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떴’에서 ‘절친노트’까지 패밀리가 대세

SBS의 예능을 되살려준 ‘패밀리가 떴다’의 키워드는 ‘패밀리’다. 굳이 패밀리라 이름 붙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본래는 연령대별로 출연자를 선정해 진짜 패밀리를 만들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유사가족의 캐릭터를 선택한 것이 지금의 패밀리다. 거기에는 어르신 윤종신이 있고, 맏형 같은 김수로, 막내 같은 대성, 연인 같고 여동생 같은 박예진, 엉성한 동생 같은 이천희가 있다. 이효리와 유재석은 둘 사이에는 남매관계를 유지하면서 각자 윤종신과는 이 여사로, 또 대성과는 형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의 멀티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유사가족 관계가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가족관계 내에서의 권력구조 같은 것을 통한 상황극이 그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다. 또 아무리 대결구도와 긴장감 넘치는 게임을 한다고 해도 결국 한 식구로서 밥을 지어먹고 함께 자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의 가족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도 한다. 유난히 추운 불황의 시기에 이런 따뜻한 가족 판타지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울 정도의 매력을 선사한다.

‘패밀리가 떴다’의 패밀리 코드가 대중들의 기호에 맞아떨어져서일까. 지금 SBS의 예능들은 대부분 그 눈높이를 가족에 맞추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인 ‘좋아서’와 ‘절친노트’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스타들의 리얼 육아보고서’라는 긴 제목을 줄여놓은 ‘좋아서’에서 김건모, 김형범, 유세윤, 김희철, 이홍기의 다섯 아빠들은 한 아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갖가지 이벤트를 벌인다. 거기에는 이들이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 속 캐릭터들의 아이와 맺는 관계들이 있으며 여기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웃음의 소재로 잡는다는 점에서 ‘패밀리가 떴다’와 궤를 같이 한다.

한편 ‘절친노트’는 김구라와 문희준이 표상하는 대로 본래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진 연예인들의 화해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소재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현재 ‘절친노트’가 선택한 것은 ‘관계가 어색한 연예인들의 친해지기’ 콘셉트다. ‘절친하우스’에서 오광록과 김종국, 하유미와 김국진이 “우리는 절친입니다”를 노래하며 가까워지는 이야기는 역시 ‘패밀리가 떴다’의 어색한 관계들이 친해지는 과정과 같다. ‘패밀리가 떴다’의 어색남녀 김종국과 이효리의 어색한 시간이 흐를 때, 자막으로 ‘절친노트’가 언급되는 것은 이 두 프로그램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가족 콘셉트를 그 중심에 놓은 것은 작금의 불황의 시기와 잘 맞아 떨어지는 선택이다. 힘겨울수록 우리에게 더욱 간절해지는 두 가지는 웃음과 가족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현실에 부재한 것을 그 속에서 충족하고픈 가족 판타지의 힘이기도 하다. 하지만 웃음 없는 세상에 한바탕 가족 판타지를 가진 웃음 속에 빠져보는 것이 흉이 될까. 이것이 패밀리라는 코드가 웃음과 만났을 때 발휘되는 힘의 원천이다.

캐릭터와 연기자의 힘 보여주는 경종 최철호

KBS 대하사극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는 ‘천추태후’. 그 일등공신은 두 인물이다. 하나는 천추태후 황보수의 아역 역할을 하고 있는 김소은이고, 다른 하나는 경종 역의 최철호다. 그런데 이 두 인물 중에서도 특히 최철호에 대한 관심은 독보적이다. ‘대조영’의 걸사비우 역할을 할 때도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먼저 그 이유는 최철호가 연기하는 경종이라는 캐릭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한 영웅의 탄생을 그리는 사극에서는 영웅이 성장하는 과정에 실질적으로 드라마의 추진력을 만들어줄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필요하게 된다. ‘태조 왕건’의 궁예(김영철), ‘주몽’의 해모수(허준호)와 금와(전광렬), ‘왕과 나’의 조치겸(전광렬) 같은 인물이 그들이다. 이들은 적이 되기도 하고 아군이 되기도 하면서,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해준다.

최철호가 연기하는 경종도 바로 이 범주에 들어간다. 주인공이 천추태후로 성장하기까지 그 비어있는 카리스마를 채워 넣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 경종이란 캐릭터는 지금까지 사극 속에서 이런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과는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광기에 가득한 전형적인 망나니 황제의 모습으로 신하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언동을 일삼으면서도 때론 그 내면 속에 숨겨진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아픔으로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황후로 들어가게 된 황보수(김소은) 앞에서 ‘노리개’운운하며 몰아세우는 흉폭스런 경종은, 사실 황보수가 용종을 잉태했다는 말을 듣고 경망스러울 정도로 달려나갈 정도로 순수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극과 극을 달리는 경종이라는 캐릭터는 어찌 보면 중증의 조울증을 가진 황제처럼 보이지만, 드라마는 슬쩍슬쩍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경종의 쓸쓸한 얼굴을 비춰줌으로써 단지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든다. 황보수를 통해 극에서 극으로 바뀌는 모습 역시 경종에 대한 호감을 끌어올리게 하는 요소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캐릭터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 역할을 연기하는 최철호의 야누스적인 연기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이처럼 드라마에 힘을 부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철호는 짧은 시간 안에 내면 속의 분노 같은 것을 집약적으로 끌어올릴 줄 아는 배우다. 얼굴에 잔뜩 힘을 줄 때면 핏줄이 돋아나고 눈빛이 바뀔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표정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광기와 카리스마와 우수를 넘나드는 눈빛 연기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만의 장기가 아닐 수 없다.

그가 특히 사극에서 주목받은 것은 바로 이런 카리스마와 광기가 교차하는 그의 연기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장길산’에서 장길산의 우직한 친구 우대용 역할로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대조영’의 걸사비우로 이어졌고, ‘불멸의 이순신’에서 자신보다 더 추종되는 이순신에게 묘한 질투심으로 광기 어린 모습을 보여주었던 선조 역할은 지금의 ‘천추태후’의 경종 역할로 이어진다고 보여진다.

‘천추태후’에서 주목받는 경종은 매력적으로 창조된 캐릭터와 궁합이 잘 맞는 최철호라는 배우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경종은 ‘천추태후’라는 드라마의 초반을 이끌어주는 훌륭한 캐릭터이며, 최철호는 그 역할에 가장 적확한 배우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조만간 이 사극의 주인공인 천추태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물러나야 하는 경종이란 캐릭터와 최철호라는 배우에 대해 벌써부터 아쉬움을 표하게 만드는 이유다.

‘특별대우’ 의식이 드라마를 망친다

‘무릎팍 도사’의 신년 첫 게스트로 출연한 이순재는 우리네 드라마의 산 증인답게 거침없이 우리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75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롱런 비결로 그는 “특별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했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찍던 시절에 베테랑 연기자이면서도 나문희와 늦게까지 대사의 톤을 맞췄던 일들을 회고하며, 각자 밴을 따로 타고 와서는 대사도 맞춰보지 않고 연기를 하고 또 끝나면 먼저 내빼버리는 작금의 젊은 연기자들을 꼬집었다. 그가 한 감동적이기까지 한 몇 마디는 그러나 그저 감동으로만 머물기에는 현 우리 드라마가 처한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

제작사와 배우의 특별대우
이순재는 ‘이산’ 촬영 당시 통상 저녁 7시부터 시작되는 스케줄로 밤샘촬영을 하면서도 특별대우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작년 드라마 제작사 협회가 박신양 제재를 통해 불거져 나왔던, ‘쩐의 전쟁’ 번외편 촬영에 대한 박신양의 요구조건들과는 상반되는 이야기다. 박신양은 당시 시간을 나눠놓고 밤 촬영이 될 때는 프리미엄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배우의 최상 컨디션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그 엄청난 프리미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본래 박신양이 늘 주장하는 배우가 가져야 하는 최상의 조건에 대한 요구사항과 제작사들과는 늘 마찰이 있어왔던 게 사실. 드라마 제작사 협회의 박신양 제재는 그저 현 드라마의 침체가 고액 출연료를 받는 몇몇 배우들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 제작사 협회의 내부문건에서 드러난 한류스타들에 대한 ‘특별대우’를 보면 이러한 박신양과의 불편한 관계와 한류스타가 아닌 점 등이 작용했다는 혐의를 지우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결국 이 특별대우의 문제는 어느 한 쪽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와 제작사가 공조한 것이란 점이다.

특별대우 의식이 망치는 드라마 팀웍
이순재는 “대사도 맞춰보지 않고 촬영하고 끝나면 먼저 내빼버리는” 젊은 연기자들을 나무라면서 “드라마는 팀웍”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작금에 벌어진 ‘에덴의 동쪽’ 이다해 하차의 문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이다해 스스로 이 문제는 송승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증언했지만, 지금도 ‘송승헌을 위한 드라마’라는 논란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이동철(송승헌)이란 캐릭터를 위해 연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다해 하차는 이렇게 한 인물에 집중된 드라마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의 하나다.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의 변화는 연기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문제 역시 이순재가 언급한 ‘특별대우’의 문제로 연결된다. 배우가 요구하고 제작사가 용인하는 이 특별대우 속에서 드라마 제작의 팀웍은 만들어지기가 어렵다. 이처럼 팀웍을 깨는 특별대우의 문제는 함께 일하는 배우들을 맥 빠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또한 작품 자체를 망가뜨리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밀어주기식 시상식의 문제
한편 이순재는 그토록 오랜 세월 우리 드라마의 중심에 있었으면서도 대상 한 번 타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기보다는 “자신은 이미 작품을 통해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우리 드라마계의 기둥이랄 수 있는 이순재가 연기대상 하나를 타지 못한 현실은 작년 연말 연기대상에서 벌어진 '에덴의 동쪽' 밀어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또 다른 특별대우의 시상식 버전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김명민과 함께 송승헌을 공동수상자로 넣은 것에 대해서 한류스타에 대한 특별대우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드라마 제작사 협회가 문건을 통해 보여준 한류스타에 프리미엄을 허용하는 상황은 그 시상식 대상의 공동수상 장면이 그대로 재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건에 따르면 김명민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 없는 반면, 송승헌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있다. 이순재의 대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한 치의 아쉬움도 없다”는 말은 거꾸로 시상식의 무의미함을 의미한 것처럼 들린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이순재의 말들은 이처럼 현재 우리네 드라마가 처한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한류의 부상 이후에 드러난 특별대우로 생겨난 거품의 문제다. 이 특별대우는 그러나 배우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을 허용한 제작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순재의 일침은 작금의 드라마 종사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드, 고구려 사극, 한류드라마

이른바 대박 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들의 성적표는 어떨까. 공교롭게도 수목드라마에 포진된 방송3사의 드라마들이 모두 계보의 한 끝을 쥐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이은 ‘종합병원2’와 고구려 사극의 계보를 잇는 ‘바람의 나라’ 그리고 한류드라마의 계보를 이어보려는 ‘스타의 연인’이 그것이다.

대박 드라마의 계보를 이어보려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들 드라마들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종합병원2’는 의드의 원조격인 ‘종합병원’의 시즌제 드라마로 등장했지만 작년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뉴하트’의 절반 정도에 머무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바람의 나라’는 그 원작인 김 진의 만화가 고구려 열풍을 일으킨 주역이지만, 고구려 사극 중흥기를 만든 ‘주몽’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한편 ‘겨울연가’를 꿈꾸는 ‘스타의 연인’은 채 10%에도 못 미치는 부진을 보이고 있다.

계보를 잇는 드라마들이 가진 공통점은 방영 전까지 다른 드라마에 비해 더 관심과 기대를 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종합병원2’는 ‘종합병원’의 이재룡이 또다시 메스를 들었고, 당시 이 작품으로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최완규 작가가 펜을 드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종합병원’이 방영되었던 14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그만큼 많이 변화했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 그리고 ‘뉴하트’에 이르기까지 의드는 계보를 이어가며 그만큼 발전해왔고, ‘종합병원2’는 결국 그 14년의 공백을 채우지 못했다. 변호사이자 의사인 주인공 정하연(김정은)을 새로운 캐릭터로 내세웠지만, 서로 입장차가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의사사회와 변호사 사회 사이에 선 인물의 갈등상황은 새로운 재미보다는 주인공에 대한 매력도를 떨어뜨렸다.

‘바람의 나라’는 김 진 원작이 갖는 무게감에 재작년 ‘태왕사신기’까지 이어져온 고구려사극의 대박 신화, 게다가 ‘해신’을 연출한 강일수 PD 그리고 ‘주몽’의 주인공 송일국까지 한껏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제작되어서일까.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고구려 사극에 대한 판타지가 사라져서일까. ‘바람의 나라’는 현재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끌어 모으고는 있지만(이것도 사극, 그것도 고구려 사극으로서는 낮은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상대적으로 별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스타의 연인’은 ‘겨울연가’의 작가 오수연과 배우 최지우가 함께 만드는 것만으로도 제2의 ‘겨울연가’를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초반부터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은 이 작품이 한류의 부활을 애초부터 기획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바로 이 한류를 예고하는 점이 오히려 이 드라마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었다. 지나치게 일본을 겨냥한 듯한 초반 설정은 국내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호감을 주지 못했다. 또한 ‘겨울연가’가 촉발시킨 한류기획형 드라마들이 가져온 우리네 드라마의 불황은 ‘스타의 연인’의 한류 냄새에 선입견으로 작용한 점이 있다.

작금의 방송3사 수목극이 겪는 시청률 난항이 의미하는 것은 물론 이들 드라마들의 완성도나 작품성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계보에 기대는 것으로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기대가 부메랑처럼 실망으로 다가오거나, 오히려 불필요한 선입견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반 토막 난 수목극은 계보드라마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