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정치 드라마는 왜 어려운가

이 땅에 정치 드라마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이언트'는 극 초반부터 특정 정치인을 찬양하는 드라마로 오인 받았다. 60부작의 대장정에 첫발부터 이러니 그 과정이 순탄했을 리 없다. 하지만 뚝심의 장영철 작가와 유인식 PD는 이 위기를 스토리로 넘었다. 시대극으로서 당대의 사건들을 드라마 속으로 끌어오면서도, 특유의 이야기성으로 극중 인물들이 현실의 어떤 인물과 비교되는 것을 막았다. 즉 정치를 다루긴 했지만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드라마 특유의 허구성으로 넘어서려 했다는 점이다.

'대물' 역시 그 시작은 '자이언트'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대통령 탄핵, 잠수함 침몰, 피랍사건 등 작금의 정치 현실을 초반부터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여 그 현실성이 강조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 현실성은 실제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서혜림(고현정)이란 인물과 박근혜씨가 닮았다는 이야기가 친박계에서 흘러나왔고, 결국 '대물'의 인기는 박근혜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얘기가 나왔다. 2007년도 MBC 드라마 '영웅시대'와 이명박 대통령처럼.

여당 측에서는 '대물'이 그려내는 여권의 모습이 너무나 부정적이라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서혜림을 위시한 몇몇 인물을 빼고는 조배호(박근형)나 강태산(차인표)은 패거리 정치의 전형을 보여주고 그 주변인물들은 대부분 앵무새가 거수기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이 드라마 때문에 집권당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드라마가 다루는 정치가 민감했다는 반증이다.

후반부로 오면서 서혜림의 모습은 박근혜씨보다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닮아갔다. 선거 캠프의 유니폼 색에서부터, 야권 단일화가 파기되면서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는 점, 그리고 대통령 당선 된 직후 바로 탄핵을 받는 점 등이 그렇다. 물론 이런 이미지는 이른바 '회초리론'을 방송 토론에서 얘기할 때 이미 예고된 바 있다.

물론 '대물'은 특정 정치인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서혜림은 어떤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한다기보다는 여러 정치인들의 이미지들이 겹쳐져 있다. 하지만 '대물'이 다루는 정치에 실제 현실 정치가 보여주는 뜨거운 반응은 드라마에는 부담이 되었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 초반부터 불거진 작가와 연출자가 모두 교체되는 상황은 물론 드라마에 대한 의견차이 때문이겠지만, 이 드라마가 특히 정치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더 그런 상황을 만든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물'은 본래 하려던 정치 이야기에서 뒤로 진행되면서 상당히 유화되고 정체가 흐릿해진 게 사실이다. 외압은 아니지만 정치에 대한 민감한 반응들이 이런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바로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다루는 만큼 '대물'은 '자이언트'처럼 허구를 통해 이 상황을 넘기도 어려웠다.

흥미로운 것은 고현정이 연기했던 '선덕여왕'의 미실과 '대물'의 서혜림 사이의 온도차다. 고현정은 이 두 정치 지도자를 연기했지만 '대물'의 서혜림은 미실만큼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것은 어쩌면 이 땅에서 정치를 소재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의 어려움을 잘 말해주는 것일 게다.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서야 그나마 현실성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어떤 것. 그것이 바로 정치라는 소재다. 언제쯤 정치를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진짜 리얼한 현실로서 다룰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올까. 드라마에서도 정치에서도 이미지가 아닌 진짜를 보게 될 그날은.

착한 드라마의 새로운 계보, '괜찮아, 아빠 딸'

'괜찮아, 아빠 딸'은 세련된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이 투박한 드라마에는 진심이 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흐뭇해지고, 따뜻해지며 착한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솟구치게 한다. 진심의 힘이다. 착한 드라마에 어떤 계보가 있다면, '괜찮아, 아빠 딸'은 '고맙습니다'나 '찬란한 유산' 같은 드라마를 잇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진심은 먼저 세상의 모든 아빠들의 마음을 담는다.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그것을 온전히 혼자 감당하면서 가족들에게는 그저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들. '괜찮아, 아빠 딸'이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은기환(박인환)이라는 아빠가 자식들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말로 시작한다. 심지어 병상에 누워 몸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할지라도.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심은 이게 끝이 아니다. 아버지 은기환이 쓰러져 누워버리자, 그 빈 자리를 그제야 느끼게 된 자식들은 이제 거꾸로 아버지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괜찮아, 아빠 딸'이라는 제목은 이제 자식이 아버지에게 "아빠 딸은 괜찮다"는 의미로 전달된다. 속 깊은 첫째 딸, 애령(이희진)은 마치 심청처럼 가족을 위해 만인 병원장의 망나니 아들 진구(강성)와 결혼한다.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이 속 깊은 딸은 가족에게 자신은 "괜찮다"고 말한다.

철없는 둘째 딸 채령(문채원)은 여전히 철이 없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진다.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가족들은 자신들이 가진 진짜 중요한 것들을 찾게 된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영원한 행복이 없듯이 영원한 불행도 없다"는 말을 되뇌이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전하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은기환 집안의 불행에 발단이 됐다는 죄책감으로 타인이지만 마치 아버지를 모시듯 은기환을 병수발 하는 혁기(최진혁)와 욱기(이동해)로 인해 사회적인 메시지로 확장된다. 즉 가족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사회적 공감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같은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듯, 그들은 자신들 역시 힘겹게 살면서도 기환네 가족을 도우려 한다.

반면 실제로 이 사건을 일으킨 종석(전태수)은 모든 걸 다 가진 부유층 자제지만, 어쩌면 그 부족할 것 없는 삶 때문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 없다. 마치 싸이코패스처럼 마음이 없는 존재로 그려지는 종석은 그래서 자본으로 둘러싸여 그 속에 감춰진 진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른바 쿨한 현대인의 극화된 캐릭터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아버지 은기환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착하디 착한 심성을 가진 두 딸, 애령과 채령이 엮어갈 사랑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다. 속 깊은 애령의 심성은 심지어 망나니 남편인 진구의 마음까지 흔들어놓고, 그 가족에게도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채령은 혁기를 만나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있다. 이 착한 두 딸이 만들어가는 착한 사랑에 대한 기대감은 그저 멜로가 아니라, 착한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회적 공감으로 시청자들을 인도한다.

이처럼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된 '괜찮아, 아빠 딸'은 그래서 이 땅의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 이 드라마가 전하는 위로의 말이 된다. 아무리 힘겨워도 우리는 서로를 공감할 수 있고, 그 공감의 힘은 돈이 주지 못하는 진짜 사랑의 가치로 우리를 따뜻하게 할 것이라는 게 그 진심어린 위안의 말이다. 투박하고 가난한 드라마 '괜찮아, 아빠 딸'이 그 어떤 화려한 언변과 외관을 가진 드라마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건 그 진심이 우리 마음에 닿기 때문일 것이다.

왜 액션 드라마에서 멜로가 필요할까

우리나라에서 액션 드라마는 힘든 것일까. 1회 시청률 22%로 기분 좋게 시작한 '아테나'의 시청률이 18%까지 떨어졌다. 액션을 즐기는 시청자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하강곡선이다. 수애의 니킥과 차승원과 추성훈의 불꽃 액션이 1회부터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면, 2회에서는 007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이태리에서의 액션 신이 압권이었다. 3회는 비첸차에서 대통령의 딸이 납치되는 걸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정우성의 액션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이렇게 점점 액션은 흥미진진해지는데 왜 시청률은 거꾸로 떨어지는 걸까.

일단 가장 큰 이유는 멜로 라인이 빨리 서지 않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액션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네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다가가기 힘든 면이 있다. 그만큼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여성 시청자들에게 드라마는 그네들이 몰입할 수 있는 인물과 상황이 부여되어야 몰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 상황을 '아테나' 제작진이 몰랐을 리 없다. 이미 '아이리스'를 통해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수애와 정우성을 캐스팅한 것도 그런 의도가 깔려있다. 여성 시청자들에게 수애는 꽤 분위기가 있는 괜찮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작품 속에서 수애가 하는 윤혜인은 풋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렬함을 숨기고 있는 미스테리한 여자다. 물론 정우성은 말할 것도 없다. 어디에 세워두어도 화보가 되는 이 마성의 배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여성 시청자들의 이목을 잡아끈다.

하지만 생각보다 멜로 라인이 빨리 서지 않고 있다. '아이리스'는 초반부에 일찌감치 이병헌과 김태희를 일본으로 보내, 이른바 '사탕 키스'를 하게 함으로써 여성들을 열광하게 했다. 그 확실한 멜로 라인 위에서 김소연의 역할도 살아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정신없이 달려 나가는 액션 장면들 속에서 시청자들이 멜로를 읽어내게 했다는 점이다. 이병헌과 김태희가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본 것은 액션의 강렬함과 멜로의 안타까움이다.

'아테나'의 액션은 시선을 확 끌만큼 강렬하고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드라마로서 계속 흘러가야 하는 스토리 속에서 액션은 그저 강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액션과 액션 사이의 연결고리가 감정적으로 이어져야 시청자들은 몰입하게 된다. 이것은 확실히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상영되는 영화와 뭐든 자유롭게 하면서 보게 되는 TV 드라마의 차이다.

과거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 멜로는 마치 독인 것처럼 회자되었다. 이유는? 본래 보여주려던 전문직의 디테일과 장르적인 재미가 상쇄되고 멜로만 남는 상황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멜로를 세우면서 나머지를 소홀하게 했기 때문이지 멜로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아테나' 같은 긴박감이 넘치는 액션 드라마일수록 멜로는 더더욱 필요하다. 그 끈끈한 관계는 자칫 복잡하게 정신없는 속도로 달려 나가는 드라마에 어떤 감정적인 몰입을 하게 만들고, 또 어떤 경우에는 좀 더 편안한 시청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테나'에 멜로적인 장면들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우성과 이지아의 베드신이 그렇고, 수애와 정우성의 키스신이 그렇다. 하지만 멜로는 액션이 아니다. 볼거리가 아니라 좀 더 감정적인 고리가 연결되어야 한다. '아테나'의 액션은 더없이 훌륭하다. 이제 액션의 바탕으로서 인물들의 관계에 집중할 때다.

리얼 예능이 재미를 추구할 때 조심해야 할 것들

아마도 낮은 시청률로 인한 조급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뜨거운 형제들-효자 되다'편은 리얼 예능이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시골 집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찾아 일일 아들 노릇을 하고 헤어질 때 "또 와"라는 말을 듣는 것을 미션으로 한 이번 편에서 시골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물론 순박하신 그분들은 애써 웃음을 짓고 애써 좋다고 말씀하셨지만, 기광과 쌈디가 반말을 툭툭 내뱉는 장면들이나, 정성껏 차려주신 밥상에 반찬이 김치뿐이라며 계속해서 투정하는 장면들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럼 막내는 버려도 되는겨?" 김장을 더 담그라는 말에 기광이 이렇게 말을 놓은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반말은 진짜 아들이라면 응당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무례가 아니라 오히려 친근함의 표현일 테니까. 하지만 이 짧은 프로그램 속에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연출된 장면 속에 진짜 아들인 양 반말을 해대는 것은 그저 무례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첫 만남에서 반말까지 가려면 그만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편집된 것인지 아니면 아예 대놓고 친근한 척 뻔뻔하게 연기를 하려 한 것인지 그런 장면은 생략되었다.

게다가 뜬금없이 쌈디가 할아버지께 "어머니 밤에 심하게 괴롭히신다면서요?"하고 자꾸 묻는 장면은 그 자체로도 무례한데다가, 주말 저녁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대단히 부적절한 멘트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이런 말이 우연히 튀어나왔다고 해도 연출에서는 분명 편집했어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뜨거운 형제들'은 편집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런 것들을 재미 포인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박명수가 일일 엄마가 된 할머니에게 이런 저런 요리가 먹고 싶다고 요구하고, 할아버지에게는 그리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염색을 권하는 것도 예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염색이 실패해 머리가 퍼렇게 된 결과에도 애써 웃으시고, 시간은 두 시간이나 있었는데 반찬이 왜 김치 밖에 없냐고 타박하는 박명수에게도 그저 웃어 주시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는 건 불쾌한 일이다. 물론 재미를 위해 박명수는 특유의 상황극을 한 것이지만, 그 상황극이 적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된 것은 출연자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연출자의 문제가 더 크다. 연출자가 상황극과 리얼 예능을 혼동한 것이다. 지금껏 '뜨거운 형제들'은 아바타 소개팅 같은 상황극으로 큰 웃음을 주었다. 하지만 '되면 한다'라는 코너로 새롭게 재정비되면서 프로그램은 상황극이 아닌 리얼 예능이 되었다. 특정 현실 속에서 일일 교사, 일일 아들, 일일 엄마가 되는 것은 리얼 예능이지 상황극이 아니고 상황극이 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투입되는 곳은 가상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기 때문이다.

상황극을 연출해 재미를 뽑아내려 한다면 자칫 현실에 사는 분들이 소외되거나 왜곡될 위험이 있다. 우리가 흔히 리얼 예능에서 '민폐'라고 부르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는 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상황극은 재미만 만들면 되지만 리얼 예능은 그 현실 상황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그렇지 않다면 재미도 만들어질 수 없다. 도대체 시골 어르신들을 세워두고 "또 와"라는 말을 듣기 위해(목적 자체가 순수한 것이 아니다) 마치 게임처럼 상황극을 연출하는 장면에 누가 진짜 즐거운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뜨거운 형제들'이 새롭게 가져온 컨셉트인 '되면 한다'는 그래서 위험한 뉘앙스를 갖고 있다. '하면 된다'처럼 무언가 능동적으로 노력하는 태도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부여된 상황 속에서 어떤 인물이 '되면' 그걸 '한다'는 수동적인 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골학교의 일일 교사가 되면 그걸 하는 것이고, 시골마을 어르신들의 일일 아들이 되면 그걸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통해서 웃음을 끌어내려는 목적이지만, 여기에는 리얼 예능이 갖추어야 하는 상황 자체에 대한 진정성이 빠져있다. 그들은 진정으로 되려하지 않는다. 그저 미션으로 부여되는 '어떤 말'을 듣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이 미션이 환기시키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오지에 사시는 시골 어르신들을 찾아가 하룻밤을 지냈던 '1박2일'이다. 같은 아이템이지만 왜 느낌은 이렇게 다를까. 화면으로 드러나는 작은 진정성의 차이는 이렇게 다른 느낌을 만들어낸다. '뜨거운 형제들'이 싫든 좋든 리얼 예능을 선택했다면, 그 리얼한 상황에 대해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되면 한다'라는 슬로건을 붙였지만 진짜로 되려고 해야 한다. 그러려면 웃음보다 재미보다 더 필요한 것이 배려다. 현실 속 인물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에 대한 공감의식이 없다면, 프로그램 멤버들과 실제 현실 속의 인물들은 겉돌게 되고 나아가 프로그램은 자의든 타의든 현실을 이용하게 된다. 이것은 물론 출연진들도 숙고해야 하는 문제지만, 그보다 더 제작진들이 깊이 생각해야 될 문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