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에 ‘무한도전’이 시사하는 점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매너리즘이라는 난관에 봉착해있다. 지난 1년 간 가장 주목을 끌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1박2일’은 어느 순간부터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버라이어티쇼로 끌고 들어와 순식간에 화제를 낳았던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똑같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일요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삼국지에서 ‘패밀리가 떴다’가 수위에 오른 것은 그 새로운 쇼가 가진 재미가 일조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경쟁 프로그램들의 매너리즘이 준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 프로그램의 미래 역시 여타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무형식이 오히려 ‘무한도전’을 살렸다

그런데 이즈음 생각해봐야할 것이 있다. 2년 여 넘게 지속되어 오면서 물론 몇 번의 매너리즘은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그 때마다 극복해내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선 ‘무한도전’은 어떤 비책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매년 반복되는 시청률 하강과 상승곡선이지만 여름 비수기를 지나 ‘무한도전’은 이제 다시 성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괴력이 가능한 걸까.


흔히들 ‘무한도전’의 최고 가치로서 끝없는 도전정신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있을까. 새로운 형식실험은 물론이고, 시류에 맞는 포맷구성(예를 들면 ‘놈놈놈’의 패러디 같은) 혹은 소재선택(태안을 소재로 한 ‘태리비안의 해적’ 같은)을 이 프로그램처럼 끝없이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의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패턴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형식’의 형식을 ‘무한도전’이 취하고 있다 일컬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바로 이 무형식의 형식은 매번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도전 상황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도대체 그 피곤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효율성의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무한도전’의 성공한 한 형식을 가져가면 거의 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여행 형식을 가져와 정착했던 ‘1박2일’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을 다시 고민한다. 즉 쌓아놓은 유리한 입장을 버리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형식의 버라이어티, 형식 속 이야기의 버라이어티

김태호 PD 스스로도 고통을 호소했듯이,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일 때 가장 먼저 지목된 이유가 바로 이 무형식의 도전 상황, 과도한 피곤함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 여행이라는 형식을 가져온 ‘1박2일’은 적어도 이 형식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을 수 있었다. ‘1박2일’이 계속해서 재미있는 소재와 아이템들을 끄집어내 단기간에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반복할 수 있는 형식이 있다는 것과, 그를 통한 학습효과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성공사례는 마치 ‘무한도전’처럼 매번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도전 상황 속에서 어떤 대안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행 같은 ‘될 만한 아이템’을 가져와 그 형식 안에서 반복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결혼을,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가 시골체험을 아이템으로 가져왔고, ‘무한도전’이라면 1회분에서 3회분 정도의 분량으로 끝낼 아이템을 이 프로그램들은 매번 반복한다. 이렇게 되자 ‘무한도전’이라면 상대적으로 작은 분량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을 좀 더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이들 프로그램 속에서는 가능하게 된다.


‘무한도전’이 매번 형식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면, 후발주자로 등장한 이들 프로그램들은 같은 형식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 문제는 이 형식이 익숙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의 이벤트는 초반에는 ‘무한도전’이 보여주지 못하는 디테일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단지 디테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가져온 형식, 즉 여행이나 결혼이라는 특정 형식 역시 식상해질 수 있다.


‘1박2일’과 ‘우결’이 ‘무한도전’에서 배워야할 것들

‘1박2일’이 여행지에 좀 더 천착하면서 그 장소가 갖는 정보의 재미를 추구했다면 매번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비슷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 동안 여행지가 가진 정보의 재미보다는 복불복 게임이나 여행지 찾아가기 같은 여행 형식 자체가 가진 재미를 반복해왔다. 상대적으로 태백의 귀네미 마을을 찾아간 ‘배추고도’편은 그 소재에 있어서 참신한 것이었지만, 그 안을 채운 것은 과거의 형식들, 예를 들면 즉석공연이나 복불복 같은 것들이었다. ‘1박2일’은 이 상황에서 장소가 달라지는 데 따라 형식 자체의 실험적인 버라이어티를 추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문제는 구성원의 문제다. 결혼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커플들의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갖고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다른 커플들, 캐릭터들을 그 형식 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초기의 재미를 다시 찾으려면 커플을 계속 교체해주어야 한다. 물론 결혼 버라이어티에서 커플의 교체는 그만한 형식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버라이어티쇼가 매너리즘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무한도전’이 매너리즘을 벗어나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끊임없는 형식에 대한 버라이어티 추구에 있었다. 어떤 아이템이 어떤 형식으로 등장할 지 아무도 모르는 그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힘이다. ‘무한도전’ 역시 늘 비슷한 형식에 대한 유혹을 벗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어떤 매너리즘에 봉착했던 적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무형식을 선택했고,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선택했다. 그것만이 매주 반복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와 익숙해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능하려면 이미 익숙해져 시청자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면 어떻게 하면 늘 낯선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1박2일’ 야구장 해프닝이 말해주는 것

시청률 지상주의가 판치는 TV 세상에서 1등이란 의미는 두 가지다. 그것은 ‘최고’라는 의미와 더불어, 늘 비판의 전면에 노출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절대 넘보기 힘들었던 드라마 시청률과의 대전에서조차 도전장을 내밀었던 예능의 지존, ‘무한도전’은 그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는 최고로 찬양(?)되었지만, 하하가 군복무로 빠지는 시점을 기해 하향곡선을 긋게 되자 가장 뭇매를 많이 맞았다. “식상하다”거나 “이제 한계”라는 비판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외부에 더 노출되는 팀원들의 행동들은 쉽게 구설수에 올랐다. 이런 뭇매는 시청률이 급락해 더 이상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이러한 1등이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은 지금 ‘1박2일’에서 반복되고 있다. ‘패밀리가 떴다’가 급부상하는 상황에 ‘1박2일’은 1주년 기념으로 간 백두산 여행을 기점으로 하락의 길을 걸었다. ‘무한도전’이 겪은 대로 ‘1박2일’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1박2일’의 경우 더 불리하게 된 것은 그간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무한도전’과의 대결구도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지류로서 청출어람을 해온 ‘1박2일’의 그간의 승승장구는 ‘무한도전’의 하락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으로 오인되기에 충분했다. ‘1박2일’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1년 전에 갔었던 충북 영동을 다시 갔지만 그렇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태백의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편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간 ‘1박2일’이 보여준 재미를 거의 재연해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시청률 하락에 대해 시청자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기울어진 대세는 ‘1박2일’의 어떤 노력도 먹히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에 결국 터질 게 또 터지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장에서 촬영을 한 ‘1박2일’이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현장에서 일반인들과의 접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접촉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1박2일’이 승승장구했던 시기에 톡톡히 재미를 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대민 접촉이었다. 독도 같은 오지를 직접 찾아가거나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하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등의 대민 접촉은 ‘1박2일’ 멤버들의 서민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더 부각시켰다. 연예인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존재가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는 장면들은, 멤버들의 겸손한 자세로 읽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러한 대민 접촉은 정반대로 읽히게 된다. 물론 촬영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있을 수 있지만, 야구장에 투입된 멤버들에 쏟아지는 비난의 초점은 그 시점의 이동에서 발생한다.

2등이나 3등에 대해 이해하는 입장에 서 있던 대중들도 1등에 대해서는 좀더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한다. 특히 그 1등이 어떤 하락의 기미를 내보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상 2등을 하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멤버들은 1등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다지 태도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비춰지는 양상은 다르다. 이수근이 방송에서 언급한 “이제 1년 만에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나대지 말라”고 한 시청자게시판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주목받지 못한 상황에서 동정 어린 응원을 받았지만 이제 막 주목받는 상황에서 나대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이 변화는 바로 ‘1박2일’이 지금 처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이든 앞으로든 1등에 오를 리얼 버라이어티가 직면할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지나친 시청률 지상주의의 결과다. 모든 것을 시청률로 판단하게 될 때, 프로그램의 진짜 내용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순위에만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언제까지 이 수직적인 순위 경쟁에만 매달릴 것인가. 1등, 2등이라는 숫자경쟁이 아니라 각 프로그램마다 다른 형식이나 내용, 아이템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미지 닥터’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 그 이유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들. 그런데 그 이미지가 이미 낡아버렸거나, 너무 과장됐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변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과거라면 아마도 대부분은 이미지의 생명이 끝나면서 연예인으로서의 삶도 끝장나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고치면 되니까. 어떻게? ‘이미지 닥터(?)’를 찾아가면 된다. 다름 아닌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말하는 것이다.

없던 이미지도 만들어드립니다!
‘1박2일’에 출연하기 전까지 은지원은 그저 힙합아이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에게서 조금은 막무가내지만 귀여운 초딩 이미지를 끄집어내 주었다. 자신감을 가진 은초딩은 지금 은둘리 같은 보다 적극적인 캐릭터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김C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가 낳은 캐릭터다. 좀더 연기를 해야하는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라면 좀체 적응하기가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거꾸로 연기를 하지 않아야 더 각광받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속에서 그는 그저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새로 세웠다.

‘개그콘서트’에서 고음불가로 캐릭터를 세웠던 이수근은 버라이어티쇼로 와서 적응기가 필요했다. 초반 이렇다할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하던 그였지만 차츰 차츰 발현하게 된 그의 재치 있는 입담은 무덤덤하게만 보이던 국민일꾼이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꽤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준 ‘1박2일’의 덕이다.

한편 ‘패밀리가 떴다’의 박예진은 어딘지 무뚝뚝해 보였던 이미지를 ‘달콤살벌한(?)’ 이미지로 바꿔주었다. 또 이천희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진지하기만 했던 이미지를 벗고 어딘지 엉성한 이미지를 부가해 천데렐라라는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없었던 이미지도 만들어주는 곳, 바로 그 곳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낡은 이미지는 편안하게, 과장된 이미지는 친근하게, 비호감은 호감으로
윤종신은 늦둥이로 예능계에 진출해 라디오에서 단련된 특유의 입담을 선보였다. 그의 깐죽 캐릭터가 점차 수면에 올라오게 된 것은 ‘라디오스타’, ‘명랑히어로’ 같은 캐릭터화된 리얼 토크쇼를 통해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윤종신의 캐릭터를 잡아준 것은 ‘패밀리가 떴다’다. 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윤종신의 단지 깐죽거리는 캐릭터 이외에 ‘미식전문가’ 같은 성격을 부여하면서 오래된(?) 이미지를 오히려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한편 같은 프로그램의 이효리나 대성, 혹은 간혹 게스트로 출연하는 아이돌 스타들은 연예활동을 통해 쌓여진 과장된(?) 캐릭터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변모시키고 있다. 유재석과 늘 툭탁거리며 짝을 이룬 이효리는 여지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요정의 이미지에 털털한 이미지를 덧붙였다. ‘무한도전’의 멤버가 된 전진은 ‘패밀리가 떴다’에도 출연하면서 꽃미남 아이돌 스타 이미지에 코믹한 성격을 부여했다.

비호감 이미지였던 서인영은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신상녀 이미지를 덧붙였고 이를 통해 예능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진솔한 모습이 비호감 이미지까지 호감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방송활동이 뜸했던 연예인들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복귀를 꿈꾸고 있다. 새롭게 케이블 채널 tvN에서 시작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180분’의 이영자와 이찬이 그 주인공이다.

무엇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이미지 닥터로 만들었나
이밖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세우고 싶어한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들은 그만큼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그저 부여안고 있을 틈이 없다. 자꾸만 변해 가는 신상 캐릭터에 대한 요구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잊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연예인들이 이미지 변신을 하는 방식은 작품을 통해서였다. 즉 배우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가수들은 새로운 음반을 통해서, 개그맨은 새로운 개그코너를 통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강력하게 등장한 것이 바로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배우든 가수든 개그맨이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쇼는 이른바 리얼리티를 통해 그네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실제로 드러낸다기보다는 그럴 것이라 상상하게 만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니 이 ‘진정성의 형식’속으로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의 이미지 ‘변신, 수리, 복구(?)’가 가능해진다. 이른바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몰랐던 면들을 발견하게 되고, 잘못된 면들도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 전제는 진솔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지만.

지금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이미지 전쟁이라 할 만큼 치열해진 연예계에서 어떤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쳐있던 이미지는 그 속에 들어가 새로운 활력을 얻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과장된 이미지는 그 속에서 털털한 친근감을 얻기도 하며, 한 때의 잘못으로 복구 불능에 빠진 이미지는 그 속에서 솔직한 심경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도 한다.

이미지 닥터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쇼. 이것은 거꾸로 리얼리티 세상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문제에 있어서 그 무엇이든 솔직한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재석과 강호동의 남자 전진, 예능의 조커가 된 이유

지금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는 전진이 아닐까. 물론 과거에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만능 체육맨으로 종횡무진하던 전진이었다. 하지만 지금 전진에게 쏠리는 예능의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주목할 점은 그가 국내 최고 예능MC인 유재석과 강호동의 프로그램을 오가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하하가 빠진 ‘무한도전’의 공석으로 ‘굴러 들어온’ 전진은 빠르게 ‘박힌 돌’들 사이에서 적응해가고 있으며, ‘야심만만-예능선수촌’에서는 고정MC를 맡아 특유의 진지 모드로 남다른 예능감을 자랑하고 있다. 한편 객원MC로 출연한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특유의 만능 체육맨으로서 김계모(김수로)와 맞대결을 벌이고, 순위 게임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온 놈’설정으로 웃음을 주었다. 도대체 전진이 가진 그 무엇이 이 종횡무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메인과 게스트 사이, 객원의 자리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있어서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과 캐릭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어 노출되다보면 지겨워지기 마련.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무한도전’은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 쇼들이 무한소비로 피곤해진 캐릭터를 다시 세우는 방식은 새로운 캐릭터성격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무한도전’의 박명수가 거성에서 아버지로 또 ‘하찮은’으로 캐릭터 이름을 바꾸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격은 그대로인데 껍데기만 바꾸는 식으로 본질적인 해결은 돼지 못한다. 결국 진짜 문제의 해결은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가 출연했을 때 가능해진다. 하하가 군입대로 빠지고 나자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은 더 힘겨운 상황에 놓였다. 캐릭터는 다양한 관계 속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그 하나의 공석은 하나에서 끝나지 않는다. 제 7의 멤버, 즉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얘기가 거론되었지만 반대 또한 만만찮은 상황. 그 자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자리이면서도 동시에 위험천만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진출한 전진은 그 자리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전진은 고정도 아니고 게스트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무한도전’에서는 전스틴과 잔진으로,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게임마왕을 긴장시키는 젊은 피로, ‘야심만만2’에서는 MC몽과 함께 업다운 브라더스로 등장한 그는 ‘객원’의 위치에 서서(그것이 고정이든 게스트든) 프로그램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면서 독자적인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전진이 가진 진지함 속의 허술함
그러나 새로운 캐릭터를 가진 게스트가 프로그램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주기는커녕 기존 고정 출연자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유일하게 게스트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패밀리가 떴다’가 가진 딜레마이기도 하다. 캐릭터 간에 확실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고정MC들 사이에서 게스트는 때때로 꿔다 논 보리자루가 되기도 한다. 중간에 출연했던 G-드래곤이나 신성록 같은 게스트는 열심히는 했지만 패밀리 속으로 완전히 침투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하지만 전진은 출연하자마자 바로 패밀리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김계모와는 묘한 경쟁관계로, 여성 출연자들과는 묘한 애증관계로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가진 객원의 이미지가 그만큼 독자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프로그램에 투입되기 이전부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인지되어 있었고, 그것은 지금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보기 드는 독자적인 캐릭터였다.

전진은 그 예명처럼 앞으로만 나갈 것 같은 직선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다. 그것은 모든 엉뚱한 상황 속에서도 늘 진지하며, 누군가를 바라보면 거의 다른 쪽에는 눈을 돌리지 않을 정도로 집착하고, 장난처럼 하는 게임에서도 거의 이겨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스포츠맨처럼 과도한 열정을 보인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느슨한 상황(희화화된)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진지함을 유지하는 전진은 늘 깨지고 무너지는 캐릭터들이 이제 조금 물리는 시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늘 도전하지만 지기만 하는 캐릭터도 우습지만, 늘 이기려고 집착하는 캐릭터도 우스운 법이다.

전진이 지금 예능 프로그램의 조커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현재 그가 조금은 지쳐있는 쇼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꾸로 지금 현재 예능 프로그램 속의 캐릭터들이 거의 대부분 무너지고 깨지는 희화화된 캐릭터들로 넘쳐난다는 것을 반증한다. 전진은 그 속에서 오히려 거꾸로 진지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함으로써, 그것이 유재석이든 강호동이든 또 그것이 어느 방송사이든 어느 곳에 투입돼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조커 캐릭터가 된다. 늘 쇼의 밖에 존재하지만 어떤 쇼에든 적용 가능한 조커. 지금 전진의 전성기는 이 자신만의 캐릭터와 현재 피곤해진 예능 환경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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