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약국집...’, 딸 부잣집에서 아들 부잣집 시대로

‘딸 부잣집’은 여전히 가족 드라마의 단골 소재. 호평을 받고 종영한 김수현 작가의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에서도 딸 부잣집은 여전히 맹위를 떨친다. 이들 딸 부잣집 드라마에 역시 단골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부잣집 아들이다. 이 서로 다른 계층의 집안이 얽히는 이야기는 신데렐라 모티브를 자극한다. 즉 ‘딸 부잣집 드라마’란 ‘부유하지는 않지만 딸들이 많은(그래서 그게 재산인!)’ 가족의 딸 시집보내기가 메인이 되는 드라마가 된다.

하지만 최근 새롭게 시작한 주말극 ‘솔약국집 아들들’에는 이 드라마가 주목하는 남성과 여성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아들 부잣집인 솔약국집 네 아들들에 대한 이야기인 이 드라마에는 집안 좋고 잘 나가는 부잣집 엄친아들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대신 어머니인 배옥희(윤미라)의 속만 푹푹 썩이는 아들들만 가득하다. 이름과 잘 어울리는 이 네 아들들은 모두 결혼 문제에 있어 하자(?)가 있어 보인다.

진풍(손현주)은 약사지만 나이 사십의 혼기를 놓쳐버린(?) 맏아들. 사람으로만 보면 진국이 우러나는 인물이지만 외모나 나이로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내다. 둘째 대풍(이필모)은 소아과 의사로 이 집안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들이다. 큰 소리 뻥뻥치는 스타일이지만 실속은 없어 보인다. 셋째 선풍(한상진)은 방송사 기자지만 착해 빠지기만 했지 어딘지 현실적으로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어수룩한 인물이고, 넷째 미풍(지창욱)은 재수생으로 성별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성 취향적인 인물이다.

요즘 뜬다는 남데렐라(남자 신데렐라)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만 그것은 경제적인 의미, 즉 신분상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수생인 넷째를 제외하고는 모두 약사에 의사에 기자인 그럴 듯한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남데렐라란 경제적 의미보다는, 이 드라마가 내세우는 결혼이라는 지상과제를 해결해주는 여성들을 만난다는 의미가 강하다.

바로 이 부분은 이 드라마가 이제는 달라진 남녀 관계를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맥락을 띄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이 드라마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다른 위치에 선 남녀를 다룬다기보다는, 그저 결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달라진 남녀 관계를 다루고 있다. 물론 현실적인 결혼이 어찌 계층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있겠냐마는 이 드라마는 기존 여러 딸 부잣집 드라마에서 극적으로 대비되던 빈부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뒤편으로 밀어내고 대신 성향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 부분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아들 부잣집을 다루면서도 여전히 남성 중심적 사고관을 벗지 않고 있다(남자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존재로 그려진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혹은 남녀 간의 사랑, 결혼에 있어서 이제 그런 경제적인 차이의 문제는 촌스러운 어떤 것이 되었다는 현실적인 반증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느 것이든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의 이러한 위치가 보다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트콤에 가까운 코믹한 터치는 이 드라마에 대한 진지한 접근보다는 부담 없이 웃을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해준다.

딸 부잣집을 뒤집어 아들 부잣집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를 가지고 섣불리 뒤집혀진 남녀 관계를 얘기하기는 어렵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남성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이 개인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결혼에서도 성공(물론 그것이 여성들에 의한 구원일지라도)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 드라마를 통해 핏줄로 세습되는 부잣집 아들의 식상한 이야기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것이 부잣집 아들 이야기보다 아들 부잣집 이야기가 좋은 이유다.

음악, 토크, 농담까지, ‘유희열의 스케치북’

빵빵 터진다. 늦은 밤이지만, 음악 프로그램이지만, 이 작고 메마른 남자가 한 마디씩 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쩔 수가 없다. 라디오를 통해 재치 있는 언변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공개무대에서 저처럼 자연스럽기도 쉽지 않을 듯싶다. ‘이하나의 페퍼민트’는 어눌하고 어색한 이하나의 진행이 오히려 풋풋한 맛을 주었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음악이면 음악, 토크면 토크, 순발력 넘치는 농담까지 능수능란한 유희열의 진행에 편안한 맛이 느껴진다.

진행자에 따라서 이다지도 스타일과 색깔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새삼스럽다. ‘이소라의 프로포즈’가 조분조분함이었다면,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그 치기에 가까운 활기참이었고, ‘이하나의 페퍼민트’는 풋풋한 생기발랄함이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아직 그 빈 도화지가 어떤 느낌의 그림을 그려낼 것인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첫 인상으로 감히 예측해본다면 그건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느낌 같은 게 아닐까.

초대된 이승환 앞에서는 한 때는 자신처럼 “딱 보면 초등학교 6학년 같았지만”, 지금은 운동을 해서 “가슴근육이 거의 저희 큰 고모” 같아졌다고 너스레를 떨고, 이소라 앞에서는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를 갖고 장난을 친다. 언니네 이발관 앞에서는 그 밴드의 탄생 과정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네주고, 김장훈과는 이 프로그램을 두고 어떻게 해나갈지 고민했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의 토크 스타일은 게스트와의 적절한 대결구도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분히 도발적인 이야기들이 상대방을 자극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질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게스트들과의 친밀한 유대가 토크 속에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형처럼 때론 누나처럼 친하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장난을 쳐도 그것이 오히려 친밀감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프로그램은 이전 프로그램들에 비해 토크가 늘었고 게스트의 수가 줄었다. ‘이하나의 페퍼민트’ 마지막 회에 양희은, 에픽하이, 아마도 이자람 밴드, 동물원, 장기하와 얼굴들, 요조, 짙은, 국카스텐, 검정치마, 킹스턴루디스카가 게스트로 출연했던 반면, 이 프로그램의 첫 방송에는 이승환, 이소라, 언니네 이발관, 김장훈 이렇게 게스트가 단출해졌다. 혹자는 이것을 가지고 음악 프로그램에 음악이 줄었다고 불평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크가 형식적인 소개 정도가 아니라, 게스트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그네들의 캐릭터와 사연을 덧붙인다는 점에서 줄어든 게스트에 대한 집중도는 더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희열은 프로그램 말미에 김장훈과 했던 고민, 즉 이 코너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그것은 “다 필요 없다. 음악적으로 가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관객들과 다짐하듯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가 말했듯 이 무대는 “좋은 음악이 있는 곳”이고 처음 그가 “가수 데뷔했을 때”의 “꿈의 무대”였듯이 앞으로도 “가수의 꿈을 꾸는 분들에게 꿈의 무대”로 남을 것이 틀림없다. 토크와 유머를 갖고 온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그 빈 도화지에 그 꿈의 무대를 그려내기를 기대해본다.

‘카인과 아벨’, ‘미워도 다시 한번’, 가족의 힘 여전

종영한 수목극 ‘카인과 아벨’과 ‘미워도 다시 한번’은 장르적으로 보면 상이한 드라마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그 구조는 비슷하다. 두 드라마는 모두 그 중심에 뒤틀어진 가족사가 있으며, 그 가족 내에서 사랑 받기 위해 대결구도를 벌이는 인물들이 있고, 파국으로 치닫는 가족이 있으며, 결말에 이르러 본래 제자리를 찾아가는 가족이 있다. 결국 이 두 드라마는 스타일과 장르가 달랐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았던 셈이다. 그것은 우리 드라마의 영원한 주제, 가족이었다.

‘카인과 아벨’의 엇갈린 가족사는 형이 동생을 죽이려 하고, 어머니(물론 친어머니는 아니지만)가 자식을 죽이려 하며, 형이 동생의 여자를 뺏으려 하고, 어머니가 자식의 유산을 가로채려하는 파국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부모 대에서부터 시작된 연원이 자식대로까지 반복되는 이 불운의 가족사는 저 제목이 말해주듯 꽤 오랜 전통(?)을 가진 본원적인 스토리 라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카인과 아벨’이라는 드라마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그 스토리가 가진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종영에 이르러 이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를 정리하면 ‘사랑 받기를 갈구하는 자들을 구원해주는 행복했던 기억’ 정도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나혜주(김해숙)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이선우가 결국 비뚤어지게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이고, 그 과정에서 사랑을 독차지해온 것처럼 보인 이초인(소지섭)이 사지에 내몰렸다가 살아 돌아와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리는 이야기다. 이초인의 마지막 진술로 보자면 이런 아픔들을 구원해주는 것은 누구나 하나쯤은 있는 ‘행복했던 기억’이 된다.

그간 접어두었던 기억의 문제는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서 등장하면서 다소 성급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이렇게 제시되는 메시지는 사실 이 드라마가 가진 힘을 설명해주기에는 역부족이다. 메시지를 떼놓고 보면 이 드라마가 보여준 것은 파괴 직전까지 내몰리는 한 불행한 가족사라고 볼 수 있다. 해체되는 가족에 대한 집착, 가족 구성원으로 편입되려는 안간힘 같은 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힘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핏줄과 가족에 대한 드라마의 집착은 왜 우리네 드라마에 파탄난 가족들이 그렇게 많이 등장하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우리네 드라마의 전형적인 핏줄 정서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1968년 정소영 감독이 동명의 원작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파국적인 가족이야기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스타일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반복된다. 그것은 이 드라마의 복잡한 가계도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명진그룹 회장인 한명인(최명길)은 남편 이정훈(박상원)사이에 아들 이민수(정겨운)를 두고 있다. 그런데 이민수는 이정훈의 친아들이 아니고 한명인의 첫사랑의 소산이며 한편 이정훈과 내연관계에 있는 은혜정(전인화)은 그와의 사이에 딸 수진(한예인)을 두고 있는데, 사실은 숨겨진 딸 최윤희(박예진)가 하나 더 있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한 명씩 과거에 숨겨져 있던 가족과 관련된 인물들을 하나씩 불러들임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 첫 번째는 이정훈의 숨겨진 내연녀 은혜정이고 두 번째는 죽은 줄 알았던 한명인의 첫사랑이며, 세 번째는 은혜정의 숨겨진 딸 최윤희다. 실로 제목처럼 미워도 다시 한번 끄집어내 뒤틀렸던 가족사를 제자리로 돌리려는 욕망이 이 드라마가 굴러가는 진짜 힘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소환된 인물들은 끊임없이 현재 유지되어 있는 가족을 뒤흔든다. 과거와 현재의 충돌, 그로 인해 위기에 처하는 가족, 그리고 어떤 화해(어떻게든 되어야만 하는). 이것은 고전적인 가족극의 전형이다.

종영하는 두 드라마는 모두 공교롭게도 이처럼 뒤틀린 가족의 제자리 찾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결말에 이르러 이들 드라마들이 모두 어딘지 급하게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어쩌면 이들 드라마들의 힘이 끊임없이 파괴되어가는 가족의 모습(그래서 그걸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반대급부의 힘까지)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들 드라마가 주목한 것은 그 끊임없이 파탄 일로를 달리는 가족들의 대결과정 그 자체이지, 어떤 제자리를 찾아가는 결말이나 메시지는 아니었던 셈이다. 어쨌든 우리에게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끈끈함은 이번 종영하는 이 두 드라마를 통해서도 입증된 셈이다.

‘카인과 아벨’의 명연기, 아쉬운 스토리

‘카인과 아벨’이 다루는 장르적 소재들은 실로 다양하다. 병원 내에서 의사인 형 이선우(신현준)와 동생 이초인(소지섭)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의드의 새로운 계보를 잇고 있으며, 중국에서부터 국내에 이르기까지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돌아온 이초인의 복수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액션활극과 복수극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선우와 김서연(채정안), 이초인과 오영지(한지민), 이렇게 네 사람의 관계만 떼어놓고 보면 전형적인 삼각 사각의 트렌디 멜로를 연상시키고, 이초인과 이선우의 대결과정에서는 심지어 공포극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많은 장르적 소재들이 잘 봉합되어 어떤 시너지를 이루었는가 생각해보면 많은 의문이 들게 된다. 너무 많은 익숙한 소재들이 나열되어 있어 어느 한 가지에 오히려 집중을 못시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 기억의 문제는 이초인의 기억상실, 이선우의 뇌종양 재발, 코도마로 병상에 누워있는 이선우의 아버지 이종민(장용) 원장에 이르기까지 실로 중요한 모티브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장르적 재미를 위한 소재에 머문 느낌이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드라마가 지나치게 멜로로 빠져든 혐의가 짙고, 팽팽한 대결구도의 해결과정에 있어서는 너무 밋밋한 인상도 버릴 수 없다. 이초인을 암살하려 쫓아다니던 이선우의 하수인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최대의 악역으로 부상된 최치수(백승현)가 경찰에 허무하게(?) 잡히는 그 순간, 드라마의 힘이 급격히 빠져버린 건 그 때문이다. 이초인이 모든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상황에서 대결구도는 팽팽함을 잃어버렸다. 이 무너진 균형은 심리적으로 이초인의 복수극을 지나친 것으로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어떤 화해를 이룰 것이 분명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꽤 힘이 있게 진행된 것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다. 너무 많은 장르적 틀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 틀 위에 서 있는 캐릭터들도 그 성격이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각각의 역할들을 보면 그 하나 하나가 절대로 쉽지 않은 연기의 난제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초인은 가장 사랑하던 형에게 버림받는 인물인데다 기억상실까지 겪는 인물이고 게다가 가족이라 생각해온 이들에게 의중을 속이면서 복수극을 펼쳐야 하는 이름처럼 초인적인 연기를 해야 하는 캐릭터다.

이선우 역시 자칫 이해될 수 없는 사랑하던 동생을 사지로 몰아가는 욕망의 심리를 납득시켜야 하는 역할이다. 게다가 그는 뇌종양이 재발해 발작을 일으키는 연기도 해내야 한다. 김서연은 동생과 형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인물이고 오영지는 탈북자로서의 강인하면서도 연약한 캐릭터로 특유의 사투리 연기가 난제로 다가오는 인물이다. 이선우의 어머니인 나혜주(김해숙)는 더 납득되기 어려운 인물이다. 그녀는 어머니로서도 아내로서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악역을 해야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겨운 캐릭터는 이종민 원장일 것이다. 그는 드라마 내내 병상에 누워 손가락 하나만으로 연기를 해내야 했다.

이처럼 ‘카인과 아벨’의 캐릭터들은 스토리가 만들어놓은 너무 많은 장르적 설정 때문에 모두 어떤 광기의 연기를 보여야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이 발군의 연기자들이 이 미완의 스토리를 충분히 채워줄 만큼의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때론 연기가, 부족한 캐릭터를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결국 드라마 자체를 살리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그다지 비중 있는 역할이 아니었던 최치수에 대한 호평은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카인과 아벨’, 의욕에 비해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지만 그 아쉬움을 우리는 연기자들에게서 충분히 보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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