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초한지', 많은 조역들이 아쉽다

'샐러리맨 초한지'(사진출처:SBS)

'샐러리맨 초한지'가 어느새 종영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것 같은데 벌써. '초한지'를 탐독한 시청자였다면 그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도 클 것이다. 원전인 '초한지'가 다루고 있는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상당 부분 삭제되어 있고, 그들을 통해 우리네 삶을 통찰하게 하는 깊이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어떤 면으로는 의도적으로 깊이는 제거한 듯한 인상이 짙다). 깊이를 삭제했다면 풍자 같은 장치를 통해 현재적인 의미를 살려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 팽성실업이 등장하면서 이런 기대를 갖게 만들었지만 이마저 폐업되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으로 흘러갔다. '초한지', 역시 드라마로는 한계가 있었던 걸까.

'샐러리맨'이라는 전제를 제목에 붙여놓은 것처럼 이 작품은 '초한지'의 샐러리맨 판 재해석으로 기획된 것일 게다. 하지만 초반에 일찌감치 유방(이범수)이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면서 샐러리맨의 느낌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중반을 넘어서 천하그룹 진시황(이덕화) 회장이 모가비(김서형)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엄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즉 그 안에 강호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인간군상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인들에게까지 삶의 처세를 알려주던 '초한지'는 이 부분에서부터 기업 간의 암투와 개인적인 복수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모가비라는 극단적인 악역이 탄생한 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의 강점이면서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 게다. 모가비와 그녀를 돕게 되는 항우(정겨운), 그리고 할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백여치(정려원)와 그녀를 돕는 유방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적절한 멜로구도를 반복했던 것이 이 드라마 후반부의 대부분이 아닌가. 삶의 처세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샐러리맨이라는 서민적인 포인트라도 짚어줬어야 했지만, 그 부분 역시 복수극이라는 커다란 극성 속에 빨려 사라져버렸다.

선악구도의 대결 속에서 몇몇 인물들에 집중하다보니, 본래 '초한지'가 갖고 있던 매력적인 인물들은 대부분 병풍처럼 되어버렸다. 유방이 가진 최고의 책사인 장량(김일우)과 한신은 유방의 그림자에 가려졌고, 항우 최고의 책사인 범증(이기영)은 모가비의 애인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본래 '초한지'의 재미가 이들 책사들 간의 두뇌싸움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뒤로 밀려난 책사들은 드라마를 너무 투톱 대결(유방과 항우)이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단순화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게다가 항우는 후반부에 이르러 멜로가 커지면서 이 대결구도의 전면에 나서지도 않는다(대신 모가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샐러리맨 초한지'는 드라마의 대중성을 위해서 상당 부분 타협을 한 작품이 되었다. 물론 이런 타협을 통해 뛰어난 재해석이 가능했다면 그것은 괜찮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스토리 라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구도를 그려내기보다는 한 사람의 절대 악(모가비)을 세워놓고 그것에 대항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주인공에 유독 집중하기 마련인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는 책사들 같은 인물들을 주인공의 그림자에 숨겨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샐러리맨'이라는 포인트 하나만이라도 일관되게 잡으면서 갔다면 종영에 이르러 도대체 이 작품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현실적인 재해석이 빠져버린 복수극으로의 끝맺음을 향해 달려가는 '샐러리맨 초한지'는 그래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 되었다.


'1박2일', 긴장감을 살릴 캐릭터는 누구?

'1박2일'(사진출처:KBS)

새로 시작한 '1박2일'은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은 결과를 냈다. 차태현은 '불운의 캐릭터'로 무려 7가지의 불운을 겪으며 "1박2일과 자신은 안 맞는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김승우는 예민한 성격을 드러내며 복불복 게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성시경은 아직 프로그램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주원은 그런대로 막내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 자체가 풋풋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기존 멤버로서 이수근이 전체 흐름을 이끌고, 김종민이 선배랍시고 나서면서 특유의 엉뚱함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첫 촬영치고 이 정도면 괜찮은 셈이다. 하지만 어딘지 기존 '1박2일'과 비교하면 조금은 밋밋하고 심심한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1박2일'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많이 흐트러져 있다. 이것은 대결구도가 없기 때문이다. 초창기 '1박2일'이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강호동 같은 강한 캐릭터가 도처에(?) 대결구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출연진들과 대결하면서 각자의 캐릭터를 세우게 했고, 또 제작진과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복불복 게임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강호동의 야생적인 느낌이 조금은 이완될 수 있는 '1박2일' 간의 여행을 팽팽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그가 세워지면 그에게 반항하는 출연진들이 가능해지고, 또 그와 복불복으로 대결하는 제작진들의 캐릭터마저 세워지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막내 작가나 막내 PD들까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대결구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동이 잠정은퇴를 선언을 하고나서 그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다름 아닌 나영석 PD였다. 강호동이 강하게 밀어붙인 것처럼, 강호동 없는 '1박2일'에 나영석 PD가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그 긴장감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새롭게 시작한 '1박2일'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강한 긴장감과 대립구도다. 물론 첫 촬영이라 그럴 것이지만, 출연진들은 너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본래 신입(?)이 들어오면 기존 멤버들과의 대립을 기대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아직까지 그런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또 제작진 역시 복불복 게임에 있어서 출연진들의 요구를 "첫 촬영이니까" 들어주는 호의(?)를 베풀고 있는 단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출연진도 달라지고 제작진마저 달라졌으니 모두가 낯설 수밖에. 하지만 좀더 '1박2일'이 나아지려면 분명 긴장할 수 있게 하는 캐릭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출연진이든 아니면 제작진이든.

또 한 가지 새로 시작한 '1박2일'에 필요한 것은 돌발 상황에 대한 순발력이다. 이번 '1박2일' 백아도 여행은 두 가지 대어를 낚을 수 있는 돌발 상황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섬으로 들어갈 때 본래 새 멤버들을 각각 주변 섬에서 데려가려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배가 회항해 새 멤버들을 모두 태우고 간 상황이었다. 이것은 제작진의 실수지만, 첫 촬영의 실수이기 때문에 거꾸로 보면 그만한 '리얼리티'를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만일 강호동 같은 인물이 거기 있었다고 생각해보라. 새 제작진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했다면 그 감정선(?)은 그대로 복불복 같은 게임의 대결구도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섬에서 빠져나올 때 갑자기 생긴 풍랑주의보로 갇히게 된 돌발 상황 역시 아까운 기회라고 생각된다.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에 의해 본래 가려던 길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야말로 '여행'이라는 아이템의 가장 매력적인 소재가 되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돌발 상황이 나왔을 때 당황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방향으로 틀어놓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흐름이 자연스러우려면 좀 더 최재형 PD가 프로그램 전면에 드러날 필요가 있다. 촬영 상황 자체 역시 흥미로운 리얼리티가 되는 게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제 첫 술일 뿐이다. 그러니 어찌 배부르기를 기대할까. 그리고 그 첫 술도 그다지 빈약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 프로그램이 진화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팽팽한 대결구도이고, 또 하나는 여행의 야생성을 드러내는 돌발 상황마저 예능으로 만들어내는 유연함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출연진이나 제작진 모두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포진은 나쁘지 않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존 '1박2일'이 내 놓은 길 위를 열심히 달리는 일만 남았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1박2일'만의 길이 열릴 것이다. 여행이란 본래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제2의 김준호를 꿈꾸는 차세대 유망주, 정태호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

정태호라는 이름은 아직은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발레리노', '감사합니다' 그리고 '용감한 녀석들'에서 랩을 한다고 하면 누구나 "아 그 친구!"하고 그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코너를 만들고도 한 켠에서 누군가를 받쳐주는 개그를 주로 해왔다. 그가 들어간 코너는 늘 대박이 났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코너의 한 파트로 기억될 뿐 중심이 된 적은 별로 없다. 아이디어도 좋고, 연기력도 좋으며, 성실한 그에게 이른바 '깔아주는 개그'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사실 '깔아주는 개그'에 대해서 서운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 자주 받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김준호 선배님도 제 연차 때 그랬거든요. 그리고 신인 때 주인공 역할을 한번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역할에서는 별로 배우질 못했죠. 받쳐주는 역할을 하면서 개그에 대해 배우는 게 생겨요. 개그는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앞에서 어느 정도 깔아줘야 뒤에서 터질 수 있는 거죠. 그 흐름을 이해 못하면 주인공 역할을 해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워요. '개콘' 시스템은 이런 것들이 잘 되어 있죠. 물론 개인적인 성격도 좀 있어요.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하지만 저도 언젠가 김준호 선배처럼 되는 날이 있겠죠."

최근 '개콘'을 다룬 '다큐3일'에서는 단 몇 마디의 대사를 치기 위해 일주일을 전전긍긍하면서도 늘 웃으며 열심히 하는 개그맨들의 일상이 공개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3분에서 5분의 무대를 위해 일주일을 꼬박 준비하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성실함' 그 자체였다. 정태호에게서 보이는 것은 그 특유의 '성실함'이었다. 코너의 한 구석 역할이지만 너무나 열심히 연기하는 그 같은 개그맨들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코너 전체의 웃음이 빵빵 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같은 코너는 아이들에게는 거의 아이돌 수준이었죠. 아마 어른들은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개콘'은 다양한 세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서수민 PD는 '개콘'이 가족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4인용 밥상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코너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거죠. 처음에는 '개콘'에는 어울리지 않는 개그라고 해서 꺼려졌던 코너이기도 했죠. 좀 반복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의외로 이 반복적인 개그가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이 코너로 증권광고도 찍었죠."

정태호가 얼굴을 제대로 알렸던 '발레리노'라는 개그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데가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 성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개그, 그것도 남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기존 개그의 금기를 깬 듯한 인상이 짙었다.

"꽤 성공한 코너지만 '발레리노'는 빨리 없어졌죠. 아줌마들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어딘지 남편이랑 보기에는 민망했다고 해요. 우울증 있는 어머니들이 방에 들어가서 웃음을 참고 봤다는 그런 개그였죠(웃음). 여러모로 모험이긴 했죠. 특히 발레를 희화화하는 그런 느낌을 주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홍록기씨를 통해 소개받은 유니버설 수석 발레리노를 찾아가 첫 시연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수석 발레리노의 감수를 거친 개그가 된 거죠. 후문이지만 그 발레리노분은 단장님한테 당시 무지 혼났다고 합니다. 물론 후에 코너를 통해 발레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발레단하고 교류하기도 했지만요."

'용감한 녀석들'은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느낌을 주는 개그다. 시작은 마치 예전에 있던 '독한 것들'처럼 뭔가 직설적으로 독한 이야기를 던지다가, 중간에는 누군가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끝은 랩이 이어지면서 음악 개그로 연결된다. 아직은 앞쪽에 배치된 '독한 멘트'에 더 주목되는 경향이 있다. 신보라가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난립에 대해 "지겨워"라고 한 것이나, 박성광이 줄곧 "개콘 PD가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개콘' 조예현 작가와 결혼한 정태호도 이 코너에서 한 방을 날렸다. "기자들 잘 들어. 앞으로 기사 똑바로 써. '정태호 미녀 작가와 결혼하다?' 그냥 작가와 결혼이다."

"'용감한 녀석들'은 작년부터 고민했던 코너죠. 다 만들어 놓고 뭔가 빠진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신보라가 힙합 개그를 짜왔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붙여서 지금 코너가 생긴 거죠. 신보라가 너무 잘해서 '신보라와 아이들'이라고 불리지만요(웃음). 사람들은 아직까지 앞부분 독한 멘트에 집중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랩이 들어가는 뒷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개그입니다. 개그를 구성하고 완성도 있게 만드는데 선배님들이나 PD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정태호는 분명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지만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개그맨이기도 했다. 어쩌면 착하다는 건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한다는 단점이 되기도 하는 세상,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할 일을 성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서수민 PD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이디어가 좋고 구성력도 뛰어난데 정작 자기가 잘 안 보이는 개그를 짜 와요." 과연 그가 자신이 어떻게 하면 돋보인다는 걸 모르고 그러는 것일까. 정태호의 부드러운 인상 뒤편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그것이 그저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 했다. 그가 말했듯이 언젠가 우리는 '제2의 김준호'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보코', 경연에도 하모니가 들리는 이유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엠넷)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서바이벌일까, 아니면 음악 그 자체일까. 아마도 1년 전만해도 우리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서바이벌'이었을 것이다. 그 경쟁 스토리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지금 '서바이벌'이 갖는 경쟁적인 스토리는 어딘지 구질구질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굳이 덕지덕지 스토리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음악과 무대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지는 어떤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닐까.

'보이스 코리아'의 배틀 라운드는 이렇게 달라진 오디션의 관전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제목 자체가 ‘배틀 라운드’이고, 무대 역시 마치 격투기 선수들이 이름이 불려지면 오르는 사각의 링 같은 서바이벌의 느낌을 풍기지만, 실제 그 위에서 부르는 두 사람(그 중 한 명은 떨어진다)은 절정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첫 링(?)에 오른 장재호와 황예린은 그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의 ‘안부’를 마치 연인 같은 느낌으로 불러주었다. 기둥처럼 굳건하게 중심을 세워주는 장재호의 보이스 위에 화려하게 장식되는 황예린의 보이스가 만들어내는 화음은 듣는 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파워풀한 지세희의 목소리에 브릿팝의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오경석의 목소리가 겹쳐져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듯 불려진 ‘맨발의 청춘’, 너무 뛰어난 목소리들의 화음 때문에 백지영으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만든 유성은과 임진호가 부른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4차원 소녀 우혜미와 파워풀한 보컬의 정소연이 블루스적인 감성을 흠뻑 느끼게 해준 신촌블루스의 ‘아쉬움’은 또 어떻고. 이것은 분명 한 명은 탈락하는 배틀 라운드지만 최고의 무대 그 자체에 더 방점이 찍히는 무대였다.

즉 서바이벌을 통해 누군가 붙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것은 그저 결과일 뿐이고, 사실은 과정 즉 무대에서 만들어지는 이 두 사람의 놀라운 어우러짐이 ‘배틀 라운드’의 진짜 얼굴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포인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보이스 코리아’는 질척이지 않고 대단히 쿨한 느낌을 선사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하지만, 무대에서는 배틀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함께 부르는 노래 그 자체에 집중하고 모든 걸 그 화음에 쏟아 붓는다. 그렇기 때문에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는 그 서바이벌 결과의 순간에 잠깐 흐르는 눈물은 기존 오디션이 갖는 신파의 느낌이 아니라 대단히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최선을 다해 무대 위에서는 싸운 선수들이 무대를 내려와 서로를 토닥이는 그런 쿨함.

오디션 프로그램을 서바이벌로 보게 되면 자극으로만 흘러가게 된다. 독설이 난무하고 누가 떨어질 것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묻힐 수밖에 없다. 결국 오디션에서 서바이벌은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도전자들로 하여금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자극제. 하지만 이제 음악을 듣기 시작한 대중들은 자극제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음악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K팝스타’의 수펄스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다. 모두가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 탄생한 수펄스라는 네 명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절정의 하모니는 듣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 순간 우리는 이것이 서바이벌의 무대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음악에 집중했던 것이 아닌가. ‘보이스 코리아’의 배틀 라운드가 보여준 그 특유의 쿨함은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징후로 보인다. 음악이다. 서바이벌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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