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형 악역 미실이 시사하는 것들

'선덕여왕'에서 덕만(이요원)은 미실(고현정)에게 귀족들이 결국에는 구휼미로 내놓을 것을 왜 손해를 감수하면서 비싼 값에도 곡물을 매점매석하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미실은 덕만에게 농부들에도 자영농과 소작농이 있다면서 그들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재차 질문을 함으로써 덕만에게 그 답의 단서를 제시한다. 그 단서를 얻은 덕만은 궁의 비축미를 시장에 풀어 가격을 낮춤으로써 비싼 값에 곡물을 산 귀족들에게 역공격을 가하고, 백성들은 싼 가격에 곡물을 살 수 있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과정은 덕만이 그 적이라 할 수 있는 미실이 제공한 정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 셈이 된다. 여타의 사극이라면 특이한 상황이겠지만 '선덕여왕'에서 이런 식의 전개는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유는 악역이면서도 멘토의 역할을 하는 미실이라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이처럼 덕만에게 문제를 제시하는 존재이면서 때로는 그 문제의 해법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덕만의 캐릭터와도 조응한다. 덕만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적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적의 방식을 그대로 활용하는 인물이다. 곡물의 매점매석을 시장의 논리로서 해결하는 것도 그렇고, 미실이 일식 같은 자연현상을 이용해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넣어 정치에 활용하는 방식은 덕만이 궁으로 다시 돌아오는 그 방식으로 활용된다. 덕만은 어찌 보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늘 미실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덕만의 성장은 그녀를 도와주고 돌봐주는 인물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문제를 내는 인물들에 의한 것이다.

덕만과 미실이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두고 벌이는 대화는 마치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스승과 제자의 그것 같다. 미실이 백성들은 환상을 원하고 그 환상을 통해 통치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미실 앞에서 덕만은 자신만의 비전을 궁구하고, 결국 답으로서 환상이 아닌 희망을 제시한다. 그러자 미실은 "자기보다 더 지독한 짓"이라고 말하고, 거기에 대해 덕만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미소를 짓는다. 이것은 비전과 현실정치 사이의 괴리를 말하는 것이다. 덕만은 현실정치를 위해 미실의 방식을 차용하되, 그것이 속이는 환상이 아니라 꿈꾸게 하는 희망으로 비전을 내세운 것이다.

결국 덕만의 방식은 미실이 갖고 있는 정보의 독점을 통한 통제가 아니라, 정보의 공유를 통한 공통 비전의 제시에 있다. 그런데 이것은 상당부분 미실의 통치방식을 연구한데서 나온 것들이다. 적이 문제를 제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했을 때 자신의 성장을 이루는 이 방식은 '선덕여왕'이 갖고 있는 이야기의 주된 방식이라고 할 때, 그 문제출제자이자 기존 정보의 제공자인 미실은 이 사극의 실제적인 추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는 멘토가 되고, 때로는 악역으로 서는 미실이라는 존재가 있어 '선덕여왕'은 비로소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작금의 현실정치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비전이 다른 존재들이 서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 과정이 정치의 성장 과정이 아닐까.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적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또 그 적이 답변을 해주는 이 덕만과 미실의 이야기는 대화와 소통부재의 정치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고립무원의 덕만, 새로운 국면 절실하다

진정한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는 여성사극으로서, 매번 흥미진진한 미션들이 펼쳐지는 미션사극으로서, 또 무수한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캐릭터 사극으로서 '선덕여왕'에게 50% 시청률은 무난할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속도가 정체되는 것처럼 보이더니 지금은 40%대 이하에서 멈춰서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는 어딘지 초기보다 힘이 현저히 빠진 모습. 도대체 무엇이 기세등등 달려 나가던 '선덕여왕'의 힘을 뺀 것일까.

제일 먼저 지적될 것은 초반부 덕만(이요원)을 중심으로 흘러가던 극이 현재 비담(김남길)과 춘추(유승호)의 등장, 유신(엄태웅)의 풍월주 등극 등의 에피소드 속에서 조금씩 흐트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초기 이 사극에는 수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했지만 그들은 모두 덕만과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 주변 캐릭터들이 돋보인다 해도 그것은 모두 덕만을 빛나게 하는 역할로 작용했다. 덕만은 미실(고현정)과의 대결구도를 팽팽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이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끌어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덕만이 궁으로 들어가자 그녀를 중심으로 서 있었던 유신, 비담, 알천(이승효), 월야(주상욱) 같은 인물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물론 유신은 덕만과 멜로라인으로 얽혀있지만, 풍월주가 되기 위해 스스로 싸워야 했고 가야유민들을 살리기 위해 미실의 영모와 혼인을 맺었으며, 비담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문노(정호빈)와 애증의 대립을 하게 되었다. 알천은 풍월주 자리를 놓고 벌이는 비무에 모습을 보인 것 이외에는 활약이 없었고, 월야는 아예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 사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춘추의 등장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이 사극의 구심점으로서 덕만이 보이질 않자 드라마는 힘이 결집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덕만은 궁으로 들어가면서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다. 전장을 달리고, 사지를 헤쳐 나오던 그 모습은 이제 본격적인 미실과의 설전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정치적인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서 이러한 말싸움은 당연한 것이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과거만큼의 힘을 느끼기 어렵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여기에 덕만과 유신의 멜로 라인은 덕만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냄으로써 그 왕을 꿈꾸는 공주로서의 카리스마를 약화시키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덕만과 왕을 꿈꾸는 자로서의 덕만 사이에서의 갈등은 의미 있는 것이지만, 지금 현재 궁으로만 들어왔지 뭐하나 제대로 갖춘 것이 없는 덕만에게는 성장의 정체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덕만의 이야기만큼 미실의 이야기도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이 사극의 시청률을 견인한 것은 다른 어떤 멋진 남성 캐릭터들보다도 이 두 여걸들의 팽팽한 대립구도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는 점에서 이들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절실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것은 '선덕여왕'이라는 대장정의 길에서 반드시 필요한 숨고르기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연결되는 사건들과 쉼 없이 달려 나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자칫 그 지나친 속도감으로 인하여 인물의 감정선이 따라가지 못하는 역할극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지금 분명 힘이 빠져있다. 이것은 또다시 달려 나가기 위한 웅크림에서 멈춰야한다. '선덕여왕'은 지금 미실과 덕만 사이에 새로운 국면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국면으로서 춘추가 등장했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추리극의 묘미에 빠져 그 진면목을 빨리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신이 떠나고, 비담도 떠나갈 것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고, 알천은 보이지 않고, 게다가 아군이라 믿었던 춘추는 적처럼 행동하는, 이 덕만이 처한 고립무원의 상황은 어떤 국면으로 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선덕여왕'은 또 다른 전환점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선덕여왕'이 보여주는 사극의 가능성

'선덕여왕'이 만일 현대극이었다면 어땠을까. 사극이라는 껍질을 벗겨내면 '선덕여왕'에서 우리는 익숙한 코드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출생의 비밀'이다. 이 드라마업계에서는 이미 안정적인 성공 코드로 취급되는 '출생의 비밀'은 이 사극의 전반부를 거의 차지하고 있다. 살기 위해 중국으로 도피했던 덕만(이요원)의 귀환은 그 신호탄이었다. 그녀는 먼저 언니인 천명(박예진)을 우연히 만나고, 또 친부모인 마야부인(윤유선)과 진평왕(조민기)을 차례차례 만난다.

게다가 그녀는 중국에서 그녀를 키워주었던 소화(서영희)를 또 한 명의 부모로 두고 있기 때문에, 소화의 등장과 덕만과의 재회는 또 하나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사극이 가진 '출생의 비밀' 코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덕만과 함께 버려진 비담(김남길)은 미실(고현정)과의 '출생의 비밀' 코드를 만든다. 미실에게 버려졌으나 돌아온 비담은 또 한 번 버림을 당하는 고통을 맛본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이 부모의 참회로 이어지는 것과는 또 다른 양상으로 이 코드의 변주라고 볼 수 있다.

'출생의 비밀'의 힘은 바로 만남의 시퀀스에서 나온다. 이것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와 가족드라마의 코드다. '선덕여왕'은 인물들 사이사이에 이 만남의 시퀀스를 계속 만들어낸다. 미실과 덕만의 만남, 미실과 소화의 만남, 소화와 칠숙(안길강)의 만남, 덕만과 칠숙의 만남, 소화와 마야부인의 만남, 문노(정호빈)와 미실의 만남, 비담과 소화의 만남, 춘추(유승호)와 덕만의 만남 등등. '선덕여왕'은 이 만남의 시퀀스에서 감정을 강화시키거나 반전을 꾀함으로써 드라마의 힘을 끌어낸다.

멜로드라마의 코드 또한 이제 점점 부상하는 중이다. 덕만과 유신(엄태웅)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이 표면화되고 있고, 그것을 질시하는 비담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사랑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이 운명적 관계는 현대극이라면 어색할 수 있었겠지만 사극 속으로 들어오면서 오히려 흥미진진한 멜로를 만들어낸다. 왜 이럴까. 현대극이라면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일련의 코드들은 사극 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이것은 사극이 가진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멜로드라마가 현대에 이르러 식상하게 된 것은 그 설정이 갖는 비현실성 때문이다. 멜로드라마는 논리적인 사건이 아니라, 감정적인 흐름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드라마다. 그러니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현재의 드라마에서 운명을 운운하는 멜로드라만 특유의 과장은 비현실적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바로 이런 한계는 멜로드라마가 왜 사극이라는 장르와 혼융하여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사극 속에서 멜로는 현대극이라면 가질 수 없는 '태생적인 계급'이라는 장애요소를 자연스럽게 선취하게 된다. 즉 서열과 신분이 달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출생의 비밀'을 통해 만들어지는 만남의 시퀀스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극이라는 공간은 현대극이 갖지 못하는 특유의 이야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극이 먼저 그 리얼리티를 바라보게 한다면 사극은 그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는 특징이 있다.

바로 이 이야기성은 사극이 왜 타 장르들과 손쉽게 융합이 가능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선덕여왕'은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플래시백을 활용한 추리 형식의 영상연출, 전형적인 무협 액션 같은 요소들 또한 갖고 있다. 또한 '선덕여왕'의 융합 가능성은  매체 간에도 일어난다. 이 사극은 비담 같은 캐릭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무협지나 만화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도 자연스럽게 엮어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적 매체적 요소들을 끌어안는 '선덕여왕'은 사극만이 갖는 가능성을 증폭해서 보여준다. 그것은 낯설음과 친숙함이 동시에 얽혀있는 공간의 구축이다. 거기에서 누군가는 우리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미드 식의 긴박감 넘치는 시추에이션극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정반대로 아주 익숙한 가족드라마와 멜로드라마의 문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사극이 갖는 이야기성의 친숙함이 있는 반면, 만화 같은 낯설음과 신선함이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사극이 역사라는 무거운 갑옷을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그 사극의 가능성을 100%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당당한 박기자, 왜 여자로 돌아갔나

‘스타일’의 주인공이 누구냐에 대한 논란은 초기부터 벌어졌다. 이서정(이지아)이라는 캐릭터는 너무 수동적으로 그려지면서 심지어 ‘민폐형 캔디’라고까지 불려졌다. 그 와중에 눈에 띄는 캐릭터는 단연 박기자(김혜수).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서정의 성장드라마를 꿈꾸는 이 드라마는 초기 멘토이자 대립자로서 박기자를 세워두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한없이 박기자의 카리스마에 짓눌린 이서정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차츰 이서정이 박기자를 넘어서는(그러면서 닮아가는) 과정을 그려내야 드라마는 엣지있는 결말로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서정이라는 캐릭터가 박기자를 넘어서기도 전에 삐걱거렸다는 것. 이서정은 물론 박기자의 카리스마를 넘어서기는 어렵지만, 자신만의 매력으로 그 상황을 뛰어넘어야 했다. 이것은 작가가 잘못 풀어낸 캐릭터의 문제이기도 하고, 그 캐릭터를 연기한 이지아의 문제이기도 하다. 캐릭터도 매력이 없고, 연기자도 그 캐릭터를 재해석해내지 못하자 이서정은 중심에서 밀려났다. 물론 이것은 이서정이라는 캐릭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서정은 상대적으로 남성들을 통해 매력을 보여야 하는데, 그녀의 주변에 있는 남성 캐릭터들이 역시 매력이 없었다.

서우진(류시원)은 이 상업적인 바다에 던져진 ‘스타일’이라는 잡지의 세계에 와서 순수를 외치는 인물이다. “읽을 것 없는 잡지가 잡지냐”고 말하는 것은 물론 보편적인 먹물들의 사고방식이지만, 이것은 패션잡지다. 패션잡지는 읽는 것보다 보는 것, 그 보는 것을 어떻게 스타일있게 보여주는가가 관건이다. 서우진은 자신이 하고 있는 마크로비오틱이라는 요리 스타일로 패스트푸드계에 들어가 훈계를 했던 셈이다. 게다가 이 인물은 훈훈한 듯 싶다가도 사람을 갖고 노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서정의 마음을 흔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결국에는 박기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식이다.

김민준(이용우) 역시 마찬가지다. 게이라는 설정은 그렇게 숨겨놓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드러내놓고 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했다면 김민준과 박기자의 관계가 쉽게 이해되었을 테고, 인물 관계도 보다 명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인물은 도무지 누구를 사랑하는지 또 왜 그런지 잘 이해가 가지 않게 그려졌다. 이처럼 이 드라마에는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남성 캐릭터들에서 별로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이 류시원이나 이용우는 마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캐릭터 선택의 잘못이거나 연기력 부족의 문제다.

이렇게 되니 이서정이라는 캐릭터는 고립무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성 캐릭터들이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지도 못하고, 박기자의 카리스마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결국 남은 것은 박기자라는 캐릭터의 독주 체제다. 여기서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린다. 박기자가 중심이 되자, 그녀와의 대립각으로 손병이(나영희)가 세워지는 식이다. 박기자와 손병이의 싸움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사건이 되고, 박기자-서우진-김민준-이서정의 이야기는 간간이 섞이는 멜로가 되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박기자를 중심으로 세우려 했다면 말 그대로 엣지있게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결말이 보여주는 것은 이서정의 자리에 박기자가 서는 미완의 아쉬움이다. 이서정의 웨딩드레스를 박기자가 입는 것은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다. ‘스타일’이 애초에 하려고 했던 두 가지 축의 이야기, 즉 직장 내에서의 권력의 충돌 속에서 어떤 멘토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기자와, 그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이서정의 이야기는 이렇게 박기자 하나의 캐릭터로 봉합되어버렸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박기자라는 당당한 직장여성이 웨딩드레스를 입고 평범한 여자처럼 웃음을 짓는 장면이다.

물론 그렇다고 직장여성이 모두 결혼보다는 일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것은 드라마다. 스타일있고 엣지있던 박기자가 여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 드라마는 실로 맥이 빠져버린다. 어쩌다가 이런 결말에 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스타일’의 문제는 어느 한 부분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대본의 문제에서부터 연기와 연출의 문제까지 총체적으로 빗나가버린 데서 생긴 결과다. 그토록 엣지를 부르짓던 ‘스타일’은 그렇게 엣지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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