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홀리는 ‘연모’, 말 안 되는 데 박은빈, 로운에 빠져든다

연모

KBS 월화드라마 <연모>는 이상한 드라마다. 말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이 남장여자 콘셉트의 드라마가 어떤 꼬인 관계를 보여줄 걸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빠져든다. 정지운(로운)이 달밤에 이휘를 찾아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은, 사실상 정지운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인 이휘(박은빈)에게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물론 이 대사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결(공유)이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에게 했던 그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때까지. 가보자.”

 

당황스럽게도 자신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을 애써 부인했지만 도저히 그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내놓는 이들의 커밍아웃에는, 그만큼 그들 앞에 놓여진 어떠한 난관들도 좋아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는 그 진심이 묻어남으로써 보는 이들은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의 그 마음을 읽는다. 얼마나 깊이 자신을 연모하는 지를. 그래서 눈빛이 흔들린다. 세자로서 정체를 드러낼 수 없지만 그 조차 뛰어넘어 마음을 전하는 이의 그 절실함이 너무나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모>는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현대가 아닌 조선시대이고, 정지운이 커밍아웃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왕세자다. 그러니 커밍아웃이 야기할 난관은 더욱 커진다. <연모>의 고백이 훨씬 더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조선시대에 세자에게 그런 말을 건네거나, 그로 인해 진짜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휘 또한 정지운에 대한 연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들이 하는 선택들은 이 멜로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로운)을 찾아와 즐거운 하루를 보낸 후, 비를 피한 자리에서 이휘는 자신이 하고픈 삶과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웃고 울며 살고 싶지만, 자신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는 운명이라고. 그러면서 정지운에게 지금의 사서직에서 다른 직으로 옮기라고 권한다. 자신은 세자빈 간택을 받아 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그 말을 전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는 이휘에게 이현(남윤수)이 다가와 우선을 씌워준다. 그는 이휘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숨기며 옆에서 연심을 숨긴 채 바라만 보던 인물이다. 그는 이휘에게 “힘든 일이 있었나”보라고 말하며 자신도 오늘이 그런 날이라 말한다. 엇갈린 관계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연모>의 이런 장면들이나 상황, 대사들은 조선사회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세자에게 신하가 임금으로서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서 연모한다 말하고, 세자 역시 그런 신하와 즐거운 하루를 추억으로 남긴 채 헤어지며 눈물을 흘린다. 술기운을 빌어 신하가 세자에게 볼 뽀뽀를 하고, 세자는 술에 취해 잠든 신하에게 입맞춤을 한다... 이런 게 어찌 가능한 이야기겠나.

 

하지만 이런 불가능도 가능한 일처럼 만들어내고 심지어 그들의 감정에 몰입해 똑같이 울컥하는 마음까지 먹게 만든다는 건, 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믿게 만드는 그 지점에서 더 강력한 판타지가 생겨나기도 하는 법이다. <연모>는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을 홀리는 드라마다. 유려하게 꾸며진 이야기의 매력과 무엇보다 박은빈과 로운의 매력이 더해져 어느새 시청자들을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빠뜨리니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저런 게 말이 돼 하면서도 자꾸만 채널을 고정해 놓고 빨려 들어간다. 이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멜로 속으로.(사진:KBS)

‘해피니스’가 묻는 행복, 팬데믹 속에서도 우리의 선택은

해피니스

“그래. 가까운 데 있었어. 이현아 너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 있어? 너 코 고니? 이 갈아? 우리 결혼할까?” tvN 금토드라마 <해피니스> 첫 회 엔딩에서 윤새봄(한효주)은 정이현(박형식)에게 대뜸 결혼을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고, 정이현은 윤새봄에게 “우리 사귈래?”하고 물었을 정도로 그에게 설렘을 느낀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 윤새봄에게 거부당했던 정이현은 그의 갑작스런 결혼 제안이 너무 친해 던지는 농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윤새봄은 농담이 아니라고 정색하며 진지한 얼굴로 정이현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사실 <해피니스>가 첫 회에 보여준 좀비 아포칼립스 장르의 전조들과는 사뭇 대비된다. 윤새봄과 정이현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곳은 다름 아닌 군 당국이 새로이 창궐한 감염병으로 좀비처럼 변해 목을 물어뜯는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임시로 수용해놓은 폐 대학교다. 좀비처럼 변해 공격해온 경찰특공대 교육생 이종태(남상우)와 사투를 벌이다 손에 상처를 입게 되면서 윤새봄은 중대본 위기대응센터 소속 한태석(조우진) 중령의 명령에 의해 그곳으로 수용됐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윤새봄은 그러나 감금된 방 벽에서 의문의 핏자국을 발견하고, 수용된 건물 전체에서 들려오는 괴성들을 듣는다. 건물 방 곳곳에 감염된 자들이 수용되어 짐승 같은 괴성을 쏟아내고 있었던 것. 평범한 사건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이제 세상 가득 좀비들로 채워져 종말론적 위기에 들어설 암울한 세상을 예고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윤새봄과 정이현은 엄청난 충격에 빠지기보다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윤새봄이 정이현에게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결혼을 이야기할 정도로. 

 

<해피니스>는 알 수 없는 감염의 원인으로 좀비들이 창궐하는 종말론적 팬데믹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어둡지가 않다. 아니 어둡기는커녕 윤새봄과 정이현 사이의 설렘 같은 멜로 감정까지 느껴진다. 물론 갑작스레 좀비로 변한 인물들과 육박전을 벌이는 장면이나, 그 사태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감염자가 먹었다는 약을 추적하고 그 약이 심한 부작용으로 퇴출됐던 약 ‘넥스트’라는 걸 알아내는 과정은 액션 스릴러가 주는 긴장감과 공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래도 <해피니스>의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는 발랄하다. 

 

그 이유는 암울할 수 있는 팬데믹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의외로 이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들 때문이다. 윤새봄은 한태석이 찾아 본 인사기록카드에 적혀 있듯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극도로 침착’한 인물이고. ‘머리가 좋고 생존력이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호기심이 강한 것이 문제’인 인물이다. 그는 조사를 받기 위해 폐 대학교에 감금되어서도 아침에 출근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하는 그런 성격을 가졌다. 

 

팬데믹의 암울함과 대비되는 낙천적인 인물들의 모습. 아마도 이것은 <해피니스>가 갖고 있는 여타의 좀비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일 게다. <해피니스>는 위기 상황을 그리긴 하지만 그걸 절망적으로 담지는 않는다. 이건 어떻게 가능해진 것이고 왜 작가는 이런 설정을 의도적으로 그리고 있는 걸까. 

 

코로나19가 종식된 근미래 설정은 여기에 대한 답을 해준다. 이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행복’에 대한 새로운 관점들을 새삼 절감한 바 있다. 그저 마스크 없이 편히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이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가를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깨닫게 됐다. 게다가 이런 위기 상황은 완전히 종식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적응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삶이란 그런 위기와 더불어 지혜롭게 살아내는 그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해피니스>는 바로 이런 팬데믹 이후의 달라진 인식 기반 위에 세워진 드라마다. 윤새봄과 정이현은 그래서 새로운 감염병이 창궐하고 좀비 세상이 도래하는 그 위기 속에서도, 의외로 침착하고 자잘한 행복들과 서로에 대한 마음들을 꺼내놓는다. 결국 <해피니스>라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그런 진정한 행복이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건네는 따뜻한 이야기나, 손길에 의해 가능하다는 걸 드라마는 대놓고 꺼내놓는다.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설렘 가득한 멜로의 분위기가 이상하게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좀비 장르는 어둡다? 바로 이 지점은 좀비 장르가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게 한 중요한 이유다. 물론 넷플릭스 같은 전 세계에 분포된 좀비 장르 마니아들을 가진 플랫폼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우리네 지상파, 케이블 등에서 이러한 마니아적 성격을 가진 좀비 장르는 그만큼 리스크가 크게 느껴진 게 사실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색다른 행복에 대한 인식 기반을 통해 어둡지 않고 설렘까지 담아놓은 <해피니스>의 이야기는 좀비 장르를 보다 폭넓은 시청자들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이 되지 않을까.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되는 대목이다.(사진:tvN)

이상해서 끌리는 ‘구경이’, 이영애를 비롯 문법을 깨니 참신

구경이

과학실험실 같은 곳에서 고등학생이었던 케이(김혜준)가 비커에 담긴 피처럼 보이는 붉은 액체를 용기에 붓는 장면으로 JTBC 토일드라마 <구경이>는 시작한다. 그 광경은 마치 무언가 묘약 혹은 독약을 만들어내는 광경 같고, 케이는 현재화한 마녀 같은 모습이다. 그가 톱질로 나무를 자르는 장면과 함께, 이번에는 구경이(이영애)가 사는 집이 신나게 두들기는 키보드 소리와 바퀴벌레의 움직임을 따라 보여진다. 

 

영락없는 은둔형 외톨이의 행색을 한 구경이의 입에서는 “죽어! 죽어!”가 연실 흘러나온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 속에서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게임에 몰두하는 주인공. <구경이>의 시작은 이 드라마의 서사가 어떤 구도를 갖고 있는가와 더불어 기존에 봐왔던 문법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 드러낸다. 

 

구경이 역할의 이영애는 이 사실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배우가 아닐 수 없다. <대장금> 이후에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에 갖혀 지내야 했던 배우.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그걸 깨주었지만, 그 살벌함마저 우아함으로 드러났던 배우가 아니었던가. 광고는 그를 ‘산소 같은 여자’로 이미지해 오래도록 소비시켰고 전작 드라마였던 <사임당, 빛의 일기>는 더더욱 <대장금>의 이미지를 다시 소환시켰다. 그러니 산발을 한 채 쓰레기 속을 뒹굴며 게임 폐인에 맥주를 엘릭서 마시듯 마시는 구경이로 돌아온 이영애는 그 첫 장면부터가 파격이고, 그건 또한 <구경이>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드라마가 2회를 지나가는 동안 그 흔한 남자 주인공 하나가 안 보인다. 이영애가 나왔는데 상대 남자 주인공은 없다. 남편 장성우(최영준)는 과거 케이와 얽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자살했다. 대신 <구경이>는 여성 캐릭터들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그들 중심의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구경이에게 보험 조사관일을 하게 만든 NT생명 나제희(곽선영) 팀장이 그렇고, 갑자기 등장해 케이를 함께 잡자고 손을 내미는 기부재단의 용숙(김해숙) 국장이 그렇다. 물론 남성 출연자들이 존재하지만 보조적인 역할들이 대부분이고 여성 원 탑에 빌런까지 여성이다. <구경이>의 서사가 특별한 건 이 인물 설정이나 구도에서부터 도드라진다. 

 

스토리는 과거 악연이 있던 구경이와 케이가 다시 통영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얽히게 되는 과정으로 풀어져 나간다. 나제희의 의뢰를 받아 보험사기의 진실을 파헤치던 구경이는 그 뒤에 숨겨진 연쇄살인의 징후들을 보게 된다. 즉 구경이는 자신이 추적하던 보험가입자가 사망하고, 그와 함께 회식을 했던 공장사람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것이 단순한 보험사기가 아니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그 연쇄살인마는 이미 케이라는 게 밝혀졌다. 따라서 드라마는 누가 살인범인가를 추적하기보다는 구경이와 케이 사이의 대결에 집중한다. 

 

그런데 구경이와 케이의 대결은 어딘가 살벌하면서도 발랄하다. 둘은 대결하고 있지만 어딘가 연결되어 있는 관계처럼 보인다. 먼저 케이라는 연쇄살인마는 그 죽이는 대상이 특이하다. 세상에 그런 존재는 없겠지만 적어도 케이에게는 “죽여도 될 만한” 그런 인간들이 대상이다. 동물을 학대하거나 죽이는 인물들이나, 보험사기로 숨어 지내면서도 자기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매춘을 하는 인물(물론 그보다 더한 짓은 회식 중 물에 빠진 동료를 보고만 있었다는 사실일 테지만)이다. 

 

과거의 어떤 아픈 경험 때문일 테지만 케이는 주변사람에 대한 애착이 집착일 정도로 강하고, 그래서 그들이 하는 “저런 놈은 죽어도 돼”라는 말을 실행에 옮겨주는 인물이다. 도대체 그 과거의 경험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구경이의 추적은 케이의 연쇄살인을 막으면서도 그 죽어 마땅한 놈들에 대한 응징에 대한 공감대와 더불어 그가 겪은 일들에 대한 공감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여성들을 중심으로 해서 풀어가는 이야기와, 그 대결구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질 폭력적인 세상(남성 서사 스토리에서 자주 등장하는)에 대한 냉소가 더해져 독특한 드라마가 탄생했다. 여기에 <아무도 모른다>라는 작품으로 믿고 보는 연출력을 보여줬던 이정흠 감독의 감각적이고 독특한 연출에 신예 성초이 작가의 도발이 더해졌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산소 같은 여자’ 따윈 잊어버리라 외치는 듯한 이영애에게 마음이 간다. <대장금> 이후 틀에 갇혀 있었던 이영애지만, 어쩐지 <구경이>의 이영애에게서는 기대가 가는 이유다. (사진:JTBC)

‘지리산’, 주지훈은 왜 생령이 되어 산을 떠돌게 됐을까

지리산

tvN 토일드라마 <지리산>에 드리워져 있던 안개가 조금씩 걷혀가고 있다. 2018년 지리산 국립공원 최고의 레인저였던 서이강(전지현)과 신입 강현조(주지훈)가 파트너가 되어 함께 활동했던 시절부터 2019년 12월까지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지리산>은 2020년 현재 그 때 벌어졌던 사건 때문에 떠났던 서이강이 휠체어를 타고 지리산 국립공원 해동분소로 돌아오고, 강현조 역시 코마 상태가 되어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들은 과거 그들까지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건들을 해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한 건 아니었다. 서이강이 다시 이 분소로 돌아온 건 그 사건을 해결하려 함이다. 그런데 서이강이 그런 결정을 하게 된 데는 조난자 사고 사진들 속에서 일련의 빨치산 표식을 발견하게 되면서다. 그 표식은 서이강과 강현조만이 아는 것이었다. 서이강은 왜 돌아왔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누군가 저 산 위에서 내게 신호를 보내고 있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서 그래서 돌아왔어요.”

 

서이강의 부탁으로 망바위 뒤쪽 오래된 주목나무 밑둥에 빨치산 표식(해동분소를 가리키는)을 놓으러 간 병아리 레인저 이다원(고민시) 앞에 으스스한 형상을 한 채 나타난 의문의 인물은 바로 강현조였다. 코마 상태로 누워있는 강현조가 어떻게 산에 등장했는가 하는 의문은 그가 바로 생령이었다는 사실로 풀렸다. 생령, 즉 살아있는 영혼은 오컬트 장르에 종종 등장하는 존재로 유체이탈을 하거나 식물인간 상태에서 영혼이 몸 밖으로 나온 존재를 뜻한다. 강렬한 원한이나 어떤 절실함이 만들어낸 생령은 그래서 영혼 상태로 떠돌지만 육신과 연결되어 있다. 

 

결국 강현조가 생령이 되어 지리산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은, 서이강에게 계속 신호를 보내온 존재가 바로 그라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 강현조는 왜 코마 상태가 되어서까지 생령이 되어 지리산을 떠돌고 서이강을 불렀던 것일까. 그 이유는 3회에서 밝혀진다. 강현조는 과거 육군 대위로 지리산 행군 훈련을 하면서 부하를 잃은 후, 조난자들이 보이는 환영을 보는 능력(?)을 갖게 됐는데, 그것 때문에 레인저가 되어 지리산 해동분소로 자원한다.

 

그리고 2018년 어느 날의 사건으로 강현조는 과거 부하를 잃은 것이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저지른 살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출입이 금지된 백토골에 들어간 할머니를 서이강과 함께 찾아 나섰다가 환영 속에서 봤던 빈 요구르트 병을 발견한 것. 검은 장갑을 낀 누군가가 놓고 간 그 요구르트를 마신 할머니는 환각을 보고 결국 사망한 채 발견된다. 

 

마침 그 곳에서 훈련 중이던 군인들 중 한 명이 실종되고, 그 역시 요구르트를 마신 후 환각 속에서 헤매다 절벽 끝에서 구조되면서 강현조는 깨닫게 된다. 자신이 본 환영이 현재가 아닌 과거 1년 전 부하가 사망했던 때를 본 것이고 그곳에도 빈 요구르트 병이 있었다는 것. 결국 그는 깨닫는다. ‘누군가 내 동료를 죽였다. 그 사람은 아직도 이 산에 있다. 이 산에서 사람들을 계속 죽이고 있다.’

 

이로써 <지리산>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가 분명해졌다. 지리산 안에 무슨 이유인지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자가 있고(마치 조난인 것처럼 꾸며), 서이강과 강현조는 이를 막으려다 한 명은 다리를 잃고 다른 한 명은 코마 상태가 되는 일을 겪은 것. 하지만 이들은 이 상황에서도 또 다른 희생자를 막기 위해 다시 산으로 돌아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인자와 대적하려 하고 있다. 

 

<지리산>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건, 흔한 산악 구조 스토리가 아니라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살인사건과 이를 막기 위한 레인저들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고, 서이강과 강현조가 모두 산을 탈 수 없는 육체적 조건(하반신을 못 쓰거나 코마 상태인)으로 빨치산 표식을 통해 서로 연락하며 다른 레인저들과의 공조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해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특히 지리산이라는 특정한 공간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절실하고 강렬한 갈망을 부여해 다소 비현실적일 수 있는 설정과 상황들을 설득해내는 점은 <지리산>의 탁월한 지점이다. 예를 들어 살인자가 왜 하필 산 속에서 연쇄살인을 벌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나, 결국 사망한 할머니가 본 환각이 다름 아닌 빨치산 토벌이라는 명목으로 당했던 양민학살의 끔찍한 광경이라는 점, 그리고 심지어 생령이 되어서까지 조난자를 구하고 살인자를 막으려는 강현조의 이야기는 그들 각자가 가진 절실한 욕망으로 인해 그 비현실성 또한 공감하게 만든다. 

 

즉 강현조는 자신 때문에 부하가 죽었다 생각했지만 살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그 욕망이 코마가 되어서도 생령이 되어 지리산을 떠돌게 만든 이유가 된다. 할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보게 된 양민학살의 비극은 여전히 남아있는 역사의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보여주고 있고, 현재까지 끔찍한 살인을 벌이고 있는 살인자 역시 분명 이러한 역사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이강과 강현조의 특별한 공조로 산 속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범과의 사투는 그래서 단지 범죄스릴러에서 끝나지 않고 지리산이라는 공간에 담겨진 역사적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골로 간다. 골로 보내버린다. 그런 말 많이 들어봤죠? 골짜기로 갔다. 이 백토골로 들어오면 아무도 살아나가지 못한다는 말에서 유래된 거예요. 이 곳은 지리산 중에서도 유독 음기가 센 곳이에요. 동학혁명, 일제 강점기, 6.25 빨치산 전투까지 오랫동안 여기서 사람들이 죽었거든요. 아직도 땅을 파면 인골이 나와요. 그리고 백토골 곳곳에 십자가가 놓여있거나 돌탑이 쌓인 곳들이 많아요. 무덤도 남기지 못하고 여기서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거죠. 만약에 진짜 귀신이 있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 어울리는 곳이에요.” 지리산국립공원 자원보전과 직원인 김솔(이가섭)의 대사를 통해 읽을 수 있듯이, <지리산>은 이 비극의 공간에서 무덤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이들을 위한 헌사를 김은희 작가 특유의 미스테리 스릴러를 통해 담아내려 하고 있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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