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NS’, 이솜과 안재홍의 솔직 과감 19금 블랙코미디가 통한 까닭

LTNS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LTNS>는 시작부터 과감하다. 지금껏 티빙에서 이런 드라마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솔직 과감한 19금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그래서 수위 높은 장면들과 직설적인 성적 내용들을 담은 대화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상하게도 불쾌하거나 음습하지 않고 유쾌하다 못해 발칙하다. 도대체 이런 톤 앤 매너는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 

 

<LTNS>는 제목부터 직설적이다. ‘Long Time No Sex’를 뜻하는 제목처럼 우진(이솜)과 사무엘(안재홍)은 섹스리스 부부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극이 되지 않아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런데 잘 들여다 보면 이들이 섹스리스가 된 이유가 특이하다.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서도, 또 나이들어서도, 나아가 무슨 성적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현실에 쪼들려서다. 

 

“집이 이제는 애물단지가 돼가지고 이자를 맨날 100만원씩 내는데 여기서 일해봐야 그 돈을 갚기가 제가 너무 버겁고, 코로나는 제가 뭐 어떻게 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저는 그냥 열심히... 지금 너무 답답하고 어디다가 얘기해도 뭐 어떻게 되는 건지...” 결혼 후 7년이 지난 이들 부부는 TV 속 한 시민의 하소연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대출까지 무리하게 해서 집을 샀는데 집값은 뚝뚝 떨어지는데다 대출 금리는 치솟는 상황이다. 

 

우진은 김치 볶음 반찬 하나에 맨 밥을 먹고 있고, 사무엘은 아내의 옷에 떨어진 단추를 꿰매주고 있다. 그러면서 밖에서 커피를 사먹었다고 우진의 지청구를 듣는다. 택시운전을 하는 사무엘은 졸려서 사고가 날 것 같아 그랬다고 했지만 이들은 커피 한 잔도 밥 한 끼도 심지어 집에서 쓰는 물도 아껴 써야 할 정도로 쪼들려있다. 그 시민의 울먹이는 하소연을 보던 우진이 소화 안된다며 다른 거 보자고 돌린 채널에서는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흘러나오지만 이들의 표정은 굳어있다. 뭘 해도 감흥조차 느낄 수 없게 만드는 여유 없는 현실 속에서 이들은 위로하듯 각자 자위를 한다. 

 

즉 이들의 ‘LTNS’에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이 끼어 들어 있다. 그리고 이 현실의 밑그림 위에 매 회 그려지는 불륜 커플들의 이야기에도 이러한 사회적 함의가 더해진다. 물론 그 방식은 블랙코미디다. 그래서 우진과 사무엘의 짠하디 짠한 ‘불륜 추적’과 이를 통해 불륜 커플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과정은 음습하기보다는 유쾌하면서도 페이소스가 담긴 웃음을 전해준다. 실제 현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딘가 꽉 막힌 현실에 ‘섹스’와 ‘불륜’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던지는 일침 같은 통쾌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이들 섹스리스 부부가 불륜 커플들을 추적해 그 증거를 찾아내고 그걸로 협박해 돈을 버는 일을 함께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 정수(이학주)의 바람 이야기를 사무엘이 듣고 아내 우진에게 이야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우진이 친분이 있는 정수의 아내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겠다고 말하자 정수가 찾아와 돈을 주겠다며 그걸로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실제로 그게 이뤄지면서 ‘이렇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여기서도 주목되는 건 정수가 바람을 피우면서 했던 사랑에 대한 얼토당토한 이야기다. “두 개까지는 사랑이지만 세 개부터는 사랑이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즉 두 명을 만나는 건 불륜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하는 정수의 이야기는, 여유가 없어 섹스의 욕구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무엘과 우진의 처지를 두고보면 ‘부익부 빈익빈’의 감정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우진과 사무엘은 그런 불륜까지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이들에게 좀 뜯어내는게 뭐 어떠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예측불허 고자극 불륜 추적 활극’. 정수와의 첫 번째 불륜 에피소드에서 그려지듯이 드라마는 한 줄로 된 소개처럼 사건이 어떻게 튈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매 회 벌어지는 불륜 에피소드들은 사내 불륜커플, 중년의 불륜커플, 동성커플 등등 그 소재도 자극적이고 다양한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또 예사롭지 않은 사회적 맥락들이 담겨있다. 이를 테면 두 번째 에피소드인 사내 불륜커플의 경우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20분 안에 차에서 먹으면서 섹스하는 이야기가 그려지는데 그건 ‘연애 비용’이라는 부제처럼 연애에 있어서도 시간과 돈을 아끼게 된 현실 세태에 대한 블랙코미디적 시선이 더해져 있다. 

 

세 번째 에피소드인 중년 불륜 커플의 경우에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제대로 된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살아온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키스조차 해보지 못한 중년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그려내고,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의 동성 불륜 커플 이야기에는 사랑을 ‘나쁜 짓’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에 대한 일침이 숨겨져 있다. 그저 19금의 수위 높은 자극이 아니라 이러한 깊이있는 접근이 있었기 때문에 ‘고자극 19 불륜’을 담은 드라마가 유쾌한 웃음을 빵빵 터트리게 만들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이런 유쾌한 지점들은 이솜과 안재홍이 이토록 과감한 수위의 작품을 선택하고 나아가 작정한 듯 과감한 연기에 도전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특히 안재홍의 경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스크걸>을 통해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변태적인 성적 이미지로 그려진 면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그가 본래 갖고 있었던 코믹하고 유쾌한 이미지를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19금 드라마라고 해도 충분히 유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가능하다는 걸 이 작품이 증명하고 있고, 안재홍 역시 거기에 화답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사진:티빙)

'결사곡'이 불륜을 다루는 방식, 15세로 괜찮을까

 

지난 20일 방영된 TV조선 주말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시청률은 7.6%(닐슨 코리아)로 뚝 떨어졌다. 이날 새로 시작한 tvN 토일드라마 <빈센조>가 첫 회부터 7.6%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과 관련 있어 보일 듯싶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빈센조>의 전작이었던 <철인왕후>가 무려 17%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때도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시청률은 9%대까지 치솟았던 전적이 있어서다.

 

즉 같은 시간대에 새로 편성된 드라마 때문이 아니라면,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시청률 하락은 그 내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불륜을 저지르는 세 남편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8회까지 그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밝히지 않고 흘러왔던 이 드라마는 조금은 지지부진한 느낌을 주는 면이 있었다. 결국 그런 떡밥들로 시청자들을 끌고 간다는 인상이 짙었다.

 

그래서였을까. 9회부터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갑자기 시간을 이전으로 되돌려 여기 등장하는 세 남편들이 어떻게 불륜을 저지르게 되었는가를 아주 자세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신유신(이태곤)은 해외출장을 다녀오는 비행기 안에서 교포인 아미(송지인)를 만나 차츰 가까워졌고, 판사현(성훈)은 헬스클럽에서 보게 된 송원(이민영)의 몸매를 훑으며 그에게 이끌렸다. 박해륜(전노민)은 학교에 강사로 초빙된 뮤지컬 배우 남가빈(임혜영)과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친밀한 관계를 시작했다.

 

지금껏 불륜을 소재로 다루는 이 드라마의 시선은 아내들에 맞춰져 있었다. 판사현이 외도를 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갖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아내 부혜령(이가령)은 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피까지 토해내기도 했고, 남편의 이혼 요구의 이유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이시은(전수경)은 애끓는 눈물을 쏟아냈다. 아직까지 남편의 불륜 사실을 모르지만, 외도를 저지른 아버지를 만나지도 못하게 했고 결국 아버지가 사고로 죽게 되자 엄마를 원망하게 된 사피영(박주미)은 이제 남편의 불륜 앞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걸 예감케 했다.

 

하지만 9회부터 이 드라마는 시선을 불륜에 빠져드는 남편들로 바꿔 놓았다. 그래서 기내에서 만나 가까워진 아미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신유신이 그와 선을 넘는 키스를 하는 상상을 하고,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송원의 몸을 훑는 판사현의 음흉한 시선을 보여준다. 또한 교수실을 찾아온 남가빈에게 설렘을 느끼는 박해륜 또한.

 

물론 드러난 장면들에는 키스신(그것도 상상의) 정도의 수위를 보여주고 있어 그 선정성이 15세 이상 관람에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불륜을 판타지화하고 미화하는 연출이 보여주는 주제의식의 선정성은 결코 15세 이상 관람이 가능할까 싶은 점이 있다. 마치 이런 불륜자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연출은 범죄 장면에서 범죄인의 시선으로 그 장면을 연출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러니 그 선정성이 작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잠시 주춤했던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불륜자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그 자극을 다시금 높여가고 있다. 19금 설정이라면야 이러한 선정성도 어느 정도는 용인될 수 있을게다. 하지만 15세 설정으로 불륜 미화 판타지를 그려가는 건 어딘지 지나친 면이 있다. 우리에게 선정성과 자극의 문제는 주로 섹스와 폭력이라는 소재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주제의식의 선정성 또한 들여다봐야 할 시점이다. 과연 <결혼작사 이혼작곡>의 선정성은 15세가 봐도 괜찮을까.(사진:TV조선)

'우아한 친구들'은 과연 중년들의 공감 얻을 수 있을까

 

JTBC 드라마, 금요일 밤 그리고 19금. 새로 시작한 <우아한 친구들>에 달린 이런 수식어들이 떠올리게 하는 건 당연히 <부부의 세계>다. 19금으로 최고 시청률 28%(닐슨 코리아)를 넘기며 숱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드라마.

 

아마도 <우아한 친구들>이 19금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건 전작이었던 <부부의 세계>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 보인다. 과거 19금 설정은 보편적 시청자를 확보할 수 없던 지상파 시절의 영향에서 다소 금기시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의 성공은 이제 드라마에 있어 성인 시청자들의 저변이 확실히 두터워졌다는 걸 증명해 보여줬다.

 

그렇다면 <우아한 친구들>은 과연 그 계보를 잇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첫 방송만으로 예측하긴 어렵다. 총 17부작으로 첫 회가 일종의 프롤로그 성격을 띤다는 걸 염두에 두면 더더욱 판단은 쉽지 않다. 다만 첫 회에서 보여지는 건 이 작품이 <부부의 세계>와는 다른 어딘지 중년 남성들에 더 포인트가 맞춰진 듯한 느낌이다.

 

물론 2회부터 남정해(송윤아), 강경자(김혜은), 유은실(이인혜) 그리고 지명숙(김지영)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나올 수는 있겠지만, 첫 회는 온전히 안궁철(유준상), 정재훈(배수빈), 조형우(김성오), 박춘복(정석용) 그리고 천만식(김원해)으로 이뤄진 대학 연극 동아리 불사조 5인방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건 중년의 위기다. 다섯 명이 술집에서 모여 술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들은 낯 뜨거운 농담들로 채워져 있지만 사실은 각자 가진 어떤 중년의 위기를 애써 술기운에 숨기는 모습으로 보인다. 안궁철은 의사 아내에 자신도 본부장으로 잘 나가고 있지만, 비뇨기과 원장으로 일하는 정재훈은 무언가 사연을 가진 채 혼자 살아가고 있고, 성인영화 감독 조형우는 경제력 좋은 아내와 살고 있지만 상업영화를 찍고픈 꿈에 대한 갈증이 있어 보인다.

 

발기부전을 호소하는 박춘복은 젊은 고객에게 갑질을 당해도 불평하나 없이 살아가는 인물로 삶에도 어딘지 발기부전 상태인 것처럼 보이고, 무엇보다 세무 공무원에 우울증 초기 증상을 가진 아내와 유학 간 딸을 둔 천만식은 직장과 가정 양측에서 느끼는 책임감과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버스에서 갑작스레 돌연사 해버리는 인물이다. 중년의 위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

 

그래서 <우아한 친구들>이라는 제목에 담긴 우아함을 이들에게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첫 회가 그 프롤로그로서 중년이라는 나이가 갖는 무게감을 슬쩍 보여준 거라면, 시작부터 보여준 살인사건과 거기에 용의자로 몰린 안궁철의 이야기는 향후 이 중년의 위기가 더욱 극으로 치달을 거라는 걸 예감케 한다.

 

19금 설정의 성인드라마로서 표현에 있어서 훨씬 거침없고 과감함을 보여주지만, 아마도 이 드라마의 관건은 그런 자극보다는 여기 등장하는 중년들의 상황에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그 관점에서 보면 첫 회는 아직 고개가 갸웃해지는 정도다. 특히 여성들보다 남성들을 전면에 세우고 있는 점은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쉽게 공감하기가 어려운 지점이기도 하다. 과연 <우아한 친구들>은 이런 난점들을 넘어 또 한 번의 JTBC 19금 금토드라마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2회가 궁금하다.(사진:JTBC)

‘인간수업’, 넷플릭스라서 허용되는 용감한 드라마라는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한 마디로 파격적인 드라마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지만 19금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그것은 고등학생들이 등장하지만 <인간수업>이 그 흔한 청춘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는 청소년 성매매 어플을 통해 돈을 버는 오지수(김동희)와 실제 성매매를 하는 여고생 서민희(정다빈) 그리고 오지수의 이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 범죄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함께 들어가는 배규리(박주현) 같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고등학생들이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서 봐왔던 그런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한마디로 살풍경하다. 시종일관 욕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고, 학교에서는 평범해 보이지만 방과 후가 되면 저마다 돈을 벌기 위한 살벌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어눌하면서도 돈다발에 대한 욕망에 휘둘리며 폭주하기도 하는 오지수라는 인물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순한 양처럼 보이는 아이가 그토록 험한 세상과 매개된 건 스마트폰 어플 같은 한 단계의 차폐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게임이라도 하듯 어플을 통해 저쪽 성매매와 범죄의 세상에 개입하지만, 본인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과 저 범죄의 세계 사이를 매개하며 차단해줬던 스마트폰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오지수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고등학생들은 이 같은 범죄의 세계 속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 걸까.

 

그것은 ‘어른의 부재’ 때문이다. 오지수는 부모가 부재하다는 걸 숨긴 채 학교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성매매 어플을 운용한다. 이런 사정은 꽤 잘 나가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부모를 두고 있는 배규리도 마찬가지다.

 

배규리의 부모는 자신의 회사에서 연습생들을 마치 상품 다루듯 하는 것처럼, 자식도 그렇게 다룬다. 그런 삶에서 배규리는 숨 쉬는 게 토가 나올 것 같다고 말한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이 쉬어지는 그런 삶이 그에게는 무의미하고 심지어 구토가 난다는 것. 이것은 부유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배규리가 그와는 너무나 다른 거친 세계 속에 발을 담고 있는 오지수와 ‘동업자(?)’가 되는 이유다.

 

이 드라마에서 어른들은 아이들까지 착취해 가는 그런 인간들이다. 그래서 오지수와 서민희, 배규리 같은 아이들의 치열해지는 삶은 마치 그 어른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이 드라마에 유일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왕철(최민수)이라는 인물이다. 만만찮은 과거를 숨기고 있는 이 인물은 폭력이 난무하는 그 범죄의 세계 속에서 그나마 이 아이들을 드러내지 않고 신경 쓰는 어른이다.

 

아마도 <인간수업>은 최근 벌어진 충격적인 n번방 사건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이 온 세상에 드러났을 때 아이들보다 더 충격을 느낀 건 어른들이었다. 공공연하지는 않지만 어느새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 들어가 있을 때,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결코 그런 세상에 있지 않을 거라 애써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 부인은 결국 부재를 낳고 그 부재는 n번방 같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인간수업>은 그래서 마치 우리가 부인했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그런 세계를 불편해도 있는 그대로 꺼내놓은 것처럼 보인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어쩌면 볼 수 없었던) 이 파격적인 이야기가 거침없이 전개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지금의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에서 이 드라마가 제작되었다면 아마도 그 결과는 지금 같은 파격과는 거리가 먼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인간수업>은 그런 면에서 우리네 드라마도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용감하게 꺼내놓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다. 첫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진한새 작가의 거침없는 필력과 김진민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로 몰입감을 만들어준 젊은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태원 클라쓰>에서의 연기를 잊게 만드는 김동희, <반의반>은 그가 가진 연기의 반의반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낸 박주현,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해왔고 드디어 열매를 맺은 듯 보이는 정다빈 그리고 이 모두를 끌어안는 블랙홀 같은 강력한 마력의 연기를 보여준 명불허전 최민수까지. <인간수업>은 이들에게는 그 연기를 확장해준 일종의 ‘연기수업’이기도 했다.(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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