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초능력보다 공감 능력!

무빙

“초능력 그게 뭔데?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 능력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게 그게 무슨... 그게 무슨 영웅이야? 용기 내서 한 행동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마치 네가 더 잘났다는 듯이 친구들 앞에서 뽐내듯이 보여 줬잖아. 봉석이가 한 행동은 하나도 멋있지 않아. 히어로? 아니야. 다른 사람 마음 헤아리지도 못하는 거 그건 아무 것도 아냐.”

 

기분이 좋거나 너무 슬프거나 하는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면 몸이 허공으로 붕 뜨는 공중부양을 하는 봉석이(이정하). 어린 봉석은 정글짐에서 ‘번개맨’을 흉내내며 뛰어내려 아이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는 친구를 보며, 자신도 마음껏 공중부양을 뽐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들 앞에서 보인 공중부양은 그 친구를 상처받게 하고 따라하다 다치게 만들었다. 봉석의 엄마 미현(한효주)은 봉석에게 그런 건 히어로의 행동이 아니고 멋있지도 않다고 선을 긋는다.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무빙>의 이 장면은 이 슈퍼히어로물이 가진 특별한 색깔을 보여준다. 그저 날아다닐 수 있고, 다쳐도 치유능력이 있어 다시 회복되거나, 미세한 소리까지 다 듣거나, 투시능력 같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 <무빙>에는 등장한다. 당연히 이들이 보여주는 판타지 액션들이 펼쳐지고 스펙터클한 영상들이 매회 채워진다. 하지만 <무빙>이 이러한 슈퍼히어로들을 등장시켜 보여주려는 건 그런 외면적인 액션들만이 아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능력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이들을 통해 <무빙>이 하려는 이야기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봉석에게 미현이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는 초능력 이전에 사람의 진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감 능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남과 다른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거운 덤벨을 가방 안에 넣고 다니고, 혹여나 몸이 뜰까봐 잔뜩 먹어 살을 찌우며 감정 동요가 올 때마다 원주율 3.14를 애써 주문처럼 외우는 봉석이. 친구 하나 없던 그는 전학 온 희수(고윤정)와 가까워진다. 

 

늘 남을 배려하고 응원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봉석의 가치를 알아주는 희수에게 자신이 공중부양을 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들킨 봉석은 그것이 ‘비결’이 아닌 ‘비밀’이라는 걸 알려주고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보여준다. 공중부양에 대비해 천장 가득 쿠션들이 붙여져 있는 방. 그 봉석이 부딪쳐 낡아버린 방은 꼭 봉석 자신을 닮았다. 그런 봉석에게 희수는 그의 능력이 놀랍긴 하지만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이며 특별한 거라고 말해준다. “넌 이상하지 않아. 조금 다르고 특별할 뿐이야.”

 

<무빙>은 이처럼 봉석과 희수 같은 저마다의 가능성을 지닌(그것이 초능력으로까지 은유되는) 존재들을 그리면서, 이들의 능력을 애써 감추려는 부모들의 이야기가 더해진다. 은퇴한 초능력자들인 부모들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일상적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겪어서 알고 있다. 게다가 누군가 자신들을 하나하나 제거해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더욱 아이들이 능력을 드러내는 막으려 한다. 

 

봉석과 희수 같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세계와, 이런 능력들을 무기화해 써먹고는 다 쓰고 나면 폐기처분 하려는 어른들의 세계. <무빙>은 이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여기에 봉석과 희수 같은 입시 전쟁에 들어 있는 고3 학생들 같은 한국적인 현실도 들어 있다는 점이다. 꿈을 마음껏 펼칠 나이에 이를 억압당하는 고3 학생들의 처지는 그래서 날 수 있지만 날개가 강제로 접힌 채 무거운 짐을 가방 가득 지고 다니는 봉석과 겹쳐진다. 

 

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선별해내 육성하고 요원으로 쓰려는 국정원 비밀세력이 있고, 거기서 파견된 이들이 선생님이 되어 특별한 아이들을 테스트 한다. 이들의 능력은 그러나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북한 같은 한국을 둘러싼 나라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미국은 그 능력의 싹을 자르려 하고, 북한 역시 이를 도발로 느끼며 모종의 움직임을 보인다. 

 

놀라운 능력을 가진 초능력 슈퍼히어로들의 액션이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이들이 꾸려가는 이야기들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따뜻하며 일상적인 면모들로 채워진다. 게다가 이 소박한 이야기는 미국과 북한 같은 글로벌한 스파이전으로까지 확장되어 있다. 실로 디즈니가 무려 500억이 넘는 제작비를 쾌척할 만한 신박한 세계관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 어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시원시원한 시각적인 만족감만큼, K콘텐츠 특유의 몽글몽글하고 귀엽고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른바 ‘K슈퍼히어로’라고 해도 될 법한. (사진:디즈니+)

 

가족드라마의 모든 클리셰를 뒤집고 있는 이 드라마, ‘남남’

남남

예사롭지 않게 봤는데 이 드라마는 그 흔한 출생의 비밀도 신박하게 풀어낸다. 지니TV <남남> 이야기다. 진희(수영)의 숨겨진 아빠인 진홍(안재욱)이 등장하는 회차는 제목부터가 어딘가 ‘불순(?)’하다. ‘엄마의 남자’라니. 지금껏 그 흔한 가족드라마들에서 엄마의 남자라면 ‘남편’이거나 ‘불륜 상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남남>에서 진홍은 진희의 엄마 은미(전혜진)의 남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륜 상대도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사랑했지만 어쩌다 헤어진 남자이고, 하룻밤에 덜컥 낳게 된 딸 진희의 유전자적 아빠다. 

 

‘엄마의 남자’라는 불순해 보이는 제목은 그래서 어딘가 신박하게 다가온다. 출생의 비밀을 그토록 활용한 드라마들이 갑자기 나타난 부모가 “내가 네 애비다”라고 말하며 자식의 팔자를 고쳐주는 그런 방식이 대부분이었다면, <남남>은 도대체 이 남자(태어난 후 진희는 그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그러니 완전 초생짜 남남이 아니고 뭔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고민부터 던져 놓는다. 심지어 경찰인 진희는 자기 집을 자꾸 살피고 엄마를 따라다니는 이 남자를 의심한다. 적어도 추행범이거나 심지어 동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그런데 이렇게 뒤늦게 찾아온 진홍에 대한 은미의 마음이 복잡하다. 자신만 홀로 딸 키우느라 고생했던 그 세월동안 진홍이 버젓한 의사가 되어 나타난 게 어딘가 억울하다. 물론 진홍은 아이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은미를 찾아오기 위해 가출까지 했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결국 포기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은미는 진홍이 “내 딸”이라고 하는 말 한 마디에도 발끈한다. “어디서 감히 내 딸이래?” 하고 또 “다신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등신...”이라고 진홍을 욕한다. 말과 달리 진홍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보통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상대가 나타나면 그 오랜만의 해후에 눈물바다가 되는 게 그간 가족드라마의 공식 아닌 공식이었지만, <남남>은 일단 각자의 삶을 살아온 상대에게 선을 긋는 것부터 시작한다. 은미의 절친이자 진희를 친딸처럼 키운 진짜 가족이나 다름없는 미정(김혜은)은 그렇게 나타난 진홍에게 먼저 화장실로 끌고 가 주먹다짐부터 한다. 은미가 고생했던 세월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제 일처럼 흥분하는 미정이다. 

 

출생의 비밀이 결국 드러나는 장면도 틀에 박힌 공식에서 벗어나 있다. 미정에게 두드려 맞고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선을 그었지만 진홍은 계속 찾아와 은미에게 “친구라도 괜찮다”며 기회를 달라고 말한다. 그런 진홍을 추행범으로 의심한 진희가 수갑을 채우려 하자, 은미가 결국 그 사실을 털어 놓는다. “얘 네 아빠야. 씨.”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남남>이 갖고 있는 가족에 대한 색다른 관점이 담겨 있다. 

 

그 관점은 가족에 있어 ‘혈연’보다 중요한 건 현재의 관계가 갖고 있는 진심이다. 제아무리 피로 엮여 있어도 가족이라 말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고,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시선. 그래서 이 출생의 비밀은 혈연이기 때문에 당연히 “너는 내 딸”이거나 “당신은 내 아빠”가 아니라 바로 그 지점부터 만들어가는 관계가 비로소 그걸 증명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다행스러운 건 이 진홍이라는 남자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비록 어린 나이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은미와 헤어졌고 그래서 은미와 그의 딸 진희가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진홍의 의도와는 그다지 상관이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뒤늦게 찾아와 그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도 단지 책임을 지려는 것만이 아니라 은미에 대한 애정 또한 있어서라는 게 느껴진다. 

 

예고편에 슬쩍 등장한 것이지만, 이제 이 ‘출생의 비밀’은 흥미롭게도 딸인 진희는 반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게 된 은미와 진홍이 가까워져, 딸의 눈을 피해 비밀 데이트를 하는 기묘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저 혈연으로 이어지면 가족이라는 흔한 ‘출생의 비밀’ 공식을 벗어나 <남남>이 제시하는 새로운 가족에 대한 관점이 투영되어 나온 결과들이다. 

 

그러고 보면 <남남>은 지금껏 가족드라마의 클리셰들을 하나하나 뒤집어 왔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건 부제를 통해서도 느껴지는데, 1화인 ‘엄마vs딸’은 모녀 관계를 뒤집는 자매 같은 관계를 보여줬고, 3화 ‘가‘족’ 같은’과 4화 ‘내편’에서는 가족이지만 남남보다 못한 이들과 남남이지만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비교해 보여줬다. 5화 ‘엄마의 남자’도 마찬가지다. 출생의 비밀을 뒤집어 아빠로는 인정 못하더라도 엄마의 남자로 보려는 시각이 이 안에 담겨 있어서다. 

 

가족에 대응하는 ‘남남’이라는 제목을 의도적으로 꺼내놓고 거기서부터 다시 이 시대에 어울리는 가족상을 찾아가는 게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중요한 가치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라도 먼저 남처럼 바라보는 예의가 필요하고 거기서부터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느냐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를 나눈다는 이 관점은 그래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와 울림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간 흔한 가족드라마의 클리셰들을 여지없이 뒤집어 놓는 통쾌함도 빼놓을 수 없지만.(사진:지니TV)

 

‘D.P.2’, 사병이 죽어도 은폐만 하려는 군 시스템과의 전쟁

D.P.2

“그러면 그 개인은 무엇 때문에 함께 모여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군대에 왔습니까? 그들은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에 왔습니다. 같이 생활을 하다가 누가 누구를 죽이는 일이 발생을 했는데 ‘나라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증거가 없다’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 아니, 그러면 그런 나라를 위해서 그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군인이 되었습니까?” 법정에 증인으로 선 임지섭(손석구) 대위는 총기난사사건의 원인을 개인으로 몰아가려는 국군본부 법무실장 구자운(지진희) 준장에게 그렇게 일갈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2>가 돌아왔다. 시즌1에서 조석봉(조현철)이 제 얼굴에 권총을 쏘면서 했던 이야기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가 끝내 버텨내지 못하고 벌인 일탈은 과연 고질적인 군 문화를 바꿔놓았을까. 안타깝지만 아니다. 시즌2는 조석봉에 이은 김루리(문상훈) 일병의 총기 난사사건으로 문을 연다. 조석봉의 절친이기도 했던 김루리 일병이 함께 생활하던 사병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은 왜 벌어지게 된 걸까. 

 

지속적이고 집단적인 가혹행위 때문이다. 하지만 김루리 일병이 저지른 이 사건에 대해 군 수뇌부는 그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교묘하게 그 책임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작업을 한다. 언론 플레이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만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김루리 일병을 악마화하려 한다. 피해자 가족들은 김루리 일병의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까지 찾아와 항의를 하는데 오로지 엄마만이 아들을 걱정한다. “근데요. 우리 루리가 잘못한 건 맞는데 루리를 그렇게 만든 건 애한테 돼지 새끼라 그러고 애 얼굴에 살충제 뿌리고! 맨날 욕하고! 때리고!” 

 

<D.P.> 시즌1이 폭력이 일상화된 군 문화의 병폐가 만들어낸 비극을 그렸다면, 시즌2는 이런 중대한 사건들이 벌어졌음에도 변화하지 않는 군대와 그렇게 된 이유를 제공하는 군대의 조직적인 은폐 시스템을 저격한다. 국군본부 법무실장 구자운 준장은 이를 진두지휘하는 인물로 등장하고, 국군본부 고등검찰부 군수사관 오민우(정석용)는 이를 현실화시키는 행동대장으로 맹활약한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이들은 군대 내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덮기 위해 무장한 사병들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론 지휘 체계 앞에서도 물러나지 않는다. 

 

은폐 시스템을 운용하는 고위급 간부들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어, 이들과 대결하는 서사의 중심축도 <D.P.> 시즌1의 안준호(정해인), 한호열(구교환)만이 아니라 그 상급자들인 임지섭 대위, 박범구(김성균) 중사 같은 간부들의 활약으로까지 넓혀진다. 서사는 훨씬 장르화된다. 군 수뇌부가 그간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해왔던 정황이 담긴 USB를 둘러싼 추격전과 쟁탈전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안준호와 그를 잡기 위해 동원된 수십 명의 군인들이 전쟁에 가까운 사투를 벌이는 장면들도 펼쳐진다. 그리고 마지막은 법정물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장르물의 색깔이 짙어지면서 다소 슈퍼히어로화 된 안준호의 맹활약이 펼쳐지고 상대적으로 한호열과 함께 티키타카를 만들던 버디물의 색깔이 줄어들었다. 정해인의 액션과 더불어 손석구, 김성균의 내면 연기와 무엇보다 악역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지진희, 정석용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물론 처절한 상황에 놓인 사병들의 역할을 미친 연기로 펼쳐낸 문상훈, 최현욱, 배나라 같은 배우들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D.P.> 시즌1이 갖고 있던 버디물과 사회극적인 색깔을 좋아했던 시청자라면 살짝 아쉬움이 남는 대목일 수 있다. 하지만 <D.P.2>는 시즌1과의 단단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시즌1 엔딩에서 안준호가 고 신우석의 납골당을 찾아왔다가 그 누나를 만나는 장면은 그가 왜 그토록 시즌2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맹렬히 군 비리와 맞서게 됐는가로 이어진다. 탈영한 그를 체포하려 나왔다가 우연히 라이터를 건넸는데 그걸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그가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시즌2는 군대 안에서 이런 사건들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이유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을 향해 달려간다. 진상 규명 없이 은폐하려고만 하는 군대가 그 이유이고, 그래서 시즌2는 그걸 바꾸려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절절한 마음이 담겨진다. 그래서 절망의 끝에 작지만 분명한 희망의 메시지도 담긴다. 보다 장르화된 맛으로 돌아왔지만 <D.P.2>가 남기는 일갈과 여운은 여전히 날카롭고 길다. (사진:넷플릭스)

‘남남’, 도대체 누가 진짜 남남이고 누가 가족인가

남남

도대체 누가 진짜 남남이고 누가 가족일까.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남남>의 3화 부제는 ‘가 ‘족’ 같은’이다. 흔히 가족이라고 내세우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을 에둘러 꼬집을 때 쓰는 표현. 이 부제를 가진 3회의 내용은 ‘가정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은미(전혜진)가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병원에 찾아온 한 노인의 등에 난 상처. 은미는 그게 누군가에게 맞은 폭력의 흔적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린다. 또 은미는 그 노인과 함께 온 아이 또한 다가가자 흠칫 놀라는 모습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걸 예감한다.  

 

급기야 은미는 관할경찰서에 이 일을 신고하고, 사건을 접수한 은미의 딸 진희(수영)는 그 집을 방문해 그 집 아들의 상습적인 가정폭력 징후들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아들이 불이익을 당하는 걸 원치 않는 노모는 이를 덮으려고 하고, 가해자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은미가 일하는 병원까지 찾아와 난장을 피운다. 

 

이렇게 은미가 예민하게 가정폭력의 흔적을 지나치지 못하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 역시 과거 고등학생 시절 덜컥 진희를 낳고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인 가정폭력을 당해왔던 것. 그걸 보고 자란 어린 진희 역시 은미가 왜 저렇게 예민하게 구는 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3화에는 은미의 절친인 미정(김혜은)이 등장한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은미의 근황보다 은미의 딸 진희의 안부를 먼저 묻는 이 수상쩍은 절친은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어렵게 홀로 진희를 키우던 은미에게 미정과 그의 엄마는 ‘진짜 가족’같은 도움을 주었다. 지쳐있는 은미를 찾아와 진희를 마치 친딸, 친손주처럼 돌봐주었던 것. “기저귀를 갈아가면서 키웠는데 당연하지. 너만 아니었으면 진희 걔 내 딸이야.” 미정은 은미에게 그런 존재다. 

 

<남남>은 가정폭력 사건을 에피소드로 가져와 은미가 겪었던 남보다 못한 가족인 아버지와 남이지만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미정과 그의 엄마의 이야기를 대비시킨다. 그러면서 묻는다. 도대체 누가 진짜 남남이고 누가 진짜 가족인가를. 

 

<남남>은 대단한 사건이 펼쳐지는 드라마라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 시선이 독특하다. 마치 나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남이 알고 보면 의외로 타인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그런 시선이다. 마치 ‘츤데레’의 느낌처럼, 무심한 듯 이들은 무심한 듯 서로를 챙긴다. 

 

모녀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은미에게 툭툭거리는 남남 같은 진희는 가정폭력 사건을 마주한 엄마가 느낄 마음의 상처를 읽어낸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겨 마중을 나가고 비맞은 엄마를 위해 따뜻한 목욕물을 미리 받아놓는다. 또 남이라고 할 수 있는 은미의 친구 미정과 진희는 누가 진짜 엄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관계를 보여준다. “야 너 내 친구야 쟤 친구야?”라고 은미가 질투 섞인 말을 할 정도로. 

 

은미와 미정은 친자매처럼 한 침대에 누워 자고, 미정의 엄마를 은미는 엄마라고 부른다. 실제로 은미는 미정의 엄마에게 용돈을 부쳐주고 그런 은미에게 미정의 엄마는 그러지 말라고 진짜 엄마들이 하는 말을 한다. 진희 또한 당연한 듯 미정의 엄마를 할머니라 부른다. 이러니 이들을 누가 남남이라 할 것인가. 

 

<남남>의 이런 타인이지만 가족 같은 무심한 듯 세심한 모습들은 은미와 미정 그리고 진희만의 관계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희가 일하게 된 경찰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가정폭력 사건에서 모두가 눈 돌리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줄 알았던 진희는, 그들이 이미 남몰래 진희가 하려던 일들을 다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또 늘 진희가 하려는 일들을 하지 말라 막기만 했던 같은 파출소의 은재원 소장(박성훈) 역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걱정돼 집 주변을 서성이는 그런 인물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진희는 호탕하게 웃으며 외친다. “야, 씨, 우리 팀 짱! 열라 멋있어! 아, 막 어쩜 그렇게 막 손발이 막 척척 맞니. 어? 이야, 씨 나 열라 놀랐잖아, 지금. 어우, 너무 막 견고해 가지고 막 끼어 들 틈이 없네. 와. 씨. 인정! 이야. 와, 깜짝 놀랐다, 진짜.” 일종의 왕따를 당하고 있지만 진희는 이 서의 사람들이 가진 세심함에 마음이 따뜻해진 것. 

 

<남남>이 주는 감동은 그래서 타인보다 못한 가족들과 대비되는, 남남이지만 더할 나위 없는 가족 같은 세심한 마음들을 발견하게 되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이 서사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이 시대에 진짜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되묻는다. 누가 남남이고 누가 가족인가.(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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