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서에서 아티스트로 돌아온 이효리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또 목소리가 남다르다고도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춤은? 물론 퍼포먼스는 화려하다. 하지만 춤만 놓고 봤을 때 굉장한 춤꾼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효리가 하면 먼저 시선이 가고 귀가 열린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그녀의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가 대중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이건 능력이 아니라 매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이효리의 모노크롬(사진출처:B2M엔터테인먼트)

3년 만에 돌아온 5집 ‘모노크롬’이 발표되기 전 선 공개된 ‘미스코리아’는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응축되어 있다. 그것은 첫 무대에서 과거 미스코리아 수영복 차림으로 나와 노래 불러도 여전히 아름답게 여겨지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 노래에서 반복되는 가사는 ‘Because I'm a Miss Korea’다. 아마도 미스코리아 대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이들이라면(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이 후렴구가 자못 도발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 그리 중요한가요. 망쳐가는 것들 내 잘못 같나요. 그렇지 않아요. 이리 와 봐요 다 괜찮아요. 넌 Miss Korea” 마지막 가사가 전하는 것처럼 이 노래는 외부의 시선으로 뽑혀지는 미스코리아 타이틀 같은 ‘신기루’에 미혹될 게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을 ‘멋진 Girl'이라 여기라는 전언이다. 이 가사의 이야기는 이효리 자신의 이야기면서 미의 타이틀로 재단되고 가늠되는 세태에 대한 사회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수영복 차림을 하나의 패션으로 소화해내는 ‘미스코리아’는 여전히 섹시한 이효리를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이야기와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낸다. 음악적으로도 레트로풍의 복고적인 분위기가 물씬 나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됨을 잃지 않고 있다. 마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고풍스러운 세련됨이랄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섹시미와 지성적인 면모가 공존하며, 음악과 자신의 삶이 하나로 통과하는 듯한 ‘미스코리아’는 그래서 강렬한 사운드를 구사하지는 않지만 담담해서 오히려 진솔한 이효리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5집을 통해 이효리가 어떤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물론 최근에 있었던 일련의 일들(이를테면 작곡가의 표절로 피해를 본 4집이나, 연인 이상순과의 만남 혹은 소셜테이너로서의 사회적인 활동들)의 영향이 크겠지만, 끊임없이 어떤 변신을 시도해온 그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핑클에서 이효리는 그저 요정이었지만, <해피투게더>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예능에서 이효리는 털털한 언니였고, 2003년 1집 <스타일리시 이효리>로 발표한 ‘10 Minutes’부터 이후 ‘U-Go-Girl’ 같은 일련의 곡들에서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무장한 섹시아이콘이었다.

 

이렇게 일련의 성장과정을 거친 이효리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노래는 편안해졌고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스토리텔러의 면모가 생겼다. ‘미스코리아’나 이번 5집의 타이틀곡인 ‘배드 걸스’는 그 자체로 음악과 퍼포먼스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그 안에 이효리의 이야기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 5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이효리가 너무나 다양한 면들을(때로는 이질적인 것조차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가수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여전히 섹시하지만 한편으로 소탈하고, 스스로를 ‘배드걸’이라고 도발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악녀가 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디부터 해외의 작곡가까지 또 심지어는 순심이 같은 동물까지 한없이 여유로워진 그녀의 세계 속에 자연스럽게 안겨 있다는 점이 놀랍다.

 

‘이효리니까 할 수 있는 것’을 이제는 ‘당신도 할 수 있다’ 말해주는 이번 5집은 그래서 아티스트 이효리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녀는 남이 해준 옷을 억지로 꿰어 입기보다는 이제 자신의 솔직한 삶이 만들어내는 실로 직조된 음악의 옷을 입으려 하고 있다.

장윤정, 굳이 아픈 가족사를 공개해야만 했나

 

몇 주간 장윤정이라는 이름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서 빠지질 않는다. <힐링캠프>에 출연하기 전부터 여의도 증권가 찌라시로 유출된 사전 인터뷰 내용은 한바탕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자신이 10년 간 번 돈을 어머니와 남동생이 모두 날려버렸다는 이 자극적인 이야기는 세간의 관심을 온통 그녀가 출연하기로 예정된 <힐링캠프>에 집중시켰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장윤정은 예상 외로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돈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고, 오히려 뿔뿔이 흩어지게 된 가족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녀는 가족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고, 이제 앞으로 결혼해 가족을 꾸리게 될 도경완 아나운서와의 핑크빛 러브스토리와 도경완 아나운서의 월급으로 살 거라는 소박한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사전에 터진 논란에 비하면 너무나 깔끔한 방송이었다. <힐링캠프>의 힘이 그 정도로 컸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윤정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과 후의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돈을 몽땅 날리고 빚까지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큰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흩어지는 가족을 걱정하는 모습은 장윤정이 효녀이며 그 누구보다 가족을 생각한다는 걸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또 행사 여왕으로서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던 돈 이미지도 이제는 소박한 한 여인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힐링캠프>가 방영된 후 케이블 채널에서는 장윤정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남동생과 어머니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모 회사를 운영하는 남동생은 “미니홈피에 어머니와 함께 자살하라는 악플들로 가득 차 있다”며, 누나의 돈을 자신이 사업으로 날려먹었다는 이야기는 오해라고 주장했다. 어머니 역시 인터뷰를 통해 33년 간 키운 딸이 비수를 꽂았다고 말했다.

 

장윤정 측에서는 여기에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인터넷은 남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비난 여론만 더 커지고 있다. 무언가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가 있다는 추정들과 그로 인해 각종 루머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장윤정의 개인 가족사일 뿐이다. 거기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 장윤정과 가족 간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들은 이제 피로감마저 느끼게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먼저 의문이 드는 점은 이미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포된 상황에서 장윤정이 <힐링캠프> 출연을 강행한 것이 과연 적절했는가 하는 점이다. 유포된 내용의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윤정만 혼자 나와 “그 내용이 다 사실”이라고 밝히는 것은 자칫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또 장윤정이 시종일관 가족을 보듬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장윤정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다지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것은 가족 간의 이야기이면서도 그 안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들어가 있다. 장윤정이 피해자이면서도 괜찮다고 말한다고 해서 가해자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즉 결과가 보여주듯이 장윤정이 방송에서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 한쪽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방송은 그 자체로 다른 쪽에게는 공격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화살의 표적이 되고 있는 남동생과 어머니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장윤정이 피해자이고 남동생과 어머니가 잘못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정 반대로 남동생과 어머니 말처럼 이것이 전적으로 잘못 전달된 오해일 수도 있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당사자들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가족 간에 생긴 마찰이란 때로는 양자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는, 그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일 때도 많지 않은가.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은 결과적으로 가족들 간의 문제이고 그 안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어느 한 쪽이 피해자가 되고 어느 한 쪽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만의 이야기를 집중시키게 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문제다. 한쪽이 진심을 토로한다는 미명 하에 쏟아낸 아픈 가족사가 다른 한쪽에게는 대중들의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스테리로 남는 건 그토록 가족 걱정을 하는 효녀인 장윤정이 왜 굳이 아픈 가족사를 공개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진정 몰랐을까.

<오로라공주>가 던진 비난 떡밥들, 입질은 있었나

 

아예 작정을 한 걸까. 임성한 작가의 새 드라마 <오로라공주> 첫 회는 욕 먹기를 작정하기라도 한 듯한 장면과 대사와 상황이 쏟아졌다. 시작부터가 불륜이다. 오금성(손창민)이 내연녀에게 “한 달만 기다려. 정리하고 올께. 약속해.”라고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말은 자못 도발적이다. 저녁 7시 대 일일드라마로서 첫 장면에 불륜 장면을, 그것도 너무나 버젓이 던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색깔을 명확히 해준다.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다음 시퀀스는 임성한 월드의 특징을 정확히 보여준다.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가 검사인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대면하는 장면. 위 아래로 훑어보며 “다 해봐야 십만 원 밖에 안되겠네”라고 대놓고 말하는 속물근성 덩어리 어머니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발끈하게 될 즈음, 갑자기 극 흐름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코털이 인서트된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들이 가끔씩 상상 신을 활용해 인물들의 꿈틀대는 속내를 꺼내보였던 것처럼, 이 장면에서 오로라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턱을 잡고 코털을 자르는 상상을 한다.

 

아마도 드라마에서 이런 코털 장면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뾰족한 가위를 코 속에 넣어 자른다는 점에서 그 장면은 특이하면서 자극적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 시퀀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 흐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시청자의 이목을 끌거나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을 집어넣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임성한 월드가 늘 추구해오던 것이기도 하다. 언제 주제의식이나 스토리의 일관성을 따졌던가. 그저 자극적이거나 눈요기 거리거나 화제(아니 나아가 논란)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끼워 넣는 것이 임성한 월드의 특징이다.

 

품격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막가파식의 설정과 대사 역시 빠질 수 없다. 오금성과 아내 이강숙(이아현)이 함께 안마를 받는 자리에서 오금성이 이혼을 선언하자 이강숙이 알몸을 가린 가운을 열어 보여주며 하는 대사는 리얼하다기보다는 자극을 위한 자극처럼 보인다. “뭐가 부족해 내가! 호강에 겨워서 뭐에 빠진다고... 마흔 셋에 이 정도 유지하는 여자 봤어? 누구는 주물러 터트려서 귀찮아 죽겠대. 뭐가 그리 잘났는데? 나니까 살아줬어. 토끼 주제에...” 그러자 남편 오금성도 못지않은 막말을 쏟아낸다. “식어 빠진 사발면을 그럼 1,2분이면 해치우지 2,30분에 먹냐.” 실로 19금딱지 붙은 드라마에서도 듣기 힘든 대사들이 아닌가.

 

비상식적인 가족의 대화는 오왕성(박영규), 오금성, 오수성(오대규)이 저녁을 먹으며 불륜에 빠진 오금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동생 오수성은 바람난 형에게 연실 장난치듯 비아냥대고, 형인 오왕성은 책망을 하지는 못할망정 내연녀의 나이를 궁금해 하고 부러워한다. 오금성이 내연녀가 서른다섯 처녀라고 말하자 이 두 형제는 심지어 “대박!”이라고 감격하기까지 한다. 형제들이 바람피는 것을 부러워하고 은근히 자랑질 하는 이 장면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야기하는 짜증은 임성한 월드가 굴러가는 연료이기도 하다. 분노하고 욕하기 위해 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아마도 임성한 월드는 이 잘나가는 가족들의 속물근성을 끄집어내 보여주고 싶은 것일 게다. 이 가족 속에 등장하는 계급들의 모습, 이를테면 오로라를 시중드는 하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거나, 평범한 옷을 입고 명품백을 사러 온 오로라를 불친절하게 대하는 종업원의 모습 역시 속물 자본주의가 가진 여전히 봉건적인 요소들을 보여주고는 있다. 또 임성한 월드에 꼭 등장하는 무속이나 종교적인 행태들(이번 드라마에도 잠자는 황마마(오창석) 옆에서 불경을 외우는 누나들이 등장한다) 역시 21세기에도 존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속물 자본주의나 전근대적인 행동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목적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풍자나 비판의식을 담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그 비상식적인 장면들이 만들어내는 짜증을 증폭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즉 임성한 월드가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이러한 시청자의 감정을 낚는 이른바 ‘비난 떡밥들’이 도처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첫 회만 봐도 이런 논란이 될 만한 떡밥들은 거의 매 시퀀스마다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그토록 욕을 하면서도 챙겨봤던 것처럼(어쩌면 욕하기 위해) 지금의 시청자들도 이 떡밥들을 덥석 물것인가. 첫 회에 시청률 11%를 기록할 정도로 임성한 월드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끝없이 던져지는 짜증나는 시퀀스들에 이제 진력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오로라 공주>의 성패는 시청자들의 성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난을 먹고 자라는 이상한 임성한 월드는 여전히 그 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지나가버린 퇴행적인 세계로 기록될 것인가.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리쌍 논란, 갑의 횡포? 잘못된 법이 문제다

 

리쌍이 지난해 산 건물에 임차인과의 갈등으로 빚어진 이른바 ‘갑의 횡포’ 논란은 시시비비를 따지기가 쉽지 않은 사안이다. 리쌍의 입장에서 보면 36억의 빚을 내서 산 건물의 임차인이 계약서에 명시되어있는 계약기관과 상관없이 전 주인과 5년을 구두계약 했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임차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 주인이 구두로 보증금이 3억을 넘지 않으니 임대차 보호법에 해당되어 5년을 장사할 수 있다고 구두계약 했다가 후에 슬그머니 임대료를 조정해 보호받지 못하게 된 사정이 억울할 것이다.

 

'리쌍(사진출처:정글엔터테인먼트)'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그 임대료 조정조차 새로운 건물주인 리쌍에게 임대인으로서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했던 일처럼 여겨졌을 수 있다. 물론 리쌍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건물주로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임대사업장에 어떤 사업 계획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지만 그들은 임차인의 사정을 감안해 도의적인 보상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임차인이 이를 거듭 거부하고 리쌍이 연예인이라는 입장을 약점 삼아 버티는 모습은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흔히 건물주와 임차인 사이의 관계를 그저 모두 갑을 관계로 치환해서 마치 갑이 을에게 늘 횡포를 부리는 것으로 바라본다. 물론 일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임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제대로 임대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른바 권리금을 제 멋대로 올리는 임차인 때문에 그 피해가 건물주에게 미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이번 리쌍의 경우는 연예인이라는 공인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여론의 약자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

 

즉 이번 리쌍과 임차인 사이에 벌어진 사안을 단순히 갑의 횡포니 을의 억지니 하며 바라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왜 이런 분쟁이 생겨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리쌍이 애초에 전 건물주와 계약할 때 임차인들과의 이런 미묘한 입장들을 사전에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고, 임차인 역시 전 건물주가 보증금 액수를 조정할 때 확실하게 서면 계약서로 5년을 보장받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즉 현재의 법에서는 건물을 사거나 임대차 계약을 할 때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사전에 모두 서면으로 남겨놓아야 분쟁의 소지가 없다는 얘기다.

 

사실 이 문제는 보는 입장에 따라 누가 잘했고 잘못 했는가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누구는 건물주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싶지 않겠는가. 또 누구는 임차인으로서 손해보고 가게를 빼주고 싶겠는가. 문제는 이렇게 분쟁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시키는 법 조항이다. 법이란 것이 결국 이런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분쟁에 대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임차인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2조’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서를 제출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른바 ‘임대차 보호법’이라는 것이 실로 애매한 기준으로 그 보호대상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서울의 경우에 보증금이 3억 원을 초과하지 않는 상가건물 임차인들만을 보호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 얘기는 임차인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처럼 “5천에 250만 원짜리 세입자는 보호를 받고, 5천에 251만 원짜리 세입자는 보호 안 되는” 이상한 현실을 보여준다.

 

리쌍이라는 연예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론화된 것이지만, 이런 건물주와 임차인의 문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단순히 갑을 관계로 치환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자칫 감정싸움으로 흘러가게 만들 수 있다. 갑의 횡포니 을의 눈물이니 하며 최근 갑을 관계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갑을 관계로 환원해 바라보는 것은 자칫 특정 사안의 핵심을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 리쌍 논란의 핵심은 갑을의 문제라기보다는 잘못된 법의 문제가 더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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