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원드라마의 가능성, ‘산너머 남촌에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후속이라 하지만 ‘산너머 남촌에는’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전원드라마의 새로운 코드가 들어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문화, 즉 이문화(異文化)의 공존이다. 전원드라마의 전범이라 할 ‘전원일기’가 고향을 떠나온 도시인들에게는 농촌의 따뜻한 정감을, 그리고 농촌에 사는 이들에게는 현실을 어루만졌다면,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는 전원도시로 변모해가는 우리네 농촌의 모습을 포착했다. 이어 방영되고 있는 ‘산 너머 남촌에는’은 농촌과 도시의 교감을 다루고 있다.

사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한계로 지목됐던 부분은 드라마가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농촌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농촌에 사는 현지인들 만을 대상으로 드라마를 제작하기에는 현실적인 시청률의 벽에 부딪치게 된다. 따라서 도시인들의 환타지를 자극할 수 있는 농촌(전원이 가까울 것이다)의 모습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산너머 남촌에는’의 등장인물들은 여러모로 이런 요구들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길선(반효정)의 종가집과 양산댁(김지영)네는 지금까지의 전원드라마들이 구축했던 가장 안정된 설정 그대로다. 완고한 전통 속에 살아가는 종가집이 있고, 시골의 정감을 한껏 살리는 양산댁이 서로 아옹다옹하며 마을에게 살아가는 그런 구도 말이다. 하지만 전에 없던 설정들이 눈에 띈다.

사업을 실패하고 도시에 염증을 느껴 귀농하는 나진석(이진우)네 귀농 가족은 도시인들의 이목을 잡아놓을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다. 갑갑한 도시생활과 막연한 전원에 대한 동경은 도시인들의 마음 한 켠에 늘 남아있는 환타지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런 환타지를 건드리면서도 귀농의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외지인으로서의 나진석과 시골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엮어갈 것인가는 지금 도시인들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특히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아이들이 시골생활에 적응해가는 모습과 시골아이가 도시에서 느끼는 신기함 같은 것은, 도시와 시골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문화를 보여준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드라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장집 봉순호(배도환)와 부부가 될 베트남 신부 하이옌(하이옌)을 다룬다. 결혼하기 힘든 농촌청년들의 문제와 그 대안으로서 자리잡고 있는 외지인 신부 간의 부부생활이 보여줄 재미는 이 드라마의 공감을 넓힌다. 농촌사회에서의 외국인은 이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산너머 남촌에는’은 따라서 생활환경과 국적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람이 사람으로서 어떻게 공존하는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이것은 전원드라마가 가졌던 한계인 시골에 국한된 시각을 도시로까지 넓히면서 갖게된 힘이다. ‘산너머 남촌에는’은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로 시작하는 박재란이 부른 동명의 노래가 떠오르는 드라마다. 노래 가사처럼 봄 바람이든 진달래 향기든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올까.’ ‘남촌서 남풍 불 때마다’ 좋은 그런 전원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해봄직 하지 않을까.

또 다른 이름의 정치드라마, ‘태왕사신기’

담덕(배용준)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연가려(박상원)와 화천회 대장로(최민수)의 음모에 빠져 가우리검에 죽을 위기에 처한다. 가우리검은 심장을 찔러 하늘이 그 죄를 묻는다는 일종의 정치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함부로 죽일 수 없는 왕가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부족들이 고안한 장치. 담덕은 자신이 진짜 쥬신의 왕이 맞다면 하늘이 그걸 인정해줄 것이라며 칼 앞에 가슴을 열어제친다. 칼은 정확히 담덕의 심장을 꿰뚫지만 순간 신비로운 빛과 함께 담덕은 살아난다.

이런 일은 가우리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호개(윤태영)에게 쫓기던 담덕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현고(오광록)의 신물이 빛을 뿜으면서 시간을 멈춰놓는다. 눈 한 번 깜짝할 그 순간에 담덕은 자신을 보호하다 죽은 절노부의 아들들을 가지런히 눕혀놓고 거기 멋진 글까지 남겨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 정도라면 담덕은 그 누구도 죽일 수 없는 절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환타지 사극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와 그런 능력이 없는 인간의 대결인가. 이렇게 보면 누구든 맥이 빠질 것이다. 이미 둘의 싸움의 결론은 정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왕사신기’의 대결구도가 팽팽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이 사극이 그리는 대결의 목적이 전쟁의 승리가 아니라 정치의 승리에 있기 때문이다. 담덕은 그 초인 같은 힘으로 호개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정치적인 승리가 아니다. 정치적 승리란 백성들의 지지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환타지 사극이 그리고 있는 것은 태왕의 두 후보들이 서로 경선을 벌이는 것이다. 현재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는 호개이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숫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백제와의 전쟁이 임박한 상황, 호개는 3만이 넘는 병사들을 그러모았지만, 담덕은 채 1만이 되지 않는 병사를 갖고 있다. 그러니 이 대결은 여전히 두고 볼만한 흥미진진한 양상을 띄고 있다. 물론 결과는 담덕이 이길 것이 분명하지만(모든 사극은 사실 결과가 나와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정치인으로 호개와 담덕을 비교하면 그 색깔이 확연히 구분된다. 백제와의 전쟁을 토대로 확실한 인기몰이를 하려는 호개와 상반되게 담덕은 전쟁을 피하려 한다. 이유는 백성들이 다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담덕의 그런 면을 겁쟁이로 손가락질 하지만 그렇다고 담덕이 거기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는 호개의 전쟁을 뒤에서 도우려고까지 한다. 거기에 대해 현고가 의문을 제기하자, 담덕은 오히려 이렇게 묻는다. “선생의 임금은 백성이 없어도 되는 임금이오?” 즉 호개의 군사들 역시 자신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정치적 대의뿐만 아니라, 이 사극은 경선 과정의 흥미진진함까지 다루고 있다. 담덕이 거물촌장인 현고와 절노부 족장을 통해 꾸리고 있는 것은 이른바 경선 캠프인 셈이다. 무엇보다 담덕이 먼저 ‘어느 곳의 소식이든 모르는 것이 없고 어느 곳이든 소문을 퍼뜨릴 수 있는’ 정보력과 언론을 가진 현고와 손을 잡은 것은 현대적 의미로 정치에서 얼마나 그것이 힘을 발휘하는가를 말해준다. 담덕은 이 베이스 캠프를 중심으로 차례차례 네 부족의 지역을 향해 세 몰이를 해나갈 것이 분명하다. ‘태왕사신기’는 태왕이 네 부족의 지지를 얻는 과정을 그린 정치적 행보를 다룬다.

따라서 이 환타지사극이 말하는 정치적인 메시지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주제가 되는 담덕의 정치스타일을 통해 드러난다. 대장장이인 바손(김미경)을 찾아와 무기를 만들어달라며 담덕은 이렇게 말한다. “내 군사들이 다치지 않게 무기를 만들어줘.” 최고의 대장장이 바손은 그 말에 담덕의 베이스 캠프에 합류한다. 무기라 하면 누군가를 상하게 하는 도구이지만 담덕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누군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가 된다. 누군가의 피를 제물로 그 위에 서는 죽이는 정치를 하고 있는 호개와 달리, 담덕의 정치는 ‘살리는 정치’를 지향하고 있다. 인기정치와 남을 비방하는 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담덕의 큰 정치는 한번쯤 음미해 볼만한 문제가 아닐까.

대중문화 시대, 낯선 작품의 가치

이명세 감독의 새 영화, ‘M’이 떠올리게 하는 두 인물이 있다. 그것은 난해한 시와 소설로 당대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던 천재적인 시인 이상과, 불우한 삶을 거름 삼아 전복적인 소설을 써냈던 카프카가 그들이다. 스토리로 보자면 결혼을 앞둔 민우(강동원)가 첫사랑이었지만 잊고있었던 무의식 속의 미미(이연희)를 떠올린다는 것이 전부. 하지만 이 단순한 스토리는 이명세라는 독특한 자의식을 만나 기묘하고 낯선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상, 질주하는 그들과 거울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로 시작하는 오감도의 첫 소절처럼 영화 ‘M’은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쫓고 쫓기는 긴박한 꿈에서 시작된다. 민우(강동원)는 먼저 도심의 거리에서 자신을 쫓는 알 수 없는 시선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 시선을 자신이 쫓기 시작한다. 어두운 골목길로 질주하던 그는 그 곳, 루팡 바에서 그 시선이 미미(이연희)라는 소녀라는 걸 알게된다. 그러자 그 후부터는 미미가 우산을 든 그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을 꾸게 된다. 미미는 민우를 쫓고, 민우는 미미를 쫓으며, 미미는 그 누군가에게 쫓기는 이 반복된 이미지는, 이상의 ‘오감도’가 자아내는 의미를 찾기 힘든 단어의 반복과 그럼에도 느껴지는 공포와 두려움의 감정을 똑같이 직조해낸다.

이상이 무의미한 단어의 조합을 통해 무의식의 초현실적인 느낌을 포착한 것처럼, ‘M’은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는(물론 극도로 의도된 영상들이지만) 영상들을 통해 의미를 지워버리고 대신 느낌을 얻는다. 비논리적이고 단절된 영상들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그 이미지들은 때론 코미디가 되고, 때론 비장해지며, 때론 미스테리가, 때론 멜로가 된다. 이러한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쏟아내는 이유는 우리네 꿈 혹은 무의식의 세계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처음의 혼재된 의식과 무의식의 이미지들은 그러나 차츰 나누어진다. 그리고 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가 분열되는 부분에서 이상의 모티브가 또 등장한다. 그것은 거울이다.

민우는 거울 앞에서 저편의 세계를 기웃거린다. 저편 세계(무의식)를 공간화한 루팡 바를 찾아가는 길에는 여지없이 거울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하나의 그림처럼 구성된 화면 속에 어딘가로 가는 골목길이 있고, 길 벽에 거울이 걸려 있는데, 그 거울 속에는 아직 화면 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민우가 비춰진다. 의식 저편에 서 있는 민우가 그러나 화면 속으로 들어오면 거울 속에 있던 민우의 얼굴은 사라진다. 이 장면처리는 민우가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거울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갔다는 걸 보여준다. 이밖에도 무수히 등장하는 거울의 이미지들은 저 이상이 자주 그려낸 분열되고 불안한 자아를 그린 시들의 모티브가 된 거울과 같다.

카프카, 인공으로 빚어낸 완결된 세계
“‘M’의 시놉시스 작업당시 주인공 민우를 구상할 때 처음 떠오른 것은 카프카의 젊은 시절을 담은 사진 한 장이었다.” 이명세 감독의 이 말은 그러나 카프카처럼 안경을 끼고, 묘한 분위기를 내는 천재적인 소설가로서의 민우라는 캐릭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카프카적인 분위기는 이명세 감독의 초기작부터 ‘M’까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영상미학과 연결되어 있다. 늘 실제 현실이 아닌 세트를 통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명세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혼동하게 만든다.

분명 인공으로 제작된 가짜 이미지인데, 실제보다 더 정확한 느낌을 전달하는 이유는 뭘까. 카프카가 기괴한 내면의 세계를 실제 현실처럼 그려내는 것처럼, 이명세 감독 역시 내면에 심상화된 이미지를 잡아내기 위해 인공적인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실제 거리의 모습은 날씨와 사람들, 시간 등등에 따라 한없이 다른 이미지들을 던져주지만, 만들어진 인공의 거리는 감독이 전달하려는 그 느낌만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명세는 따라서 외면이 아닌 내면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작가라는 의미에서 카프카를 닮았다. 인공적인 세계 속에서 ‘아 나도 저런 거리에서 매미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하고 생각할 때, 그가 만든 영상은 비로소 정확히 관객에게 그 느낌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대중문화 시대, ‘M’의 가치
바야흐로 대중의 시대. 누구나 몇 천 원이 있으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요즘, 그 힘을 갖고 있는 자는 작가나 감독이 아니라 대중이다. 과거처럼 예술가로서의 감독이 자신의 세계관을 그려내는 작품보다, 대중들의 기호를 파악해 상품으로 제작되는 기획작품이 더 많아지는 것은 바로 이런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것은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장르에 있어 당연한 선택으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이 장르적이고 관습적인 영상으로만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대중들에게 익숙한 선택만으로 영화는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결국에는 사라지지 않을까. 헐리우드를 위시한 장르 영화들이 극장가를 가득 메우고 극장 역시 테마파크화 하는 이 때 내러티브를 버리고 영화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이미지로 돌아간다는 건 어찌 보면 무모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분명한 건 이명세 감독의 말처럼 “영화에서 이미지를 주무르는 건 모국어를 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어떤 문법과 틀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그것과 다른 형식을 보여주는 시도를 불친절하다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오히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는 창작자의 태도야말로 관객에게 불성실한 것은 아닐까. 낯선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다. 생각을 바꾸면 낯선 두려움은 새로운 설렘이 되기도 한다. 이상과 카프카의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황금신부’가 가진 두 가지 의미

‘황금신부’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엿보인다. 그 첫 번째는 사랑이 그 첫 번째 조건이 되어야할 결혼에 ‘황금’이란 물질적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세태를 꼬집는 의미로서의 ‘황금신부’다. 드라마 상으로 봤을 때, 거기에 부합하는 캐릭터는 강력한 신분상승 욕구로 사랑마저 저버린 옥지영(최여진)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황금신부’는 물질적 가치로서의 ‘황금’이 아닌 ‘황금처럼 귀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대단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것이지만 우렁각시 같은 남편 뒷바라지에 시부모 공경하는 신부라는 뜻의 ‘황금신부’를 뜻하기도 한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비현실적이라고 작가 스스로도 생각했던 모양이다. 여기에 맞는 캐릭터로 베트남에서 데려온 진주(이영아)를 설정하니 말이다.

‘황금신부’는 그러니까 이 서로 다른 두 캐릭터와 가치가 부딪치는 드라마다. 옥지영이 결혼한 김영민(송종호)과, 진주가 결혼한 강준우(송창의)의 두 집안은 계층에서부터 생활환경, 사고방식, 가치관까지 첨예하게 다르다. 영민이네가 운영하는 웰빙푸드라는 회사가 표준화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이라면, 준우네가 운영하는 소망식품은 가내수공업에 가깝다. 웰빙푸드가 케이크를 만든다면 소망식품은 떡을 만드는 식이다. 여기에는 현재와 과거, 현대와 전통이 부딪친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내는 사고방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영민이네가 성공지향적이라면 소망식품은 행복지향적이다. 작아도 거기서 어떤 행복을 찾아내는 것. 드라마는 종종 시청자들에게 “돈이 다는 아니다”라고 말해주곤 한다. 그리고 이 두 집안을 악연으로 엮어내면서(이건 현실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구조적인 역학관계 같은 것을 암시해 보여준다.

영민이네집 사람들은 대부분 준우네집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 양옥경(견미리)은 정한숙(김미숙)의 남자였던 김성일(임채무)을 가로챘고, 김성일은 자기가 버린 딸인 진주를 부정하며, 옥지영은 강준우를 버려 공황장애에까지 빠뜨린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상류사회라는 곳에 편입되거나 그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했고 부자가 되었다. 한숙이 자기 딸인 세미와 양옥경의 아들이 결혼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자, 옥경이 가족들을 모아 놓고 하나하나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의 죄의식과 허위에 얼룩진 얼굴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립구도에 최근에는 새로운 인물이 가세했다. 바로 과거에 강준우를 사랑했지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차인경(공현주)이란 인물이다. 이 인물은 이미 더 이상 왠만한 시련에는 끄덕 없게 되어버린 진주 앞에 약해져버린 옥지영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 그것은 국적과 학력, 계층 같은 것에 대한 보다 강한 차별의식을 무기로 진주를 괴롭히는 일이다. 그녀의 도를 넘어선 차별의식 속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대변되는 편견은 종종 특권의식을 가진 상류층들의 전형적인 악덕으로 그려지곤 했던 소재들이다.

‘황금신부’는 이러한 사회적인 차별의식과 계층 간의 갈등을 두 가족의 엇갈린 운명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드라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대립각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우리네 사회가 가진 상당 부분의 갈등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대결양상이 너무나 선명하게 구획되어져 있다는 점이다. 자칫 성공, 현대적 가치 같은 것은 죄악이고 행복, 과거적 가치만이 옳은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왕에 사회극 같은 설정을 가진 이 드라마가 사회적인 편견에 대해 진정한 답을 주기 위해서는 ‘황금신부’의 두 가지 의미, 즉 성공이라는 현대적인 가치와 더불어 인간적인 정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한 캐릭터 안에서 구현시켜야 하지 않을까. 진주가 그런 의미에서의 황금신부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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