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 논란 없는 그들, 캐릭터가 답

도대체 이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와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 얘기다. 흔히 가수들의 연기 도전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것이 연기력 논란이다. 하지만 이승기와 박유천의 경우, 논란이 아닌 호평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연기를 대단히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캐릭터에 대한 몰입은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고, 또 상대적으로 적은 연기경력에도 불구하고 매 편마다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옥탑방왕세자'(사진출처:SBS), '더킹 투하츠'(사진출처:MBC)

'찬란한 유산'에서 정극연기를 경험하고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코미디를 거친 이승기에게 '더킹 투하츠'의 재하라는 캐릭터는 코믹함과 진지함을 둘 다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도전이면서도 발전의 기회가 된다. 사실 상대 배우들을 톱스타 반열로 올려놓을 정도로 연기호흡이 좋은 하지원과 함께 하는 연기는 이승기에게는 부담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하지원을 주목할 것이기에 자칫 그녀의 보조 역할로 전락하거나, 혹은 끌려가는 인상을 지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 드라마 속에서 이승기의 존재감은 하지원과 거의 대등하게 나타난다. 두 사람은 팽팽하게 대립하면서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오고가는 상황들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특히 조금은 가벼운 듯 보이는 껄렁함 속에 왕재로서의 진중함과 그 굴레의 힘겨움을 숨기고 있는 재하라는 캐릭터는 이승기에게는 딱 맞는 옷처럼 잘 어울린다. 왕자 같은 귀공자 이미지이지만 '1박2일' 같은 예능 속에서는 한없이 천진한 장난꾸러기의 모습을 보이던 이승기 아닌가. 정극과 코미디를 넘나들 수 있게 된 점은 이승기가 이 작품을 통해 얻은 분명한 수확으로 보인다.

한편 '성균관 스캔들'로 첫 등장해 첫 연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몰입을 보여준 박유천은 '미스 리플리'의 정극을 경험한 후, '옥탑방 왕세자'라는 자신에게 잘 맞는 옷을 입고 돌아왔다.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고, 코미디와 멜로를 넘나드는 연기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박유천에게는 다른 것 같다. 그는 본인이 진지해짐으로써 상황에 의해 웃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 연기에 능수능란함을 보이고 있다.

사극 속에서 현대극으로 뛰어 들어왔지만, 여전히 자신이 사극 속의 왕인 줄 알고 있는 '옥탑방 왕세자'의 이각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마치 박유천의 연기 과정을 얘기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옥탑방 왕세자'는 '성균관 스캔들'을 연기하던 박유천이 현대로 뛰어넘은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박유천 역시 한지민이라는 든든한 상대역을 맞아 너무나 자연스러운 코믹 멜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둘 다 가수 출신이면서 연기력 논란이 없다는 점(아니 나아가 보통 연기자들보다 오히려 연기력이 좋게도 보인다)은 이들이 가진 특유의 연기에 대한 몰입에서 비롯된다. 아직 연기가 섬세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완전히 그 인물에 동화되는 몰입이 좋기 때문에 보는 이들도 연기자보다는 캐릭터를 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것은 타고난 것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노력에 의한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연기자가 연기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기가 선택한 재하라는 캐릭터와 박유천이 선택한 이각이라는 캐릭터는 자신들이 도전하고 소화할만한 가장 적합한 선택으로 보인다. 가수와 연기자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두 사람. 이러다가는 가수와 연기자라는 본말이 전도될 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제는 거꾸로 '가수 맞아?' 하는 질문이 나올 지도.

가수와 배우, 경계의 연예인 장근석

윤석호 감독의 신작 '사랑비'에서 장근석이 연기하는 인하는 그림 그리는 미대생이지만, 작곡, 작사를 하고 노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세라비라는 음악 카페에서 활동하는 인하와 그 친구들, 동욱(김시후)과 창모(서인국)는 마치 '세시봉 친구들'을 모델로 한 듯 하다.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 이장희의 '그 애와 나랑은', 송창식의 '왜 불러', 트윈 폴리오의 '웨딩케익'... 드라마 전반에 깔려 있는 음악들은 70년대 통기타 음악에 대한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끄집어낸다.

'사랑비'(사진출처:KBS)

하지만 '사랑비'에서 전편에 깔린 70년대 통기타 음악은 그저 배경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음악은 서로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손을 다친 인하가 윤희(윤아)와 함께 악기 가게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는 진추하의 '원 서머 나잇'은 당대의 로맨스를 표징하는 음악이지만 '함께 부르는 노래'가 전하는 서로의 마음이기도 하다. MT를 간 친구들이 함께 CCR의 'Who'll stop the rain'을 부르고 나서, 인하가 윤희에 대한 마음을 담아 만든 '사랑비'라는 곡을 부르는 장면도 그렇다. 그 가사는 인하와 윤희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비오는 날 함께 우산을 쓰고 걸었던 그 경험이 담겨져 있다.

장근석은 '베토벤 바이러스', '미남이시네요', '매리는 외박 중' 그리고 '사랑비'를 연기하는 배우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가수으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다. 그것은 그가 출연한 작품들의 캐릭터가 대부분 음악을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면면을 보면 그가 작품 속 캐릭터로 해온 음악적 장르가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클래식 지휘를 했다면, '미남이시네요'에서는 아이돌 음악을, '매리는 외박 중'에서는 인디 밴드 음악을 했다. '사랑비'는 70년대 식의 아날로그 정서를 자극하는 통기타 음악이다.

객관적으로 장근석은 가수처럼 노래를 썩 잘하는 것은 아니다(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드라마 속으로 들어와 하는 가수 역할은 어색함이 없다. 드라마라는 스토리가 엮어지기 때문에 그 위에 얹어지는 장근석의 노래는 가창력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마치 OST가 갖는 힘과 같다. 그저 읊조리기만 해도 드라마 속의 내용이 연결되면서 그 감정이 전달된다. 이것은 장근석이 드라마 속 가수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대로 음반을 내고, 콘서트를 가질 수 있는 힘이 되는 이유다.

실제로 그의 공연은 콘서트라기보다는 한 편은 뮤직드라마처럼 꾸려진다.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듯 대사를 던지고, 중간 중간 노래가 이어지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그가 출연했던 작품들 속의 캐릭터가 무대 밖으로 튀어나온 것 같은 효과를 준다. 물론 아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하는 노래 실력은 이 효과를 배가시킨다. 이 노래들은 거꾸로 드라마틱한 무대 위의 모노드라마를 더 감성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음악과 드라마가 뒤섞여진 지점을 장근석이 고집하는 이유는 그 시너지 효과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수와 배우의 경계 위에 서서 양쪽 세계를 넘나든다. 드라마 속에서 노래하는 장근석은 물론 배우가 그의 본업이지만, 때때로 가수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인지, 아니면 배우가 가수 역할을 연기하는 것인지 애매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만큼 그 경계의 지점이 흐릿해질 정도로 양쪽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얘기다.

아이돌 음악과 인디 음악을 거쳐 '사랑비'를 통해 전해지는 통기타 음악은 앞으로 장근석의 무대가 새로운 레퍼토리 하나를 더 갖게 됐다는 의미다. 또 어쩌면 K팝으로 대변되는 아이돌 음악이 인디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지금(실제로 일본의 K팝 팬들은 우리 인디 음악에 관심을 표명한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네 아날로그적인 통기타 음악에 대한 해외 팬들의 새로운 붐으로 이어질 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콘텐츠가 점점 더 멀티화하고 퓨전되고 있는 현재, 가수와 배우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것은 '사랑비'의 여자주인공으로 소녀시대의 윤아가 낙점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인지되는 상황이다. 윤아는 일일드라마 등을 통해 연기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히 보여주었던 가수다. 하지만 아마도 훗날 이 가수와 배우 사이의 경계를 허문 대표적인 인물을 지목하라면 역시 장근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미 그 경계의 연예인으로서 활동하고 있고, 그것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분명히 내고 있다. '사랑비'는 그에게 새로운 음악적 스펙트럼 하나를 더 부여하고 있다.

'보코', 어떻게 오디션 끝판왕 됐나

주말 내내 이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 해서 보다보면 결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역시 오디션은 '보이스코리아'"라는 것. 뭐니 뭐니 해도 그 첫 번째 이유는 가창력이다.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보이스코리아'의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무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탄탄한 기본기는 물론이고, 그 위에 독특한 보이스의 매력이 얹어지니 금상첨화다.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엠넷)

'보이스코리아'는 그 독특한 시스템 때문에 코치(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다)들의 상찬과 과감한 리액션은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리액션조차 과도하다 여겨지지 않는 건 참가자들의 기량이 그런 상찬을 받을 만큼 충분하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K팝스타'에서 무려 100-100-99점을 받았던 박지민의 무대에 쏟아진 심사위원 3명의 리액션이 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물론 현 단계에서 '보이스코리아'와 'K팝스타'를 비교하는 건 적절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즉 아직 생방송에 돌입하지 않은 오디션과 현재 생방송을 하고 있는 오디션에는 확실히 질적인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생방송에서 오히려 시청률이 점점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난립은 경연과 서바이벌이 주는 긴장감 그 자체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대중들은 서바이벌이라는 장치 위에 드러나기 마련인 음악 그 자체에만 주목한다. 그러니 생방송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음악적인 면모에 오히려 실망할 수밖에.

그런 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굳이 생방송이 필요한가에 대한 지적은 적절하다. 생방송의 의미는 마치 저 스포츠처럼 경쟁과 서바이벌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집중하게 될 때 효과를 가지는 것일 뿐, 지금처럼 톱10에 들어가면 누가 떨어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는 환경(그들은 이미 선택된 이들이라는 걸 우리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했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목해야 할 것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주는 감동의 무대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이스코리아'는 아직 생방송에 돌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오디션 환경에 가장 적응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즉 '보이스코리아'는 기존 서바이벌에 방점을 찍던 오디션들이 갖기 마련인 세 가지 요소를 일찌감치 없애버렸다. 그것은 독설, 과열경쟁, 합격 불합격으로 나오는 당락, 이 세 가지다.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들이 앉아있고, 그들은 독설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참가자들에게 심지어 세레나데를 부른다. 합격 불합격 같은 자극적인 말들은 좀체 들리지 않고, 참가자들 사이에서의 과열 경쟁 또한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은 '보이스코리아'만의 독특한 배틀 라운드 시스템을 통해 드러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탈락되는 배틀 라운드가 한 무대 위에서의 하모니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은 이 오디션이 경연 그 자체보다 최고의 무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무대 위에서 경쟁자들은 자신의 기량을 혼자 뽐내기보다는 상대방과 맞춰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대를 망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탈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협력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구조의 배틀 라운드 시스템은 그래서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기본적으로 하모니를 이뤄야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경쟁보다 하모니에 맞춰진 시스템은 그래서 경연이 끝나고 나서도 지극히 쿨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떨어진 참가자가 붙은 참가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붙은 참가자가 떨어진 참가자를 진심으로 껴안아줄 수 있게 되는 것. 이러한 음악 그 자체에 맞춰진 오디션 시스템과 그래서 갖게 되는 한바탕 음악적인 어우러짐처럼 여겨지는 경연 무대는 '보이스코리아'가 오디션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제 경쟁은 지겹다. 음악을 허하라. '보이스코리아'는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듯하다.

이경규, 이제는 자신에게 맞는 옷 입어야

이경규는 1960년생, 만으로 51세다. 한때 함께 '일밤'을 이끌었던 주병진(1959년생)과는 한 살 차이다. 둘 다 토크쇼를 하나씩 하고 있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주병진은 어딘지 옛날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지만, 이경규는 현역의 냄새가 난다. 당연할 것이다. 이경규는 물론 중간에 휴식기가 있긴 했지만 계속 방송의 끈을 놓지 않았다. 리얼 버라이어티 같은 새로운 장르가 예능의 트렌드로 등장했을 때도 이경규는 옛 것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그 새로운 트렌드를 도전했다. 이것이 이경규와 주병진을 가르는 지점이다.

그래도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51세라는 나이는 예능에서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사실 물리적인 나이가 예능 프로그램을 하는데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이경규는 실제로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에서 식스 팩을 만드는 몸짱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물론 체력적인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프 마라톤이나 지리산 종주 같은 미션을 이경규는 잘 수행해냈지만 역시 힘겨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려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냐마는 그렇게 해내는 것이 보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예능 프로그램(특히 '남격' 같은 도전이 미션인)에서 미션은 한계를 뛰어넘을 때 감동을 주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힘겹게 여겨지거나 안쓰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라면 보는 이들도 불편해질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슬랩스틱에서 누군가 머리를 딱 때렸을 때 맞은 사람이 웃을 수 있어야 관객도 웃게 되는 이치와 같다. 만일 맞은 사람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면 과연 누가 웃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남격'의 미션이 그렇게 과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경규라는 예능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이, 그래서 확고한 자기만의 영역과 경륜을 갖춘 인물이 '남격'처럼 몸으로 부딪치는 예능을 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의 답처럼 제시되는 프로그램이 '힐링캠프'다. 사실상 이경규가 메인으로 진행한다고 봐도 될 '힐링캠프'에서 그는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무리 어려운 게스트가 나와도 자신의 캐릭터(귀찮아하고 톡톡 쏘는)를 유지하고 어려운 질문도 피해가지 않는다.

차인표가 나왔을 때, 첫 질문부터 독하게 "연기자로서 주목받기 보다는 나눔의 아이콘으로 더 주목받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하고, "라면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요"라는 차인표의 응수에 되려 당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차인표가 행한 많은 일들에 대해 나이와 상관없이 존경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이경규의 모습을 보다보면 그는 '힐링캠프'의 MC라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을 말 그대로 빠져서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가지게 된다.

김정운 교수를 찾아가서도 처음부터 "사짜 느낌"을 거론하고 그쪽으로 몰아갈 수 있는 건 역시 이경규만한 경륜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정운 교수의 자화자찬하는(?) 특징을 콕 집어내 자신도 그런 캐릭터임을 드러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상황을 공감하는 장면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힐링캠프'가 때로는 19금 토크를 하고, 때로는 정치인을 게스트로 데려와도 그 소재들을 넉넉히 받아줄 수 있는 이유 역시, 이경규라는 경륜의 소유자가 거기 있다는 사실이 주는 편안함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주목되는 건 '힐링캠프'에서 한혜진 같은 보물(남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적재적소에 할 이야기를 에두르지 않고 직접 물어보는)이 발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이경규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한혜진의 그 착하고 순수한 심성이 한 몫을 한 것이지만, '힐링캠프'의 최영인CP는 한편으로 그것을 잘 받아준 이경규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경규가 '남격'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힐링캠프'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격'은 어딘지 힘들어도 억지로 하는 듯한 인상이 짙지만, '힐링캠프'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진심으로 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나이 오십 줄을 넘겨 젊은이들도 힘겨워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그 도전 자체에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경규 정도의 한 시대를 풍미한 개그맨이 그 경험을 잘 녹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나는 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힐링캠프'는 이경규의 그 '잘 맞는 옷'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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