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궁’, 이무기와 육성재, 도대체 누가 누구를 삼킨 걸까 

귀궁

‘이 아이의 손길이 이리 부드럽고 따뜻했구나. 또다. 왜 이리 또 쿵쾅대는 거야? 망할 놈의 윤갑 놈. 어찌 이 인간의 몸은 허술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어.’ SBS 금토드라마 <귀궁>에서 강철이는 화살을 맞은 상처를 치료해주는 여리(김지연)의 손길에 가슴에 속절없이 쿵쾅댄다. 윤갑(육성재)의 몸에 빙의된 강철이는 본래 이무기다. 그러니 인간의 손길 같은 감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무려 13년 간이나 여리의 몸주신이 되려 졸졸 따라다녔지만 여리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 건 윤갑의 육신에 들어오게 되면서다. 

 

<귀궁>의 이무기 강철이가 빙의된 윤갑이라는 설정은 이런 지점에서 흥미로워진다. 보통 귀신이 등장하는 퇴마 판타지나 한국형 오컬트 장르에서 빙의는 귀신에 영혼을 빼앗긴 인간이 겪는 공포로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귀궁>은 조금 다르다. 강철이라는 이무기의 인간 체험처럼 그려지기 때문이다. 윤갑의 몸으로 들어온 후 강철이는 죽 한 그릇에도 환장하는 미각을 경험한다. 갖가지 음식 맛에 눈뜬 강철이는 천상을 나는 듯한 쾌감을 경험한다. 

 

미각만이 아니다. 뜨끈한 온돌에서 등을 지지는 경험을 한 강철이는 잠자리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로 그 감각의 제국에 빠져든다. 궁궐에 가서도 그 곳의 화려한 장식들에 눈호사를 하고 푹신한 방석의 편안함을 즐긴다. 그러니 여리가 별 생각도 없이 열이 있는 것 아니냐며 얼굴을 만질 때 심장이 쿵쾅대고 볼이 빨개지는 건 당연지사다. 알고보면 여리가 어려서부터 산길 호랑이를 번개로 쫓아버릴 정도로 강철이는 여리에 대한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사랑의 감정이란 결국 서로의 체온과 감각을 나누는 몸이 있어야 불이 붙는 것이었다. 

 

윤갑의 몸에 들어간 이무기 강철이가 그 몸의 감각과 이를 통한 교감을 통해 여리에게 감정을 느끼는 상황은 그래서 <귀궁>에서는 반전의 이야기를 예고한다. 애초 윤갑의 몸을 이무기 강철이가 차지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 상황은 거꾸로 이무기가 윤갑의 몸에 갇힌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여리가 찾아간 가섭스님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한데 어쩌다 죽은 인간의 몸에 저리 옴짝달싹 못하게 갇히게 됐누?”

 

즉 윤갑의 몸을 통해 인간의 감각과 욕망을 경험하게 된 강철이는 그 몸에 갇힌 채 인간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 그 감각을 통해 여리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가는 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하려는 마음 또한 간절해진다. 여리를 통해 경험하고 알게 되는 인간에 대한 공감은, 이 이무기 강철이가 인간을 해코지 하려는 팔척귀 같은 악귀와 그 악귀를 불러내는 풍산(김상호) 같은 사악한 술사와 맞서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귀궁>이 신박하게 느껴지는 건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네 무속의 한 면들을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내림굿을 받지 않았지만 여리는 무당이 될 팔자인 영매다. 자신을 몸주신으로 받아들이라며 13년 간이나 따라다닌 이무기 강철이를 거부해왔지만 윤갑을 되살리기 위해 그녀는 강철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즉 <귀궁>은 무속인이 인간을 구하기 위해 몸주신을 받아들이고 사악한 무리들과 싸우는 이야기를, 여리의 윤갑에 대한 사랑(무속인의 인간에 대한 사랑), 강철이의 여리에 대한 마음(신의 인간에 대한 이해), 여리와 강철이가 힘을 합쳐 팔척귀와 벌이는 사투(무속인이 신을 불러 인간을 구하는 과정)로 그려낸다. 

 

그래서 혐관 로맨스와 휴머니즘이 더해지고 퇴마 판타지까지 넘나드는 <귀궁>은 그 재미를 통해 우리네 무속의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도 담고 있다. 다양한 장르적 결이 더해져 있고 가벼움과 진지함을 오가는 작품이지만, 육성재, 김지연, 김지훈, 김상호, 김인권 등등 연기자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가 이물감 없이 이 다양함을 잘 엮어내고 있다. 특히 여러 전작들에서 1인2역 연기를 줄곧 해왔던 육성재와 달달함과 절절함을 오가는 김지연이 보여주는 연기앙상블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사진:SBS)

‘천국보다 아름다운’으로 손석구와 부부가 된 김혜자의 새 얼굴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러고 돈 버는 걸로 너네 부모 내복 사드렸니?” 험상궂은 조폭들이 빚독촉을 하러 온 집에서 해숙(김혜자)은 빚진 아들은 한강에 갔고 자신은 가진 게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강짜를 놓는다. 결국 “똥 밟았다”며 조폭들이 포기하고 돌아가자 해숙은 본색을 드러낸다. 조폭들은 해숙이 그 집에 사는 남자의 엄마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해숙 또한 그 남자가 빌려쓴 돈을 받으러 온 일수꾼이다. 그 남자에게 자기가 “사람도 죽인다”며 칼을 뽑아 들자 남자는 가진 돈을 털어 놓는다.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이 첫 장면은 김혜자라는 배우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얼굴을 갖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저 조폭들이 그러했듯이 ‘엄마의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금세 돈 받으러온 일수꾼의 냉혹한 모습으로 얼굴을 갈아 끼운다. 물론 목소리는 김혜자 특유의 나긋나긋한 톤 그대로지만, 측은했다가 화를 냈다가 자포자기 한 표정에서 험한 표정을 짓는 그 변화 속에서 이 인물이 주는 감정은 계속 바뀐다. 이것이 바로 김혜자라는 배우가 부리는 연기의 마법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해숙은 실로 여러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다. 험하게 일수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남편 고낙준의 병수발 때문이라는 건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빚을 받으러 갔다가 아빠에게 학대받던 영애를 빚대신 데려다 딸처럼 키워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코미디와 판타지도 뒤섞여있다. 해숙의 삶은 힘겹기 그지없고, 그래서 결국 남편도 죽고 자신도 죽게 되는 비극이지만 드라마는 이들이 천국에서 다시 만나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그래서 처절한 삶의 비극은 가볍고 발랄한 희극과 겹쳐지고, 무겁디 무거운 삶의 현실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죽음의 판타지를 오간다. “하루 같이 살면은 하루 더 정이 쌓여서 예쁜 건가? 지금이 우리 마누라 제일 예뻐요.” 죽기 전 남편이 했던 그 말 때문에 80의 나이를 선택한 해숙은, 천국에서 만난 젊은 나이를 선택한 고낙준(손석구) 앞에서 아연실색한다. 80의 몸으로 천국에서 젊은 남편과 함께 살아가게 된 해숙 앞에 갑자기 나타나 남편의 품에 안기는 젊고 예쁜 솜이(한지민)가 등장하면서 나이를 뛰어넘는 삼각관계(?)가 예고된다.

 

이처럼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희비극이 얽혀있고, 그래서 비극이 희극처럼 그려지는 드라마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묵직한 비극의 예감을 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다름 아닌 김혜자가 연기하고 2019년작 ‘눈이 부시게’의 제작진인 이남규 작가와 김석윤 감독이 뭉친 작품이기 때문이다. ‘눈이 부시게’ 역시 20대의 나이에 시간여행을 하는 혜자(한지민)가 시간을 잘못 돌려 70대 노인이 되며 벌어지는 코믹한 해프닝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이 70대 노인 혜자(김혜자)의 치매 증상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죽어서 천국에 간 혜자가 그 곳에서 만나게 되는 생전의 인연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참이다. 결국 죽음 이후의 천국의 삶을 그리지만, 죽음 이전의 삶에 담긴 애환 가득한 이야기가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즉 천국의 삶은 웃음이 터지는 희극이지만, 거기서 환기되는 현실의 삶은 비극일 가능성이 높다. 

 

삶과 죽음, 희극과 비극,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그래서 김혜자에게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벌써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현역 최고의 배우로 살아가는 그녀는 마치 ‘변검’을 하듯이 여러 얼굴들을 순간순간 갈아끼우며 이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는 드라마를 종횡무진한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한 소녀 같은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나이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자애로운 엄마의 얼굴과 더불어, 때론 정반대로 냉혹하고 살벌한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실로 김혜자가 지금껏 연기해온 여러 작품 속 인물들의 다양한 얼굴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김혜자는 ‘국민엄마’라는 칭호를 얻은 배우였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은 바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 간 방영됐던 ‘전원일기’다. 그 작품에서 엄마 역할을 하며 매주 얼굴을 내밀었으니 시청자들에게 김혜자가 국민엄마로 각인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에게 고정된 이미지만큼 큰 리스크는 없다. 김혜자는 그걸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배우이기도 하다. 91년에 방영됐던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가부장적인 남편 때문에 기죽어 살면서도 소심한 복수를 하는 당대의 엄마 역할로 변신했고,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가사노동 파업선언(?)을 하는 엄마의 파격을 보여줬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는 광기어린 모습으로 모성애의 끔찍함을 드러내는 연기를 통해 ‘국민엄마’라는 칭호에 갇히지 않는 배우의 공력을 드러냈다. 이 작품으로 김혜자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LA비평가협회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기억을 잃어가는 노년의 희자 역할이나,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라는 엔딩 내레이션으로 유명한 ‘눈이 부시게’의 혜자 역할, 그리고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온 동석 엄마를 소화하며 같은 엄마 역할도 다양한 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김혜자는 손수 증명해 보였다. 그러니 ‘천국보다 아름다운’ 같은 다채로운 얼굴을 요하는 작품 속에서도 별다른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연기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간 연기로 쌓아온 이 많은 엄마의 얼굴들이 자유자재로 꺼내지고 있다고나 할까. 

 

사실 연기라고는 하지만 손석구와 부부 연기를 한다는 것이 쉬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석구 앞에서 토라지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소녀 같은 김혜자의 모습은 나이가 주는 편견 또한 깨주기에 충분하다. 나이 들면 여자가 아닌 아내나 엄마로 불리고, 또 남자가 아닌 남편이나 아빠로 불리는 그 역할이 당연하다 여기는 건 얼마나 큰 편견인가. ‘국민엄마’라 불려도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얼굴이 아닌 다채로운 얼굴로 떠올리게 만드는 김혜자를 보다보면, 누군가를 그저 하나의 역할로 고정시켜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글:국방일보, 사진:JTBC)  

‘대환장 기안장’, 기안84의 상상을 현실화한 진의 실행, 지예은의 찐공감

대환장 기안장

“나도 울릉도 구경가고 싶다.”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에서 기안84는 창밖으로 펼쳐진 울릉도의 풍광을 보며 말한다. 화창한 날씨에 더더욱 빛나는 울릉도의 풍광이다. 그러자 옆에 앉은 지예은이 신세한탄하듯이 말을 덧붙인다. “나도, 울릉도 왔는데...” 그러자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기안84의 마음이 흔들린다. “우리 한 번만 어디 갔다 오면 안될까?” 기안84의 말에 지예은은 발까지 동동거리며 “한번만 가자”고 애원한다.

 

그런데 기안84가 그렇게 말하며 눈치를 보는 건 다름 아닌 진이다. 사장이 기안84이고 진은 사원(?)이지만, 오히려 기안84가 진의 눈치를 보는 건 요령이나 타협 따위는 없이 원칙을 고집하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장님 놀러왔어?” 그 말에 지예은이 “그럼 우리는 구경도 못해?”라고 묻자 진의 단호한 한 마디가 이어진다. “못하지. 우리는 일하러 온 거고 이분들이 구경하러 온 건데. 우리는 놀러온 게 아니야.”

 

결국 기안84는 꼬리를 내린다. “그래, 놀러온 게 아니지.” 그리고 반성한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네가 잡아줘서 너무 고맙다. 야, 진짜 너 아니었으면 이 봉도 없어지고 1층에 문도 뚫고 지금 다 했을 텐데.. 세탁기 하나 장만하고... 근데 그건 기안장이 아니야.” 단호한 진에 굴복하며 사죄하는 기안84의 모습에 손님들은 빵 터진다. 혹여나 울릉도 구경이라도 갈 줄 알았던 지예은의 짜증 가득한 투덜거림에 또 한번 웃음이 터진다. 

 

이 장면은 <대환장 기안장>의 완벽한 케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기안84조차 자신이 웹툰처럼 상상한 기안장이 실제로는 어떨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래서 막상 처음 기안장에 왔을 때만 해도 자신조차 황당하고 불편한 그 곳에서 자꾸만 타협하고픈 마음을 먹게 됐다. 자신 혼자 불편하다면 상관없는데, 자신의 상상으로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 

 

마침 목수인 손님이 오자 벽을 뚫어 2층과 1층을 봉으로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면 어떨까 기안84가 고민했지만, 그 때 진이 나서 결사반대했다. 그건 기안장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실로 기안장에 투숙하겠다며 지원한 손님들이라면, 저마다 기안84식의 하룻밤을 기대했을 터였다. <효리네 민박> 제작진이 만들었지만 기안84가 출연하니 <효리네 민박> 지옥편이 될 거라고 지원자들이 예상했던 건 그래서였다. 

 

실제로 “너무 쉽게 집에 들어가는 게 꼴보기 싫었다”며 2층으로 난 문을 설계했던 식으로 기안장에는 기안84가 키득거리며 내놓은 상상들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르내리는게 불편해서 내려올 때 쓰는 슬라이드로 올라가는 걸 손님들에게 허용할까도 고민했던 기안84였다. 그 때마다 그걸 막은 것도 진이었다. 진은 문지기를 자청해 슬라이드로 오르려는 이들에게 다시 내려가서 제대로 클라이밍을 해 문으로 들어오라고 지적하곤 했다. 

 

상상은 기안84가 했지만 그걸 원칙 그대로 굴러가게 만든 건 그래서 진의 역할이 지대했다. 기안84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그는 사장이 흔들릴 때마다 멘탈을 잡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치거나 일정 때문에 사장이 부재할 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든든한 역할을 했다. 매끼 손님들이 요구하는 음식을 맛나게 요리해주고, 기안84가 부재할 때 손님들과 광란의 밤(?)을 즐기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인가를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애초 기안84와 함께 그가 사는 방식을 함께 살아보고 싶다며 이 프로그램에 자원한 진은 그 선택 그대로 요령 없이 기안84의 삶 그대로를 체험한 셈이었다. 힘들고 불편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있어, 이 힘겨움과 불편은 낭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지예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찐 공감’ 역시 세 사람의 케미에 균형을 맞춰줬다. 기안84와 진이 ‘낭만’ 운운하며 힘든 상황들을 감당하려 할 때, 지예은은 MZ대세 다운 솔직한 투덜거림으로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든가를 공감하게 했다. 과도한 낭만으로만 기울어졌다면 감흥이 덜했을 이 체험에 현실적인 찐 공감으로 균형감을 줬다고나 할까.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의 웹툰적 상상력과, 진의 원칙을 지키는 실행력 그리고 낭만으로 붕붕 떠오르는 기안장에 지예은이 현실감을 부여하는 찐 공감이 더해져 완성됐다. 9편으로 마무리된 시즌1은 사실상 이 실험적인 도전의 적응기에 가까웠다. 적응할만 하니까 끝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시즌2로 돌아온다면 적응기에서 한 발 더 나간 기안장의 이야기를 보고싶다. 물론 기안84와 진, 지예은이 만들어낸 완벽한 앙상블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사진:넷플릭스)

‘천국보다 아름다운’ 슬픈데 웃기고, 천국인데 현생이 떠오르는 역설

천국보다 아름다운

“스릴러로 살다가 갑자기 교육방송이 되니까 이건 적응하기가 참...”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해숙(김혜자)은 너무나 밝고 학구적인 분위기의 천국지원센터를 보며 그렇게 말한다. 그녀는 죽었다. 그리고 영락없이 지옥에 갈 줄 알았다. 스스로 ‘스릴러로 살았다’고 말했듯, 그녀의 삶은 지독하기 그지 없었고 그래서 시장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오물을 쏟는 일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험한 일수 일을 해왔고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남의 집에 드러눕는 게 일상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서 죽으면 지옥에 가는 게 당연하다 여겼는데 웬일로 천국에 가게 됐다. 문제는 천국에서 몇 살로 살거냐는 질문에, 남편 고낙준이 생전 “지금이 가장 예쁘다”고 했던 말만 믿고 “80”이라고 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나이 그대로 팔순의 몸이 되어 천국에 먼저 가 있는 남편을 찾아갔는데, 고낙준(손석구)은 젊은 시절의 나이로 돌아가 있었다. 생전에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됐던 몸도 생생하게 회복되어 이제 달릴 수도 있는 몸으로 바뀌었다. 해숙의 천국행은 순식간에 지옥 같아졌다. “네가 그랬잖아. 네가 이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나자며. 왜 나만 이런데? 이딴 게 무슨 천국이야. 이럴 바엔 차라리 지옥이 나았겠다. 이 나쁜 자식아!”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생전에 절절히 사랑했던 해숙과 낙준이 둘다 차례로 죽어 천국에서 다시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당연히 천국이 등장하는 판타지지만, 여기 나오는 천국은 어딘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비슷하다. 처음 천국에 와서 적응이 안되는 이들을 위한 천국지원센터가 있고 그 곳에는 ‘소울리스좌’처럼 AI 안내를 해주는 직원도 있고 그 곳의 수장인 센터장도 있다. 물론 천국이니 현생과는 다른 판타지도 있다. 생전에 사별했던 이들이 다시 만나 살아가고, 먹고 싶은 건 상상만 하면 먹을 수 있다. 물론 생전에 했던 좋은 일이 손에 통장의 돈처럼 쌓여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천국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는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현생들이 겹쳐진다. 천국으로 가는 입국심사대 같은 곳에서 한 소방관은 손에 쥔 방독면을 쥐고 놓지 않는다. 그건 화재 현장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끝까지 구하려 했던 소녀에게 씌워진 방독면이다. 자신의 죽음보다 소녀의 안위가 궁금한 이 소방관은 쓰러진 자신에게 방독면을 벗어 씌워준 소녀 역시 그 곳에 오게 됐다는 걸 알고 미안함의 눈물을 쏟아낸다. 

 

돈이 없어서 아이를 보육원에 보낸 걸 평생 후회하며 돈을 모았지만 아이에게 전하지 못한 채 죽어 그 돈을 꼭 아이들에게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엄마, 며느리 병수발을 한 시어머니에게 다음생에는 꼭 자기 아이로 태어나달라고 해서 아이와 엄마로 다시 만난 시어머니와 며느리, 앞못보는 시각장애인을 옆에서 돕다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넌 반려견... 천국의 이야기에는 현생에 그들이 살아왔던 가슴 먹먹한 삶들이 묻어난다. 

 

해숙의 삶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마치 스릴러 속 빚쟁이처럼 살벌하고 독한 그녀의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모두 평생을 병수발해온 남편 낙준과의 생계를 위한 것이었다. 정작 마음이 소녀 같은 해숙은 그래서 빚쟁이 집에 갔다가 학대 당하는 아이 영애를 끝내 무시하지 못하고 빚 대신 집으로 데려와 함께 지낸다. 독하게 일수를 받아내는 삶을 살았지만, 약하고 착한 이들 앞에서는 한없이 여린 해숙이었다. 그것이 지옥이 아닌 반전의 천국행을 하게 된 이유다. 

 

이처럼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역설의 드라마다. 천국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현생이 계속 떠오르고,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삶이 떠오른다. 죽음이라는 비극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죽음 이후에 계속 이어지는 삶의 희극이 담겨 있다. 본래 희극과 비극은 원근의 차이일 뿐이라던가.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그래서 슬픈데도 웃기고 웃기다가도 슬픈 기묘한 희비극의 풍경들을 펼쳐 놓는다. 

 

<눈이 부시게>로 노년의 삶을 시간여행의 판타지로 엮어 처음에는 웃기다가 그다음에는 설레고 끝내는 먹먹하게 만든 희비극의 역설을 보여준 이남규 작가와 김석윤 감독은, 이번에도 저승과 이승을 오가는 희비극으로 돌아왔다. 역시 <눈이 부시게>에서 손발을 맞춘 김혜자와 한지민, 이정은이 함께하고 여기에 손석구까지 더해진 드라마는 이제 천국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참이다. 실로 걱정없이 살기 좋은 천국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그 곳에 오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더욱 아름다운 그 세계는 현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궁금하고 기대되는 대목이다.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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