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정은 영국인이 맞다, 하지만..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올림픽 개회식 방송에 파격적으로 투입된 배수정은 그 개회식에 대한 느낌을 묻는 김성주 아나운서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실제로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인이 맞다. 그러니 그녀에게 이런 답변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영국인’이라는 말이 그간 덮여져 있던 실체를 끄집어낸 것처럼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올림픽 개막식 방송(사진출처:MBC)

왜 이런 당혹감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특유의 국적에 대한 과도한 민감함에서 비롯된다.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영국에서 온 회계사에 예쁜데다가 노래도 잘하는 배수정이 나왔을 때 우리가 가진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그녀는 분명 영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거기서 직업까지 갖고 있으니 영국인이 맞지만, 그녀의 부모는 한국인이니까(게다가 그녀는 한국어도 유창하다) 이 엄친아 역시 한국인일 거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여전히 뭐든 잘 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랑거리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던 것. 하지만 이것은 실체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방송을 통해 본인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영국인이라는 선언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대중들은 일종의 ‘속은 느낌(사실은 스스로 속은 것이지만)’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배수정은 속인 적이 없지만.

 

이것은 올림픽이라는 국가 간의 스포츠 행사 속에서 더 도드라지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은 ‘세계는 하나’라고 소리치지만, 동시에 국가의 존재감을 더 공고히 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올림픽 같은 스포츠를 통해 우리의 스포츠 선수들은 ‘태극 전사’로 거듭난다. 그들이 이기면 국가가 들썩거리는 축제 분위기로 이어진다. 메달 수로 순위 경쟁이 시작되면 몇 위권에 들었느냐가 그 국가의 세계에서의 위치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 그런 올림픽에서 자신의 국적을 당당히 드러냈기 때문에 배수정에 대한 배신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과도한 국적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해프닝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벌어지는 축제이고 그러니 영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한 것이 뭐가 이상할까. 그렇지만 방송으로서 잘못된 부분은 분명히 있다. 방송을 하나의 쇼라고 본다면 그 내용이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맞다. 옆에 선 김성주 아나운서가 자신의 국적성을 드러내며 ‘우리 선수들’ 혹은 ‘태극 전사들’ 운운하고 있는 상황에서(이것은 그대로 배타적인 한국선수들에 대한 응원방송의 메시지를 갖는다) 돌연 ‘영국인’ 발언은 방송의 일관성에서 적절하다 얘기하기 어렵다.

 

배수정의 발언으로 사실상 대중들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이면에 놓여져 있던 연예인들의 국적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실 많은 연예인들 중에는 국적이 외국인 경우가 많지만 자신이 한국인임을 전면에 내세우며 활동하는 이들이 많다. 유난히도 연예인들의 군복무 문제에 대중들이 예민한 이유도 바로 거기서 이 숨겨진 국적의 문제가 들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연예인들은 국적이 외국이면서도(그래서 군대에 갈 필요가 없는데도) 굳이 군대에 자원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국적은 뜨거운 문제다.

 

하지만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이토록 국적에 대해 과도하게 배타성을 갖는 건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국가가 우리에게 해준 게 무엇인가’라고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그 어느 나라보다 더 굳건히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마도 짧고 굴곡진 근대화 과정이 남긴 잔재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외국인 근로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외국인과 결혼해 꾸려진 가정도 점점 늘고 있는 상황에 지나친 국적에 대한 배타성은 위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적성을 전면에 끌어내기 마련인 올림픽 방송으로서 배수정이 한 말은 그 방송으로서는 적합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놓여진 우리네 국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 또한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배수정은 결과적으로 이 우리에게 뜨거운 국적의 문제를 끄집어냈다. 그것도 올림픽이라는 국가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국제적인 행사에서.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우리는 올림픽이 주창하는 ‘세계는 하나’라는 가치를 볼 것인가, 아니면 그 속에 숨겨진 국가의 존재감이 주는 몰입의 희열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고쇼>, 싸이가 들려준 ‘쇼 머스트 고 온’

 

“관객분들이 춤을 추시면서 울더라구요.” <고쇼>에 출연한 싸이는 엄지발톱이 빠지는 부상을 입은 채 강행했던 쇼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관객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는 호응해주는 “여러분이 진통제”라고 선언한 싸이는 그렇게 한참을 관객과 하나 되어 쇼를 하면서 진짜 통증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안 아프다”고 외쳤을 때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공감의 힘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다.

 

'고쇼'(사진출처:SBS)

함께 나온 박칼린은 싸이의 에피소드에 더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지휘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 쓰러졌는데, 누워서도 지휘를 했다는 것. 그리고 잠시 인터미션이 있은 후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벌떡 일어나 지휘를 하더라고 했다. 또 <명성황후>를 맡았을 때 유독 많았던 단원들의 사건사고들을 얘기하면서 “그런데 관객들은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쓰거든요”라는 말로 아무리 힘겨운 상황에서도 왜 쇼는 계속되어야 하는가(Show must go on)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싸이는 처음 데뷔하던 시절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범상치 않은(?) 비주얼 때문에 고민하는 윗분들에게 싸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끼를 보여주려 안간힘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이 가는 주점에까지 따라가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노래와 춤으로 보여주었다고 했다. 사실 가수로서는 독특한 외모를 가진 그가 어떻게 그 불리한 조건들을 뒤집었던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고쇼>가 시작할 때 고현정은 이 프로그램에서 주목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만한 부담으로 다가갔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예능 출연이 사실상 처음인데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건 쇼라는 중압감이 그녀를 얼마나 짓눌렀겠는가. 고현정은 초반 이 대중들에 의해 집중되는 시선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건 웬만한 프로 예능인들도 이겨내기 어려운 일이다.

 

리액션은 과장되게 보였고, 때로는 너무 과도하게 쇼를 만들려는 욕구가 앞서기도 했다. 자신을 너무 드러내려 하자 게스트가 잘 안 보이는 결과도 만들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영 좋지 않았다. “왜 예능을 하겠다고 해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한탄이 나올 법 했다. 옆으로 서 있을 때는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던 그녀가 중심에 서니 모든 기대를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사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 가는 일이다. 진행의 신이라는 유재석도 선뜻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초대받는 게스트에 집중시켜야 성공할 수 있는데, 자신이 과도하게 부각된 토크쇼 형식 자체가 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못해도 비난을 혼자 다 받을 수밖에 없고, 잘 해서 게스트를 부각시킨다고 해도 자신의 공은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고현정은 최근 들어 초반보다 확실히 <고쇼>에 적응하고 있다. 먼저 자신에게 주목되는 과도한 시선을 떨쳐낸 것이 주효했다. 윤종신이 거의 전면에서 이끌고 고현정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질문들(때론 직설적으로)을 툭툭 던지는 식이다. 박칼린에게 “저는 뮤지컬 그거 간지러워서 못 보겠다”는 식의 과감한 질문도 그녀 특유의 솔직함이 덧붙여지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게다가 누군가 나이나 과거 외모에 대해 언급하면 스스럼없이 공격을 받아주는 여유까지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고현정이 첫 예능이라는 여러모로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자신의 위치를 찾아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싸이와 박칼린이 들려준 ‘쇼 머스트 고 온’의 에피소드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쇼>를 하면서 차츰 성장하고 있는 고현정의 이야기처럼 여겨진 것은 그 때문일 게다. <고쇼>. 이제 이 쇼는 ‘고현정 쇼’라는 부담스러운 외형을 벗고 ‘쇼 머스트 고 온’의 의미를 담은 <고쇼, Go show>로 진화하고 있는 인상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여전히 고현정이 있다.

극과 극으로 시너지 만든 최강 라인업

 

주말 예능은 한 가지 프로그램만의 동력으로 힘을 쓰기가 어렵다. 저녁 5시부터 8시까지 무려 3시간 동안 온 가족을 TV앞에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라인업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SBS <일요일이 좋다>의 <정글의 법칙>과 <런닝맨>은 환상의 라인업을 구성한다. 극한 야생의 정글로 우리를 데려가는 <정글의 법칙>은 안온한 도시에서 즐거운 게임을 벌이는 <런닝맨>과 극과 극의 느낌을 주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글의 법칙2'(사진출처:SBS)

툰드라로 간 <정글의 법칙>은 특별하고 복잡한 미션을 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타 방송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영상을 제공한다. 극한의 공간 속에 던져진 병만족이 그저 걷거나 잠을 자거나 먹을 것을 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거기에는 특별한 조미료를 치지 않아도 그 자체로 풍미를 내는 야생 날 것의 묘미가 들어있다.

 

보통의 공간이라면 물을 건너는 행위가 그렇게 재미있게 보여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느끼게 만드는 툰드라의 물로 몸을 던지는 장면은 한때 <1박2일>이 한겨울에도 계곡이나 바다만 보면 입수하던 그 강한 자극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박태환 선수를 능가할(?) 속도로 물을 건너는 리키의 모습은 강렬하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또 먹을 것이 없어 야생쥐를 잡으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이 <정글의 법칙>만이 가진 야생성을 드러낸다. 도시라면 쥐를 잡기 위해(그것도 잡아먹기 위해서) 그토록 노력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겠는가. 새알이라도 챙기려고 엄청나게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간 김병만이 그러나 새둥지 안에 입을 벌리고 어미를 기다리는 새끼들을 본 후 그 예쁜 모습에 포기하고 내려오는 장면은 한 편의 우화 같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강렬한 야생의 풍경을 보여주는 <정글의 법칙>에 이어서 비슷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들어갔다면 아마도 시청자들은 피곤해졌을 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극한의 야생을 간접체험한 후, 우리는 <런닝맨>이라는 조금은 편안한 도심의 게임 속으로 안내된다. <정글의 법칙>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면, <런닝맨>은 즐거움을 위해 온몸을 던진다. 극과 극의 대비지만 바로 그 대비 때문에 양자가 더 강화된 느낌을 갖게 된다.

 

사실 <정글의 법칙>과 <런닝맨>이 라인업을 갖추기 이전에 최강 라인업은 단연 KBS <해피선데이>였다. <남자의 자격>이 중년 남성들의 도전을 전면에 보여주면 <1박2일>은 전국 곳곳으로 시청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1박2일>이 시즌2에 접어들면서 본래의 맛을 못 찾게 되면서 라인업이 깨졌다. 다만 최근 들어 시즌2를 선언한 <남자의 자격>이 살아나고 있다. <해피선데이>는 과연 <정글의 법칙>과 <런닝맨>이라는 최강 라인업을 깰 수 있을까.

 

MBC의 <일밤>은 사실상 라인업이 없어서 경쟁에서 늘 뒤쳐졌던 게 사실이다. <나는 가수다>가 한참 절정의 인기를 끌 때도 그 힘을 쌍끌이해줄 프로그램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신입사원>, <집드림>, <바람에 실려>, <룰루랄라>, <꿈엔들>, <남심여심> 그리고 <무한걸스>까지 그 어떤 프로그램도 <나는 가수다>와 보조를 맞춰주질 못했다. 홀로 서 있는 <나는 가수다>는 그래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자체적인 힘으로 서야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주말 예능은 그 특성상 혼자만 잘해서 되는 게임이 아니다. 하나가 앞에서 끌어주면 다른 하나가 뒤에서 받쳐줘야 그 최강자가 되는 게임이다. 그런 점에서 <정글의 법칙>과 <런닝맨>은 그 극과 극의 조합으로 최강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주말 저녁 정글과 도심을 오가는 이 두 예능 프로그램은 각각이 아니라 붙어있기 때문에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술 권하는 사회의 일그러진 풍경, 음주운전

 

또 음주운전이다. 이번은 아이돌 그룹 2PM의 닉쿤이다. 소속가수들과 연습 후 가진 식사자리에서 맥주 두 잔을 마시고 새벽에 귀가하다가 오토바이와 접촉사고를 냈다고 한다. 사고 당시 닉쿤의 음주측정 결과는 0.056%, 닉쿤은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아이돌스타올림픽'(사진출처:MBC)

평소 건실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던지라 안타까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이것이 닉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먼저 나온 얘기는 JYP의 책임도 크다는 얘기다. 맞는 얘기다. 소속사 멤버들과 함께 했다면 술을 마시고 차를 타려한 닉쿤을 방치한 소속사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이것은 매니지먼트의 문제가 된다.

 

또 다른 얘기는 교통사고 목격자라는 이의 진술이다. 정황적으로 보면 닉쿤의 차가 오토바이에 부딪친 게 아니고 오토바이가 와서 닉쿤의 차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고는 닉쿤만의 잘못이 아니라 쌍방과실이라는 거다. 즉 음주운전과 교통사고는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얘기다.

 

맞는 얘기지만 이것은 사실 논점이 어긋난 얘기다. 사실 교통사고는 누구나 낼 수도 있는 말 그대로의 사고일 뿐이다. 따라서 닉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교통사고를 냈다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는 그 사실이다. 그러니 쌍방과실이니 단독과실이니 하는 문제는 이 사건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미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고, 다친 오토바이 운전자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다. 그러니 사건만으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된 셈이다. 다만 남은 건 연예인으로서 갖게 되는 이미지의 문제다. 건실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만큼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개적인 사과는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자숙기간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으로 대중들이 갖게 된 실망이 사실은 닉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연예인들의 음주운전 사건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사실 연예인의 음주운전 사건은 너무 많아서 이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지금까지 사건으로 언론에 회자된 경우만 60여건에 이른다. 그 연예인들을 보면 과연 이들이 음주운전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바른 이미지를 가진 이들이 태반이다. 영화배우부터 원로 코미디언, 개그맨, 가수, 방송인에 이르기까지 거의 없는 직업군이 없다.

 

음주운전 사건의 양상들도 꽤 다양하다. 무면허 음주운전에 연달아 2회에 걸쳐 음주운전에 걸리기도 하고, 당장을 모면하려 뺑소니를 치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다. 음주운전 측정을 거부하거나 뇌물로 무마하려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단속경찰을 폭행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충격 보도”식으로 소개가 되지만, 금세 지나지 않아 잊혀져버리기 일쑤다. 그렇게 유야무야될 즈음 슬그머니 복귀해 왕성하게 활동하는 연예인들도 많다. 물론 본인들에게는 힘겨운 경험들이었을 것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활동할 수 없는 연예인은 그 자체가 형벌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이것은 아마도 술에 관대한 우리사회의 정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주폭(酒暴)’ 문제가 사회적 안건으로까지 제시될 정도로 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지만.

 

닉쿤이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연예인들의 음주운전 사건을 온정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건 합당한 일이 아니다. 음주운전은 결국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 인식이 흐릿해질 때 연예인의 음주운전 사건은 또 잊혀질만하면 나오는 의례적인 사건이 되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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