김영철)네 가족들에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바깥으로 돌다가 돌아온 시부(최정훈), 병태와 민재(김해숙)의 재혼가족이라는 상황,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결혼을 못하고 있는 병준(김상중)과 병걸(윤다훈), 재혼한 엄마를 둔 지혜(우희진) 그리고 동성애자인 장손 태섭(송창의).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들은 꽤 복잡다단하지만 거기에 작가의 의지로 제공된 두 인물이 있어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든다. 바로 병태와 민재다.

모든 힘겨움을 자신 속으로 숨긴 채, 가족들에게는 늘 웃는 얼굴로 그 어려움을 묵묵히 들어주는 병태나, 보다 능동적으로 가족들의 고통을 껴안고 이해해주는 민재는 판타지에 가깝다. 태섭이 커밍아웃을 할 때, 함께 울어주는 병태와 민재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한 것은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부모 자식 간의 당위의 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김수현 작가가 의지를 갖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그것이 동성애라 해도 그저 가족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런 모습이다. 도대체 가족이 가족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논쟁의 여지가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태섭과 상우(경수)가 성당에서 언약식을 치르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이것 역시 (굳이 성당에서 하려는 것) 작가의 의지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여기에는 가족 바깥으로 나와 성당이라는 현실적인 실체와 부딪친다는 점이 다르다. 가족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을 공적으로 승인하는 장면을 아직까지 우리네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것은 성당이라는 더 복잡한 실체들과 맞물려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김수현 작가가 보여준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나 사회에 대한 열린 태도는 비판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본인의 의지를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담아내고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말하게 하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강변한다고 해서 인생을 아름답다고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누군가의 주장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색을 통해 의지적인 세계를 화려한 대사를 통해 엮어놓기보다는, 그것이 조금 거칠더라도 그저 담담하고도 리얼하게 상황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오히려 그 아름다움을 눈치 채게 할 수는 없었을까. 작품이건 작품 외적이건 김수현 작가가 좀 더 말을 아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감으로 돌아온 권상우, 그에게 남은 숙제

권상우가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권상우의 이미지가 달라졌다. '대물'에서 그가 연기하는 하도야라는 돈키호테 검사 덕분이다. 사실 권상우가 검사 역할로 나온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많이 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하기만 하면 사사건건 구설수가 됐던 데다가 지난 6월에는 뺑소니 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러니 드라마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아무리 재미있어도 권상우 때문에 드라마를 안보겠다는 말이 나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권상우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제작발표회에서 "매를 맞든 칭찬을 듣든 작품으로 보여드리는 게 첫 번째인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자숙해야 될 시기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이 부담이 됐을 터였다. 게다가 연기만 하면 연일 터져 나오는 발음이나 연기력 논란은 자칫 이 배수진에 선 연기자를 벼랑으로 밀어낼 위험까지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역시 캐릭터가 가진 힘이었다. 많은 이들이 '대물'이란 드라마를 여성 대통령 즉 서혜림(고현정)이 원톱으로 나오는 스토리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하도야라는 돈키호테 검사가 나란히 서는 스토리였다는 것이다. 물론 하도야는 서혜림의 뒤에 서 있지만, 결코 서혜림에 못지않은 역할이다. '대물'은 결국 둘이었던 셈이다.

'대물'이 그리는 세계는 이분화되어 있다. 조배호(박근형)로 대변되는 썩은 정치인들과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서혜림과 하도야로 대변되는 돈키호테들이다. 서혜림이 정치판에서 당의 거수기와 앵무새로 이용되는 것에 당당히 반기를 드는 것처럼, 하도야는 권력자라면 그저 고개부터 숙이는 검찰에 무모하게도 맞서는 인물이다. 그러니 '대물'의 힘은 서혜림이 싸우는 정치판 이야기와, 하도야가 싸우는 검찰 이야기의 두 바퀴로 굴러간다.

서혜림이 감성적으로 눈물에 호소하면서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처럼, 하도야도 돈 없고 백 없는 서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하도야가 신상명세 몇 개로 조배호를 몇 시간 동안 앉혀놓는 장면은 비록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아무도 대면하지 못하는 조배호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대거리를 하는 장면이 주는 속시원함은 또 어떻고.

서민들의 속내를 대변해주는 하도야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늘 비호감으로 몰려왔던 권상우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분명하다. 권상우의 이미지 속에 남아있던 조금은 건들대는 듯한 모습은 하도야 속으로 들어와 정치권력 앞에서 보여지면서 오히려 당당함으로 전환된다. 가벼운 듯한 이미지는 서민적인 검사 이미지로 바뀌었고, 거친 이미지는 정의감으로 표현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일생일대의 기회에 권상우가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대중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겠지만 하도야 속에서 권상우의 연기는 피어나고 있다. 그가 어린아이처럼 굴 때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고, 뒤에서 힘겨운 서혜림의 어깨를 두드려줄 때 든든하게 느껴지게 만들며, 자신의 정의가 거짓에 짓밟히고는 뚝뚝 흘리는 눈물에 공감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연기자의 본분이라면 그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대물'이 하도야라는 캐릭터를 통해 권상우에게 부여한 힘은 막대하다. 그리고 그에게 대중들이 부여한 역할 또한 분명하다. 하도야라는 캐릭터의 입으로 서민들의 답답한 속을 확 풀어주는 그런 연기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물론 권상우가 선택한 것이 어떤 결과로 끝맺음을 할 지는 여전히 속단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노력하는 모습이 연기 속에 묻어난다면 대중들의 마음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상우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

'슈퍼스타K2', 허각의 사회학

'슈퍼스타K2'가 제작진이 만들고 시청자가 보는 일방향적 프로그램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을 갖고 사회를 읽어낸다는 것은 자칫 아전인수 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이른바 문자 투표 방식을 오디션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최종 선택에서 허각과 존박이 후보자로 나서고 각자 자신의 매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유세(?)하며, 그걸 보고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투표함으로써 그 당선자(?)가 가려진다는 점에서 '슈퍼스타K2'는 하나의 투표시스템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리고 투표란 누가 당선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당선자를 통해 민심을 엿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최종우승자 허각은 어떤 민심을 말해주는 것일까.

모두들 허각이 '슈퍼스타K2'의 최종우승자가 된 것을 하나의 드라마라고 말한다. 맞다. '슈퍼스타K2'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허각이라는 인물에 대중들이 저마다의 판타지를 투영하고 또 그 성공을 바랐기 때문에 그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즉 이것은 현실에서 잘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바라는 판타지의 세계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허각이라는 가난해 학업도 많이 받지 못했고 또 막노동으로 전전했던 한 청년의 현실은, '슈퍼스타K2'라는 프레임 속으로 들어와 그래도 멈추지 않았던 노래에 대한 열정과 실력으로 우승자가 되는 판타지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드라마 속 판타지에 빠져들게 되는 것은 그것이 현실에 부재한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각이라는 인물은 많은 대중들에게는 현실적인 결핍을 끊임없이 환기시켜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승자가 된 연후에 허각을 다시 돌아보면 그처럼 이 사회의 철저히 소외된 면면들을 대변하는 인물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는 무엇보다 가난했고, 그래서 중졸이 그의 교육의 전부였다. 세 살 때 어머니와 헤어진 후 홀아버지와 쌍둥이형과 살아왔다. 노래 실력은 출중했지만 그를 세워주는 무대는 없었다. 그의 스펙, 즉 학력이나 집안, 심지어 외모까지를 이유로 각박한 현실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슈퍼스타K2'라는 판타지 공간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이 공간은 (물론 이것도 어찌 보면 하나의 이미지겠지만) 현실에는 없는 '실력 중심'으로 기회를 주는 곳이었다. 모든 스펙을 지워버리고 세워지는 공정한 무대라고 말해지지만 허각이 11명의 후보자들 속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가 실력만으로 최종 우승을 할 거라 믿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것은 본인도 그랬다. 허각은 스스로 "자신은 다른 사람들을 빛내주기 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그래서 최종 11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맏형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존박과 이른바 '슈퍼스타 게이'로 불릴 정도로, 그의 인간적인 면모는 경쟁이 아닌 다른 가치를 통해 대중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슈퍼스타K2'는 기본적으로 현실의 경쟁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바탕 그림으로 깔고 그 위에 실력으로 공정하게 뽑혀지는 판타지를 그려 넣는다. 이 기본적인 스토리와, 허각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엮어보면 정확히 답이 나온다. 허각은 애초부터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다. 경쟁 자체를 즐기는 듯 보인 강승윤이 떨어지던 날 허각은 경쟁 바깥에 있었고, 처음에는 바닥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하다가 점점 발랄하게 가요계에 적응해가는 장재인이 떨어지던 날 허각은 변함없이 억압된 감정을 분출해내듯 '하늘을 달렸다'. 그리고 어딘지 엄친아적인 세련됨을 뽐내며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 받던 존 박이 떨어지고 최종우승자가 되던 날, 그는 폭발적인 목소리로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의 마음까지 얻어갔다.

허각을 통해 비춰진 우리 사회의 모습은 가난하고 학력에 연연하며 그럼에도 경쟁적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 경쟁을 뚫고 진입해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득권층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어두운 우리 현실의 자화상들이 드리워져 있다. 허각은 그렇게 슈퍼스타K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가 슈퍼스타가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슈퍼스타K2'라는 판타지 속에서의 슈퍼스타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기존 가요계라는 현실 속에서도 슈퍼스타가 된다면 어쩌면 많은 지지자들에게 작은 희망을 줄 지도 모른다. 지금 그의 어깨에는 현 대중들이 희구하는 꿈이 함께 걸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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