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의 기본기, 물리지 않는 담담한 맛

누군가 정성 들여 만들어놓은 음식을 처음으로 맛보는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새로이 월화의 밥상에 올려진 ‘식객’이란 요리의 첫 맛은 담담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극적 구성은 연출되지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흥미진진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허영만 화백의 원작 ‘식객’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똑같은 음식을 소재로 하지만, 우리네 ‘식객’은 중국의 ‘식신’같은 영화와는 차별화 된다. ‘식객’이란 원작만화의 첫 시작으로 제시되는 요리가 밥이라는 사실은, ‘식신’의 화려한 요리들보다는 기본기에 충실한 서민적인 요리에 손을 들어주는 ‘식객’의 맛의 철학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드라마 ‘식객’이 담담한 첫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성찬(김래원)은 운암정 후계자 자리를 두고 요리대결을 벌일 봉주(권오중)와는 물론이고 심지어 오숙수와도 맛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 똑같은 생태를 가지고 요리를 하더라도, 오숙수는 최고의 재료를 구하는 것이 요리의 가장 중요한 기본이라 생각하고, 봉주는 요리도 장사이기에 일단 수지가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성찬은 싸고 흔한 재료라도 노력을 통해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숙수가 요리에 있어서 이상을 꿈꾼다면 봉주는 현실적이며, 성찬은 그 사이에서 화해를 모색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성찬이 버려지는 동태들을 싼 가격에 사서 끝끝내 맛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앞으로 이 드라마가 선사할 맛이 산해진미가 아닌 바로 서민의 맛을 향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이상을 꿈꾸지만 그렇게 어렵게 구한 재료로 끓여낸 생태탕을 꽁보리밥과 함께 내주면서 고향의 맛, 어머니가 해주던 맛을 선사하는 오숙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돈이라는 현실의 차원을 넘어서 추억을 떠올려주는 맛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바로 이 부분은 ‘식객’이 그저 화려한 음식이나 대결구도만의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식객’은 음식의 의미를 찾아가는 드라마다. 드라마 첫 시작에서 순종에게 마지막 수라를 올리는 대령숙수가 납평전골을 만들어 그 의미(다시 나라를 되찾아 빼앗긴 사냥터에서 다시 꿩과 멧돼지를 잡아 요리를 올릴 수 있게 해달라)를 전하는 것은 음식이 그저 입만을 즐겁게 해주는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운암정 후계자를 두고 벌인 첫 번째 요리대결에서 성찬이 우승한 이유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지키는 그 기본기를 지켰기 때문이다. 드라마 ‘식객’이 성찬의 기본기를 닮기를 바란다.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음식들의 상찬으로 만들어내는 자극적인 맛보다는, 청국장이나 김치찌개 같은 평범하고 담담하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맛을 내는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것은 허영만 화백 원작 ‘식객’이 가진 기본기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드라마, 초반 시선을 잡아야 성공한다

영화에 ‘5분의 법칙’이 있다면 드라마에는 ‘첫 회의 법칙’이 있다. 첫 회에서 시선을 잡아끌지 못하면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따라서 드라마 속 하이라이트 부분을 맨 앞에서 먼저 보여줘 시선을 잡아끈 다음, 회상 신으로 돌아가 극을 전개시키는 방식은 하나의 전형이 되었다. 멜로드라마에서 해외로케를 통해 이국적인 풍광을 보여주고, 사극에서 스펙터클한 액션장면을 보여주거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충격적인 사건이나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첫 회에 제시하는 건 그 때문이다.

사극의 첫 회, 지붕 위를 걷다
‘일지매’는 첫 회에서 갑의를 착용한 일지매(이준기)가 전각지붕 위를 바람처럼 달려나가고 왕실의 보물창고인 내수고에 침입해 보물을 훔치는 장면을 말 그대로 스펙터클하게 보여주었다. 일지매가 담을 넘어 탈출하면서 매화나무 아래 안착한 후 카메라가 일지매의 눈으로 쑥 들어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것은 첫 번째 시선을 잡아끄는데 성공한 ‘일지매’의 면면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제 시청자들은 그 붙잡힌 시선에 이끌려 이 멋진 일지매가 되기까지의 과정, 즉 겸이에서 용이가 되고 용이에서 일지매가 되는 그 과정을 보게 된다.

궁을 배경으로 한 액션 신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사극의 첫 회 공식처럼 자리잡았다. ‘이산’에서 궁중연회 도중 갑자기 영조(이순재)를 향해 총을 쏘는 군졸들에 의해 아수라장이 된 연회장을 빠져나가 도망치는 영조 앞을 사도세자가 가로막는 장면은 물론 영조의 꿈이지만 시청자들의 눈을 빼앗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이것은 저 ‘대왕 세종’의 첫 회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자객들의 궁궐 침입 시퀀스와 유사하다. 이 장면 역시 실제 상황이 아닌 궁궐 내의 훈련 상황이었던 점을 보면, 이런 첫 회의 액션 신들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송 드라마의 첫 회, 방송의 이면을 보다
최근 한 트렌드처럼 등장하고 있는 이른바 ‘방송 드라마’들이 첫 회에서 보여주는 것은 방송의 이면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첫 방에서 남편의 불륜사실을 알게된 앵커가 방송도중 눈물을 흘려 자칫 방송사고가 될 뻔한 상황을 보여준다. 우리가 뉴스를 볼 때 봐왔던 수면 위의 장면들, 그 아래 숨겨진 숨가쁜 발놀림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 아찔한 상황 속에서 서우진(손예진) 기자는 순발력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캐릭터 선보인다.

각종 시상식은 방송 드라마의 볼거리 중 하나이다. ‘온에어’의 첫 회가 시상식의 이면을 잡아내면서 나눠주기식 시상식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그려냈던 것처럼, ‘태양의 여자’는 상해에서 벌어진 아시안TV페스티벌에서 ‘원더우먼쇼’로 상을 받는 아나운서 신도영(김지수)에 대한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 시상식이라는 시퀀스는 일단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장면과 동시에 그 이면이라는 낯선 그림을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점이 있다. ‘태양의 여자’는 이 첫 회를 통해 해외로케와 시상식이라는 볼거리를 보여주면서 앞으로 벌어질 신도영의 상황, 즉 ‘원더우먼’으로서 잘 나가는 아나운서이지만, 무언가 내면적인 문제가 있는 그 정황을 모두 잡아낸다.

첫 회에 대한 집착, 문제는 없나
이 밖에도 가족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대개 문제를 내포한 가족들의 면면을 일상을 훑어가며 보여준다. ‘엄마가 뿔났다’의 첫 회가 영수(신은경)와 종원(류진)이 함께 침대에서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것은 장면 자체가 갖는 시선 끌기의 목적도 있지만 앞으로 벌어질 이 드라마 속의 갈등상황(이 사실을 안 엄마가 뿔나는)을 예고해준다. ‘행복합니다’의 첫 회 장면은 이질적인 두 집안을 병치해서 보여주는데, 준수(이훈)네 집은 침입한 도둑을 쫓는 에피소드로 우스꽝스럽게 연출된 반면, 그와 결혼할 재벌집 서윤(김효진)네 집은 연말을 보내기 위해 홍콩으로 떠나는 화려함을 대비시킨다. 이것은 후에 벌어질 계층 갈등 상황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첫 회에 대한 드라마들의 집착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 속에서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당연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문제점도 양산한다. 최근 월화극에 대한 편성전쟁으로 그 첫 회가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방영되게 된 것은, 바로 이 첫 회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가된다. 게다가 이 초반부에 눈길을 잡아야 승부를 낼 수 있다는 강박관념은 자칫 하이라이트를 너무 앞으로 배치해 중반부터 긴장감이 풀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물론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나올 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초반에 연쇄살인범 장진규 에피소드라는 초강수를 쓰면서 오히려 새로운 에피소드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 즉 하이라이트를 앞으로 빼놓아 드라마 중반이 허전해지는 상황은 최근 드라마의 한 경향처럼 반복되고 있다. ‘일지매’도 초반부 강력한 액션 신으로 한껏 기대를 가지게 되었지만 그만큼 다음 에피소드들의 소소함에 부담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대왕 세종’ 역시 초반의 화려한 볼거리에서 중반의 대사 중심의 정치 이야기로 들어서면서 시청률이 하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대왕 세종’은 이제 대마도 정벌이라는 아이템으로 볼거리를 잡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드라마 첫 회의 법칙’은 분명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드라마의 한 경향으로 자리잡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첫 회에 대한 지나친 집착 또한 드라마에는 독이 될 것이다. 첫 회가 매력적이어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만큼 중반 진행과 후반 마무리도 중요하다는 것이 간과되지는 않아야 한다.

스포트라이트’, ‘일지매’가 본 촛불집회

‘610 민주화 운동’의 21주년이 되었던 6월10일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들. 그리고 단 이틀이 지난 12일 드라마 ‘스포트라이트’에서는 그 집회의 장면들이 삽입되었다. 취재를 위해 현장에 투입된 서우진(손예진)과 이순철(진구)은 그 압도적인 장면에 아연실색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같은 날 방영된 ‘일지매’. 용이(이준기)가 억울하게 붙잡힌 동무, 대식(문지윤)을 구명하기 위해 궁 앞에서 벌이는 에피소드 역시 촛불집회를 패러디했다. 막아서고 있는 담을 넘어 들어가 지붕 위에서 억울함을 외치는 장면이나, 왕 앞에 나간 용이가 “바깥에 억울한 백성들이 매일같이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달라”고 당부하는 장면, 그리고 왕이 “백성들의 억울함을 위해 전면 재수사를 해주기로 했다”고 말하는 장면은 현 촛불집회의 풍경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스포트라이트’같은 경우 드라마 편집에 있어서 후반부에 잠깐 끼워 넣는 것이 무에 어려울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이 장면들은 촛불집회라는 현 시국의 상황이 그만큼 모든 이들의 관심사라는 것을 드라마가 거꾸로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지 드라마가 아주 가까이 있는 현안을 순발력 있게 내용 속에 집어넣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이제 드라마는 급변하는 현실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않으면 자칫 공감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황은 곧바로 사전제작 드라마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진다. 사전제작 드라마로서  ‘사랑해’, ‘비천무’, ‘도쿄 여우비’ 같은 작품들이 잇따라 시청률에서 고배를 마셨던 것은 그 제작시점과 방영시점 사이의 간극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천무’는 이미 4년 전에 제작된 것이고, ‘도쿄 여우비’ 역시 1년 전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사랑해’는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제작되었지만, 역시 시청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그 점에서 패인을 발견할 수 있다. 즉 100% 사전제작 드라마는 거의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의 의견이 올라오고 반영되는 현 시점에서는 이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멋대로 내용이 들쑥날쑥해지고 고무줄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실시간 드라마’가 대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50부가 넘는 장편 드라마들의 경우 시의성과 순발력에 의존하다보면 그 완성도보다는 시청률에 경도되기가 쉽다. 또한 쪽 대본에 대한 부정적인 문제는 이미 ‘왕과 나’에서 사건으로 불거져 나오기도 했고, ‘스포트라이트’의 중간 작가 교체라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사전제작도 실시간 제작도 대안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모범답안 같은 걸 이미 제시했던 드라마가 있다. 그것은 ‘연애시대’다. 애초에 100% 사전 제작 드라마를 표방했으나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 60% 정도를 완성한 상태에서 출발한 ‘연애시대’는 그 공감의 시차를 극복하면서도 끝까지 초기에 잡아놓은 틀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저력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만 일단 현재 반 사전제작 드라마가 유일한 대안이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반 사전제작 드라마에는 반드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드라마가 초기에 취했던 기획의도를 기본 뼈대로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의견은 수렴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본래의 기획의도를 버리는 것은 다시 실시간 드라마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지름길이다. 중요한 것은 기획의도와 다르게 수렴된 의견에 대해서 드라마가 어떻게 시청자들을 설득해나가느냐는 문제다. 이미 환경은 실시간, 쌍방향으로 가고 있고, 어쨌든 한 시기를 흘러가야 하는 드라마로서는 이 변화된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단이 아닌 설득이며, 무조건적인 반영은 아니다.

명품드라마의 조건, 돈이 아닌 작품성

대충 아줌마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직업이나 상황을 재료로, 삼각 사각으로 엮은 멜로를 조리법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조미료로 맛을 내곤 했던 금요 드라마들은, 이제 이 ‘달콤한 프리미엄’의 맛에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 같다. 프리미엄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 조미료 가득한 금요일 밥상 위에, 제대로 된 맛을 선보이고 있는 ‘달콤한 나의 도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무미건조하고 답답하기만 했던 입에 물린 도시라는 재료조차 달콤해진다.

‘드라마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들의 편편들은 저 스스로 자신들의 맛이 최고라고 외친다. 시청자들의 드라마 밥상은 그래서 양적으로는 전라도 백반만큼 풍성해졌지만 그렇다고 젓가락이 모든 반찬들에 가 닿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메인 요리에서 밀려난 어떤 음식들은 재수 없게도 젓가락 한 번 가지 않은 채 물려져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들은 기본적인 맛에 충실하기보다는 일단은 젓가락을 가져가게 하기 위한 자극적인 방식들을 동원하게 되었다.

영화에 ‘5분의 법칙’이 있듯이 드라마에는 이제 ‘첫 회의 법칙’이라는 것이 생겼다. 첫 회에 모든 걸 보여주지 못하면, 그래서 그 입맛을 당기지 못하면 영영 젓가락이 오지 않을 거라는 강박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월화드라마들의 치열한 편성전쟁은 바로 그 첫 회에 ‘올인’하는 드라마들의 처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첫 회에 드라마들은 대부분 화려한 액션 신(사극)을 보여주거나, 해외 로케(멜로 드라마)를 하거나, 긴박한 상황(전문직 장르 드라마)을 연출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렇게 시작한 드라마들이 첫 회 이후에도 그 맛을 계속 보여주는 지는 의문이다.

이런 첫 회에 강박적인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상반되게 ‘달콤한 나의 도시’는 그 첫 회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 드라마는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은수(최강희)가 처한 상황, 즉 옛 애인은 결혼을 하고, 자신은 늘 똑같은 도시의 일상으로 챗바퀴 돌 듯 돌아가는 그 상황을 독백으로 담담하게 시작한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자극적인 영상 대신에, 커피 자판기 앞에서 늘 잔돈이 없다며 돈을 빌려가는 상사에게 ‘이 자판기는 1000원짜리 지폐도 들어간다는 걸 모르는 걸까’하는 식의 공감 가는 대사를 풀어낸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가장 진한 맛이라 할 수 있는 은수의 친구들의 일상들이 그 위에 겹쳐진다. 유희(문정희)나 재인(진재영) 같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꼭 존재하는 매력적이지만 물리지 않는 그 친구들의 세계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바로 이 담담하지만 점점 끌리는 맛을 가진 드라마다. 그것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자극적인 쓰디쓴 도시 생활 속에서의 달콤한 맛을 꿈꾸는 도시인들의 환타지가 조미료 대신 맛을 낸다. 따라서 이 맛은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프리미엄’인 것은 그 촘촘한 구성력과 연출력, 그리고 도시인들의 가슴에 콕콕 박히는 공감 가는 대사들에 공을 들였다는 뜻이다. 그것은 눈과 입과 귀를 먹게 하는 자극적인 맛은 아니지만 공감이라는 특제 조리법으로 조리된 마음을 열게 하는 맛이다. 금요일의 드라마 밥상이 그만큼 더 기다려지는 것은 매일 매일 반복되는 자극적인 밥맛에 입이 물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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