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떠난 자리, '런닝맨'이 차지하나

'런닝맨'(사진출처:SBS)

주말 저녁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격돌하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대의 예능프로그램들이 모두 웃음을 주는 건 아니다. '남자의 자격'은 웃음보다는 감동을 택했고, '나는 가수다'는 노래의 즐거움을 택했다. 이제 예능 프로그램은 웃음만이 아닌 다양한 스토리를 전해준다는 것을 주말 예능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온전히 웃음을 추구하는 '런닝맨'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런닝맨'은 전형적인 게임 버라이어티쇼다. 출연자들이 어느 장소에 집결해서 미션을 두고 한바탕 게임을 벌이면서 해프닝이 벌어진다. 이미 캐릭터가 확고히 잡혀있는 출연진들은 그 상황 속에서 일종의 캐릭터라이즈드쇼를 통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특별한 감동 포인트가 있을 리 없다. 그저 게임을 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이것으로 시청자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 '런닝맨'의 목적이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가장 순수한(?) 목적을 가진 셈이다.

물론 '1박2일'은 웃음과 감동을 모두 포괄하는 여행 버라이어티쇼로서 자리하고 있지만 강호동이 잠정은퇴를 선언한 마당에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 지 알 수 없다. 또한 몇 개월 후면 종영이 예고되어 있는 시한부 예능이기도 하다. 또 '나는 가수다'는 주말 예능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었지만 현재 어떤 패턴의 반복에 묶여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남자의 자격'은 청춘합창단의 감동에 치중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웃음을 찾기 어렵다는 단점도 갖고 있다. 주말 저녁을 온전히 웃으며 보내고 싶은 시청자들이 '런닝맨'을 찾게 되는 이유다.

'런닝맨'이 최근 들어 점점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프로그램이 꾸준히 진화를 계속한 결과다. '런닝맨'의 게임 패턴은 초기에는 특정 랜드마크에서 정해진 게임을 하는 단순한 구조였지만 방울을 달고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긴박감을 부여하기도 했고, 차츰 제작진과 출연진 사이의 심리전을 넣음으로써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게임으로 진화했다. 게다가 공간적으로도 어느 한 폐쇄된 장소에서 하던 게임은 실제 거리로 나서기도 했고,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파타야나 북경 같은 해외를 배경으로 하기도 했다.

공간의 확장, 캐릭터의 구축, 제작진과 출연자 사이의 대결구도 등은 게임을 다양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즉 북경으로 공간을 바꾸면 중국어로 음식 이름을 들려준 후 그 음식을 시장에서 찾는 게임이 시도되고, 만리장성 위를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옮겨 다니며 미션을 수행하기도 하는 게임을 하기도 한다. 능력자 김종국과 유르스윌리스 유재석이 대결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나, 스파이 미션을 꿈꾸는 개리를 통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몰래카메라를 만드는 것은 캐릭터의 활용과 심리게임이 덧붙여져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런닝맨'의 진화는 현재 웃음보다는 다른 포인트들을 추구하고 있는 주말 예능들과 확실한 차별화를 가져왔다. 역시 이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유재석이다.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한 방향으로 달려온 그 성실함과 끝없는 도전의 결과가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것. 주말 저녁, 강호동의 빈 자리를 유재석이 이끌고 있는 '런닝맨'이 차지할 것이라는 예감은 어쩌면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하이킥3', 이 희비극의 마법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사진출처:MBC)

김병욱 감독의 하이킥 시리즈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시트콤 역시 김병욱 감독 특유의 희비극이 녹아있다. '짧은 다리'는 비극적인 요소지만, 그것을 하이킥으로 날려버리는 유쾌한 역습이 희극적으로 다뤄진다. 즉 상황은 비극 그 자체지만 이것을 과장하거나 비트는 것으로 비극은 희극이 된다. 말 그대로 '역습'인 셈이다.

하루아침에 부도로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안내상의 가족. '동행' 같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안내상 가족의 봉고차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소재적으로 보면 절망적인 사건이다. 또 취업이 되지 않아 고시원을 전전하며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백진희도 전형적인 청년실업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비극은 '하이킥3'의 시점으로 비틀어 보면 유쾌한 풍자를 담아낸 희극이 된다.

길바닥에서 조촐하게 치러지는 안내상의 아내 윤유선의 생일 풍경은 전형적인 홈리스들의 비극을 담고 있지만, 그 장면은 갑자기 터져버린 폭죽이 안내상의 엉덩이를 때리고 마치 ET의 한 장면처럼 하늘을 날아가는 과장된 장면으로 희극이 된다. 당숙에게 도움을 받으러 갔지만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안내상이 자살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고 이를 막기 위해 가족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장면도 진지하게 바라보면 비극 그 자체다. 하지만 갈아입을 옷이 없어 배꼽티를 입은 안내상의 모습에 가족이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비극 속의 희극을 포착해낸다.

이런 현재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이 시트콤의 첫 회에서 잠깐 미래의 이적이 회고담 형식으로 2011년을 얘기하면서 스케치된 적이 있다. "2011년은 유별난 해는 아니었다." 이렇게 내레이션은 시작되지만 그 장면에는 대조적으로 대지진, 천재지변, 아프리카의 민주화열풍으로 죽고 싸우는 사람들이 흘러나왔다. 그 중 우리나라는 "고물가, 트위터, 현빈, TV오디션 프로그램, 안철수, 그리고 여전히 돈 돈의 해였다"로 묘사되었다. 결국 2011년의 풍경을 담아낼 이 시트콤이 뒤틀어 보여줄 현실들을 나열한 셈이다.

도대체 이 결코 녹록치 않은 힘겨운 2011년의 풍경들은 어떻게 웃음의 소재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이 시트콤이 미래의 한 시점에서 이제 할아버지가 된 이적이 과거를 회고하는 관점으로 2011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닥친 현실은 비극이지만 지나고 나면 하나의 희극 같은 추억이 될 수 있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이것은 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회자되었던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구절과 상통하는 얘기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여타의 하이킥 시리즈가 그래 왔던 것처럼 현실의 비극적인 한 단면을 가져와 그것을 한바탕 웃음으로 바꿔놓는다. 겨우 20분 남짓의 짧은 한 방이지만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이 짧은 한 방의 하이킥이 던지는 통쾌함이 어찌 적다 할 것인가. '하이킥3'의 매력은 바로 이 절망조차 웃음으로 돌려놓는 희비극의 마법에 있다.


붐의 군대얘기는 왜 모두가 좋아할까

'시크릿'(사진출처:KBS)

바야흐로 붐 전성시대다. 현역으로 입대해 연예사병으로 만기 제대한 붐은 연예계 복귀 단 몇 주만에 예능계의 블루칩이 되었다. 추석 내내 채널을 돌리면 마이크를 들고 있는 붐을 발견할 수 있었고, 추석이 지나고 왠만한 토크쇼치고 붐이 지나가지 않은 흔적은 없었다. 그만큼 붐에 대한 예능계의 기대감은 컸고, 거기에 붐은 제대로 부응하며 춤이면 춤 토크면 토크, 역시 붐이라는 찬사를 거둬들였다.

붐에 대한 예능계의 폭발적인 주목은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입대하기 전 그가 구축해놓은 이른바 '싼티' 캐릭터는 그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줄 만 했다. 하지만 대체로 입대하고 몇 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게 연예인들의 숙명이다. 게다가 제대를 하고 복귀하게 되면 달라진 예능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하하나 김종민처럼 주목받던 연예인들도 복귀해서 제 영역을 찾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붐은 다르다. 마치 엄청난 준비를 해왔던 사람처럼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빵빵 터트리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우스개로 던지는 "약 1000개의 레퍼토리"를 준비했다는 얘기는 그저 농담만은 아닌 모양이다. 실제로 붐광댄스는 철저히 준비된 레퍼토리의 하나이고, 토크 도중 이를 드러내고 눈썹을 치켜 올리며 웃는 모습 역시 붐이라는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준비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진짜 주목되는 건 그가 토크 때마다 끄집어내는 '군대 이야기'다.

사실 '군대 이야기'는 남자들은 좋아할 지 몰라도 여자들은 지루해한다. 그런데 붐의 군대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거기에는 붐이 연예사병이었다는 특수성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붐의 군대이야기 속에는 이준기도 등장하고 이동욱이나 박효신은 물론이며 라니아 같은 걸 그룹도 등장한다. 군대이야기는 맞지만 거기엔 연예계 이야기(그것도 군대라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남자스타들의)가 들어가 있다. 따라서 붐의 군대이야기는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도 좋아한다.

이 군대이야기는 또한 최근 생겨나고 있는 이른바 연예인들의 군대 프리미엄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회피하지 않고 제대로 군 생활을 했다는 것은 언제부턴가 대중들의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 따라서 붐이 예능에 복귀하면서 자연스럽게 군대이야기를 토크의 주제로 끌어들인 것은 대단히 현명한 방식이다. 이것은 군대 프리미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입대한 남자 연예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 재밌게 각색된 군대이야기는 붐의 그간의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준다. 즉 입대하기 전의 붐과 제대한 붐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풀어냄으로써 그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붐에 대한 과도한 집중에는 거품도 있다. 그것은 그간 군대라는 장막에 가려져 있다가 이제 막 나왔기 때문에 더 주목되는 경향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거품을 감안한다고 해도 붐이 현재 만들어내고 있는 주목도나 존재감은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그가 복귀의 그 날을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해왔다는 얘기다. 과거 리포터로서도 발군의 활약을 했던 붐이 군대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예사병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발굴했다는 건 참 기묘한 일이다. 역시 노력하는 자에게는 늘 기회가 오게 마련인 셈이다.


'1박2일' 나영석PD

방송가가 꿈틀대고 있다. 이것은 마치 '삼국지' 같은 고전을 보는 것만 같다. KBS, MBC, SBS로 삼 분할되어 균형을 이루던 방송가는 종편을 맞아 군웅이 할거하는 전국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기존 삼국들(KBS, MBC, SBS)은 장수들(PD와 스타MC)을 빼앗기면서 내부를 다시 다지며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고, 새로 들어오는 열국들(종편들과 CJ E&M)은 장수들을 빼앗아와 이 전국시대의 기선을 잡아야 한다. 자칫 밀려나기라도 한다면 방송이라는 거대한 꿈은 그 거대한 만큼의 손실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종편이 결판난 상황, 생존을 건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용을 갖추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진용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힘을 먼저 끌어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능이다. 방송사의 힘을 만들어주는 것은 미디어로서의 권위가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의 재미다. 대중들의 선택이 바로 여기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드라마가 그랬지만 지금은 잘 키운 예능 하나가 그 방송사의 이미지를 만드는 시대다. 따라서 예능PD들과 스타MC를 빼앗고 뺏기는 상황은 향후 방송가의 정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 된다. 전국시대를 맞아 방송가들은 어떤 포석을 하고 있을까. 또 그 포석이 그리는 그림은 뭘까.

KBS, 이렇게 뺏기고도 믿는 구석은 뭘까
KBS는 이미 수많은 장수들을 잃었다. '1박2일'의 초창기 그림을 그린 김시규PD와 '해피선데이'의 CP를 맡았던 이동희PD, '야행성'의 조승욱 PD, 그리고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김석윤PD가 중앙 종편(jTBC)을 택했고, '해피선데이'의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모두 세팅한 이명한 PD와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 PD, '개그콘서트'의 김석현 PD가 CJ E&M을 택했다. 사실상 최고의 KBS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 알짜배기 PD들이 거의 대부분 이적을 택한 셈이다. 게다가 방송가에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게 끝이 아니다.

강호동의 '1박2일' 하차 선언에도 불구하고(심지어 강호동의 잠정은퇴선언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끝까지 '1박2일'에 남겠다고 선언한 나영석PD의 경우에도 여전히 여지는 남아있다. '1박2일'의 6개월 후 종영 선언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영석PD는 스카우트 제의를 수락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1박2일'이 가진 '국민 예능'이라는 칭호를 연출자 스스로 먼저 깨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중심부에 서 있던, 그리고 실제 출연자의 한 명으로서 충분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그는 보통의 PD와는 확실히 다른 위치에 있다. 이미지가 깨지면 스타PD로서의 위상도 깨질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6개월 후 '1박2일'이 종영한 후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적어도 자신은 할 책임을 다한 셈이 되고,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없는(시즌2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건 다른 프로그램이나 다름없다) 상황에 계속 KBS에 남아있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KBS 특유의 방송사 분위기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공영방송이라는 기치 아래, KBS는 지금껏 스타 PD를 키워오지 않았다. 일부 스타에 의해 방송이 움직이는 것이 어딘지 공영방송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KBS는 주로 시스템에 주력해왔다. 즉 PD 몇 명이 빠져나간다고 해도 여전히 그 시스템에 의해 빈자리가 채워지고 굴러가는 그런 구조다. 하지만 KBS에 이명한이나 나영석 같은 스타PD가 등장하게 된 것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새로운 형식이 트렌드로 자리하면서부터다. 프로그램의 현장성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PD들이 얼굴을 내밀었고 그것이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팬덤이 형성된 것이다.

어찌 보면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될 지 모르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KBS가 공성을 하는 방식은 이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김석현PD가 빠져나간 자리는 초창기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서수민PD가 채우고,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PD가 빠져나간 자리에 조성숙PD가 서는 식이다. 만일 스타PD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움직였다면 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김태호PD 없는 '무한도전'을 떠올릴 수 있을까. 하지만 신원호PD 없는 '남자의 자격'은 만들어질 수 있다. 여기서 KBS라는 조직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는 돌출되는 인물로서 나영석PD의 고민이 엿보인다. 그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팬덤을 확보한 KBS PD다. 즉 나영석PD 없는 '1박2일'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어쩌면 나영석PD의 이적은 '1박2일'이 먼저 없어져야 가능한 일이 되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나영석PD의 이적 가능성과 함께 관심을 끄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모두 맡고 있는 이우정 작가의 행보다. KBS라는 조직을 생각해볼 때 엄청난 노동과 성과를 내고 있는 이우정 작가는 이 춘추전국시대의 스카웃 블루칩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여러모로 스타PD에서 MC까지 빼앗기고 있는 KBS는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혼란스런 전국시대에 KBS는 정면으로 대치하기보다는 여러모로 공영방송이라는 틀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수신료 인상에 목을 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상업방송들과의 경쟁과는 다른 차원으로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얘기처럼 보인다. 더 치열해질 전쟁 바깥에 서려는 것. 물론 많은 장수를 잃었지만 그래도 KBS가 믿는 구석이 아닐까.

스타PD 이적, MBC는 뜨겁고 SBS는 차가운 이유
한편 KBS와는 다른 사풍을 갖고 있는 MBC는 이 전국시대 상황에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KBS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던 것과 상반되게 MBC 예능은 본래 스타PD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현재 중앙 종편 jTBC의 주철환 본부장이나 CJ E&M 방송부문 송창의 본부장은 모두 MBC가 배출한 스타PD다. 이밖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나는 가수다'를 만든 김영희PD, '무한도전'의 김태호PD, '황금어장'을 만든 여운혁PD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PD 스타가 배출될 수 있는 조직은 그만큼 PD들의 움직임에 쿨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충분한 기회를 주는 MBC라는 조직이 가진 장점과 그럼에도 이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비교분석해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 맞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중앙종편으로 이적한 여운혁PD는 스타PD는 맞지만 사실상 현장PD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 이적의 이유가 드러난다. 반면 김영희PD 같은 경우에는 현재도 여전히 현장에 있고 그만큼 방송사에서도 예우를 해주는 상황이기 때문에 쉽게 이적을 결정할 까닭이 없다.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김영희PD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것을 허용해주는 방송사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김태호PD는 예외적이다. 그는 물론 MBC에 애착을 갖고 있지만, 방송사에 그다지 목을 매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에 그는 더 관심이 있다. 따라서 '무한도전'이 MBC에 귀속되어 있는 한 움직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미 배출된 MBC출신PD들이 바깥에 포진해 있다는 것은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이적이 일어나는 이유가 된다. 사실 이적은 이적료나 새로운 분위기 등을 생각하면 당장에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또한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도 존재한다. 이럴 경우 주철환 같은 선배가 본부장으로 앉아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여운혁PD나 '우리 결혼했어요'와 '위대한 탄생'을 연출한 임정아PD, 그리고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일밤-단비', '추억이 빛나는 밤에'를 연출한 성치경PD가 jTBC로 옮기게 된 데는 이런 이유가 한 몫을 차지한다.

반면 SBS가 유독 이적 이야기가 없는 것은 거꾸로 이런 이적에 따른 고용 불안을 해소시켜줄만한 선배 스타 PD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스타PD를 키우기보다는 외주제작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경쟁력을 높여온 SBS 예능의 특징이다. SBS 예능이 어떤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 코드들을 가져와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유지된 데는 그 방송사만의 특징이 투영된 결과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자유경쟁식의 시스템을 가진 SBS는, 그만큼 스타PD뿐만 아니라 스타MC를 끌어오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SBS 예능에 있어 초미의 관심사는 강호동이 과연 주말 예능으로 SBS에 들어오느냐 하는 점이다. 아직까지 결정된 사안은 아니지만, 이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강호동의 노림수가 타 방송사 출연이나 그 출연료가 아니라 프로덕션을 차려 아예 자체 콘텐츠를 생산 납품하는데 있다면 MBC나 KBS보다 SBS가 가장 유력하기 때문이다. KBS는 이런 상업적 행보에 둔감할 수밖에 없고 MBC는 스타MC를 끌어다 효과를 보려하기보다는 스타를 키우려 하는 습속이 있다. 종편은 여러모로 강호동에게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SBS 이적설이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만일 강호동이 SBS 주말 예능에 들어오게 되면 어쩌면 유재석과 강호동 양 체제를 갖추게 될 지도 모른다. 유재석의 '런닝맨'이 점점 위치를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강호동까지 갖게 된다면 현 방송사의 위상을 만들어내는 주말 예능의 판도는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스카웃을 통해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는 전국시대에 이러한 철저히 상업적인 행보는 어쩌면 여기에 대처하는 SBS의 방식인 셈이다.

중앙종편의 예능, 조선종편의 인포테인먼트
빼앗긴 자들이 있으면 빼앗은 자들도 있는 법. 중앙종편은 이 스카웃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주철환을 본부장으로 세워두고 여운혁PD를 비롯해 임정아PD, 그리고 성치경PD를 MBC에서 끌어온 중앙종편은 한편 KBS에서도 이동희PD를 위시해 '승승장구'의 윤현준PD, '1박2일'의 신효정PD 등 다양한 인력 풀을 끌어들이고 있다. 중앙종편의 이런 움직임은 과거 TBC 방송국을 운영했던 그 경험이 작용한 덕분이다. 결국 방송은 예능이 그만한 위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확신이다.

중앙종편의 방송경험은 상대적으로 신문사로서의 위상에서 발을 빼기 어려운 조선종편보다 훨씬 유리하게 작용한다. 즉 중앙종편이 오락과 재미를 추구하는 방송을 주창하고 그런 인력들을 대거 유입하고 있는 반면, 조선종편은 그저 자극적인 오락을 추구하는 것에 보수언론으로서의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수현 작가가 조선종편의 개국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는 예능보다는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되는 조선종편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물론 조선종편이라고 예능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방송의 핵심이라는 것을 조선종편이 모를 까닭이 없다. 하지만 최근 조선종편으로 스카웃된 김일중 작가는 그 예능이 어떤 성격의 것인가를 대충 짐작가게 만든다. 김일중 작가는 최근까지 tvN에서 '열광'이라는 시사를 소재로 하는 예능 토크쇼를 만들어왔다. 또 스스로도 "예능 같지 않은 예능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조선종편의 예능은 보도기능으로서의 조선일보와 연계할 수 있는 인포테인먼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의아하게 느껴지는 건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머지 두 종편인 동아종편과 매경종편의 움직임이 잘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일천한 방송경험에 따른 전략의 부재일 수도 있다. 즉 중앙종편이 하듯이 먼저 재미를 포착해 시청자들의 눈을 돌리던가, 아니면 조선종편이 하듯이 조선일보라는 매체의 확장을 꿈꾸던가 하는 전략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벌써부터 이 살벌한 생태계로 내몰리고 있는 종편전쟁에서 이 두 종편이 생존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기도 한다.

CJ E&M,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다

CJ E&M으로 이적한 이명한PD

흥미로운 건 이 전국시대의 대혼란 속에 서 있는 CJ E&M의 움직임이다. 애초에 종편에 나서라는 압력까지 있었지만 굳이 이를 거부하고는, 막상 종편전쟁이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자 오히려 종편보다 더 빨리 장수들을 영입하는 CJ E&M의 속내는 도대체 뭘까. 여기에는 최근 몇 년간 쌓아온 노력의 결실들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이면서, 어찌 보면 종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CJ E&M의 야심이 어른거린다. 백전노장 송창의PD를 대표로 세우고 자체제작방송의 가능성을 타진했던 tvN은 이미 성공적인 결과로 돌아왔고, Mnet의 '슈퍼스타K'는 케이블과 지상파의 간극마저 좁혀버렸다. 케이블로서의 정확한 틈새를 계산해, 그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꾸는 작업은 이제 CJ E&M의 새로운 노하우가 된 셈이다.

그런 그들이 이명한PD에 이어 신원호PD를 스카웃해 KBS처럼 사수-부사수로서 프로그램 런칭을 준비시키고 있고 '개그콘서트'의 김석현PD를 끌어들인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스카웃 전쟁이란 본래 가져오지 못하면 뺏기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든 두 배의 효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즉 종편시대에 열려진 시장에서 타 종편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끌어오는 것은 적을 견제하면서도 안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게다가 향후 도태될 종편을 인수하겠다는 CJ E&M의 야심을 생각해보면 이런 포석은 그 때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미 스타PD가 갖고 있는 힘도 무시하지 못한다. 즉 이미 케이블과 지상파 사이의 간극을 좁혀본 경험이 있는 CJ E&M으로서는 기성 스타PD의 보편성있는 시청층을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을 세울만하다. 김석현PD가 컴백할 예정인 '코미디 빅리그'는 여러모로 '개콘'의 케이블 버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 이명한PD와 신원호PD가 준비하고 있는 예능은 리얼 버라이어티쇼 형식을 활용하면서도 그 바깥을 모색할 공산이 크다. 어떤 형태든 이명한PD나 신원호PD가 가진 대중적 인지도를 생각해보면 역시 그 포석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종편 스카웃 전쟁, 그 치열한 심리전의 양상
종편 스카웃 전쟁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이적료다. 도대체 누가 얼마를 받고 어디로 움직였냐는 얘기는 일반 대중들은 물론이고 현업 PD들마저 뒤흔들어 놓는다. 스타급PD가 10억에서 15억을 받고 보통의 경우가 3,4억의 계약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아니 사실 이 이적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것은 이 이적료가 실제와는 상관없이 어떻게 알려지느냐는 그 자체도 스카웃 전쟁의 정교한 심리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카웃 경쟁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방송가에는 누가 어디로 이적한다더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실제와는 차이가 있는 이 루머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부분은 스카우터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PD들 중 ○○가 이미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소문에 소문을 타고 방송가를 술렁거리게 만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적료 얘기가 붙으면 이것은 본래보다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어디서 얼마를 제시했다더라는 소문은 그것이 소문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실제 스카웃 전쟁터에서는 그만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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