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한 권선징악 <마녀>, 고구마 현실이 한몫 했다

우리는 이미 KBS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이 어떤 결말을 맺을 것인가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결국 마이듬(정려원)은 잃어버렸던 엄마를 찾았고, 엄마를 그렇게 만들었던 조갑수(전광렬)는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마이듬과 함께 여러 사건들을 수사해온 여진욱(윤현민)과의 로맨스까지. 이런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은 이 드라마가 초반에 깔아놓은 문제들로 인해 이미 정해진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의외의 반전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흔히들 법정드라마가 가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반전을 꼽지만 <마녀의 법정>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반전을 주기보다는 예상했던 대로의 권선징악을 그렸다. 그러니 이야기만으로 보면 조금은 밋밋했을 드라마다. 이미 다 알고 있고 또 그러하기를 기대했던 것들을 드라마가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

하지만 이런 반전 없는 사이다의 법정극이 반전의 성공을 기록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사실 월화드라마의 경쟁 속에서 최약체로 지목됐었고, 실제로도 낮은 시청률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마녀의 법정>이었지만 그 끝은 최고 시청률에 호평 가득한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반전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걸까.

이렇게 된 건 아무래도 경쟁작들의 부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인다. 기대작으로 떠올랐던 SBS <사랑의 온도>가 지지부진한 사랑과 이별 공식을 왔다 갔다 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MBC <20세기 소년소녀>는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렇게 된 건 이 두 드라마가 지나치게 사적인 멜로의 늪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의제들을 드라마 속으로 가져온 <마녀의 법정>은 더 도드라질 수 있었다. 성 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요즘, 성폭력과 성희롱, 성추행 같은 성범죄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온 <마녀의 법정>은 다소 그 결말은 권선징악으로 정해져 있다고 해도 그 자체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분명했다. 

일상으로 침투해 있는 성폭력의 문제들을 콕콕 짚어 법정으로 끌고 나온 이 드라마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정서를 잡아 끌 수 있었다.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아니 어디서든 벌어지는 문제들이지만 단죄되지 않고 넘어가던 성범죄의 사례들이 어떤 피해자들을 만들어내고 또 사건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오히려 2차 피해를 입는 일들을 이 드라마는 제대로 건드렸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답답한 현실을 드라마로나마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마이듬 같은 사이다 캐릭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철저히 승소만을 바라보며 피해자의 입장조차 생각하지 않던 이 캐릭터가 차츰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도 흐뭇한 일이 되었다. 

반전 없는 명쾌한 권선징악. 적어도 성범죄에 있어서만큼 어쩌면 시청자들은 이런 단순 명쾌함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성범죄를 다루는 법정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마녀’가 되어야 한다는 그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래도 <마녀의 법정>은 어떤 지향점만은 분명히 전해줬다고 여겨진다. 성 범죄로 더 이상 고통받는 이들이 없는 세상과 나아가 성 평등한 세상에 대한 희망.(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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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깝스', 조정석의 하드캐리 혜리 연기력 논란 잠재울까

MBC 새 월화드라마 <투깝스>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캐릭터가 절대적이다. 웃음기 없이 진지한 강력계 형사. 게다가 형이나 다름없는 파트너 조항준(김민종)이 살해당했다. 그러니 그 범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는 인물이 바로 차동탁 형사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하다. 그래서 <투깝스>는 이 인물에 이른바 ‘깝’ 캐릭터를 집어넣는다. 감방에 있을 때도 조항준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던 사기꾼 공수창(김선호)과 의문의 추격자들을 피해 강물로 뛰어들었을 때 차동탁의 몸에 공수창이 빙의되는 것. 그래서 사건 해결을 위해 진지하기만 한 차동탁이라는 인물과 어딘지 뺀질이의 느낌이 강한 공수창이 동거하는 기묘한 캐릭터가 탄생한다. <투깝스>라는 제목은 바로 이 두 인물이 한 형사의 몸에 공존하는 상황을 통해 사건해결을 위해 공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정석은 역시 진지함을 통해 웃음을 주는 코미디 연기의 달인이라는 것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잔뜩 흥분하거나 진지한 얼굴을 보이지만 어딘지 그것이 드러내는 어린아이 같은 면면들이 은근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이제 ‘깝’ 캐릭터까지 겹쳐지면 조정석의 진가인 진지함과 가벼움의 공존을 통한 독보적인 코미디 캐릭터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다. 

물론 <투깝스>의 이야기는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전형적인 형사물이고 그 안에 복수코드가 담겨져 있으며, 벌써부터 이어지기 시작한 송지안(혜리) 기자와의 멜로가 예고되어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차동탁과 송지안이 서로 툭탁대며 이어지고 그것이 문득 설렘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러니 <투깝스>가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으로 내세울 건 결국 캐릭터다. 같은 이야기라도 캐릭터가 독특하다면 새롭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동탁은 일단 충분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이를 연기하는 조정석에 대한 믿음이 여전하고 실제로 첫 회만으로도 그런 매력은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드라마가 한 배우의 힘에 의해 온전히 움직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차동탁의 상대 역할인 송지안을 연기하는 혜리는 첫 방송부터 연기력 논란이 나오고 있다. 기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에서 송지안을 보기보다는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를 더 많이 떠올리고 있어서다. 

워낙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캐릭터가 강한 인상을 남겨서인지 혜리의 새로운 연기는 그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인한 기자와 코믹한 캐릭터 사이를 오가야 하고, 또한 일과 함께 사랑을 연기해내야 하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캐릭터가 바로 송지안이다.

이 부분은 <투깝스>가 향후 넘어서야 할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조정석의 하드캐리가 일단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혜리가 첫 회에서 갖게 된 연기력 논란은 스스로도 또 이 드라마도 해결해야할 문제로 남았다. 과연 <투깝스>는 이런 약점들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향후가 궁금해진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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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이런 허술한 대본으로 제대로 된 일승 가능할까

뭐 이런 허술한 드라마가 있을까. 이야기와 액션은 폭주하지만 시청자들은 그 폭주하는 전개에 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나 기본적인 걸 이 드라마가 지키지 못하고 있어서다. 개연성 부족. 사형수가 ‘어쩌다 탈옥수’가 된다는 그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그럴 듯한 과정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새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의문의 일승>. 이렇게 해서 과연 일승이라도 할 수 있을까.

물론 모든 드라마가 현실성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만화 같은 전개라고 해도 나름의 개연성은 주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감옥이 마음만 먹으면 나갔다 들어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을까. 또 탈옥한 마당에 시체를 처리하는 의문의 인물들을 만나 쫓기게 되는 상황이 마침 벌어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 

<의문의 일승>에 대한 기대를 만든 건 윤균상과 정혜성 같은 매력적인 배우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윤균상은 <육룡이 나르샤>, <역적>, <닥터스> 같은 작품을 거치며 성장 가도를 걷는 배우이고, 정혜성은 <구르미 그린 달빛>과 <김과장>을 통해 매력적인 연기자라는 걸 증명했던 배우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조합이 어떤 그림을 그려낼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배우들이 출중해도 역시 드라마는 대본과 연출이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의문의 일승>은 대본이 너무 허술하다. 사형수에서 탈옥수 그리고 이제는 형사 역할로 변신하는 인물이 바로 오일승(윤균상)이다. 결코 쉽게 납득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 변화 과정에 대한 디테일한 설득이 이뤄져야 비로소 이 이야기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오일승이 탈옥을 결심하게 되는 그 이유도 사실 너무 약하다. 자신 때문에 살인 공범 누명을 쓰고 감방에 들어온 딱지(정성우)의 여동생 은비(김다예)을 노리는 감옥 동기의 살인을 막기 위해서가 그 탈옥의 이유다. 그렇게 탈옥해 은비를 살해하려는 범인을 막는 과정도 저게 가능할까 싶은 개연성의 부족을 보인다. 

옥상 물탱크에 묶어놓고 물이 차올라 죽을 위기에 처한 은비를 구하는 과정은 시청자가 바라보기에 끔찍한 장면일 수밖에 없다. 은비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오일승이 형사들과 대치하고 결국 물탱크에 구멍을 내서 구하고는 유유히 사라지는 그 과정도 어떻게 된 것인지 생략되어 있다. 대본도 대본이지만 이 물탱크에서 은비를 구해내는 과정의 연출은 스펙터클하긴 해도 잘 납득이 되진 않는다. 

아마도 <의문의 일승>은 다소 만화적인(그렇다고 모든 만화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야기에 연출을 의도하고 있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납득되지 않는 상황의 반복 끝에 남는 건 잔인하고 자극적인 장면들뿐이지 않을까. 특히 강간살인을 의도하는 범인의 면면들은 너무 자세하게 등장해 보기에 불편할 수 있었다. 

첫 회이기 때문에 시선을 잡아끌려는 목적이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스펙터클하고 빠른 전개를 보여주려 했을 테지만, 인물과 스토리에 대한 납득 없이 그저 보여주기식 전개는 오히려 드라마에 대한 몰입만 방해할 뿐이다. 이런 대본과 연출로는 제 아무리 윤균상 같은 배우라도 매력을 드러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첫 방의 부족한 면들은 과연 <의문의 일승>은 채워나갈 수 있을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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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내 인생’, 가진 자들의 위선 고발하는 서민 자매들

최도경(박시후)이 “자꾸 신경 쓰인다”고 말할 때 서지안(신혜선)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다. 얘기를 들어주는 그 얼굴에 감정은 1도 섞여있지 않다. 최도경은 내놓고 자신의 호의와 마음을 드러내는 중이지만, 서지안은 안다. 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것도 또 이런 호의도 사실은 위선적이라는 걸. 최도경은 입만 열면 자신은 해성그룹의 오너가 되도록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해진 혼사도 사업 계약하듯 당연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결국 가진 자의 위선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서지안은 알고 있다. 

호의라면 상대방이 그 배려를 받아야 호의라고 할 수 있지만, 최도경이 내미는 호의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재력을 가졌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실천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애가 그 호의의 실체라는 것. 진짜 호의를 베풀 것이라면 먼저 서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최도경은 ‘젠틀맨’이라는 자신의 허상에만 붙잡혀 있다. 서지안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이유다. 서지안은 그 허상뿐인 가진 자들이 호의라며 내미는 화려한 식탁과 옷과 돈과 차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것.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의 가족들은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나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라는 자매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이다. 서지안이 최도경을 밀어내며 그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면, 서지수는 해성그룹의 재벌가의 딸로 들어가 뼛속까지 가진 자의 허위로 똘똘 뭉쳐 있는 노명희(나영희)와 그 세계를 공격하는 중이다. 

밥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고, 마치 그들은 먹는 것조차 다른 걸 먹는다는 식으로 훈계를 하려 드는 노명희에게 서지수는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되묻는다. 서지수를 해성그룹의 딸로 바꾸기 위해 그의 물건들을 허락도 없이 방에서 치워버리자 굳이 쓰레기차까지 쫓아가 그걸 가져와서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렇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버리는 건 예의냐”고 따진다.

자신이 엄마라고 강변하는 노명희에게 “낳기만 하면 엄마냐”고 되묻고 그럴 거면 나가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갈 테니 방 하나 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한 게 아무 것도 노명희에게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자신을 길러준 부모들을 단죄하려 했었다는 걸 들은 서지수는 대노하며 “그럴 자격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화를 낼 자격은 “자신 뿐”이라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이 서지안과 서지수라는 평범했던 서민층 자매가 사건을 겪으면서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지안은 늘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자신 안에 존재했던 ‘속물근성’을 발견하고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가족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결국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은 자신 스스로 서야 한다는 걸 그는 알게 된 것.

서지수는 늘 순응하며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잘 적응해 밝게 살아왔지만 이 일을 겪으며 자신 안에 있는 의외로 당당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늘 언니의 그늘 아래서 커왔지만 이제 스스로 서야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가 둘이 생긴 상황 속에서 결국 중요해진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지안과 서지수는 이 아픈 성장통을 통해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다. 서지안은 그토록 희구했던 대기업 입사가 허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목공일 같은 본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해가고 있다. 서지수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서 자신이 하려 했던 제빵의 길을 접지 않는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일을 할 때만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황금빛’의 허구에 한때 눈이 멀었던 이들이 그 실체를 파악하고 저마다 ‘내 인생’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금빛’ 인생일 것이니.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금수저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는 현실이지만, 그 금수저가 가진 위선을 이토록 신랄하게 건드리는 드라마도 없을 게다. 그 어떤 사회극보다 신랄해진 주말드라마라니. 서지안과 서지수의 일침이 은근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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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관람가’, 후배들 부끄럽게 만든 이명세 감독의 열정

JTBC 예능 프로그램 <전체관람가>에서 이명세 감독의 메이킹 영상을 보던 감독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 장면이 굉장히 슬픈 장면이어서가 아니다. 적지 않은 연배의 이명세 감독이 여전히 보여주는 그 열정이 그들에게는 남다른 소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윤철 감독은 그 이명세 감독의 작업을 보면서 ‘영화의 본질’이 무엇이고 또 자신들이 “왜 이렇게 힘든 직업을 택했을까”하는 그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됐다고 했다. 이명세 감독은 실제로 현장에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영상에 담기 전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연습을 하는 걸로 유명한 이명세 감독은 하다못해 “액션”이라고 외치는 소리조차 힘에 넘쳤다.

특히 시선을 끈 건 열차가 들어올 때 배우들이 달려가는 장면을 찍으면서 그저 모니터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배우, 스텝과 함께 감독이 직접 같이 뛰고 있는 모습이었다. 감독이 그렇게 몸소 직접 보여주니 배우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열정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정윤철 감독이 울컥했던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박광현 감독은 “부끄러웠다”는 한 마디를 내놨다. 그리고 이경미 감독 역시 마찬가지 소회를 털어놓았다. “영화 데뷔한 지 9년 됐는데 그 시간 동안 패배주의에 젖었던 적도 많았다. 요즘 들어서 ‘내가 영화감독을 언제까지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았는데 감독님 보니까 부끄럽더라.” 

이명세 감독이 찍은 단편 <그대 없이는 못 살아>는 애초 ‘데이트 폭력’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선택해 그걸 남녀 관계의 사랑과 애증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확장시킨 작품이었다. 역시 미장센의 대가답게 <그대 없이는 못 살아>는 질감 자체가 다른 영화 특유의 빛과 소리의 미학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이 작품이 보통 우리가 상업영화의 틀에 익숙해져서 영화라고 하면 먼저 보게 되던 ‘내러티브’적인 방식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토리보다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동작과 영상 언어를 통해 사랑과 증오가 뒤얽힌 남녀 관계의 변화무쌍한 면면들을 느끼게 해줬던 것.

애초에 현대무용가 김설진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던 것 자체가 이 영화가 드러내는 이러한 비 ‘내러티브’적인 방식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였다. 그래서 영화는 마치 한 편의 무용처럼 보였다. 대사나 이야기가 아닌 영상과 동작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 작품 속에서 김설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동작들을 통해 그 인물의 내적인 면면들을 표현해냈다.

사실 일반적인 문법의 상업영화에 익숙한 대중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명세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려는 메시지였다. 결국 이명세 감독은 상업영화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영화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영상언어가 점점 뒤편으로 물러나고 있는 걸 이 짤막한 단편 하나로 말해보려 했을 것이다. 

이명세 감독은 단편영화가 지금 현재 영화의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 그만큼 이러한 단편들이야 말로 상업적인 잣대에서 벗어나 영화의 본질을 지켜낼 수 있다는 이야기. 젊은 영화학도들이 해야 할 그런 이야기를 직접 작품을 통해 감독이 전하려 했다는 그 사실에서 후배 감독들이 가진 소회는 클 수밖에 없었을 게다. 

영화라는 작업은 감독들에게는 그토록 애착이 가면서도 또한 애증이 느껴질 정도로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를 메이킹을 통해서 또 작품을 통해 보여준 이명세 감독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는 영화감독들의 영화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없이는 못 살아’ 라고.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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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투어’, 어째서 짠내가 욜로보다 재밌을까

김생민과 <짠내투어>의 만남. 이건 기획의 승리다. 욜로가 이른바 하나의 라이프 트렌드로 등장해 ‘단 한 번뿐인 인생’ 여행에서만이라도 누리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던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갑자기 등장한 김생민이라는 ‘통장요정’은 이런 트렌드 이면에 있는 ‘하고 싶어도 실상은 하기 어려운’ 그 현실 정서를 콕 짚어냈다. 그가 말하는 짠내 나는 일상은 오히려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고, 그것 역시 가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욜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여행이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여행을 소재로 하면 서민들이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의 판타지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저런 곳에서의 하룻밤을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 로망을 자극했던 것. 하지만 김생민의 등장은 그런 로망이 있어도 실현할 수 없는 서민들의 ‘그래도 썩 괜찮은’ <짠내투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tvN 예능 <짠내투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래서 ‘가성비’다. 적은 비용으로 나름 누릴 건 다 누릴 수 있는 그런 여행. 김생민이 꾸린 첫 날의 투어는 그래서 짠내 나는 여행의 진수를 보여줬다. 몇 천원을 아끼기 위해 조금 불편한 교통을 이용하고 오사카성 앞에 도착하고서도 미리 사둔 주유패스로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배를 타는 걸 선택한다. 

물론 여행이니 모든 게 예상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생각했던 날씨와 달리 비바람이 몰아치자 예상치 못했던 우비를 사야했고 또 걸어서 가도 되는 길에 굳이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 비용이 들었다. 또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7시간 동안이나 공복으로 오사카를 돌아다녀야 하는 처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짠내가 나는 여행이어서 오히려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오사카성에서 공짜라 탔던 뱃놀이는 비 오는 날씨와 어우러져 의외로 환상적인 느낌을 주었고, 길거리에서 너무 배가 고파 두 개를 사서 다섯 명이 나눠먹었던 빵은 그렇게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맛이 있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김생민이 찾은 라면집에서도 뜨끈한 국물의 라면이 더 맛있게 다가왔던 것도, 또 마침 그 달의 생일이 있는 사람에게 주는 서비스가 남다른 행운처럼 느껴졌던 것도, 어찌 보면 여유가 없는 여행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들 마음껏 돈을 쓰고 뭐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그런 여행에서는 포만감은 있을지언정 그 진정한 맛과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생민이 찾아낸 여행 코스들은 실로 저게 일본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가성비를 보여줬다. 초밥집이 1인당 1만원을 넘기지 않고, 와규 한 점에 1천원이라는 고깃집은 일본이라고 해도 아끼면서 여행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 여행이 재밌게 느껴진 건 뭘 하나 해도 남다른 소중함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고기 한 점, 초밥 한 개가 이토록 행복감을 줄 수 있다니.

<짠내투어>는 그래서 김생민을 만나 욜로를 주창하며 로망을 건드리던 여행들의 뒤통수를 제대로 쳤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그 아끼자고 별의 별 선택을 다하는 그 모습이 주는 웃음과 짠함, 공감대는 물론이고, 그래서 오히려 발견하게 되는 여행의 진짜 묘미까지 이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김생민과 <짠내투어>의 만남. 실로 그 기획만으로도 ‘그뤠잇’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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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 논란해소, 조세호.. 돌아온 ‘무도’의 1타3피

역시 <무한도전>이다. 사실 MBC 파업으로 인해 <무한도전>이 결방되던 시기, 박명수와 정준하에 대한 논란이 계속 이어진 바 있다. 그래서 자칫 <무한도전>에도 그 논란의 여파가 미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팬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파업이 끝나고 재개된 첫 방송에서 이런 우려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드러내놓고 웃음의 코드로 바꿔버린 것. 

‘무한뉴스’의 형식으로 꾸려진 방송은 유재석의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을 그 형식으로 끌어왔다. 리얼리티쇼의 시대가 열리며 좀 더 리얼한 예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무한뉴스’에 ‘예능봇짐꾼’으로 참여한 조세호가 그 운을 뗐다. ‘자연스러운 웃음’이 이제 필요하다는 것. 

유재석의 ‘길거리 토크쇼 잠깐만’은 그래서 그간 멤버들의 근황을 알아보기 위해 불시에 그들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준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한 멤버들의 모습이나 마침 비바람이 몰아쳐 토크쇼 진행 자체가 쉽지 않았던 정황 같은 것들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 프로그램에 리얼함을 더했다.

흥미로웠던 건 유재석이 우리가 봐왔던 배려의 아이콘의 모습이 아닌 할 이야기는 하는 직설적인 질문을 쏟아 부었다는 점이다. 박명수에게 비판적인 기사가 나올 때마다 곧바로 미담이 기사로 뜨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고, 정준하에게는 논란이 됐던 ‘기대해’라는 말이 뭘 기대하라는 이야기냐며 직구를 날렸다. 

유재석의 돌발 질문에 박명수도 정준하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박명수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었고, 마침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예능신이 도왔는지 비바람이 몰아치자 하늘도 가만있지 않는다며 박명수의 답변을 반박하는 모습 또한 큰 웃음을 줄 수 있었다. 다소 불편했던 논란 자체를 프로그램 안으로 끌어와 웃음의 코드로 바꿔놓은 것.

정준하의 ‘기대해’, ‘두고봐’, ‘숨지마’라는 논란의 문구들은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물론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다. ‘기대해’나 ‘두고봐’라는 말은 앞으로의 <무한도전>을 기대하라는 뜻이 되었던 것. 논란이 생겼던 일들을 솔직히 꺼내놓고 사과하며 스스로를 희화화함으로써 한바탕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 역시 <무한도전>다운 논란 대처법이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수확은 ‘프로불참러’로 한참 주가를 올렸던 조세호가 ‘적재적소’ 예능인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무한도전>에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고정 멤버가 아니라 손님의 역할이지만, 필요할 때 함께 해도 자기 역할이 분명하다는 걸 조세호는 보여줬다. 향후 다른 코너에서도 이런 역할을 자임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고정이 아니라도 언제든 웃음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의 발견.

이제 방송이 겨우 재개되어 본격적인 시작 전에 몸 풀기의 형태로 나간 ‘무한뉴스’지만 그 방송만으로도 <무한도전>이 가진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있었던 논란들을 웃음으로 전화시키고,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도 받아들이며 향후 <무한도전>의 진화가 계속 이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주었으며, 유재석의 변화 또한 살짝 감지되었다. 게다가 조세호 같은 예능 봇짐러의 발견까지. 이 정도면 1타3피 아니 그 이상의 성과가 아닐까.(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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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내 인생’이 깬 주말드라마의 공식들

KBS 주말드라마는 우리에게 오래도록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해왔다. 그래서 항간에는 이 시간대에 들어가는 주말드라마는 기본이 시청률 20%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건 선입견이다. 요즘은 작품이 시원찮으면 곧바로 채널이 돌아간다. 채널도 많아졌고 볼 것도 많아진 탓이다. 주말드라마라고 해서 무조건 잘 된다는 건 옛날이야기라는 것이다. 

게다가 주말드라마가 주로 다루는 가족극의 형태는 이제 현실성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과거의 주말드라마는 두 개 혹은 세 개의 가족을 보여주고, 그 안의 인물들이 서로 관계로 얽히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안이한 전개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주던가 아니면 그 가족 속에 깃든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제 중간 기점을 돌기 직전인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이토록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이 시간대는 여전히 그간의 가족드라마가 가진 익숙한 코드들을 다뤄야 이물감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 다루는 방식을 달리 해줘야 지금의 시청자들의 달라진 시선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이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소현경 작가가 이미 <찬란한 유산>을 통해 성공적인 실험을 보여줬던 것처럼 연속극과 미니시리즈가 겹쳐진 장르적 혼재를 보여준다. 매회 사건이 이어지며 다음 회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몰입감을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미니시리즈가 갖는 분명한 메시지들을 곳곳에 박아 넣었다. ‘출생의 비밀’ 같은 연속극의 주요 소재를 가져와 우리 사회가 가진 금수저 흙수저의 계급문제를 비틀어 보여준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것은 소현경 작가가 가진 특유의 경력과 성장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소현경 작가는 그 시작을 연속극으로 했던 작가다. 하지만 소현경 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찬란한 유산>같은 미니시리즈가 접목된 연속극의 실험을 보여줬고, <검사 프린세스>, <49일>, <투윅스> 같은 로맨틱 코미디와 장르물까지를 섭렵했다. 그러면서 <내 딸 서영이> 같은 주말드라마를 성공시킨 소현경 작가는 한 마디로 연속극과 미니시리즈 같은 장르물을 모두 다룰 줄 아는 작가로 성장했다. <황금빛 내 인생>에서 느껴지는 뚝심과 자신감 같은 건 이런 과정들을 통해 얻어진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주말드라마가 가진 틀에 박힌 가족주의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극으로서의 면면을 드러내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그것은 진짜 딸을 바꿔치기 하는 범죄 행위가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뿌리 깊은 핏줄의식과 그로 인해 판이하게 나눠지는 빈부와 삶의 질에 대한 이야기를 문제의식을 갖고 다루고 있어서 하는 이야기다. 기존의 가족드라마들이 대부분 흔한 신데렐라 판타지 같은 걸로 다루던 문제를 <황금빛 내 인생>은 처참하게 망가지는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주말드라마는 밝아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젊은 청춘이 항상 등장하고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있으며, 혼사 장애의 갈등도 코믹한 유머가 동반된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은 다르다. 이 드라마는 어떤 면에서 보면 요즘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본격 드라마가 가진 비극성 같은 걸 그려내고 있다. 이것 역시 소현경 작가가 깨버린 주말드라마의 공식 중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양태가 달라지면서 그 가족을 담아내는 주말드라마 역시 다른 모습을 요구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황금빛 내 인생>은 앞으로 주말드라마들이 어떤 변화를 담보해야 비로소 달라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달라진 가족 양태 속에서도 주말드라마가 지속 가능한 유일한 길이 될 지도 모르겠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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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2’, 우리가 봐온 제주와 다른 슬픈 제주의 역사

최근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여행을 소재로 잡으면서 가는 곳이 제주다. JTBC <효리네 민박>은 대표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제주도의 숨겨진 비경들과 다양한 즐길거리, 먹을거리들까지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 제주도 하면 우리가 먼저 떠올리는 건 ‘힐링’이다. 그렇게 잠시 동안이라도 훌쩍 도시를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눈에 담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tvN <알쓸신잡2>가 간 제주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유현준 교수가 돌하루방을 보러 박물관에 갔다가 문득 떠올린 모아이 석상 이야기에서 엉뚱한 곳에 욕망을 집중하다 결국 섬 전체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떠올리고, 돌아 나오다 우연히 루시드 폴의 공연을 감상한다. 유현준 교수는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으며 하루의 피로가 녹아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감상을 전했다. 

그렇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된 저녁, 루시드 폴이 손님으로 찾아왔고 이야기는 제주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4.3 사건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루시드 폴이 감귤농사를 시작하러 제주에 내려와 살면서 접한 4.3사건의 소회를 담은 ‘4월의 춤’에 담긴 가사를 전해준다. ‘우릴 미워했던 사람들도 누군가의 꽃이었을 테니...’라는 가사가 가슴에 콕 박힌다. 

당시 30만 인구였던 제주도에서 무려 3만 명이 죽음을 맞이했던 비극적인 사건. 외부세력에 의한 죽음도 있었지만 바로 같은 동네에서 아는 사람에 의해 죽음을 맞은 비극도 겹쳐져 있어 도무지 그 감정적 고리들을 풀 수 없었던 사건. 4.3 위령성지를 다녀온 황교익은 그 곳에 세워진 위령비에 적혀진 명단을 보며 무려 2살배기 아기도 있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전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던 남로당 조직의 무장공격과 이를 진압하려는 진압군 사이에서 무고한 죽음을 맞이했던 제주도민들. 그리고 이 사건은 이후 6.25로 이어져 이 땅 곳곳에 4.3사건을 재현시키게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힐링이나 관광지로 떠오른 제주지만, 3,40년 전만 해도 제주는 수탈과 고난의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는 걸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은 확인시켜줬다. 거상 김만덕의 위대한 기부 이야기 속에는 태풍과 기근과 가뭄으로 척박한 삶을 살아내야 했던 제주도민들의 아픔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유시민은 조선시대에 제주도에서 “귤은 재앙덩어리”였다고 했다. 귤이니 말총 같은 진상품을 수탈해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귤나무 하나하나가 관리대상이었고 만일 귤 하나라도 사라지면 물어내거나 경을 치르는 일이 일상이었다는 것. 결국 살기 어려워진 도민들이 육지로 떠나기 시작하자 이주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그들을 고립시키기도 했다. 유시민은 제주도를 “유배, 소외, 차단, 억압, 고립”의 지역이었다고 정리했다.

<알쓸신잡2>가 들려준 제주도의 역사는 우리가 주마간산식으로 봐왔던 제주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알쓸신잡2>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말미에 루시드 폴의 ‘4월의 춤’을 배경음악으로 깔아주며 출연자들이 그 날 지나왔던 제주 곳곳의 풍광들을 담담히 영상으로 편집해 보여줬다. 만일 이런 아픈 역사의 이야기를 모르고 봤다면 그저 예쁘게만 보였을 그 풍광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전해졌다. 슬픔과 아픔이 더해져 더 아름다운 그런 느낌. 루시드 폴의 ‘4월의 춤’의 첫 구절이 새삼 달리 들린다. ‘바다는 아무 말 없이 섬의 눈물을 모아 바위에 기대 몸을 흔들며 파도로 흐느낀다지.’(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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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핀란드편, 하얀 도화지라 더 잘 그려진 우리 모습

마치 하얀 도화지 같다.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이번에 온 핀란드 친구들 말이다. 좋은 건 좋고 별로인 건 별로라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온다. 애초에 이들을 초대했던 페트리가 얘기한 것처럼, 핀란드인들의 삶은 훨씬 단출하고 소박해 보인다. 그 순수함 때문일까. 이들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더 적나라하게 잘 드러내주는 것 같다.

가장 먼저 단박에 드러나는 것이 술 문화다. 물론 프로그램도 또 이들 핀란드 친구들도 호의적으로 우리네 술 문화에 대한 반응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찜질방에 가서 500cc 생맥주가 겨우 3천5백 원 한다는 얘기에 반색하며 술을 마시는 이 친구들의 모습 이면에 드러나는 건 우리네 술 문화가 사실상 어디서든 언제든 술을 마시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핀란드에서는 밤에 술을 살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고 했다. 술을 마시려면 정해진 펍을 찾아가야 하고 술 가격도 만만찮다. 그래서 빌푸는 한국의 이런 술 문화가 좋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빌레는 핀란드가 더 좋은 것 같다고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밤늦게 취객을 만날 우려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상 우리네 밤 풍경에서 꼴불견으로 꼽히는 일이 술에 위해 폭력적인 면을 보이는 이른바 ‘주폭’이 아닌가. 

시장 통에서 생선 요리들을 시켜놓고 먹어봐야 한다며 소주를 시키고는 낮술을 마시는 것에 대해서도 핀란드인들은 ‘자괴감’을 갖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남들이 다 일할 때 술을 마시고 있다는 일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낮술 그 자체가 일로서 이뤄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이들이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반색하는 모습 역시 우리네 술 문화가 너무나 술에 대한 허용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핀란드 친구들은 또 미용실을 찾아 그 섬세한 손길에 대단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 것이 핀란드는 비용도 비싸고 그래서 자주 가지 않는 곳이 미용실이기 때문이다. 빌레는 심지어 14년 만에 미용실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간 직접 자기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는 것.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 만점인 우리네 미용실에서 완전히 스타일을 바꾼 그들은 오히려 돌아가 이 스타일을 어떻게 유지할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네 미용의 문화나 그 섬세한 기술이 가진 자긍심 같은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다른 한 편에서 보면 거기에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 같은 것들이 묻어난다. 흔히 ‘외모 지상주의’가 사회 문제로까지 지목되고 그래서 성형이 일상화되는 우리 사회의 면면들을 떠올려 보면, 되려 14년 간 저 스스로 머리를 잘랐다는 빌레의 소탈함이 어쩌면 우리가 배워야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주로 외국인 친구들이 우리 문화를 경험하며 느끼는 놀라움이나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것들을 편집해 보여준다. 하지만 그 긍정적 시선을 거꾸로 뒤집어보면 우리 사회의 문화가 가진 부정적인 요소들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핀란드 친구들처럼 순백의 도화지 같은 면면을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라면 더더욱.(사진:MBC에브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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