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옛글들/블로거의 시선 (96)
주간 정덕현
차승원이 이토록 눈에 띈 적이 있을까. '시티홀'의 조국이라는 캐릭터를 만난 차승원은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최근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까지 보이는 능력있고 잘생기고 부자인 판타지남들의 출연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에서부터 시작해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로 이어졌다. '시티홀'의 조국은 겉으로만 보면 이 계보를 잇는 판타지남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준표에서 태봉씨로 또 조국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조국이 가진 판타지가 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준표가 주는 판타지는 말 그대로 물질적인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가늠이 안되는 부가 그 판타지의 실체가 된다. 하지만 태봉씨로 넘어오면서 그 판타지는 부와..
한 때 귀가시계라고 불렸던 '모래시계'는 고현정과 최민수에게는 하나의 이정표가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고현정의 순수하고 가녀린 이미지와 최민수의 강인하면서도 남성적인 이미지는 이 작품을 통해 빛을 발했죠. '모래시계'가 1995년도에 방영되었으니 벌써 14년이나 흘렀군요.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지나 공교롭게도 이 두 배우는 나란히 사극에서 악역을 맡았습니다. '태왕사신기'에서 화천회 대장로로 분한 최민수는 실로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쇠를 긁는듯한 낮은 목소리에 음침한 눈빛과 구부정한 몸 동작이 주는 섬칫한 느낌은 이 사극을 끌어가는 힘을 만들어주었죠. 그리고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은 미실이라는 희대의 여걸이자 팜므파탈로서의 악역을 소화해내며..
축구에는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과장되게 넘어지거나 쓰러져 반칙을 유도하려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은 때론 진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도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엑스맨 탄생-울버린'의 주먹을 뚫고 나오는 칼날이나, 아무리 해도 죽지 않는 그래서 심지어는 공포의 존재가 되어버린 '터미네이터'의 로봇들을 보다보면 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피드와 장쾌한 액션에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는 허무감에 빠질 때가 많죠. 그런 면에서 볼 때, '거북이 달린다'는 이 할리우드 액션이 갖는 약점을 정곡으로 찌르는 우리식 토속 액션영화로 보입니다. '거북이 달린다'에는 '스타트랙 - 더 비기닝'같은 우주적 공간..
언제부턴가 버라이어티라는 단어 앞에는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에서 표방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용어는 마치 하나의 장르가 된 것처럼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에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리얼'이다. 따라서 이 '리얼'이란 수식어는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의 강박으로 자리했다. 토크쇼 앞에도 '리얼'이 붙었고, 하다못해 인터뷰 하나를 하더라도 강박적으로 우리는 '리얼'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 해왔던 쇼(이 쇼에는 뉴스마저도 포함된다)의 인위적인 부분들에 대한 대중들의 외면 때문이다. 그 인위적인 부분에 출연자들의 홍보성 논란이 덧붙여지면 대중들은 심지어 불쾌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저네들의 홍보를 봐야만 하는 상황은, '..
5월 한 달, 우리들 가슴을 먹먹하게 해준 '휴먼다큐 사랑'. 그 만드는 분들의 면면이 궁금해 MBC를 찾아갔더랬습니다. 마지막 회인 '엄지공주 편'이 방영되는 날이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문에 방송사 분위기도 착 가라앉아 있더군요. 'MBC스페셜' 전체의 책임을 맡고 있는 윤미현CP가 '휴먼다큐 사랑'도 맡아서 하고 있었는데, 또 밤을 새웠는지 초췌한 얼굴로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있어서 올해 '휴먼다큐 사랑'을 찍은 세 주인공, 유해진, 김새별, 김진만 PD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휴먼다큐 사랑'의 진심이 대중들과 공감하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었죠.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몇 마디를 적어보는 것만으로 그 분들의 면모..
'마더'가 다루는 모성의 세계가 꽤 충격적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은 아니다. '빗나간 모성'의 이야기는 늘 존재해왔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것은 우리가 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상투적인 드라마 설정의 단골소재로 자리해왔다. 그저 자기 아들만 최고인 줄 알고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나, 결혼을 반대하는 엄마는 가족 드라마의 단골이며, 자식을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범죄마저도 불사하는 모성(예를 들면 '카인과 아벨' 같은)이나, 나이 들어서도 아들에게 집착하는 모성(예를 들면 영화 '올가미'같은)은 드라마나 영화 속의 안티테제로 줄곧 등장해왔다. 최근 주말 드라마로 각광받고 있는 '찬란한 유산'을 보면 이 잔인한 모성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은성(한효주)의 계모인 백성..
1980년부터 2002년까지. '전원일기'의 엄마로서 국민엄마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김혜자. 하지만 그 무려 22년 간의 세월로 쌓아놓은 국민엄마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각인되는데는 겨우 2시간 남짓한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마더'는 국민엄마라는 막연한 호칭 속에 숨겨진 보다 깊은 엄마의 동물적인 본성을 끄집어내 그 끝까지 달려보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마치 큐브 조각을 맞추듯 꽉 짜여있는데다가 상상하기 어려운 전개와 반전이 스릴러 구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섣부른 리뷰는 그 자체로 스포일러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배우 김혜자에게만 집중해보도록 하죠. 사실 이 영화는 김혜자라는 배우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대단히 단순하..
한동안 멍해서 도무지 글을 쓸 수가 없더군요. 하는 일이 대중문화 관련된 일인지라, 이 기본적으로 펀(fun)한 일의 성격이 지금 상황에서는 한 구석으로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안정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잠시 시끄럽던 TV를 끄고 산책을 하고, 거리를 걷다가 문득 그 분이 우리에게 열어주셨던 광장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장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봉쇄되고 차단된 광장이 아니라 누구나 그 위에서 놀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광장. 그 위에서 우리들은 정말 신나게 놀았더랬습니다. 87년 시청앞 광장 앞에 섰던 세대로서 2002년 시청앞을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들의 놀이터가 된 광장은 그 자체로 소통의 감동을 주는 것이었죠. 그리고 우리는 그 광장을 온전히 우리들의 놀이터로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