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긍정론, '브레인'의 부정론

'브레인'(사진출처:KBS)

공교롭게도 월화극 두 편이 모두 뇌 질환을 다뤘다. 종영한 '천일의 약속'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서연(수애)과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지형(김래원), 그리고 그녀를 이해하고 같이 아파하는 주변인물들을 통한 인간애를 다뤘다. 반면 '브레인'은 어린 시절 뇌수술을 받다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뇌수술 전문의가 된 이강훈(신하균)이 역시 뇌종양에 걸린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그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 과정을 다뤘다.

두 사람 다 죽음을 맞이하거나 목도해야 했지만, 바로 그 죽음을 다루면서 보여주는 세상에 대한 시선을 사뭇 다르다. '천일의 약속'이 서연의 죽음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그래도 인간적인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이고, '브레인'이 죽은 어머니 앞에 오열하는 이강훈을 통해 보여주는 건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판타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연은 점점 기억이 사라져가고 결국에는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참혹한 상황을 겪지만 이것을 '새드 엔딩'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는 결국 죽음이 아니라 기억의 문제를 다룬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지형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는 서연은 비극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진짜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물론 '천일의 약속'이 제시한 서연의 삶이 전혀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토록 담담하고, 예의 있는 주변인물들의 모습들은 분명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다는 걸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즉 '천일의 약속'은 비극적인 사랑을 다루지만 그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브레인'은 다르다. 이 도무지 웃음이라는 걸 잊어버린 듯 잔뜩 찡그리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살아가는 이강훈은 지독한 현실을 아무런 판타지 없이 드러내는 인물이다. 자신이 연구한 치료제로 어머니가 살아나는 '기적' 같은 것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다. 만일 의사가 아니었다면 오히려 더 담담했을 수 있었겠지만, 스스로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 무력감은 더 컸을 것이다. 그는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과 연루되어 있다 여겨지는 김상철(정진영) 교수 앞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를 살려 달라" 애원하는 인물이 아닌가. 어머니의 죽음 앞에 "수술해 달라"고 애원하며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이강훈의 아픔이 드러나는 장면이 더 슬픈 건 그 때문이다.

'천일의 약속'이 죽음 속에서도 남긴 긍정적인 미소보다, '브레인'의 이 처절한 눈물이 더 슬프고 공감되는 건 아마도 작금의 현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디 지금 우리가 밟고 사는 세상이 긍정적인 미소로 바뀌어질 수 있는 세상인가. 그런 긍정론마저 사치로 여겨지는 세상이 아닌가. 그래서 '브레인'의 이 처절할 정도로 무너지고 부서지는 이강훈이란 캐릭터에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는 것을 게다. 그의 독기 오른 모습에서 우리는 그를 그렇게 만든 이 지독한 세상을 읽어내는 것이니까.

'천일의 약속'보다 '브레인'이 더 공감되고 더 슬프게 여겨지는 건 바로 이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이다. 한 사람이 기억을 통째로 잃어가는 치매와 그것을 주변사람들이 이해하고 희생해주는 삶의 이야기는 분명 아름다운 것이지만,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 뛰어다니는 아들에게 "그냥 가게 내버려 둬"라고 말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한 가난한 어머니가 주는 생생한 현실의 느낌은 느끼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과연 그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브레인'은 이강훈을 통해 그걸 질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가수' 나오면 꼭 해야 되는 것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긴장요? 어떤 무대에서든 노래하기 2-3초 전에는 항상 긴장해요. 항상 설레고 내 본인 스스로 이건 평가받기 위한 행동이 아니고 나는 가수니까 나는 공연하러 왔고 노래 부른다... 그 나머지(평가)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해주세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몇 점을 받을까 그런 긴장은 전혀 없고 제가 제 입으로 누굴 존경한다고 했는데 그 분 곡을 망칠까봐 그 부분에서는 좀 긴장을 해요."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첫 등장한 박완규의 모습은 여느 가수들과는 사뭇 달랐다. 지금껏 이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은 모두가 똑같이 "이렇게 긴장될 줄 몰랐는데 정말 긴장 된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런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첫 출연하는 가수들에 따라붙는 카메라와 질문은 거의 비슷한 것들이었다. "떨리지 않냐?"고 묻고 어떻게든 긴장하는 모습을 찍어 넣는 것. 하지만 박완규는 확실히 달랐다. 윤종신이 계속해서 "떨리지 않냐?"고 묻자 심지어 "안 떨리는 걸 떨린다고 해야 하나?"고 반문하기도 했다.

또 그는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 대해 하는 짧은 인터뷰에서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지금껏 모두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이고 "대단하다"는 식의 멘트를 날리는 것에서 벗어나 솔직한 자기 마음을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얘기했다. 김경호가 부른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에 대해서 박완규는 "재해석이 발전적으로 됐다. 그리고 좀 더 강렬하게 표현이 됐다"고 말하면서도 "춤만 좀 안 췄으면 좋겠는데 꼭 춤을 추네 형이."하며 농담을 섞어 할 얘기는 했다. 또 거미의 '날 떠나지마'에 대해서는 "최고의 선곡은 아니었다고 본다."며 "거미씨 정도 가창력 되면 굳이 액션하지 않아도 되요."하고 말했고, 자우림의 무대에 대해서는 "늘 날 설레게 한다. 오늘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런 느낌."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순위 발표를 하는 순간에도 박완규는 차분했다. 김경호에 이어 2위가 됐지만 거기에 대한 큰 기쁨이나 아쉬움 같은 것도 거의 표현하지 않았다. 그가 인터뷰에서 계속 말했듯이 '나머지는 청중평가단에게 맡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금껏 '나가수'에 등장한 가수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난데없는 '태도 논란'이 거론됐다. 하지만 이것을 과연 '불성실한 태도'라고 봐야 하는 것일까.

'나가수'에 나오면 늘 해야 하는 리액션들이 있다. 즉 "긴장 된다"고 말하고 떨어야 하고, 무대에서 노래가 끝난 후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무대를 내려서야 하며, 다른 가수들의 노래에는 무조건 "놀랍다", "대단하다"고 상찬해야 한다. 순위 발표 시간에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순위에 엇갈리는 희비를 표정으로 드러내주어야 하며, 순위 끝에는 다음 경연에 대한 각오를 덧붙여줘야 한다. 이미 이건 '나가수'의 상투적인 장면들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장면들이 얘기하는 건 하나다. '나가수'라는 무대는 그만큼 가수들을 긴장시키고 그럼으로써 가수로서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최고의 무대라는 얘기다.

물론 '나가수'는 여느 무대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만큼 가수로서의 자기 존재 증명을 하는 무대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긴장감도 높고 그만큼 뽑아내는 능력치도 훨씬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 똑같은 형태의 리액션으로만 일관되는 건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에 좋은 일이 아니다. '나가수'는 "나는 가수다"라는 그 제목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가수라는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각자의 무대에 서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간 보이지 못했던 가창력을 보여주고, 누군가는 끼를 보여주며, 또 누군가는 새로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박완규는 모두에서 말했듯이 "선배들의 곡들이 하나둘씩 대중 여러분들께 알려지는 불려지고 또 즐길 수 있는 곡이 되어가는 그런 문화의 흐름을 보면서 걸 그룹이나 아이돌 스타일의 음악에 너무 잠식됐다는 그런 상대적인 피해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데서 "처음에는 (점수 매기는 것에) 기분 나빴던" '나가수'를 출연하려 한 것이다. 박완규의 이런 출사표는 지금껏 다른 가수들이 '나가수' 출연을 통해 보여준 스토리와 다른 스토리를 기대하게 한다. 모두가 했던 그래서 그렇게 학습된 리액션을 늘 새로운 가수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나가수'를 자칫 정체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박완규의 '도발'은 '나가수'의 상투성을 넘어선 것으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박완규의 말대로 가수가 긴장할 것은 순위나 경쟁이 아니라, 자신이 부르는 곡을 망칠까봐 생기는 음악적인 것이 아닐까.


'K팝스타', 과연 오디션의 한계를 넘을까

'위대한탄생'(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의 우승자인 백청강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강원도 관광홍보대사에 위촉되고 자잘한 행사무대에 종종 서고 있지만 그를 방송에서 발견하는 건 어렵다. 그나마 '위대한 탄생'이 배출한 가수들 중 권리세나 데이비드오는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얼굴을 비췄지만 다른 가수들은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이태권은 거의 방송 존재감이 없고, 그나마 미라클맨 손진영은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에서 노래가 아닌 연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슈퍼스타K' 역시 배출된 가수들의 방송진입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허각이나 장재인이 그나마 간신히 KBS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지만 타 방송사 출연은 여전히 장벽이다. 장재인은 키위엔터테인먼트로 소속되어 작곡가 김형석과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역시 방송 활동은 뜸한 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심지어 '슈퍼스타K' 심사위원이었던 이승철은 장재인이 '못 뜬' 이유로 프로듀싱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물론 이 지적이 적절했다 여겨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특정 방송사의 오디션이 배출한 가수들의 향후 활동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디션이 배출한 가수가 거대 기획사에 소속된다면 어떨까. 많은 이들은 거대 기획사라면 뭔가 다를 것이라 여긴다. 그들은 확실히 방송에 힘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힘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K팝스타'가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과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양현석과 박진영 그리고 보아가 각 거대 기획사의 대표로서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는 사실은 '성공가능성'에 확실히 다른 느낌을 준다. 여느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우승자가 된다고 해도 거기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반면, 'K팝스타'는 다르다. 우승을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기획사를 바로 선택할 수 있다.

게다가 기획사의 관례대로라면 일정의 연습생 기간을 거쳐야 하지만 'K팝스타'의 우승자는 '즉시' 데뷔할 수 있다는 특전이 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생각처럼 쉬운 일일까. 이것은 '슈퍼스타K2'가 발굴한 가장 끼 있는 가수 강승윤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YG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면서 강승윤은 'YG 연습생'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아직 부족하다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과 그래서 좀 더 자기 색깔을 벼리겠다는 의지가 이 파격적인 타이틀에 덧붙여졌지만, 어찌 보면 이것 역시 당장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을 말해주는 건 아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연습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마이더스' OST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출연하고 있다.

'K팝스타'(사진출처:SBS)

즉 'K팝스타'가 차별화 지점으로 내세운 것처럼 현실은 녹록지 않다. 특정 한 방송사가 주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배출한 가수들에 대한 타 방송사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따라서 'K팝스타'처럼 기획사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를 배출하는 것은 기획사 입장에서도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는 셈이다. 즉 각 기획사 오디션에서 뽑혀져 연습생 과정을 거치고 데뷔한 가수들은 여러 방송사의 출연에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반면, 'K팝스타'처럼 한 방송사에서 뽑힌 가수는 이후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보다 더 큰 장점이 있기 때문에 거대기획사의 참여가 가능했을 것이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다. 확실히 오디션 프로그램의 가수 양성 시스템은 기존 거대 기획사들의 양성 시스템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속도도 빠르다. 허각이나 울랄라세션이 그렇듯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치면 이미 기성가수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이것은 기획사들 입장에서도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가수활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방송 출연의 기회가 발목을 잡을 뿐이다. 만일 이 부분이 해결된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방송 시스템 활용은 어쩌면 앞으로의 기획사 오디션의 대안이 될 가능성도 높다.

'K팝스타'가 주목되는 건 그 때문이다. 거대 기획사들이 참여하고 있고, 그들은 아주 현실적인 이득들을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K팝스타'는 과연 현재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부딪치는 고질적인 방송사들 간의 알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획사가 일방향적으로 배출한 스타에 대중들이 호응해주던 시대는 점점 저물고 있다. 대신 대중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스타를 원한다. 이런 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스타 양성 시스템은 분명 의미가 있다. 이런 상황에 방송사들도 이제는 문호를 열 필요가 있지 않을까. 'K팝스타'가 그 벽을 허물어낼 수 있다면, 어쩌면 우리 손으로 뽑아 세계가 열광하는 진정한 K팝스타를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정글', 우리가 생존에 열광하는 이유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디스커버리 채널 '인간과 자연의 대결(man vs wild)'의 베어 그릴스는 이른바 생존 리얼리티쇼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그는 말 그대로 오지에 로프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가 생존하면서 제한된 시간 안에 오지를 탈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벌레 정도는 생으로 꿀꺽 하기 일쑤고(단백질 보충을 위해서), 뱀을 잡으면 '최고의 만찬'이라고 한다. 살을 에는 듯한 로키 산맥 강물을 배낭 하나에 의지해 맨몸으로 래프팅(?)을 하고, 절벽 정도 오르내리는 건 일도 아니다.

'1박2일'의 강호동은 가끔 프로그램을 통해 우회적으로 베어 그릴스를 언급한 적이 있다. '야생 버라어이티쇼'를 부르짖던 그에게 베어 그릴스가 보여준 진짜 생 야생 리얼리티쇼는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겨울에 바닷물이나 계곡물에 입수하는 것 정도는 사실 야생도 아니었던 거다. 실제로 그는 베어 그릴스 같은 진짜 생 야생 리얼리티쇼를 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만일 그가 다시 복귀하게 된다면 아마도 이런 프로그램이 가장 적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야생에서 생존하는 모습 그 자체가 그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어 그릴스 같은 생 야생 리얼리티쇼의 기회는 김병만에게 먼저 왔다. '정글의 법칙'은 물론 '인간과 자연의 대결'만큼 생 야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그 어떤 리얼 프로그램보다 더 야생이다. 아프리카 악어섬에서 있었던 생존기에서 김병만과 그 일행들은 노숙을 하고 벌레와 뱀을 잡아먹고 스스로 뗏목을 만들어 섬에서 탈출해야 했다.

물론 '인간과 자연의 대결'과 다른 점도 있다. 김병만이 가진 달인 캐릭터는 이 다큐 같은 리얼리티쇼에 예능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 야생 환경 속에서도 김병만은 놀랍게도 예능을 선사한다. 악어섬을 탈출해 보여준 힘바족과의 공존 과정은 '정글의 법칙'만의 차별성을 만들었다. 단지 자연과 대결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연과 동화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좀 더 가족적인 야생 리얼리티쇼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자연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다. '지옥의 정글' 혹은 '극한 생존의 땅'으로 불리는 파푸아의 정글은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되는 자연을 보여준다.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쏟아지는 스콜과 도처에서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는 벌레들, 그리고 이름도 잘 알 수 없는 스치기만 해도 불에 덴 듯한 뜨거움을 안기는 풀들까지. 정글 체험 자체가 처음인 새 멤버 김광규는 벌레에 대한 알레르기 증세로 몸이 퉁퉁 붓는 고통을 호소하다 하루 만에 긴급 귀환되었다. 예고편에서 잠깐 보인 것이지만 물살에 휩쓸리고 벌레의 습격을 받는 그 극한의 생존 공간에서도 과연 이들은 악어섬에서 보여준 것처럼 예능을 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극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생존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누구나 갖고 있는 '생존본능' 때문이다. 평상 시 안전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서 굳이 발현되지 않는 이 '생존본능'을 그 극한 상황의 리얼리티쇼에서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두 가지 점에서 고무된다. 하나는 그런 본능이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있는 이 안전한 문명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김병만족이 '정글의 법칙'의 생존공간에서도 더 가족을 떠올리고, 그들 자신들도 유사가족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존이 그저 극한 야생에 대처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것은 무언가에 대한 희망, 그 자체다.

'인간과 자연의 대결'의 베어 그릴스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종종 말하길 생존본능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발견하지 못할 뿐이라고 한다. 사실 산다는 게 늘 치열한 건 아니라 애써서 생존하겠다는 태도는 필요가 없죠. 하지만 우리 내부의 어떤 요소들은 자극과 격려가 있어야 발휘되는 것이 있죠. 지금 저의 경우에는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 등에 하루 종일 매고 다니는 게 배낭이 아니라 제시(2살 난 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만으로도 나는 원동력이 되요." 어쩌면 우리가 '생존'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극한상황을 통해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기 늘 있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가족 덕분에 이 도시의 정글에서 우리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