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웃 같은 작가, 정지우

금요일 저녁, 도무지 금요드라마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드라마가 있었다. 정지우 작가를 주목하게 된 작품, ‘내 사랑 못난이’다. 이 드라마는 성인극과 가족극을 오가던 금요드라마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로 승부해 놀랄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그런 그녀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후 완벽한 이웃)’을 들고 우리 옆을 찾아왔다.

‘완벽한 이웃’은 여러모로 ‘내 사랑 못난이’의 연장선상에서 읽혀진다. 멜로 라인이 강하게 어필하면서도 그 속에 점점이 박혀있는 보석 같은 우정이나 정 같은 사람관계들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 사랑 못난이’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번 작품을 통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늘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웃 같은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는 완벽한 이웃 같은 작가, 정지우씨를 만났다.

‘완벽한 이웃’은 멜로로 시작하지 않았다
- 지난 번, ‘내 사랑 못난이’의 결말 부분이 의외였다는 반응에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것 같다. 드라마는 때론 의외의 방향으로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인데.
▲ 본래 동주(박상민)와 차연(김지영)의 멜로 라인은 의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호태(김유석)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시청자 분들이 호감을 갖고 봐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동주와 차연 쪽에 더 무게중심이 가게 됐다. 그래서 결말부분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갖게 된 거 같다.

- 호태란 캐릭터는 어쩌면 정지우 작가가 갖는 독특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보통 멜로 드라마를 보면 남녀의 연애관계로 많이 흐르는데 호태라는 인물은 의리나 우정 측면이 강한 캐릭터로 차연과 관계를 갖는다. 이 부분이 시청자분들에게는 좀 낯설게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것과 연관지어 ‘완벽한 이웃’에서는 이웃을 들고 온 것이 특이하다. 멜로 드라마라면 역시 낯선 소재인데.
▲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멜로 드라마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지금 사람들은 혈육이 아니면 이웃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캐보자 하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부분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 아니 사실 초반부에 거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는 ‘내 사랑 못난이’에서 못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초반부에 휴먼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차츰 멜로 라인이 생기면서 유준석(박시후)과 정윤희(배두나)가 엮어 가는 멜로드라마로 가고 있다. 초기 하고싶은 얘기가 이웃에 관한 것이었다면 사실 멜로 라인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았나.
▲ 유준석과 백수찬(김승우)이란 캐릭터를 부딪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유준석을 통해서는 지금까지 여타의 드라마에서 있었던 돈 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깨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모든 멜로는 로망이고 동화다.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현실을 가미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 ‘세컨드 제안’이었다. 돈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 쉽게 아무 것도 아닌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세컨드 제안을 하는 재벌2세의 모습은 어떨까로 인물을 처음부터 잡았다. 그것이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에게도 분명히 어떤 변명거리는 있다.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이나 빈부가 맞닿는 멜로 관계에 더 열광하는 것 같다. ‘내 사랑 못난이’에서의 신동주와 진차연, ‘완벽한 이웃’의 유준석과 정윤희 같은 관계가 더 각광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멜로 라인보다는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는 백수찬은 괜찮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호태 비슷한 느낌으로 빠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가 달라지면서 너무 멜로, 연애가 강조되면 트렌디 드라마다 하면서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다른 성격의 캐릭터들은 어떤 균형감각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 그런 점도 있다. 백수찬과 호태란 인물은 앞으로 쓸 다른 드라마에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우정이라는 이름이지만 그것이 사랑 관계에서는 더 소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느 땐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줄지 모른다는 짝사랑으로 늘 제시할 것이고, 또 유준석이나 신동주 같은 상처받은 있는 자들의 이야기도 늘 가져가게 될 것이다.

멜로에는 비관적, 우정에는 낙관적?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를 보면 멜로에 있어서는 비관적인 시선, 우정에 있어서는 낙관적인 시선이 읽혀진다. 정윤희와 백수찬의 우정이 밝은 반면, 정윤희와 유준석의 애정은 어둡다. 이것은 ‘내 사랑 못난이’에서의 진차연과 호태, 신동주의 관계와도 유사한데 이런 시선은 작가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반영된 것인가.
▲ 그렇다. 호태라는 인물은 모자라지만 타인을 위해서는 다 던진다. 백수찬이란 인물은 조금 틀리다. 제비로 살다가 어느 순간 변해 가는 데 그것이 여자 캐릭터에 의해서다. 호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늘 따뜻함을 주는 캐릭터로 별거 아니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늘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그래서 ‘내 사랑 못난이’에서 호태를 버리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다른 누구와 결혼해도 평생 가슴에 기억을 묻고 다녀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함께 가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못난 이와 잘난 이의 대결구도가 많이 보이는데 애착을 양쪽에 모두 두고 있어서 그런지 그 화학반응이 따뜻하다. 많은 걸 갖고 있지만 또한 부족한 면을 가진 인간이란 측면을 건드리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준석 아버지나 ‘내 사랑 못난이’의 조옥자 여사가 가진 캐릭터, 그리고 꼭 등장하는 부성애 혹은 모성애. 이런 걸 보면 이건 멜로 드라마의 구조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멜로에 대한 요구가 큰 이유는 무얼까.
▲ 아무래도 갖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 같다. 이번에도 유준석 캐릭터를 제시하면서 물론 어떤 상처를 가진 사람 이야기를 하려 의도했지만, 시청자분들이 그 멜로 부분에 많이 쏠린다는 건, 자신들이 가진 욕망을 대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런 부분은 백수찬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리고 현실적으로 더 좋은 길인데 뭐 어때’하는 욕망. 그 부분이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 만약에 멜로가 아닌 사람다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아예 애초부터 멜로 라인을 빼고 가는 건 어땠을 것 같나.
▲ 기본적으로 멜로가 좋다. 본질적으로는 멜로가 하고 싶은데 거기에 인간적인 냄새가 들어있는 멜로를 하고 싶다.

- 이 드라마에는 멜로와 함께 미스테리도 섞여 있는데 거기서 얻어지는 드라마의 이득이 있나.
▲ 별로 없다. 다만 관계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그랬다. 연수연이란 캐릭터가 살인사건과 연관지어 등장하는데, 이것은 부부 관계에서 삐걱거렸을 때 존중하지 않는 관계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져가기 위한 설정이었다. 엉성한 미스테리지만 포기가 안되더라.

- 엉성하다 하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이게 기능을 했다. 초반부에 흩어지는 캐릭터를 모아주는 역할도 하고 긴장도가 떨어지는 소소한 얘기에서 극을 긴장하게 해주는 맛도 있었다.
▲ 그건 의도했지만 사실 의도대로 잘 먹히지는 않는 것 같다.(웃음)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 그 이유
- 완벽한 이웃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본인은 완벽한 이웃이 뭐라 생각하나
▲ 제비의 전적을 갖고 있는 백수찬이 이런 얘길 한다. “전에 만난 여자는 지금 현재 여자 앞에서는 동네 수퍼 아줌마보다도 못한 존재다.” 이것이 완벽한 이웃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네 앞에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지금 백수찬을 비롯해 다른 가정들의 인물들도 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그들을 보면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다. 즉 현재 맞대고 있는 주변사람들에게 충실한 사람을 완벽한 이웃이라 생각한다.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는 사람냄새 난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느낌이 그런 이야기를 나오게 하는 걸까.
▲ 모든 작가들의 작품은 사람냄새가 있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열정이 있기 때문에 작업에 뛰어든다. 나보다 앞서 많은 작가 분들이 그런 얘길 해왔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 같은 분들을 존경한다. 그런 얘기가 공감이 되고 용기가 있다 생각한다. 제 입장은 그런 연장선에 있지만 어떤 면을 확 부각시키는데 있어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차라리 용기가 더 있다면 백수찬이란 인물을 갖고 더 드라마를 끌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소녀취향이다 보니까 유준석 캐릭터에 나도 매력을 더 느끼고, 멜로 대사에 있어 감성적인 부분들을 많이 만들게 된다. 이런 복합적인 부분들이 얽혀서 사람냄새 난다는 얘길 하는 것이지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 영화로 치면 ‘스모크’ 같은 느낌을 가도 괜찮을 거 같다 생각한다. 멜로가 아니어도 정감을 주는 여러 관계들, 예를 들면 남자와 남자 간의 의리나, 부모 자식 같은 관계, 아니면 지나가는 어떤 인물에 대한 정 같은 걸 보여줘도 좋지 않을까. 그런 작품은 혹시 생각하고 있는 건 없는지.
▲ 그런 작품은 늘 생각한다. 다음 작품에는 백수찬이나 호태 같은 캐릭터가 다른 모습으로 어떻게 더 사람들에게 정을 느끼게 해줄까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돈 갖고 예술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을 써봤고 데뷔도 해봤는데, 소설은 써서 출판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때는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를 쓰면서는 이건 남의 돈이고 자본이 돌아가는 시장이기 때문에 내 얘기만 지루하게 늘어놓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늘 강하다.

- 소설과 드라마는 어떤 차이가 있나.
▲ 소설은 전적으로 작가의 작품으로 자기의 세계관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주책스러울 정도로 수다를 떨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은데, 드라마는 공동작업이라는 걸 많이 느낀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향을 일으키는 게 있고, 내가 쓴 느낌과 다르게 연기자가 해석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낀다.

백수찬의 이야기를 좀더 들려주고 싶다
- 게시판에 본인도 결말이 궁금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지난번 ‘내 사랑 못난이’의 결말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사실 드라마는 어디로 튈지 모를 공처럼 갈 순 없는 게 아닐까. 요즘 사전 제작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최소한 사전 대본이라도.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장단점이 둘 다 있다. 사전 제작 좋다. 하지만 작가 역시도 그게 공동작업이다 보니 내 대본이 감독이나 연기자에게 어떻게 소화될지 모른다. 다 써놓고 한다는 것은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역시 장점도 있지만 그런 단점도 있는 거 같다. 어떤 면에서 사전 제작은 스스로 미리 만들어놓은 대본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때론 본 방송을 보면서 그런 감을 잡을 때가 많다. 이번 경우에는 한 3, 4회를 보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다. 그것은 백수찬이란 인물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백수찬이란 인물이 조금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를 보호할까, 또 백수찬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 듣게 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백수찬이 시선을 받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같은 것이다. 이런 걸 고민하다 어느 정도는 방향성을 정하게 됐다.

- 백수찬을 주목시키려면 강한 유준석 캐릭터를 좀 약화시킬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 나도 여자다 보니까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면서 쓰게 된다. 따라서 유준석이란 캐릭터는 백수찬과 비교해서 보다 남성적이고 매력 있다는 걸 인정한다. 굳이 유준석의 캐릭터를 약하게 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유준석은 겉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부족한 캐릭터다. 그래서 약간의 성장 드라마의 요소를 가져가자 생각했다. 즉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가 하는 걸 가족 속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윤희라는 가족 속에 들어왔을 때 갖는 어떤 편안함 같은 것을 통해서 유준석은 변화해나갈 것이다.

- 정미희와 양덕길의 관계가 궁금하다.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가 이 드라마의 장점이다. 환타지의 요소가 있는데 캐릭터를 봤을 때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존재했으면 싶은 그런 사람들인 거 같다.
▲ 이 드라마에는 현실적인 인물이 거의 없다. 다 극대화되어 있고 어떤 부분들만 포장이 되어 있는 캐릭터들이다. 양덕길은 현실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캐릭터다. 아무리 농촌총각이라 해도 그토록 순박하고 헌신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정미희도 마찬가지다. 세 번 이혼하고도 제비한테 목매는 이상한 캐릭터다. 그게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거 같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 앞으로 쓰고 싶은 드라마는?
▲ 나는 여러 장르, 사극 같은 것도 하고 싶고 진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나이 들어서는 특집극만을 전문으로 쓰는 그런 작가로 남고 싶다. 일일 드라마는 너무 많이 써봤다. 아직은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실험적인 걸 하고 싶다. 일일 드라마는 아마도 제일 잘 만든 장르일 것이다. 특히 저녁시간대에 가족드라마 성격을 가진 일일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 보통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부분이 내 성격적으로 맞을 수는 있지만 빨리 눌러 앉고 싶진 않다.

- 작가로서 제일 어려운 점은.
▲ 조율이다. 특히 이번 드라마를 쓰면서 능력의 한계에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가져왔는데 그게 전부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드라마에는 의처증, 애처가, 아내에 관심 없는 남자 같이 많은 남자들이 나오는데 한 신이라도 나올 때 그걸 다 얘기해야 한다. 멜로를 그리면서도 이들을 같이 가져가는 것에 항상 힘들고 한계를 느낀다.

- 시청자와의 조율은 어떤가.
▲ 시청자는 제일 무섭다. 조금 얘기했음에도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내가 드라마를 통해 이렇게 얘기했지만 너무 여기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계속 가져갈 건지.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소아마비를 가진 약자이기에 그렇다. 사범대를 나왔지만 교육공무원이 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건 참 불합리하다 생각했다. 나 같은 경우는 그래도 교육의 기회를 많이 받았고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가질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차단되어있는 분들이 많다.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약자라는 삶을 살아오다 보니까 그런 쪽으로 당연히 시각이 가게 된다.

- 그런 부분이 분노보다는 사랑으로 많이 승화되어 나오는 거 같다.
▲ 분노한 시기도 있다. 어렸을 때는 좌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복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사람들과 만나면서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날 공정하게 대우해주고 인정해주는 것들이 받아들여질 때 고맙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너무나 감사한 것이 사회적인 약자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황금시간대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분노로 터뜨리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인터뷰를 통해 느낀 정지우 작가는 본인이 써온 드라마들, 즉 ‘내 사랑 못난이’, ‘완벽한 이웃’을 고스란히 닮은 작가였다. 그렇게 세련된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 질박함이 보면 볼수록 자꾸만 보고싶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처럼, 작가 역시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짙은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그런 인물이었다. 아직 ‘완벽한 이웃’의 결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적어도 우리는 그 끝에서 완벽한 이웃 같은 따뜻한 드라마 한 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늘.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는 한.

자매애로 보여지는 동지의식

참 이상한 일이다. 인터넷사전에 ‘형제애’라고 치면 ‘형이나 아우 또는 동기(同氣)에 대한 사랑’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반면, 왜 ‘자매애’라는 단어는 없는 것일까. 신데렐라와 못된 언니들 혹은 콩쥐와 팥쥐 같은 고전들 속 캐릭터들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틀에 박힌 텍스트 공식들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하지만 드라마들은 꽤 여러 번 자매애의 가능성을 포착한 바 있다. ‘여우야 뭐하니’의 병희(고현정)와 준희(김은주), ‘연애시대’의 은호(손예진)와 지호(이하나), ‘내 남자의 여자’의 지수(배종옥)와 은수(하유미)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자매애는 모두 늘 만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한이라는 듯 으르렁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사실은 서로를 깊이 배려하고 있는 속내를 내보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렇게 자매들이 드라마 속에서 서로 의견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여성들의 서로 다른 입장(애정관, 결혼관 등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자 캐릭터들의 개성은 더 살리고, 공감의 폭은 더 넓어진다. 재미있는 것은 애정관, 결혼관이 달라 싸우던 이들이 결국에는 자매라는 끈으로 묶여지면서 묘한 동지의식을 끌어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여성들의 연대의식 같은 것이다. 그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는 건 역시 ‘내 남자의 여자’의 지수와 은수다.

“이런 언니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들의 자매애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연대의식 속에서 피어났다. 이 드라마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자체가 추구하는 것이 멜로가 아닌, 결혼제도나 남녀문제 같은 사회성 짙은 메시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여우야 뭐하니’나 ‘연애시대’ 역시 기존 관습에 던지는 사회성 짙은 질문들이 있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여우야 뭐하니’가 사회 통념으로 생각되는 나이와 결혼의 문제에 있어서 병희와 준희란 캐릭터를 통해 연령차를 극복하려 했다면, ‘연애시대’는 은호와 지호를 통해 결혼이란 사회적 관습에 연애라는 잣대를 들고 질문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멜로가 가진 틀이 강했기에 ‘내 남자의 여자’처럼 그것이 전면에 부각되진 않았지만 그 속에서 이들 자매들이 보여주는 은근한 서로에 대한 애정은 바로 이런 동일한 적(?)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매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자매들 간의 동지의식이 드라마 자체로 드러나는 캐릭터들이 있다. 그것은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와 영채다. 둘은 서로 다른 외모로 똑같은 외모지상주의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비슷한 결론에 다다른다. 막돼먹은 영애씨가 살기 어려운 만큼, 잘 빠진 영채씨의 삶도 어렵다는 것. 결국 이 드라마는 이 둘의 대비와 거기서 얻어지는 한 가지 결론, 즉 ‘이 사회에서 여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영애와 영채가 굳이 자매애를 강조하지 않아도 한 가닥의 끈으로 연결되는 것은 그들이 이 시대를 사는 여성이라는 동지의식이다.

멜로 드라마들이 보여주었던 연애에 시청자들이 식상해했던 것은 어쩌면 그 연애 밑바닥에 공유되어 있는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이나 사회체계에 더 이상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여성들에게 참신하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아예 남성중심의 사고방식을 제거해버린 여성들만의 환타지(커피 프린스 1호점)를 그리거나, 그런 사고방식과 싸우는 여성들의 이야기(막돼먹은 영애씨)가 유리하다. 만일 드라마 속 자매들의 끈끈한 정에 마음을 빼앗겼거나, 자매들이 좀더 자매애를 보여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도 그들과 한때 암묵적인 동지였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시대, 연애보다 애틋한 것은 어쩌면 자매애다.

‘왕과 나’, 왕이 아닌 나의 이야기

‘왕과 나’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기존 왕조 중심의 사극과는 달리 ‘왕’과 ‘나’를 동등한 위치에 놓거나, 혹은 ‘나’에게 더 방점을 찍어두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시점에 따라 사건은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에서 ‘왕과 나’의 재미는 바로 이 뒤집어 놓은 시점에서부터 비롯된다. 왕이 아닌 나의 이야기, 혹은 왕과 대척점에 선 나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더 이상 권위주의 시대가 아닌 현재의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나의 시점을 반영한 사극들
“내시는 사람도 아니란 말이냐. 내시에게 사람이길 포기하라 명하시니 내 그 어명을 받들 것이다.” 내시부를 혁파하기 위해 예종이 금혼령을 내리자 그 수장인 조치겸(전광렬)이 분노하며 하는 이 말은 왕의 뜻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이른바 선전포고인 셈이다. 한술 더 떠서 조치겸이 대전 앞에서 시위를 한다고 하자, 그의 양부인 노내시(신구)는 통쾌한 듯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암 누가 궁궐의 주인인지 똑똑히 보여줘야 하느니라.” 이런 대사들은 ‘나’의 시점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이런 밑으로부터의 시점은 왕조 중심의 사극이 막을 내리고 퓨전사극이 등장하면서 태동해왔던 것들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모’의 채옥을, ‘대장금’의 장금이를, ‘상도’의 임상옥 같은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 뿐만이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해신’의 장보고나 ‘불멸의 이순신’에서의 이순신, 그리고 심지어는 ‘주몽’의 주몽까지 모두 그 시점은 낮은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할 것이다. 즉 장보고는 당나라의 노예로 팔려가고, 이순신은 역모죄로 몰락한 양반집 자제로 차별을 겪는다. 주몽은 대소와 영포 왕자 아래에서 철부지 왕자로서 시작한다.

이렇게 주인공을 낮은 시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사극이 기본적으로 성장드라마를 갖고 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시대의 감수성이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즉 시청자들은 권위주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태생적으로 무소불위한 왕 혹은 영웅에 매료되기보다는, 좀더 자수성가한 영웅,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영웅을 요구한다. 이제 신화적인 존재를 신화로서 그리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공감을 주지 못한다.

상승한 나와 하강한 왕의 줄다리기
그런 면에서 ‘왕과 나’는 바로 이 낮은 시점의 재미를 극대화한 사극이라 할 것이다. 한쪽에서는 나인 김처선(오만석)의 성장드라마가 흘러가고, 또 한 편에서는 왕의 인간드라마가 흘러나오는 이 사극은 나의 상승과 왕의 하강이 서로 만나 부딪치는 극적 구조를 갖고 있다. 거기에 윤소화(구혜선)라는 여자가 왕과 나의 줄다리기의 정 중앙에 서게 되면서 상황을 더 극적으로 만든다. 즉 신분으로서의 나는 왕을 모시고 그 왕에게 사랑하는 여자의 합궁을 도와야 하는 존재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왕의 여자를 사랑하는 상황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참 후의 일이나 김처선의 어린 시절이 그려지고 있는 현재 그 관계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처선(주민수)과 소화(박보영) 그리고 자을산군(유승호)은 물론 신분차이는 있지만 신분과 위치를 넘어선 오누이 혹은 친구의 관계를 보여준다. 신분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맺어진 이런 관계는 후에 신분 관계로 엮이면서 세 인물 모두에게 상처를 줄 것이 분명하다. 이 사극이 그저 퓨전이니 정통이니를 벗어나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적인 인간의 운명을 다룰 가능성이 보이는 부분이다.

도저히 아역이라 할 수 없는 존재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주민수, 박보영, 유승호, 그리고 저 ‘주몽’에서 주몽을 키워주고 후에는 대결구도에 서게된 금와의 역할을 고스란히 이어서 하게 된 조치겸 역의 전광렬이 보여주는 카리스마는 모두 성장한 후 신분과 관계로 환원될 드라마에 결정적인 힘을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

왕보다는 나의 이야기에 더 주목하게 되는 ‘왕과 나’는 제목에서부터 현대의 개인주의적 가치를 심어놓았다. 요컨대 이 드라마는 ‘왕과 김처선’이 아닌 ‘왕과 나’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김처선의 여러 면모들 속에서 각자 ‘나’에 해당하는 모습을 찾아내는 재미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김처선이란 인물에 감정이입만 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극에 있어서 왕의 시대가 가고 이른바 ‘나’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며느리 전성시대’ vs ‘황금신부’

주말드라마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시즌의 변화다. 여름 휴가 시즌이 지나면서 주말 시간대 시청자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것. 하지만 아무리 시즌이 달라져도 돌아온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놓을 컨텐츠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때마침 시작해 주말극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며느리 전성시대’와 지루했던 투병(?) 이야기를 지나 베트남 신부, ‘진주(이영아)의 친부 찾기’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황금신부’가 그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며느리 전성시대’가 갖는 의미는 가장 크다 할 것이다. 전통적인 주말드라마가 가진 가족드라마의 성격을 온전히 회복시킨 이 드라마는 고전적인 소재이면서도 시대를 넘어 먹히는 ‘서로 다른 양가집의 결혼이야기’를 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저 ‘사랑이 뭐길래’의 변주처럼 보인다. 보수적인 대발이 아버지(이순재) 대신 오향심 여사(김을동)가, 현모양처에 가끔 반항적 행동을 하는 어머니(김혜자) 대신 서미순(윤여정)이, 신부와 집안 양측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발이(최민수) 대신 복수(김지훈)가, 톡톡 튀는 개방적인 아내(하희라) 대신 미진(이수경)이 포진해 결혼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보수적인 아버지 대신 보수적인 시어머니를 집어넣어 요즘 달라지고 있는 고부 관계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전 세대에 걸쳐 공감을 자아내게 마련인 결혼이란 이벤트 아래 벌어지는 고전적인 스토리에, 현대적인 변주가 힘을 발하는 이유다. 혹자들은 식상하다 할 것이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잘 먹히는 결혼소재는 결혼을 해야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거기에 얽힌 양가집 사람들의 관계가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의 시청층이 결혼이란 대사를 치른 사람이거나, 곧 치를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그 공감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결혼이란 시대불문, 관심을 가질 가족의 이벤트라는 것이다.

반면 ‘황금신부’가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너무나 변화무쌍하다. 처음 라이따이한의 소재를 잡은 시작은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가진 드라마였는데, 차츰 전통적인 멜로드라마로 흘렀다. 지영(최여진)에게 배신당한 준우(송창의)가 공황장애를 겪고 이를 사랑으로 지켜낸다는 진주의 이야기가 전통적인 신파의 구조로 그려졌다. 중요한 것은 신파가 먹히지 않는 달라진 지금의 현실에서, 그 공감대를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베트남 신부를 데려왔다는 점이다. 순애보 같은 이야기는 이제 우리에게는 도시는 물론이고 시골처자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공감되지 않는 현실과는 별개로 전통적인 순애보와 신파를 원하는 보수적인 시청층이 존재한다는 점. ‘황금신부’는 베트남 신부를 통해 그 부분을 공략한 결과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현재 ‘황금신부’는 이 순애보적 이야기에 가족극으로서의 훈훈한 이야기를 섞는 반면, 동시에 ‘출생의 비밀’이라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여러모로 이 드라마는 베트남 신부라는 설정 하나로 과거의 신파 드라마가 갖는 파괴력을 끌어 모으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신파라면 어떨까. 여전히 거기에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는 층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며느리 전성시대’와 ‘황금신부’는 어떤 면으로든 주말 드라마의 위기의식에서 생겨난 퇴행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도 나름의 현대적인 공감의 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며느리 전성시대’가 가진 새로운 고부 관계의 틀과, ‘황금신부’가 가진 순애보가 사라진 시대의 다국적 사랑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단순히 구닥다리라 여기며 비판만 할 일이 아니다. 모든 드라마가 잣대를 젊은 층의 시선에만 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 전통적인 드라마들이 여름 시즌을 지나 돌아오고 있는 시청자들을 온전히 안아줄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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