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강남역 살인사건을 검거된 미제사건으로 부르는 까닭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심층보도하면서 길거리나 심지어 집안으로까지 들어와 성추행과 폭력을 당한 네 명의 사례를 인터뷰했다. 얼굴이 흐릿하게 처리된 채 흘러나온 그 사례 인터뷰에 의외로 두 명은 그 피해자가 남성이었다. 길거리에서 여자 셋에게 성추행을 당한 남성이 한 명이었고, 화장실까지 도망쳤지만 그 안까지 따라온 여자에게 당한 남성이 또 한 명이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하지만 방송은 곧바로 이것이 일종의 실험방송이라는 걸 밝혔다. 즉 그들이 남성이 아니라 여성들의 사례를 남성인 것처럼 연출해서 보여준 것이라는 것. 그리고 MC인 김상중이 물었다. 그들이 남성이라고 내보낸 방송에 시청자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냐고.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아니면 그럴 법 하다고 여겼는지. 아마도 대부분의 남성 시청자들은 그 방송내용을 보며 남성의 피해사례가 낯설게 다가왔을 것이다. 방송은 이 실험을 통해 남성들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이해시키려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또 한 여성이 하루 종일 길거리를 다니는 장면을 실험카메라로 찍어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자 충격적인 장면들이 포착되었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남성들은 다반사였고 밤이 되자 다가와 작업을 거는 남자들, 심지어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얹는 스킨십을 하는 남자도 있었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공포감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이처럼 실험까지 해가며 보여주려 한 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의 공포를 남성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함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남겼다. 그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성의 묻지마 살인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하필 여성을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이 그간 수면 아래 있던 여성들의 억압된 감정들을 폭발시켰다. ‘여성 혐오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그러자 남성 혐오라는 말도 흘러나왔다. 사안은 이로써 마치 여성과 남성이 대립하는 구도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싶다>가 심층취재를 통해 찾아낸 건 혐오가 아니라 공포라는 단어였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밝힌 것처럼 혐오공포는 그 의미 자체가 다르다. ‘혐오가 가해자의 공격적인 모습을 그려낸다면, ‘공포는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을 보여준다. <그것이 알고싶다>는 강남역 살인사건의 참극을 혐오의 대결이 아니라 공포의 이해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문제를 사회적인 사안으로 끄집어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거나, 잘못된 편견 같은 걸 문화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남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바꿔나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된다. 결국 이 사안이 여성들만의 싸움으로 바꿔지기 어려운 일이고 남성들이 함께 동참해야 바뀔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혐오의 관점으로 남성, 여성으로 나뉘어 대결하는 건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고 또한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고 해야 할 치안 같은 사회 시스템적인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 남성들이 잠재적 가해자가 아닌 것처럼, 여성들도 잠재적 피해자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여성들이 느끼는 사회적 공포를 남성들도 동참해 함께 이해해나가야 하고 암묵적으로 잘못된 남성들의 편견이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여성들에게는 크디 큰 공포가 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실험까지 강행하며 이해시키려 하고 강남역 살인사건이 범인은 검거되었지만 여전히 미제사건이라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결국 이 사건은 여성들에게 일상화되어버린 이 사회적 공포가 사라져야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또 다른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가는 첫 걸음은 여성들의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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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무서운데 웃긴다? 에너지 넘치는 문제작

 

간만에 보는 문제작이다. 무당, 퇴마, 귀신 같은 하나만 나와도 섬뜩해질 소재들이 <곡성>에는 한데 어우러져 있다. 그러니 무서울 수밖에 없다. 공포와 스릴러가 주요 장르지만 나홍진 감독은 여기에 코미디적인 요소도 빼놓지 않았다. 마치 공포의 집에 들어가 호들갑을 떠는 납량특집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곳곳에 깃들어 있어 숨 막힐 듯 소름 돋는 영화지만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게 만든다.

 

사진출처:영화<곡성>

영화는 낚시를 하는 한 사내를 비춰주며 시작한다. 사내가 낚시 바늘에 미끼를 꿰는 장면은 <곡성>이라는 영화가 가진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 종구(곽도원)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미끼를 던진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이야기들에 차츰 종구가 깊숙이 들어가고 그것은 결국 종구와 그 가족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곡성>을 문제작이라고 부르는 건 그 이야기가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귀신이나 퇴마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종구가 그러하듯 관객들도 갑자기 마을에 깃든 어두운 기운과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에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등장하는 무당은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종구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종구가 끊임없이 미궁 속에 빠져버리고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에너지가 커진다. 사실 3시간 짜리 영화에서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곡성>이란 영화를 명쾌하게 해석하는 건 쉽지 않고 또 이 영화에 합당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난해한 문제를 미끼로 던져놓는 것 자체가 <곡성>이라는 영화의 힘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관객은 도대체 저런 일은 왜 벌어진 것일까를 궁구하면서 영화 속에 깊게 빠져든다. 그것은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관객이 누가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이리 저리 끌려 다니는 것과 닮아있다. 이유를 알기 위해 또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낚시 바늘은 더 깊게 상처를 파고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건 믿음혹은 현혹에 대한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그러한 미지 앞에서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나홍진 감독은 그 미지의 공포들을 관객 앞에 죽 세워두고 우리를 현혹시킨다. 이 영화가 두렵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는 건, 미지의 세계 앞에 두렵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하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곡성>은 그래서 나홍진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진 미끼처럼 느껴진다. 영화 자체가 하나의 미끼이기 때문에 일단 영화관에 들어서는 순간 헤어 나올 수 없는 미궁의 엄청난 에너지를 체험하게 된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화 체험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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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 밋밋한데도 이토록 몰입시킬 수 있는 건

 

영화 <검은 사제들>은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다. 전형적인 장르영화의 틀을 갖고 있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다만 특이한 건 오컬트라 불리는 이 영화의 장르적 특성이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그 중에서도 악령 같은 주로 서구의 문화적 배경에서 자리를 잡은 장르다. <오멘>이나 <엑소시스트> 같은 영화들이 그 범주에 속한다.

 


사진출처:영화<검은사제들>

우리에게도 오컬트적 소재들은 어쩌면 서구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많은 무당들의 접신 이야기가 그렇다. 최근에 상영됐던 <손님>이나 <그 놈이다> 같은 작품 속에서도 이러한 무당 소재의 오컬트적 요소들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검은 사제들>이 다른 점은 악령을 퇴치하는 방식으로서 사제들의 활약을 거의 변형함이 없이 그대로 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상황이 있기 때문에 무당 같은 우리 식의 해석이 살짝 들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검은 사제들>은 거의 오컬트 장르의 공식 그대로를 잘 살려내고 있다.

 

오컬트 장르의 이야기 구조는 초자연적인 사건(악령의 출연 같은)이 벌어지고 이를 추적하는 사제가 있으며 누군가의 몸속으로 들어간 악령을 우여곡절 끝에 그 사제가 끄집어내는 그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단순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후반부의 반 정도를 한 공간에서 악령과 싸우는 사제들의 이야기로 채워 넣는다.

 

이 정도면 조금은 밋밋하게 여겨질 법도 한데 절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영화가 어떤 곁가지로 흐르거나 복잡한 스토리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굉장한 집중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끊임없이 관객을 불안감으로 몰아넣는 감독의 연출력은 물론이고 김윤석과 강동원 그리고 박소담이 이끌어내는 놀라운 연기력 때문이다. 감독은 제대로 판을 벌렸고 그 위에서 김윤석과 강동원 그리고 박소담은 제대로 놀았다.

 

김윤석과 강동원의 케미는 이미 <전우치>에서도 본 바 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폭발하는 듯하다. 이 두 사람은 브로맨스의 느낌마저 주는데 악령을 퇴치하는 전면에 나서있는 김신부(김윤석)가 영화의 어떤 추진력과 안정감을 부여한다면 그를 보조하는 최부제(강동원)는 관객들이 빙의될 수 있는 친숙함을 준다. 결국 관객은 최부제에 몰입하고 김신부라는 가이드를 통해 오컬트의 현상 속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즉 강동원이 최부제라는 캐릭터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두려움과 공포감을 부여한다면 김윤석은 김신부를 통해 그 두려움을 헤치고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김윤석과 강동원의 연기야 이미 정평이 나 있는 것이지만 <베테랑><사도>를 거쳐 차근차근 필모그라피를 쌓아가고 있는 박소담의 신들린연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영화에서 연기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 될까. 물론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검은 사제들>의 경우에는 연기자 비중이 상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연기할 수 있게 연출이 판을 깔아준 덕이지만 이 영화에서 김윤석과 강동원 그리고 박소담의 지분은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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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이 복잡한 미로가 보여주는 것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SBS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이하 마을)>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와는 사뭇 다르다. 드라마는 영화와는 다른 장르다. 폐쇄된 공간이 아닌 개방된 공간에서 시청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압도적인 몰입감은 오히려 시청자를 유입하는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사진출처:SBS)'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마치 이런 장르적 한계에 도전이라도 하겠다는 듯 시청자들 앞에 복잡한 미로를 펼쳐놓는다. 하나의 미로를 지났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미로가 나타나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불친절한 느낌을 받는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지고 있지만 그 단서들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의문들을 더욱 증폭시켜 놓는다.

 

사건 없는 마을에 암매장된 시체가 발견됐다는 건 이 드라마의 화두다. 아무 일도 없어 보이는 그저 작은 마을. 그러나 그 고요함 뒤편으로 들여다보면 수군수군 대는 수상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 시체가 외지에서 온 김혜진(장희진)이라는 미스테리한 여인이고 그 여자는 이 마을의 최대 권력자인 서창권(정성모)과 내연관계였으며 그것 때문에 서창권의 새 아내인 윤지숙(신은경)과 드잡이까지 했었다는 사실은 이 사건이 이들 가족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 죽은 김혜진이라는 인물이 이 마을에 영어교사로 들어온 한소윤(문근영)의 언니가 아닐까 하는 단서들은 서창권의 가족과 한소윤의 가족이 과거 어떤 일인가로 얽혀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의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윤지숙의 배다른 동생 강주희(장소연) 역시 김혜진과 무언가를 함께 꾸미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녀 역시 이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마을>은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매회 한 명씩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언가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인물이 용의자로 등장해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단서를 뒤집고, 확실한 이야기를 숨긴 채 용의자를 줄이기보다는 늘려 나가는 불친절함이 의외로 드라마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이 많은 추리물과 스릴러물이 가진 힘일 것이다. 숨겨진 비밀과 그 비밀이 양파 껍질 까듯 벗기고 나면 또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는 것이 반복될수록 궁금증과 호기심은 증폭된다.

 

물론 이건 드라마로서는 도전적인 일이다. 시청률을 담보해내지 못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몰입감이 높을수록 시청자들의 새로운 유입은 요원해진다. 중간에 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드라마에 발을 디딘 시청자라면 결코 벗어나기 힘든 미로를 만나게 된다. 그 미로는 복잡해도 꽤나 매력적이다.

 

그런데 도대체 <마을>은 이런 미로를 통해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건의 전개는 마을 사람 모두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즉 애초에 평화로워 보이던 사건 없는 마을은 회가 거듭될수록 엄청난 의뭉스런 사건들이 숨겨져 있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고요한 표면 속에 꿈틀대는 욕망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펼쳐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소윤이 외부인으로서 이 마을에 들어와 느끼는 공포감과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에 대한 궁금증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의 시선에 맞닿아 있다. 시청자들은 한소윤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 의문의 마을을 들여다보게 되는 셈이다. 은폐된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소윤과 우재(육성재) 같은 인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 엄청난 욕망들이 뒤얽혀있고 그것은 때로는 범죄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러면서도 그 욕망에 일조한 모두는 쉬쉬하며 숨기는 상황.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이 미로 같은 드라마를 즐기는 법은 매번 뒤통수를 치는 사건 전개의 복잡함에 빠져들면서도 전체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소윤이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마을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를 보라.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모두가 한 가지씩의 비밀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미로를 즐기기 위해서는 실타래가 필요하다. 소윤과 우재라는 실타래를 쥐고 걸어가면 의외로 놀라운 마을의 실체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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