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

같은 것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재미를 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먹방과 쿡방이 이미 대세일 때 불현듯 나타나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버린 백종원이 대표적이다. 음식에 진심인 데다, 요리실력은 기본이고, 프랜차이즈를 해오며 몸에 밴 사업가 기질과 무엇보다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방송능력까지 더해져 그는 ‘요식업계의 사부님’으로 급부상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 정반대의 기획들이 나오게 된다. 백종원을 세워 할 수 있는 방송을 기획하는 식이다. 

 

최근 여행예능에는 기안84가 바로 ‘백종원’ 같은 존재다. MBC <나혼자 산다>에서 간간히 기행에 가까운 여행을 선보이며 웃음을 줬던 기안84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통해 제 물을 만났다. 마치 옆집 놀러가듯 대충 가방에 옷가지 몇 개 넣고 여행을 떠나는 기안84는 아마존강이나 갠지즈강에도 스스럼없이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현지인들의 삶에 보다 깊숙이 뛰어들어 그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태어난 김에 세게일주>는 이른바 ‘극사실주의 여행’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 색깔은 당연히 기안84의 이런 ‘현지에 스며드는’ 모습에서 나온다. 이러한 여행 스타일은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여행 크리에이터의 여행을 닮았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는 대표적인 스타 여행 크리에이터인 빠니보틀이 함께 했고 시즌2에서 덱스가 합류함으로써 보다 안정된 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돌아온 시즌3, 이번 여행지는 아프리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역시 어디서 봤던 것 같은 그런 아프리카는 결코 아니다. 물론 이들이 가는 마다가스카르는 <정글의 법칙>이나 최근 <지구마불 세계여행>에서 원지가 고생고생해 찾아갔던 곳이기도 하지만, 기안84가 보여주는 마다가스카르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원시의 바다에서 원주민들과 작살낚시를 하고 싶어하는 기안84의 소망에 걸맞게 제작진은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비행기와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벨로수르메르라는 곳을 여행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에티오피아까지 12시간, 거기서 마다가스카르까지 5시간, 그 곳 수도 안타나나리보 공항에서 모론다바로 경비행기를 타고 가서 또 배를 타고 벨로수르메르까지 가는 머나먼 여정이 펼쳐졌다. 

 

그 곳까지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기안84 특유의 현지 밀착 여행이 주는 묘미가 도드라졌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져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된 기안84가 안타나나리보 공항 근처 도시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을 때 길거리로 나와 빗속에서 현지인들이 파는 라면을 먹는 대목부터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차양막도 없는 거리에서 빗물이 들어가도 대충 끓여 내주는 라면을 쪼그리고 앉아 먹는 모습은 기안84표 여행이 시작됐음을 알려줬다. 또 모론다바에서 배를 기다리며 현지인이 바닷가에서 파는 음식들을 먹는 모습 또한 압권이었다. 너무나 맛있게 먹어 현지인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드디어 배를 타고 찾아간 벨로수르메르에서 기안84는 해변에서 만난 원주민 청년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 자신이 그토록 꿈꿔왔던 작살낚시를 시도했다. 물론 상상과 현실은 달라서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즉석에서 회를 쳐 공수해온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모습은, 맛있게 먹는 기안84와 질색하는 원주민 청년들의 대비로 웃음을 줬다. 마치 기안84가 더 원주민 같은 모습이 연출된 것이었다. 먼저 기안84 혼자 시작하는 야생 그대로의 여행을 보여준 후, 빠니보틀과 덱스의 합류를 통해 색다른 케미를 이어가는 구성방식은 시즌2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번 시즌3는 시즌2의 엔딩에 기안84가 ‘바다로 가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던 것처럼 원없이 바다를 눈에 담게 해주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 도입 부분에 프롤로그처럼 들어간 거대한 배를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이들이 함께 끄는 모습은 바다와 현지인이라는 이번 여행의 색깔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벌써부터 연말 연예대상에 기안84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올해의 대상감이라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MBC 예능의 올해 성과라고 해도 될법한 프로그램이면서, 최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이 탄생시킨 예능으로서도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래서일까. 시즌3가 기안84의 연예대상에 쐐기를 박을지를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사진:MBC) (<일간스포츠>에도 게재된 원고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의 질문, 우린 과연 진짜 말하고 듣고 있는 걸까

사랑한다고 말해줘

“제 얘기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정모은(신현빈)은 차진우(정우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저 평범하게 누구나 할 법한 그 말이 새삼스럽게 들린다. 차진우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농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듣는다’는 건 그래서 다른 의미로 들린다. 그저 소리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마음’일 수 있다는.

 

그 날은 정모은에게는 너무나 힘들 날이었다. 배역 캐스팅이 되어 기뻐하며 촬영장에 갔지만 알고 보니 뺨 맞고 물세례를 받는 역할이라 빠른 촬영을 위한 더블 캐스팅이었다. 그래서 수없이 번갈아가며 뺨을 맞고 물세례를 받으며 촬영을 끝냈지만 자신이 나올지 더블 캐스팅된 다른 엑스트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없이 초라해진 마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모은은 차진우를 떠올린다. 힘들 때 부르면 오겠다고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문자를 남겨도 보지 않는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던 차에,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정모은은 집 앞에 그가 서 있는 걸 보고는 꾹꾹 눌렀던 감정이 터져나온다. 돌아선 그의 등을 살짝 잡은 채 눈물을 쏟아낸다. 정모은은 돌아볼까봐 등뒤로 숨으려 하고, 차진우 역시 그에게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는 걸 직감하며 그 눈물을 보이기 싫어하는 정모은을 위해 돌아서지 않는다. 

 

감정을 추스른 정모은은 자신도 모르게 차진우에게 그 날의 일들을 늘어놓는다. “저 오늘 처음으로 대사있는 역할 촬영한다고 엄청 신났었거든요. 근데 막상 가보니까 긴장도 많이 되고 정신도 하나도 없고 잘 하고 왔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좀 서러웠나 봐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참고...” 그렇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정모은은 깨닫는다. 말을 듣지 못하는 차진우에게 자신의 말이 너무 많았다는 걸.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차진우는 아니라며 미소를 지어주고는 핸드폰에 이렇게 찍어준다. ‘수고했어요. 잘 쉬길 바라요.’ 그 말은 힘겨운 날을 보낸 정모은에게 작지 않은 위로가 됐을 게다. 

 

그래서 훗날 만나 그 날 일을 이야기하며 고맙다는 정모은에게 차진우는 의외의 답변을 핸드폰을 찍어 보여준다. ‘사실... 거의 듣지 못했어요. 조금이라도 더 들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실상은 너무 어둡고 말이 빨라서 입술 모양을 읽을 수 없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정모은은 그 답변에서 ‘노력’이라는 단어에 더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차진우에게 이렇게 익숙지 않은 수어로 말한다. “더 고마워요. 내 얘기를 들으려고 노력해줘서.”

 

자신이 듣지 못해 대화를 하는 것이 답답하지 않냐는 차진우의 물음에 정모은 역시 의외의 말을 꺼낸다. “솔직히 저는 핸드폰 없이 얘기하는 것도 좋아요. 왜 그런지 한 마디로 설명할 순 없지만 정말이에요. 음.. 나도 모르게 한 혼잣말도 다 알아주는 것 같고. 그래서 가끔 잊어버려요. 당신이 듣지 못한다는 거.” 그러면서 오히려 차진우에게 수어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수어를 잘 못해서 힘드시겠지만.”

 

타인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건 무슨 의미일까. 정모은이 말하는 ‘듣는다’는 건 단지 귀로 소리를 듣는다는 그런 의미는 아닐게다. 우리는 매일 같이 많은 말들을 듣지만 과연 그건 진짜 듣는 걸까. 그저 지나가는 소리들일 뿐인 건 아닐까. 들을 수 있어도 듣지 못하는 건 정모은이 콕 짚어낸 것처럼 ‘노력’이 없어서다. 마음을 쓰지 않으면 들을 수 있는 것도 듣지 못한다. 

 

그래서 정모은의 자기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해줘서 더 고맙다는 그 말을 곱씹으며, 차진우는 생각한다. ‘딴 생각에 빠지는 순간 눈앞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없는 무례한 사람이 되고 만다.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되묻기가 미안해 가끔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까지 다시 말해달라 부탁하지 않는 게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믿었으니까.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듣기 위해 노력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껏 무엇을 위해 마음에 선을 긋고 누구로부터 거리를 두려 애썼던 걸까. 나는 듣지 못하는 게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며 살아온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차진우의 이 생각은 <사랑한다고 말해줘>라는 멜로드라마가 손으로 말하는 농인 화가 차진우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정모은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진짜 건네려는 질문을 끄집어낸다. 그건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듣고 말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더 설레면서도 뭉클하다. 그저 쉽게 ‘사랑한다’는 말로는 다 담겨질 수 없는 진심을, 그래서 말이 아니라도 더 노력하고 마음을 다 하는 것으로 전해질 수 있는 진심을 꺼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모은이 뭐라 설명할 순 없지만 완벽히 알아듣지 못해도 차진우와 핸드폰 없이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느끼는 그 순간들처럼.(사진:ENA)

로이킴 콘서트 ‘로이 노트 Roy Note’에서 발견한 로이킴의 진심

로이 노트

“화려한 불빛들 그리고 바쁜 일상들 뒤에 숨겨진 초라한 너의 뒷모습과/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너의 무거운 어깨를 위해/ 너의 발걸음이 들릴 때 웃으며 마중을 나가는 게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선물이었지-” 로이킴이 ‘Home’을 부를 때 그 가사 한 줄 한 줄이 스크린에 판서처럼 써진다. 부드러운 음색이 귓가에서 가슴까지 소리의 통로를 내며 들려오고, 가사가 머릿 속에 그림 같은 풍경들을 끄집어내자 그 공명에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먹먹해진다. 음률도 음률이지만, 스토리가 그려지는 가사와 어우러지는 무대가 주는 애틋함이라니. 2023 로이킴 콘서트 ‘로이 노트 Roy Note’의 한 풍경이다. 

 

‘로이 노트’ 왜 콘서트의 콘셉트를 노트로 가져왔을까 싶지만, 로이킴과 노트는 잘 어울린다. 로이킴을 말할 때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싱어 송 라이터’이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그가 직접 쓴 가사와 어우러져 우리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Home’을 부르기 전, 그 곡에 대해 로이킴이 초등학교 시절 함께 했던 반려견 싼쵸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소개해준 이야기는 그 가사들을 하나하나 더 곱씹게 만든다. 퇴근길을 재촉하는 곡으로 잘 알려진 이 노래는 그래서 지친 나를 기다려주는 집과 하염없이 보호자를 기다리는 반려견의 그림을 겹쳐 놓는다. 

 

노트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처럼 로이킴의 노래는 디지털화되어 더 빨리 움직이는 시대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매력이 있다. ‘Love Love Love’나 ‘봄봄봄’ 같은 컨츄리와 포크풍의 단순하지만 흥겨운 리듬에 맞춰진 곡은 저 클럽과는 거리가 먼 목가적인 정경을 떠올리게 만들고, ‘북두칠성’ 같은 오케스트라가 어울리는 곡을 듣다보면 어두운 밤길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 쏟아지는 별이 보이는 듯하다. 

 

살갗에서 울려대고 눈과 귀를 한없이 자극하는 노래들 속에서 한껏 피로해지고 때론 방어적인 우리를 발견하게 될 때, 로이킴의 노래는 쌩쌩 부는 바람이 아닌 따뜻하게 내리 쬐는 햇살처럼 우리를 무장해제시켜 놓는다. 고음을 애써 진성으로 불러 자신의 목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가성으로 불러 바깥의 빈 공간들로 나머지를 넉넉히 채워주는 특유의 창법은 실크 같은 부드러움으로 아무런 저항감없이 심장까지 파고든다. 

 

견디는 세상이다. 버텨야 하는 삶이다. 그래서 이른바 ‘존버’의 시대라고들 한다. 그런데 견디고 버티는 힘은 자신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넉넉히 받아들이면서 ‘타격감 제로’로 만드는 거라는 걸 로이킴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똑같이 힘든 그 삶들을 꺼내놓고 함께 공감하면서 때론 ‘얼마나 아팠니’ 하고 묻고 그럼에도 ‘괜찮을 거야’라고 위로해준다. 

 

아티스트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그 세상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내놓지만, 동시에 아티스트의 작품이 세상에 영향을 미쳐 작더라도 세상을 바꿔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로이 노트’ 콘서트 커튼콜 엔딩 곡에서 최근 앨범 ‘그리고’의 타이틀곡인 ‘괜찮을거야’가 남긴 여운은 깊고도 길었다. ‘괜찮을거야’라는 가사를 거의 50번은 넘게 반복해서 외치는 로이킴의 외침은 마치 주문처럼 콘서트장을 빠져나온 관객들이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귓가를 맴돌았다. 그건 힘든 현실을 잘 버텨낸 우리들에게 로이킴이 건네는 위로면서, 또 잘 살아내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를 토닥이는 다짐 같은 것이었으니.(사진:웨이크원)

JTBC ‘싱어게인3’, 다시 부른다는 취지가 주는 이 오디션의 특별함

JTBC <싱어게인3>는 그 제목에 ‘다시 부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서바이벌에서 ‘다시’라는 말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야 살아남는 게 오디션이 아닌가. <싱어게인3>의 어떤 차별점이 이 오디션을 돋보이게 할까. 

싱어게인3

유정석의 ‘질풍가도’와 <싱어게인3>의 만남

‘나는 응원을 부르는 가수다.’ JTBC <싱어게인3>에 등장한 74호 가수는 자신을 그렇게 먼저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로 자신이 부른 애니메이션 OST가 ‘응원가’로 사용되고 있다는 걸 들었다. 야구장과 농구장 같은 각종 스포츠 응원가로 유명하다는 것. 심사위원들은 무슨 곡일지 궁금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서 ‘나는 응원을 부르는 가수다’라는 의미는 실제 응원가로 쓰이고 있어서이기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깊은 이유가 있었다. 개인사정으로 노래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안 좋은 생각을 하셨던 분이 제 노래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는 그런 글들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 때 자신도 좀 힘들 때였는데 그 글들이 위로가 됐다는 거였다. 즉 그가 자신을 소개하는 글귀로 써 놓은 ‘응원’은 야구장만이 아니라 삶이 힘든 분들이 힘을 얻게 되는 그런 응원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 응원이 그가 <싱어게인3>에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작된 무대.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그 첫 소절만으로 충분했다. 유정석이 부른 ‘질풍가도’로 알려진 이 곡을 모두가 바로 떠올렸다.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2세>의 OST였지만 야구장에서 더 많이 울려 퍼져 익숙해졌던 그 노래였다. 규현 심사위원은 이 곡이 <싱어게인>의 주제가로 쓰여도 좋을 것 같다고 했는데, 실제로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이라는 가사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두의 심장을 울리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모두가 한번 더 용기를 내서 나온 무대가 아닌가. 이 순간은 그래서 <싱어게인3>의 상징 같은 장면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응원의 ‘질풍가도’는 대중들에게도 질풍처럼 번져나갔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무려 796만 조회수를 기록했고 유정석을 응원하는 댓글이 2만1천개가 넘게 붙었다. 

 

그런데 유정석의 ‘질풍가도’와 <싱어게인3>의 만남은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갖는 차별점과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즉 이 프로그램은 무대 하나로 당락이 결정되는 오디션이지만, ‘다시 부른다’는 취지가 더해져 있다. 자신들의 인생의 무대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됐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명 가수로 살아가거나 혹은 이름이 잊혀진 가수가 됐거나 하는 이들에게 ‘다시’ 주어진 무대라는 것이다. 실제로 현실은 ‘질풍가도’의 가사처럼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경우가 드물다. 오디션 서바이벌이 사실상 우리의 실제 현실이라는 거다. 그래서 <싱어게인>에 등장한 유정석은 그 ‘한 번 더’가 갖는 이 프로그램의 응원과 위로의 의미를 ‘질풍가도’라는 곡을 통해 보여준 면이 있었다. 대중들이 반색한 이유다. 

 

이번에도 넘쳐나는 숨은 실력자들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개성의 실력자들이 출연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싱어게인3>은 그 오디션의 취지 자체가 다양한 숨은 실력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점이다. 조편성을 보면, ‘찐무명’도 있지만 ‘재야의 고수’ 같은 이미 다운타운에서는 유명한 가수들도 있고, ‘슈가맨’이나 ‘OST조’처럼 얼굴은 낯설어도 노래만 들으면 단박에 기억나는 가수들도 있다. 심지어 타 오디션 참가자들을 묶어 놓은 ‘오디션조’는 그 오디션에서 1등을 했던 가수들까지 참가했다. 그 면면을 보면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이미 다운타운에서는 유명가수인 김마스타, 국카스텐 하현우와 함께 이른바 4대 천왕 출신인 김길중, 신촌블루스 보컬 강성희 같은 재야의 고수는 물론이고,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OST로 잘 알려진 가수 소수빈, ‘질풍가도’의 유정석 같은 OST로 유명한 가수들도 있다. 또 <팬텀싱어> 시즌1 우승팀 포르테 디 콰트로의 김현수, <슈퍼밴드>에 출연했던 홍이삭, 임윤성, 오디션 프로그램 <새가수> 우승자 류정운, <보컬플레이> 우승자 임지수 등등 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던 가수들도 다수다. 

 

사실 이런 실력자들이 찐무명들과 한 무대에 올라 경연을 벌인다는 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질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싱어게인>의 출연자들이나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 모두 이 부분을 그다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이들에게 적어도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고 ‘다시 부른다’는 그 취지가 이 모든 것들을 허용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찐무명이라고 해서 우승이 요원한 일도 아니다. <싱어게인> 시즌1의 우승자 이승윤은 실제로 ‘찐무명조’로 출연했던 가수다. 

 

<싱어게인>이 가진 ‘다시 부른다’는 콘셉트는 무명 가수들에게 다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또한 실력자들을 모을 수 있는 장치도 되어준다. 다시 부른다는 건 이미 불렀다는 의미다. 즉 이미 데뷔한 가수이고 그래서 자기 노래가 하나 이상은 있는 것이 참가자격이 된다. 이 오디션은 그래서 아마추어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이미 프로들이고 그래서 실력은 갖추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무명이 된 가수들이다. 예를 들어 신촌블루스의 강성희 같은 가수는 이 블루스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유명가수다. 그럼에도 그가 무명가수를 자청하고 나온 건 ‘블루스’라는 장르를 좀더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된다. 무대에 서는 자세는 더 진지하고 절박할 수밖에 없다. 

 

무명을 유명으로 만드는 시간

오디션 프로그램은 대부분 최후의 승자를 뽑는 걸 목표로 세운다. <싱어게인>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목표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의 무대들 하나하나에 공을 들이는 것이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다른 지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여기 나온 가수들이 그간 무명의 세월 속에서 해온 노력들에 대한 예우가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색채를 극명하게드러내는 건 심사위원들의 심사다. 이들은 엄밀한 심사를 하면서도 표현에 있어서 극도의 조심스러움과 예우를 담는다. 김이나 심사위원이 문학에 가까운 표현으로 가수들의 목소리와 무대를 해석해낸다면, 규현이나 이해리 같은 심사위원들은 찐 팬에 가까운 리액션을 심사에 담는다. 또 백지영이나 윤종신 심사위원은 가창력에 대한 부분들을 좀더 분석적으로 해석해 그 가수의 매력을 설명해줌으로서 시청자들이 받은 감동이 어디서 온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여기에 이번에 처음으로 심사위원으로 합류한 임재범은 많은 말 대신 한두 마디의 ‘촌철살인’으로 참가한 가수들을 먹먹하게 만들기도 하고 활짝 웃게 만들기도 하며 때론 더 정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사는 그래서 <싱어게인3>에서는 당락을 결정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가수라고 달고 나온 무명가수들을 유명가수로 만들어가는 시간의 의미도 담겨 있다. 심사위원의 심사들은 그래서 이들 가수들의 서사가 되기도 한다. 그 서사는 오디션이 뒤로 갈수록 쌓이고 쌓여 어엿한 팬덤을 확보한 가수들로 이들을 변모시킬 것이다. 과연 이번 시즌3에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유명가수로서의 서사를 갖게 될까. 다시 부르는 그들을 통해 얻는 위로와 그래서 하게 되는 응원이 교차되는 특별한 오디션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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