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세계, '아바타'

"나는 세상의 왕이다!" '타이타닉'으로 11개 부문을 휩쓴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제 왕을 넘어서 세상의 창조자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라는 흥미로운 세상을 창조해낸다. 카메론의 상상 속에 만들어진 이 세상은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자연, 즉 생물이 지구와는 다르지만, 그 작동방식은 지구를 그대로 닮아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과 그 속에 우글거리는 동식물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비라는 종족은 그 외관이 지구와는 완전히 다르지만(심지어는 공중에 떠있는 산도 있다!), 그 시스템은 아마존의 생태를 연상시킬 만큼 유사하다. 이 영화가 식민지 개척시대에 제국이 자행한 원주민 학살의 역사를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것은 그 생태의 방식이 같기 때문이다.

만일 이 판도라라는 세계가 가진 유사한 설정에 지나치게 천착한다면 이 영화의 일면만을 볼 가능성이 높다. 즉 '늑대와 춤을' 식의 스토리, 원주민에 동화되어가는 식민지 침략자의 이야기 정도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여기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들이 보여주었던 일련의 세계를 떠올린다면 실로 영화가 가진 잡식성에 실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거대목의 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고, '천공의 성 라퓨타'의 날아다니는 대지에 경탄했던 적이 있으며, '원령공주'의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느낀 적이 있다. '아바타'는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리가 일찍이 콘텐츠 속에서 보았던 많은 세계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지 이것뿐일까. 유사한 배경설정과 익숙한 스토리가 '아바타'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아바타'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렇게 상상으로 축조된 세계가 그토록 리얼하게 그려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것은 가상현실을 만들어내는 게임의 방식이기도 하다. 하반신이 마비된 제이크 설리(샘 웨딩톤)는 우주선의 긴 수면캡슐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판도라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의 아바타와 '접속'하고 그 아바타를 통해 그 세계를 활보하고 다닌다. 이 설정은 게임 과정의 인터페이스를 완벽하게 재연해 보여준다. 그것은 가상세계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기 위한 워밍업인 셈이다.

게임의 가상현실은 그 몰입도가 높아지면 '매트릭스'가 일찍이 보여주었던 장자몽 같은 꿈의 재해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제이크가 잠이 들 때 아바타가 깨어나고, 아바타가 잠이 들면 제이크가 깨어나는 구조는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에게 제기한다. 제이크가 점점 나비 종족의 세계와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가상현실이 가상에서 시작해 현실감으로 이어져가는 그 몰입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꿈 같은 세계(물론 카메론의 꿈일 것이다)가 그저 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실감을 주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진 3D의 세계가 정교한 탓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만큼 우리가 게임이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같은 현실을 모사한 가상세계 자체에 익숙해진 탓이기도 하다.

그 곳은 물론 현실세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낯선 새로운 세계도 아니다. 이 가상세계 속에는 무수한 콘텐츠들과 원형적인 문화들이 뒤섞여 나타난다. 즉 문화원형이 가진 세계들을 가져와 재해석하면서 만들어진 세계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공간이 자연과 과학, 신화와 역사, 동양과 서양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은 이 수많은 문화원형들을 한 세계 속에 뒤섞어 놓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냈기 때문이다. '아바타'의 판도라라는 가상공간 속에는 이러한 다양한 문화원형의 스토리와 설정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특이한 것은 이 꿈 같은 가상공간이 디지털화된 네트워크 속의 세상처럼 그려진다는 점이다. 나비족들이 머리 끝을 연결해 자연과 교감하는 장면은 '접속'의 이미지가 강하고, '신성한 나무'는 이 판도라의 세계를 움직이는 슈퍼컴퓨터 같다. 종족들이 서로 손을 잡고 의식에 참가하는 모습은 집단적인 접속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세계 속에서 슈퍼컴퓨터 같은 신성한 나무는 따라서 그 속의 생명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대지모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네트워크 위에 만들어진 이 판도라라는 신세계는 게임의 세계이면서 애니메이션 등의 콘텐츠를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그 판타지의 세계를 끌어 모아 재창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본 없는 복제의 시뮬라크르를 잘 보여주는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가상이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세계. 이 게임과 현실이, 꿈과 현실이, 가상과 현실이 혼재된 판도라라는 세계는 현실을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을 모사한다는 점(원본 없는 복제로서)에서 3D가 가진 리얼리티의 한계를 손쉽게 넘어선다. 제이크 설리는 아바타를 통해 나비족의 모습으로 모험을 하기 때문에, 그 3D 인물 애니메이션은 실제 인간의 모습과의 비교를 허용하지 않는다. 현실을 3D 기술로 재현하기보다는 가상의 세계를 리얼하게 그려내는 것. 이것이 '아바타'가 가상현실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혹자는 이 작품 속의 세계가 어디선가 많이 본 익숙한 것들이고, 이 작품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이미 고전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지적하며, 이 영화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 영화가 콘텐츠라는 상상의 공간을 재료로 해서 재탄생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달리 보일 것이다. 지금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대가 아니라, 이른바 '문화원형'을 연구해서 그것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시대다. '반지의 제왕'이 유럽 북구의 수많은 신화들에서 이야기를 따왔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일본의 많은 민담과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사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익숙한 이야기들의 조합을 통한 또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의 현시로서의 실감나는 세계의 구축을 '아바타'가 꿈꾸었다는 점이다. '아바타'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 그것이 제공하는 익숙한 스토리텔링과 익숙한 가상의 세계들(게임이나 영화 같은) 속에서 현실감을 느끼며 즐길 수 있게 된다. '아바타'가 간파해낸 것은 우리가 이미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감을 주는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와 접속하면서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또 어떤 존재가 진짜 자신인지 헷갈리게 되는 상황은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매일 느끼는 것이면서 어쩌면 앞으로 영상이 우리에게 제시할 유토피아이자 디스토피아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제이크의 선택이 현실이 아닌 가상에 있었다는 것. 카메론 감독이 연 것은 바로 이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판도라의 상자'다.

 ‘여배우들’,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찔한 즐거움

이재용 감독의 새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무릎팍 도사’를 녹화하는데 비몽사몽 간에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털어놨다는 이야기. 그녀의 일상이 인서트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막 깨어 피곤한 얼굴로 ‘무릎팍 도사’를 보며 깔깔 웃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의 그 대사는 바로 그녀가 진짜로 출연했던 ‘무릎팍 도사’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실제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이른바 코현정(연실 코를 푸는 고현정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닉네임)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거침없이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영화 ‘여배우들’이 상기시키는 ‘무릎팍 도사’의 이미지는 고현정에서 윤여정으로 이어진다. 최근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무릎팍 도사를 무릎 꿇리는 입담을 보여준 그녀는 자신의 젊었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장희빈’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당대에는 최고의 여배우로서 알려진 그녀였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을 잘 모른다며 “장희빈에 출연했었다고 하니까, 그런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 후배 연예인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이것이 영화 ‘여배우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김옥빈은 ‘장희빈’ 얘기를 꺼낸 윤여정에게 “장희빈에서 역할이 뭐였냐”고 묻는다.

즉 이 윤여정의 ‘무릎팍 도사’에서의 진술과 ‘여배우들’ 속에서의 대사는 기묘한 리얼리티를 구성한다. 즉 리얼 토크쇼를 주창하는 ‘무릎팍 도사’에서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드러낼 때, ‘여배우들’이라는 영화 속 상황 역시 짜여진 대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리얼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게 된다. 실제로 ‘여배우들’은 물론 영화적 구성이 되어 있지만, 상황만 던져주고 대본은 따로 없는 말 그대로의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속에서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는 설정이겠지만 분명 진실된 영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윤여정이 해준 일련의 ‘담배 에피소드’가 이 영화와 만나는 지점이다. 윤여정은 ‘무릎팍 도사’에서 두 가지의 ‘담배 에피소드’를 얘기했는데, 그하나는 “‘가루지기’에 출연하게 된 이유가 감독이 자신의 담배 피는 손이 그토록 섹시할 수 없었다는 말에 넘어가서”라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한 선배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함께 피워주면 고맙다고 한 말에 자신이 감복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는 ‘여배우들’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윤여정은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워 무는데, 카메라는 의식적으로 그녀의 담배를 쥔 손가락을 분위기 있게(?) 잡아낸다. 또 김옥빈과 함께 담배를 태우는 장면을 통해 ‘무릎팍 도사’에서의 세대를 넘는 훈훈한 이야기를 실제로 보여준다.

한편 이미숙이 영화 속에서 한 “100살이 되어도 여자로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지난 2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했던 그녀의 진술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이혼한 그녀에게 “현재 교제 중인 남자친구는 없냐”는 질문에 그녀는 “아직도 자신 뒤에 뭔가 숨겨둔 남자친구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건 아직도 나를 여자로 본다는 얘기”라며 기뻐했던 적이 있다.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진솔한 모습과 영화 ‘여배우들’의 솔직한 모습이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최지우에게 가장 라이벌 의식이 느껴지는 배우가 누구냐는 질문에 중국시장을 가진 이영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최지우에게 윤여정이 “지우는 중국시장을 지키고 나는 재래시장을 지키마”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아찔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에는 진실과 설정 사이를 걸어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짜릿함이 느껴진다.

‘무릎팍 도사’가 그 한정된 세트 안에서 그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그 속으로 들어오는 인물들이 갖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화 ‘여배우들’은 화보 촬영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의 몇 시간 동안이라는 시공간의 한정에도 불구하고, 실로 다채로운 이야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그 형식 자체가 ‘무릎팍 도사’를 닮아있다. 여배우들 간에 벌어지는 팽팽한 대결구도, 듣는 이를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이야기들, 여배우 자체가 갖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 그 아우라를 깨고 나오는 소박한 모습들, 그리고 여배우라는 삶이 주는 공감의 눈물까지, 이 영화는 한 편의 잘 만든 ‘무릎팍 도사’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여배우라는 특수한 위치의 존재들과 우리 같은 서민들 사이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지점에서 ‘무릎팍 도사’를 닮은 ‘여배우들’만의 독특한 매력이 생겨난다. 이들과 함께 하는 백여 분이 이질적인 존재들을 엿보는 판타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한 공감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서민형 히어로가 슈퍼히어로에게 건네는 말

슈퍼맨, 원더우먼,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캣우먼, 엘렉트라... 헐리우드가 가진 슈퍼 히어로들을 보면 주눅이 든다. 우리는 왜 저런 영웅이 없을까. 하지만 진짜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우리는 김청기 감독이라는 불세출의 천재에 의해 '로봇 태권 V'와 '똘이장군', '슈퍼 홍길동'을 가진 적이 있었다. 일본 만화가 온통 우리네 TV를 장악하던 시절, 우리의 캐릭터는 애국심이라는 지상가치를 들고 등장했다. 특히 '똘이장군'은 당대 반공이라는 불행한 시대적 상황을 전적으로 보여주며 간첩을 잡거나(간첩잡는 똘이장군), 땅굴(똘이장군과 제3땅굴)을 발견하기도 한다. 탈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영웅들과 결별했다.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있었지만(이것 역시 김청기 감독이 주도한 것 같다. 그는 '태권V'를 부활시켰고, 박중훈 주연의 '바이오맨'이라는 영화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인 무모한 발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공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할리우드에서는 슈퍼 히어로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시기, 우리네 영화 속에서 슈퍼 히어로들은 애초부터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시 자본이 일천하고 기술이 일천한 우리네 영화계에서 영웅들은 할리우드보다는 중국식 영웅을 따라갔다. 소위 이소룡, 성룡, 주윤발, 이연걸 하는 중국식의 히어로와 맥을 같이 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들은 초능력을 가진 무협영웅을 만들어 아시아 시장과 할리우드 시장까지 파고들었지만, 우리네 영웅들은 하늘을 날아다니지도 않고 괴력을 갖고 있지도 않은 우리의 이웃 같은 인물들이었다. '돌아이'의 전영록이나 '인간시장'의 장총찬, '장군의 아들'의 김두한 같은 서민들이 사회 불의와 맞서 싸우는 정도. 그 계보는 최근의 일련의 우리식 영웅물들, 예를 들면 '홍길동의 후예'나 '전우치' 같은 작품들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슈퍼히어로에 비교해서는 왜소하지만 서민들을 향해있고, 현란하지 않지만 진정성 있는 풍자로 세상의 힘 있는 자들을 꼬집는 것은 본래 우리식 영웅물들의 전통이다. '홍길동의 후예'에서 현대판 탐관오리로 등장하는 이정민(김수로)이 피규어 마니아로서 할리우드 슈퍼히어로에 빠져있는 모습은 그 대척점에서 우리식의 영웅상을 그려내는 현대판 홍길동과 맞닥뜨리면서 흥미로운 그림을 그려낸다. 그것은 마치 서구식 근대적인 세계관이 투영된 슈퍼히어로와 우리식의 서민감정이 만들어낸 서민 히어로의 대결양상이다. 서구식 근대라는 개발과 성장의 그림이 그네들 슈퍼히어로들에 반영되어 전 세계를 날아다니는 그 시기, 그 근대의 그늘 속에서 억압되어온 서민들은 저들만의 히어로를 만들어낸다. 전 지구적 영웅이 사실은 꽤나 이데올로기적이라는 것을, 이들 서민 히어로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행적들을 통해 보여준다. 지구를 걱정한다면, 당장 눈앞의 작은 현실부터 바라봐야 한다고 이들 서민형 히어로들은 말하고 있다.

'호우시절', 멜로를 넘어 삶을 관조하다

"그땐 참 좋았었지"하고 말하는 자의 눈빛은 쓸쓸하다. 시간은 그 좋았던 시절이 늘 좋은 시절이 되게 놔두질 않는다. 흘러가고 흘러가면서 시간은 심지어 그 좋았던 시절의 기억마저 마모시킨다. 그러니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그 무차별로 흘러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멜로, '호우시절'은 바로 이 시간을 응시하면서 과거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좋았던 시절을 현재진행형으로 돌려놓는 영화다.

영화는 출장을 가게 된 박동하(정우성)가 이제 막 중국 청두에 내린 비행기 안에서 시차에 맞게 시계를 돌려놓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것은 앞으로 벌어질 시간여행(?)에 대한 짧은 암시다. 그 여행은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는 휴식 같은 여행이자, 두보의 시집을 들고 가는 사색의 여행이자,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과거의 좋은 기억 같은 설렘의 여행이면서, 그 위로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감정의 폭우 같은 여행이다.

박동하가 청두 땅에서 우연히 메이(고원원)를 만나 보내게 되는 3박4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산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밀도를 보여준다. 그 3박4일 속에는 박동하와 메이가 과거로 묻고 살아가는 미국 유학 때의 좋은 시절이 들어있고, 그 이후 어찌 어찌 하다가 시를 포기하고 직장생활에 안착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 박동하의 시간이 들어있으며, 중국으로 돌아와 불행을 겪고 여전히 그 불행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메이의 시간이 들어있다.

영화는 이 중첩된 시간들을 박동하의 시선으로 관조하면서 삶의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을 살짝 보여준다. 박동하와 메이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공간이 메이가 가이드로 일하는 두보초당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두보는 이처럼 이 영화의 공간이면서 두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시간이고, 또 그 공간과 시간 위에 흐르는 삶에 대한 관조이기도 하다. '호우시절'이라는 제목은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첫 구절인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에서 따온 것이다.

이 화두 같은 싯귀는 메이가 말장난처럼 동하에게 하는 질문, 즉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걸까.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걸까."라는 말과 조우하면서, 이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의 감정을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삶과 연결시킨다. 허진호 감독의 멜로가 여타의 멜로와 다른 점은 그 속에 남녀 간의 아주 사소해 보이는 사랑을 그려 넣으면서도 그 위에 삶을 관조하는 시간을 부여한다는 점일 것이다.

'호우시절'은 그 멜로를 통한 삶의 관조라는 어찌 보면 균형 잡기 힘든 그 줄타기를 가장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영화로 보인다. 마치 출장길에서 잠시 일을 벗어나 여유로운 여행자의 마음을 만끽하는 자의 그것처럼 이 영화에 대한 허진호 감독의 시선은 충분히 어깨에 힘을 뺀 편안함이 묻어난다. 영화 내내 정우성과 고원원이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배우들과 함께 편안하고 달콤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 허진호 감독의 편안해진 영화의 걸음걸이 탓이다.

이 선남선녀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헤어짐 위에서 두보의 시는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삶에 대한 어떤 울림을 전해준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 서서 같은 언어를 소통하며 사랑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 한때 과거의 것으로 치부해두고 마모시키고 있었던 바로 그 '좋은 때'라는 것. 즉 좋은 비가 때를 알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때가 그 비를 좋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호우시절'은 바로 그 좋은 때로 우리를 인도해, 일상의 시간이 갉아버린 그 촉촉한 감성의 시간을 충분히 우리의 머리 위로 뿌려주는 영화다. 그러니 이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여행은 우리의 좋은 때를 떠올리게 하는 여행이자, 현재를 좋은 때로 바꿔주는 여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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