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구 앵커의 '뉴스데스크' 뭐가 달랐나

"5년8개월만에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다는 자세로 소통과 공감을 뉴스의 기본축으로 삼겠다"는 최일구 앵커의 말대로 40년 만에 8시부터 시작하는 주말 '뉴스데스크'는 확실히 달랐다.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뉴스가 예능 프로그램만큼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 최일구 앵커의 '뉴스데스크'는 뉴스의 선정에서부터 보도 순서, 보도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뉴스의 진행 방식까지 기존 뉴스의 모든 틀에 변화를 주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뉴스 프로그램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첫 소식의 변화다. 개편된 주말 '뉴스데스크' 첫날의 첫 소식은 안개 소식으로 시작했다. 때 아닌 전국을 뒤덮은 안개 소식을 전하며 최일구 앵커는 "말 그대로 안개전국인데요"하고 운을 떼고는, 다음 청목회 로비 의혹에 대한 뉴스를 전하면서 "정치권도 안개에 휩싸였습니다"하고 '안개전국'과 '안개정국'을 이어 붙였다. 재치 있는 멘트로 딱딱해질 수 있는 정치권 소식을 시청자들에게 좀 더 부드럽게 접근시킨 것이다.

이튿날 첫 소식은 박지성 선수의 한 경기 두 골이었다. 이 뉴스를 전하면서도 최일구 앵커는 "한 경기 두 골을 기록하고 상대 울버 햄턴을 완전히 울보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해 특유의 재치 있는 멘트를 선보였다. 최일구 앵커가 "다른 중요한 뉴스도 많지만 오늘 휴일이고 해서 산소탱크의 골 소식을 톱으로 정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주말 밤의 '뉴스데스크'는 늘 뉴스의 첫 소식이라면 등장하던 정치권 뉴스의 범주를 벗어난다. 즉 시청자가 원하고 듣고 싶은 뉴스를 먼저 앞에서 보여주고 정치권 소식은 뒤쪽으로 빼낸 것. 첫날 이명박 대통령이 G20 준비를 둘러본 소식은 뉴스 시작 후 23분 후에 전해졌고, 둘째 날 정치권 소식 역시 20여분이 지난 후에 전해졌다.

보도 방식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보였다. 그것은 현장 깊숙이 직접 기자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담아내려는 노력이다. 첫날 최일구 앵커는 전라남도 무안까지 달려가 낙지 어민들과 실제로 낙지를 잡아보고 그네들의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듣는 자리를 만들었다. 어민과 똑같은 복장으로 앵커가 뻘에서 뒹구는 모습은 '뉴스데스크'의 한층 낮춘 보도 자세를 돋보이게 했다. "한 시간 동안 40번을 시도한 끝에야 겨우 낙지 한 마리를 잡는데 성공했다"는 최일구 앵커의 말은 뉴스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만한 노력을 보이겠다는 의지로 읽혀졌다. 한편 광부들의 삶을 취재하기 위해 지하 550미터 막장으로 들어간 기자는 얼굴에 검댕을 묻혀가며 그들과 일해보고는 "저처럼 살찐 사람이 없다는 말 이제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뉴스라고 하더라도 땀이 배어있는 뉴스가 가진 진정성에 천착하는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최일구 앵커의 진행스타일이다. 그는 기존 앵커들이 혼자 앞에서 진행하는 형식이 아니라 기자들과 함께 뉴스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KTX를 취재하는 내용에서 그는 "참 빠르긴 빠르죠. 주말 뉴스부 박승진 기자를 KTX에 태워서 취재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박기자는 이 KTX 때문에 지역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라고 말했고, 야생동물의 생존에 대한 소식에서도 "등산 중에 어린 야생 동물을 발견하면 측은지심으로 데려다 키우고 싶을 때도 있는데요 그러나 환경전문 허무호 기자는 아무리 선의라 해도 데려다가 키우면 야생동물의 생존이 허무해진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즉 앵커의 목소리가 아니라 기자들의 목소리를 더 높여주는 진행스타일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불필요해 보이는 멘트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다는 얘기를 하면서 "사장님한테 얘기해서 뉴스시간 좀 늘려달라고 해야겠습니다"라고 말한다거나, 기상캐스터에게 "어제보다는 덜 떨립니까? 새내기 캐스터가 이틀만에 적응하는 거 보니까 방송 소질이 꽤 있는 거 같습니다."하고 말하는 내용은 굳이 없어도 되는 멘트들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스럽고 가족적인 분위기가 전체 뉴스 프로그램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뉴스는 예능이 아니고 예능이어서도 안 된다. 정확한 정보를 신뢰감 있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보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실시간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작금에 이르러 정보의 정확성이나 신뢰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지상파의 뉴스 프로그램이 뉴스의 일원화된 창구로서 기능하던 시대는 지나갔기 때문이다. 따라서 뉴스는 어떤 식으로든 좀 더 지금의 시청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다가가야 한다. 지금 최일구 앵커의 '뉴스데스크'는 이 변화된 뉴스의 환경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임창정표 로맨틱 코미디, '불량남녀'

‘불량남녀’에서 임창정은 여타의 작품에서 늘 그래왔듯이 어딘지 궁지에 몰리는 사내다. 강력계 형사로 칼과 주먹이 난무하는 폭력의 현장에서도 굳건히 살아가지만, 30분마다 울려대는 빚 독촉 벨소리에 신경 쇠약 직전에 놓인다. 신용사회에서 신용불량자들이 겪는 현실적인 고충은 실로 묵직한 것이지만, 이런 아픔이 풍자가 뒤섞인 코미디로 전화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임창정의 공이다. 그는 그저 조금 맥 빠진 얼굴로 서 있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도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불량남녀’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적인 메시지에 로맨틱 코미디가 엮여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피도 눈물도 없는 돈에 대한 집착은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있고, 그 시스템 위에 김무령(엄지원)은 빚 독촉하는 카드사 채권팀 사원으로 살아간다. 김무령은 살아가기 위해 독하게 신용불량자 방극현(임창정)을 달달 볶아댄다. 그래서 이 시스템 위에서는 두 남녀가 불량한 존재들이 된다. 하나는 신용이 불량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성이 불량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두 불량한 존재들이 서로 실체로서 마주할 때이다. 전화상으로는 마치 기계와 얘기하듯 극한 말들이 오고가지만, 서로 눈을 마주치고 서 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에는 자신이 칼침 같은 독한 말을 던지는 상대가 인간으로 버젓이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영화 속의 두 불량한 남녀가 시스템 속에서 서로의 실체를 모른 채 돈을 매개로 칼침 같은 말을 던지다가, 차츰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멜로의 과정이면서도 시스템을 고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30분마다 독촉 전화로 지긋지긋해진 전화기는 이제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면서 그 벨소리를 기다리게 되는 전화기로 바뀐다. 사라진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 방극현이라는 강력계 형사에게는 범죄자들의 격투보다 더 힘겨운 일이 된다. 전화기에 대한 달라진 방극현의 태도는 이 영화가 가진 미디어에 대한 풍자까지를 담아낸다. 편리해진 통신수단 위로 날아드는 무수히 많아진 스팸들이 우리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은 아마도 거기에 인간적인 마음이 거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과 통신수단이 매개하며 발생하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방극현과 김무령의 만남에서부터 사랑의 결실이 이루어지는 클라이맥스에 이르기까지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게 전개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임창정만이 가진 독특한 매력 덕분이다. 어딘지 B급 같지만 그래도 잡아당기는 힘이 있고, 그래서 그다지 큰 기대 없이 보게 된 후에는 의외로 꽤 재미있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불량남녀’는 그 임창정만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 영화다.

극중에서 마지막 프로포즈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달려온 한 여고생은 "그런데 남자가 좀 더 잘생겼으면 좋았을 걸"하고 말한다. 바로 이 장면은 '불량남녀'라는 영화와 임창정이라는 아이콘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정확히 설명해준다. 사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임창정은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정도의 외모를 갖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불량남녀' 같은 어딘지 소외된 이들의 사랑이야기에 임창정 만큼 어울리는 인물도 없다. 그저 바라보면 어딘지 '불량(?)'해 보이지만 보면 볼수록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불량남녀'는 그런 임창정이기에 가능한 영화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당신에게 마지막 기회란?

중년의 나이에 '마지막 기회'라고 한다면 무엇이 떠오를까. 혹자는 회사생활을 떠올릴 것이다. 사오정에 오륙도인 세상 아닌가.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에서 본래 피아노 작곡가였지만 광고음악으로 살아가고 있는 하비(더스틴 호프만)가 그렇다. 그는 달라지고 있는 작곡 환경과 치고 올라오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회사생활의 거의 끝자락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이것은 회사생활만이 아니다. 이혼한 아내는 꽤 능력 있는 남편과 재혼했고, 자신의 친딸은 새 아빠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과 소원해졌다. 딸의 결혼식을 위해 런던으로 떠나는 하비에게 사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그에게 '마지막 기회'라고 통보한다.

본인은 열심히 살아왔지만 일에서도 가족에게도 점차 밀려나 있는 하비는 점점 절망의 끝에 몰리게 된다. 자신의 딸의 결혼식이면서도 철저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 하비는 결국 회사로부터 해고통보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그 끝자락에서 하비는 '새로운 기회'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바로 하비 앞에 나타난 여인 케이트(엠마 톰슨)이다. 누군가에게는 설렘의 공간이 될 공항에서 설문조사원으로 일하며 노처녀로 나이 들어버린 그녀는 철저히 들러리의 삶을 살아온다. 뭐 하나 기대할 것 없고, 또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아픔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그 평범한 삶의 껍질을 깨고 나가지 못한다. 그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하비라는 남자가 다가온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하비와 케이트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을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그려낸다. 초반부 하비와 케이트의 삶이 병치되며 엇갈려 나가다가, 공항의 한 바에서 절망의 한 자락씩을 쥐고 마주앉게 되고, 또 나란히 걸어가다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위로해주고 결국 사랑하게 되는 이 과정은 단 며칠 간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중년 멜로가 청춘들의 그것처럼 불꽃이 튀고 격정적일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의 대사 하나하나 인물들의 행동과 연기 하나하나는 지독히도 공감이 갈 정도로 섬세하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것은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이라는 연기파 배우들의 내면 연기가 그저 얼굴만 쳐다봐도 느껴질 정도로 그 심리상태를 제대로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딸에게 결혼식장에 새 아빠와 들어가겠다고 통보를 받는 더스틴 호프만의 무심한 듯한 얼굴 속에는 깊은 고통을 견뎌내는 인고와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동시에 들어가 있다. 더스틴 호프만의 연기는 케이트에게 하비가 처음 말을 걸 때, 그 농담 속에 누군가와 지독히도 대화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끼게 할 정도로 깊어졌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잡은 작은 희망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그 안간힘은 중년들이라면 절절히 공감할만한 대목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와서 '마지막 기회'는 그래서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일에 있어서의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있어서의 '마지막 기회', 즉 케이트와의 사랑을 의미하게 되는 것. 'Last Chance Harvey'라는 이 작품의 원제는 바로 이 중년에 맞닥뜨린 두 가지 종류의 기회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의 백미는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주인공이 되어본 적 없고 들러리로서만 살아온 케이트가 저 멀리 도망칠 때, 붙잡기 보다는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기다리는 하비의 모습은 그 어떤 격정적인 청춘멜로의 클라이맥스 이상의 감동을 준다. 중년들이라면 이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사랑의 의미를 아마도 깊이 공감할 것이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는 이 가을 중년들의 스산해진 몸와 마음을 한껏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영화다.

'도망자', 초반 부진을 털어낼 것인가

'도망자'는 실험작인가, 실패작인가. 그 어떤 것이라고 해도 '도망자'로서는 예상 밖일 것이다.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한 작품이 실험작이 될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실패작이어서는 더더욱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어설픈 실험작이자 또 하나의 블록버스터 실패작이 되어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

제일 먼저 지목되어야 할 것은 속도다. 이 드라마는 속도 조절에서 실패했다. 빠른 속도감은 최근 드라마들의 한 경향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달려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특히 '도망자' 같은 액션 스릴러라면 더더욱 그렇다. 액션은 흔히 보여지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읽혀지는 것이다. 즉 액션을 할 때 왜 저들이 저런 액션을 하는 지가 읽혀져야 비로소 그 동작들이 보여지게 된다.

'도망자'는 달려 나갈 줄은 알았지만 정작 왜 달려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제작자들은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일본, 중국, 동남아와 서울을 무선 통신의 속도로 끊어내며 휙휙 달려 나가는 이 속도감에 대중들이 열광할 것이라고. 하지만 맥락 없는 행동이 이해할 수 없듯이 '도망자'의 시간과 공간을 휙휙 뛰어넘는 화면 연출과 마치 유명 관광지를 배경으로 찍기로 약속이나 된 듯이 스토리와 그다지 상관없는 공간에서 '달리기'를 하는 주인공들은 그저 정신없는 드라마로 '도망자'를 인식시켰다.

게다가 '도망자'는 꽤 많은 인물들을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작가나 연출자라면 물론 한쪽 벽에 떡하니 붙여놓은 인물 관계도처럼 그들의 행동들이 일목요연하고 합이 딱딱 들어맞는 것으로 보였겠지만, 인물 관계도는 커녕 인물 하나도 이해하기 힘든 시청자들에게 그것은 그저 인물의 인해전술처럼 보였다. 영화라면 좀 더 적극적으로 관객들이 그 퍼즐들을 맞추려 노력했겠지만 이건 안타깝게도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맥주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누워 보기 마련인 드라마다. 왜 시청자가 고통스럽게 그 적은 단서로만 제시되는 인물군들을 하나하나 꿰어 맞추는 수고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버튼 하나 눌러 채널을 돌리면 되는 것을.

물론 '아이리스' 같은 불친절한 드라마도 호평을 받는다. 하지만 '도망자'와 '아이리스'의 근본적인 차이는 인물에 대한 몰입도다. '아이리스'는 꽤 복잡하고 빠른 전개에 연출 스타일도 친절한 것이 아니었지만, 캐릭터가 분명했다. 우리는 이병헌이나 김태희의 감정이 배어있는 멋진 액션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전체 퍼즐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망자'는 다르다. 지우(비)에 초점을 맞추기에 그는 너무 가볍게만 느껴졌고, 진이(이나영)에 초점을 맞추기에 그녀는 성격이 너무 복잡했다.

게다가 겉으로 한없이 쿨한 것을 지상과제로 내세우는 듯한 이 캐릭터들은 좀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속내를 제대로 모르니 울어도 감정전달이 잘 되지 않게 된다. 왜 갑자기 지우와 진이가 서로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 건지 우리는 아직도 잘 알 수 없다. 그래서 감정전달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인물들은 마치 작가가 놓는 장기판의 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마치 인형처럼 조종되는 듯한 인물들이 결국 시청자와 함께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 드라마는 '도망자'를 그리면서 근본적으로 쫓기는 자나 쫓는 자 모두 심리적으로 너무 태평하다. 아무리 붙잡혀 있어도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 이것은 스릴러와 코미디가 균형 없이 엮였을 때 생겨나는 결과다. 긴장감을 주어야 하는 스릴러는 내면의 절실함을 담아내야 하고 코미디는 간간히 그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코미디가 전편에 깔리다 보니 아예 스릴러의 긴박감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추노'에서는 이 긴박감과 코미디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작품의 코미디가 해학으로서 사회 비판적인 날카로움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천지호(성동일) 같은 칼날 같으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캐릭터는 그래서 창조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망자'의 코미디는 말장난에 가깝다. 물론 진지한 대사도 넘쳐나지만, 이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게 아니라, 어떤 장면에서는 진지하게 어떤 장면에서는 그저 웃기기 위한 말장난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긴장감도 떨어지고 웃음 또한 그 효과가 나오기 어렵다.

한두 명의 이야기에 집중시켜 끌고 가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끌고 가는 것은 천성일 작가의 스타일이다. '추노'는 그 정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추노'와 '도망자'의 많은 인물군들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서가 존재한다. 즉 '추노'의 많은 인물들은 다양한 당대의 민초들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그들에 대한 공평한 조명에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도망자'의 많은 인물들은 민초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적으로 정의의 편에 선 인물이라 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그저 돈을 쫓는 인물처럼 보여진다. 그러니 정서적인 공감이 일어날 리가 만무다.

다행스러운 것은 초반 정신없이 외국을 넘나들며 달리고 달리던 드라마가 9회를 넘기면서 국내로 돌아와 조금씩 안정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9회부터 인물들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각자 처한 입장들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러자 액션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해외촬영이 차지했던 8회분의 분량이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아예 차라리 9회서부터 시작했다면 차근차근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국경을 뛰어넘는 배경과 언어는 실험적이라 할 만하지만, '도망자' 같은 거대 프로젝트가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고 실험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왜 그랬을까. 근래 보기 드문 드라마계의 기대주들인 곽정환 감독과 천성일 작가는 왜 과거 연전연패했던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의 전철을 밟았던 것일까. 마치 시즌2를 보는 것 같은 9회분 이후의 분량에서나마 이들이 '추노'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함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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