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커프’

그동안 드라마 속의 여성 캐릭터들이 진화를 거듭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현실이라는 축이 존재했다. 그들은 남성들의 낙점을 기다리던 수동적인 신데렐라에서 차츰 씩씩하고 생활력 강한 능동적인 존재로 변모해왔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남성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나이가 되기도 했고(‘여우야 뭐하니’, ‘올드미스 다이어리’ 등등), 촌스러운 이름이나 여성스럽지 않은 외모와 내면(‘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이 되기도 했다. 물론 빈부의 차이나, 태생의 문제는 대부분의 트렌디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그것들은 형태만 달랐지 결국 모두 남성성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무엇이 여성들을 꿈꾸게 했나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이들 남성성의 그늘(제도) 안에서 꿈꾸던 여성시청자들을 오롯이 여성 자신에 집중시키면서 꿈꾸게 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성들이 꿈꾸는 곳이다. 그곳에는 저 트렌디 드라마에서 아직 왕도 되지 않은 왕자가 왕처럼 권위적인 폼을 잡는 그런 얼치기 왕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빈부, 사회적 위치, 나이, 외모, 심지어는 성별까지 그 어느 것도 편견이나 선입견이 존재하지 않는 무균질 순수의 왕자들이 그 곳에는 소년처럼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기초 얼개는 그러니까 이 여성들을 꿈꾸게 만드는 왕자들이 존재하는 카페 공간이 된다. 그 곳을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이 기웃거린다. 그녀는 사실상 현실 사회에서라면 가질 수 있는 모든 편견을 짊어진 여성 캐릭터. 번듯한 집안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며, 외모가 출중한 것도 아니고, 성격이 여성스러운 것도 아닌 이 여성은 그러나 남장을 하는 순간, 그 모든 편견이 사라진다. ‘남자니까’라는 한 마디로 해결되는 이 상황은 정확히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남장을 시키면서까지 뒤집고 싶은 대상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이 남장여자가 들어간 ‘커피 프린스 1호점’ 역시 작가의 욕망이 투사된 공간이다. 편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왕자들로 가득한 이 곳은 따라서 여성들의 꿈의 공간이 된다. 현실에서 가장 낮게 취급되던 캐릭터가 모든 것을 꿈꾸고 이룰 수 있는 공간이 그곳이니까. 가족을 부양하는 일로 꿈 자체가 ‘엄마와 동생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던 이 소녀는 바리스타라는 그 이상의 꿈을 갖게된다. 최한결(공유)이라는 잘 생기고, 예의바르고, 능력 있고, 부자이면서도 라면은 냄비뚜껑에 먹어야 제 맛이라는 걸 알 정도로 털털한 왕자가 자신을 (남자라고 오인하면서도) 사랑하게 된다. 무엇보다 멋진 건, 하나 하나가 다 왕자의 면면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다.

일과 사랑이라는 두 마리 토끼
은찬이 여자라는 게 드러난 이후 드라마는 조금 긴장감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이 후반부야말로 이 드라마의 의미를 더 깊게 해주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청춘 멜로 드라마들이 사랑의 결실과 함께 끝나는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이 부분에서 일을 끄집어낸다. 일과 사랑이라는 현실적인 부딪침을 그러나 드라마는 역시 여성들이 꿈꾸는 방향으로 틀어간다. 한결이란 왕자는 은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네가 뭔가를 포기하게 되는 건 싫어.” 이 말은 정확히 지금 현재의 워킹우먼들이 희구하는 꿈을 찍어낸다.

한결-은찬 라인과 동시에 움직이던 한성(이선균)-유주(채정안)라인은 애초부터 이 부분을 건드려왔다. 일과 사랑은 현대 여성들이 이루고 싶은 두 마리 토끼다. 현실은 그 두 토끼를 잡는 것을 그리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으며 거기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배우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말은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하므로 구속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결이 은찬을 배려해서 하는 말들은, 수퍼우먼, 알파걸이 되길 강요하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일하는 여성들에게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여성들의 로맨스를 제대로 찍어낸 이정아란 작가의 공력과 더불어, 여성성이 가득한 캐릭터들, 갖고 싶게 만드는 소품들과 집들, 찾아가서 꼭 마셔보고 싶은 카페의 커피들, 그런 것들을 맛깔 나게 배치하고 연출해내는 이윤정이란 여성 PD의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솜씨, 그 안에서 실컷 웃고 울면서 즐겁게 놀아준 연기자들. 이 모든 것이 버무려져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여성들을 꿈꾸게 한 드라마가 되었다. 그것이 한 때 환타지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최소한 꿈꾸게 만들었다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그만큼의 변화를 담보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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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프’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니다

‘동성애’란 금기의 단어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타고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일부에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마치 동성애 드라마나 되는 듯이 여기면서, 우리 사회가 터부시하던 ‘동성애’에 대해 이제 관대해졌다는 섣부른 관측을 하기도 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분명 장치로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를 동성애 드라마라 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다. 

헐리우드발 감동의 휴먼 드라마, ‘브로크백 마운틴’, 최근 게이 커플이 등장했던 ‘후회하지 않아’는 동성애 영화다. 이 영화들은 그 기본설정 자체가 동성의 커플의 애틋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다만 동성애를 다루는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를 통해 인간애를 보여줬다면, ‘후회하지 않아’는 바로 그 동성애라는 자체에 집중하면서 존재와 계급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영화다.

모두 좋은 영화지만 이 두 영화는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주류영화 속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동성애라는 금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왕의 남자’를 두고 동성애라는 금기의 벽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왕의 남자’의 성공은 예술과 권력 사이에서의 멋진 줄타기를 보여줬기 때문이지, 공길과 장생이 서로를 바라보는 애틋한 동성애 감정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동성애를 가로막는 사회적 제약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성애 영화가 그렇게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금기와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그런 면이 부각되지 않는 ‘왕의 남자’를 동성애 영화라 부르는 것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는 컨텐츠들은 과거부터 늘 마이너 문화였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성공한 이유는 그것이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찬(윤은혜)이 자신이 사실은 여자였다고 밝히는 순간, 드라마가 재미없어졌다 느껴지는 것은 동성애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재미의 핵심요소였던 동성애 코드가 빠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도 알고 극중 인물들도 아는 남장여자를, 자신만 남자라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이 정도로 사랑한다!)는 한결(공유)이 사랑스러운 것이지, 한결이 모든 사회적 억압의 틀에도 불구하고 실제 남자를 사랑해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소위 말해 ‘동성애 코드’를 멜로의 장치로서 활용하고 있을 뿐, 동성애 드라마는 아니다. 즉 동성애 소재 컨텐츠와 동성애 코드는 오인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동성애 코드는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류 컨텐츠 속에 이미 훌륭한 장치로서 활용된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왕의 남자’가 될 것이다. ‘왕의 남자’가 왕과 장생, 공길 사이의 치정극이 되지 않고 예술가들의 고뇌와 권력의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동성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국민의 4분의 1이 ‘왕의 남자’ 속에 등장하는 동성애를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남사당패의 역할놀이(남녀 구분이 없다)가 갖는 예술적인 승화가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가 애초에 남녀 관계 설정을 버리고 매니저와 한물 간 스타의 남남 관계로 재구성된 것은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동성애 코드는 종종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남녀 관계의 멜로 틀을 벗어 던지기 위한 장치로서도 활용된다.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의리나 우정이 더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동성애 코드는 또한 작품의 조미료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주몽’ 같은 남성적인 느낌의 드라마에서도 협보(임대호)와 사용(배수빈)의 동성애 코드가 쓰인 것은 그 설정이 갖는 코믹적 요소와 화제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발칙한 여자들’에서 상미(사강)의 남편 지환(장동직)이 동성애자라는 설정 역시 드라마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멜로의 재미를 주기 위한 동성애 코드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남장여자란 캐릭터와 금녀의 공간으로서의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동성애 코드에는 종종 남장여자 같은 털털한 이미지의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여성성으로 억압되던 과거의 캐릭터들에 대한 혐오가 그 출발점이 된다. 소위 말해 예쁜 척 하는(혹은 해야만 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 현대여성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즉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바로 여성들의 사회적 발언권이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나가는 현 세태의 공감 가는 캐릭터를 창출하는 차원에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면이 있다.

또한 남장여자 같은 중성적 캐릭터의 매력과 더해져 효과를 보고 있는 장치는, 이 캐릭터가 ‘금녀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억압하는 존재로서 섞이기 어려웠던 남성들 사회에 들어가, 연애나 애정관계가 아닌 (남성과의) 동지관계나 의리를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짜릿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동성애 코드와 항시 같이 미소년들이 등장하는 것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하려는 남성으로서 미소년은 언제나 환타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남성 선택은 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팬시적이고 환타지적인 면이 더 강하다.

‘커피 프린스 1호점’를 비롯한 최근의 동성애 코드는 달라지고 있는 남성-여성의 관계까지를 함의하고 있다. 그것은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이고 해방적인 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똑같은 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환타지지만, 그만큼 남녀 관계에서의 비뚤어진 수직구조들을 벗어나려는 강력한 욕망의 발현으로 읽혀진다. 이들 동성애 코드의 드라마들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 같은 인간애의 성격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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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드라마의 진화, 주말드라마의 퇴화

도대체 등장인물이 몇 명이나 되는 걸까. 주말드라마들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코너를 보면 SBS의 ‘황금신부’와 KBS의 ‘며느리 전성시대’는 모두 18명이, MBC에서 새로 시작하는 ‘깍두기’는 무려 19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이러다가는 심지어 한 회에 등장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나올 지경. 주말드라마들은 왜 일제히 인해전술(?)을 쓰기 시작한 걸까.

그 해답은 바로 가족드라마에 있다. 주말드라마는 그 특성상 어떤 식으로든 가족드라마를 표방하기 마련. SBS의 ‘하늘이시여’나 MBC의 ‘누나’, ‘문희’는 물론 ‘진짜 진짜 좋아해’, ‘결혼합시다’ 등도 트렌디와 멜로를 넘나들지만 여전히 그 틀은 가족드라마 안에 있었다. 물론 KBS의 주말드라마는 그 공영성으로 인해 본래부터 가족드라마를 표방해 온 이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는 주말의 가족드라마는 과거의 그것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족드라마라는 테두리 안에서 몇몇 주인공들이 엮어나가는 극적인 스토리를 보이던 과거의 주말드라마는 이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각각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일일드라마의 확장판 같은 느낌을 같게 된 것이다.

KBS의 ‘며느리 전성시대’는 이 전형적인 KBS 일일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SBS는 거의 가족드라마와는 거리가 먼 드라마들을 만들어왔지만 ‘황금신부’를 통해 그걸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 시작하는 MBC의 ‘깍두기’는 가족 군상의 규모를 더 넓혀 더 다양한 인물들을 그 틀에 잡아 두고 있다.

이렇게 가족드라마의 구성원들이 양적인 팽창을 이룬 것은 그만큼 다원화된 사회를 반영하는 점도 있지만, 실상은 좀더 안전하게 드라마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한두 명의 주인공에 집중되어 흘러가는 가족드라마는 그만큼 위험성도 큰 법이다. 따라서 인해전술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들 가족드라마 속에는 다양한 안전판들이 심어진다. 고전적인 가족드라마의 신파 구조는 물론이고, 청춘물이 갖는 멜로드라마에 심지어는 성인드라마의 불륜까지.

그런 안전판들은 시청률과 조율해가면서 언제든 드라마의 중심으로 부각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드라마를 애초에 표방했던 ‘행복한 여자’가 갑자기 복잡한 논란드라마의 형태로 변모하면서 전혀 행복하지 않은 여자의 이야기로 간 것은 시청률과 관련하여 드라마가 타협한 결과이다. 애초에 준비된 안전판은 이렇게 활용되고, 그것은 드라마의 애초 의도를 흐려놓지만 최소한 시청률에 있어서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이런 식으로 보면 현재의 가족드라마는 드라마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형태로 자칫 색깔 없는 드라마라는 섣부른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종합선물 세트가 갖는 힘은 대단하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엮어내는 복잡한 가족관계는 사실 압축적이고 긴박한 구조의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는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일일드라마에 익숙한 고정 시청층(주로 중장년층)이라면 다르다. 관계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그들에게 더 복잡해진 가족관계는 가족드라마의 진화로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이들 가족드라마들이 잡아내는 메시지는 일일드라마의 그것보다 좀더 구체적이다. 라이따이한이 등장하는 ‘황금신부’는 SBS 특유의 사회적인 시각이 접목된 가족드라마라 볼 수 있으며, ‘며느리 전성시대’는 현재 달라지고 있는 고부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깍두기’는 현재 급증하면서 새로운 가족관계의 양상을 예고하는 이혼 남녀들의 멜로가 섞인다. 가족드라마라고 해도 제각각 하나씩의 현실과 맞닿는 지점들을 굳건히 갖고 있는 셈이다.

이들 새로운 주말 가족드라마는 일일 가족드라마의 진화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주말드라마가 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주말 그 저녁 시간대의 드라마를 기다리던 시대는 지났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달라진 주말 생활패턴으로 떨어져버린 드라마 시청의 연속성은, 일일드라마처럼 한두 번 걸러도 그 가족이 가진 특성을 알고 있는 한 이해가 가능한 가족드라마 형태를 요구하게 되었다. 주말드라마가 벌이는 인해전술에는 휴일에 빼앗겨버린 시청자들을 잡아내기 위한 방송사의 안간힘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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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복수극을 넘어서는 ‘개늑시’의 힘

MBC 수목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이 다루고 있는 것은, 기억이란 부서지기 쉬운 장치에 기대 살아가는 가녀린 인간이 겪는 운명에 대한 것이다. 만일 ‘기억’이란 부분이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그저 부모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홍콩 액션 영화의 답습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단순한 복수극과 액션에만 있지 않다.

드라마가 주시하고 있는 것은 주먹을 날리고, 칼을 휘두르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액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취하는 캐릭터가 가진 내면의 갈등이다.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이 도대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그 상황 속에서 끝없는 갈등에 휩싸이게 되는 인물들이 가진 어쩔 수 없는 자가당착 같은 것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진짜 재미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청방이란 조직 속에 언더커버로 잠입해 있다가 기억상실이 되어버린 이수현(이준기)이다.

드라마는 이수현의 변화과정을 고스란히 따라감으로써 그가 겪을 심적 고통을 예지하게 만든다. 기억이 사라진 상황 속에서 K로 한 행동들은 후에 다시 돌아올 기억 속에서는 악몽이 될 것이 분명하다. 먼저 친아버지처럼 자신을 길러준 강중호(이기영)의 죽음 앞에 무심했다는 것, 그로 인해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던 강민기(정경호)와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이 사랑했던 서지우(남상미) 앞에 설 수 없다는 것들이 부메랑처럼 자신을 공격할 것이다. 무엇보다 원수 밑에서 충복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길러주고 돌봐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린 자기 자신을 이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수현이란 인물이 기억이란 터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야누스적인 변신을 하는 과정 속에서 주변인물들 역시 모두 ‘개와 늑대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수현이 적인지 아군인지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빠지는 것이다. 강민기는 그와의 극한 대결 구도 속에서 그 상황을 가장 치열하게 드러낼 캐릭터다. 국정원 요원들의 상황은 대체로 강민기의 심적 갈등 상황을 고스란히 따라가게 된다.

이수현과 강민기 사이에 끼어 있는 서지우란 캐릭터는 이 상황을 더 복잡한 미궁 속에 빠뜨린다. 서지우는 마치 자기의 친아버지인 마오(최재성)와의 기억을 지워버리듯 살아왔지만 절대로 지워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즉 서지우 역시 이수현이 겪는 기억상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상황 속에 있는 것. 그녀는 있는 사실을 없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점에서 능동적인 기억상실 속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강민기나 이수현 둘 다 서지우의 친아버지인 마오와 섞일 수 없는 원수 사이라는 점은, 그녀로 인해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게 되는 이수현과 강민기의 갈등 상황을 예견케 한다.

이처럼 복잡한 인물의 갈등관계 속에서 액션을 끄집어내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드라마에서는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액션 스릴러의 한 장을 열고 있다. 미드 ‘24’에서 잭 바우어가 세상에서 가장 길게 보낸 하루 동안 끝없이 반복되는 갈등과 선택의 상황을 보여줘 액션 스릴러의 강한 중독성의 세계 속으로 이끌었듯이, ‘개와 늑대의 시간’ 역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속에 빠진 인물들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24’는 오리무중의 상황 속에 빠진 잭 바우어에 직접 시청자들이 감정이입되어 똑같은 갈등 상황을 경험하는 짜릿함을 주는 반면, ‘개와 늑대의 시간’은 이수현이 처한 그 상황 자체를 관조적으로 이해하면서 후에 벌어질 파고를 예상하는 재미를 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복잡한 미스테리적인 요소를 피하고, 상황 자체를 드러냄으로써 드라마의 구조는 좀더 쉽게 따라갈 수 있는 형태를 가지며, 동시에 캐릭터들의 변화되는 감정선이 극대화된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러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한국형(?) 액션 스릴러의 시도는 우리네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아떨어진 점이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이 흥미진진함을 엮어내는 힘은 ‘태극기 휘날리며’, ‘야수’의 한지훈 작가와 유용재라는 신인작가의 탄탄한 스토리텔링에서 나온다. 여기에 혼신을 불태우는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자들은 스토리 속 캐릭터의 결을 제대로 살려내고 있다. 이 드라마는 거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야누스적인 감정 선의 급격한 변화를 그려내야 하는 난점을 갖고 있지만, 성지루, 김갑수, 이기영, 최재성 같은 중견배우들이 무게 있는 존재감으로 안정감을 살리면서 그 위에 이준기를 비롯한 정경호, 남상미의 광적인 연기가 덧붙여지면서 폭발력을 얻고 있다.

제목에 걸맞는 갈등과 대결구도로 가고 있는 ‘개와 늑대의 시간’.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각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갈등의 시간을 맞고 있다.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군상들을 보면서 깊은 공감대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생을 살아가는 시간 역시 저들이 겪는 오리무중의 상황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이라는 가녀린 힘에 덧대 살아가는, 그래서 기억, 추억, 시간 같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들이 한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간이라는 상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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