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의 '아버지', 상처가 눈물을 넘어 노래가 될 때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인순이 스스로 방송에서 밝힌 것처럼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처다. 그녀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떠났고 그렇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가끔 편지왕래를 했었다지만 그것이 이 땅의 혼혈로 태어나 아버지 없이 겪은 그 세월을 위로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그녀의 '아버지'라는 곡은 바로 그 꺼내기만 해도 아픔이 되는 그녀의 트라우마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의 첫무대에서 꺼내든 이 곡은 가수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면서, 동시에 아마도 어쩌면 그녀가 불렀던 그 어떤 곡보다 어려운 곡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산이었습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어느새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습니다." 이 낮은 읊조림으로 시작한 그녀의 '고백'은 노래가 그 어떤 기교나 과장 없이 담담하게 가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과거 인순이의 존재감을 갑자기 우리 가 느낄 수 있었던 '거위의 꿈'을 그대로 재연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노력하는 자한테만. 여러분, 꿈을 꾸십시오. 꿈을 이루십시오. 그리고 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2006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이 낮은 읊조림으로 시작해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쳐왔던 자신을 노래 속에 담아냈던 것처럼.

조관우의 말처럼 "인생을 알면서 그 아픔을 딱 담을 수 있는 현존의 음악하시는 분의 최고"라는 찬사는 그저 듣기 좋은 수사가 아니다. '아버지'라는 곡이 가진 그 담담함을 이처럼 절절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인물로 인순이 만한 가수가 있을까. 곡에는 그녀의 '눈물' 속에 담겨진 아버지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이라는 긍정이 담겨져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진실. 인순이는 그것을 스스로의 삶을 담아 노래로 전해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미워했었다"고 고백하고, 또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마음을 전했다.

이 무대가 모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바로 그녀의 곡을 통해 그간 우리가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왔던 존재, '아버지'를 각자 다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인순이의 '아버지'는 이제 그녀의 특별한 이야기에서 우리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녀가 노래 시작 전에 읊조렸던 그 말, '커다란 산'이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는 그 말은 아마도 모든 아버지를 가진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물론 이 의미도 이중적이다. '커다란 산'은 든든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아픔으로 가진 이들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막막함'을 뜻하기도 하니까.

그래서 '야트막한 둔덕'이 되었다는 인순이의 진술은 이제 그 고통을 넘어 트라우마마저 관조할 수 있는 자신을 얘기하는 것이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아버지지만, 이제는 그 '쓸쓸했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흘렀고,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다시 아파오게 하는 존재. 바로 누구나의 아버지일 것이다. 이제 꺼내는 것만으로도 상처인 '아버지'를 노래로 부르며 긍정하고 있는 인순이를 통해, 물론 그 감회의 크기나 정서는 다르겠지만 우리도 저마다의 아버지를 꺼내보게 된다.

그녀는 노래 첫머리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노래는 이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또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이 사랑한다는 말을 못내 후회한다. 인순이는 자신은 "사랑했었다"고 과거형으로밖에 못했던 그 말을 '지금' 우리에게 꺼내놓는다. 이것은 자식이 부모에게 하지 못한 그 말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하지 않은 그 말이기도 할 것이니까. 그러니 이제 사랑한다는 말은 모두에게 현재진행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카네기홀에서 두 번씩이나 공연을 가진 인순이는 그 두 번째 무대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모셔놓고 "여러분은 모두 제 아버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처는 아물면서 더 단단해졌고 그것은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여전히 가수임을 고집하는 '천상 가수'에 의해 고스란히 하나의 노래로 승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상처가 눈물이 아닌 노래가 되었을 때 그것은 상처의 토로가 아닌 우리의 마음까지 다독이며 두드리는 소통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된 이유다.


명성황후 스토리와 우리들의 스토리가 만나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다가오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자의 마음은 어떨까. '나 가거든'의 화자는 '쓸쓸한 달빛 아래' 지나는 바람 한 점에 한숨 쉬듯 묻는다.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명성황후'의 OST로 잘 알려진 '나 가거든'은 바로 그 명성황후의 못 다한 목소리를 깨워내는 노래다. 명성황후로 연기했던 이미연의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는 대사는 여전히 그 울림이 깊다. '나 가거든'은 바로 그 죽음 앞에 섰지만 '조선의 국모'로서 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을 보인 명성황후와,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저 한 인간으로서의 쓸쓸함과 슬픔이 교차하는 정조를 담고 있다. 아름다운 발라드에 비장미가 넘치는 것은 이 두 정조에서 비롯된다.

"작은 시간 안에 스토리의 시작, 중간, 끝 이렇게 나뉠 것 같아요." 박정현이 이 노래를 "5분짜리 연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건 이 곡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마치 새벽녘 죽음을 앞둔 자의 외로움에 홀로 독백하듯 시작했다가, '슬퍼도' 살아야 하고, 아니 '슬퍼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삶, 그리고 결국 죽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살아야했던 이유를 남길 수밖에 없는 절절한 마음을 토로하고는, 자신을 기억할 이들에게 그 '슬픔까지도 사랑'했다는 말을 남기며 끝이 난다. 이것은 명성황후의 엄청난 비극적인 운명을 그려내는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네 모든 인간의 운명을 담아낸 가사이기도 하다.

결국 죽음을 앞두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 언젠가는 떠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슬프지만 바로 그 슬프기 때문에 살아야 하며, 그 삶이 다 하는 날 그를 기억하는 이들로 인해 한 삶을 살아낸 이유를 알 수 있는. 모두가 스러질 운명이지만 그 기억 속에 살아남아 있기에 그 슬픔 또한 사랑했다 말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 아닌가. '나 가거든'은 이처럼 명성황후라는 특수한 스토리를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 우리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스토리를 담아낸다.

조수미가 성악 창법으로 담담하면서도 비장한 '나 가거든'을 불렀다면, 박정현은 자신이 말한 것처럼 때론 감정을 절제하고 때론 감정을 몰아치면서 이 노래를 한 편의 연극으로 만든다. 그래서 쓸쓸한 바람소리 같은 해금연주 위에 심지어 예쁘게까지 느껴지는 박정현의 목소리로 시작한 노래는 차츰 감정이 고조되면서 한숨 쉬듯 내뱉어지다가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에서 그 아픈 속내를 살짝 드러내고는 다시 감춰진다. 그리고 다시 차츰 비장해지면서 감정은 폭발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두 번째 토로하는 '슬퍼서 살아야 하네'에서는 애써 숨겼던 깊은 슬픔이 마구 밖으로 드러나면서 듣는 이의 가슴을 후벼 판다.

'나 가거든'은 박정현 말고도 조관우, 김범수, 김경호 등 여러 가수들에 의해 불려졌다. 그 한국적인 '한'의 정조가 현대적인 록 발라드 장르와 너무나 잘 어우러지며 듣는 이에게 깊은 감흥을 남기면서도, 부르는 이의 창법에 따라 전혀 다른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경호의 '나 가거든'은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강은경 이경섭의 록 발라드 버전을 가장 충실하게 전해주면서, 이들이 작사 작곡해 김경호가 부른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김범수의 '나 가거든'은 마치 그가 부른 '하루' 같은 느낌을 주고, 조관우는 그 특유의 창법으로 한편의 오페라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 박정현의 '나 가거든'을 듣다보면 이 가수가 가진 다채로운 목소리와 감정 선에 놀라게 된다. 어떨 때는 귀여울 정도로 맑다가 어떨 때는 마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바뀌는 박정현 특유의 창법은 그래서 이 노래를 한 편의 연극이게 만든다. 절정의 순간에 가슴 한쪽이 아려오면서 뭉클해지는 것은 이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마치 드라마처럼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려 결국 폭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 가녀린 체구는 어디서 그런 깊은 아픔의 목소리가 솟아나는지, 오히려 이 폭발적인 감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완벽한 스토리 라인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감정의 절제와 폭발이 적절한 스토리 라인 위에서 드라마틱하게 연출되는 '나 가거든'은 사실 노래 자체가 주는 힘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좋은 노래는 좋은 가수와 무대를 만나면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어딘지 마지막 경연장 같은 비장미가 넘치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에서 박정현이라는 가수에 의해 불려진 '나 가거든'이 더더욱 우리를 먹먹하게 하는 건 아마도 그 가수라는 존재의 쓸쓸함과 슬픔과 기쁨이 노래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노래는 또한 듣는 이에게도 똑같이 '나는 왜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이 노래를 매개로한 부르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같은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공감이 노래로 전달될 때, 우리의 가슴은 떨릴 수밖에 없다.


TV로 음악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음악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무한도전-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는 음악이 전하는 교감의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어색함이 매력으로 발산된 정형돈과 정재형의 언발란스하면서도 진지한 탱고의 선율과, 음악을 통해 신구세대의 교집합을 만들어낸 박명수와 지드래곤의 디스코풍 리듬, 에너지의 끝을 보여준 노홍철과 싸이, 서로의 아픔까지 공감하며 음악으로 승화시킨 길과 바다, 강렬한 중독성의 음악을 선보인 정준하와 스윗소로우, 자유로움을 음악으로 탄생시킨 하하와 10cm, 그리고 흥겨운 한바탕 무대 뒤에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던 유재석과 이적. '무한도전'이 보여준 음악은 결과로서 보여지는 무대 위의 전율이 아니라 과정 자체가 주는 감동이었다.

'무한도전'이 무대 바깥의 감동이라면, '나는 가수다'는 무대 위의 전율이다. 감미로움과 기교의 끝을 보여준 정엽, 귀에 척척 감기는 감칠맛 나는 목소리의 김건모, 호소력 짙은 백지영, 단단하게 느껴지는 미성의 김연우, 깊은 울림의 JK 김동욱, 감성적인 이소라, 한이 뚝뚝 떨어지는 애끊는 가성의 조관우, 도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김범수,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의 박정현 등등... 이 프로그램은 지금껏 TV에서 보기 힘들었던 가창력 가수들을,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전율의 명곡들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나는 가수다'가 어른들(?)의 무대라면 '불후의 명곡2'는 절정의 가창력을 가진 아이들의 무대다.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를 모셔놓고 그 가수의 노래들을 재해석해 아이돌이 부르는 풍경은 신구세대 간의 교감의 즐거움을 준다. 그 과정에서 아이돌들에 대한 편견이 깨지고 그들도 풍부한 가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폭풍가창력의 효린, 호소력 있는 목소리의 이홍기, 감성이 돋보이는 지오, 즐거운 무대를 선사하는 창민, 에너지가 느껴지는 준수... 아이돌이 부르는 절정의 노래 앞에 감동하는 선배가수와 관객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프로그램이다.

한편 '톱밴드'는 지금껏 TV가 외면해왔던 밴드 음악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면서도 큰 의미가 있다. 가창력만이 아니라 악기 연주가 있고,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재기발랄한 개성이 있으며, 혼자만의 음악이 아니라 밴드 전체의 조화와 균형이 있다는 점에서 이 밴드들의 경연장은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인디밴드들처럼 지금껏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던 뮤지션들을 만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심사를 해야 할 심사위원들이 심사가 아닌 감탄을 하는 이색적인 풍경은 이 프로그램이 주는 덤이다.

또한 경연이 아닌 서로 하모니를 맞춰가며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의 감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50세 이상 어르신들로 구성되는 이 '청춘합창단'의 남다른 이야기는 그 삶이 녹아있는 어르신들의 노래에서 나온다.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아들을 위해 노래 부르고, 결혼을 하는 딸 앞에서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래 부르는 어르신들에게 조금 힘에 부치는 발성과 음정 박자가 뭐가 중요할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음악과 인생을 생각하게 만든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TV로 음악을 즐기는 방법은 그다지 다양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도 다양함이 있다고 해도 그걸 즐길 수 있을 만큼 편성이 공정하지 못했다. 프라임타임대에 들어가 있는 음악프로그램은 대형기획사와 아이돌 중심으로 편제된 '뮤직뱅크', '음악중심', '인기가요'가 유일했다. 좀 더 다양한 라이브 음악을 들으려면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나 MBC '음악여행 라라라' 혹은 EBS '스페이스 공감'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됐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자정에 편성되었다. 게다가 '음악여행 라라라'는 작년 10월 종영해버렸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상황은 바뀌었다. TV의 프라임타임대는 이제 거의 음악이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한 이른바 음악 예능이 대세로 자리하면서다. '나는 가수다'가 주말 예능의 모든 이슈를 잡아먹으면서 이제 오디션 형식은 지상파가 우선 건드려야할 지상과제가 되었다. 또한 '세시봉'이나 '하모니' 같은 음악을 소재로 한 특집이 화제를 모으면서 기존 예능 형식들, 즉 토크쇼나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음악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토록 음악이 우리네 방송의 중심에 선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어쨌든 음악도 골라보는 재미가 생긴 요즘, 이제 음악을 좀 더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TV를 켤 일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기호에 따라 음악을 즐겨볼 일이다.


모든 예능이 '무한도전'이 된 까닭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는 음악을 소재로 하지만 음악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도전'이다. 가수들은 자신이 지금껏 해왔던 자신의 음악스타일을 넘어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다. 복불복식으로 회전판을 돌려 걸리는 곡이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 댄스곡이거나, 심지어 트로트라고 해도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YB가 소녀시대의 '런 데빌 런'을 부르고, 김범수가 남진의 '님과 함께'를 부르며 장혜진이 카라의 '미스터'를 부른다. 이 스타일 차이의 간극이 멀면 멀수록 그 도전의 강도는 강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걸 넘어서는 무대로 승화시키면 그 감동도 깊어진다.

가수들은 1주일 내내 주어진 곡을 갖고 여러 스타일로 편곡을 하고 자기 곡으로 소화하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심지어 퍼포먼스까지 곁들인다. 경연의 무대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5분 남짓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노력과 땀의 결과인 셈이다. 한 회 분의 프로그램을 찍기 위해 일주일 내내 매달린다고 해서 출연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나는 가수다'가 주는 감동의 또 다른 실체다.

우리는 이 감동을 일찍이 '무한도전'을 통해 경험한 적이 있다. 봅슬레이를 하기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연습에 몰두하고, '댄스 스포츠' 경연을 위해 몸치에도 불구하고 스텝 연습을 멈추지 않으며, '프로레슬링' 경기를 위해 엄청난 심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한다. 현재 도전하고 있는 '조정' 경기는 연습한대로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종목이라는 점에서 멤버들의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분량이 노력한 만큼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노력의 강도가 있기 때문에 방송의 밀도가 높아지고, 감동이 커질 뿐이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지금껏 당연한 것처럼 여긴 '무한도전'의 숨겨진 땀이다. 누가 더 출연료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 노력하는 장면이 모두 방영되지는 않기 때문에 누가 그 노력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묵묵히 뿌려온 그 땀의 가치.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김규리의 온통 멍든 다리에서 그 노력의 흔적을 발견하고, '키스 앤 크라이'의 김병만이 무대를 끝내고 서 있을 수조차 없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뭉클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오디션 같은 리얼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가 되면서 진정성은 예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그저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아니라면 이제 대중들은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미 진짜 꽃을 본 대중들이 조화를 보며 감흥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지금의 예능에서 노력에 흘린 땀만큼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 없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홍수 속에서 모든 예능들이 마치 '무한도전'의 또 다른 버전으로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누군가는 하와이로 날아가 단 한 명이 남는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고, 누군가는 지금껏 한 번도 타보지 않았던 피겨 스케이트를 타며 수백 번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TV에서나 봐왔던 놀라운 기술을 선보인다. 또 몸치에 박치인 누군가는 피나는 연습으로 그것을 극복하며 춤을 추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지금껏 한계로 여겨온 노래와 무대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바야흐로 '무한도전' 예능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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