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원전비리가 말해주는 끔찍함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원전 비리 뒤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을 끄집어냈다. 흔히들 원자력 발전소라고 하면 홍보 영상을 통해 노출되고 있는 것처럼 마치 안전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일까. 어쩌면 실제 현실은 다르고 다만 그렇게 안전해야만 된다고 믿고 싶은 건 아닐까.

 

'그것이 알고 싶다(사진출처:SBS)'

일본 후쿠시마에서 쓰나미에 의해 촉발된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눈앞에서 보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다른 나라의 일이라고만 치부했던 건 아닐까.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이 아니라 쓰나미가 불러온 불운의 결과물처럼 여긴 데는 그 사안이 너무나 끔찍하기 때문에 우리의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준 우리네 원전의 문제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국내 소비전력의 3분의 1을 책임지는 원자력 발전소지만 만일 사고가 난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우리는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통해 목도한 적이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취재한 한 인물의 2의 세월호가 원자력 발전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이것이 남일 아닌 우리의 일이라는 걸 새삼 실감하게 만들었다.

 

오래된 원전 부품을 신품으로 교체하는 건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일 것이다. 하지만 취재에 응한 부품 납품업체 직원의 증언에 의하면 구품을 새 부품처럼 둔갑시켜 재납품하는 비리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기계팀장이 업체와 짜고 부품 교체를 하지도 않고 한 것처럼 보고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적어도 20억에서 30억의 돈이 오간다고 한다. 71년에 기공되어 30년 연한이 끝나 10년을 다시 연장하는 고리 1호는 그래서 지금 심각한 상태라는 것.

 

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소에 적어도 500만 개의 부품이 있는데 이 부품 모두가 정상적으로 돌아야 비상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부품 납품 비리가 자행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진비리 중간 수사결과를 보면 이 사건으로 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 전 현직 직원들과 납품업체 직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비리가 깊다는 것이다.

 

원전 부품을 납품하는 거래에 있어서도 아예 사양서를 납품업체가 만드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납품업체 선정 수주 과정에서도 업체들 간의 담합이 공공연히 벌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즉 원전 비리가 고리 1호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원자력 발전소는 연료봉을 냉각시키기 위한 냉각수 공급이 필수적이다. 만일 전기가 끊겨 냉각수 공급이 안 된다면 연료봉의 온도가 몇 천도까지 올라가 결국은 폭발하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바로 그 사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고리 1호 원전에서도 벌어졌다는 것. 작업자 실수로 전원이 전부 끊긴 상황에서 작동했어야 할 비상 디젤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12분 간 정전되는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소폭발 전 단계까지 간 실로 절체정명의 위기상황이다.

 

하지만 한수원측은 이 중대한 사고를 은폐 축소하려 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팀의 질문에 한수원측은 “12분 만에 전원을 복구했기 때문에 영향은 미미했고 또 직원들의 대처로 잘 수습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그런데 왜 굳이 일지까지 조작하려 했던 것일까. 이미 한수원측의 안전 불감증은 그 수위를 넘고 있다고 전 한수원 직원은 증언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역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무시함으로써 이렇게 큰 사고로 이어졌다고 한다. 일본 전 총리는 이 피해 규모가 전쟁에 준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해일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안전에 대한 과신이나,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쉬쉬하는 문화는 그 결과가 너무나 참혹하다는 점에서 결코 그냥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간만에 볼만한 <개과천선>, 왜 조기종영?

 

애초에 18부작이었던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16부로 조기종영 한다는 소식에 드라마 팬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간만에 볼만한 드라마가 아닌가. 지금껏 봐왔던 변호사 소재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있고,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정신이 살아있는데다, 김명민과 김상중의 명불허전 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었다. 그런데 조기종영이라니.

 

'개과천선(사진출처:MBC)'

시청률이 과도하게 떨어진 것도 아니다. 중간에 두 차례 결방을 한 탓에 드라마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지면서 시청률이 조금 떨어진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완성도와 깊이를 가진 드라마가 9%대를 유지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개과천선>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금융 전문 변호사의 세계는 그 자체로 대단히 복잡하다.

 

복잡한 금융 전문 변호사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리얼하게 다루게 된 건 그것이 실제로 대중들을 눈속임하기 위한 금융의 술책이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금융의 세계는 일반 서민들이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금융전문가들도 컴퓨터를 돌려봐야 그 결과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 서민들은 전문가들을 말을 그저 신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만일 믿어왔던 은행조차 복잡한 금융상품을 내놓으며 뒤통수를 치려한다면 어떨까.

 

<개과천선>이 다루는 이야기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들이다. 겉으로 보기엔 신뢰의 표상처럼 보이는 금융권이나 대기업의 이면을 슬쩍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초반에 다뤄진 몇몇 에피소드들도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졌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 드라마의 대본은 날카로웠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에피소드도 있었고, 종금사태를 소재로 다룬 것도 있었다.

 

이렇게 완성도도 높고 메시지도 충분히 의미 있는 <개과천선>의 조기종영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다. MBC측은 이것을 김명민의 스케줄 탓이라고 얘기했지만 한 드라마의 조기종영이 그저 배우의 스케줄 하나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건 어딘지 방송사의 책임회피 같은 느낌이 짙다.

 

김명민 측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스케줄로 인해 그렇게 결정된 것 같지만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김명민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고는 해도 결방만큼 촬영시간도 충분히 있었다는 걸 감안해보면 조기종영을 단지 스케줄 탓으로 돌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이미 3회부터 생방송 일정이었다는 드라마 제작현실은 결방에도 벌충을 하지 못한 속사정을 드러낸다.

 

즉 이 모든 책임을 김명민이라는 배우 한 사람의 스케줄 탓으로 돌리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김명민 측에서 말하는 생방송 촬영의 힘겨움은 물론 배우의 어려운 입장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조기종영의 이유로 제시되긴 어렵다. 그 많은 생방송 촬영이 드라마판에서 반복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드라마가 조기 종영된 적이 있던가. 방송사는 김명민의 스케줄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김명민 측은 힘겨운 제작현실 때문이라고 얘기하지만 어딘지 그 두 가지 이유 모두 궁색한 변명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

 

배우 한 사람의 힘이 언제부터 방송사의 편성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게 됐단 말인가. 만일 <개과천선>이 더 높은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였다면 과연 MBC는 역시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현실적으로 말해 방송사의 의지가 있었다면 배우의 스케줄 조정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았을까. 혹여나 의심되는 부분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감 없는 현실비판이 누군가에게는 몹시 불편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과연 이 문제가 단지 스케줄 문제와 생방송 드라마 제작현실 때문 만이었을까. 좋은 드라마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게 된 현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개과천선>의 질문, 변화는 가능한가

 

시간

MBC <개과천선>은 시간에 대한 드라마다. 거기에는 과거가 있고 과거로부터 단절된 현재가 있으며 그 현재가 만들어갈 미래가 있다. 김석주(김명민)는 기억상실을 겪게 되는 사건을 통해 과거로부터 단절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 속에는 자신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있다. 차영우펌에서 에이스로 일하며 관계해온 대기업의 인물들은 김석주가 자신들을 대변해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하지만 과거와 단절된 김석주는 현재라는 시간대에 새로운 자신을 세우려 한다. 심지어 과거의 자신이 만들어놓은 것들을 현재 뒤집으려 한다. 현재는 과거와 대결한다. 그의 약혼자인 유정선(채정안)과 그녀의 집안인 유림그룹은 과거로부터 튀어나온 이들이지만 현재의 그와 약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의 김석주와 유정선의 관계는 이익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의 김석주는 진정으로 유정선을 걱정하는 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집안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위기에 처한 유정선을 구해주는 과정은 현재와 과거의 대결에서 그의 승리를 보여준다.

 

시간과 기억

기억으로 단절되어 있지만 시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병을 앓고 있는 김석주가 키우는 개는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인권변호사인 아버지 김신일(최일화)도 마찬가지다. 인권변호사의 삶이 가족을 고통스럽게 한 것에 대한 반발로 김석주는 과거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리나, 그 기억을 지워버린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변화에 이상함을 느낀다.

 

흥미로운 건 아버지 또한 치매를 앓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점 그의 기억은 사라져간다. 만일 아들이 과거의 기억을 잃고 아버지 또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나 위태로워질까. 관계란 기억의 축적이 만들어낸 산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가냘픈 기억의 끈은 이제 과거의 기억을 잃고 현재의 기억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아들 김석주에 의해 이어져갈 것이다. 아버지를 도와 은행에 피해를 본 중소기업을 도우며 그는 아버지를 닮아간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선택

시간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기억으로 축적된다. 김석주는 차영우펌에 사직서를 내지만 그 시간에 강직한 판사였던 전지원(진이한)은 차영우펌에 들어온다. 김석주의 선택과 전지원의 선택은 그래서 이제 그들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고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견고한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선택하려 하지만 시스템은 언제든지 그 사람을 바꿔치기 한다. 시스템에 입장에서 전지원은 김석주의 과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시스템과 대항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차영우펌이 가진 그 시스템의 견고함은 어쩌면 김석주 자신이 과거에 이룩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차영우펌을 나온 김석주는 그래서 또다시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이 괴물 같은 시스템과 맞서게 된다. 과거는 또다시 현재와 대결한다.

 

변화, 개과천선은 가능한가

<개과천선>이 김석주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중대한 미래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점이며, 그 선택으로 만들어진 과거를 되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이다. 기억이라는 견고한 틀로 과거와 현재가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인간은 사실 변화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만일 과거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김석주는 그 기억의 일관성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그냥 살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변화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김석주 변호사가 과거 그러했듯이 현실에서는 도대체 인간이 어쩌면 저런 끔찍한 선택을 아무런 가책 없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하는 것이다. 각종 금융시스템은 그 숫자들 뒤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은폐한다. 변호사들이 다루는 법조항들은 그 문구들 뒤에 달린 누군가의 인권을 지워버린다. 인간이 아니라 그저 숫자를 다루고 법조항을 다루고 있다는 착각은 끔찍한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은 기억의 조작이다. 시스템이 조장하는 일종의 치매다.

 

김석주 변호사는 그래서 그렇게 시스템에 연루된 과거를 지워버리고 시스템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과거의 기억을 잃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시스템이 잠시 인간성에 대한 기억상실을 조장했던 기억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시스템과 대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변화는 불가능하지 않다. 흔히들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이들이 느끼는 그 순간의 무한한 자유가 새로운 선택들을 가능하게 하듯이. 김석주 변호사가 차영우펌을 빠져나올 때 그를 향해 축복처럼 쏟아지는 햇살처럼. 변화는 가능하다.

<빅맨>, 우리가 강지환의 판타지에 빠져드는 까닭

 

이런 회사, 이런 사장이 과연 존재할까. KBS 월화 드라마 <빅맨>에 등장하는 현성유통과 그 회사를 이끄는 김지혁(강지환) 사장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판타지적 공간과 인물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데다 현성그룹이라는 대기업 강동석(최다니엘)의 사주로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마저 끊어져버린 이 회사를 김지혁은 변치 않는 의리와 뚝심, 원칙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다.

 

'빅맨(사진출처:KBS)'

김지혁이 현성그룹 강동석의 압력으로 중소기업들의 물품조달을 받지 못하게 되자 순진유업 사장을 설득시키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과거 김지혁의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순진유업 사장이지만 김지혁의 회사에 물건을 납품한다는 건 대기업 현성그룹과 관계를 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마도 이런 대기업의 갑질과 중소기업의 어쩔 수 없는 커넥션은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 것이다.

 

현실에서 순진유업 같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압력을 이겨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선택한다. 김지혁의 강직함과 순수함에 감복받은 순진유업 사장은 다른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 함께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자고 나선다. 이에 분노한 강동석은 순진유업과 현성유통을 동시에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썩은 우유 사건을 조작하지만 여기서도 김지혁은 그 사건 조작에 이용된 노숙자를 직원으로 끌어안음으로써 오히려 강동석을 곤란하게 만든다.

 

법정관리를 벗어나기 위한 심사에서 강동석의 사주를 받은 변호사는 현성유통의 인원감축과 임금삭감을 요구한다. 김지혁은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맞선다. 그런 그에게 현성유통 노조위원장인 김한두(이대연)가 부랴부랴 직원들이 만든 임금삭감 동의안을 들고 찾아온다. 김지혁이 직원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말하자 김한두는 이렇게 말한다. “사장님은 저희한테 가장 같은 분입니다. 집안이 다 망하게 생겼는데 가장한테만 그 책임 지울 순 없는 일 아닙니까. 몇 끼 굶더라도 가족들도 함께 도와야죠. 사장님 저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가장입니다. 희생이 아녜요. 가족끼리 서로 돕는 거죠.”

 

이것은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노사가 어떤 합의를 통해 회사를 살려낸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장을 가장이라 부르고, 임금삭감을 희생이 아닌 가족끼리 돕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런 회사는 아마도 회사원들이 꿈꾸는 이상 속에서나 등장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현성유통을 되살리기 위해 내놓은 재래시장 시스템 도입역시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의 공존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시장이 키워준 시장의 아들 김지혁은 이를 성사시킴으로서 현성유통을 기사회생시킨다.

 

<빅맨>이 김지혁이라는 소시민의 영웅을 등장시켜 보여주는 건 현실의 갈증을 채워주는 판타지다. 이 드라마의 힘은 바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에 현실이 없는 건 아니다. 그 현실은 강동석(최다니엘)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대기업의 행태에서 드러난다.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기업들끼리 담합을 하고 중소기업에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나, 이득 앞에서 시장상인들의 생업 따위는 개의치 않고 부지를 사들이고 대형마트를 세우는 모습, 탈법적인 행위를 하고도 권력기관을 움직이고 변호사를 대동해 죄를 짓고도 버젓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강동석과 현성가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우리네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결국 <빅맨> 김지혁이라는 판타지는 강동석이라는 현실을 무너뜨리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김지혁이라는 판타지와 강동석이라는 현실은 아이러니한 세상의 실체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판타지처럼 그려지지만 김지혁의 행동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상식적인 덕목들을 보여준다. 반면 현실로 다가오는 강동석의 행동은 심지어 소시오패스처럼 보이는 비상식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비상식적인 현실과 판타지에서나 찾아보게 된 상식적인 덕목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잔혹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맨>이 제시하는 두 개의 세계에 대한 분명한 대비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우리가 꿈꿔야할 세상은 김지혁으로 대변되는 사장이 아닌 가장, 직원이 아닌 가족 같은 회사인가, 아니면 강동석으로 대변되는 어딘지 음모로 가득한 돈이면 뭐든 된다는 소시오패스의 회사인가. 김지혁이 보여주는 바람직한 회사와 건강한 가족은 강동석이 보여주는 부패한 회사와 병든 가족과 대비된다. 어째서 가족 같은 회사라는 판타지는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이것이 <빅맨>이라는 판타지에 깊이 빠져들게 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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