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 우리가 모가비에 열광한 이유

'샐러리맨 초한지'(사진출처:SBS)

'샐러리맨 초한지'는 여러 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이 모든 걸 덮어줄만한 한 가지를 얻었다. 바로 모가비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서형이라는 연기자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모가비라는 캐릭터는 도대체 뭘까. 악역이면서도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존재감을 차지했던 캐릭터. 이 캐릭터의 무엇이 대중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만든 걸까.

유방(이범수)이 "모가지"라고 비아냥대는 이 인물 속에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모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내적인 성취를 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빠르게 성공하려는 욕망과, 그래서 속 빈 강정처럼 허하기만 한 천민자본주의의 소비적인 성향,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끝없는 욕망을 위해 타인을 불행하게 하고도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이코 패스적 정신분열, 그리고 결국은 욕망의 늪에 빠져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그런 인물.

모가비가 주목됐던 것은 어쩌면 지금 현재의 한국 사회가 가진 거의 모든 문제점들을 절대 악으로서 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모가비는 먼저 파업과 직장폐쇄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그 경제적인 폭력의 문제를 드러내는 인물이고, 후반부에는 심지어 사람을 죽게 만들고도 법이라는 갑옷을 입고 버젓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정의의 문제를 드러내는 캐릭터다. 경제와 사법. 지금 현재 이만큼 우리를 공분하게 하는 단어가 있을까.

코미디라는 장르를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모가비가 가진 이 모든 문제들은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과장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무너뜨리는 유방과 여치(정려원)의 복수는 그만큼 통쾌하게 다가올 수 있다. 모가비라는 거대한 한국사회의 공분을 세워놓음으로써 우리가 마음껏 비난하고 분노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복수극의 외형을 벗겨내고 나면 거기에 모가비라는 캐릭터 속에 내재된 우리네 근대사의 문제들이 드러난다. 전근대를 재빨리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속도에 집착했던 시대, 그 속도 때문에 근대화가 주창하는 진정한 개인주의나 합리성을 체득하지는 못했던 우리네 근대사. 그래서 합리성 대신 서열과 신분이라는 전근대적인 가치를 그대로 물려받은 그 자리에 과시하듯 피어난 천민자본주의가 있었다. 모가비가 회장직에 오른 후 한 것이라고는 그 신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소비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지르게 된 범죄마저 돈으로 법을 사 덮어버리려는 모럴 해저드로 이어졌다.

모가비가 그토록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낼수록 대중들이 열광한 것은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가 권선징악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파멸될 모가비라는 인물이 한국사회의 어둠을 더 많이 껴안고 있을수록 이 이상한 복수극의 통쾌함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보면 샐러리맨이 언뜻 보이지 않는 '샐러리맨 초한지'라는 작품이 왜 굳이 '샐러리맨'을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 드라마는 현재를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에게 '초한지'가 보여주는 처세술을 가르치기보다는, 잘못된 자본주의의 파멸을 보여줌으로써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 작품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샐러리맨'들을 위안해주는 '초한지'가 '샐러리맨 초한지'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의 초반부에 진시황(이덕화) 회장이 천하그룹에 들어오는 장면, 즉 직원들이 도열해 있고 마치 제왕이나 되는 듯 그 사이를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는 진시황의 모습이 맨 마지막 유방이 천하그룹에 들어오는 장면과 겹친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전근대적인 이 풍경은 그래서 드라마의 해피엔딩을 알리는 경쾌함과 동시에, 인물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는 기업 문화의 씁쓸함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것은 모가비라는 인물은 결국 정신병동에 감금되었지만, 모가비 같은 인물을 양산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암시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 이 모든 위악을 모가비라는 한 캐릭터 안에서 독기어린 연기로 풀어낸 김서형이라는 배우의 공적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녀가 있었기에 모가비라는 문제적 캐릭터가 살았고, 그것이 결국 자칫 지리멸렬해질 수 있었던 이 드라마의 산만함을 깨뜨려 주었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모가비라는 캐릭터와 그걸 연기한 김서형이라는 배우가 있어 그 아쉬움이 덮어지는 작품, '샐러리맨 초한지'다.


'샐러리맨 초한지', 많은 조역들이 아쉽다

'샐러리맨 초한지'(사진출처:SBS)

'샐러리맨 초한지'가 어느새 종영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것 같은데 벌써. '초한지'를 탐독한 시청자였다면 그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도 클 것이다. 원전인 '초한지'가 다루고 있는 그 수많은 인간군상들이 상당 부분 삭제되어 있고, 그들을 통해 우리네 삶을 통찰하게 하는 깊이 역시 부족하기 때문이다(어떤 면으로는 의도적으로 깊이는 제거한 듯한 인상이 짙다). 깊이를 삭제했다면 풍자 같은 장치를 통해 현재적인 의미를 살려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 팽성실업이 등장하면서 이런 기대를 갖게 만들었지만 이마저 폐업되면서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으로 흘러갔다. '초한지', 역시 드라마로는 한계가 있었던 걸까.

'샐러리맨'이라는 전제를 제목에 붙여놓은 것처럼 이 작품은 '초한지'의 샐러리맨 판 재해석으로 기획된 것일 게다. 하지만 초반에 일찌감치 유방(이범수)이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면서 샐러리맨의 느낌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중반을 넘어서 천하그룹 진시황(이덕화) 회장이 모가비(김서형)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엄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즉 그 안에 강호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인간군상을 보여줌으로써 현대인들에게까지 삶의 처세를 알려주던 '초한지'는 이 부분에서부터 기업 간의 암투와 개인적인 복수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모가비라는 극단적인 악역이 탄생한 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의 강점이면서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 게다. 모가비와 그녀를 돕게 되는 항우(정겨운), 그리고 할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는 백여치(정려원)와 그녀를 돕는 유방의 대결구도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적절한 멜로구도를 반복했던 것이 이 드라마 후반부의 대부분이 아닌가. 삶의 처세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샐러리맨이라는 서민적인 포인트라도 짚어줬어야 했지만, 그 부분 역시 복수극이라는 커다란 극성 속에 빨려 사라져버렸다.

선악구도의 대결 속에서 몇몇 인물들에 집중하다보니, 본래 '초한지'가 갖고 있던 매력적인 인물들은 대부분 병풍처럼 되어버렸다. 유방이 가진 최고의 책사인 장량(김일우)과 한신은 유방의 그림자에 가려졌고, 항우 최고의 책사인 범증(이기영)은 모가비의 애인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본래 '초한지'의 재미가 이들 책사들 간의 두뇌싸움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뒤로 밀려난 책사들은 드라마를 너무 투톱 대결(유방과 항우)이라는 틀 안에 가둬놓고 단순화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게다가 항우는 후반부에 이르러 멜로가 커지면서 이 대결구도의 전면에 나서지도 않는다(대신 모가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샐러리맨 초한지'는 드라마의 대중성을 위해서 상당 부분 타협을 한 작품이 되었다. 물론 이런 타협을 통해 뛰어난 재해석이 가능했다면 그것은 괜찮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스토리 라인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복잡한 구도를 그려내기보다는 한 사람의 절대 악(모가비)을 세워놓고 그것에 대항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주인공에 유독 집중하기 마련인 대중들을 염두에 두고는 책사들 같은 인물들을 주인공의 그림자에 숨겨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샐러리맨'이라는 포인트 하나만이라도 일관되게 잡으면서 갔다면 종영에 이르러 도대체 이 작품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인가 하는 의구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 현실적인 재해석이 빠져버린 복수극으로의 끝맺음을 향해 달려가는 '샐러리맨 초한지'는 그래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 되었다.


'1박2일', 긴장감을 살릴 캐릭터는 누구?

'1박2일'(사진출처:KBS)

새로 시작한 '1박2일'은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은 결과를 냈다. 차태현은 '불운의 캐릭터'로 무려 7가지의 불운을 겪으며 "1박2일과 자신은 안 맞는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김승우는 예민한 성격을 드러내며 복불복 게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성시경은 아직 프로그램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주원은 그런대로 막내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 자체가 풋풋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기존 멤버로서 이수근이 전체 흐름을 이끌고, 김종민이 선배랍시고 나서면서 특유의 엉뚱함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첫 촬영치고 이 정도면 괜찮은 셈이다. 하지만 어딘지 기존 '1박2일'과 비교하면 조금은 밋밋하고 심심한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특히 '1박2일'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이 많이 흐트러져 있다. 이것은 대결구도가 없기 때문이다. 초창기 '1박2일'이 시청자들을 몰입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강호동 같은 강한 캐릭터가 도처에(?) 대결구도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출연진들과 대결하면서 각자의 캐릭터를 세우게 했고, 또 제작진과의 대결구도를 만들어 복불복 게임에 긴장감을 부여했다.

강호동의 야생적인 느낌이 조금은 이완될 수 있는 '1박2일' 간의 여행을 팽팽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 그가 세워지면 그에게 반항하는 출연진들이 가능해지고, 또 그와 복불복으로 대결하는 제작진들의 캐릭터마저 세워지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막내 작가나 막내 PD들까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대결구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동이 잠정은퇴를 선언을 하고나서 그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다름 아닌 나영석 PD였다. 강호동이 강하게 밀어붙인 것처럼, 강호동 없는 '1박2일'에 나영석 PD가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그 긴장감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새롭게 시작한 '1박2일'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강한 긴장감과 대립구도다. 물론 첫 촬영이라 그럴 것이지만, 출연진들은 너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본래 신입(?)이 들어오면 기존 멤버들과의 대립을 기대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아직까지 그런 상황은 나오지 않았다. 또 제작진 역시 복불복 게임에 있어서 출연진들의 요구를 "첫 촬영이니까" 들어주는 호의(?)를 베풀고 있는 단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출연진도 달라지고 제작진마저 달라졌으니 모두가 낯설 수밖에. 하지만 좀더 '1박2일'이 나아지려면 분명 긴장할 수 있게 하는 캐릭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출연진이든 아니면 제작진이든.

또 한 가지 새로 시작한 '1박2일'에 필요한 것은 돌발 상황에 대한 순발력이다. 이번 '1박2일' 백아도 여행은 두 가지 대어를 낚을 수 있는 돌발 상황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섬으로 들어갈 때 본래 새 멤버들을 각각 주변 섬에서 데려가려던 계획이 틀어지면서 배가 회항해 새 멤버들을 모두 태우고 간 상황이었다. 이것은 제작진의 실수지만, 첫 촬영의 실수이기 때문에 거꾸로 보면 그만한 '리얼리티'를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만일 강호동 같은 인물이 거기 있었다고 생각해보라. 새 제작진에게 호된 신고식을 치르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했다면 그 감정선(?)은 그대로 복불복 같은 게임의 대결구도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섬에서 빠져나올 때 갑자기 생긴 풍랑주의보로 갇히게 된 돌발 상황 역시 아까운 기회라고 생각된다.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에 의해 본래 가려던 길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야말로 '여행'이라는 아이템의 가장 매력적인 소재가 되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억지로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돌발 상황이 나왔을 때 당황할 것이 아니라 역으로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방향으로 틀어놓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흐름이 자연스러우려면 좀 더 최재형 PD가 프로그램 전면에 드러날 필요가 있다. 촬영 상황 자체 역시 흥미로운 리얼리티가 되는 게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이제 첫 술일 뿐이다. 그러니 어찌 배부르기를 기대할까. 그리고 그 첫 술도 그다지 빈약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 프로그램이 진화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팽팽한 대결구도이고, 또 하나는 여행의 야생성을 드러내는 돌발 상황마저 예능으로 만들어내는 유연함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출연진이나 제작진 모두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포진은 나쁘지 않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존 '1박2일'이 내 놓은 길 위를 열심히 달리는 일만 남았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1박2일'만의 길이 열릴 것이다. 여행이란 본래 길 위에서 길을 찾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제2의 김준호를 꿈꾸는 차세대 유망주, 정태호

'용감한 녀석들'의 정태호

정태호라는 이름은 아직은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발레리노', '감사합니다' 그리고 '용감한 녀석들'에서 랩을 한다고 하면 누구나 "아 그 친구!"하고 그의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코너를 만들고도 한 켠에서 누군가를 받쳐주는 개그를 주로 해왔다. 그가 들어간 코너는 늘 대박이 났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코너의 한 파트로 기억될 뿐 중심이 된 적은 별로 없다. 아이디어도 좋고, 연기력도 좋으며, 성실한 그에게 이른바 '깔아주는 개그'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사실 '깔아주는 개그'에 대해서 서운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 자주 받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김준호 선배님도 제 연차 때 그랬거든요. 그리고 신인 때 주인공 역할을 한번 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역할에서는 별로 배우질 못했죠. 받쳐주는 역할을 하면서 개그에 대해 배우는 게 생겨요. 개그는 혼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앞에서 어느 정도 깔아줘야 뒤에서 터질 수 있는 거죠. 그 흐름을 이해 못하면 주인공 역할을 해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워요. '개콘' 시스템은 이런 것들이 잘 되어 있죠. 물론 개인적인 성격도 좀 있어요.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거든요. 하지만 저도 언젠가 김준호 선배처럼 되는 날이 있겠죠."

최근 '개콘'을 다룬 '다큐3일'에서는 단 몇 마디의 대사를 치기 위해 일주일을 전전긍긍하면서도 늘 웃으며 열심히 하는 개그맨들의 일상이 공개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3분에서 5분의 무대를 위해 일주일을 꼬박 준비하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성실함' 그 자체였다. 정태호에게서 보이는 것은 그 특유의 '성실함'이었다. 코너의 한 구석 역할이지만 너무나 열심히 연기하는 그 같은 개그맨들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코너 전체의 웃음이 빵빵 터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같은 코너는 아이들에게는 거의 아이돌 수준이었죠. 아마 어른들은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개콘'은 다양한 세대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서수민 PD는 '개콘'이 가족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4인용 밥상이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코너들이 주목받을 수 있는 거죠. 처음에는 '개콘'에는 어울리지 않는 개그라고 해서 꺼려졌던 코너이기도 했죠. 좀 반복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의외로 이 반복적인 개그가 중독성이 있더라구요. 이 코너로 증권광고도 찍었죠."

정태호가 얼굴을 제대로 알렸던 '발레리노'라는 개그는 여러모로 파격적인 데가 있었다. 어찌 보면 너무 성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개그, 그것도 남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기존 개그의 금기를 깬 듯한 인상이 짙었다.

"꽤 성공한 코너지만 '발레리노'는 빨리 없어졌죠. 아줌마들도 그다지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어딘지 남편이랑 보기에는 민망했다고 해요. 우울증 있는 어머니들이 방에 들어가서 웃음을 참고 봤다는 그런 개그였죠(웃음). 여러모로 모험이긴 했죠. 특히 발레를 희화화하는 그런 느낌을 주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홍록기씨를 통해 소개받은 유니버설 수석 발레리노를 찾아가 첫 시연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수석 발레리노의 감수를 거친 개그가 된 거죠. 후문이지만 그 발레리노분은 단장님한테 당시 무지 혼났다고 합니다. 물론 후에 코너를 통해 발레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발레단하고 교류하기도 했지만요."

'용감한 녀석들'은 굉장히 버라이어티한 느낌을 주는 개그다. 시작은 마치 예전에 있던 '독한 것들'처럼 뭔가 직설적으로 독한 이야기를 던지다가, 중간에는 누군가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끝은 랩이 이어지면서 음악 개그로 연결된다. 아직은 앞쪽에 배치된 '독한 멘트'에 더 주목되는 경향이 있다. 신보라가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 난립에 대해 "지겨워"라고 한 것이나, 박성광이 줄곧 "개콘 PD가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개콘' 조예현 작가와 결혼한 정태호도 이 코너에서 한 방을 날렸다. "기자들 잘 들어. 앞으로 기사 똑바로 써. '정태호 미녀 작가와 결혼하다?' 그냥 작가와 결혼이다."

"'용감한 녀석들'은 작년부터 고민했던 코너죠. 다 만들어 놓고 뭔가 빠진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신보라가 힙합 개그를 짜왔는데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붙여서 지금 코너가 생긴 거죠. 신보라가 너무 잘해서 '신보라와 아이들'이라고 불리지만요(웃음). 사람들은 아직까지 앞부분 독한 멘트에 집중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랩이 들어가는 뒷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개그입니다. 개그를 구성하고 완성도 있게 만드는데 선배님들이나 PD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정태호는 분명 자기만의 세계가 있었지만 먼저 상대방을 배려하는 개그맨이기도 했다. 어쩌면 착하다는 건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한다는 단점이 되기도 하는 세상,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가 해야할 일을 성실히 해나가고 있었다. 서수민 PD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아이디어가 좋고 구성력도 뛰어난데 정작 자기가 잘 안 보이는 개그를 짜 와요." 과연 그가 자신이 어떻게 하면 돋보인다는 걸 모르고 그러는 것일까. 정태호의 부드러운 인상 뒤편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은 그것이 그저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 했다. 그가 말했듯이 언젠가 우리는 '제2의 김준호'를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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