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다시 한번’, 그 남성 부재의 공간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한명인(최명길)은 명진그룹의 회장이고, 그녀의 남편인 이정훈(박상원)은 부회장이며, 그녀의 아들인 이민수(정겨운)는 홍보실장이다. 가족이 기업 속에 그대로 포진하고 있는데, 그것을 기업의 권력구조 속에서 보면 남편이나 아들은 모두 한명인의 손아귀 속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드라마의 캐릭터 파워하고도 일치한다. 한명인이라는 캐릭터는 이정훈이나 이민수라는 캐릭터를 늘 압도한다.

한편 이정훈의 내연녀인 은혜정(전인화)과 이정훈, 그리고 그의 딸인 은수진(한예인) 사이의 권력 관계에서도 이정훈은 늘 약자의 위치에 있다. 은혜정이 이정훈을 오롯이 자기 것으로 쟁취하려 능동적인 선택(예를 들면 언론에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흘린다든지, 한명인에게 의도적으로 가까워진다든지, 혹은 자신의 집으로 그 두 사람을 동시에 초대한다든지 하는)을 한다면 이정훈은 늘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거나 한숨을 쉴 뿐이다.

따라서 이 한명인-이정훈-은혜정이라는 불륜의 삼각관계가 주는 긴장감은 능동적인 캐릭터인 한명인과 은혜정의 대결구도에서 발생한다. 이정훈은 그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움츠린 존재이고(심지어 한명인과 은혜정이 왜 이 수동적인 남자를 사이에 두고 쟁투를 벌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렇게 되자 이 여성 캐릭터들의 능동성은 본래 이 드라마의 영화 원작이 그리고 있는 여자 주인공들의 신파를 지워버린다. 영화에서는 여성이 자신을 희생(자식을 포기)하는 신파적 멜로에서 드라마의 힘이 발생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두 여성이 한 남성을 차지하려고 하는 욕망의 대결구도에서 드라마의 힘이 발생한다.

이것은 한명인과 그녀의 자식인 이민수, 그리고 그와 사사건건 부딪치게되는 최윤희(박예진) 사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민수와 최윤희는 애초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없었지만, 한명인이 최윤희를 며느리로 점찍는 순간부터 서로 얽히게 된다. 여기서도 이민수는 수동적인 존재로만 서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명인과 최윤희는 마치 게임을 하듯 팽팽하게 부딪치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수록 드라마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이것은 한명인-이정훈-은혜정이라는 대결구도의 자식 버전이다.

즉 이 드라마는 한명인과 은혜정, 그리고 최윤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어디에도 이정훈과 이민수의 입장을 동등한 위치에서 고민하지는 않는다. 이정훈과 이민수는 이 여성들의 손바닥 위에 놓여진 공기 돌처럼 이리저리 그녀들이 만들어낸 상황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할 뿐이다. 이것은 ‘미워도 다시 한번’의 2009년 판이 과거의 그것들과 확실히 선을 긋는 대목이자 그간 달라진 여성들에 대한 인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1968년에 영화로 개봉된 이래 수 편이 제작되었고 또 2002년도에까지 리메이크되는 동안 사회 속에서 여성들의 존재는, 2009년 판 ‘미워도 다시 한번’이 보여주는 세계만큼이나 변화했던 것이다.

이것은 ‘내조의 여왕’이 그리는 아줌마의 세계 속에서 삭제된 남성들이나, 늘 전통적인 사극 속에서 남성의 대상으로서만 취급받던 여성들이 이제는 남성들을 무릎 꿇리고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여걸로 재탄생되는 것과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심지어 ‘아내의 유혹’같은 완성도를 찾기 힘든 드라마 속에서도, 삭제된 남성(정교빈)과 여자들끼리의(은재와 애리의) 대결구도로 나타날 정도다.

이렇게 된 것은 여러모로 드라마의 주 소비층으로 자리한 중년여성들에 편향된 결과다. 어쩌면 이제는 과거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그려진 여성들로 인해 가부장적 사고관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겨났던 것처럼, 거꾸로 여성들의 욕망의 대상(혹은 배경)이 되어 남성들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것에 대한 비판의식이 생길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징후는 벌써부터 아버지 캐릭터의 실종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중이다.

소녀시대의 예능 출연, 실효를 거두려면

이효리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몸빼 바지의 굴욕도 마다 않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가수라는 본업으로 돌아오면 섹시 디바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는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이 농담 삼아 “그 이효리가 이 이효리냐?”고 물을 정도. 리얼리티 시대에 탈신비주의 컨셉트가 하나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재, 모두가 이효리의 이런 섹시와 털털을 넘나드는 이미지를 갖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효리는 게스트로서의 단발성 출연보다는 고정 MC로서 예능에 입지를 다져왔다. 핑클 해체 이후 이효리는 ‘해피투게더’에서 조금씩 자신의 끼를 보였고, 핑클 속에서 고형화되었던 요정 이미지를 예능에 고정 출연함으로써 조금씩 깨뜨렸다. 이렇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신만의 솔직한 개성을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되자, 섹시 컨셉트로 나온 ‘10 Minutes’는 그녀의 엔터테이너적인 끼(정확히 말하면 퍼포먼스, 연기)로서 받아들여졌다. 꽤 오랜 시간의 준비기간이 있었기에 섹시와 털털은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효리의 예능, 게스트가 아닌 고정으로
여기서 이효리의 행보 중 가장 중요한 점은 ‘게스트가 아닌 고정’이라는 점이다. 예능에 잘 출연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음반을 내고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했다면, 제 아무리 발군의 순발력과 예능감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정MC는 이러한 홍보성 논란에서 자유롭다. ‘그 이효리가 이 이효리가 된’ 상황은 오히려 더 큰 화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이효리의 성공 방정식을 거의 유사하게 그려낸 인물은 박예진이다. 그녀는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서 이효리가 했던 방식, 즉 그녀의 고정된 이미지(이 이미지는 너무 흐릿해 오히려 상투적이었다)를 ‘달콤 살벌한 이미지’로 깼다. 고정 출연자이기 때문에 홍보성 출연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섬뜩할 정도로 살벌한 연기를 보여주자 그것은 그녀의 연기력으로 부각되었다. 박예진은 이로써 예능에서는 솔직한 면모를, 또 드라마에서는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과정은 같은 프로그램의 대성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정MC로서의 예능이 아닌, 게스트로서의 예능으로 출연했던 비와 김종국은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했을 때, 물론 귀환을 알리는 효과는 분명 있었겠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이미지 제고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잦은 예능 출연은 지나친 홍보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의 출연이 자신들의 홍보를 위한 것이라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빅뱅의 예능, 함께보다는 따로
최근 들어 소녀시대의 지나친 예능 출연이 갖고 있는 문제도 여기에 있다. 너무나 많은 구설수에 휘말리고, 항간에서는 오히려 떨어진 시청률을 근거로 ‘소녀시대 효과라는 것은 없다’고까지 주장하게 된 것은 그 출연의 목적이 소녀시대의 홍보에만 치우쳐진, 게스트라는 입장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집단으로 출연한 ‘무한도전’과 ‘박중훈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어필하지 못했다. ‘무한도전’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소녀시대 멤버들이 너무 부딪치는 바람에 그랬고, ‘박중훈쇼’에서는 박중훈이 너무 소녀시대를 띄워주기에 급급해서 그랬다. 모두 게스트 출연이 갖는 한계들이다. 게스트가 게스트의 위치에서 자신을 어필하지 않고 메인이 되려는 것이나, 혹은 너무 지나치게 게스트 중심으로만 끌려가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다.

게다가 소녀시대의 멤버가 아홉 명이라는 사실은 게스트 출연에 있어서도 장애로 작용한다. 집단 게스트 출연은 예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출연자의 개성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소녀시대가 가장 자신들의 이미지를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윤아가 ‘너는 내 운명’에 출연했던 것과 태연이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태연의 ‘우리 결혼했어요’출연은 언제부턴가 소녀시대의 ‘우리 결혼했어요’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단독 고정출연자로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확실히 알려주었고, 그것은 동시에 소녀시대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해주었다. 이것은 ‘빅뱅’이 전원 출연보다는 대성의 단독 출연으로 예능으로부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제 배우와 가수들의 예능 출연은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성공방정식은 존재한다. 예능 출연의 효과는 이제 단발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안에서 어떤 기여도를 보여주어야 얻어질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었다. 소녀시대는 지금껏 예능 바람몰이를 해가며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지금은 소녀시대’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 예능 바람이 실질적인 어떤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제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함께’가 아니라 ‘따로’ 출연하는 방식을 택해야 하며, 그것도 단발성의 게스트가 아닌 고정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소녀시대에게 필요한 것은 통상적인 음반 홍보를 위해 일시적으로 게스트 출연을 하는 가수들의 전략이 아니라, 아예 예능인으로서도 충분한 이효리와 대성의 전략이다.

‘무한도전’, 패러디의 역사를 쓰다

“아버님은 일본 분이시잖아요?”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이 정준하에게 여자친구의 아버님에 대해 이렇게 물었을 때, 인터뷰 모양새로 이것저것 물어보던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 아버님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 때 마침 이런 자막이 나와 상황을 정리한다. ‘형돈의 말 한마디에 분위기 올킬.’ 만일 이 자막에 웃음을 터뜨린 분들이라면 아마도 여기 등장한 ‘올킬’이라는 단어에서  저 ‘야심만만2’에서 새롭게 시도하다 사라진 올킬 시스템을 떠올렸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이처럼 이제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이든, 이미 사라져버린 포맷 형식이든 상관없이 거의 무제한적으로 패러디의 소재로 받아들인다.

박명수가 ‘거성쇼’의 오프닝을 보여줄 때, 유재석이 “형 이건 자니 윤 선생님이 하던 거 아냐?”하고 물어본 것처럼, ‘거성쇼’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져버린 트렌드인 자니 윤쇼를 패러디한다. “뉴칼레도니아 센시티브 모이스처라이징 딥클린 수딩 페이셜 포밍 클린징 이태리 타월.” 이렇게 숨가쁘게 긴 이름을 쏟아낸 미스 무한도전 진 정준하는 “제가 뭐 그렇게 빼어나게 예쁜 얼굴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며 모 화장품 광고를 패러디한다. 이어지는 광고(패러디)에서도 정준하는 ‘어휴젠 편집의 여신’이라는 제목으로 ‘팡팡 터져라 애드립의 여신’을 연발하며 김연아가 나왔던 광고를 패러디한다.

소녀시대를 게스트로 초대해 박명수가 진행하는 것은 다름아닌 ‘불후의 명곡’을 패러디한 ‘불혹의 명곡 베스트5’다. ‘거성쇼’에 이어서 소녀시대와 함께 한 여성의 날 특집 편에서도 패러디는 진행형이다. 여성의 날의 의미를 설명하는 유재석의 동작을 소녀시대가 따라하자 어김없이 ‘지금은 유반장 시대’라는 자막이 붙는다. 이것은 다름 아닌 소녀시대를 패러디한 것이다. 거리 인터뷰에서도 유재석은 특유의 재치로 “달려가는 여성시대-”의 노래를 불러 동명의 라디오 코너와 그것을 패러디한 박지선의 개그를 패러디하고, 노홍철이 소녀시대를 카페로 데리고 가 수작을 걸려하자, ‘너 지금 연애편지 찍니?’하는 자막이 붙는다.

‘무한도전’의 패러디 활용은 단지 그 회에 한정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무한도전’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역사가 패러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최근에 했던 ‘애너gee - 중년시대’는 소녀시대 ‘gee’의 패러디였고, ‘쪽대본 드라마 특집’은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같은 작금에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들이 패러디 대상이 되었다. 물론 그 전에 했던 봅슬레이 특집 역시 넓게 보면 영화 ‘쿨러닝’의 패러디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패러디의 대상은 시사 프로그램에서부터 각종 영화들, 시상식, 예능 프로그램까지 거침이 없었다.

‘무한도전’이 이처럼 패러디를 그 웃음의 전략에 있어 중심에 세워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무한도전’이 주창하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캐릭터와 패러디 문화의 상관성에서 비롯된다. 패러디는 약자의 전략이다. 강자인 원본이 가진 힘을 약자의 위치에서 살짝 비틀어 재해석함으로써 원본을 넘어서려는 전략인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평균 이하 캐릭터는 이 약자로서의 전략을 취함으로써 쉽게 대중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무한도전’의 패러디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최근 들어 폭발적인 양상을 띄고 있는 패러디 문화와도 맞닿는 부분이다. 패러디는 이제 특정 전문가들이 하는 작업이 아니라 생활 속으로 들어온 일상 같은 것이 되었다. 누구나 쉽게 디지털 영상을 구할 수 있고 그것을 손쉽게 컴퓨터로 편집해서 새로운 영상을 만들 수 있으며, 또 그것을 누구나 배포할 수 있는 지금 패러디는 문서 작업만큼이나 익숙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패러디는 바로 그 변화된 양상의 적극적인 수용일 수도 있고, 혹은 주도적인 제안일 수도 있다. 이어지는 ‘무한도전’의 ‘그 때를 아십니까 - 육남매’편 역시 MBC 드라마 ‘육남매’의 패러디로 보여진다. ‘무한도전’의 패러디 무한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무한도전’ 그 패러디의 역사

31부. 무한소년체전 특집 : 소년체전
34부. 연말특집 무한도전 어워드 : 연말 시상식
42부. 무한도전 100분 토론 : 100분 토론
44부-47부. 무한도전 드라마 특집 : 드라마
54부. 무한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 : 미스 코리아
62부. 강변북로 가요제 본선 : 강변 가요제
64부. 개그 실미도 : 영화 ‘실미도’
66부. 워터보이즈 특집 : 영화 ‘워터 보이즈’
75부. 환장의 짝꿍 : 환상의 짝꿍
77부. 준하인스워드 특집 : 하인스 워드
80부-82부. 댄스스포츠 특집 : 영화 ‘쉘 위 댄스’
102,103부. 경주 보물찾기 특집 : 리얼 타임 액션 스릴러
105부. 어린이날 기념 무한 창작 동요제 : 창작 동요제
107부. 기네스 기록도전 특집 : 기네스
108부. 무한도전 가족의 탄생 : 영화 ‘가족의 탄생’
110,111부.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112,113부. 우리 미팅했어요 : 우리 결혼했어요
115부. 태리비안의 해적 :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116부. 좀비 특집 : 영화 ‘28일 후’
120부. 다찌지리와 리 : 영화 ‘다찌마와리’
121부. 추석과 전쟁. 며느리가 뿔났다 : ‘엄마가 뿔났다’
127부. on air - 매니저가 돼봐라 : ‘온에어’
138부. 무한도전 봅슬레이에 도전하다 : 영화 ‘쿨러닝’
141부. 쪽대본 드라마 특집 : ‘꽃보다 남자’, ‘아내의 유혹’ 등


소극장으로 간 한국대중음악상, 왜?

결국 대중음악은 소극장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말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갑작스런 지원중단 발표 후, 시상식을 연기해온 ‘한국대중음악상’은 애초에 건국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학전 소극장으로 축소 개최되게 되었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한국의 그래미’, ‘한국의 빌보드’를 만들고 ‘대중음악전용관’을 짓겠다며 대중음악을 키우기 위해 무려 1275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애초에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키우겠다던 대중음악은 ‘한국대중음악상’이 말하는 그 대중음악이 아니었던 것일까.

혹자들은 ‘한국대중음악상’에 인디밴드들과 같은 상대적으로 낯선 음악인들이 대거 수상자 명단에 들어있는 점을 두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음악들이 그 명단에 들어있지 않고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음악인들이 거기에 있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혹자들은 그 점을 들어 ‘한국대중음악상’이 아니라 ‘인디음악상’이냐는 비아냥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껏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들만이 대중음악이라고 불려진 것에 대한 ‘한국대중음악상’의 도발적인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대중음악은 물론 상업적일 수 있지만 그 전에 대중의 정서를 음악적으로 잘 표현한 음악에서 먼저 찾아져야 하는 것이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하는 ‘한국대중음악상’이 생기게 된 것은 방송사와 대형 기획사 저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린 국내의 음악 시상식이 갖는 한계를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대중들까지 인식하게 되면서부터다. 대중음악이 갖는 상업적 성격은 몇몇 대형 기획사들의 승자독식구조를 지속시켰고,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방송사의 시상식은 그네들의 홍보 프로그램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무엇보다도 문제였던 것은 그네들에 의해 대중음악이라 호명되는 몇몇 음악들이 대중들의 다양한 기호를 묵살하고 획일화시킨다는데 있다.

이렇게 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키워내겠다고 한 ‘대중음악’과 ‘한국대중음악상’이 말하는 ‘대중음악’ 사이에 커다란 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그래미 운운하면서 1275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를 말할 때부터 그 대중음악의 성격 속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상업성에 경도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지원중단은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또한 자생적인 대중음악의 발전을 지원한다기보다는, 국가 통제 하에 대중음악의 틀을 두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중음악에 대한 상반된 접근이 1275억을 투자하겠다고 하면서도 고작 몇 천만 원에 불과한 지원비를 굳이 중단하겠다고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작년 한 해, TV 음악 프로그램에 일대 변혁을 불러온 인디 밴드들(‘장기하 밴드'나 ‘갤럭시 익스프레스' 같은)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은 ‘한국대중음악상’이 이제 변화해가는 대중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기호를 제대로 선점했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윤도현의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장르 구분을 넘나드는 음악의 소개가 그 전조를 보였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은 작금의 ‘이하나의 페퍼민트’, ‘음악여행 라라라’, ‘스페이스 공감’같은 프로그램들로 그 다양성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이것은 TV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과거와 같은 몇몇 상업적으로 성공한 음악에만 편향된 형식만으로는 대중의 다양성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상 규모가 작아진 금번 ‘한국대중음악상’에는 김동률, 토이, 원더걸스, 다이나믹듀오, 태양, 윤하, 양방언 등이 불참해 아쉬움을 남겼다. 진행자인 윤도현과 이하나는 “우리 권위 있는 거 맞죠?”하는 농담까지 했으니 그 썰렁한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금번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단연 화제는 ‘싸구려 커피’로 3관왕의 영예를 안은 ‘장기하와 얼굴들’이다. 천편일률적으로 흐르는 작금의 대중음악에 인디의 정신을 살리며 참신함을 불어 넣어준 음악으로 당연히 받을 걸 받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싸구려 커피의 정서를 노래로 부른 ‘싸구려 커피’라는 음악이 싸구려가 아니듯, ‘싸구려 커피’에 영예를 준 ‘한국대중음악상’이, 화려하지 못한 협소한 공간에서 조촐히 벌어진 싸구려(?) 음악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싸구려 커피의 그 달달함과 속쓰림 역시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의 화려함이 장악한 것처럼 보이는 현재, 우리네 대중들의 정서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러한 대중들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를 이해해야 한다. 소극장으로 내려간 ‘한국대중음악상’은 마치 이제 막 바깥 세상을 향해 나오려고 하던 다양성을 지평으로 하는 대중음악들이 다시 저 좁은 공간으로 내려보내는 것만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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