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정이 보여준 <나 혼자 산다>의 진가

 

황석정은 드라마 <미생>의 반전뒤태 재무부장으로 대중들의 마음속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러브콜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제 중년에 혼자 살아가는 그녀는 MBC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 최적일 수밖에 없다.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소유나 효린, 엠버처럼 간간히 여성 출연자들이 출연하게 된 것은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상에 부려진 관찰카메라의 시선이 자칫 엿보기 악취미로 그려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일상이 주는 헛헛함이 어찌 남성들만의 것이랴.

 

그런 점에서 보면 황석정만큼 그 리얼함의 끝을 보여준 인물도 없을 것이다. 자다 일어난 부스스한 민낯은 기본이고 목욕탕에 쪼그리고 앉아 긴 머리를 벅벅 감는 모습도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같이 사는 반려견 대박이와의 스킨십은 마치 오래된 지인같은 편안함이 묻어나고, 도시락으로 김밥을 마는 솜씨에서는 그녀의 능숙함이 묻어난다.

 

사실 황석정이 등장해서 보여주는 특별함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은 그저 그녀의 일상일 뿐이다. 차 한 잔을 들고 나와 베란다에 앉아 마시는 장면이나, 거기에 그녀가 키워놓은 꽃과 야채를 살짝 보여주는 것, 그리고 소파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 일상처럼 보이는 대박이를 바라보는 건 남다를 것 없는 보통사람들의 삶 그대로다.

 

이제 대중들이 TV를 통해 보려고 하는 건 셀러브리티들의 특별한 삶에 대한 선망이 아니게 되었다. 관찰카메라의 시대는 보다 일상 가까이에서의 공감을 요구한다. 따라서 황석정이 보여주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소소함이란 다름 아닌 <나 혼자 산다>가 가진 진가다. 이 프로그램을 늘 새롭게 하는 것은 그 특별함을 거둬내고 일상의 자잘함들에 시선을 돌릴 때 생겨난다.

 

민화를 배우고 그렇게 그린 그림을 황정음이나 김광규 같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같은 나이로 혼자 살아가는 대학동기들과 만나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이젠 달콤한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 나이대에 가질 수밖에 없는 솔직한 소회를 나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텅 빈 집으로 홀로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누구나 그 삶의 뒤태를 보면 느껴질 수 있는 쓸쓸함이 묻어난다.

 

병원 검사비 때문에 한껏 딸을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괜찮다고 재차 말하는 황석정의 무덤덤한 표정 속에는 그래서 우리네 삶이 고스란히 담긴다. 특별할 것 없는 삶이지만 그렇게 하루를 들여다보면 드디어 보이는 그 반짝거림의 실체. 그것은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일상으로 흘러가지만 그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여겨지게 만든다는 것.

 

이것은 <나 혼자 산다>가 빛나는 이유다. 이 카메라가 헌사하는 일상에 대한 시선들 속에는 그렇게 무참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에 대한 소중함이 묻어난다. 황석정의 그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들에서 느껴지는 보통의 특별함’. 그것이 <나 혼자 산다>의 진가다.

 

 

김우빈, 준호, 강하늘, <스물>이 보여준 가능성들

 

이들에게 이런 면들이 있었나. 영화 <스물>에서 우리가 늘 봐왔던 김우빈이나 준호 그리고 강하늘의 모습은 조금 낯설어진다. 어딘지 반항기 가득한 김우빈이 이토록 병맛 코드로 웃길 줄 누가 알았으랴. <상속자들>에서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들던 그 대사도 멋지게 소화해내던 그 김우빈은 <스물>에서는 입만 열면 섹스하자고 외치는 반전의 허당으로 관객들을 웃긴다.

 

사진출처:영화<스물>

2PM 준호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다. 물론 <감시자들> 같은 영화에서 이 친구 연기 가능성이 좀 있다고 생각했던 관객이라면 내 이럴 줄 알았다고 무릎을 쳤을 지도 모른다. 준호는 <스물>에서 힘겨운 청춘의 삶에서도 순수하고 순진하며 긍정적인 동우 역할 그 자체처럼 보인다. 그가 이유비(소희)와 만들어가는 풋풋한 이야기 속에서 준호라는 괜찮은 연기자의 틀을 발견하게 된다. 연기톤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은 준호의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어딘지 조금은 재수 없던 <미생>의 스펙남 장백기로 강하늘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분들 역시 <스물>을 통해 그가 천상 연기자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 한 번 못해본 쑥맥 경재라는 청춘을 연기하며 강하늘은 한없이 망가진다. 그 망가짐이 장백기의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강하늘의 연기 스펙트럼이 의외로 넓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스물>은 코미디다. 물론 청춘의 고달픔을 그 이면에 깔고 있지만 그걸 영화는 그다지 전면에 내세워 쓸데없는 진중함에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청춘을 다룬 영화의 패턴이 초중반까지 시종일관 웃기다가 후반에 이르러 눈물로 마무리 짓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는 끝까지 코믹함과 경쾌함을 잃지 않는 추진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영화가 청춘의 문제를 지나치게 무겁게도 또 가볍게도 다루지 않으려 고민했다는 증거다. 클라이맥스에서 벌어지는 소동극은 그래서 우습지만 그 이면에 짧은 페이소스 같은 걸 남긴다. 물론 결말은 통상적인 성장 드라마를 취하고 있다. 스물이라는 청춘의 고단한 터널을 넘고 나면 거기서 새로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걸 영화는 밝은 전망으로 그려낸다.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생각해보면 너무 경쾌한 것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청춘이 가진 긍정을 비관적으로만 다룰 필요는 없는 일 아닌가. 적어도 스물이라면 그 때만이라도 아픔마저 좋은 시절로 기억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영화의 힘은 다름 아닌 김우빈, 준호, 강하늘 같은 출연자들에게서 나온다. 이들이 보여주는 스물의 풋풋함은 그 시절을 한참 지나온 중년들에게도 훈훈한 미소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성격도 너무나 다르고 사는 환경도 제각각이지만 우정이라는 관계로 똘똘 뭉쳐져 있는 이 세 사람의 모습은 청춘만이 가진 힘이자 특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아직은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을 벗어나 끈끈한 우정으로 묶여질 수 있는 그들이 하나의 판타지처럼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청춘의 면면들을 각자 가진 색깔로 연기해낸 김우빈, 준호, 강하늘의 지분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다.

 

도대체 <언브로큰>의 무엇이 일본 극우세력을 자극 했나

 

‘19세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 47일간의 태평양 표류, 850일간의 전쟁 포로.’ 영화 <언브로큰>은 이 몇 줄만으로도 충분히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가늠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건 실화다. 1940년대 미국에서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루이 잠페리니가 실제 겪었던 삶.

 

사진출처: 영화 <언브로큰>의 안젤리나 졸리 감독

이 드라마틱한 삶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강렬하다. “버텨낼 수 있다면 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식으로 미생의 삶도 버텨내면 완생이 될 수 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루이가 그 고난의 삶을 버텨내는 장면들은 아무런 삶의 목표가 없이 부유하던 그가 형의 충고로 하게 된 달리기를 닮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그 순간을 버텨냄으로써 승리의 영광을 차지한 것처럼, 그의 삶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포기할 줄을 몰랐다.

 

루이의 삶이 워낙 드라마틱하다보니 영화는 마치 세 개의 영화를 붙여놓은 듯한 인상마저 준다. 그가 달리기를 하는 앞부분이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스포츠 휴먼드라마라면 전쟁에 참전했다가 바다에 표류해 47일간을 버텨내는 중간 부분은 마치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는 듯한 서바이벌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리고 850일 간의 전쟁 포로 생활을 보여주는 마지막 부분은 마치 일제 치하의 암울했던 우리네 역사를 보는 듯한 참혹한 전쟁물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일본의 극우세력이 일본 내 상영금지와 감독인 안젤리나 졸리의 입국금지를 요구하고 나아가 이 영화에서 라고 불리는 잔인한 일본군 와타나베 역할을 한 록스타 미야비를 추방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게 된 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인 일본 수용소 이야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세력들은 미야비가 재일교포 3세라는 사실을 들먹이며 영화의 이야기가 완전한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마루타> 같은 고전영화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언브로큰>이 그리고 있는 일본군의 이야기는 오히려 너무나 순화된 느낌마저 준다. <언브로큰>의 원작에는 생체실험과 인육을 먹이는 장면까지 들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는 이런 장면들을 영화 속에 담지 않았다.

 

안젤리나 졸리는 이런 민감한 역사적 사안을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일본을 적대적으로 그리려고도 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영화 속에는 미군의 폭격으로 죽은 일본 민간인 시체들이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장면도 살짝 들어가 있다. 그만큼 어느 한쪽의 편을 든다기보다는 전쟁 자체의 참혹함을 다루려 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일반화를 하려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루이 잠페리니가 겪은 개인사에 집중되어 있다. 그 드라마틱한 생존의 과정들을 담으면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위대한 인간의 의지에 대한 것이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잔학함을 폭로하려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서의 루이의 고난을 다루면서 그것이 일본군 전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와타나베라는 개인적인 인물의 문제로 그리려한 점도 그렇다.

 

안젤리나 졸리는 일본을 일반화하려 하지 않았다. 루이가 겪은 특별한 사건으로 다루려 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런 일반화를 하지 않으려는 선택으로 인해 영화는 심지어 조금 담담한 느낌마저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이를 문제 삼고 있는 건 이들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오히려 <언브로큰>이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최근 우리네 대중문화에도 똑같이 불어 닥친 버텨내는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삶이 혹독한 현실 앞에서 포기된 건 전 세계적인 경향이 아닐까. 이제는 어디서든 버텨내라 그러면 해낼 수 있다는 미생의 삶을 얘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만한 파괴력 가진 라인업 찾기 힘들다

 

<미생><삼시세끼>가 모두 종영했지만 이 프로그램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끝이 없다. <미생>은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윤태호 작가가 시즌2의 연재를 시작할 거라는 이야기는 즉각 기사화되어 인터넷을 달군다.

 

'미생(사진출처:tvN)'

웹툰과 드라마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이 시즌2가 드라마화 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물론 CJ E&M과 시즌2 계약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웹툰 시즌2가 작품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드라마화가 결정된다고 해도 제작상의 문제, 이를테면 캐스팅이나 비용적인 문제 같은 것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이후에나 확실한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tvN은 좀체 <미생>의 그 화제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예능판 패러디로 <미생물>2부작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은 여러모로 <미생>이 만들어낸 tvN 콘텐츠에 대한 존재감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도다.

 

이런 상황은 <삼시세끼>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망한프로그램인 양 등장했지만 의외로 엄청난 성과를 낸 <삼시세끼>는 본래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즌제로 기획되었다. 따라서 가을 시즌이 끝나고 어느 정도는 휴지기를 가져가는 게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여기서 쉬지 않고 스핀오프로서 어촌편을 기획해 촬영에 들어갔다. 차승원, 유해진, 장근석 같은 출연자들의 면면만 봐도 이 어촌편은 거의 블록버스터급으로 진화한 모습이다. 정선에서 했던 <삼시세끼>가 소소한 일상의 특별함을 잡아냈다면, ‘어촌편은 그 흐름을 이어가면서도 바다가 주는 그 힘을 느끼게 해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건 이 <삼시세끼>가 어촌편의 스핀오프를 제작함으로써 tvN이 이미 금요일 저녁에 구축해 놓은 시간대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지난 <미생>, <삼시세끼> 그리고 <슈퍼스타K6>로 이어지는 황금의 tvN 라인업은 시청자들의 금요일 밤 시청 행태까지 변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지상파를 찾기보다는 tvN에 고정되는 효과를 가져왔던 것.

 

<미생><삼시세끼>가 모두 시즌을 마감했지만 그 후에도 여전히 그 힘을 유지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로그램의 성패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편성시간대의 헤게모니를 가져오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tvN 입장에서는 <미생><삼시세끼>의 흐름을 어떻게든 이어나가야 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다.

 

과연 <삼시세끼> 어촌편은 그 흐름을 계속 잇게 만들 수 있을까. <미생> 신드롬이 만들어낸 tvN표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은 어느 정도 이어질 수 있을까. 만일 <미생>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또 한 번의 <삼시세끼><미생>의 황금 라인업은 가능할 수 있을까. <미생><삼시세끼>tvN이 못 버리는 카드가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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