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다큐의 시대, 다큐를 외면하는 TV

KBS는 가을개편을 맞아 그간 주중 저녁에 매일 방영되며 일일 다큐 시대를 열어놓았던 '30분 다큐'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30분 다큐'는 이번 주까지만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폐지 이유는 시청률이나 제작비 부담 등을 들고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편당 1천만 원 정도가 들어가는 이 프로그램에 제작비 부담을 얘기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게다가 시청률을 목적으로 했다면 그럴만한 후속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텐데, '30분 다큐'의 공백은 종전처럼 스포츠 뉴스가 채운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시청률이 높은 KBS1TV의 일일드라마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 시간대의 KBS2는 공백지대로 놔두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30분 다큐'는 그렇게 간단히 폐지돼도 될 만큼 존재감이 없는 프로그램일까. 시청률이 낮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같은 시간대가 일일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이라, 이 시간대의 편성은 애초부터 다큐멘터리로서는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독특한 다큐멘터리 형식은 단지 시청률만으로는 얘기할 수 없는 존재가치가 있다. 그것은 국내 TV 다큐멘터리가 가진 거대담론의 이야기들을 벗어나 소품이지만 일상적인 다큐멘터리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30분이라는 시간으로 압축된 다큐멘터리는 그 안에 지금껏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거창한 기획의 다큐멘터리의 세계에서는 좀체 발견하기 힘든 지점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장점이 있다. 즉 일상이라는 소재 자체가 다큐멘터리의 카메라에 포착되기 시작된 것. 이것은 영상이 일상화되어버린 현재, 거대담론의 다큐멘터리들이 놓치고 있던 것들이기도 하다. '30분 다큐'는 그 짧은 시간이 주는 경쾌함으로, 일상성의 소재를 가벼이 다루지 않는 겸손함으로, 우리에게 다큐멘터리란 본래 이처럼 친근한 것임을 드러내주었던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또한 현재 TV 다큐멘터리가 어떤 변화의 길을 가는 도정에 놓여진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TV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그 변화의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다양한 실험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을 고민하고, 틀에 박힌 엄숙주의의 무거움을 깨뜨리면서 대중들과 호흡하려 할 때, TV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그 보수적인 틀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TV 다큐멘터리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MBC스페셜'은 그 편안해진 다큐멘터리의 성공사례로 지목된다. 'SBS스페셜'는 여전히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변화된 다큐멘터리의 일상화를 저버리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KBS는 '30분 다큐'와 함께 '다큐멘터리 3일'이 그 첨병에 나서고 있다. 3일이라는 시간의 축으로 자른 특정 공간을 포착해 그 위에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그려내는 이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는 기획 다큐멘터리가 갖는 기획적인 의도성의 틀을 깨는 힘을 보여주었다. 즉 의도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의 만남과 발견의 영상들은 그 순간의 포착이 잡아내는 리얼리티의 진정성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다큐멘터리 3일'이 이렇게 포착하는 곳의 시간을 3일로 압축시켜 거기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삶 속에 숨겨진 비의를 포착해냈다면, '30분 다큐'는 방송분량을 압축함으로써 그간 일상이라는 이유로 소외된 소재들을 카메라에 담아낸 공적이 있다.

항간에는 '30분 다큐'가 폐지되고, '다큐멘터리 3일' 역시 지금 시간대인 토요일 저녁 9시40분에서 더 늦은 밤으로 미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롱런하며 세간의 관심을 한몫에 받아왔던 '인간극장'이 아침 7시50분대로 이동된 것까지 생각해보면, 이제 KBS 다큐멘터리는 'KBS 스페셜'을 빼고는 모두 한데로 내몰리는 느낌이다. 현재의 방송 프로그램들이 예능, 드라마 할 것 없이 다큐멘터리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식들이 탄생하는 요즘, 그만큼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이 시점에 다큐멘터리가 폐지되거나 한데로 옮겨가는 상황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시청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TV에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어떤 재미적인 기능을 통해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형식이라면, 다큐멘터리는 TV라는 매체가 갖는 정보적 기능에 충실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정보성을 버리고 재미에만 치중할 경우, 결국 TV는 오락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 명약관화한 현실이다. '30분 다큐'의 폐지. 시간대의 이동도 아닌 이 일상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폐지가 유감스러운 것은 그 때문이다.

영상시대의 다큐는 아무리 사소해도 역사가 된다

우리네 TV에는 현재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도가 너무 높다. 반면 다큐멘터리는 그 영상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뒤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TV의 비중으로 보자면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TV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이 대중들을 끌어들이는 재미와 오락을 선사한다면 다큐멘터리 같은 프로그램은 매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다큐멘터리가 주목되지 못했던 건, TV의 오락적 기능에 우리가 편향되어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도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고 그 성과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다큐에 대한 달라진 인식
변화의 한 축은 대작 다큐멘터리들의 잇따른 등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EBS에서 제작한 '한반도의 공룡', MBC의 '북극의 눈물', KBS의 '누들로드'는 모두 명품다큐라 불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중 특히 '북극의 눈물'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도 수출됐고, 극장판으로도 제작되어 환경영화제 개막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러한 특집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다큐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반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MBC스페셜'은 꾸준히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고, KBS '다큐3일' 역시 참신한 포맷으로 주말 밤 10%대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한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충분히 대중적인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는 '워낭소리'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과거 '비상'이라는 축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역시 4만여 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했다. 그만큼 극영화 같은 허구가 아닌 리얼 스토리인 다큐멘터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리얼리티와 진정성에 대한 요구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이것은 또한 대중들의 영상에 대한 리얼리티와 진정성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흔히들 TV에서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리얼 토크쇼다 하면서 너나없이 리얼리티를 부르짖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과거처럼 짜여진 틀 안에서의 영상이 대중들에게 소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TV는 이미 일찍부터 리얼리티 영상에 대한 추구가 일어나고 있었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주창하고 나선 '무한도전'이나 그 영향으로 등장한 여행 버라이어티 '1박2일'은 모두 이 TV의 리얼리티 경향에 영향받은 프로그램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박2일'은 사실상 다큐멘터리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길에서 만나는 우연적인 사건들을 웃음의 코드로 엮어내는 방식은 다큐멘터리가 갖게 되는 진정성의 울림을 전해주기도 한다. 또한 '라디오 스타'나 '무릎팍 도사' 같은 일련의 리얼 토크쇼를 표방한 프로그램들 역시 다큐적 영상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토크쇼는 예정된 질문과 답변이 아니라 의외의 질문에 걸려드는 답변에서 리얼리티를 뽑아낸다. 심지어 TV의 리얼리티 경향은 드라마에서도 나타난다. 이른바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그것이다. 과거에는 대충 찍어냈던 의학드라마의 수술 장면을 지금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드라마의 리얼리티 경향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요구는 그러한 전문성까지 드라마로 끌어들이게 된 것이다.

무엇이 대중들을 리얼리티에 집착하게 했나
대중들이 과거와 달리 이렇게 리얼리티에 집착하는 이유는 영상의 대중화 때문이다. 과거의 영상이란 그 제작기술을 갖고 있는 특정 전문인들의 것이었다. 그만큼 기술도 복잡했고, 기술을 안다고 하더라도 방송장비가 어마어마한 고가였다. 다 찍는다 해도 편집이 또 장난이 아니었고, 그렇게 영상을 찍어냈다고 해도 그걸 방영할 플랫폼을 갖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 전문가들에게만 부여되었던 특권이 영상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중들에게 대부분 넘어간 상황.

우리는 누구나 조그마한 HD급 캠코더로 영상을 찍어서 프로그램으로 편집하고 인터넷에 게재할 수 있다. 이 사용자가 제작자의 역할을 함께 하게 되는 상황은 영상이 가진 신비적인 부분을 벗겨 내버리고 그 진면목을 드러나게 한다. 이제 모든 게 빤히 다 보이는 것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방송이 과거와 같은 영상을 대본에 맞춰 찍어낸 것을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리얼리티에 대한 집착은 방송이 살아남기 위한 한 몸부림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런 영상에 대한 리얼리티 요구가 지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등장한 것이라면, 왜 그 동안 그 핵심이랄 수 있는 다큐멘터리는 영상의 중심에 자리하지 못했고, 이제야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대중들의 시선이 가장 먼 곳에 위치해 있던 탓에 다큐멘터리의 변화가 그만큼 늦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는 늘 그 고매한 위치에 진중한 무게를 갖고 누가 뭐라든, 하긴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긴 하지만, 같은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하면 뭔가 대작이거나 가르치려는 듯한 뉘앙스, 그런 것들이 시대가 변하고 있는데도 여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에 대중들의 눈길이 닿기 시작하면서 그 변화는 좀 더 빨라지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부는 변화의 바람, 그 가능성
'인간극장' 같은 경우, 소소한 일반인들의 일상들을 잡아내면서 대중들의 호응을 끌어냈는데, 그것은 다큐멘터리 영상이 이제 과거처럼 어깨에 힘을 잔뜩 주는 바로 그 거품을 걷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미 영상을 체험한 대중들에게 너무나 진지한 다큐멘터리의 시선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시대착오적으로도 느껴지게 마련이다. 최근 호평을 받았던 '휴먼다큐 사랑'의 경우, 바로 그 낮은 시선으로 바라본 보통 사람의 위대함을 끌어냈기에 대중적으로도 성공했고, 사회적인 반향도 컸다.

한편 다큐멘터리의 접근방식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다큐 3일' 같은 프로그램은 통상적으로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수개월의 제작기간이 걸린다는 단점을 새로운 프로그램 형식으로 차용해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단 3일 간의 취재영상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은 어쩌면 수개월 동안 취재해 찍은 영상이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적인 진실을 담아내기도 하니까. 게다가 최근에는 '30분 다큐'라는 프로그램이 등장해 일일 다큐멘터리 시대를 열었다. 사실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는 PD들에게 큰 부담이다. 하지만 30분이라는 시간은 무언가 소소한 모든 것들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포획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금의 다큐멘터리는 대중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어깨에 힘을 좀 빼고, 시선을 한참 낮추고 있다고 보여지고, 이것은 향후 다큐멘터리가 TV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어디까지 볼 수 있을까. 그것은 실로 영상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방송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상의 다큐멘터리들이 하나하나 모여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큐 3일'과 'MBC스페셜'이 찍은 생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은 연일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되면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문자시대의 역사란 글이 그 매체가 되는 것이지만, 이미 영상시대에 접어든 우리에게 역사란 영상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30분 다큐', 일일 다큐 시대를 열다

다큐멘터리를 음식으로 치면 어떤 것에 가까울까. 무언가 판타지를 제공하는 눈이 즐거운 화려한 색감의 음식이나, 톡 쏘는 향신료가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어딘지 밋밋해도 재료 맛에 정직한 음식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면 '30분 다큐'는 그 맛에 가장 근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지나친 자극도 없고 지나친 눈요깃거리도 없다. 하지만 이 지나치게 담담하게 우리 생활 주변을 낮은 눈높이로 바라보는 '30분 다큐'를 쳐다보고 있으면 바로 거기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첫 회를 장식한 아이템은 '배PD가 108배를 하게 된 까닭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코너는 제목처럼 배용화 PD가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108배가 좋다는 얘기를 듣게 되고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 효과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직접 프로그램의 관찰자이자 주인공 역할을 한다는 점은 그만큼 보는 이들의 감정이입을 쉽게 만든다. PD의 관심사와 궁금증이 고스란히 시청자의 그것으로 상치되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108배의 운동효과가 궁금하다고 해서 전문 무술인이나 한의사를 찾아가 소견을 묻고, 심지어 108배가 숙취해소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하지는 않는다. 즉 처음 시작은 일반인과 같은 눈높이에서 관심사항을 만들었지만 차츰 그 관심은 PD로서의 좀 더 전문적인 부분으로까지 확장되어 간다. 이 서민적인 눈높이에서 전문가의 눈높이까지 이행하는 친절한 전개는 '30분 다큐'가 가진 미덕이다. 이 코너 이외에도 '30분 다큐'에는 방송에 나간 맛집을 찾아가는 PD, 고래를 보기 위해 바다로 떠나는 PD, 시내버스로만 전국을 여행해보는 PD 같은 안내자가 종종 등장한다.

이런 형식은 어찌 보면 느슨한 느낌마저 준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일반인들이 찍는 UCC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흔히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어딘지 엄밀함이나 진지함을 먼저 떠올리는데 이것은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주로 대작들이기 때문이다. '북극의 눈물'이나 '누들로드', 혹은 '한반도의 공룡' 같은 것들. 아니면 자연 다큐멘터리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 연상되는 그림들. 그것도 아니면 역사 다큐 같은 철저한 고증을 전제로 하는 엄격한 잣대들. 우리에게 그간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이상할 정도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만을 다큐멘터리의 본령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지금 시대를 포착해주는 한 단면을 거기서 발견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기록으로서의 훌륭한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그 단면이 학문적인 영역이 아닌 생활의 영역 속에서라면 그 기록은 박제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생생함까지 가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30분 다큐'가 가진 일상의 기록으로서의 다큐가 가진 가능성은 그저 만만히 볼 성격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30분 다큐'는 그 시간적 제약이 오히려 다큐의 특성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1시간이라면 어딘지 부담이 되는 그 다큐의 시간은 30분으로 줄어들면서(실제 영상의 시간은 25분 정도가 된다) 어깨에 힘을 빼게 된다. 일상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한 편의 다큐가 될 수 있는 이 축소된 시간은 따라서 바로 그 일상을 잘 포착할 수 있는 형식이 된다. 게다가 이 여유(?)는 엉뚱한 시선의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될 때 모든 카메라의 시선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가 있었지만, '30분 다큐'는 엉뚱하게도 그 대통령을 좇는 카메라들의 취재경쟁에 가 있었다.

'30분 다큐'는 그 짧은 시간제약을 통해 일상에 천착하게 함으로써 일일 다큐멘터리 시대를 열었다. 물론 '인간극장' 같은 일일 다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0분 다큐'가 갖는 시사성 있는 소재의 다양성이 갖게 되는 기록으로서의 가치와, 그 시간적 제약이 오히려 번뜩이게 만드는 상상력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일일 다큐멘터리로서의 묘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0분 다큐'라는 거품을 뺀 다큐의 맛이 거창하지 않아도 입에 물리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공을 잘라 사람을 포착하는 ‘다큐 3일’

지난 11월, 양천구 신월 5동에 있는 고물상 세 곳에서의 3일을 포착한 ‘다큐 3일-인생만물상편’에서는 다큐로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한 끼 식사를 위해 엄동설한에도 파지를 주우러 다니는 한 할머니를 쫓아다니며 촬영을 하던 한 여자 VJ가 카메라를 든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단 한 끼를 챙겨먹기 위해 그 고된 일을 하는 할머니를 취재하는 입장이지만, 그 안타까움에 눈물을 감추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VJ의 의도되지 않은 틈입이 주는 감동
엄정한 카메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제공하는 다큐멘터리에서, VJ의 의도되지 않은 틈입(예를 들면 질문 같은 것이 아닌)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큐 3일’에는 이러한 VJ의 존재가 문득 문득 영상을 통해 느껴질 때가 많다. 그 고물상에서 3일 동안 할머니를 쫓아다닌 한 VJ에게 그 할머니는 고생한 것에 대한 선물이라며 요구르트를 건네며 꼭 놀러오라고 말했고, VJ는 그러겠다고 화답했다.

지난 24일 방영된 탑골공원 주변의 3일을 다룬 ‘아버지의 얼굴 편’에서도 이런 상황은 다르지 않다. 매일 출근하듯 탑골공원 인근의 1천5백 원짜리 국밥집을 찾는다는 한 노신사는 공원의 명물인 백 원 짜리 커피 자판기에서 굳이 커피를 빼주겠다며 VJ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31일 방영된 ‘고향 가는 길’에서는 버스에 동행 취재하는 VJ에게 한 아주머니가 가래떡을 건넸다. 촬영 중이라 먹지를 못하자, 아주머니는 “촬영 좀 그만하고 좀 먹어”하고 말해 기어이 VJ에게 정을 전했다.

이러한 VJ의 틈입은 자칫 다큐멘터리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다큐 3일’에서의 틈입은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감동까지 준다. 그것은 VJ와 그가 찍는 사람들 간의 친밀감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친밀감을 만들어내는 걸까. 여기에는 단지 VJ의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다큐 3일’만의 독특한 형식에서 비롯된다.

시간과 공간의 축에서 사람을 발견하다
‘다큐 3일’은 말 그대로 특정한 장소를 3일 간 관찰하고 기록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즉 시간적 제한과 공간적 제한이 그 핵심이다. 이렇게 제한적으로 시공을 압축해놓으면 그 안에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돋보기를 댄 것처럼 자세해진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스쳐지나갔던 공간과 시간이 새롭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간의 축과 공간의 축 위에서 잡아내려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곳을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이다. 이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단서를 얻게 된다.

즉 ‘다큐 3일’은 시공을 단지 제한해 압축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자세하게 그려내기 위한 장치다. 바로 사람에게 집중하게 되는 이 형식은 VJ를 그 한정적 시공간 속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시청자를 대신해 VJ라는 외부적 시선이 그 특정 공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또 점점 동화되고 공감하게 되는 그 3일간의 경험이 바로 ‘다큐 3일’인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VJ는 어느 순간 그 시공간과 교감을 나누게 된다. VJ의 눈물, 틈입은 이 순간에는 몰입의 방해가 아니라 감동이 된다.

최근 개그 콘서트에서 ‘난...뿐이고’로 뜬 안상태 기자는 사건현장 속에서 그 현장이 자신까지도 삼켜버리는 현실을 목도한 후, 기자의 본분까지 잊어버리고 자신의 처지를 토로한다. 시청자들 마음의 정곡을 찌르는 이 웃음의 포인트에는 이런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기자라는 껍데기가 뭐가 중요해 나도 똑같은 인간이다.’ ‘다큐 3일’에는 웃음이 아닌 감동을 발견한 VJ의 틈입이 있다. 그들은 그 틈입의 장면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자세히 바라보면 감동인 저들과 나는 다 같은 사람이다.’ 이것은 시청자에게도 마찬가지의 느낌으로 전달된다. 난... 감동했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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