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가족드라마로의 회귀, 주말드라마 전성시대를 만들다

지난주 주간 시청률표를 들여다보면, 20위권에 포진된 주중드라마는 이른바 대작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월화의 ‘선덕여왕’과 수목의 ‘아이리스’와 일일드라마인 ‘다함께 차차차’, ‘밥줘’, 이렇게 네 편이다.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주중에 강세를 갖고 있는 일일드라마를 빼놓고 보면 주중 심야드라마의 대작 쏠림현상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반면 주말드라마를 보면 20위권에 들어있는 드라마들은 ‘수상한 삼형제’, ‘천만번 사랑해’, ‘그대 웃어요’, ‘보석비빔밥’, 이렇게 네 편이나 된다. 주말드라마 경쟁에 뛰어들어 있는 작품들은 이들 네 편과 함께 ‘열혈 장사꾼’과 ‘인연만들기’까지 합하면 무려 여섯 편이나 된다. 이렇게 된 것은 저녁 시간대와 심야시간대에 한 편씩 방송3사가 경쟁을 벌이게 되면서부터이다. 물론 과거에도 주말드라마는 비슷한 패턴으로 방송3사가 경쟁을 벌였지만 작금의 상황은 그 경쟁이 더 치열해진 양상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상황을 가져온 것일까.

그 이유는 대작드라마 이외에 시청률을 담보하는 형식으로서 가족드라마가 어떤 대안처럼 제시되어 있고, 그것이 주말 시간대와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주말드라마 시장은 전통적으로 가족드라마 시장이었다. 따라서 현재 주간시청률 20위권에 들어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거의 모두 가족드라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니시리즈 성격이 강한 ‘열혈 장사꾼’이나, 가족드라마 속의 멜로보다는 멜로드라마 속의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인연만들기’가 순위에 들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 원인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드라마가 하나의 대안처럼 된 것은 그 경제성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 대작드라마가 갖는 스펙터클은 그만큼 제작비의 투여를 요구하지만, 가족드라마는 스펙터클보다는 인물들의 갈등 같은 관계로 끌어가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시청률을 끄집어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이 가능성을 극대화해 보여준 사례가 ‘찬란한 유산’이다. 이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는 주말드라마 시장에서 가족드라마의 저비용 고효율을 실증해 보여주었다.

‘찬란한 유산’의 성공으로 주말 가족드라마의 틀도 약간은 변형되었다. 물론 과거처럼 전통적인 방식의 가족드라마들, 가족들의 좌충우돌 결혼 성공기를 다루는 ‘솔약국집 아들들’ 같은 드라마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가족드라마의 편안한 가족이야기 속에 미니시리즈가 갖는 극적 상황을 집어넣는 것이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수상한 삼형제’가 가끔씩 보여주는 불륜의 상황 같은 극적인 연출장면들과, ‘천만번 사랑해’의 대리모라는 자극적 상황이 그것이다.

‘그대 웃어요’는 상대적으로 이 자극적 상황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진 자들이 갖는 허위의식이 불편할 정도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권선징악적인 도덕적 틀 속에서 긍정적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점은 극을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로 유지시켜준다. 이것은 정확히 ‘찬란한 유산’이 갖고 있던 틀과 일치한다. 불편한 관계들이 등장하지만, 그 관계의 해결에 있어서 도덕적 틀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애초에 막장드라마라고 낙인찍혀 시작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건강한 면이 보여지는 의외의 임성한표 드라마, ‘보석비빔밥’도 마찬가지다. 막장의 어른들과, 그들을 내쫓는 자식들이 등장하지만 그 자식들의 건실함과 밝은 모습은 드라마를 막장의 어둠에 빠뜨리지 않는다. 즉 ‘찬란한 유산’이 보여주었던 자극적 설정과 도덕적 틀의 유지를 이들 드라마들이 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말드라마 전성시대는 거꾸로 말해 가족드라마 전성시대의 다른 말이다. 여기에는 현 드라마계에도 드리워진 불황의 그늘을 거꾸로 되짚어볼 수 있는 단초가 있다. 어떤 실험을 하기보다는 좀 더 안정된 구조를 요구하는 불황의 여파로 인해, 가족드라마라는 전통적인 틀이 대안처럼 제시되고 있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우리네 드라마는 현재 대작으로 승부하거나, 가족드라마라는 전통적으로 안정된 틀로 회귀하고 있다. 드라마 생태계의 고른 발전을 위해서는 중간 규모의 덩치에 보편적인 장르면서도 나름의 신선한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절실한 시점이다.

드라마를 역할극으로 만드는 감정이 얹어지지 않는 속도감

시놉시스를 드라마로 만들었나. '천사의 유혹'을 보다보면 그 머리가 핑핑 돌아갈 정도의 속도감에 심지어 이런 생각마저 떠오르게 만든다. 이제 3회 분량을 방영했을 뿐이지만 그 스토리는 보통 드라마들이 흔히 20회 정도의 분량에도 담기 어려운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혹자는 그래서 단 "첫 회를 보고도 16회를 다본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 원수인 신우섭(한진희)의 아들인 신현우(한상진)와 결혼을 한 주아란은 정부인 남주승(김태현)과 불륜의 관계를 남편인 신현우에게 들키게 되고, 바로 그 날 신현우를 태우고 가던 주아란은 말다툼 끝에 차 사고를 당하게 된다. 주아란은 신현우가 혼자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처럼 위장하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신현우가 깨어나려 하자 그를 없애버릴 마음까지 갖게 된다. 결국 뇌사 상태에 빠진 신현우는 한 달 후 주아란의 계략에 의해 별장으로 옮겨져 방치되게 되는데, 거기서 신현우가 도와주었던 고아원에서 간호사가 된 윤재희(홍수현)를 만나게 된다. 결국 윤재희가 신현우를 사랑하게 되고 그를 살려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

'천사의 유혹'은 이렇게 대충의 스토리를 적어보아도 절대로 3회 분량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바로 이 '천사의 유혹'이 전작인 '아내의 유혹' 같은 빠른 스피디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과연 좋기만 할까. 흔히들 '속도감 있는' 드라마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것은 그간 그저 그런 구도를 가지고 질질 끄는 드라마들이 식상해진 결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속도감은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천사의 유혹'이 보여주는 속도감은 '아내의 유혹'에서도 그랬지만 스토리의 억지스러움을 가리는 장치처럼 사용된다. 신우섭의 사업장에서 어이없게도 사고로 죽음을 당하는 주아란의 아버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그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서 복수를 꿈꾸고, 그 화살이 신우섭의 아들인 신현우에게 돌려진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필 정부와의 밀회가 들통 나는 그 날 사고가 나는 것이나, 이제 별장으로 옮겨져 뇌사상태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된 신현우가 마침 그가 도와주었던 윤재희를 만나게 되는 상황도 지나친 우연의 남발이다.

이것은 멜로드라마적인 감정 과잉의 드라마에서 흔히 쓰이는 설정이다. 즉 논리적으로는 그 인과관계를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감정적으로 끌어가는 멜로드라마 속에서는 어느 정도 허용되는 스토리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멜로드라마가 이러한 허용이 가능한 것은 충분히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설득력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천사의 유혹'은 그 속도감으로 인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속도감 있는 '천사의 유혹'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빠른 전개는 시청자로 하여금 인물들에게 쉬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마치 인형 같은 캐릭터들의 역할극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처럼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드라마가 보이는 경향은 과도한 사건에 대한 집착이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건들과 국면의 전환이 없으면 드라마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게 된다. 감정이입이 주는 감정적 힘이 부재한 이 상황을 자극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넘어서려는 경향이다.

'천사의 유혹'이 처한 또 하나의 난제는 이것이 '아내의 유혹' 같은 일일드라마가 아니라 월화드라마라는 점이다. 일일드라마에 대한 기대치와 월화드라마 같은 미니시리즈에 대한 기대치는 확연히 다르다. 미니시리즈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얼개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일드라마는 매일 방영된다는 이점이 있어 그 속도감이 갖는 긴박한 스토리 전개에 대한 반복적인 몰입감을 줄 수 있지만, 월화드라마에 집중된 형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속도감이란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과도할 필요는 없다.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속도감을 요구하는 것은 느슨한 전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속도를 과도하게 부여하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감정이 얹어지지 않는 과도한 속도 위의 드라마에서 인물은 살아나기가 어렵다. '천사의 유혹'이 가지는 지나칠 정도의 속도감의 유혹은 따라서 그만큼의 한계도 갖게 되는 셈이다.

야동에서 방귀까지, 이순재의 변신 어디까지?

도대체 이순재의 변신은 어디까지일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야동을 보다 가족들에게 들키는 연기를 할 때 어찌 이마에 흐르던 식은 땀 같은 당혹감이 없었을까. 그가 말 그대로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면서까지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었을 때, 이른바 '야동순재'는 뻥 터졌고, 그것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거침없이 빵빵 터지는 시트콤으로 만들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으로 다시 돌아온 그. 이번엔 칠순의 나이에도 가슴 설레는 사랑을 하는 이른바 '멜로순재'다. 그는 학교 교감인 김자옥과 과학실에서 밀회를 즐기다, 학생들에게 들킬 위기에 몰리자,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이층 창밖으로 뛰어내리는 액션을 선보이기도 하고, 만나주지 않는 김자옥의 집 앞에서 비를 맞으며 밤새워 기다리며 아픈 몸에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약속장소로 달려가는 정통 멜로를 보여주기도 한다.

틈만 나면 방귀를 북북 뀌어대는 그. 그녀 앞에서 방귀를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참지 못하고 상갓집에서 절을 하며 대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또 한 번 뻥 터졌다. 야동순재가 멜로순재를 거쳐 방귀순재가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만난 지 100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이벤트에서 '네버엔딩 스토리'를 부르다 고음에서 결국 쓰러지고 마는 포복절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내조의 여왕'에서 윤상현이 했던 장면을 패러디한 것. 데뷔 53년 만의 세레나데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아낌없이 무너지는 모습은 보는 이를 빵빵 터지게 만들었다.

이 같은 이순재의 네버엔딩 변신 스토리는 심지어 뭉클하기까지 하다. 칠순의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연기열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기본적으로 웃음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연령과 기존 이미지를 무너뜨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매번 새로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그 모습이 진정한 '연기자'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추석특집극으로 방영되었던 '아버지 당신의 자리'에서 이제 사라질 위기에 몰린 간이역에서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잃은 후 외롭게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아버지 역할을 하는 이순재의 모습은 보는 이를 눈물짓게 만들었다. 한 편에서는 가슴시린 아버지의 상을 보여주고, 다른 한 편에는 아낌없이 무너지며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마치 어린아이 같은 천진한 아버지의 상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것은 그가 가진 연기의 스펙트럼을 가늠하게 만든다.

이순재의 솔선수범 때문일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폼 잡는 연기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기존 이미지를 거꾸로 뒤집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그것이 어찌 말처럼 쉬울까. 폼 나는 분위기를 갖고 있던 정보석이 어리버리 한 정보석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상큼 발랄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황정음이 심지어 떡실신녀가 되는 모습에서 이순재가 솔선해 보여주는 연기자의 길을 엿보게 되는 것은 과장된 것일까. 심지어 감동마저 주는 연기자 이순재의 네버엔딩 변신스토리는 작금의 연기자들에게 어떤 하나의 길을 제시해 보인다. 그것은 바로 연기자의 길이다.

블록버스터 '아이리스', 볼거리만이 아니다

TV가 대형화되고 HDTV 같은 고화질 TV가 대중화되면서 '안방극장'은 말 그대로 실현되는 듯 보였다. 이른바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기획되고 만들어지게 된 것은 물론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그만큼 시장이냐 규모 같은 외연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러한 매체의 진화가 그 발판을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목을 잡은 건, 영상이 아니라 스토리였다. 영상은 정말 영화를 방불케 했지만 스토리는 그 영상이 가진 세련됨을 전혀 따라가주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화려한 영상은 오히려 스토리를 잡아먹는 괴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로비스트'가 그랬고, '태양을 삼켜라'가 그랬다. 드라마가 스토리를 좇아 움직이기보다는 영상만을 따라 움직이는 듯한 이들 드라마가 그 거대한 규모만큼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니 '아이리스'가 기획되는 단계에서부터 어찌 우려와 걱정이 없었을까. 이 또 하나의 초대형 블록버스터 드라마가 또 하나의 볼거리에만 치중하는 그저 그런 영화 흉내내기에 머무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그간 이런 드라마들의 과장된 제스처에 여러 번 속아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리스'가 다루는 소재에서 남북한의 이야기가 들어간다는 점은 그 시의성이 과연 지금에도 적절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혹자들은 이 드라마가 영화 '쉬리'의 드라마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쉬리'의 성공은 그 시대가 아직까지 남북 간의 대결구도에 민감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지점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남북한의 이야기는 조금은 구닥다리의 냄새가 난다. 늘 비슷한 접근들이 이 소재 속에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리스'의 첫방을 통해 느껴지는 점은 최소한 이러한 우려들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물론 볼거리를 위해 헝가리로 달려가지만 단지 그 풍광이나 장면에만 집착하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한 첫 번째 헝가리 시퀀스는 '본 얼티메이텀' 같은 이른바 본 시리즈가 보여주는 세련된 첩보액션을 잘 그려냈고 그 위에 인물의 감정 또한 포착해내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액션에 이어서 촘촘히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세 인물, 즉 김현준(이병헌), 진사우(정준호), 최승희(김태희)의 소소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배치되는 점은 이 드라마가 적어도 대작에 대한 조급증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찬찬히 이야기를 만들어 극적인 장면으로 몰아가는 드라마 전개나, 그 전개를 잘 받쳐주는 영상 연출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볼거리는 물론이고 어떤 대중들과의 호응을 이끌어낼 스토리에도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멜로와 액션을 세련되게 잡아내는 이 드라마에서 이병헌은 자신이 가진 연기자로서의 장점을 가장 잘 발휘해내고 있다. 그는 멜로 연기와 액션 연기 두 가지를 동시에 잘 소화해내는 연기자다. 그의 액션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액션 연기가 단지 몸동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깊은 감정에서부터 끌어올려지기 때문이다. 연기력 논란이 우려되었던 김태희 역시 이 드라마에서는 어딘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풋풋한 본연의 이미지는 극중 최승희를 통해 그대로 보여지지만, 그녀는 또한 NSS의 프로파일러로서의 냉철한 면모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식상함을 벗어나고 있다.

물론 이제 첫방이 끝난 시점에서 모든 걸 판단하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첫방이 보여준 스토리와 볼거리의 적절한 조합은 이 드라마가 그간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이름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속여온 그 오명을 벗어나게 해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과연 '아이리스'는 우리에게 진짜 의미의 '안방극장'을 되돌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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