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후의 편지, 용기일까 무리수일까

 

“하지만 사건 이후에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제 곁에 있어주신 여러분을 보면서 용기를 내어 봅니다.” 성 스캔들로 인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시후가 팬 카페에 그간의 심경에 대해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그 편지에서 박시후는 팬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팬들을 가족이라 칭하며 그 “가족이 있어 다시 한 번 꿈을 꾸고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려 한다”고 했다. 언젠가 배우로서 복귀할 뜻을 전한 것.

 

'청담동 앨리스(사진출처:sbs)'

팬 카페에 올린 글이니만큼 일반 대중을 향한 이야기와는 사뭇 다를 수 있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지해주는 팬들이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그 지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감사의 표시를 전하고, 또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우리네 연예 언론들은 팬 카페든 미니 홈피든 아니면 SNS든 다분히 사적인 이야기들도 끄집어내 공론화하는 습성을 가졌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박시후 스스로가 의도한 점이 있을 지도 모지만.

 

어쨌든 팬 카페에 글을 올리는 순간(그것도 박시후가 아닌가!) 그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공적인 이야기처럼 전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일반 대중들의 정서가 팬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지난 2월 갑자기 불거진 박시후 관련 성 추문은 그가 일반 대중들에게 갖고 있던 반듯한 이미지에 커다란 흠집을 만들었다. 게다가 이 스캔들 공방은 점점 가열되면서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까지 공개되는 극한의 상황까지 이르렀다. 대중들의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박시후는 그 일련의 과정을 지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성폭행을 주장했던 여성이 합의에 의해 고소를 취하했던 것. 결국 진실은 당사자들만이 아는 것으로 남겨지게 됐다. 문제는 법적으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그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어쨌든 드러난 치부는 설혹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자신의 잘못도 거기에 분명 들어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던가. 물론 성폭행 주장 여성의 말처럼 그가 가해자라면 두 말할 나위가 없는 이야기다.

 

이처럼 여전히 의혹이 남아있고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박시후가 팬 카페에 올린 편지는 너무 앞서가고 있는 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팬 카페에 올린 팬들을 위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표시겠지만, 그것이 밖으로 유출되었을 때 일반 대중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마치 온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듯한 뉘앙스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게다.

 

“길고 거센 이번 여름 장마처럼 저에게도 모진 비가 내렸지만 그 비를 이겨낸 만큼 더욱 땅이 단단해지리라 믿습니다.” 박시후의 소망은 이것이 그냥 한 때 지나가는 비였으면 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대중들의 마음은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다. 그가 다시 단단한 땅이 되려면 바로 이 지금의 현실 인식을 바라보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은 행동이나 말 한 마디가 중요한 시점이다. 특히 본업이 대중들을 캐릭터에 몰입시켜야 하는 연기자라면 그 손상된 이미지에 대한 기억이 조금은 지워질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섣부른 용기보다는 좀 더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장윤정, 굳이 아픈 가족사를 공개해야만 했나

 

몇 주간 장윤정이라는 이름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서 빠지질 않는다. <힐링캠프>에 출연하기 전부터 여의도 증권가 찌라시로 유출된 사전 인터뷰 내용은 한바탕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자신이 10년 간 번 돈을 어머니와 남동생이 모두 날려버렸다는 이 자극적인 이야기는 세간의 관심을 온통 그녀가 출연하기로 예정된 <힐링캠프>에 집중시켰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장윤정은 예상 외로 차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돈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고, 오히려 뿔뿔이 흩어지게 된 가족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녀는 가족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했고, 이제 앞으로 결혼해 가족을 꾸리게 될 도경완 아나운서와의 핑크빛 러브스토리와 도경완 아나운서의 월급으로 살 거라는 소박한 이야기도 전해주었다.

 

사전에 터진 논란에 비하면 너무나 깔끔한 방송이었다. <힐링캠프>의 힘이 그 정도로 컸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윤정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과 후의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돈을 몽땅 날리고 빚까지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큰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흩어지는 가족을 걱정하는 모습은 장윤정이 효녀이며 그 누구보다 가족을 생각한다는 걸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또 행사 여왕으로서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던 돈 이미지도 이제는 소박한 한 여인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하지만 <힐링캠프>가 방영된 후 케이블 채널에서는 장윤정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남동생과 어머니의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모 회사를 운영하는 남동생은 “미니홈피에 어머니와 함께 자살하라는 악플들로 가득 차 있다”며, 누나의 돈을 자신이 사업으로 날려먹었다는 이야기는 오해라고 주장했다. 어머니 역시 인터뷰를 통해 33년 간 키운 딸이 비수를 꽂았다고 말했다.

 

장윤정 측에서는 여기에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인터넷은 남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비난 여론만 더 커지고 있다. 무언가 복잡하게 얽힌 가족사가 있다는 추정들과 그로 인해 각종 루머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장윤정의 개인 가족사일 뿐이다. 거기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 장윤정과 가족 간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들은 이제 피로감마저 느끼게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먼저 의문이 드는 점은 이미 증권가 찌라시를 통해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포된 상황에서 장윤정이 <힐링캠프> 출연을 강행한 것이 과연 적절했는가 하는 점이다. 유포된 내용의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윤정만 혼자 나와 “그 내용이 다 사실”이라고 밝히는 것은 자칫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또 장윤정이 시종일관 가족을 보듬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장윤정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다지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것은 가족 간의 이야기이면서도 그 안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들어가 있다. 장윤정이 피해자이면서도 괜찮다고 말한다고 해서 가해자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즉 결과가 보여주듯이 장윤정이 방송에서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 한쪽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방송은 그 자체로 다른 쪽에게는 공격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화살의 표적이 되고 있는 남동생과 어머니의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장윤정이 피해자이고 남동생과 어머니가 잘못한 점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정 반대로 남동생과 어머니 말처럼 이것이 전적으로 잘못 전달된 오해일 수도 있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당사자들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가족 간에 생긴 마찰이란 때로는 양자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는, 그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일 때도 많지 않은가.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은 결과적으로 가족들 간의 문제이고 그 안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어느 한 쪽이 피해자가 되고 어느 한 쪽이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만의 이야기를 집중시키게 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문제다. 한쪽이 진심을 토로한다는 미명 하에 쏟아낸 아픈 가족사가 다른 한쪽에게는 대중들의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스테리로 남는 건 그토록 가족 걱정을 하는 효녀인 장윤정이 왜 굳이 아픈 가족사를 공개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이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진정 몰랐을까.

무엇이 학교를 눈물 흘리게 하나

 

한 중학생 아이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투신자살했다. 아이의 엄마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내용이 유서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는 심지어 “무슨 소설을 본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같은 또래 아이들이 벌을 세우고, 전선으로 목을 감고 끌고 다니고... 얼마나 그것이 고통스러웠으면 자살로 그 맞는 아픔을 더 이상 끝내고 싶었을까.

 

'학교2013'(사진출처:KBS)

<SBS스페셜>이 기획한 <학교의 눈물>은 사회면을 뜨겁게 만들었던 대구에서 벌어진 고 권승민군에게 벌어진 끔찍한 학교폭력과 자살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우울증에 그냥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고, 특히 권승민군의 형은 “가해자 애들 다 죽여버리고 자기도 죽여버리겠다”며 피가 나도록 벽을 주먹으로 쳐댔다고 했다. 왜 안 그렇겠나. 자신들의 일부 같은 가족이 그런 처참한 고통을 겪고 세상을 버렸는데.

 

문제는 가해자의 44%가 피해경험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로 둔갑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한 왕따를 심하게 당해왔던 아이는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했던 친구가 배신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친구를 때려 가해자가 되었다. 그 아이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지만 결국 학교는 아이에게 자퇴를 권유했다.

 

한편 가해자가 되어버린 아이 역시 처음에는 아주 소소하게 시작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무려 십여 명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깊이 후회하고 있었다. 또 여전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담배 심부름을 하는 아이는 그 분노를 가족에게 풀기도 했다. 도대체 우리네 학교는 어째서 학생들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어 뒤늦게야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걸까.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드라마 <학교 2013>은 그 단서를 제공해준다. 끝없는 입시경쟁으로 학생들조차 선생님에게 입시 관련 공부만을 요구하고, 학교는 오로지 명문대에 얼마나 많이 보내는가 같은 실적에만 혈안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그들은 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분노를 품고 있거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 청소년기에 품어야 할 꿈같은 것은 꿀 여유조차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마치 하루하루를 버텨내야할 시간으로 만들어버린 걸까. 일진이었다가 사고를 친 후 전학 와서 마음잡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고남순(이종석)이나, 그의 친구였지만 피해자가 되어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선수의 꿈을 포기하게 된 박흥수(김우빈)나, 그저 공부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송하경(박세영),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비뚤어져 버린 오정호(곽정욱), 치맛바람에 휘둘리는 김민기(최창엽) 같은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원하지 않았어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어버린 아이들이다.

 

<학교의 눈물>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에게 판결을 내리던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폭력의 일차적 책임은 아이가 아닙니다. 사회가 만든 겁니다. 이 아이들 전부 대한민국의 아이들 아닙니까.” 결국은 도무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아이들을 그 벼랑 끝까지 내몬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꿈이 되지 못하고, 아이들을 경쟁이라는 매질로 학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학교의 눈물은 그칠 수 없을 것이다. <학교의 눈물>이 실험하겠다는 ‘소나기 학교’에 자꾸만 희망을 걸게 되고, <학교 2013>의 이상처럼만 보이는 정인재(장나라) 선생이 현실이 되기를 기대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보고싶다>, 피해자들을 위한 진혼곡

 

“내 딸이 죽었어요. 그놈들은 성폭행을 한 게 아니라 살인을 했습니다. 내 딸이 죽었어요." 결국 성 폭행범을 제 손으로 죽이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보고싶다>의 보라 엄마(김미경)가 던진 이 한 마디는 아마도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을 게다. 그녀를 찾아와 그녀에게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고맙습니다.”라며 통곡한 또 다른 피해자 수연(윤은혜)의 어머니 김명희(송옥숙)의 절절한 말은 또한 이 땅의 모든 부모가 보라 엄마에게 하고픈 말이었을 게다. "나 대신 해준 건 고맙고, 나 대신 벌 받는 거 같아 미안하고.."

 

'보고싶다'(사진출처:MBC)

<보고싶다>라는 제목은 이 드라마를 단순한 멜로처럼 여겨지게 만들지만(또 멜로가 전면에 깔려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절절한 그리움 속에는 깊은 아픔이 깔려 있다. 성 폭행을 당한 후 살해당한 것처럼 은폐되었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수연 엄마 김명희와 수연을 사랑하는 정우(박유천)는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연을 끌어안고 살아온다. 무려 14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만 같은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담벼락에 새기고 또 새겨서 점점 더 선명해진 ‘보고싶다’라는 글자처럼 그것은 긁고 또 긁어서 지워지지 않은 상처처럼 더 깊어졌다.

 

세상이 이토록 끔찍한 데 한가한 사랑타령이 가당키나 할까. <보고싶다>가 우리네 멜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그 많은 신데렐라들과 그만큼 또 많은 변형된 왕자님들을 또 세우지 않는 건 그런 이유다. 거기에는 신데렐라 대신 성 폭행의 후유증으로 과거를 의식적으로 지우고 살아가려는 피해자 수연이 있고, 왕자님 대신 그 피해자 수연을 하루도 잊지 않고 14년 간 그리워하며 찾아다닌 형사 정우가 있다.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조합이 피해자와 형사의 조합으로 바뀌게 된 것.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한 법 정의의 문제는 멜로에서조차 끔찍한 현실을 끌어낸다.

 

<보고싶다>가 절묘한 지점은 이처럼 멜로와 사회극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우가 형사로서 범인을 추적하고 또 그 오랜 세월동안 수연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그 과정은 그 자체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사라진 수연을 찾기 위해 정우가 14년 전에 집을 나왔다는 얘기는 그래서 수연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버려진 것이 아니라 지금껏 찾아다녔다는 것. 너무나 아파서 과거의 이수연을 부정하고 조이로 살아가려는 그녀지만, 정우는 그 아픈 기억을 오히려 지워버리려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는 것.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몇 년 감옥 생활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가해자들을 보며, 그 범죄의 후유증으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하는 피해자 가족들은 얼마나 깊은 절망에 빠질까. 보라 엄마의 “내 딸이 죽었어요”라는 절절한 말에는 그 깊은 상처가 묻어난다. 14년 만에 자신의 딸이 살아 돌아온 것을 보고도 그 끔찍한 과거를 묻고 조이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딸에게 “그래 난 오늘 너 본적도 없는 거야.”라고 말하며 맨발로 도망치는 수연 엄마 김명희의 애절한 모성애. 그토록 긴 세월을 미친 놈처럼 수연을 그리며 그녀를 찾기 위해 살아온 정우의 마음은 또 어떻고.

 

<보고싶다>는 피해자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누군가는 자살한 딸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그토록 그리웠던 딸을 찾고도 그 아픔을 지워주기 위해 기꺼이 딸 앞에서 사라져주며, 누군가는 14년이란 긴 세월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미친 놈처럼 그녀를 찾아 헤맨다. 물론 <보고싶다>는 본격적으로 이 성 폭력이라는 사회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이 문제를 더 절절하게 느끼게 만드는 것은 이 피해자들에게 남겨진 깊은 아픔을 우리 눈앞에 세워두고 공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고싶다>라는 다분히 멜로적인 뉘앙스로 다가왔던 제목은 어느새 그 앞에 성 폭력과 잘못된 법 집행으로 희생당한 무수한 피해자들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살아남은 가족들의 그 지울 수 없는 보고 싶은 그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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