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의 문화풍경만으로도 충분한 공감

 

당신과 나를 동시대인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은 뭘까. 그것은 거창한 연대나 나이가 아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오며 겪었던 자잘한 일상에 담겨진 문화들이다. 물론 거대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사건들도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그 동질감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공감시키는 것은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작은 일상들이다. 그런 점에서 <응답하라 1997>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1997년이라는 특정 연대로 표상되는 당대의 문화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응답하라 1997'(사진출처:tvN)

당대를 전라도와 경상도로 첨예하게 나뉘었던 지역감정은 전라도 출신의 아빠 성동일과 부산 토박이 엄마 이일화로 구성된 가족으로 그려진다. 음식 하나, 프로야구 하나 갖고도 지역감정이 드러나는 이 문화적 분위기 속에 HOT 토니빠인 성시원(정은지)이 서 있다는 것은 당대 97년이 어떤 변화의 기점에 놓여져 있었다는 것을 잘 설명해준다. 즉 지역감정 같은 해묵은 어른들의 갈등의 시대에, 아이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HOT로 표상되는 대중문화의 세례다. 어른들의 싸움에 지치디 지친 아이들은 저들만의 세계를 찾아낸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오빠들의 신보를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고, 얼굴이라도 한 번 보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집 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이 아날로그 팬질 1세대들은 “요즘 애들은 팬질을 너무 편하게 한다”고 말할 정도로 어느새 성장해 있다. 1997년 이유가 뭔지도 모른 채 아프고 때론 많이 힘겨워 했던 그들을 버티게 해준 건 다름 아닌 저들끼리 하나로 뭉쳐질 수 있었던 대중문화였다. 90년대에 대중문화가 폭발했다는 것은 그래서 단순히 상업적인 사건이 아니라 힘겨웠던 당대를 살아내며 성장통을 겪었던 아이들의 소박한 탈출구라고 볼 수 있다.

 

PC통신과 채팅, 삐삐와 다마고치, <접속>의 한석규와 전도연, <별은 내 가슴에>로 스타덤에 오른 안재욱, HOT와 양파, K2 같은 듣기만 해도 당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는 노래들, 프로야구, 하다못해 당대 마셨던 음료수 같은 자잘한 오브제들까지... <응답하라 1997>은 그 시대를 경험했던 동시대인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마치 <건축학개론>이 김동률의 노래 한 자락만으로도 충분히 당대의 감성을 되살려 놓듯이.

 

하지만 그렇다고 <응답하라 1997>이 97년을 겪은 사람들만의 추억에 머무는 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렇게 좋은 반응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복고란 과거를 재현하는 것으로 단지 향수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든 트렌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 과거의 감성이 어떻게 현재의 감성과 만나는가 하는 점이다.

 

그 해답은 이 드라마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성시원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정은지나 실전성공 0%의 에로지존 도학찬을 연기하는 은지원에게서 찾아질 수 있다. 즉 97년을 겪은 지금의 중년들이 당대의 젊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보게 될 이 드라마를 현재의 젊은 세대들 역시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그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년들은 과거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고, 젊은 세대들은 드라마 속 젊은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지금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청춘의 성장통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건축학개론>의 성공이 납뜩이를 연기한 조정석과 젊은 승민과 서연을 연기한 이제훈과 수지에 더 방점이 찍힌 이유는 그들이 젊기 때문이다. 그 젊음은 나이든 세대와 젊은 세대의 접점이 된다. 마찬가지로 <응답하라 1997>의 접점은 정은지 같은 에이핑크의 멤버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성시원이라는 역할에 몰입해 있는 인물에서 생겨난다. 실제 나이는 많지만 이 드라마에서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은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 역시 지금 세대와 과거의 세대의 가교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응답하라 1997>은 그런 점에서 세대 통합적인 공감지점을 정확히 짚어낸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90년대가 화두가 되고 있는 현재의 대중문화 주 소비층들(30대 중반)의 기호가 전면에 깔려 있지만, 지금의 세대들 역시 이때부터 발원한 대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현재의 대중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공감대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던지는 저 명령형의 제목에 응답하는 이들은 단지 과거 세대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젊은 세대들은 알 수 없는 아픔에 성장통을 겪으며 소박한 탈출구로서 대중문화를 탐닉하지 않는가. 누구나 응답하고 싶은 드라마, 바로 <응답하라 1997>의 성공비결인 셈이다.


'위탄2', K팝은 과연 아이돌 음악일까

'위대한탄생2'(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2'의 세 번째 생방송 미션은 'K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K팝'이라고 미션을 지칭해놓고 보면 이것이 특정 분야로 분류되는 인상을 준다. 물론 'K팝'은 일본의 'J팝', 중국의 'C팝'처럼 각 나라의 대중음악을 분류하는 지칭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내의 오디션에서 미션으로 'K팝'이 지목되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K팝'이란 한국의 대중음악을 통칭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혹 'K팝'은 한국의 아이돌 음악으로 한정되는 개념이었나.

현실적으로는 그렇다. 'K팝'은 SM, YG, JYP 같은 국내 대형 기획사들이 발굴해낸 일련의 아이돌 스타들로부터 그 세계적인 인지도가 생긴 게 사실이다. 따라서 SM의 보아나 동방신기, YG의 빅뱅이나 2NE1, JYP의 원더걸스나 2PM 같은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K팝을 동일선상에서 인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그들의 노력이 K팝이라는 국가적 인지도를 높인 한류의 새로운 길을 연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들이 열어놓은 'K팝'이라는 국가적인 브랜드를 아이돌 그룹 음악으로 한정지을 때는 그만한 한계가 생겨난다. 즉 그것은 결국 몇몇 대형기획사들의 상품적인 브랜드로 굳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아닌 음악들은 'K팝'으로부터 소외될 수 있다.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생겨난 아이돌 이외의 대중음악들에 대한 대중적인 호응은 자칫 내수용의 찻잔 속의 폭풍에 머물게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K팝이 실제로 한국의 아이돌 음악이라고 해도,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대중음악은 K팝이고 그 K팝은 한국의 기획사들에 의해 배출된 아이돌 음악이라고 인식시키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대형 기획사들에 의해 화려하게 돋보이는 면이 있기 때문에 K팝 하면 아이돌 그룹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K팝을 알게 된 외국인들이 차츰 한국의 다른 음악들, 예를 들면 인디음악 같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돌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또한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2' 같은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외국인들의 아이돌 음악 이외의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물론 'K팝스타'처럼 아예 대형 기획사 3사가 참여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즉 그것은 애초부터 대형 기획사들이 어떻게 오디션을 하고 아이돌을 발굴해내는가 하는 점이 하나의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 참가한 지원자들은 아이돌만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것은 거꾸로 K팝의 하나인 아이돌 음악에 대해 대중들(외국인들도 포함해)이 갖는 편견들(주로 외모가 아닌 가창력과 춤 실력에 대한)을 깨준다는 데서 오히려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2'처럼 오디션의 미션을 제시하면서 막연하게 아이돌 음악을 K팝으로 한정짓는 것은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했을 때 우리는 자칫 김건모나 이소라, 신승훈, 임재범 같은 레전드급 가수들이나 국카스텐, 10cm 같은 인디가수들의 음악을 K팝의 하나로 끼워 넣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물론 이것은 그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정한 하나의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무의식에 살짝 각인된 그 무엇이 의식한 것보다 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에게 K팝은 도대체 무엇일까.


배용준과는 다른 장근석의 매력

'장근석 도쿄돔 크리쇼'(사진출처:와이트리미디어)

장근석은 연기자일까 가수일까. 물론 연기자다. 그것도 내년이면 데뷔 20주년을 맞는(그는 아역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그냥 연기자라고 얘기하기엔 어딘지 미진하다. 이미 다섯 차례나 아레나 투어를 했고 거기서 선보인 자신의 곡만 해도 40곡이나 된다. 그는 자신의 공연을 온전히 자신의 곡으로 채울 수 있는 가수이기도 하다. 물론 가창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무대를 돋보이게 하는 또 다른 능력이 있다. 바로 연기다. 그의 무대는 그래서 연기와 노래가 잘 어우러져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장근석이 일본에서 새로운 한류로 부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미남이시네요'를 통해 알려졌고, 극중인물인 아이돌 그룹 A.N.JELL의 리더 태경으로 각인되었다. 드라마 속에 노래가 있었고, 연기자 속에 가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접합 부분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연기자인 장근석이 가수 캐릭터에 동화되면서 독특한 지점이 생겨났다. '미남이시네요'라는 장근석 월드가 생겨나고 점점 넓혀지는 가운데, 그는 연기자로서도 가수로서도 주목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도쿄돔에서 있었던 장근석 공연은 여러모로 그가 앞으로 펼쳐나갈 새로운 한류의 가능성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4만5천명의 관객(일본 관객, 그것도 대부분이 여성) 앞에서 그는 자신만의 장근석 월드를 무려 3시간 반 동안 보여주었다. 프린스 월드라는 콘셉트로 꾸며진 무대는 침실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들(가수들)을 소개하고, 클럽에서 놀고, 자전거를 타고 피크닉을 떠나고(그는 실제로 자전거를 타고 돔을 한 바퀴 돌았다), 자신이 프린스임을 선언했다. 거기에는 드라마적인 스토리가 기본으로 깔려 있었고, 그 위에 그의 노래가 얹어졌으며, 중간 중간 끊임없는 농담이 이어졌다.

K팝 가수들이 노래로 콘서트를 가득 채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다. 장근석은 일단 드라마적인 설정 공간으로 팬들을 초대하고 거기서 연기와 노래가 접목된 쇼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또한 배용준이 팬 미팅을 갖는 것과도 다른 방식이다. 만남과 대화의 진솔함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배용준 팬 미팅과 달리, 장근석은 그 안에 쇼적인 즐거움의 요소를 덧붙여 하나의 무대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장근석이 한류 스타로서 풀어나가는 이러한 방식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한류를 기대하게 한다. 즉 드라마나 영화 같은 스토리와 캐릭터 콘텐츠가 기반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나의 쇼나 콘서트로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방식이다. 이것은 코스프레 같은 콘텐츠 기반의 쇼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하고 있는 일본 같은 곳에서는 더없이 효과적인 방식이다. 또한 K팝 가수가 드라마 데뷔를 통해 연기와 노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쉽지 않은 반면(연기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연기자가 거꾸로 드라마를 통해 가수로까지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 더 수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스토리가 가진 힘 때문이다. 가창력은 조금 못해도 스토리 속에서 들리는 노래는 전혀 다른 맥락을 갖게 된다.

장근석이 이런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은 경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연기와 노래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고 넘나들었고,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가 사이에 놓여진 정서와 언어의 경계를 오히려 가능성으로 만들었다. 국가 간 차이에 따른 어색한 행동이나 언어는 때론 이국적으로도 느껴지고, 때론 귀엽게도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경계 넘기는 연예인과 일반인 사이에 놓여진 거리감을 좁혔다는 것일 게다. 그는 스스로 '프린스'라고 얘기하면서도 굳이 자신을 숨기려 들지 않는다.

"나, 조금 별난가요? 요즘 주목 받는 만큼 오해도 많이 받고, 충고를 많이 들어요. 오래 사랑 받으려면 신비주의를 택해라. 하고 싶은 말도 좀 참아라. 마음에 없는 행동도 해야 한다.하지만 나는 장근석인걸요. 누가 뭐라고 해도 자유인으로 남아서 길거리에서 셔플도 추고,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겠습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으니까요."

장근석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숨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언가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이것은 확실히 배용준과는 다른 장근석만의 매력이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내보이고 싶어 한다. 수많은 경계들을 해체시키면서.

아이돌에 편중된 특집, 스페셜 남발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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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와'(사진출처:MBC)

명절 때만 되면 이른바 '특집'이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프로그램들이 방영된다. 이번 설 명절은 연휴 기간이 특히 길어서 그만큼 설 특집 프로그램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매해 명절 때만 되면 반복되는 일이지만, 특집 방송들이 너무나 천편일률적이고, 참신한 기획은 없고 재방송만 반복한다는 비판이 나오곤 한다. 올 설 특집은 과연 얼마나 스페셜했을까.

먼저 올해 설 특집에서 특집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꽤 괜찮은 편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나 '트랜스포머', '전우치' 같은 상업적인 영화에서부터 '하모니'나 '마더', '시', '울지마 톤즈' 같은 감동적이고 작품성 있는 영화까지 잘 포진되었다. 또 다큐멘터리는 댐건설로 수몰지구가 된 낙동강 상류 분천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분천마을에 겨울이 오면'이나 MBC 스페셜에서 방영된 '노인들만 사는 마을 8년의 기록' 같은 좋은 작품들이 유난히 많았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몇몇 특집들을 빼놓고는 비슷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설을 맞아 '놀러와'에서 특집으로 마련된 '세시봉'은 과거를 향수하게 하면서도 신구 세대를 공감하게 하는 감동까지 선사한 예능이었고, '심형래쇼' 역시 오랜만에 보는 슬랩스틱으로 시청자들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아이돌 특집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돌 건강 미녀 대회', '아이돌 스타 7080 가수왕', '스타커플 최강전', 스타맞선', '아이돌의 제왕', '연예인 복불복 마라톤대회', '아이돌 육상, 수영 선수권 대회' 등등 방송 3사가 거의 아이돌들을 전면에 내세워 설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연예인 복불복 마라톤대회'나 '아이돌 육상 수영 선수권 대회'는 눈길을 끈 것이 사실이다. 특히 지난해 추석 때 방영되어 히트를 친 '아이돌 육상선수권대회'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돌 육상 수영 선수권 대회'는 실제 스포츠 경기를 방불케 하는 대결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로써 올 명절 예능 중 유일하게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처럼 아이돌들이 설 특집 프로그램의 전면에 서 있는 건 아무래도 지금 대중문화의 중심에 아이돌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요즘은 TV 어디를 틀어도 아이돌들이 눈에 띈다. 드라마도 그렇고 예능은 더더욱 그렇고. 게다가 아이돌을 바라보는 이른바 어른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삼촌팬이니 이모팬들이 나오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 설 특집들에는 이 아이돌들과 나이든 세대들을 연결시키는 어떤 고리 같은 걸 만들려고 노력한다. 대표적인 게 '아이돌 스타 7080 가수왕'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설 특집이 아이돌들을 너무 혹사시킨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어떤 그룹은 무려 6,7개 프로그램에 중복출연하면서 체력의 한계를 토로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아이돌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명절은 방송사로서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프로그램들을 편성해서 제작해야 하는데, 비용적인 면도 그렇고 시간적인 면도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쉬운 게 이렇게 스타들을 모아놓고 뚝딱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스포츠라든가, 장기자랑, 노래자랑 같은 건 특별한 포맷 없이 충분히 출연자들만의 힘으로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 이런 방송사의 입장을 아이돌들이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아이돌들 입장에서도 명절은 거꾸로 자신들을 좀 더 폭넓은 세대에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팬층이 세대적으로 두터워지는 상황에서는 아이돌도 이런 부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다보니 설 특집이 너무 대동소이하고 식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프로그램의 변별력이 없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게 현실이다. 과거에 나왔던 명절 프로그램들의 반복이거나, 심지어 방송사가 달라도 비슷한 형식들이 겹치기도 한다. 또 겹치기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반복해서 봐야 하는 것도 시청자들로서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많은 관계자들은 '기획력 부재'를 꼬집는다.

또 명절 특집으로 늘 지적되는 것이 재방송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스페셜이라고 붙여 놓았지만 사실은 '재방송'인 프로그램들은 흔히 잘 나가는 프로그램들이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가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명절에 이른바 스페셜 방송이라는 제목으로 재방송되는 게 비일비재하다. 어떻게 보면 시간 때우기라고도 볼 수 있고, 더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자사 프로그램 홍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너무 스페셜 방송을 남발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된다.

특히 과거보다 명절 특집극 같은 게 많이 줄어든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나마 올해는 KBS에서 방영된 '영도다리를 건너다'가 명절 특집극으로서 주목을 받았지만 전체적으로 특집극은 편성조차 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단막극 시장 자체가 전체적으로 힘이 빠진 게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래서 과거 명절에는 정규 드라마 방송 시간에 특집극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그냥 정규 드라마 방송을 하고 있다. 그게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명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특집극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유난히 길었던 설 연휴. 물론 좋은 프로그램들도 많았지만, 설 특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손쉬운 방법으로 늘 봐오던 형식의 프로그램들도 많았다. 또 여전히 남발된 '스페셜'이나 과거보다 확연히 줄어든 명절 특집극도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아이돌에 편중된 예능 프로그램은 여러모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도, 좀 더 새로운 형식 고민을 해야할 필요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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