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음모론, 이런 재미없는 소설은 왜 퍼질까

 

<무한도전> 식스맨에 장동민이 내정되어 있다는 찌라시는 한 보도매체에 의해 단독으로 기사화됐다. <무한도전>측은 펄쩍 뛰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정되어 있었다면 <무한도전>은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셈이 된다. 아무리 찌라시라지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또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하루 간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처럼 보이지만 이런 근거 없는 찌라시의 풍문이 버젓이 단독기사로 올라온다는 사실 뒤안길에는 섬뜩한 면이 있다.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가 아예 사실처럼 둔갑되어 언론에 단독보도 되는 상황. 이건 정상적일 수가 없다. 만일 누군가 사실과 다른 그 풍문의 당사자로 지목된다면 그건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소셜포비아>는 이 네트워크로 얽혀 있는 우리 사회가 가진 집단적인 폭력의 양상을 다룬 영화다. 거기에는 당사자의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누군가 믿고 싶은 그럴 듯한 글에 호도되는 군중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모여 진실을 파헤친다는 빌미로 한 사람을 파괴시킨다. 그의 신상을 털어버리는 건 고스란히 알몸으로 세상에 던져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회적 살인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이 증권가 찌라시에 어떻게 풍문이 사실로 변신해 올라오는가 하는 그 과정을 담아낸다. 언니가 상류층 자제와 스캔들을 일으키자 동생인 서봄(고아성)은 시아버지의 권력을 이용해 역으로 풍문을 퍼트린다. 그 풍문을 통해 언니가 상류층 자제를 쫓아다녔던 사실은 역전된다. 찌라시라는 게 얼마나 풍문에 민감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고 이용되기 쉬운가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태임과 예원이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촬영 중 벌어진 반말과 욕설 사건은 무수한 풍문들을 만들었다. 이태임의 욕설 수준이 입에 담기조차 힘든 것이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풍문은 속성상 자극적일수록 더 군중들의 귀에 꽂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사람의 귀로 전달되면서 마치 사실처럼 호도된다. 여기에 언론이 나서서 현장검증까지 해서 못을 박으면 그건 확실한 사실로 둔갑한다.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은 매장될 수도 있다. 영화 <소셜포비아>의 내용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상황이다.

 

풍문이 사실화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언론이다. 언젠가부터 언론은 정확한 팩트를 검증하기에 앞서 우선 자극적인 내용을 단독보도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인터넷이 뉴스의 장이 되면서 속보전이 가속된 결과다. 과거에는 찌라시로 대변되는 카더라 통신들과 언론 사이에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선을 구분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떤 게 사실이고 어떤 게 거짓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중들은 그래서 그저 믿고 싶은 바를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풍문들은 주로 대중문화 관련된 이슈들 속에서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분야 이를 테면 정치나 경제 같은 분야의 이슈들에 카더라 통신이 없다는 건 착각이다. 대중문화 분야는 이를테면 디즈니랜드 효과를 만들어내는 지점일 뿐이다. 대중문화의 소식들이 풍문으로 가득 차 있어서 믿을 수 없게 보여지게 만드는 진짜 의도는 그 바깥의 소식들을 진짜처럼 착각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미 소셜포비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소셜포비아는 풍문이 촉발시키고 언론이 사실화해버리면서 이에 쏠린 군중들이 확산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언론이다. 그 많은 풍문들 중 하나를 콕 집어내는 역할을 해주는 게 언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언론은 위에서는 점잖은 글들을 쓰면서도 저 아래에서는 신입 인턴 기자를 앞세워 풍문을 단독 보도시키는 그런 일들도 한다.

 

<무한도전> 식스맨 장동민 내정설은 한 마디로 소설이다.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은 옛날이라면 먹힐지 몰라도 요즘처럼 리얼리티쇼화 되는 예능에서는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키고 나아가 프로그램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제 10주년을 맞은 <무한도전>이 뭐가 아쉬워 이런 무리수를 둔단 말인가.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런 내정설을 누군가 만들어 배포한 사람들이 어떤 음모를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것 역시 풍문의 시대를 살아가며 생겨난 못된 습관이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언론의 역할은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삼시세끼> 트렌드, 이젠 정글, 군대로 전파

 

이젠 정글, 군대에서도 쿡방을 한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은 끝났지만 예능에서의 삼시세끼트렌드는 끝나지 않았다. MBC <진짜사나이>의 샘킴이 선보이는 군대세끼가 있다면, SBS <정글의 법칙> 인도차이나편은 레이먼 킴이 선보이는 정글세끼가 있다.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물론 같은 <삼시세끼>에서도 강원도 산골에 들어가 어설픈 쿡방의 묘미를 살려냈던 이서진과 만재도 어촌에 고립되어 무려 80여 가지의 요리를 선보인 차승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정글의 법칙><진짜사나이>가 선사하는 쿡방은 사뭇 다르다.

 

마치 먹방이 그랬던 것처럼 일단 뜨는 트렌드를 가져온 건 맞지만 각자 자신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영역에 접목시켜 새로운 쿡방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레이먼 킴이 투입된 <정글의 법칙> 인도차이나편이 특별히 지금껏 해오던 이 프로그램의 룰을 깬 건 이 정글에서 하는 쿡방의 새로움을 선사하기 위함이다. 요리 재료는 허용되지 않았지만 갖가지 향신료와 양념을 허락했던 것. 이 허용은 이번 정글 생존을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냈다.

 

레이먼킴은 생선의 살만 발라내 강황을 넣은 양념에 볶아낸 생선 볶음과 카다멈과 게를 넣고 푹 끓여 만든 카다멈 게죽을 첫 날 저녁으로 선사한데 이어, 다음 날은 카사바를 사탕수수액으로 졸여내 만든 카사바 맛탕으로 병만족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정글에서 즉석에서 구한 식재료들을 활용해 갖가지 음식을 선사하는 건 지금껏 <정글의 법칙>이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이다. 기껏 해봐야 바비큐 정도가 요리의 전부였던 것.

 

이런 변화는 그간 정체된 듯 느껴져 왔던 <정글의 법칙>에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이건 이 프로그램이 약간의 룰을 깸으로써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결국 프로그램은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특히 <정글의 법칙>처럼 오래도록 지속된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약간의 룰을 깨더라도 쿡방 트렌드를 이처럼 <정글의 법칙>에 접목시킨 건 나름 괜찮은 성과라는 점이다.

 

한편 MBC <진짜사나이> 역시 시즌1을 통해 훈련병에서부터 병장까지를 일순배 돌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비슷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서인지 샘킴이 출연자로 투입된 것으로 여러모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물론 지금껏 시즌2에 들어와 이들은 훈련병으로 있었기 때문에 샘킴이 보여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취사병을 기대했지만 배식병으로 음식을 배식하고 쌓이는 식판을 설거지하는 모습이 잠깐의 웃음을 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자대배치를 받고 취사병으로 보직을 갖게 된 샘킴은 확실한 자기만의 이야기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예고편에 잠깐 등장한 것만 보면 이 유명한 셰프가 고참들과 조리사 어머니들에게 이런저런 지적질을 당하는 모습으로 역시 군대세끼는 사회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매 끼니마다 500인 분 13찬을 내놔야 하는 상황이니 아침 먹고 나면 점심 준비하고 점심 먹고 나면 저녁 준비해야 하는 게 취사병의 하루다. 거물 셰프가 군대에서 시집살이하는 모습도 관전 포인트지만 더 궁금한 건 이 군대 음식이라는 한정된 상황 속에서 그가 어떻게 자기만의 새로운 요리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삼시세끼>가 예능 프로그램에 미친 영향은 꽤 컸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가 사는 데 있어 삼시세끼 챙겨먹는다는 건 장소 불문 누구나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소재는 어디서나 활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도 그 끼니를 하나의 훌륭한 예능 소재로 만들어낸 <삼시세끼>의 공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 정글에서도 군대에서도 삼시세끼는 계속된다.

 

<풍문> 고아성, 정성주 작가의 깊이가 보인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캐릭터가 탄생했을까.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서봄(고아성)은 놀라운 캐릭터다. 한인상(이준)의 아이를 가져 그의 아버지 한정호(유준상)라는 상류층 괴물의 집에 포획된 존재처럼 보였지만 그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녀는 조금씩 이 세상에 적응했고 괴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그들의 방식으로 어떻게 세상을 주무르는지를 터득해간다.

 

'풍문으로 들었소(사진출처:SBS)'

언니 서누리(공승연)가 상류층 자제를 잡아 그 세계에 입성하려 했다가 그 소문이 찌라시에 퍼지고 망신만 당하게 되자 서봄은 놀라운 대처 능력을 보여준다. 서누리를 만나 따끔하게 현실을 인식시켜주고 최연희(유호정)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서정연)을 시켜 한정호의 업무 비서인 양재화(길해연)에게 그 물의를 빚게 만든 상류층 자제의 집안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식으로 한정호에게 이야기를 흘리게 한다.

 

결국 한정호가 그 상류층 자제의 집안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태는 반전된다. 즉 서누리가 그 상류층 자제를 쫓아다닌 게 아니라 거꾸로 그 상류층 자제가 서누리를 쫓아다닌 사실로 이야기가 둔갑한 것. 이 소문은 다시 찌라시를 타고 퍼져나감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이 집안의 비서들은 아주 조금씩 이 작은 사모인 서봄의 존재감에 압도당한다. 최연희의 개인비서인 이선숙에게 자신은 시어머니와 달리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그녀를 무릎 꿇리고 나아가 그녀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런 섬뜩한 면을 보이면서도 시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리숙한 듯 행동한다. 이선숙이 무릎 꿇고 있는 걸 목격한 최연희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서봄은 제가 뒤끝이 좀 있거든요라고 말한다. 마치 아이가 하는 행동인 것처럼 위장한다.

 

<풍문으로 들었소>가 초반부에 보여준 것이 한정호라는 괴물을 블랙코미디식으로 풍자해낸 것이라면,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드라마는 이 슈퍼갑의 세계에 들어온 평범한 서민 을들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서봄의 아버지 서형식(장현성)은 자신을 대접해주는 척 하는 한정호 때문에 우쭐해하며 갑 행세가 주는 권력놀이에 조금씩 맛을 들여가고, 서누리는 동생을 질투하며 자신도 그 욕망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 유일하게 서봄의 엄마 김진애(윤복인)만이 이런 가족의 변화를 감지하며 불안해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인물이 서봄이다. 그녀는 시부모 앞에서는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하지만 뒤에서는 엄숙한 어른의 얼굴로 비서들을 혼쭐내는 두 얼굴을 보여준다. 또한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보여주는 지적 능력을 통해 최연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면서도 남편인 한인상에게는 여전히 연인 같은 풋풋함을 보여주고 친정에는 애틋한 가족애를 드러낸다.

 

서봄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대단히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그녀는 섬뜩하면서도 애잔하다. 그 변화가 부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의 생존본능이라는 데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강해져야 친정 가족들도 보호해줄 수 있다는 자각은 서봄의 변화를 만든 동력 중 하나다. 그리고 자기가 결국은 기대야할 한정호와 최연희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티를 낸다. 고졸이라는 사실을 굳이 일깨우는 최연희에게 . 고졸 딸께요.”라고 말하는 어른 아이.

 

정성주 작가가 그리는 갑과 을의 세계는 거기 서 있는 인물의 태생적 문제가 아니라 그 위치와 시스템이 만드는 권력적 관계로서 그려진다. 즉 서봄에 대해 대중들이 갖는 양가적 감정의 정체는 그녀가 을의 정서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갑의 시스템에 적응해가고 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실로 정성주 작가가 가진 세계의 깊이를 읽어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이를 서봄이라는 캐릭터의 연기를 통해 보여주는 고아성의 놀라움도 빼놓을 수 없다.

 

가창력 대결? 이젠 즐거움을 원한다

 

MBC<일밤>에 새로 배치한 <복면가왕>은 기묘한 느낌을 준다. 그건 마치 프로레슬링 같기도 하고 어떤 면으로 보면 <복면달호> 같은 느낌의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그것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약간 만화 같은 비현실성을 담고 있다. 어디 현실에 복면 쓰고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복면가왕(사진출처:MBC)'

무대에 오른다는 건 그 자체로 얼굴을 드러낸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방송에 나온다는 것도 그렇다. 그 무수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하는 것은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무대에 올라 그 면면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노래를 통해서. 하지만 <복면가왕>은 이를 배반한다. 무대에 오르지만 얼굴을 가린다. 그러니 궁금증은 더 커진다. 노래를 너무 잘 부르면 그 궁금증은 점점 증폭된다.

 

복면을 쓰면 무대에 오르는 이들도 조금은 다른 마음을 갖게 된다. 물론 긴장감은 여전하겠지만 얼굴을 가렸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일상에서는 약간 벗어난 다른 모습을 연출해보일 수도 있다. 경연의 긴장감은 여전할지 몰라도 때로는 무대를 그저 즐길 수도 있다. 강균성이 복면을 쓰고 나와 자기 기량을 뽐내기보다는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모두를 속이려 한 건 이 복면이라는 장치가 오디션의 당락에 대한 집중을 상당부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기량 뽐내기. 가창력 자랑. “나 노래 잘해!”하고 외치는 듯한 무대에 대해서 대중들은 부담감을 느낀다. <나는 가수다>가 점점 힘을 잃고 있는 건 그래서다. 대중들은 스스로 최고임을 증명하려는 그런 시도들에 시큰둥해져 있다. 그것이 어떤 권위를 얻으려는 의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K팝스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너무 많은 천재들(?)’ 때문에 부담스러워진다. 심사위원들은 입만 열면 천재를 외친다. 물론 천재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대중들에게 이런 외침은 강요로 들린다.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강요.

 

복면은 이런 권위를 애초부터 차단시킨다. 얼굴 가리고 노래를 한다는 건 권위적인 면을 내려놓고 온전히 관객들에게 즐거움과 흥취를 주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당연히 심사위원은 필요없다. 프로그램에 앉아 있는 패널들은 노래를 평가하거나 재단하는 대신 그 노래를 한 사람이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더 드러낸다. 평가는 관객들의 즉석 투표로 이뤄진다. 누가 올라가고 누가 떨어져도 그리 큰 기쁨이나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다. 떨어진 이에게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건 이 무대가 주는 작은 권위이자 선물이다.

 

<복면가왕>은 여러모로 작금의 오디션 형식에 지친 대중들의 정서를 끌어안는 면이 있다. 경쟁과 서바이벌은 한때 오디션의 가장 중요한 장치였지만 너무 반복되면서 식상해졌다. 그래서 나온 게 콜라보레이션 미션 같은 것이지만 이것 역시 가창력 대결의 또다른 버전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가창력이 뛰어나고 누구는 덜 뛰어나다는 것을 평가하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이제 대중들은 그다지 신뢰성 있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심사위원의 심사가 점점 권위를 잃어가는 건 그래서다.

 

이제 대중들이 원하는 건 편안한 오락과 즐거움으로서의 무대다. 누구를 세워주고 권위를 부여하는 그런 무대가 아니라 온전히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무대. 그래서 <복면가왕>은 노래하는 이들에게 복면을 씌우는 기묘한 장치를 만들었다. 얼굴을 가린다는 것. 어찌 보면 단순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이 작은 설정 하나는 무대의 느낌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낸다. <복면가왕>은 그래서 향후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어떤 방향으로 진화해갈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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