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를 넘나드는 예능인들의 각축장, 예능선수촌

‘야심만만2’가 ‘예능선수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말 그대로 예능의 선수들을 끌어 모아 마치 스포츠처럼 예능 대결을 선보이겠다는 의지가 그 속에는 깃들여 있다. 이 프로그램에 고정MC로 강호동, MC몽의 KBS‘1박2일’ 라인과 , MBC의 ‘무한도전’의 전진, ‘우리 결혼했어요’의 서인영 그리고 SBS ‘패밀리가 떴다’의 윤종신이 함께 자리한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 몇몇은 타 방송국의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프로그램은 위에 언급한 것들이 분명하다.

예능판 ‘온에어’?
이런 의도는 ‘야심만만2’의 기획의도에 예능판 ‘온에어’라는 문구로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즉 방송의 뒷얘기(이것은 사실상 연예인들의 사생활일 수도 있다)를 도마 위에 올리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초반부 5회가 지속되는 동안 ‘야심만만2’의 이런 야심만만한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올킬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

첫2회의 게스트로 장근석과 이효리가 출연했고, 3회에 탁재훈, 예지원, 4회에 엄정화, 오지호, 그리고 5회의 박상면, 김지석까지 참여하는 게스트들은 아무런 연관성을 갖지 못했다. 누구도 하지 못했을 폭탄 발언을 통해 말 그대로 ‘다 죽이는’ 올킬 시스템을 가져왔지만 ‘예능선수촌’에 상응할 만큼 경쟁적이지 못했고, 게스트에게만 집중적으로 올킬 제안이 이루어지는(게스트들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야심만만2’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집단 대결 구도다. ‘야심만만2’는 예능선수촌 vs 기센 게스트들(강인, 김희철, 홍지민)을 기점으로 두 팀으로 나눠서 올킬 시스템을 적용했다. 태능선수촌(이용대, 남현희, 왕기춘, 이배영)과 예능선수촌의 대결은 그 백미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결국 대결 구도 자체가 게스트팀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조강지처클럽’의 출연진들은 아예 조강팀과 지처팀으로 게스트를 나누어 대결을 벌였다. 올킬 시스템은 좀더 안정적인 형태를 띄었다. 예능판 온에어라는 기치가 드러난 것도 이 ‘조강지처클럽’에서부터였다.

방송사를 넘어선 선의의 경쟁 보여준 ‘야심만만2’
하지만 무엇보다 예능판 온에어라 지칭할만한 아이템은 ‘1박2일 vs 패밀리가 떴다’가 아닐 수 없다. 아쉽게도 MBC의 예능 프로그램이 빠졌지만 그것에 대한 아쉬움은 서인영과 전진이 한 마디씩 보태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 구도 속에서 ‘야심만만2’의 올킬 시스템은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되었다. 애초부터 방송3사를 막론하고 골고루 고정MC를 두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프로그램별로 그들도 나뉘어졌다. 함께 ‘야심만만2’를 진행해왔던 강호동과 윤종신은 각각 ‘1박2일’팀과 ‘패밀리가 떴다’팀으로 나뉘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초반부터 팽팽한 대결구도를 가져갔지만 상대방의 개그에 아낌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또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천희의 엉뚱한 언변에 모두들 자지러졌고, 이수근의 재치에 모두들 넘어갔다. 복불복에 져 까나리 액젓을 마시는 ‘패밀리가 떴다’팀은 ‘1박2일’의 고생을 인정해주었다. 서로의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모습은 방송사 간에 매주 벌어지는 치열한 예능 경쟁이 사실은 상당 부분 조장된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결구도에 놓여지게 된 예능 프로그램들의 경쟁은 현재 지나치게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기 ‘야심만만2’의 ‘1박2일 vs 패밀리가 떴다’편이 보여준 것은 타방송사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으로서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모두 예능인의 이름으로 함께 뭉치는 모습이다. 과거 방송사별로, 혹은 프로그램별로 형성되던 그룹이 이제는 각자 ‘예능선수’로서의 개인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이합집산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프리랜서로서 방송3사를 넘나드는 예능인들에게 방송국과 프로그램의 경쟁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다. ‘야심만만2’에서 강호동이 갑자기 ‘1박2일’에 대해 홍보발언을 하는 것이 이제는 더 이상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팬덤 현상으로 과열경쟁이 나타나는 현재, ‘야심만만2’가 대결구도에 있던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를 한꺼번에 끌어안은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에 ‘무한도전’이 시사하는 점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매너리즘이라는 난관에 봉착해있다. 지난 1년 간 가장 주목을 끌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1박2일’은 어느 순간부터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버라이어티쇼로 끌고 들어와 순식간에 화제를 낳았던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똑같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일요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삼국지에서 ‘패밀리가 떴다’가 수위에 오른 것은 그 새로운 쇼가 가진 재미가 일조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경쟁 프로그램들의 매너리즘이 준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 프로그램의 미래 역시 여타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무형식이 오히려 ‘무한도전’을 살렸다

그런데 이즈음 생각해봐야할 것이 있다. 2년 여 넘게 지속되어 오면서 물론 몇 번의 매너리즘은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그 때마다 극복해내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선 ‘무한도전’은 어떤 비책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매년 반복되는 시청률 하강과 상승곡선이지만 여름 비수기를 지나 ‘무한도전’은 이제 다시 성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괴력이 가능한 걸까.


흔히들 ‘무한도전’의 최고 가치로서 끝없는 도전정신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있을까. 새로운 형식실험은 물론이고, 시류에 맞는 포맷구성(예를 들면 ‘놈놈놈’의 패러디 같은) 혹은 소재선택(태안을 소재로 한 ‘태리비안의 해적’ 같은)을 이 프로그램처럼 끝없이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의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패턴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형식’의 형식을 ‘무한도전’이 취하고 있다 일컬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바로 이 무형식의 형식은 매번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도전 상황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도대체 그 피곤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효율성의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무한도전’의 성공한 한 형식을 가져가면 거의 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여행 형식을 가져와 정착했던 ‘1박2일’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을 다시 고민한다. 즉 쌓아놓은 유리한 입장을 버리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형식의 버라이어티, 형식 속 이야기의 버라이어티

김태호 PD 스스로도 고통을 호소했듯이,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일 때 가장 먼저 지목된 이유가 바로 이 무형식의 도전 상황, 과도한 피곤함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 여행이라는 형식을 가져온 ‘1박2일’은 적어도 이 형식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을 수 있었다. ‘1박2일’이 계속해서 재미있는 소재와 아이템들을 끄집어내 단기간에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반복할 수 있는 형식이 있다는 것과, 그를 통한 학습효과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성공사례는 마치 ‘무한도전’처럼 매번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도전 상황 속에서 어떤 대안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행 같은 ‘될 만한 아이템’을 가져와 그 형식 안에서 반복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결혼을,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가 시골체험을 아이템으로 가져왔고, ‘무한도전’이라면 1회분에서 3회분 정도의 분량으로 끝낼 아이템을 이 프로그램들은 매번 반복한다. 이렇게 되자 ‘무한도전’이라면 상대적으로 작은 분량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을 좀 더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이들 프로그램 속에서는 가능하게 된다.


‘무한도전’이 매번 형식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면, 후발주자로 등장한 이들 프로그램들은 같은 형식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 문제는 이 형식이 익숙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의 이벤트는 초반에는 ‘무한도전’이 보여주지 못하는 디테일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단지 디테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가져온 형식, 즉 여행이나 결혼이라는 특정 형식 역시 식상해질 수 있다.


‘1박2일’과 ‘우결’이 ‘무한도전’에서 배워야할 것들

‘1박2일’이 여행지에 좀 더 천착하면서 그 장소가 갖는 정보의 재미를 추구했다면 매번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비슷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 동안 여행지가 가진 정보의 재미보다는 복불복 게임이나 여행지 찾아가기 같은 여행 형식 자체가 가진 재미를 반복해왔다. 상대적으로 태백의 귀네미 마을을 찾아간 ‘배추고도’편은 그 소재에 있어서 참신한 것이었지만, 그 안을 채운 것은 과거의 형식들, 예를 들면 즉석공연이나 복불복 같은 것들이었다. ‘1박2일’은 이 상황에서 장소가 달라지는 데 따라 형식 자체의 실험적인 버라이어티를 추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문제는 구성원의 문제다. 결혼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커플들의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갖고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다른 커플들, 캐릭터들을 그 형식 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초기의 재미를 다시 찾으려면 커플을 계속 교체해주어야 한다. 물론 결혼 버라이어티에서 커플의 교체는 그만한 형식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버라이어티쇼가 매너리즘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무한도전’이 매너리즘을 벗어나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끊임없는 형식에 대한 버라이어티 추구에 있었다. 어떤 아이템이 어떤 형식으로 등장할 지 아무도 모르는 그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힘이다. ‘무한도전’ 역시 늘 비슷한 형식에 대한 유혹을 벗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어떤 매너리즘에 봉착했던 적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무형식을 선택했고,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선택했다. 그것만이 매주 반복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와 익숙해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능하려면 이미 익숙해져 시청자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면 어떻게 하면 늘 낯선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1박2일’ 야구장 해프닝이 말해주는 것

시청률 지상주의가 판치는 TV 세상에서 1등이란 의미는 두 가지다. 그것은 ‘최고’라는 의미와 더불어, 늘 비판의 전면에 노출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절대 넘보기 힘들었던 드라마 시청률과의 대전에서조차 도전장을 내밀었던 예능의 지존, ‘무한도전’은 그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는 최고로 찬양(?)되었지만, 하하가 군복무로 빠지는 시점을 기해 하향곡선을 긋게 되자 가장 뭇매를 많이 맞았다. “식상하다”거나 “이제 한계”라는 비판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외부에 더 노출되는 팀원들의 행동들은 쉽게 구설수에 올랐다. 이런 뭇매는 시청률이 급락해 더 이상 논란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이러한 1등이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되는 상황은 지금 ‘1박2일’에서 반복되고 있다. ‘패밀리가 떴다’가 급부상하는 상황에 ‘1박2일’은 1주년 기념으로 간 백두산 여행을 기점으로 하락의 길을 걸었다. ‘무한도전’이 겪은 대로 ‘1박2일’에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들이 쏟아져 나왔다. ‘1박2일’의 경우 더 불리하게 된 것은 그간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무한도전’과의 대결구도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지류로서 청출어람을 해온 ‘1박2일’의 그간의 승승장구는 ‘무한도전’의 하락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으로 오인되기에 충분했다. ‘1박2일’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1년 전에 갔었던 충북 영동을 다시 갔지만 그렇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태백의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편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간 ‘1박2일’이 보여준 재미를 거의 재연해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시청률 하락에 대해 시청자들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미 기울어진 대세는 ‘1박2일’의 어떤 노력도 먹히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에 결국 터질 게 또 터지고 말았다. 롯데 자이언츠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장에서 촬영을 한 ‘1박2일’이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현장에서 일반인들과의 접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접촉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1박2일’이 승승장구했던 시기에 톡톡히 재미를 보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대민 접촉이었다. 독도 같은 오지를 직접 찾아가거나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하고, 게릴라 콘서트를 하는 등의 대민 접촉은 ‘1박2일’ 멤버들의 서민적인 이미지를 오히려 더 부각시켰다. 연예인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존재가 대중들과 직접 호흡하는 장면들은, 멤버들의 겸손한 자세로 읽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이러한 대민 접촉은 정반대로 읽히게 된다. 물론 촬영과정에서의 문제점이 있을 수 있지만, 야구장에 투입된 멤버들에 쏟아지는 비난의 초점은 그 시점의 이동에서 발생한다.

2등이나 3등에 대해 이해하는 입장에 서 있던 대중들도 1등에 대해서는 좀더 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한다. 특히 그 1등이 어떤 하락의 기미를 내보이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상 2등을 하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멤버들은 1등을 차지했다고 해서 그다지 태도가 달라진 것이 없지만 비춰지는 양상은 다르다. 이수근이 방송에서 언급한 “이제 1년 만에 막 입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나대지 말라”고 한 시청자게시판의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주목받지 못한 상황에서 동정 어린 응원을 받았지만 이제 막 주목받는 상황에서 나대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 이 변화는 바로 ‘1박2일’이 지금 처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이든 앞으로든 1등에 오를 리얼 버라이어티가 직면할 상황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지나친 시청률 지상주의의 결과다. 모든 것을 시청률로 판단하게 될 때, 프로그램의 진짜 내용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순위에만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언제까지 이 수직적인 순위 경쟁에만 매달릴 것인가. 1등, 2등이라는 숫자경쟁이 아니라 각 프로그램마다 다른 형식이나 내용, 아이템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평준화된 TV 프로그램, 그 생존법과 한계

지금처럼 방송사간의 프로그램 경쟁이 치열했던 적이 있을까. 월화수목의 드라마 전쟁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고, 주말의 예능 전쟁은 그 판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중 드라마, 주말 예능’ 같은 틀조차 무색해지고 있는 상황. 월요일 밤의 예능 전쟁과 주말 드라마 경쟁은 점점 전 요일로 확산되면서 전방위적인 방송사간의 프로그램 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소재나 완성도에서 평준화된 TV
그런데 경쟁구도를 벗어나 각각의 프로그램들을 중심으로 이 가을의 TV를 바라보면 우위를 따질 수 있기보다는 각각의 개성들이 강하고, 나름대로의 완성도를 답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에덴의 동쪽’이 대작으로서의 완성도 높은 시대극을 그리고, ‘타짜’는 부동의 소재인 허영만 원작을 각색했으며, ‘베토벤 바이러스’는 김명민 포스와 클래식소재라는 개성이 강하다. 반면 ‘바람의 나라’는 ‘주몽’과는 또 다른 고민하는 왕을 그릴 새로운 고구려 사극이며, ‘바람의 화원’은 김홍도, 신윤복 같은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퓨전사극을 기대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드라마들은 소재나 완성도면에서 어느 것의 우위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평준화되었다.

이것은 이미 여러 차례의 진화 단계를 거치며 다양해진 주말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어떤 계보를 형성하면서도 즉각적으로 서로의 프로그램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무한도전’에서 비롯된 여행 컨셉트가 ‘1박2일’의 야생을 거쳐, ‘패밀리가 떴다’의 심리게임으로 이어졌고, ‘무한도전’의 리얼 버라이어티와 짝짓기 프로그램이 이종교배되면서 등장한 ‘우리 결혼했어요’의 연애모드는 거꾸로 ‘무한도전’과 ‘패밀리가 떴다’의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동시간대 경쟁하지만 모두 각각 한번씩은 수위에 올랐던 적이 있을 만큼 각각의 완성도를 구축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치열해진 편성전쟁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
치열한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지만 이제 TV의 드라마와 예능은 선뜻 부동의 우위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평준화되었다. 이 완성도나 소재면에서 승패를 판가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수위를 결정하는 것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편성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움이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마다 벌어지는 편성전쟁이나, 하루에 2회분을 방영하거나 스페셜을 앞뒤로 배치하는 등의 변칙 편성이 일반화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예능에 있어서 치열해진 건 시간대 경쟁이다.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는 각각 ‘해피선데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일요일이 좋다’라는 프로그램 속에 존재하면서 다양한 시간대 공략으로 시청률에 영향을 주었다. 초반 ‘1박2일’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는 다른 프로그램들이 같은 시간대를 피하기 위한 전략을 썼다. 하지만, 이제 그 힘이 약화되는 느낌을 보이자 ‘우리 결혼했어요’는 ‘1박2일’과 같은 시간대로 이동해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편성 전쟁만큼 치열해진 건,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다. 드라마에서 이제는 단순한 멜로나 트렌디가 통하지 않는 건 그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올 가을 드라마 대전이 볼만한 것은 거의 모든 드라마들이 소재면에서나 스타일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의 상황은 더 절실하다. 기본적인 리얼 버라이어티의 형식이나 스타일이 정착되고 또 성공한 코드들이 곧바로 다른 프로그램에 소비되는 상황에서 프로그램 자체가 가진 생명력은 그만큼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는 새로움이 추가되면 그 자체로 전세는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패밀리가 떴다’가 성공한 것은 ‘1박2일’에 없던 새로움 (예를 들면 여성 출연자라거나 심리게임 같은)에 기댄 바가 크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새로운 멤버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 시청자들에게 좋기만 할까
물론 시청률 경쟁은 어떤 면에서는 시청자들에게 반가운 상황이다. 그만큼 질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니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은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방영시간이 조정되는 상황이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한 프로그램에서 봤던 성공한 소재들이 여기저기서 똑같이 베껴지는 상황 역시 시청자 입장에서 좋을 리가 없다. 이것은 끝없이 새로운 소재나 스타일을 발굴해낸 그 원본의 아우라를 무한복제를 통해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대 경쟁은 지금 시대에 얼마나 유용한 것일까. 하드웨어의 변화가 곧바로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처럼 작금의 디지털화된 방송환경의 변화에도 시청 패턴의 변화는 아직까지 아날로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시간대를 무너뜨린 디지털 환경에서 동시간대의 시청률 경쟁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그 변화의 속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화된 IPTV와 HDTV의 보급은 이 변화를 이끄는 주동력이다. 이 하드웨어의 변화가 말해주는 건 이제 경쟁의 시각보다는 다양성의 시각으로 프로그램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나라’, 그리고 ‘바람의 화원’을, 그리고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중 하나를 선택하게 강요받길 원하지 않는다. 원한다면 모든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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