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과 김병만의 법칙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이것은 진짜 야생이다. 그저 하룻밤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프리카 오지, 악어가 출몰하고 뱀이 지나다니는 그 곳에서 집도 없고 텐트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이 '정글의 법칙'이 보여주는 야생이다. 제 아무리 야생에 익숙한 서바이벌 전문가라고 해도 얼굴이 굳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병만이 말한 것처럼 이건 동물원 우리 바깥에서 안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

실제로 이 악어섬에 들어온 첫 날, 이들은 그 날카로워진 심경을 드러냈다. 김병만과 리키 김은 의견 충돌이 생겼고, 광희는 너무 힘겨운 상황에 웃음을 잃었다. 류담은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허기에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능이 가능할까. 아무리 코미디가 몸에 밴 개그맨이라도 당장의 배고픔과 갈증, 불편한 잠자리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 환경 속에서 웃음을 만들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적응 이틀째만에 이 야생의 악어섬에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 진원지는 역시 김병만이다. 먹이를 찾아 섬을 돌아다니다 나무 위에 있는 새집을 발견하고 그 곳에 올라간 김병만은 갑자기 달인쇼를 한다. "반갑습니다. 제가 지금 새집만 한 5만7천여 군데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아 전망이 좋네. 이 새는 지금 돈이 좀 있는 새입니다. 펜트하우스예요. 이렇게 큰 집은 처음 봤습니다.... 지금까지 한 16년 동안 나무만 타온 늘보 김병만입니다. 참 허기져가지고 개그도 잘 안된다."

나뭇가지 속에서 나는 벌레의 날갯짓 소리를 갖고 리키 김에게 자기가 내는 소리라고 장난을 치고, 뜨거운 더위에 물가로 가서는 얕은 물에서 맨 땅에 헤딩하는 몸 개그로 일행들을 웃긴다. 육지로 갑자기 뛰어오른 김병만은 그 뜨거운 바닥 때문에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을 연출하며 물쇼, 헤딩쇼, 모래쇼를 완성한다. 이 정도면 달인쇼의 아프리카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글의 법칙'의 첫 회가 이 프로그램의 리얼리티를 보여줬다면, 2회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그래도 가져갈 수 있는 예능을 보여준 셈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한 것은 거기 달인 김병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무대에서 보여주었던 기예들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적응할 수 있는 기술이 되고 있다. 나무를 원숭이처럼 타고 오르고, 새총으로 뱀을 잡고, 모기장으로 통발을 만들고, 생존을 위해서라면 지네든 애벌레든 먹어치우는 그는 이제 생존의 달인이 되어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야생 속에서도 여전히 개그맨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심각한 얼굴로 위협적인 환경 속에서 생존을 보여주는 건 어쩌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존조차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배가 고프고 녹초가 된 상황에서 어찌 누군가를 웃기려는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하지만 김병만에게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것이 그가 지금껏 국내 개그계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왔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누군가 "저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때, 그것보다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또 자신이 힘들게 도전하고 그걸 통해 보여준 것으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이 자신이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도 했다. 결국 웃어주는 대중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도전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힘겨워서 웃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웃지 못하기 때문에 힘겨운 지도 모른다. 김병만은 누군가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 그들이 웃어야 자신도 즐거울 수 있기 때문에 극한의 생존 상황에서도 웃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글의 법칙'이 그저 적나라한 고통으로 가득한 리얼리티쇼로만 가지 않고, 그 안에 웃음이 있는 예능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정글의 법칙'은 그 안에 '김병만의 법칙'을 세우고 있는 셈이다. 제 아무리 정글이라도 웃어야 하고,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


'정글의 법칙'과 '바람에 실려', 이 예능이 보여주는 것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본래 리얼리티쇼는 일반인들이 출연해 그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일반인의 사생활 노출에 대해 갖는 우리 대중들의 정서는 예민한 편이다. 따라서 서구에서 한창 리얼리티쇼가 붐을 이룰 때조차 우리네 방송은 쉽게 그것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안처럼 등장한 것이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일반인을 연예인으로 대체했고, 연예인의 사적이 부분들이 노출되지만 거기에 캐릭터쇼라는 안전한 가면을 씌웠다. '무한도전'이 성공한 것은 이 서구적인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우리네 정서에 맞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코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대중정서가 변한 것일까.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익숙해진 대중들이 이제는 좀 더 강한 리얼리티를 원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최근 들어 리얼리티쇼가 심심찮게 방송을 타고 있다. '짝'이나 종영한 '도전자'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들 리얼리티쇼들에 대해서 대중들의 시선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적응되어 있던 대중들이 리얼리티쇼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리얼리티쇼와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보여주는 것도 다르고 보여주는 방식도 다르다. 즉 리얼리티쇼는 실제로 벌어진 상황 그대로를 보여주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특정 가상 상황 속에서의 반응을 보여준다. 리얼리티쇼가 조금은 어두운 현실의 이면까지 적나라하게 끄집어낸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상황극이라는 설정 속에서 하나의 우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현실 자체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무한도전'이 그 안에 아무리 적나라한 얘기들을 꺼내도 그것은 결국 '도전'이라는 판타지로 귀결되는 안전함이 있다. 하지만 '짝' 같은 프로그램은 '결국 짝을 결정하는 건 스펙'이라는 식의 현실 그대로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건 최근 이 리얼리티쇼가 일반인만이 아닌 연예인으로까지 넓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임재범의 '바람에 실려'와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이다. 물론 이 두 프로그램은 리얼리티의 강도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즉 '바람에 실려'는 그래도 예능의 틀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반면, '정글의 법칙'은 심지어 다큐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정도로 리얼리티에 더 천착한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두 프로그램에서 임재범과 김병만은 우리가 음악 프로그램이나 개그 프로그램을 통해 봐왔던 모습과는 다른 실제의 모습을 포착해낸다는 점에서 리얼리티쇼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바람에 실려'에서 미국에 도착한 임재범이 즉석 공연 도중 음이탈을 한 후 갑자기 잠적해버리는 상황은 연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상황으로 임재범이라는 가수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기존의 규범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진짜 '바람' 같은 성정이 보여졌고, 이것 때문에 당황해하고 화를 내는 다른 멤버들의 모습도 그대로 보여졌다. 하지만 그래도 예능의 유지하기 위해 임재범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연출해 넣은 것은 이 프로그램이 완전한 리얼리티쇼라기보다는 하나의 예능임을 고집한다는 뜻이다.

임재범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지점에서 어쨌든 이 프로그램은 확실히 리얼 버라이어티쇼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대중들의 이 실제 모습으로서의 임재범에 대한 호불호는 엇갈린다. 이것은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로도 이어진다. 당연한 일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기대했던 시청자라면 이 리얼리티쇼 같은 부분이 불편했을 것이고, 리얼리티쇼를 기대했다면 어색한 예능적인 연출이 어딘지 맞지 않는다 여겨졌을 테니까.

새로 시작한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은 좀 더 리얼리티쇼에 가깝다. 김병만은 '달인'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가 아니라 김병만 자신의 얼굴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주었다. 리키 김과의 팽팽한 갈등과 대립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 속에서 김병만이라는 인물이 가진 고집스러움도 동시에 보여졌다. 역시 대중들의 마음은 갈릴 수밖에 없다. 그 모습은 상황극이나 콩트 속에서 대중들이 친숙하게 봐왔던 그런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극도 강하고 물론 역으로 리얼리티가 주는 감동도 커질 수 있다. 이것이 리얼리티쇼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연예인 리얼리티쇼는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효리가 출연했던 '오프 더 레코드' 같은 프로그램도 셀러브리티 다큐적 속성을 갖는 리얼리티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홍보적 성격이 강한 프로그램과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정글의 법칙' 같은 리얼리티쇼는 확연히 다르다. 한 때 신비화되기까지 했던 연예인들은 차츰 리얼리티의 시대를 맞아 지상으로 내려왔고 그 맨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조차 장점으로 부각된 캐릭터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이들은 이제 캐릭터가 아닌 진짜 얼굴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대중들은 그 진면목을 확인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여전히 판타지로서 연예인을 보고 싶어할까, 아니면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할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무한도전'은 왜 '짝'을 패러디했을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짝'이 언제부터 이렇게 예능에 가장 '핫(hot)'한 프로그램이 됐을까. 시청률은 아직 10% 내외지만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뜨겁다. 남자○호, 여자○호라는 지칭은 유행어가 되고 있을 정도다. 뜨거운 관심은 끝없는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방송 중간 애정촌을 뛰쳐나가는 해프닝을 일으켰던 출연자의 게시판 폭로는 뜨거운 조작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출연자들이 일반인인데다, 이런 본격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지상파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 관심은 대중들은 물론이고 방송가에도 그만큼 뜨겁다는 것이다.

이른바 잘 나간다는 예능 PD들 치고 '짝'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들이 없다. 사석에서 만난 김영희PD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다 챙겨보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대부분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김영희 PD가 관심을 두고 보는 프로그램이 '짝'이라고 했다. 그만큼 이 새로운 형식의 실험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CJ E&M으로 거처를 옮긴 전 '해피선데이' PD였던 이명한PD 역시 '짝'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전통적인 짝짓기 프로그램의 연장선 같지만, 최근 주목되는 리얼리티쇼 형식이라는 것이 주목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한도전'이 '짝'을 패러디했다. 그저 형식만 패러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가져왔다. 감정기복이 심한 캐릭터로 설정된 박명수가 이른바 '기복남'으로 불리는 것은 다분히 '짝'의 조작논란으로까지 이어졌던 출연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누가 누구를 챙겨주고 할 때, 슬쩍 다른 인물의 표정을 포착해 넣고 그 심리를 내레이션으로 지정해 넣는 방식도 그대로 가져왔다. 물론 '무한도전'이 '짝'을 패러디한 것은 그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남녀가 짝짓기를 하는 과정을 남자와 남자가 짝궁을 찾는 과정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카메라는 포착하고 내레이션은 그걸 일방적으로 설명하지만, 그것이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게 그렇다.

게다가 이것은 '무한도전'의 연장선으로 보면, '친해지길 바라' 같은 코너의 '짝' 버전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어딘지 어색한 틀 속으로 집어넣고 그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웃음을 잡아내는 식이다. 이런 코너의 특징은 캐릭터를 좀 더 확실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짝꿍' 특집을 통해 박명수는 감정 기복이 심한 캐릭터로 자리했고, 정준하는 어딘지 바보스럽지만 착한 캐릭터로, 유재석은 바른생활 사나이지만 어딘지 깐족대는 스타일로 자리했고, 길은 웃기지 못하는 캐릭터로 도드라졌다. 물론 이런 캐릭터들은 이미 '무한도전'의 다른 특집을 통해 만들어졌던 것들이다. 따라서 이 캐릭터를 미리 알고 있는 시청자라면 이 우정촌에서 만들어지는 캐릭터의 화학작용이 훨씬 재미있을 수 있다. '짝꿍'이라는 패러디를 하고 있지만 실은 캐릭터쇼가 되는 셈이다.

'무한도전'이 '짝'을 패러디한 것은 이러한 다양한 캐릭터쇼로서의 가능성을 이 패러디를 통해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짝'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영향력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한도전'처럼 트렌드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프로그램에서 '짝'을 패러디 대상으로 다뤘다는 것은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현재 이 '짝'은 앞으로 예능에 닥칠 '리얼리티쇼'의 예고편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짝'은 그래서 현재 예능 PD들이 그 흐름을 주목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무한도전' 짝꿍 특집은 이런 예능 트렌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함께 음식을 먹다가 마지막 하나가 남았을 때, 그들도 누가 그것을 먹어야 할지 고민할까. 누군가를 사귈 때 스킨십은 언제부터 해야 할까. 또 지하철에서 할머니와 임산부가 동시에 탔을 때 누구에게 자리를 양보해줘야 할지 그들도 애매해할까. 영화관에서 팔걸이는 어느 쪽으로 해야 할까....

어찌 보면 쓸데없는 고민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 현실에서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할 때가 많다. 물론 그 남은 음식 하나를 누가 먹든, 팔걸이를 마음대로 한다고 '쇠고랑을 차거나 경찰이 출동하는' 건 아니다. 이건 몰라도 하등 사는데 지장 없는 소소한 일들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이른바 애정남은 바로 그 생각들을 보여준다. 어쩌면 좀스럽다고 여겨져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그 속내를 애정남이 끄집어내놓는 순간, 같은 생각을 했던 우리들의 웃음이 터져나온다. 밖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그 공감의 순간. "맞아 맞아"하는 끄덕거림과 함께 웃음으로 만들어지는 개그. 이른바 '공감 개그'인 셈이다.

사실 애정남이 제시하는 해법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즉 예를 들어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음식은, 밑반찬일 경우 아무나 먹고(리필이 되기 때문에), 육류는 집게를 가진 사람이 먹으며(일한 사람이 먹는다), 나머지 기타 음식은 돈 내는 사람이 먹는다는 식의 답은 그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다. 그것이 곤란하고 애매한 상황이라는 것을 똑같이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 물론 정한 답에 살짝 사심이 섞인 메시지를 넣어주면 일종의 '인기발언'이 성립된다.

지난 추석 다음 아고라에 애정남이 올린 글에 대한 여성들의 엄청난 공감은 바로 그 '인기발언'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명절 때 시댁에 들렀다 친정에 가는 애매한 시점에 대해서,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내고 아침 먹고 설거지가 끝나는 순간 출발입니다잉"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아마도 모든 며느리들의 마음일 것이다. 물론 그는 시어머니에 대한 공감 포인트도 잊지 않는다. "잘 생각하세요. 시어머니들. 이게 지켜져야 따님도 빨리 볼 수 있는 겁니다잉." 이처럼 그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살짝 긁어주었을 때, 일상 속에 묻어 놓았던 자잘한 삶의 간지러움은 시원해진다. 애정남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남녀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는 남성보다 여성들에게 일상의 가려운 부분이 더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사실 '개그콘서트'에서 이러한 현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이른바 공감개그는 흔한 소재들이다. '두분토론'이나 '동혁이형' 같은 세태적이고 풍자적인 코너들은 '개그콘서트'만의 특징을 잘 보여 온 개그들이다. '애정남' 최효종 역시 과거부터 줄곧 공감개그를 선보인 전력이 있다. '독한 것들'이나 '최효종의 눈' 같은 코너들이 그렇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그콘서트'의 공감개그는 훨씬 더 강해졌고 많아졌다. 일상 속에서 만들어진 습관에 의해, 상황과 맞지 않는 부조리한 행동들을 보여줌으로써 웃게 만드는 '생활의 발견'이나, 그 부조리한 상황을 마치 심층 보도하듯 풀어내는 '불편한 진실'도 '애정남'과 마찬가지로 현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개그다.

하지만 이 '불편한 진실'이나 '생활의 발견' 같은 개그들과 '애정남'은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그것은 상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자세다. '생활의 발견'과 '불편한 진실'이 그 우스운 상황을 그저 보여주는 것이라면, '애정남'은 그 상황에서 해야 할 지침(?)을 제시해준다. 물론 애정남의 말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쇠고랑을 차지는' 않는 것이지만 '서로 지킴으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행동을 하자고 말한다. 이러한 행동강령을 부여했기 때문에 '애정남'은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 일상 속에 존재하는 '애매한 상황'들에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추석 시점에 맞춰 애정남이 아고라에 올린 글은 이런 적극적인 개그의 특성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굳이 지침 같은 건 필요 없어 보이는 '애정남'의 소재들이다. 그 소재들은 명절에 받은 문자에 답장을 보내야 할까, 결혼축의금은 도대체 얼마를 내야할까, 심지어 시식코너에서 몇 개까지 먹는 게 시식일까 같은 자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바로 이 중요하지 않게 취급된 자잘한 소재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크다. 그것들은 이른바 이 사회가 폼나게 전면에서 드러내는 거대담론에 의해 소외된 이야기들이라는 점이다. 그 거대담론을 이끌고 있는 건 누구인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힘 있는 이들이다. 서민들이 제아무리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저들끼리 만들고 꾸려가는 거대담론이 주는 소외감은, 거꾸로 서민들로 하여금 일상적이고 자잘한 것들에 대한 애착을 갖게 만든다. 즉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거대한 것보다는 그래도 우리끼리 정하고 바꿀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 훨씬 마음이 간다는 얘기다. '애정남'이 제시하는 일종의 행동강령은 그래서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비정치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행위 자체는 굉장히 정치적인 것이다. 이 자잘한 일상의 변화는 어쩌면 뜬구름 잡는 거대담론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정남'에 열광하는 사회의 이면에는 이 단단하게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한 소극적인 복수(?)가 들어있다. 그래서 이렇게 자잘하고 애매한 것들을 목숨 걸고 정해주려는 '애정남'은 우스우면서도 때론 처절하고 비애스럽게 보일 때조차 있다. 왜 그토록 작은 것들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거 안한다고 쇠고랑 안차요. 경찰 출동 안 해요. 그저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이에요." 이 반복되는 얘기 속에는 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지의식을 느끼게 되는 구석이 있다. '우리들만의'라는 내밀한 표현이 우리의 허전한 마음 한 구석을 채우는 건 그 때문일 게다. '애정남'은 거대담론으로 굴러가는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작지만 실제적인 '우리들만의' 작은 약속을 던져준다. 그 약속이 얼마나 적절하고 효과적인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이 작은 세계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한다는 것. 우리끼리 약속을 정한다는 것. 그것이 주는 위안은 결코 작지 않다.
(이 칼럼은 중앙선데이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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