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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3.14 때론 고립을 즐기자
  2. 2011.02.15 아버지 머리의 뿔은 왜 자랐을까 (2)
  3. 2011.01.25 병수야, 마흔이 무슨 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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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MBC 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카메라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그 프로그램은 우리가 평소에 발견하지 못하는 것들까지 세세하게 우리 앞에 던져 놓았다. '곰배령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그 다큐멘터리는 나를 단박에 매료시켰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한 번 곰배령 가볼까?"하고 물었고 아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휴식년제에 들어간 곰배령은 사람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만 그래도 가려면 갈 길은 있다. 그 해에는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가 곰배령 안에 사는 분의 이름을 가르쳐주면서 입구에서 그분을 만나러 왔다고 얘기하고 들어가라고 일러줬다. 우리 가족은 그 패스워드를 정확히 불러주었고, 그 입구를 막고 있는 관리인은 들어가라고 해주었다.

참 이런 자연이 없었다. 사람 발길이 없어서 그런지 모든 게 생생한 야생이었다. 산을 잘 오르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그 날은 꾸역꾸역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중간에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아내와 막내는 낙오했지만, 나와 딸내미는 꼭대기에 올라 사진도 찍었다. 곰이 누워 있는 모양이라 붙여진 이름, 곰배령. 그 느낌만큼 편안함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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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기억이 워낙 좋아서였던 지 다시 곰배령에 가자는 내 얘기에 가족들은 모두 들떠 했다. 그래도 겨울인데 눈이라도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또 눈을 즐기면 되지 않나 하는 호기까지 생겼다. 묵을 펜션은 '강선산방'이라는 곳으로 아예 곰배령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 30분 정도 걸어야 닿는 곳이었다.

차를 세우고 들어가니 녹지 않은 눈길이 별천지 같았다. 펜션도 좋았고 주인 내외도 친절했다. 그 날 밤 누운 자리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넘쳐났다. 그걸 가슴 한 가득 품으며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야호 했다. 그런데 눈이 계속 내렸다. 그치지 않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눈사람을 만들고 삽으로 눈을 파서 눈썰매도 타면서 아이들은 신나했다. 그런데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렸고 거의 1미터에 가깝게 쌓여 버렸다. 마침 주인 내외는 딸내미가 대학을 졸업한다며 출타중이었고, 그 외진 집에는 우리 가족만 덩그라니 남아 있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눈을 보고 밥을 먹고 산방이(그 곳을 지키는 멍멍이다)에게 밥을 주는 일이었다. 핸드폰이 되지 않는 지역이라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느낌이었다. 다음날 아침 밥을 챙겨먹고 여전히 그치지 않는 눈을 맞으면서 길을 나서려는데 옆집 총각이 산방이 밥을 주겠다며 집을 찾아왔다. 그 총각에게 "와도 너무 눈이 많이 오네요." 했더니 글쎄 이 총각이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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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렵게 곰배령을 탈출했다. 푹푹 빠지는 눈 덕에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고, 주차장을 가득 뒤덮은 눈은 도저히 차를 빼낼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을 주었다. 어찌 어찌 차를 빼고 비포장길을 달리는 그 순간순간은 생과 사를 오가는 아찔함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빠져나와 비로소 눈을 다 녹여놓은 도로로 올랐을 때, 내 머릿 속에는 계속해서 그 총각의 "좋잖아요!"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사실 뭐 불안할 게 있었을까. 조금 고립되더라도 조금 고생하더라도 그 자체를 사실은 좀 즐기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곰배령을 빠져나오면서 그동안 막혀 있다 뚫린 댐처럼 휴대폰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메시지들의 홍수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좀 아쉬워 했었다는 거. 늘 저쪽과 연결되어 있기를 욕망하면서도 때론 완전한 고립을 꿈꾸는...

하긴 그런 기억이 또 있다. 어느 해 산사에 가서 겪었던 그 기억.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 고립은 너무나 달콤한 것으로 남게 되었다.

월정사에서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다. 어둑해진 밤에 도착한 나는 스님께 하룻밤 묵을 수 없겠냐고 물었다. 하루 방세로 대신 시주를 하고 스님이 안내해준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장롱도 없고 소파도 없는 그 방에는 덩그러니 이불 한 채만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뭐였을까. 있는 것으로 특징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으로 특징되는 그 방이 주는 편안함. 산사의 밤은 고요했다. 불을 끄자 하늘에 별이 지천이었다. 모든 게 꺼진 듯한 그 기분. 완전한 어둠과 고요 속에서 나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온 것처럼 깊고 단 잠을 잤다. 그 때 내 머리 위에 늘 곤두세워져 있던 안테나도 꺼졌다. off. - '가끔은 꺼두셔도 좋습니다'(숨은 마흔 찾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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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대탈출..ㅎ)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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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아주 내 얘길 그대로 썼더라."
시골에 갔더니 아버지께서 불쑥 이 얘기부터 건네셨다. 사실 조금 부끄러웠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뭔가 속내를 들킬 때 어색해하는 감정이 남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 속내가 궁금했던지, 책이 나왔다고 하니 단박에 책을 구해서는 읽었다고 하셨다. 책상 위에 놓여진 책은 접어가면서 보았는지 벌써부터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사실 시골 내려가기 전에 어머니가 전화를 했었다. "얘. 네 아버지가 이상하다." "네? 어디가 편찮으세요?" "아니 그런게 아니고 네 책을 읽으면서 깔깔깔 웃다가 또 갑자기 울고 그런다지." 아들이 책을 쓴 것에 대한 과장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막상 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얘기하니 마음 한 구석이 짠해졌다.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온 후, 줄곧 단 한 번도 함께 지낸 적이 없는 아버지와 나는 그만큼 속내를 얘기하며 소통한 적이 없었다. 3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책 한 권으로 서로의 마음이 만나게 된 것이었다.

책에 '아빠가 뿔났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나는 사실 조금 울었던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아픔을 속으로만 삼켰으면 실제로 머리에 뿔이 날까, 하는 그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매번 볼 때마다 "난 괜찮다"고만 하셨던 그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말로 그걸 표현하기에는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 있었다. 그래서 대신 한 자 한 자 글로 그걸 적어나가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아버지가 이 글을 읽기를 바랐던 모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푸념하시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연세가 드시다 보니 마음이 약해지셔서 점점 과거와 달리 푸념을 하시지만 그래도 젊었던 시절에 아버지는 거의 모든 당신의 말을 아꼈다. 뿔은 거기서 생겨난 것일 거라고 나는 상상했다. 밖으로 풀어냈어야 할 그 가시 같은 말들을 그저 꿀꺽 꿀꺽 삼켜버린 아버지는....

“아빠는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던 아버지의 이 말이 이제는 새롭게 들린다. 정말 아빠는 괜찮았던 것일까. 왜 ‘아빠도’가 아니고 ‘아빠는’이었을까. 혹 힘겨운 삶 저편에서 실은 괜찮지 않은 삶을 살고 계셨던 건 아닐까.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아버지. 그렇게 괜찮다고만 말고 화라도 내보세요.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나 스스로도 다짐한다. 절대로 가족들을 위한다는 마음 때문에 그저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런 삶은 살지 말아야지. 그러다 어느 날 불쑥 내 머리 위에 뿔이 솟아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혹 그 뿔을 보는 가족 중 누군가가 뒤늦게 가슴 아픈 마음을 갖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니까. - '숨은 마흔 찾기' 중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집을 나서 차를 몰고 나오는데 저 뒷편에 아버지가 보였다. 아버지는 아주 멀리 차가 멀어질 때까지 거기 서 계셨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드리운 채. 혹 지금도 그 뿔은 여전히 자라고 있는 건 아닌지.

Posted by 더키앙

마흔, 그 미친 존재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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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는 제 오랜 친구입니다. 젊은 시절, 신촌에 있는 '도어스'를 드나들고 짐 모리슨처럼 살아야지 하면서 술을 밥처럼 마시던 친구였죠. 뭐 하나 결정된 것이 없지만, 아니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처럼 하루하루를 불태웠던 것(?) 같습니다. 그 땐 저도 좀 그랬습니다. 그런데 벌써 마흔을 넘겼군요. 이제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혈압약을 챙겨 먹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강남역 '우드스탁' 같은 데서 존 레논을 들으며 하루 동안 귀에 덧씌워진 삿된 것들을 씻어내곤 합니다. 병수는 한때 보험소장을 하다가 지금은 나와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늘 인상을 잔뜩 쓰고 입만 열면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죠. 물론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는 않습니다. 꽤 잘 살고 있고,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저와 만나면 늘 이런 식입니다. 마치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같은 인상이죠.

아무래도 저와 오랜 시절 만났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치기를 떠올리고 지금 현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그 때 생각과는 다르게 살아버린 자신이 우습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그 때는 권총자살한 커트 코베인이 남긴 유서처럼 '서서히 사라지기보다는 불꽃처럼 타버리겠다'고 하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참 우리는 잘도 버텨왔습니다. 어쩔 때는 좀 우리가 많이 더럽혀졌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짧은 시간이라도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그렇게 노래를 들으며 잠시동안의 청춘을 되돌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내내 '남자의 자격'을 보면서 저는 '중년남자들'을 떠올렸습니다. 여기 출연하는 멤버들이 평균나이 마흔 둘의 남자들이니 당연한 일일 겁니다. '죽기 전에 해야할 101가지'라는 부제가 달려 있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저는 '이런 정도는 해야 남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이라는 뉘앙스로 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였더랬습니다.

그런데 웬걸? 언젠가부터 '남자의 자격'은 의무가 아니라 누리는 것으로서의 중년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중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삶의 향기, 친구의 소중함, 청춘의 고마움, 가족의 든든함... 이런 것들은 청춘의 시절에는 잘 모르던 것들이죠. 즉 세상은 자꾸만 중년남자들을 '고개숙인 남자'니, 청춘과 노년의 중간에 낀 세대니 하면서 어딘지 존재감 없는 세대로 분류하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문득 저는 병수를 떠올렸습니다. '마흔이라는 나이, 그게 뭐 그리 잘못된 건 아니잖아. 어쩌면 이제 모든 걸 겪고 난 지금부터가 진짜 사는 걸지도 몰라.' 그 후로 꼬박 1년 동안 마흔, 그 미친 존재감에 대해 쓴 책이 바로 '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입니다. 그리고 어제 출판사에서 막 나온 책을 보내줬죠. 참 감회가 새롭더군요. 책 한 권을 쓰고 나니 이제 비로소 좀 당당하게 마흔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수야. 이제부터 시작이야. 우리 멋지게 한번 살아보자.' 책에 꼭 이렇게 적어서 보내줘야겠습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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