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가수들에게 무슨 일이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가 시작된 지 채 1년도 안된 상황이지만, 이제 어디서든 우리는 이 괴물 같은 프로그램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 힘은 이 무대에 섰던 가수들을 통해 드러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 틀어주는 광고 속에서도 우리는 이들을 발견하고, TV는 물론이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 광고에도 등장하는 이들을 보게 된다. 대학생이라면 축제 무대에서, 직장인이라면 행사 무대에서, 혹 지역민이라면 인산인해를 이룬 콘서트장이나 지역 축제에서 이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심지어 여행길 우연히 들른 휴게소의 불법복제 음반 가판대에서도 우리는 이들을 발견한다. 가수들. 그것도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까지 대중들에게 그처럼 익숙하지만은 않았던 그들이 이제는 방송프로그램, 광고, 콘서트, 음원차트, 행사 등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상황. 도대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출연 이후 이 가수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윤도현 등 ‘나는 가수다’ 출신 가수들의 방송 출연 이후 성적표를 들여다봤다.

임재범, 단 세 곡으로 100억 원대 가치를 만들다
임재범은 우리네 록의 역사에서 한 지점을 차지하는 록커지만,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기 전까지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록이라는 장르는 대중들에게서 점점 멀어졌지만, 록커라는 자존심이 그로 하여금 대중들과의 야합(?)을 허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달랐다. 가수의 정체성을 묻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임재범의 록커로서의 날개를 다시 달아주었다. 그는 이 무대에서 ‘너를 위해’, 남진의 ‘빈 잔’ 그리고 윤복희의 ‘여러분’ 단 세 곡을 부르고 맹장수술 때문에 자진 하차했다. 하지만 이 세 곡이 가진 임팩트는 컸다. 단 세 곡만으로도, ‘나는 가수다’에서 9개의 음원을 내놓고 최대의 음원수익을 가져간 윤도현, 박정현, 김범수와 비교될 정도다. 평균적으로 4,5억 원의 음원수익을 올렸다고 평가되는 윤도현, 박정현, 김범수만큼 임재범도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올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수익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는 국내 최대 음반 매니지먼트사인 예당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는데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계약금만 10억 원이 넘었을 거라고 한다. 이것은 예당 측에서 밝힌 임재범 개인의 경제효과가 무려 1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통해서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미 광고계에서 특 A급 대우를 받고 있는데 통상적으로 A급대우가 연간 출연료 5억 원 정도를 받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의 출연료는 6,7억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박지성, 박태환, 김연아 같은 특A급 스포츠스타들과 거의 비슷한 수치다. 이런 광고 제안이 현재 7,8군데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 액수는 5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콘서트 수익과 행사 수익 또한 빼놓을 수 없다. 100만 원대의 암표가 논란이 됐을 정도로 폭발적인 임재범의 콘서트는 연말까지 콘서트가 잡혀진 상태이고, 그의 행사비는 한 회 출연에 5,6천만 원까지 치솟아 올랐다. 전속계약을 맺은 예당 측이 8,9개월이면 계약금 이상을 간단히 벌어들일 수 있으리라 판단하는 건 속단이 아닌 셈이다.

임재범의 ‘나는 가수다’ 임팩트가 특히 컸던 점은 그가 가진 거친 매력의 캐릭터와 그간 살아왔던 록커로서의 삶이 파괴적인 가창력을 가장 잘 돋보이게 해주는 이 프로그램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분’ 같은 곡은 임재범이 살아왔던 삶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대중들의 심금을 울렸다. 여기에 이른바 김건모 재도전 여파로 1달 간 방영되지 않으면서 그만큼 증폭되었던 기대감도 한 몫을 차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 시작하는 자리에 임재범은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준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대세 김범수, 비주얼의 역습
임재범이 새로 시작한 ‘나는 가수다’의 수혜를 입었다면, 김범수는 재도전 여파로 잠정 중단된 프로그램의 수혜를 입은 가수다. 가온차트에 의하면 그가 잠정 중단 직전에 부른 이소라의 ‘제발’은 전체 디지털 종합 차트 1위를 기록했는데, 2월28일부터 6월25일까지 무려 다운로드 231만4723건, 스트리밍 2365만3211건으로 약 2600만 명이 온라인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즉 국민의 절반이 이 노래를 들었다는 얘기다. 즉 이렇게 된 데는 ‘제발’이 1위를 기록한 후 한 달여 간 ‘나는 가수다’의 새로운 음원이 등장하지 않았던 효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범수의 노래에 대한 관심은 고스란히 최근 그가 발표한 정규 7집 앨범 파트2로 이어졌다. 타이틀곡인 ‘끝사랑’을 비롯해 수록된 7곡 모두가 음원차트 10위 권에 오른 것. 음반의 음원수익만으로도 수억 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하지만 명예졸업을 하기까지 누적된 음원들로 인해 5억 원에 달하는 음원수익을 얻은 것보다 더 큰 것은 그가 ‘비주얼 가수’로의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한때 심지어 ‘얼굴 없는 가수’로 생활했던 그가 이제 광고에서까지 ‘대세’가 된 것은 그의 가창력을 통해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꾼 ‘나는 가수다’의 무대 덕분이다. 그는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의 광고 캠페인 '버스 콘서트'의 모델로 발탁돼 데뷔 13년 만에 CF촬영을 했다. 또 가전제품과 금융업계 쪽과도 얘기가 진행 중이어서 최소 2,3개의 광고를 더 찍을 전망이라고 한다. 물론 처음 찍는 만큼 광고료는 1억 원 미만으로 책정되어 있지만 이것이 ‘비주얼 가수’에게 상징하는 바는 크다.

김범수의 대박 수익은 결국 그의 가장 큰 장기인 무대에서 나온다. 즉 콘서트와 행사 수입이다. 지난 8월 김범수의 전국 콘서트의 시작을 알린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의 ‘겟올라잇!’ 콘서트는 총 1만 명의 객석을 가득 메울 정도로 성황리에 끝이 났고, 11월까지 총 11개 도시를 돌며 전국 투어가 이어질 예정이다. 보통 회당 수익으로 1억 원 정도를 받는 상황을 감안해보면 10억 이상의 수익을 낸다는 얘기다. 여기에 대학축제나 기업행사 수익 또한 쏠쏠하다. 한 번에 3,4000만 원의 최고 대우 출연료도 출연료지만 부쩍 늘어난 행사횟수는 가희 제2의 전성기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김범수에 대한 방송가의 입장이다. 그간 ‘얼굴 없는 가수’로 섭외 대상조차 되지 못했던 김범수는 최근 ‘승승장구’에 1인 게스트로 출연했고, ‘힐링캠프’에 초대되어 특유의 예능감을 뽐냈다. 진정한 비주얼 가수로 탈바꿈한 김범수의 창창한 앞날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박정현, 음악 요정의 탄생
임재범과 ‘너를 위해’를 불렀을 때부터 박정현의 가창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박정현의 이미지는 ‘노래 잘하는 가수’ 그 이상을 넘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 특유의 자유자재로 고음과 저음을 넘나들며 한 편으로는 속삭이듯 다른 한 편으로는 절규하듯 부르는 창법은 심지어 ‘가창력만 자랑하는 가수’로 여겨지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어색한 한국어는 대중들과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를 통해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을 뒤집었다. 그저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라 마치 연극을 하듯 노래를 잘 표현하는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무대 바깥에서의 여전히 소녀 같은 순수함을 보게 되었다. 왜소한 체구는 엄청난 가창력과 반전을 이루며 그녀의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크게 만들었고, 어색한 말투는 귀여움으로 바뀌었다. 노래를 통해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그녀는 노래라는 아우라를 날개로 가진 요정이 된 것이다.

명예졸업을 하기까지 9곡 거의 모두를 음원차트에 올려놓은 박정현은 중간 중간 발표한 드라마 OST 등을 합쳐 5억 원 이상의 음원수익을 확보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계속 음반을 발표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그간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이건 거의 벼락에 가깝다. 특히 콘서트와 행사에서 박정현의 존재감은 더더욱 빛나고 있다. 지난 5월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단독콘서트는 5회 연속 매진을 기록했다. 또 그녀는 김범수, 윤도현과 함께 가을 대학 축제와 행사 섭외대상 1순위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부가수익으로 놀라운 점은 그녀가 14년 만에 처음으로 CF를 찍었다는 점이다. 음료브랜드 '아침에 주스'에 이어 친환경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인 '나트라케어', 보험, 제약광고까지 연이어 모델로 발탁된 그녀는 지금도 10여 개 업체로부터 모델 제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광고료는 1억 원 미만으로 알려져 있지만 박정현으로서는 이른바 요정으로 불릴 만큼의 가창력과 외모를 이미지로 가졌다는 큰 의미가 있다.

이런 이미지 변신이 가져온 효과는 방송출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녀는 ‘무릎팍 도사’에 게스트로 출연한 데 이어 ‘위대한 탄생2’의 멘토로서 자리하고 있다. 과거 방송 출연이 전무했던 그녀로서는 엄청난 변화인 셈이다.

윤도현, 가장 대중적인 록커의 탄생
윤도현은 록커이면서도 방송 출연에 있어 활발한 활동을 해온 이례적인 경력을 갖고 있다. 즉 록커이면서도 대중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갖춘 인물이라는 얘기다. 그런 그가 ‘나는 가수다’라는 제 물을 만났다. 노래에 방송에 익숙한 토크 능력까지 갖춘 그는 이소라 하차와 함께 ‘나는 가수다’의 MC 역할을 맡기도 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최고 주가를 올리다 프로그램이 바뀌면서 방송활동이 위축됐던 상황을 생각해보면 ‘나는 가수다’는 윤도현이 다시 재도약하는 계기가 되어준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역시 명예졸업은 아니지만 끝까지 노래를 불러 가장 많은 음원을 차트에 올림으로써 명예줄업을 한 박정현, 김범수만큼의 음원수익을 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음원 수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록커’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이로써 그 역시 광고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정엽과 함께 해태 ‘부라보콘’을 또 정엽, 김건모와 함께 진로 ‘참이슬’ CF에 나란히 출연했다. 이밖에도 특유의 바른 이미지 덕분에 공익광고에도 등장하는 등, 그의 광고 이미지는 다양한 연령대를 포괄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윤도현의 광고료는 A급에 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시 록커 윤도현의 자리는 무대다. 윤도현의 행사는 대학에서 특히 빛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만큼 록이 가진 젊음의 느낌이 어필하는 탓이다. 대학 축제 섭외에 있어 작년보다 두 배 이상이 들어왔다는 YB는 올해 5월 한 달 동안 매주 4,5회의 대학축제 무대에 섰다고 한다. 3,4000만 원의 가장 높은 수준의 행사료를 받는 YB의 경우 이 한 달 동안 약 5억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윤도현의 진가는 음악 프로그램이 날로 많아지는 현재의 방송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검증된 진행능력과 가수로서의 실력, 게다가 대중적인 호감도까지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인기는 록이라는 음악에 있어서의 비인기종목(?)의 부흥을 이끌고 있다는 가치를 갖는다. 대중적인 록커, 윤도현. 그로 인해 이제 록은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르로 다가오게 되었다.

재미 못 본 백지영, 재미 본 정엽, 김연우, JK김동욱
모두가 ‘나는 가수다’를 통해 재미를 본 건 아니다. 대표적인 가수가 백지영이다. 백지영은 ‘나는 가수다’ 초반에 확실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였지만 재도전 여파로 한 달 간 방송이 중단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하차선언을 함으로써 이런 모든 부가수익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가 하차선언을 한 것은 물론 8집 앨범 발매를 위한 것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앨범은 ‘나는 가수다’의 경연곡에 밀려 음원차트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음반 활동 자체를 조기 중단하게 된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가수다’ 하차를 후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첫 번째 탈락자가 됐던 정엽이나 노래 두 곡 부르고 탈락했던 김연우, 그리고 어이없게도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다시 불러서 스스로 하차하게 된 JK김동욱은 짧은 출연이었지만 대중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김으로써 ‘나는 가수다’ 효과를 톡톡히 입은 가수들이다. 이들은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콘서트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이 짧았던 만큼 큰 아쉬움이 콘서트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나는 가수다’를 통해 확실한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낸 정엽은 윤도현과 함께 두 편의 광고를 찍었고, 김연우는 ‘라디오스타’ 같은 토크쇼를 통해 숨겨둔 예능감을 선보이며 이른바 ‘연우신’으로 불리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본 원고는 <우먼센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 이 뿌리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피어날까

'뿌리깊은나무'(사진출처:SBS)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 왕이 스스로 이렇게 외치는 이유는 명백하다. 왕이지만 왕의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종(송중기)은 아버지인 태종(백윤식)의 그늘 아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태종이 권력을 잡기 위해 친인척을 구분하지 않고 피의 숙청을 감행하는 것을 보면서도 세종은 아무도 구하지 못한다.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모두 치워버리는 것"이 정치라 생각하는 태종 앞에서 "나의 조선은 다를 것"이라 말하지만 세종은 "너의 조선이란 게 무엇이냐?"는 태종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런 세종을 일깨운 것이 일개 똘복(채상우)이라는 민초 아이라는 사실은 세종의 정치철학은 물론이고 이 사극이 가진 메시지를 함축한다. 정치도 모르고 반역이라는 것은 더더욱 알 리 없는 이 아이가 역당의 무리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세종은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태종의 칼날이 목에 드리워지지만 세종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다. 한 아이를 구하는 것, 그것은 세종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자신이 구한 백성"으로 그 아이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백성을 구한다'는 메시지와 그 백성이 위기에 처한 이유가 양반들에게만 독점된 글자로 인해 글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세종의 '한글 창제'의 충분한 동인으로 제시된다. 문자를 읽고 쓴다는 것이 사실은 '죽고 사는 문제'였다는 이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는 어찌 보면 그다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을 한글 창제의 의미를 드라마에 깊게 각인시킨다. 세종의 이 분명한 목적의식은 앞으로 집현전을 두고 벌어질 사건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갖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가 된다.

어찌 보면 이것은 지극히 교과서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만큼 세종의 한글창제에 대한 평가는 일상화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뿌리 깊은 나무'는 이것을 보다 강력한 대결구도와 흥미로운 장치들을 활용해, 쉬우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있다. 태종과 세종의 팽팽한 대결구도는 이 사극이 굴러가는 추진력을 만들어내고, 그 대결 속에서 기묘하게 연결된 똘복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세종의 소명의식을 드러낸다.

태종과 세종의 '다른 조선'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방진이라는 흥미로운 도구를 통해 쉽게 제시되어 있다. 즉 태종이 마방진으로 고민하는 세종에게 "이건 너무 간단한 문제"라며 다른 숫자를 다 떼어버리고 1자 하나를 가운데 세워두는 장면은 태종의 중앙집권식의 정치철학을 함축하는 장면이다. 반면 그 많은 숫자들을 나열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면서도 조화로운 방진을 꾸리려 애쓰는 세종의 모습은 그대로 그의 민초들을 생각하는 정치세계를 잘 말해준다. 그 숫자 하나 하나는 수많은 똘복의 분신인 셈이다.

화려한 액션과 군더더기 없는 영상 연출은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이어나간 장태유 PD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복잡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군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연결시키고 배치하며 그 속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팽팽한 갈등구조는 돌아온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공이 느껴진다. 여기에 거친 야성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백윤식과 그 중견연기자의 힘 앞에서도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송중기의 일취월장된 연기는 이 사극이 가져갈 초반의 힘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것은 '뿌리 깊은 나무'라는 새롭고 특별한 사극의 시작이자 전제일 뿐이다. 이 깊은 뿌리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가지들이 이야기로 자라날 것인가. 실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개콘', 깊어진 공감, 신랄해진 풍자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렇게 후보가 돼서 당선되는 것도 어렵지 않아요. 그냥 선거 유세 때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만 해주면 되고요. 평소 먹지 않았던 국밥을 한 번에 먹으면 되요. 선거 유세 때 공약도 어렵지 않아요. 공약을 얘기할 때는 그 지역에 다리를 놔준다던가, 지하철역을 개통해준다던가, 아 현실이 너무 어렵다고요? 괜찮아요. 말로만 하면 되요. 이래도 당선이 될까 걱정이라면 상대방 진영의 약점만 잡으면 되는데 과연 아내의 이름으로 땅은 투기하지 않았는지 세금은 잘 내고 있는지 이것만 알아내세요. 아 그래도 끝까지 없다면 사돈에 팔촌까지 뒤지세요. 무조건 하나는 걸리게 돼있어요. 이렇게 여러분들 이 약점을 개처럼 물고 늘어진다면 국회의원이 될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 이렇게 쉽게 국회의원이 돼서 서민을 위한 정책 펼치세요."

'개그콘서트'의 풍자가 더 독하고 신랄해졌다. '사마귀유치원'은 그 정점이다. '어린이 여러분'이 아니라 '어른이 여러분'을 상대로 하는 '사마귀유치원'은 대놓고 정치적인 문제들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풍자한다. 그것도 웃으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 '예쁜 집에 살고 싶다'는 어른이들의 소망에 대해 최효종은 천연덕스럽게 "교대에 가면 된다"며, "초봉이 140만 원"인데 "숨만 쉬고 살면 89세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어요. 너무 쉽죠?"하고 말한다. 또 아이를 낳을 경우에는 "1인당 양육비가 2억4천씩 들기 때문에 아이들과 숨만 쉬고 살았을 때는 217세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의 자질문제에서부터 집 마련은 언감생심인 서민들의 현실적인 고충까지 풍자의 대상에는 거침이 없다.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물론 '개그콘서트'는 현실풍자가 그 바탕에 늘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 강도가 이토록 강해진 건 최근의 일이다. '비상대책위원회'는 비상사태를 전제해두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관료주의와 무능력한 위기대처능력을 사정없이 꼬집는다. 당장 테러가 일어날 상황을 긴박하게 브리핑하지만, 거기에 대해 첫 마디는 "안돼-"인 상황.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안되는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음으로써 결국 위기에 대처할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무능력. '비상대책위원회'나 '사마귀유치원'은 보는 내내 깔깔 웃게 만들지만 그 밑에는 그간 답답하고 억눌려왔던 서민들의 감정들이 꿈틀댄다.

이처럼 독한 풍자가 대중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그 풍자가 꼬집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딱히 비판적인 현실 풍자가 아니라고 해도 '애정남'이나 '생활의 발견', '불편한 진실' 등, 현실을 공감하게 하는 코너들이 많아진 것도 최근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변화다. '애매한 것을 정해준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그 상황에 대한 공감을 동력으로 가져가는 '애정남'이나, 진지한 상황 속에서도 본능적인 욕망을 발견하게 되는 '생활의 발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을 슬쩍 끌어들여 그 심리를 파고드는 '불편한 진실' 등은 모두 '현실 공감'이 그 핵심이다. '그래 그래 나도 저랬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

'개그콘서트'는 물론 여전히 '슈퍼스타KBS'나, '감수성', 'N극과 S극'처럼 몸 개그를 기반으로 하는 개그들이 있지만, 최근 그 흐름을 주도하는 건 이 풍자와 현실에 공감하게 되는 말 개그들이다. 이것은 '개그콘서트'가 과거 마빡이나 갈갈이류의 초중등학생들이 좋아했던 몸 개그에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풍자를 이해하는 나이든 세대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은 고무적이다. 일요일 저녁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해피선데이'가 '개그콘서트'에게 왕좌를 내주고 있는 것. 이렇게 된 것은 물론 '개그콘서트'의 깊어진 공감과 신랄해진 풍자 덕분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어쩌면 그만큼 더 팍팍해진 대중들의 삶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후2'의 알리, 비주얼 가수란 이런 것

'불후의 명곡2'(사진출처:KBS)

그녀는 왜 가면을 썼을까. 그리고 왜 가면을 집어던졌을까. '불후의 명곡2'의 알리가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극적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가면의 등장에 객석은 긴장했고, 그녀의 낮은 읊조림에 관객들은 빠져들었다. 그리고 마치 숨겨왔던 열정을 보여주겠다는 듯 가면을 집어던지고 웅크렸던 몸을 쫙 폈을 때, 관객들은 기대하기 시작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그 첫 소절은 그대로 알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간 얼굴 없는 가수처럼 목소리로만 익숙했던 그녀의 이야기.

탱고에는 삶의 무게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일까. 비장미 가득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탱고 선율의 편곡에도 기막히게 어울린다. 하지만 비장미 속에도 훨씬 발랄하면서도 고혹적인 느낌은 바로 탱고가 가진 새로운 힘을 알리에게 부여했다. 그래서 탱고로 편곡된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어딘지 삶의 신산함을 겪어온 그녀에게 딱 어울리는 정조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청춘의 느낌이다.

'365일'을 통해 잘 드러난 것처럼 알리는 낮은 읊조림에서부터 고음의 폭발력까지를 두루 갖춘 가수다. 특히 한 마디 한 마디의 가사를 음미하게 만드는 전달력은 절정에서 전율과 감동으로 이어지기 마련.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이 목소리에 탱고 무희들 특유의 퍼포먼스를 추가함으로써 비주얼적인 부분을 가미했다. 알리의 비주얼이 파격적이며 심지어 전율을 느끼게 해준 것은 그 겉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가진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알리는 본래 '타이순(타이슨에서 따온 이름이다)'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리쌍의 개리가 "여자니까 알리로 하향조정해주자"고 해서 알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 그만큼 외모는 그녀의 장벽이었다. '불후의 명곡2'에서 1등을 하고 가진 그녀의 울먹이는 인터뷰는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을 찡하게 만든다. "저는 예쁘지도 않고,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잖아요.” 그녀는 도대체 이 외모를 요구하는 가요판에서 얼마나 가창력이란 칼을 갈았던 걸까.

그래서 알리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저 '나는 가수다'의 김범수가 '님과 함께'를 부르며 보여준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연상케 한다. 물론 잘 빠진 몸이 만들어내는 보기에 좋은 아름다움은 아닐지라도 그 열정이 보여주는 진정성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도 대체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것은 어쩌면 비주얼만 넘쳐나고 정작 가수는 잘 보이지 않는 시대에 진정한 '비주얼 가수'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비주얼은 눈만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채워져야 하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가진 기승전결이 있는 양인자의 가사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듯한 때론 부드럽고 때론 강렬한 알리의 목소리와, 몰입만으로도 충분히 그 진지함이 묻어나는 퍼포먼스로 하나의 뮤지컬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김범수에 이어 알리라는 노래 잘하는 진정한 의미의 '비주얼 가수'의 탄생이다. '외로워도 모든 것을 거는' 듯한 그녀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음악에 있어 달라진 이 시대가 간절히 원하는 또 한 명의 가수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