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가게’로 또다시 간호사로 돌아온 박보영

조명가게

“저도 예전에 큰 사고를 당하고 의식불명을 겪었었거든요. 그 때 의사선생님이 저희 엄마한테도 같은 말씀을 하셨었대요. ‘환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우리 엄마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속상하셨대요. 방법이 없구나 싶으셨대요. 하지만 전 다시 살았어요. 저도 제가 어떻게 의식을 되찾았는지 모르겠어요. 저희 엄마는 그저 매일매일 기도했대요. 저한테 의지를 불어넣고 싶으셨대요. 그래서 생각해요. 어쩌면 나 혼자만의 의지는 아니지 않았을까.” 

 

디즈니+ ‘조명가게’에서 영지(박보영)는 의식이 없는 환자 때문에 절망하는 부모에게 그 아픔을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녀 역시 사고로 의식 불명이 되었었지만 살아난 경험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의식을 되찾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매일매일 기도했던 엄마 같은 이들의 의지들이 보태져 생겨난 기적같은 일이었을 거라며 절망하는 환자의 부모를 토닥인다. 

 

이 장면은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조명가게’라는 독특한 작품의 메시지이자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의식을 잃고 어둠만 가득한 무의식의 골목길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낯선 곳은 마치 귀신들이 출몰하는 곳처럼 그려지지만, 드라마는 그 곳이 바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의 무의식 속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그런데 그 무의식은 실제 현실에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이들이 누워 있는 중환자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환자들의 귓속으로 파고들어, 무의식 속 빛 하나 없는 무서운 골목길을 통과할 때 들려오는 노래가 된다. 어둠만 가득한 무의식의 골목길에 환한 빛을 비추는 조명가게. 그건 강풀 작가가 사고로 중환자가 되어 사경을 헤매는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이나 희망의 메시지다. 환자의 의지는 물론이고 환자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깨어나기를 애타게 기도하는 그 마음들이 또 다른 의지가 되어 조명가게처럼 환자들에게 빛이 되어줄 것이고, 그것이 그들을 깨어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간호사 영지는 사실상 조명가게 그 자체나 마찬가지 같은 존재다.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환자와 가족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따뜻한 빛을 전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박보영이 바로 그 영지 역할을 맡은 게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악역이든 심지어 19금 역할이든 뭘 해도 ‘뽀블리(박보영+러블리)’라 불리는 배우가 아닌가. 박보영은 영화 ‘과속스캔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후, ‘늑대소년’이나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 등 주로 러블리한 멜로의 주인공 역할로 대중들의 머릿 속에 각인된 배우다. 하지만 그것은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가진 밝은 에너지 때문에 생겨난 착시현상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늑대소년’은 우연히 시골에서 만나게 된 늑대소년과의 독특한 판타지 멜로였고, ‘오 나의 귀신님’ 역시 19금 귀신이 빙의된 인물로 1인2역을 해야하는 작품이었다. ‘힘쎈여자 도봉순’은 어떤가. 국내드라마에서는 거의 처음 시도됐던 여성 슈퍼히어로물이었다.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는 제목처럼 멸망(서인국)이라는 판타지적 존재와 엮어지는 멜로를 연기했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진 세계에서의 생존기를 담은 재난물의 주인공이었다. 

 

오히려 이처럼 다채로운 장르와 독특한 설정의 작품들을 연기하면서도 여전히 ‘뽀블리’로 기억되는 그 지점이 놀랍게 여겨지는데, 이게 가능해진 건 어떤 역할을 해도 타인을 흉내내는 게 아닌 바로 자신으로 그 역할을 소화해내는 이 배우의 특별함 때문이다. 예를 들어 ‘ 오 나의 귀신님’에서 그녀가 맡은 나봉선이라는 캐릭터는 음탕한 처녀 귀신이 빙의되면서 셰프인 강선우(조정석)에게 도발적으로 다가가는 인물인데, 어찌 보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박보영이 연기하면서 그런 도발적인 모습조차 귀엽게 여겼졌고 그래서 불편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반응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박보영이 최근에는 ‘위로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전작이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도 박보영이 맡은 정다은이라는 인물은 정신병동의 간호사였다.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며 그 아픔까지 들여다보려는 이 간호사는 자신 또한 우울증에 걸려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데, 그 과정을 통해 보다 환자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대인들이 가진 정신적인 불안감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인물인 것이다. 박보영은 이 작품을 통해 그저 귀여운 이미지만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의 깊이를 보여주는 배우라는 걸 증명해냈다. ‘조명가게’에서도 마찬가지다. 박보영이 연기하는 영지는 자신 또한 똑같이 사고와 의식불명을 겪었던 그 경험을 통해 다른 환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간다.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고, 그들이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조명처럼 밝은 빛으로 빠져나오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일까. 현대인들은 이른바 ‘위험사회’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한다. 갖가지 사고와 사건의 위험은 물론이고, 매일 같이 누적되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만들어내는 정신적인 위험도 커져만 간다. 그래서 박보영이 연달아 간호사 역할로 보여주는 그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는 우리에게는 이 어두운 세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밝은 조명 같은 위로로 자리한다. 이것이 박보영이라는 페르소나가 우리의 마음을 그 존재 자체로 따뜻하게 해주는 이유다. (글:국방일보, 사진:디즈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아침 햇살 같은 박보영이 전하는 위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포도 싫다고 몇 번을 말했어? 엄마 도대체 왜 그래? 왜 이렇게 사람 숨 막히게 해? 난 나를 잃어버렸어. 아니 한 번도 나를 가진 적이 없어. 내가 누구야? 나 평생 엄마가 하라는 대로 다했어요. 옷도 친구도 엄마가 골라주는 대로. 결혼도 엄마가 시키는 대로. 이만큼 살게 된 것도 엄마 덕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았어. 엄마 말대로 하면 남들도 다 부러워하고 행복해질 거라고. 근데 엄마 나 왜 이렇게 아파? 응? 나 왜 이렇게 불행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조울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오리나(정운선)의 이야기다. 병원을 찾을 때마다 비싼 샤인머스캣을 사갖고 와 딸에게 건네는데, 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엄마의 강권에 포도를 집으려 하던 딸은 결국 포도를 내려놓고 그간 꾹꾹 눌러왔던 속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억눌러 온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녀의 엄마 말대로라면 오리나는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어려서는 발레를 했고 늘 반장을 했으며 명문대를 졸업해 판사 남편과 결혼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프다. 때론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그래서 클럽에서 우연히 보게 된 바텐더를 쫓아다니다 스토커로 신고당하기도 한다. 심지어 옷을 전부 벗어던지고 춤을 추는 이상행동을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걸 최고로 좋은 걸로만 하게 해줬던 엄마는 그런 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는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야. 니가 나한테 어떤 딸인데...” 하지만 마흔세 살인 딸은 혼자 커피도 한 잔 못시켜먹는 사람이 됐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게 뭔지를 몰라서다. 그만큼 모든 걸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하다 보니 작은 일 하나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바보가 됐다고 딸은 토로한다. “진짜 웃긴 게 뭔지 알아? 나 다 벗어 던지고 춤췄을 때가 태어나서 제일로 행복했어.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하던 그 순간이 그 때 처음으로 제대로 숨 쉬는 거 같았어. 나 엄마랑 있으면 행복하지가 않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들려준 오리나의 이야기는 드러난 증상으로 보면 심각해 보인다. 즉 누군가를 스토킹하고, 전라로 춤을 추는 그런 행동들은 충격적이다. 병원에 와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 전담 간호사인 정다은(박보영)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그녀를 밀쳐 버린 후 복도로 뛰어나와 옷을 벗어던지고 복도를 뛰어다니기도 한다. 그러니 누가 봐도 병이라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그녀가 그런 조울증까지 갖게 된 이유는 어찌 보면 일상적이다. 자식 잘되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간섭하거나 챙기려는 부모들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입시 경쟁을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는 우리네 교육 현실에서 ‘자식 사랑’이라는 핑계로 벌어지는 지나친 간섭들은 과연 그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을까. 정다은이 오랜 남사친인 유찬(장동윤)을 만나 이 환자의 사례를 ‘백조처럼 우아하게 만들어진 오리’ 이야기로 에둘러 들려줬을 때 유찬이 한 말은 이 문제의 해답을 들려준다. “남들이 아무리 백조같이 예쁘대도 지가 싫으면 그만이지 행복이 뭐 별거냐? 지 좋은 거 마음대로 하는 게 그게 행복이야.”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이처럼 다양한 정신적인 아픔을 호소하는 사례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끄집어낸다. 첫 회가 지나치게 자식의 삶에 간섭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그로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면 2회의 직장 상사의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으로 강박증을 갖게 된 김성식(조달환)씨의 사례는 직장 내 갑질의 문제를 끄집어낸다. 

 

그래서 이런 현실 때문에 병원까지 오게 된 환자들을 돌보고 병을 치유하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말과 행동들은 그저 병을 고치는 차원을 넘어서 이러한 현실에 상처받은 이들 모두를 위로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시청자들 역시 그 이상행동을 보이는 환자들을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남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러니 여기 등장하는 정다은(박보영)처럼 지나칠 정도로 환자에 몰입하고 세심하게 돌보는 간호사의 모습이 직업적 차원을 넘어서는 울림을 담게 된다. 

 

정다은은 오리나의 병이 그녀의 어머니와 관련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러면서도 너무나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머니를 설득한다. “저기 어머니.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조금 조심스럽긴 한데요. 어머님 꼭 저희 엄마 같으세요. 저희 엄마도 그러시거든요. 막 병원에 떡 돌리라 그러고. 다 나 위해서 하는 말인 거 아는 데도 실은 좀 싫기는 했거든요.” 자신의 이야기로 에둘러 자식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러면서도 엄마들의 그런 간섭이 그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걸 딸들도 다 알고 있다는 말로 오리나의 어머니를 위로한다.  

 

“딸들도 알아요. 엄마가 누구보다 나 사랑하는 거. 어머님이 사랑하니까, 걱정하니까, 그러셨다는 거. 저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편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엄마가 제일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내가 뭘 하든 잘할 거라고 믿고 지켜봐 줄 때요. 어머님도 오리나님 한번 믿어 보시면 안 될까요?” 밝고 따뜻하고 세심한 정다은이라는 인물이 건네는 위로와 설득은 이처럼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와 닿는다. 12부작 속에 다양하게 등장하는 다친 마음들을 그녀가 토닥여줄 때, 시청자들 또한 치유 받는 듯한 기분에 빠져드는 이유다. (사진:넷플릭스)

주인공을 ‘멸망’이란 추상으로 바꿔 놓으니

 

tvN 월화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이하 멸망)>는 벌써 제목부터 특이하다. 드라마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만 보면, ‘멸망’이라는 의인화된 표현은 이 집 주인이 맞이한 비극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 ‘멸망’이 들어온 집 주인 탁동경(박보영)은 시쳇말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다. 사귀던 남자친구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고, 머릿속에는 100일 후 터져버릴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선고를 받는다. 이 정도면 술에 취해 누구나 한 번쯤 이렇게 외쳐볼만 하다. “세상 다 망해라! 멸망해버려!” 그런데 이 드라마는 바로 이 지점부터 멜로를 시작한다. 그것도 탁동경이 외쳤던 그 ‘멸망(서인국)’이 잘생긴 남자 캐릭터로 새벽에 그 집 문 앞에 나타나는 것으로. 

어느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설정은 흥미롭다. ‘멸망’이라는 추상명사를 초현실적 존재로 캐릭터화 했고, 마치 신처럼 그 존재의 역할까지 부여했으니 말이다. 이 멸망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유’라는 존재의 역할이 부여됐다. 그래서 그가 지나는 곳에서는 씽크홀이 생기고, 달리던 버스의 타이어가 펑크 난다. 물론 사람도 죽는다. 그러니 이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뭐든 가까이 하면 사라지거나 불행해지는데 어찌 행복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존재가 되면 차라리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나아가 인간들과 거리를 두는 게 인지상정일 게다. 

 

그런데 이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는 탁동경과 계약을 맺는다. 죽기 직전에 세상을 멸망시켜 달라고 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100일 간은 아프지 않게 해주고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만 계약을 어기면 그 순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조건이 붙는다. 

물론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가 등장하지만 <멸망>이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장르적 틀은 멜로다. 그래서 멸망과 탁동경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공식을 거의 따라간다. 어쩌다 ‘동거’를 하게 되고, 물론 ‘동거 계약서’도 쓴다.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밀고 당기는 관계 역시 빠지지 않는다. 멸망은 탁동경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하는 탁동경의 손을 잡고 함께 건너 주기도 하고, 초현실적 존재로서 탁동경이 그토록 원하는 판타지(이를 테면 과거로 잠깐 시간을 되돌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그 시절을 경험하게 해주거나, 온 가족이 함께 놀이공원에 갔던 그 시간 속으로 옮겨놓는 식의)를 이뤄주기도 한다.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비정함과 그와는 정반대로 탁동경을 달달하게 만드는 판타지가 오가며 멜로의 밀당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미 모든 시청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것만 같던 멸망이 탁동경에게 연민을 느끼다 사랑하게 된다. 

 

너무나 전형적인 멜로의 틀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라는 사실은 이 익숙한 틀을 낯설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래서 멸망과 사랑에 빠지는 이 탁동경의 판타지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가 궁금해진다. 판타지는 현실의 결핍이나 부재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희망도 아니고 절망도 아닌 멸망과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는 현실의 어떤 결핍을 채워주기 위함일까 궁금해질밖에.

 

바로 이 부분은 그래서 이 전형적인 멜로가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날 도무지 이길 수 없는 멸망이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망하게 생겼으니 세상도 망해야 한다고 저주를 퍼부을 것인가, 아니면 그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멸망을 힘겹지만 끌어안을 것인가. 탁동경은 세상의 멸망을 요구하는 저주 대신 멸망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후자를 선택한다. 그러자 이제 멸망이 고민에 빠진다. 그 역시 탁동경을 사랑하게 되지만 저 계약 조건에 따라 자신은 죽게 됐으니 말이다. 이 상황은 ‘운명은 거스르려 하면 결코 바뀌지 않지만, 받아들이려 할 때 그제서야 변화하게 된다’는 다소 철학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런 해석은 해석일 뿐이다. 그저 밀고 당기는 전형적인 멜로로 보일 수 있고 그것 역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미덕이 있다, 그건 적어도 멸망이라는 초현실적 존재가 그 흔한 멜로의 현대판 왕자들보다는 낫다는 점이다.(글:PD저널,사진:tvN)

'어쩌다 사장', 우리도 점점 원천리 사람들에 익숙해진다는 건

 

점심시간 슈퍼를 찾은 인근 초등학교의 선생님들. 아마도 조인성의 팬이라는 유치원 선생님이 앞장서며 교장선생님과 행정직원분들이 함께 찾아온 것이었을 게다. 유치원생들이 주는 선물이라며 사탕과 섞여 있는 아이들의 손 편지에는 학교를 찾아와 달라는, 역시 유치원 선생님의 사심이 가득 들어있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그 유치원 선생님은 이곳에 부임해 온지 3년 만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는 말로 조인성을 활짝 웃게 그리고 교장선생님을 난감하게 만든다.

 

차태현과 조인성이 열흘간 맡아서 하는 시골 슈퍼 체험, tvN 예능 <어쩌다 사장>은 이들 초보 사장들이 겪는 좌충우돌이 그 첫 번째 맛이었다면, 이제 차츰 익숙해지며 조금씩 보이는 그곳 원천리 주민들의 매력적인 모습이 두 번째 맛이다. 지난해 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는 그 학교가 슈퍼를 찾은 선생님들 덕분에 눈에 들어오고, 귀여운 아이들과 마음씨 좋아 보이는 선생님들의 학교에서의 모습이 보지 않고도 그려진다.

 

슈퍼를 찾은 그 곳 단골손님인 VVIP 할머니들은 술 한 잔 같이 하자는 말을 건강 때문에 안된다는 지인에게 "오래 살려구" 그런다며 거침없이 응징의 말을 쏟아낸다. 얼마나 친하면 그럴까 싶을 정도로 스스럼이 없는 이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까불이, 짹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관광버스 타면 그렇게 까분다고 까불이고, 귀에 거슬리는 말하면 쪼아준다고 짹짹이란다. 시골마을에서 뭐 그리 바쁠 일이 없는 어르신들은 아마도 그렇게 슈퍼를 사랑방 삼아 찾아들어 소주 한 잔씩 하며 수다를 떠는 것이 일상의 낙이었을 듯싶다.

 

조인성은 할머니들에게 아침에 먹다 남겨놓은 미역국을 서비스 안주로 내주고 스스럼없이 그들과 섞여 이야기를 나눈다. 슈퍼에 온 지 겨우 이틀 정도 지났을 뿐이지만, 어느새 부쩍 이 할머니들조차 가깝게 느껴진다. 이건 <어쩌다 사장>을 보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계속 그 슈퍼를 들여다보니 그곳을 찾는 주민들이 차태현과 조인성이 그러하듯 익숙해진다.

 

어색함을 한 번에 날려준 박보영이 첫 번째 아르바이트생으로 온 것도 이런 익숙해짐이 주는 친근한 즐거움을 만들어준 이유 중 하나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이미 있어서인지 뭐든 알려주지 않아도 척척 해내는 박보영은 이 시골슈퍼와 그곳을 맡게 된 조인성, 차태현의 어색함을 단번에 채워줬다. 슈퍼 사장님 밑에서 본래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람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점심시간이 지나고 잠깐 짬을 내 전날 저녁 슈퍼를 찾았던 보건소의 한의사를 찾아가 침을 맞는 조인성의 모습은 제법 그곳 주민에 동화된 느낌을 선사한다. 그 한의사는 다시 저녁에 슈퍼를 찾고 조인성은 마치 답례라도 하듯 저녁 식사를 만들어준다. 그 한의사 옆자리에 앉은 다른 손님은 자신도 보건소에 찾아가 침을 맞은 적이 있다며 막걸리 한 잔을 권한다. 이런 훈훈한 풍경은 도시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어린이집 하원하면 혼자 있을까봐 슈퍼를 찾아와 사장님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옆집 아이는, 그 이야기만으로도 사장님이 어떤 분인가를 느끼게 만들고, 그런 아이에게 피자를 데워주고 말을 걸어주는 차태현과 박보영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그건 슈퍼에 익숙해지는 일이고, 나아가 슈퍼를 찾는 인근 주민들에 동화되는 일이며, 그 곳 원천리라는 작은 시골 마을을 마치 이웃처럼 느끼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다 사장>은 물론 그 곳을 떠맡은 차태현과 조인성 그리고 찾아온 박보영이나 윤경호, 김재화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이 겪는 과정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그들이 그 곳 사람들을 만나고 익숙해지며 나아기 친숙해지는 그 과정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보고플 정도로 매력적인 원천리 사람들이 아닌가. 자꾸만 이 시골 슈퍼를 들여다보고픈 마음이 생기는 건 이곳을 찾아주는 분들 때문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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